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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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공항의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 바에서 만난 두 남녀. 남자는 신생 인터넷 기업에 자금을 대고 조언하는 일을 하는 부유한 결혼 3년차였고, 여자는 여자 대학교에서 문서 보관 담당자로 일을 하는 미혼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평생 다시 볼 일도 없을 테니, 낯선 사람에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인형 같고 동그란 얼굴은 나이를 먹으면서 둥실둥실해질 것이고, 핀업 사진 속 모델 같은 몸도 처질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녀는 늙지 못할 것이다. 내가 죽일 거니까. 맞지? 난 그럴 계획이었다. 그녀를 죽이고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굉장한 힘과 희열이 느껴졌지만 또한 두려움과 슬픔도 느껴졌다. 난 아내를 미워하지만 그 이유는 한때나마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해안가의 부지를 사들여 집을 짓는 중이었는데, 시공업자와 아내가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직접 눈 앞에서 확인한 그는 엄청나게 화가 났고, 아내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불륜 장면을 목격한 일주일 전부터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자문했던 질문, 아내를 죽이는 일에 대해 그녀에게 털어놓자, 놀랍게도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한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에요."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아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너무 괴롭고, 분하고,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 순간 곁에 있던 누군가가 그 생각은 당연한 거고, 전혀 나쁜 게 아니라며 도와주겠다고 나선다면 어떨까.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당신이 하는 건 그 사람의 죽음을 앞당겨주는 행동일 뿐이라고 말이다. 당신에게 나쁜 짓을 한 그 사람이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이니, 사라져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 행동이 이후에 그로 인해 상처받을 많은 사람들을 구해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고. 글쎄, 장난처럼 웃어 넘길 수도 있겠고,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며 정색하게 될 수도 있을 테고, 정말 그래도 될까 싶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떨까. 하지만 세상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없다. 그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렀다 해도 말이다.

"계획대로만 한다면 잘못될 일은 없어요. 하나만 물을게요. 만약 오늘 케네윅에 지진이 나서 미란다와 브래드가 죽었다고 해 봐요. 기분이 어떻겠어요?"

"행복할 겁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대답했다.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그들은 죗값을 치르겠죠."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거예요. 지진을 만드는 거죠. 둘 다 매장할 정도의 지진. 제대로만 한다면 사건을 수사하게 될 경찰을 포함해 모두가 미란다는 브래드가 줄였고, 브래드는 도망갔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고는 브래드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일 테지만 영영 찾아내지 못하겠죠. 당신을 잠깐 의심할 수도 있어요. 의심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하지만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을 테고, 당신의 알리바이는 절대 깨지지 않을 거예요."

, 그렇게 아내의 불륜을 용서하지 못한 남편의 복수극이 짜잔.하고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의 오산이다. 이야기는 살인을 계획하는 남편 테드와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 그를 돕는 릴리의 스토리와 과거 릴리의 행적이 교차 진행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1인칭 화자였던 우리의 주인공 테드는 1장을 끝으로 이야기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시작된 2장은 릴리와 테드의 첫 만남 장면으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테드가 죽이려고 하던 아내 미란다와 살인 계획을 모의하다 혼자 남겨진 릴리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기 시작한다. 마지막 3장에선 그녀들 외에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킴볼과 사건을 수습해야 하는 릴리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며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릴리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녀의 독특한 가정 환경과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매우 컸지만, 사실 그녀를 그저 사이코 패스라고 치부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많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뿐이라는 합리화, 그리고 내가 만약 누군가를 죽이고,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의문이다. 나라면?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애초에 살인의 당위성을 믿는다면 말이 안 되겠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과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 우리가 그 동안 옳다고 믿어 왔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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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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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게다가 비밀과 거짓말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 소설가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한술 더 떠 작가도 아니면서 작가라고 뻥치고 남의 인생을 훔쳐서 살고 있는 소설가가 등장한다. 그러니 재미가 없을 래야 없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원칙적으로 서평을 읽지 않는 마르타와 달리 헨리는 모든 평을 한 자 한 자 다 읽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칭찬에는 자를 대고 줄을 그었고 기사를 오려서 스크랩북도 만들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요새와 같다.' 헨리는 이 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책 표지 접히는 곳에 굵은 글씨로 인쇄돼 있었는데 큰 신문사에서 문학 카럼을 쓰는 페펜코퍼라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 헨리는 '그렇지!' 단순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문장. 내가 써도 이렇게 썼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건 그에게서 나온 문장이 아니었고, 그 무엇도 그에게서 나온 것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성공한 소설가 헨리는 자신의 작품 중 단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실 그의 모든 소설은 그의 아내가 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걸 아는 사람은 그 자신과 아내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런 아내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지극정성을 쏟아 부어도 모자랄 텐데, 이 남자 자신의 담당 편집자인 베티와 바람을 피우는 중이다. 거기다 베티는 임신까지 한 상태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해 애인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세워져 있던 베티의 차를 보고는 충동적으로 차를 들이받아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고 만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얼마 후 베티가 나타난다. 부인이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자신 대신 약속 장소에 나갔다는 것이다. 애인 대신 아내를 죽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헨리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집필 중이던 원고는 마무리가 되지 않아 출판사에 넘길 수가 없고, 자신이 아내를 죽인 사실을 숨겨야 했고, 아내가 사라진 것처럼 일을 꾸며야 했다. 아내가 없어진 마당에 자신의 불륜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는 없었으므로, 베티의 아기 또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의 소설가 인생은 이제 완전히 끝이 나 버렸다는 것이다. 무려 8년 간이나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고, 무려 20가지 언어로 번역이 되어 팔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수많은 문학상의 수상자였던 그인데, 이제 한 글자도 새로 써낼 수가 없으니 앞길이 막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믿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해보는 게 훨씬 낫지. 지어낸 거짓말은 금세 잊어버린다. 기억을 해야 하는데 세부적인 것까지 정확히 기억하려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리고 거짓말이란 언젠가는 폭탄으로 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오래된 거짓말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녹슬어간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말한 사람은 안심하게 되고 점점 부주의해진다. 그러다 결국 잊어 버린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잊어버린 거짓말이 어디 놓여 있는지 모른다면 그 부근 일대를 피하는 것이 좋다. 헨리의 지나온 인생은 그런 위험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자신의 과거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온통 지뢰밭이니까.

그렇게 거짓 삶을 살던 소설가의 실체가 온 세상에 다 까발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는, 그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더 흥미로워진다. 단순히 아내의 이름 대신 소설가인 것처럼 살았던 게 전부가 아니라, 과거부터 악행을 거듭했던 나쁜 놈이었던 것이다. 한동안 잘난 소설가 행세하며 사느라 잠잠했던 그의 내면이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깨어나게 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는 두 얼굴을 가진 하이드가 되어 간다. 아내의 죽음을 감추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는 그의 위태로운 삶은 과거로부터 그를 쫓아다니는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하고, 현실에서 의심을 받게 되어 쫓기기도 하면서 점점 더 엉망진창이 되어 간다.

특히나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소설가의 아내인 마르타인데, 천재적으로 글을 써내지만 정작 자신은 원고를 전혀 읽지도 않고, 그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으며 스스로의 작품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작품을 발표할 의사도 없었기에 남편이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 그의 이름으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을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없으며 그저 글을 쓰는 것만을 좋아한다. 그리고 초고를 한번도 수정하지 않더라도, 매번 완벽한 글을 써내는 천재 작가이다. 그녀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세지, “여보, 어떻게 끝날지 알겠어?”는 작품을 읽는 내내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고,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사실 나는 그녀가 살아서 남편 앞에 다시 나타나 엄청난 반전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의 속도를 휘몰아치게 만들어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가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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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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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한 스파이 소설을 만났다. 이 책은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스파이가 등장하는 첩보물은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스파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는, 오로지 자신의 일에 대한 신뢰와 투철한 자부심으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던가. 애초에 스파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거나 의문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작품은 정말 이상한 기반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무얼 할 수 있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정작 기억을 잃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듯이.

"다시 시작하는 거지. 전부 다.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잖아. 살면서 느꼈던 좌절감이나 실망감 같은 것, 이를테면 불가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거잖아."

"너는 뭐가 불가능한데?"

"다시는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그때의 나, 참 괜찮았거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익명'으로 존재한다

D는 실종된 정신과 의사인 언니를 찾아 나서는 동생이다. 그들 자매는 한 번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을 거의 모드 기억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정부주의자이자 히피였던 그들의 부모는 아이를 낳고 정부에 등록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그들이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부모가 사라지고 어떤 가정에 입양되었고, 언니만 서류상으로 정부에 등록되었다. D는 여전히 이 세상에 기록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이제 그녀의 언니는 세상에 기록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언니 대신 진료실을 지키다 고민을 상담하러 환자로 온 X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X는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잠들어 있었고, 깨어났을 때 십오 년의 세월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던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퇴원 서류에 보호자로서 서명한 이는 Y였다. 누군가 나타나 그에게 그가 조직에 속한 특수요원이며, 스파이라고 말해준다. 그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의 상사라고 하는 남자가 건네준 자신의 파일을 읽는다. 자신에 관해 나열된 객관적 사실들을 읽으면서 그는 생각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자신이 한 일이 세상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이 했던 모든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을 거라고 말이다.

Y는 다큐멘터리 작가 감독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녀는 X의 대학시절 친구 역할을 부여 받았다. 그의 보호감시 업무를 십 개월 동안 진행했고, 그가 깨어난 후 그의 지인으로 가장해 그를 원래 일로 복귀시키는 업무를 했다. 하지만 그 업무는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아 징계를 받았고, 그 뒤 Z라는 소설가를 관찰하는 새로운 일을 받게 된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전문 요원으로 승진하는 것이다. B는 중년의 스파이로 그의 직책은 중간 보스이다. 해외에 나간 지 오 년 째인 아내와 아이와 떨어져 홀로 지내는 기러기 아빠이다. 남편에게도, 세상사에도 아무 관심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아내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늘 일등을 해온 아버지를 존경스러워하는 아이 속에서 그는 평생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Z는 별볼일 없는 서른 다섯의 소설가이다. 스물다섯에 소설가가 되고, 십 년 동안 소설만 썼지만, 특별한 학벌도 없는데다 작품이 팔리지 않는 시시한 작가라 출판사 또한 무관심한 작가이다. 현재는 창작기금을 받아 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정말 알고 싶은 게 뭐야?"

"난 너의 진짜 냄새와 숨결과 땀을 알고 싶어. 그건 진짜겠지."

원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위안을 주는 환상 속에서 살 수 있다. 거짓된 현실에 속아주기도 하고 본래 의도를 감추려고 그 현실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이 거짓으로 쌓은 도미노가 길고 크고 복잡해질수록 어쩌면 우리는 더더욱 환상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적인 환상을 지키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스파이의 삶이다.

직장도 없고 애인도 없고, 심지어 할 일도 없어 보이는 무명의 소설가를 감시하는 스파이들. 반사회적이거나 반정부적이거나 반경제적인 구석도 없어, 애초에 무엇 때문에 그가 표적이 되었는지부터가 의문인 남자를 감시하는 그들의 임무 또한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미심쩍기만 하다. 그렇게 무명의 소설가를 감시하는 스파이들의 이야기와, 그 속에 등장하는 비밀스런 독서클럽의 초대장, 그리고 그 곳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길을 '패자의 서'라는 책 속에서 찾으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각의 스파이들의 자기 자신에 대해,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스파이라는 각자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한 인간을 지탱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며 그저 그렇게 살다 죽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니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도록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는 단정적인 작가의 어투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시니컬하게 내뱉고 있는 세계의 존재 이유와 현대인들의 고루한 삶에 대한 시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바꾸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우리의 진실이 있다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되고, 감시 당하는 거야 뭐 기존에 다른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설정이었지만, 이렇게 독특한 '스파이'는 난생 처음이었던 터라 신선하고 색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아닌 나로 살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에게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말한다.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어차피 우리 삶의 선택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고, 그것들 모두 진실이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정말 위대한 것까지 상상하고, 꿈꿔보라고. 불리할 수는 있어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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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신저 23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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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십 명의 승객들이 크루즈선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그곳만큼 완벽한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난간에서 한번 뛰어내리기만 하면 그걸로 끝, 시체도 목격자도 찾을 수 없으며, 실패할 확률도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이런 일들이 이 작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크루즈선과 페리에서 바다로 떨어져 사라지고 있다.

 

"지금 현재 대양을 누비고 다니는 모든 크루즈선에서 우리는 매년 평균23명의 승객들이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고 추정합니다."

그래서 패신저 23이군!

이제 그녀는 다니엘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당신들 배에서 또 한 명이 실종되었나요?"

우리 배에서 패신저 23이 발생했어요!

"아뇨." 다니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그런 걸 감추는 것쯤이야 우린 밥 먹듯이 하니까요."

 

잠입 수사관인 마르틴 슈바르츠는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잃은 후,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당신은 최대한 빨리 배를 타야만 해요."

술탄호는 크루즈선으로 5년 전 마르틴의 아내가 아들을 뱃전 밖으로 던져 버리고, 스스로 50미터 아래로 뛰어 내려 자살을 했던 바로 그 배였다. 그는 그날 이후,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이상 크루즈선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로 다짐했었지만, 그는 그 배에 탈 수밖에 없었다. 이름 모를 노파가 전화로, 아재가 자발적으로 죽으려 뛰어내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가족들이 어쩌면 아직 살아 있다는 단서일지도 모르겠다며, 그에게 누더기가 된 조그만 테디 곰 인형 하나를 건네준다. 그것은 아들 테디의 것이었다.

같은 시간, 열다섯 딸 리자와 함께 배에 오른 율리아는 남편의 배신 이후로 3년동안 삭막한 시간을 보내오다, 이번 크루즈 여행을 통해 딸과 호젓한 휴가를 보낼 꿈에 부푼다. 그런데 딸의 멘토 교사이자 잠깐 연애 상대였던 톰이 전화를 해서, 딸이 남자와 함께 등장하는 지저분한 영상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고, 그것이 인터넷에 퍼져 리자가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당장 배에서 내리라고 말하지만, 이미 배는 출발한 상태였고, 리자는 이 넓은 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 이 배의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건은 바로, 8주 전 술탄호에서 어머니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나타난 아누크라는 여자아이였다. 해운 회사의 오너는 마르틴에게 그 아이의 실종에 대한 수사를 해달라고 제안한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크루즈선은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낸다면 마르틴이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의 생각 하나하나가 시럽에 젖어 유리 가루 범벅이 된 듯한 느낌이 들 겁니다." 그녀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당신이 따님을 간절히 생각할수록 그 생각들은 당신의 마음속의 드러난 상처에 더욱 피가 나도록 비벼댈 겁니다.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적어도 두 목소리가 동시에 외칩니다. 한 목소리는 당신의 따님이 도움이 필요했을 때 당신이 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느냐고, 어째서 그 징후를 알아보지 못했느냐고 외치죠. 또 다른 목소리는 당신의 삶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마당에 무슨 권리로 손을 놓고 여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느냐고 비난에 차서 묻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난 아이를 통해 사라진 자신의 가족에 대한 단서를 수사하는 마르틴과 딸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율리아는 선장과 함께 수색에 나서고, 누군가에 의해 특정 공간에 갇힌 채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을 고백해야만 하는 여자가 등장한 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크루즈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밀도 있는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무엇보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보다 '예측할 수 없음'에 있다. 그동안 만나왔던 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 두툼한 페이지를 숨쉴 틈 없이 달려가 범인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도 해결과 해소의 안도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그 어떤 예정된 것에 대한 불안감, 그러나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것에 대한 기대감까지 차오르게 만들어주는 이야기. 치밀하게 계산된 설계도를 따라 가다 보면, 결국 지나쳐 온 모두가 복선이 되어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반전도 재미있지만, 그 모든 것의 결론이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주인공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우려는 너무도 오싹하고, 충격적이고, 당황스럽다. 그렇게 항상 여운(?)을 남기는 그의 작품은 사이코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파격적이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적인 부분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사이코 스릴러, 심리 스릴러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본인은 가족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인다고는 하지만,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것은 가족들 속에 근원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여전히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그 순간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하곤 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직면해서야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나쁜 결말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내가 그때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이라는 선택에 대한 후회,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한 행동으로 인한 파급효과들은 어쩔 수 없이 비극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시간의 끝을 잡고 돌아가고 싶은 회한의 선택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한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결국 내가 하는 선택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생에서 하는 수많은 결정들로 인해, 결국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처럼, 미리 조심하지 못하고 물이 엎질러진 다음에야 우리는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늘 그렇지 않은가. 그 가슴 아픈 회한의 순간으로 피체크는 우리를 초대한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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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0-2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피체크 마니아시군요! ^^

피오나 2016-10-21 23:17   좋아요 0 | URL
하핫. 좋아하는 작가예요! 반전이 특히 매력있는 작가인데, 감정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거든요! ㅎㅎ
 
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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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가끔은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알 수 없고, 때로는 이 길이 맞는지 의문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나 자신 만의 길 위에 서서 앞으로 가야만 한다. 누군가는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가기도 하지만, 결국 남겨지는 것은 혼자이며, 우리는 그 외롭고 힘겨운 길 위에서 버텨내야만 한다. 인생이란 결코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허용하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여기 두 소녀가 있다. 집이 있지만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던, 스스로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열세 살 천재 소녀. 그리고 매일 어디서 자야 할 지 찾아야 하는,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는 열여덟 노숙자 소녀.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언제나 혼자라고만 느꼈던 그들이, 함께 걷게 된다.

책에는 주요한 순간들을 구분하는 장들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때로는 부로 나뉘어 그림에 붙은 제목처럼 '만남' '희망' '몰락' 하는 식으로 어떤 전망이 실린 제목이 붙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게 없다. 제목도 없고, 플래카드도 없고, 표지판도 없다. '위험하니 조심하시오' '붕괴사고 자주 일어나는 곳' '실망 임박'을 가르쳐 주는 표시는 전혀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옷 한 벌 걸쳤을 뿐이지 완전히 혼자요, 행겨 그 옷이 완전히 누더기일지라도 별수 없다.

열세 살의 루 베르티냐크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글 읽기를 다 뗀 천재 소녀이다. 몇 학년을 월반하고 현재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지만, 너무 어린 탓에 좀처럼 같은 반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발표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그녀는 무심코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노숙자라는 테마로 다음 발표 주제를 정하게 되고, 거리에서 사는 여자아이를 인터뷰해보겠다고 선언해버리게 된다. 그리고 평소에 자주 떠나는 열차를 구경하러 가던 역에서 열여덟의 소녀, 노를 만나게 된다. 살아오는 내내, 자신이 언제나 바깥에 있다고 느끼면서 지내왔던 루는 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음으로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노라면, 진짜 인생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루의 가족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슬픔이 목 끝까지 차올라 정상적인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수족관과도 같았다. 엄마는 벌써 몇 년째 집에만 처박혀 지내고, 아빠는 욕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그들의 하나뿐인 딸은 자신이 늘 혼자라고 느낀다. 루가 여덟 살 때 그녀의 동생을 갖기 위해 애쓰던 부모는 아기를 가진다. 모두의 축복 속에 루의 여동생이 태어났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영아 돌연사로 세상을 떠나 버리고, 그렇게 시간이 멈춰 버리고 만다. 엄마는 루를 더 이상 어루만지거나 안아주지 않았고, 식구들은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딴 세상 가서 살고 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면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엄마는 딸을 보며 일어나서 오늘 하루 잘 보냈냐고 묻지만, 질문은 매일같이 토씨 하나 안 다르고 똑같았으며, 루의 대답들은 그저 허공으로 흘러가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엄마 역할, 딸 역할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전에는 '사정에'에 존재 이유, 숨겨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에는 그런 의미가 세상의 구조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이유, 나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망상이다. 그런 면에서 문법은 명제들이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공부를 하면 그 논리를 파헤칠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일종의 기만이다. 숱한 세월을 거쳐 이어온 기만. 이제는 나도 인생이 휴지와 불균형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한 연속에서, 질서는 그 어떤 절박한 필요에도 결코 부응해주지 않는다.

세상과 소통할 수 없어 외로웠던 소녀는 노숙자 소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노는 루에게 자신의 하루하루를 말해주며,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묘사해준다. 루는 그 모든 것을 노가 자신에게 주는 나름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색깔이 달라 보이게 하는 선물, 모든 이론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문제 삼는 선물. 사람들은 노를 가리켜 '너하고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애야.'라고 말하지만, 루는 자신이 세상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 겹치는 곳에 속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삶이 아무 단절 없이 쭉 이어지는 곳, 만사가 불현듯 이유 없이 멈춰버리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맥주를 마시고, 손톱을 물어뜯고, 자신의 삶의 송두리째 들어 있는 바퀴 달린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열여덟의 노. 말수가 적고 순종적인 만년 일등 열세살의 루. 그리고 거칠 것 없는 반항아에 아이들 사이에선 왕 같은 존재인 열일곱의 뤼카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우정의 풍경은 어른 들의 세계에서 소외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에는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으며, 어른이 되려면 분명히 그런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차츰 깨닫게 된다.

홈리스는 전 세계 도시의 공통된 문제이다. 극중 루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걸 이해할 수 없어 하고, 노를 자신의 집에 데려오기로 결심하고 부모님에게 소개하는 장면은 매우 뭉클하다. 사실 어른들은 그럴 수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길을 걷다 노숙자들이 무리 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며 불안해하거나, 무섭다고 느낀다. 노숙자는 인간의 실존적 두려움을 상징하니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회학자 로라 휴이는 노숙자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적 낙오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며, 사회적 또는 도덕적 수모를 수반하는 감정이고, 궁핍해지거나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아직 순수한 열세 살 소녀는 노숙자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 들인다. 그녀는 '원래 그런 것과 원래 그렇지 않은 것에 부딪히기로 결심한다면,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믿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텅 빈 눈과 집 벽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모든 슬픔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도 싫었던 소녀는, 결국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는 함께인 거지, ? 우리는 함께야?

노가 가끔 길에 멈춰 서서, 다짜고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묻던 질문은, 루가 노와 함께 평생을 거리에서 살겠다고 집을 떠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렇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슬픈 진실.

이제 다시는 우리 집에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나는 노와 함께 평생을 거리에서 살 거야.

루는 노를 통해서 자신이 속한 부분 집합에서 벗어나고, 자기 인생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도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떤 지침서나 사용설명서에도 나와 있지 않는 삶의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그런 폭력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루는 한걸음씩 성장해나간다. 그녀는 이 일을 통해서 성장했고, 이제 더 이상 삶이 두렵지만은 않다. 그렇게 루는 자신 만의 길 위에서 더 이상 외롭지만은 않다. 그 길이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그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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