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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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얼마나 먹먹한 표현인가. 우리는 지나가 버린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 누군가에게 준 상처도, 지나고 하는 후회도, 한번 내뱉어 버린 말도, 어긋나 버린 시간도, 이미 엎질러진 실수도.. 절대 돌이킬 수 없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그때의 사카모토 노부코의 얼굴이 뇌리에 달라붙는다.

설마, 그때 한 약속을 지키라는 건가-?

말도 안 돼. 그런 약속을 지킨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잖아.

나는 편지지와 봉투를 꾸깃꾸깃 구겨 찢어버렸다.

무카이는 레스토랑 겸 바의 공동경영자로 일하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사업파트너인 오치아이는 15년 전 무카이가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손님으로 인연이 되어 현재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로 도착한 편지 한 통으로 그의 평화롭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라고만 적혀 있는 편지는 온통 거짓으로 만들어진 무카이의 과거의 봉인된 기억을 차츰 끄집어 낸다. 어릴 때는 온갖 나쁜 짓을 죄책감도 없이 저질러 온 그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아내와 딸이 있었으니 말이다. 무카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를 잃을 수 없다며, 지금의 내가 과거의 그런 약속을 지킬 수는 없다고 애써 편지를 모른 척 해보려고 한다. 애초에 지킬 필요 따윈 없는 꺼림칙한 요구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의 과거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과거를 외면하고 싶었던 무카이의 바램과는 달리 편지는 다시 도착하고, 지금 당신이 행복한 것이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당신 주변에도 자신과 똑같은 재앙이 덮칠지도 모른다는 경고로 불안감에 휩싸인 그의 일상은 차츰 엉망이 되어 간다. 그는 덮어 두었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지 찾아 보려 하지만, 이미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가버렸고, 약속의 가치는 그가 현재 가진 행복만큼이나 높아져 있어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카이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를 절벽 끝으로 내몰기만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깨닫기 전부터, 책장을 넘기면 이제 막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서스펜스는 이야기에 엄청난 긴장감을 부여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마디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로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염려하는 주인공에게 무언가 끔찍한 일이 곧 벌어질 거라는 공포야말로 최고의 페이지 터너가 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소이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공평하게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목숨의 가치라는 게 다른 것 같다.

지금이니 드는 생각이지만, 그 무렵의 나는 내 목숨과 인생을 가볍게 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야 할 존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야 할 존재도 있다.

어린 딸이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범인이 체포되었지만 극악무도한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고 결국 십여 년 만에 사회로 복귀한다면, 그들에게 딸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딸이 당한 능욕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학한 방법으로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마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정말 실행에 옮긴다면, 대체 그 범인과 당신이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 작품은 사적인 복수에 대해, 그리고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회파 추리의 강자 야쿠마루 가쿠는 매번 묵직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그려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용서와 복수라는 다소 어둡고 무거운 주제가 이렇게 술술 읽혀도 되나 싶을 만큼 수월하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이 그의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고 말이다. 이번 작품 역시 죄를 지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문제를 비롯해서 진정한 용서와 응징에 대해서, 그리고 전과자가 선택할 수 있는 삶에 대해서도 그려내고 있다. 사실 누구인들 과거에 저지른 잘못 한두 가지를 숨기거나 만회하려고 노력해보지 않았겠는가. 물론 그 잘못이라는 것이 사소한 것일 수도, 누군가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커다란 것일 수도 있을 테니 객관적으로 가치 판단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 상관없이, 현재의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인지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항상 그랬든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은 매우 쉽게 읽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만들어 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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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의 마지막 날들 버티고 시리즈
제임스 그레이디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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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은 어제와 오늘이 같고, 다가올 내일 또한 다르지 않다.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항상 제자리에 위치하고, 특별한 균열이 생기지 않는 동안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은 안전하다. 비록 곤경이 몰려와서 소리를 지르더라도, 그 곤경이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격 당한다는 뜻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매 순간 세상과 주변 모든 사람들과 자기 자신까지 의심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일상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바로 이들처럼 말이다.

페이가 속삭였다. "이놈들은 누구죠?"

콘돌이 그녀 주위로 팔을 뻗어 냉장고를 닫고는 말했다. "놈들은 우리요."

그녀가 그를 쳐다보자 그가 덧붙였다. "우리가 놈들보다 뛰어나고 운도 더 좋기만 바랍시다."

"이건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가 아니에요." 페이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소."

제대로 된 현장 훈련도 받은 적이 없는, 총이라고는 사냥할 때 딱 한 번 쏴본 게 전부인, 이상한 첩보물의 주인공. 미국문학사협회에서 근무하는 CIA 조사원으로 실제 하는 일은 문학 분야에 기록된 모든 스파이 활동과 관련 행위들을 파악하는 것이었던 남자.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휘말린 사건 속에서 코드네임 콘돌이라는 이름으로 현장 요원이 되어 숨 가쁜 추격전에서 달아나고, 위험한 포위망을 피해 자신의 목숨을 지켜냈던 전작 이후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지만 작가는 첩보 스릴러의 모던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그 작품 <콘돌의 6> 이후로 무려 40여 년동안 콘돌을 그의 작품에 다시 등장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코드네임 콘돌'의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려낸 이미지와 경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영화가 아니었더라면 콘돌이 덜 유명해졌겠지만, 독자인 우리는 원래 작가의 구상대로 콘돌 시리즈를 5부작으로 만났을 수도 있었던 거였다. 어쨌거나 작가는 9.11이후로 콘돌을 다시 등장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해서 1974년 출간되었던 <콘돌의 6> 1975 <콘돌의 그림자> 이후 계속 다른 작품들을 써왔던 제임스 그레이디는, 무려 40여년이 지나 2014 <콘돌의 다음 날>, 그리고 2015년에 <콘돌의 마지막 날들>을 출간하며 콘돌을 다시 재 탄생시키게 된다. <콘돌의 다음 날>은 이번에 출간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짧은 단편으로 이미 스파이로서 전성기를 다 보내고 정신이 피폐해져 CIA 비밀 정신병원에 있다 막 퇴원한 후의 이야기였다. 따라서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수십 년의 공백 기간만큼 콘돌은 독자들 모르게 스파이로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다 보내버렸다는 것이다. 무슨 시리즈가 이런가 싶을 것이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사람을 갑작스레 현장 요원으로 둔갑시키면서 첫 편을 시작하더니, 중간 과정 없이 늙고 지친 스파이의 최후로 시리즈를 재개하면서 동시에 마무리하다니 말이다. 어쩌면, 혹은 당연하게도 이 작품이 콘돌의 마지막 모험담이 될 테니, 만약 오랫동안 그를 기다려왔던 독자라면 배신감 마저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과 끝만 존재하는 이 이상한 시리즈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현장보다는 책상 앞이 더 편한 초짜 스파이와 반대로 한때 전설이었던 노쇠한 전직 스파이를 통해서 한 캐릭터의 탄생과 끝만 보여주는 것이, 여타의 다른 시리즈들에서처럼 캐릭터의 성장을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임팩트 있게 와 닿았으니 말이다.

"명심해요, ." 덕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에만 우리가 원하는 짓을 무엇이건 할 수 있어요. 어떤 작전이 됐건, 그게 반드시 고수해야 할 핵심 사항이라는 걸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쿨하게 행동하세요. 사람들 이목이 쏠리지 않도록 절제된 행동을 하세요. 절대적으로 평범하게 행동하세요."

"지금껏 그놈의 평범함이 문제였어요."

"지금 당신은 그런 시절은 지났어요." 브라이언이 말했다. "기억해요?"

한때 전설이었지만 이제는 은퇴한 전직 스파이인 백발의 콘돌, 그는 CIA 비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후 요원 보호 프로그램 아래에서 평범한 것처럼 보이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일상에 도처한 위험들을 감지하며 숨쉬고 있었고, 비밀 요원인 페이와 피터가 신변 확인차 그의 집을 방문하던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두절된 피터가 콘돌의 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평범한 화요일에 퇴근해서 귀가했다가 칼로 벽난로에 못 박힌, 피에 젖은 미국인 요원을 발견하게 된 콘돌은, 선택의 여지 없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도망쳐야 했다. 전작에서처럼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대로 저항하다가는 목숨을 잃게 되거나, 어느 정신병원 병실에 영원히 갇히게 될 테니 말이다. 그는 우선 그들로부터 완벽히 도망쳐야 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표적이 된 이유와 적의 실체를 파악해야 했다. 페이는 상사였던 새미의 은밀한 지시로 콘돌을 찾아내는데 성공하지만,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로부터 습격을 받고, 그 와중에 몇몇을 사살하게 된다. 콘돌을 돕는 여인 메를과 페이의 연인 크리스까지 네 사람은 숨을 곳을 찾고, 그러면서 수많은 요원들에게 쫓기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일반적인 첩보 소설과는 다르게 음모의 플롯보다는 개인의 내면과 관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하고 주위를 살피며 살아 왔던 수십 년의 시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에 대한 심리 묘사는 매우 치밀하고, 페이와 연인 크리스가 어떻게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방법은 설레 이고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관계와 내면에 집중해 스파이라는 존재 자체의 현실성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정보화 시대의 넘쳐나는 데이터와 정부의 빅 브라더 식 정보기관과 그의 음모에 대해 밝히려는 작가의 목소리는 서늘하면서도 예리하다. 콘돌 시리즈의 첫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이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으로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어떤 사상적 배경으로 인해 쓰여졌다고 믿는 음모론'이야말로 제임스 그레이디가 보여주는 기막힌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만나고 나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생각 마저 든다. 왜 그가 첩보 스릴러의 거장인지 여실히 보여 준다고나 할까. 총격전과 육박전 등 액션 장면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단순한 오락 거리 이상의 이야기를 보여줘 중간 중간 책장 넘기는 손을 멈춰야 했으니 말이다. 대부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만 죽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죽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극중 콘돌처럼 멋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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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비움 - 차근차근 하나씩, 데일리 미니멀 라이프
신미경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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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굳이 따지자면 미니멀리스트보다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물론 잡동사니를 마구잡이로 쌓아 놓거나, 버려야 할 물건들까지 쥐고 사는 건 아니었지만, 서재에는 언제나 책이 가득 차서 책꽂이 바깥으로 나오기 일쑤였고, 거실은 아이를 위한 장난감과 미끄럼틀, 놀이기구 등등으로 꽉 찬 상태였으니 말이다. 물건이 많긴 해도 언제나 정리 정돈과 청소는 놓치지 않으며 살아 왔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먼지가 쌓일 만큼 청소를 하지 못하는 부분도 생겼고, 부지런히 치운다고 해도 언제나 뭔가 어질러진 상태였다. 문제는 그런 부분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아이 때문에 시간에 쫓겨 보내면서 놓치는 집안일 때문에 늘 피곤했고, 그 와중에도 챙겨야 하는 수많은 삶의 방식들을 따라다니느라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졌다는 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을 다 놓아버리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워내고, 물건을 줄이고, 시간을 더 만들고 싶었다.

이 책은 쇼퍼홀릭이자 워커홀릭으로 20대를 보낸 저자가 마음이 많이 피폐해지는 경험을 하고 난 뒤, 하나씩 비워내면서 조금씩 가벼워지는 삶에 대해 그리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란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두고 살아가는 삶을 일컫는 말인데, 사실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적게 소비하는 삶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아이가 있는데도 깔끔하고 심플하게 집안을 정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한참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미니멀라이프, 심플라이프가 주목을 받아, 관련 책들도 많이 나오고, 뉴스 기사도 꽤 많이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지나가듯 보면서 몰랐던 것은, 미니멀 라이프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것만 남기는 거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나는 그걸 이 책을 잃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명품백 대신 만능 에코백을 활용하고, 이것저것 가득 넣어 다니던 무거운 가방에서 벗어나 가벼운 클러치백 하나만 들고 다녀 보기도 하고, 하이힐의 강박에서 벗어나 내 발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신발로 바꿔보고, 다이어트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많이 움직이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해보고, 혼자서 먹을 때는 대충 때우던 식사도 제대로 차려서 먹어보고, 억지로 소식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느리게 먹어 포만감을 주는 식사도 해보고... 저자가 일러주는 미니멀 라이프의 방법들은 너무 사소하고, 간단하게, 일상적인 것들이라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한번쯤 바꿔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옷차림, 미용, 건강, 사는 환경, 먹는 것, 생활철학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제안하는 것들을 따라서 차근차근, 하나씩 비워내다보면 어느 덧 내 삶도 그녀처럼 심플하고, 우아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저자의 제안 중 특히나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바로 <무료하게 보내는 휴가>였다. 언제나 여행을 가면 하루종일 발품을 팔아 값비싼 제품을 저렴하게 득템하거나, 세일 시즌에 맞춰 쇼핑을 하거나, 관광 명소에 방문해 사진을 찍고, 맛집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당연히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서, 밤 늦게 지친 걸음으로 다시 호텔로 돌아가 쓰러지듯 자는 것이 매일의 반복이었고 말이다. 사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느긋하고 그 순간의 풍광을 즐기며 낯선 여행자와 현지인 중간쯤 되는 기분으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휴가, 마음이 끌리는 데로 발길을 옮기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기분에 관심을 가지는 그런 여행을 나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졌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호텔 침대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고 싶고, 전혀 계획에 없던 곳을 찾아가 현지 음식을 그들처럼 느끼면서 맛보고 싶다. 왜냐하면 서울에서의 일상이 너무 바쁘고 치열하고 계획에 쌓여 있으니 말이다. 여행지에서는 한번쯤 그런 걸 놓아도 될텐데, 나는 여태 그래 본 적이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여백이 많은 삶이 우아하다'는 이야기에 나도 어느새 공감하게 되어 버린 것 같다. 하루에 하나씩 불필요한 소지품과 생각을 비워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남기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마음속으로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상기하게 되는, 기적의 방법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이다. 물론 생활과 관계 모두에서 내게 불편함을 주는 것들과의 헤어짐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단 번에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올해는 나도, 심플해서 더 우아한 삶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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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7-02-06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료하게 보내는 휴가~ 저도 요즘 그런 재미를 느끼고 있는거 같아요~ 정말 20대에는 하나라도 더 보려고 바빴다면, 요즘은 목적지까지 빠르게 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골목길의 재미를 느끼게 되네요.

피오나 2017-02-06 19:21   좋아요 0 | URL
와..벌써 그런 휴가를 보내고 계시다니..부럽습니다!! ㅎㅎ 목적지에 이르는 골목길의 재미라니..생각만해도 여유롭네요^^
 
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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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가끔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서 놀라운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글이 사실일까? 한번쯤 자문하게 된다. 지금은 '사실루머사이 분별이 어려운 정보화 시대이니 말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는 그것이 더할 수밖에 없다.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저널리즘의 추락이 만연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야말로 저널리즘에 부여된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

-한 가지 사건에 관해서 온갖 사람들이 취재한 것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검증하고 비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진 저널리스트는 많지 않다. 그러니 신문을 읽는 우리도 쓰여 있는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항상 의문을 품고 읽어야 한다.

세키구치 고타로는 7년전, 아동 유괴 살인 사건 취재 중에 살아 있는 아이에 대해 '시신 발견'이라는 오보를 한 탓에 본사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좌천되어 지국에서 근무 중이다. 고타로 외에도 당시 사건과 관련된 이들은 모두 처분을 받았다. 신문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보도한 죄는 마땅히 크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아 유괴 미수 사건이 발생한다. 영리 목적은 아닌 듯 보여 돈보다는 성폭행이 목적일 것 같고, 범인이 2인조인 것 같다는 목격담까지 더해져 고타로는 7년 전 그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역시 7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본사에 남아 있지만 입지가 자꾸 밀려나고 있는 특별 취재팀의 후지세 유리와 정리부의 마쓰모토 히로후미가 있다. 그나마 유리는 아직 취재팀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당시부터 고타로의 애제자로 여겨졌던 탓에 동료들로부터 집요하게 따돌림을 당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리다시피 한 히로후미는 스스로 정리부로 가겠다고 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유리는 고타로에게 연락을 받고 당시 사건과 관련된 것 같다는 얘기에 취재를 시작하고, 마쓰히로는 자신은 사회부와 관계가 없다며 외면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아동 유괴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진다는 설정이지만, 사실 사건은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유괴 미수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무려 200페이지가 되어서야 초등학생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터지고, 거기서 또 60페이지가 지나서야 행방불명된 여자아이가 시신으로 발견이 된다. 그렇다면 대체 540여 페이지가 넘는 이 두툼한 페이지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일까. 이야기는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의 입장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들에게서 정보를 알아내서 그것을 보도하려는 기자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세상의 수많은 사정에 의해서 숨겨지고 뒤틀리는 진실을 찾아내서 그것을 알리겠다는 기자로서의 사명감, 만약 7년 전의 공범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면 그건 당시 사건을 취재하고 오보를 했던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책임감, 그리고 사회부 에이스 자리를 되찾고 싶어하는 자존심... 기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건 취재에 나선다.

취재는 씨앗을 뿌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몇 번이나 드나들면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씨앗을 뿌리고, 잡담을 나누면서 싹을 틔워야 겨우 정보가 된다.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도 큰일이지만, 실제로는 싹이 튼 다음 키워 가는 쪽이 더 고생스러운 경우가 많다. 기껏 속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기사를 쓰면 입을 딱 다물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가혹한 신입 교육이나 소득 없는 야간 취재를 되풀이하는 구식 취재 수법, 신문사나 경찰조직 내부의 주도권 경쟁 등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건, 작가인 혼조 마사토가 전직 기자 출신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발로 뛰었던 경험이 없었다면, 절대 그려낼 수 없을 만큼 리얼한 세계를 이 작품 속에서 구축해내고 있다. 실제로 기사의 지면이 어떻게 구성되고 메워지는지,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로부터 그것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알아내는지, 제대로 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시간을 다 투자하고, 무시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서 겨우 한마디를 얻어내는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진짜 리얼한 기자들의 팩트가 이 작품 안에서 고스란히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커다란 과정이 두루뭉실하게 그려지는 게 아니라,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랄까. 조직 내의 갈등과 상하관계, 일에 대한 사명감과 개인의 삶 사이의 괴리감, 좋지 않은 일에 말려 들까봐 몸을 사리고, 거짓 정보를 흘려 방해 공작을 펼치는 등의 그것은 사실 고개를 돌려보면 우리네 일상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들 역시 사람이니까 말이다.

매 순간 취재하는 상대를 믿느냐 마느냐, 의심 속에서 살아야 하는 기자들의 세계. 상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고 싶지 않으니 순간은 매번 진검 승부가 되어, 상대가 꺼낼 법한 말을 미리 헤아리고, 태도 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온 힘을 다해 살펴야 하는 전쟁과도 같은 일상. 인터넷 보급으로 인해 신문의 역할도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현장에 나가서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는 기자가 있어야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믿는 신념. 요즘처럼 시시각각 폭탄과도 같은 소식들이 터져 나오는 뉴스의 시절이라면, 언론의 보도를 믿고 싶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불신과 거짓의 시대, 그러나 어딘가에는 이들처럼 기자의 양심을 걸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발로 뛰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세상 그 모든 '진짜' 기자들을 위한 논픽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은 픽션이지만, 기자들의 진정한 저널리즘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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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 크로니클 셜록 시리즈
스티브 트라이브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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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시즌 4가 드디어 끝났다. KBS의 외화 더빙에 투덜거리면서 보고, 며칠 뒤에 다시 자막 버전으로 찾아서 다시 보고... 3년을 기다린 것에 비하면 3화라는 횟수는 너무 짧기만 하다. 심지어 셜록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루머마저 무성해서.. 그 아쉬움은 더 컸다. 물론 이번 시리즈의 내용이 워낙 파격적인 부분이 많았기에, 그걸 두고 여기저기서 탄성과 한숨이 오가긴 했지만 말이다. 메리 왓슨의 죽음으로 시작해, 셜록의 사이코패스 여동생 등장에다, 가족간의 치열한 데스게임(?)으로 번진.. 암튼 좀 충격과 파격을 오가는 시즌 4였던 것 같다. 제작사 측에서는 시즌 5도 기획중이라고는 하던데.. 배우들 스케줄 때문에 2년 뒤가 될지, 3년 뒤가 될지.. 알 수가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셜록 시즌1(Sherlock) |2010.07.25~2010.08.08|

1화 분홍색 연구

2화 눈 먼 은행가

3화 잔혹한 게임

 

셜록 시즌2(Sherlock) |2012.01.01~2012.01.15|

1화 벨그레이비어 스캔들

2화 배스커빌의 사냥개들

3화 라이헨바흐 폭포

 

셜록 시즌3(Sherlock) |2014.01.01.~2014.01.12|

1화 빈 영구차

2화 세 사람

3화 마지막 서약

 

셜록 시즌4(Sherlock) |2017.01.02.~2014.01.16|

1화 여섯 개의 대처상

2화 병상의 탐정

3화 마지막 문제

 

셜록 홈스를 연기한 역대 수십명의 배우 중에 캐릭터보다 더 희한한 이름을 지닌 유일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21세기 런던에서 셜록의 활약을 그린  BBC 드라마 <셜록>은 현대적이지만 매화 같은 이름의 원작에서 출발한다. 물론 너무 많이 변형되어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재탄생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셜록 원작을 다시 한번 들추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판본의 셜록 홈즈를 다 읽어왔는데, 서재에 보관하고 있는 건 딱 세 버전이다. 가장 긴 버전, 가장 짧은 버전, 휴대가 편리한 버전이다. 가장 긴 버전은 당연히 '주석 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이고, 가장 짧은 버전은 '미니북' 버전의 셜록 홈즈, 그리고 휴대에 중점을 둔 것은 바로 이북 버전 되시겠다.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은 원작이 아직도 너무 많기에, 베네딕트의 셜록이 조금 더 많이 만들어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해보며.. 하핫..

암튼.. 고대하던 시즌4가 이미 방송이 되고, 여러 번 본 상태에서 이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바로 책이다. 시즌1과 시즌2를 아기자기하게 구성해 담아 놓은 <셜록:케이스북>과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완벽하게 분석한 <셜록:크로니클>이 있으니 말이다.

 

케이스북은 판본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아기자기한 면이 많아 셜록 시리즈에로의 입문을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우선 각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역할에 대한 깨알 같은 코멘트도 만나볼 수 있다. 마틴 프리먼은 <왓슨은 셜록의 도덕적 지표>라고 말했다. 셜록은 대부분 옳고 그름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왓슨이 꼭 필요하다는 것.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셜록은 말도 안 되게 무례하고 소시오패스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뭐든 꼼꼼히 해야하고, 온갖 일에 짜증을 내고, 기분 내키는대로 감정을 표현하니 말이다. 라라 펄버는 <셜록과 아일린은 서로 거울을 들여다보듯한 관계>라고 말한다. 그들의 문자 로맨스(?)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앤드류 스콧은 <모리아티는 셜록만큼이나 총명하고 두뇌회전이 빠르지만 고독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촬영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고전 원작 코난도일의 <셜록 홈스>시리즈와 실제 드라마 <셜록>과의 비굑 분석도 재미를 준다. 볼때마다 웃음이 나게 하는 셜록과 존의 포스트 잇 대화, 사건에 대한 단서와 분석 들은 물론 모든 시리즈들이 꼼꼼하게 분석되어 있어서, 셜록 시즌 1,2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완벽한 선물세트같은 구성이다.

 

나는 셜록 크로니클 원서를, BBC에서 출간하고 바로 구입을 했었는데, 영어를 줄줄 읽어대지 못하더라도 하드커버 전체 올 컬러에 묵직한 무게감의 화보로서도 엄청난 퀄리티였기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의 읽을 거리 또한 가득이었기에, 어서 한국판이 나오길 기다렸었고, 그렇게 만난 셜록 크로니클 한국판은 완벽한 퀄리티로 기다림을 보상해주었다. 원서와 거의 한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멋진 퀄리티를 고스란히 뽑아내어 책장에 나란히 두면 어떤 것이 원서이고, 어떤 것이 번역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셜록 케이스북도 그랬지만, 비채의 빵빵한 사진 퀄리티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 책은 촬영 현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들과 가감없는 배우들의 모습과 제작 전후의 스토리, 그리고 대본 전개, 캐스팅, 세트, 의상, 소품 등에 이르는 전반적인 모든 것까지 마치 셜록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책이다. 물론 기존에 출간되었던 셜록 케이스북도 소소한 볼거리들과 깨알같은 정보들이 가득했지만, 케이스북에 비해서 크로니클은 두 배 이상의 엄청난 분량과 커다란 판형의 폼나는 하드 커버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시크릿 화보들까지 풍성해 그야말로 셜록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을 보면 '작가를 위한 바이블'이란 항목에 셜록은 원작대로 오만하고, 자신이 원할 때는 얼음처럼 냉담하지만 까불고, 현대적이고, 재미있게 표현할 것. 이라고 되어 있다. 무엇보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동면에 들었다가 2009년에 깨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명심할 것. 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여기는 존에 대한 설명이 훨씬 더 긴데, 그도그럴 것이 기존에는 존의 역할이 매우 약소해서 마치 책 여백에 끄적거린 낙서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를 훨씬 중요한 3차원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존은 딱 부러지게 이해하긴 더 힘들지만 하나하나가 다 중요한 인물.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하는데, 방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작가 여러분은 존을 통해서 모험을 살릴 필요가 있고, 역시 존을 통해서 셜록을 알 필요가 있다. 최대한 셜록과 존을 묶어두어야 하고, 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이라는 부분 말이다.

 

캐스팅에 관한 비하인드도 흥미로운데, 사실 처음에 베네딕트의 어머니는 아들의 코가 셜록과 아주 달라서 셜록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톤먼트>에 출연한 그를 보고는, 보자마자 감이 잡힌 듯 완벽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베네딕트는 셜록 홈스 소설을 읽으며 성장하지도 않았고 스토리를 다 알지도 못하지만, 등장인물과 장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대본을 읽어보자 정말이지 셜록 홈스 숭배자들이 썼다는 것이 바로 느껴졌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걸 보면 그가 얼마나 영리한 배우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배우들이 셜록 홈즈를 연기해왔었기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개성을 가진 21세기의 괴짜 셜록을 탄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마틴에 관한 일화도 재미있다. 마틴은 평범한 것도 한 편의 시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는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이고, 매우 평범한 사람인 척하는 데에 전문가이고, 실제로 존 왓슨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거다. 게다가 마틴이 연기하는 방식이 베네딕트의 연기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기까지 했다고 이들은 말한다. 셜록 시즌이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마틴 역시 베네딕트처럼 엄청난 스타는 아니었지만, 영화 호빗 시리즈를 통해 시리즈 중간에 더욱 부각이 되면서 숨겨졌던 그만의 매력이 셜록에서도 더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에는 이렇게 캐스팅 뒷 이야기뿐만 아니라, 베네딕트와 마틴이 각자의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서로의 파트너 쉽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까지 실려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배우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듣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오직 크로니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정보들이라 더욱 소중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제작자와 감독, 존의 블로그를 맡아 쓴 작가, 특수효과 전문가, 의상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들의 뒷이야기와 BBC <셜록> 제작팀의 은밀한 기록보관소는 물론, 대본과 삭제 컷, 콘셉트아트, 스토리보드까지 엄청난 볼거리와 읽을 거리들이 잔뜩 무장하고 있으니 셜로키언들에겐 최고의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셜록 시즌4는 이미 끝났어도, 기다림은 계속 된다. 시즌5가 과연 제작이 될런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셜록 케이스북과 셜록 크로니클과 함께라면 그 추억을 무한 반복 재생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셜록 케이스북을 추천하지만, 사실 셜록 크로니클을 실제로 본다면 가격 이상의 가치를 하는 고퀄리티에 홀려서 이걸 먼저 구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최상의 선택은 두 가지 모두 구입하는 것이고 말이다. 왜냐하면 케이스북에 있는 아기자기한 것들은 크로니클에는 없고, 크로니클에 있는 시즌 1~3까지의 철저한 분석과 해부는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내용들이니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 전에 방송된 시즌 4가 추가되어 이 시리즈가 하나 더 출간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 가격이 얼마든 당장 구입할텐데 말이다. 어쨌건 셜록 크로니클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보아도 화보 같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은 재미가 있다. 셜록 시즌이 끝나서 아쉬운 당신에게 완벽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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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기쉐기몽쉐기 2017-01-3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은데 품절 되었네요 흑 ..

피오나 2017-01-31 12:25   좋아요 0 | URL
아정말요? 품절이라니...ㅠㅠ 지금보니 케이스북은 아직 판매하네요. 케이스북도 정말 멋지답니다^^

쉐기쉐기몽쉐기 2017-01-31 13:17   좋아요 0 | URL
오호! 가볼게요 :) 즐거운 오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