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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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했던 일을 라이벌에게 뺏기고, 직장에선 쫓겨나게 생겼고, 건달들에게 몰매를 맞고, 차가 엉망이 되고, 이렇게 재수가 없어도 되나 싶게 안 좋은 일들만 다발로 쏟아져 내린 날, 화가 나서 폭발하기 일보직전에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며, 이 모든 불행이 신의 탓이라며 원망을 했더니, 그의 앞에 자신이 신이라고 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자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며칠간 줄테니, 얼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보자고 말이다. 이것은 언젠가 보았던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스토리이다. 이렇게 우리는 되는 일이 없을 때, 세상의 모든 불행이 다 나에게만 찾아 오는 것 같을 때, 간절히 바랬던 기대가 깨질 때 신을 원망한다. 신이시여,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라며 탄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면 어떨까.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이유는 슬프면서도 아주 간단해.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거지. 나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느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시간 단위로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야. 게다가 예전만큼 활발하지도 않아. 그래서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생각한다.

"신이 자기가 만든 세상과 더 이상 보조를 맞출 수 없다고?"

이혼한 전처가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며 한밤중에 나타나 상담을 요청한다. 파산 직전의 심리 치료사인 야콥은 질투에 눈이 멀어 쫓아온 전처의 현재 남편인 프로 복서에게 맞아서 코 뼈가 부러지고 만다. 깨어나 보니 구급차 안, 시장통이 따로 없는 병원 응급실에서 야콥은 어릿광대 복장을 한 40대 후반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야콥에게 심리 상담을 부탁하며,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많이 망가졌으니, 당신이 날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영화 혹 짐 캐리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 남자를 보며 믿지 않았듯, 야콥 역시 그를 믿지 않는다. 왜 안 그러겠는가. 신이라니, 그것도 인간의 모습을 한, 게다가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야콥은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를 그냥 내칠 수가 없어 상담을 해주기로 한다. 아르바이트로 서커스 광대 일을 하고 있는 아벨은 누가 봐도 신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사실 신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니 뭐 그의 겉모습 자체는 그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벨과 야콥은 심리 상담을 시작하고, 아벨은 자신이 신이라는 걸 야콥에서 하나씩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정신분열증 광대가 어저면 진짜 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그런데 그가 정말 신이라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바꿔 버리면 될 것이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신은 말한다. 자신에게 더 이상 그럴 능력이 없다고 말이다. 왜 자신에게 부정맥이 있겠냐며, 왜 자발적으로 심리 치료를 시작 했는지 생각해보라고.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싶지만, 손발이 묶인 느낌처럼 전혀 그럴 힘이 없다고. 신에게 힘이 없어진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을 때에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며, 아무도 신을 믿지 않는다면 힘을 전혀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증은 믿음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 이해하겠어? 나의 탈진은 곧 세상의 탈진이고, 나의 의욕 상실은 곧 세상의 의욕 상실이야!"

그래서 아벨은 야콥에게 인간들이 다시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의 실수가 뭔지 찾아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글쎄, 자기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심리 치료사가 과연 신을 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도 절대자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단 하나의 결혼 생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십 억 명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 인간들이 맺는 수조, 수천 조의 관계를?    

야곱은 아벨과 함께 마치 마법과도 같은 크리스마스 여행을 다녀온다. 자신이 생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앞으로도 다시는 맛보지 못할 색다른 시간, 즉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가끔 나도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나도 궁금해 해본 적이 있다.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말이다. 야콥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벨을 통해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까 마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누군가의 삶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야콥이 마치 공기인 양 사람들이 그의 옆을 휙 지나가 버린다.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세계의 사람들은 야콥을 볼 수도 없고, 야콥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 서로 속해 있는 세계가 다르니 말이다. 그렇게 야콥은 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야콥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왜냐하면 야콥의 부모가 결혼한 이유가 바로 어머니가 야콥을 임신했기 때문이었으니, 이 생에선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그저 복잡한 연인 관계만 유지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할 의무를 느끼지 못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을 결정적인 것이 없었기에 그들은 결혼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인생이 이런 방향 또는 저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 아닐 수가 없다. 야콥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니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고, 동생은 은행 돈을 빼돌려 도망치지도 않았고, 어머니는 유명한 자선 단체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부모가 진짜 삶에서 불행에 가까운 관계였음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어머니 덕분에 예상치 못한 출세를 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해 알코올 중독이 되고,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자신의 일까지 포기했으니 말이다. 야콥은 사흘 밤의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어떤 흔적도 세상에 남기지 못할 거라는 걸, 다른 세계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벨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혹은 그가 자신에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야콥의 인생은 이제 전과 조금은 달라진다.

결국 심리치료사가 신을 치료한 게 아니라, 신이 그를 도와준 셈이 되었다. 아벨은 말한다. 신을 믿는다는 건 선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그러니 신을 믿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을 이렇게 만든 원인인 사람, 그 중의 하나인 야콥이 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책은 끝난다. 종횡무진 유쾌하고, 황당하기도 한 에피소드들의 바다를 거쳐 마지막 장면은 뭔가 찡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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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섀도우
마르크 파스토르 지음, 유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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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쉽게 흥분하거나, 비위가 약하다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부터 악마 같은 여자의 광기를 드러내는 예를 들 생각이다. 두렵지 않다면 계속 읽어나가기 바란다. 마음 한 귀퉁이에 묻어두었던 그대의 생각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연쇄 살인마, 게다가 여자인 그녀의 이야기는 매우 리얼해서 어떤 대목은 눈살을 찌푸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기도 하다. 오죽하면 해당 대목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경고까지 하겠는가. 게다가 이렇게 주의를 주는 존재는 극의 주인공인 살인마 엔리케타도, 그녀를 잡으려고 하는 형사 모이세스의 목소리도 아니다. 1인칭도, 3인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닌 독특한 화자가 중간 중간 극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초반에는 이 독특한 화자의 스토리 전개가 낯설고,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계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를 마치 신처럼 보이는 이 화자가 들려주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하게 해주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보이지 않는 손, 사악한 무대담당의 짓으로 드러나는 우연한 사건들이 있다. 그들은 늘 술에 취해있고 독특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다.

마치 무대극의 사회자라도 되는 것처럼. 극이 진행되기 전에 간단한 해설이나 논평이라도 들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에서는 클라이맥스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는 소설에 더 잘 어울린다. 소설은 설정도 쉽고 설명하기도 쉽다. 내가 마음대로 사건을 조종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아니라고 하진 않겠다.

그리고 엔리케타의 그 많은 악행들을 보아온 독자들이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할 때, 그러니까 이야기가 거의 막판에 치달았을 때는 이런 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모든 일에는 항상 실수가 있고, 실수는 비싼 대가를 치른다.

수많은 범죄, 스릴러 소설들을 읽어왔지만, 이 책은 바로 이 화자의 역할 때문에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야기가 끔찍하고 잔인할 수록 독자들은 감정 이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극의 몰입도를 키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이 실화이고, 거기다 연쇄 살인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거의 형사인 주인공만큼이나 비중이 있으니 독자들의 심리적 불편함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쌓여가니 말이다. 실화라는 것이 주는 다소의 비현실성도 극중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데 한몫을 한다. 사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믿기 어려워 더 소설 같은 순간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그것을 과시하는 사람이 있다. 오줌 눌 요강 하나 없어 술집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있고, 건강에 좋다는 해수욕을 즐기려고 산 세바스티안으로 떠나는 부자들이 있다. 비밀을 감추기 위해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를 사귀려고 속내를 전부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엔리케타는 이 도시의 경계선을 찾아냈고 경계선을 따라 걸으면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처럼 경계선을 따라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거리가 피로 물든 혼탁한 시대의 바르셀로나, 어느 날부터 매춘부들의 숨겨진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돈다. 벌써 사라진 애들이 여덟이나 되지만, 엄마들이 매춘부이다 보니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고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이다. 소문은 점점 커져서 어린애들을 잡아다가 그 피를 마신다는 흡혈귀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물론 엔리케타의 실체가 점점 밝혀짐에 따라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왜 이런 소문까지 났는지 납득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연쇄 살인마 캐릭터도 매우 독특하지만, 그녀를 쫓는 형사 캐릭터도 굉장히 이색적이다. 모이세스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 형사이다. 법을 수호하고, 시민들을 악당들로부터 지키는 정의의 사도까지는 되지 못할 망정 ''을 믿지 않는 형사라니. 그의 세상에는 오로지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 그래서 그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축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러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범죄자들이 그와 다른 사람이 되겠다. 그는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범죄자들을 저주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그가 만약 범죄자들과 같은 편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안 봐도 훤하다. 게다가 그는 동생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셜록 홈스와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는 범죄 소설과 공포 소설을 탐독하고, 아내가 있음에도 바르셀로나 사창가의 단골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바르셀로나의 사회가 마치 화면으로 보는 것처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농부와 노동자가 넘쳐났으며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도 까지 더해, 빈민과 빈민가는 계속해서 늘어갔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던 가난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였던 것이다. 가난과 좌절,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 찬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유괴와 연쇄 살인은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실화'라는 이야기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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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2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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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의 이야기이다. 당시에도 셜록의 인기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작품 속에서 캐릭터가 죽은 것만으로도 신문사들이 항의기사를 쓸 정도였단다. 물론 셜록 홈즈는 여전히 지금에도 영화, 드라마 등으로 사랑 받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니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코난 도일의 이야기라니, 그것도 줄리언 반스가 그려낸 작품 속에서,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아서 코난 도일과 조지 에들지라는 두 인물의 이야기이다. 조지 역시 실존 인물로 인도계 혼혈 영국인 변호사이다.

그들의 믿음을 흔든 사람은 조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우리는 조지를 알고 그가 결백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3개월 뒤에:우리는 조지를 안다고 생각하고 그가 결백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1년 뒤에:우리는 조지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그가 결백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런 변화를 탓할 수 있겠는가.

작품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시작들에서는 이들 두 인물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다. 꼼짝 않고 앉아 있지 못하는 기운 넘치고 고집 센 아이였던 아서는 상상력이 풍부했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는 의사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본격적으로 글도 쓰게 된다. 단편들이 장편소설로 성장했으며, 결국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캐릭터를 통해 유명한 소설가가 된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지는 상상력이 부족했고,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몰랐던 어리숙한 아이였다. 인도계 혼혈이었던 탓에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그들 가족은 지속적으로 협박 편지를 받으며 괴롭힘에 시달린다.

그렇게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교차 진행되다가, 2부 결말을 동반한 시작에 이르러 어느 순간 조지의 이야기가 비중이 높아진다. 말과 소, 양 등 가축들이 훼손되는 사건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그 사건의 범인으로 조지가 주목 받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만다. '기차 탑승객을 위한 철도법' 책을 발간하고 매우 소박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있는 사무변호사 조지. 근면, 정직, 검약, 자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만을 믿고 배워왔던 그에게 엄청난 닥친 시련이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영국인인 조지는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인도계 혼혈이라는 점은 그를 매 순간 발목 잡아 넘어뜨린다. 그가 이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자면,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무섭기까지 하다. 조지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서와의 교집합은 전혀 없이 1, 2장이 끝나버린다. 그가 교도관에게 너덜너덜한 염가판 '바스커빌의 개'를 읽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정도의 그들의 교집합이 될까.

작업에 착수하면서 아서는 친근한 감정을 느꼈다. 새 책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생각해냈지만 아직 그것이 완벽하게 구성되지 않았을 때의 기분, 대부분의 인물들을 생각해냈지만 아직 그들이 완전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을 때의 기분, 이야기의 연결고리들이 전부 다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의 기분이었다. 아서에게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은 결정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은 대단히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어야 했다... 아무튼 이는 아서에게 익숙한 작업이었다. 그는 소설을 쓸 때처럼 중요한 사안들을 정리하고 간략한 주석을 덧붙였다.

2권이 시작하자마자, 아서와 조지가 어떻게 만나는 지 그들의 만남이 드러난다. 1권 내내 그들 각각의 이야기만 거의 교집합 없이 진행되어 대체 이들이 어떻게 만나는 지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3장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셜록 홈즈 덕분에 전세계에서 온갖 요청과 요구들이 아서에게 밀려들기 시작한다. 사람이나 물건이 불가해한 상황에서 사라진 경우, 경찰이 평소보다 당혹스러워하는 경우, 부당한 일을 당한 경우등등 사람들은 홈스와 홈스를 창조해낸 사람에게 호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독자들이 분명 실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인물을 창조해낸 죄(?)로 아서는 이들에게 사설 탐정과도 같은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우체국에서 자동으로 '주소불명' 도작이 찍혀서 반송이 되고, 가끔 아서 경이 감동을 받거나 깊은 인상을 받아 답장을 직접 보내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는 조지의 탄원서를 흥분한다. 너무도 명백하게 조지가 결백하기 때문에, 답장만 보내서 될 게 아니라 사건을 되살려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어 조지와 아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 아서는 조지의 '에들지' '이달지 씨'라고 두 번이나 잘못 부른다. 조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의 이름을 잘못 발음했을 때 아서는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표현되어 있어 이들의 진지한 분위기와 별개로 큭큭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서는 서재에 틀어박혀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고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증거들로 인해 조지에게 잘못된 선고가 내려졌으니, 그가 전적으로 무죄라는 점을 밝히고, 진짜 용의자를 밝혀내어 내무성이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고, 진범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서는 계획을 세우면서 그것이 이야기를 창조하고, 책을 쓰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재미있게도 그가 직접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일은 자신이 언제까지 셜록 홈스를 만들어낸 벌을 받아야 할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끝없이 그의 말을 고치려 들고, 되도 않는 충고를 하고, 심지어는 꾸짖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해야만 했다. 앤슨이 아무리 도발해오더라도 성질을 내서는 안되었다.

그러니까,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은 너무도 리얼한 탐정을 만들어낸 대가는 아서가 조지의 사건을 조사하는 내내 치룰 수 밖에 없다. 사실 무려 2015년인 지금도, 셜록 홈즈는 진짜 살아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지만 덕분에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들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목격하게 된다. 그가 바로 셜록 홈즈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아서가 결국 조지의 결백을 밝히는지에 관해서는 직접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되어야 하므로, 더 이상 자세한 줄거리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저 상상력과 관찰력이 뛰어났던 아이 아서와 영특했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던 조지가 어떻게 법의 영역 안에서 정의를 찾아가는지 그 여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아이는 보고 싶어한다"로 시작하는 아서의 이야기가 "그는 무엇을 볼 것인가?"로 끝나는 조지의 이야기로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줄리언 반스는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써내는 대단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 시작이 있고, 결말이 있고, 과정을 이루는 인물들이 있고, 그리고 여운을 남겨주는 시작을 동반한 결말. 독자들은 보고 싶어한다. 세기의 명탐정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마치 홈즈 처럼 뛰어난 추리와 수사를 해서 위기에 빠진 평범한 누군가를 구원해주기를. 더 이상 무엇 설명이 필요하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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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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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고전들을 탐독했다. 나는 한 소설가의 책들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작품들을 읽고 있었다. 어느 작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본 결과 그의 인간 됨됨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작품보다 더 중요했다. 작가의 삶이 영웅적이거나 명예로우면 소설들이 한결 재미있었다. 반면에 사람의 됨됨이가 혐오스럽거나 시시껄렁하면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시간을 허비하는 게 싫었던 미셸이 보기에 정말 쓸모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밖에 없었다고.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면 책부터 집어 들었고, 다 읽을 때까지 그것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탓에 어머니는 책에 코를 쳐 박고 있는 그의 모습에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어머니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저녁 먹으라고 불러도 소용이 없자, 방의 전기를 아예 끊어버리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결국 하는 수 없이 주방에로 내려와 식사를 하면서 책을 읽다가 이제는 아버지의 역정을 사고 만다. 그는 이를 닦거나 용변을 보면서도 책을 읽고,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다 종종 지각을 하고, 수업시간에도 종종 책을 넓적다리에 올려놓은 채 독서를 계속한다. 강박에 쫓기듯 책을 탐하는 독서가의 모습이 어느 시절의 내 모습 같아서 뭉클했다. 물론 작품에는 작가의 삶을 넘어서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작가를 선택할 때 작품을 봐야지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따지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는 밤에 몰래 빠져나갔다 어머니에게 흠씬 두들겨 맡지만, 그 와중에도 피에르에게 받은 <화씨 451>이라는 책이 손상되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의 스탠드를 켜고 소설을 읽어간다. 그는 브래드버리의 그 책을 읽으며 저항할 줄 알아야 하고,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되며 힘의 지배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물론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벌하는 나름의 방식이 고작 가족들에게 침묵으로 보호막을 치는 거였지만. 책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 그걸 몸소 실천하려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수염이 헙수룩한 남자가 커튼 뒤로 사라졌다. 천이 해어지고 여기저기 얼룩이 묻은 레인코트 차림의 남자였다. 이런 계절에 저런 차림으로 뭘 하러 들어가는 거지? 몇 주째 비가 내리지 않던 때였다.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커튼을 젖혔다. 문에 서툰 솜씨로 써놓은 글귀가 보였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내 평생 그토록 크게 놀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중학생이던 미셸은 그곳 체스 클럽에서 장폴 사르트르와 조제프 케셀을 보며 무엇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든다. 그는 프랑크와 세실에게 자신이 본 놀라운 소식을 전하지만, 세실은 카뮈를 더 좋아했고, 사르트르를 떠받드는 프랑크는 카뮈를 싫어했다. 그들이 카뮈냐, 사르트르냐에 대해 논쟁한 덕분에 미셸은 하루에 케셀과 사르트르와 카뮈를 동시에 알게 된다. 미셸은 다시 클럽에 갔고, 차츰차츰 클럽의 회원들을 알아나간다. 그렇게 그는 테이블 풋볼을 함께 즐기던 친구들을 버리고, 클럽의 최연소 회원이 된다. 이 클럽은 소년과 동유럽과 그리스에서 넘어온 망명자들의 체스 클럽이다. 국적도 다르고 망명 이유도 제각각인 그들 중에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믿지만 해결책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이들도 있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사회주의와 절연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 무국적자였고, 누구나 역경에 빠져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 책은 미셸이라는 소년이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차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배경이 프랑스의 1959년에서 1964년까지의 시기인 만큼 역사의 큰 사건들과 개인의 삶이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들이 그려져 있다. 외부의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시대적 변화를 겪으면서 그 와중에 낙천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다.

"아름다운 것은 기억밖에 없어. 나머지는 먼지고 바람이야."

체스 클럽 망명자들의 이야기와 미셸 가족들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들려지는데, 소소하게 펼쳐지는 미셸의 풋사랑, 부모에 대한 반항, 로큰롤, 테이블 풋볼 그리고 책에 대한 엄청난 열망들과 가족과 사랑을 두고, 이념을 버려야 했던 망명자들의 에피소드는 너무도 이야기 거리들이 풍성해 두툼한 책 두 권을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미셸이 동경하던 피에르가 군데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고, 복무 중이던 미셸의 형 프랑크는 살인 사건에 휘말려 종적을 감추고, 그 일로 의견 충돌이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국 이혼에 이르고. 주변에서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미셸은 체크 클럽의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수선한 시대에 휘말려 평범하지 않은 사춘기를 보내는 미셸의 삶은 소설 첫 머리에 실린 문구 "나는 비관주의자로 살면서 언제나 똑똑하게 굴기보다 실수를 저지르며 낙천주의자로 살고 싶다"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사실 지금 우리의 시대도 그렇지 않은가. 매일같이 뉴스에서 들려오는 사회에 대한 불신들을 치솟게 하는 소식들은 삶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한 시대에도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나가야 한다. 어차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살아남아야 한다면 비관하고 우울해하기 보다는 낙관하고 희망의 끊을 놓치지 않는 게 스스로에게 더 좋지 않느냔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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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지배하라 - 끝판대장 오승환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
오승환.이성훈.안준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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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자주 가던 곳이 영화관과 야구장이었다. 둘 다 영화 광에 야구 마니아였는데, 야구장은 단순히 우리가 응원하는 팀의 홈구장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야구장을 다니며 여행을 다녔다. 왜냐하면 우리는 특정 팀만 좋아했던 게 아니라,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잠실, 목동은 물론이고,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창원까지... 전국을 다니면서 야구장 순례를 했다. 그러니 올해의 신생 팀인 KT의 구장을 빼고는 모든 팀의 홈구장을 전부 다녔었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번 가본 곳이 바로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이다. 이유는 대구 구장이 작은 편이라 관중석에서 필드가 너무 가까워서 좋고, 가격도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홈플레이트 뒤편의 테이블 석에 앉으려면 티켓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십만 원을 훌쩍 넘는데, 대구 구장에서는 그런 좌석이 단 돈 몇 만원으로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들은 한 두번 가본 게 다 인데, 대구에는 서너 번 이상은 가본 것 같다.

나는 넥센 히어로즈의 팬인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대구에 갈 때마다 경기에 지곤 했다. 그 말인즉, 당시 삼성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 선수가 우리가 관람을 갈 때마다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만약 점수가 한 두 점 차라면 9회말이 되어도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우리 팀을 끝까지 응원하게 마련인데, 오승환 선수가 일단 등장하면 우리 팀이 이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거의 제로가 된다는 것. 물론 오승환 선수도 사람이기에 가끔 블론 세이브를 하지만, 관람하는 입장에서 그저 심리적으로 그의 등장만으로도 아 이제 경기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압도적인 선수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처음 대구에 갔을 때 오승환 선수가 등장하던 순간인데, 전광판에 '끝판대장'이라는 문구가 뜨고 관중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질러대면 야구장이 막 떠나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상대편 선수임에도 그저 그의 플레이가 놀라웠고, 멋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지금도 친구들이 나를 놀리는 단골 메뉴가 있다.

"넌 정말 야구하기 잘 했다. 다른 종목 했으면 망했을 거야. 운동 선수가 어쩌면 그렇게 운동 감각이 없냐?"

오승환 선수는 축구, 농구, 족구 등 어떤 종목을 해도 공 다루는 게 어설프다고 한다. 자신이 잘하는 건, 그냥 항상 전력으로 미련하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라고. 어쩐지 우직하게 직구로만 승부하는 그의 근성이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오승환 선수가 대단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투수한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포커 페이스'가 아닐까 싶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절체 절명의 순간에 등장하는데, 어떤 순간에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마무리 투수이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를 볼 때마다 우스갯 소리로 마무리 투수는 항상 심장이 쫄깃한 순간에 등장해서 피 말리는 싸움을 해야 하니, 수명이 몇 년을 줄 거 같다고 한 적도 있으니 그들의 단단한 심장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지금이야 너무도 대단한 선수라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지만, 그에게도 실패를 겪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프로지명을 앞두고 척추 분리증이라는 진단을 받아 프로 입성에 실패하고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에 가서도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재활 운동에 매달려야 했다.

"야구선수 한 명 키우는 데 학교 예산 5천만 원이 드는데 승환이는 2년 동안 보여준 게 없습니다. 신입생을 받으려면 승환이가 야구부를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펑펑 울면서 코치님의 손을 잡고 빌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일화들은 그가 정상에 오른 것이 그저 쉽게 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도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가 가끔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터진 아이돌과의 열애 소식도 처음 듣고는 의아했을 정도로, 그가 너무도 야구에만 최적화되어 있어 감정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 오승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 것도 같고, 그가 왜 어여쁜 아이돌 가수와 연애를 할 수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순간은 내가 지배한다."

이닝, 점수차, 상대타자가 누구인지와 같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승부는 내가 공을 던져야 시작된다. 내 공만 마음먹은 대로 던지면 결과는 하나뿐이다. 누구도 제대로 던진 내 공을 칠 수 없다. 그래서 다음 공을 던지는 데에만 모든 걸 집중했다.

자신이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 타자 한 타자를 승부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단지 타자와 승부하는 그 순간을 지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오승환. 순간을 지배한다는 말이 너무도 멋지게 들린다. 야구에서든, 일상에서든, 회사 업무 중에든, 연애 중에든.. 그 순간을 자신이 컨트롤하고, 지배한다는 건 대단히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일본으로 건너가 한신 타이거즈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오승환 선수가 언젠가는 메이저 리그로 갈 수도 있고, 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삼성으로 돌아와 은퇴 전까지 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하든 지금처럼 최고의 모습으로 남아 있길 야구 팬의 한 사람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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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06-1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의 야구장을 순례하셨다니 엄청난 야구팬이시군요. 저는 넥센팬아니고 엘지팬인데 목동야구장이 멀지 않아서 가끔 엘지 원정겜 보러 갈 때가 있어요. 문제는 엘지가 넥센한테 워낙 약해서 보러 갈때마다 자주 진다는 점이기는 한데...하기는 엘지는 다른 팀들한테도 다 약해서..ㅠㅠ

피오나 2015-06-16 21:01   좋아요 0 | URL
하핫..제 주변에도 엘지 팬들이 잔뜩 있는데, 맥거핀님도 역시ㅋㅋ 넥센도 엔씨만 만나면 정신을 못차리곤 해요. 다들 그런 팀이 하나씩 있나봅니다. ^^;; 그나저나 맥거핀님도 야구장 나들이를 가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신다니 괜히 막 반갑네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