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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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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는 아마도 작년 한해 가장 ''한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이어 <댓글부대>까지 한 해 동안 무려 세 권의 신작이 줄줄이 소개되었고, 그 모두가 이슈가 되었으니 말이다. 베스트셀러 판매 순위에서 한국 소설이 단 한 권도 20위 안에 진입하지 못한 반면에, 거의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한국 소설 또한 장강명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 소설의 추락 속에서 화제가 되고, 독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는 한국 소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당연히 나도 그의 작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았지만, 사실 작품의 시의적절성(?)은 인정하지만 그다지 공감 내지는 감동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서 아쉬웠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그의 신작이 나오자 또 챙겨보고 있으니, 그가 소재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능력 하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실제와 유사한 설정이 독자들에게 실감 나는 리얼리티를 선사하지만, 불편함을 자극할 수도 있다. 작가는 모두가 조금씩 불편해지길 바라며 썼다'고 하는데, 그의 바람대로 이 작품은 매우 불편하다.

그런데 왜 사회가 바뀌지 않지? 그건 기득권 탓이고,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그 기득권과 결탁해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는 댓글을 쓰는 한 사람을 다른 아홉 사람이 불편해하고 은근히 따돌리게 되네. 온건한 진보주의자 열 사람이 모여서 시국을 논의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중 세 사람은 극좌파로 변하게 돼.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은 자기가 극단적이라는 사실도 몰라. 왜냐하면 자기 옆에 있는 아홉 사람의 평균 의견이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잘 쓰인 허구의 이야기는 진짜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라고 하지만, 사실 같은 부분들이 지나치게 많다. 특히 허구로 만들어진 몇몇 사이트에 비해 극우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는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그런 커뮤니티를 실제로 접해보지 못하고 무성한 소문만 들어왔던 나 같은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들에게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 꽤나 있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나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알고, 인터넷을 통해서 유포되는 수많은 거짓들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익숙하게 피부에 와 닿게 경험해보지는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그래서 역시나 이번 작품도 내용적인 면에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 페이지를 설렁설렁 넘기게 되고 말았다. 자신이 쓴 소설 중 '가장 빠르고 가장 독하다'는 문구대로, 작가가 참 빠른 시간에 썼겠구나 싶은 이야기라고 할까. 깊이보다는 자극에 관심이 많은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심사평인 '경쾌하고 날렵한 문체,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은 인정한다. 빠르고 쉽게 읽히는 것이 비단 페이지 수만의 이유는 아닐테니 말이다.

인터넷 여론조작업체 팀-알렙의 멤버는 20대 청년 삼궁, 01()10, 찻탓캇으로, 모두 일베 죽돌이이다. 인터넷을 통해 거짓으로 만들어진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그들의 능력은 가히 가공할 수준이어서, 특정 영화를 망하게 만들기도 하고, 떠오르는 인기 강사를 그만두게 하기도 하고, 교사가 사직서를 제출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짜 구매후기나 가짜 상품평부터 시작해서, 바이럴마케팅으로 발전한 이들의 손에서 태어난 악평, 악플들은 전혀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해도 엄청난 효과를 거두고 만다. 우리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뭘 해도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큼 사람 정신을 좀 먹는 것도 없어. 사람들도 그걸 알아. 어떻게든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아주 발악들을 해. 취미에 몰두해서 걱정을 떨쳐버리려 하기도 하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면 혹시 없던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몇 번씩이나 두드려보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술을 퍼 마시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끝내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다 화를 내게 돼. 자기가 잘못한 게 없잖아. 그런 때 화가 안 나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야. 사람들은 분노하고, 희생양을 찾기 시작해. 지금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무상복지가 얼마나 이뤄지는지 같은 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미래고 희망이야.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이철수' '남산의 노인'으로 부터 현실 속 저항세력의 근거지인 인터넷 주요 커뮤니티를 무력화시키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해킹이나 디도스 공격처럼 하드웨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트가 이용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없애거나 현저히 약하게 만들라는 그는, 그 커뮤니티 이용자들한테 세상은 그곳이 보여주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했다고 한다. 대체 그게 누구한테 무슨 이득이 생기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알렙은 꽤 많은 비용을 받고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뭐?"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 같다고."

이야기는 팀-알렙의 멤버 찻탓캇이 진보 성향 일간지 K신문 기자에게 자신들이 해온 조작 사실들을 폭로하는 인터뷰와 그들이 실제 현실에서 벌이는 일들로 교차 진행된다. 아마도 더 리얼하게, 현실적인 느낌을 주고자 인터뷰 형식을 빌어온 것이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이야기는 매우 노골적이고 딱딱한 부분들도 많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등의 소제목들이 사실 이야기 자체보다 더 임팩트가 있고 재미있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야 하는 건데 말이다.

누군가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그 지점부터 욕심, 권력이 생겨나고 그렇게 만들어진 욕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커져서 제어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서 만들어지는 권력은 여론을 조작하려 하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부분을 건드려 그들의 증오를 이끌어내는 그들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그것이 비단 허구의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그렇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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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조이스 캐롤 오츠

 

 오츠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서 "독창성과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단다.

 

 

 

 

 

 

 

 

 

 

화재감시원/코니 윌리스

 

기다렸던 작품!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쓰인 SF 장르는 언제나 환영!

 

 

 

 

 

 

 

 

 

 

스타타이드 라이징 1,2/데이비드 브린

 

스페이스 오페라의 전형적인 플롯을 뛰어넘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기대중이다.

 

 

 

 

 

 

 

 

 

 

 

사슴의 왕 상,하/우에하시 나호코

 

무엇보다 묘사의 힘이 압도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궁금증!!!!!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조디 피코

 

코끼리의 인지능력과 모성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니,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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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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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일년과 같다면 어떻게 될까. 불과 닷새를 살았을 뿐인데, 실제 시간은 5년이 흘렀다면? 게다가 이 주인공이 겪는 시간 여행은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선택의 여지 없이 24번의 시간 여행을 해야만 하는 강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고작 24일을 살았는데, 세상의 시간은 무려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추억을 공유했던지 간에 24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다는 듯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만다. 24년 동안 만난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다는 뜻이다. 이 무슨 황당하고 허무한 시간 여행이란 말인가.

시간 여행은 꽤 오랫 동안, 여러 작가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의 아이템이지만, 이 작품의 설정은 꽤나 무시무시하다. 24년이란 젊은이가 중년이 되고, 중년이 노인이 되기에 무리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긴 시간이니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한번 발을 들여놓는다면, 이 시간 여행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이건 뭐 말 그대로 '저주'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암튼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겪어야 하는 24년이라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난 뒤 그에게 남은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과연 시간 여행의 저주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제 네가 알고 싶어 하던 진실을 다 말했단다. 금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넌 지옥 같은 미로 속에 빠져든 거야. 24일 동안 네 인생의 24년을 살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가 사는 하루가 1년이라는 말씀이세요?"

" 24년을 시간의 미로 속에서 보내게 된 거야."

나는 머릿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격랑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벌써 국내에서 출간되는 기욤 뮈소의 작품이 열두 번째인데, 어쩌다 보니 그 동안 그의 작품들을 모두 읽었다. 재미있는 건 항상 전작과 비슷비슷한 느낌인데, 매번 페이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고, 꼭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선 매번 소설 속 인물이 페이지 바깥으로 걸어 나오거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열 개의 알약이 존재한다거나, 현실에서 만난 두 남녀가 실제로는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살고 있었다거나, 타인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거나 판타지적인 요소와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호기심을 자아내곤 했다. 하지만 그 어처구니 없게 비현실적인 소재를 너무도 현실적인 인물들의 일상과 엮어 놓는 실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있을 법하다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막판의 반전 또한 기욤 뮈소 작품의 백미인데,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한 설정과 상황들을 결국은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고, 인물들을 현실의 땅에 발 붙이도록 해주는 것 또한 바로 이 반전의 역할이다. 반전의 역할이 사실은 이런 거였어. 몰랐지? 라는 식의 깜짝 쇼가 아니라, , 이래서 그랬던 거였구나. 식의 납득과 안도를 주는 장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새벽에 도망치듯 사라진 다음 내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이유가 일 년에 딱 하루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리자가 전혀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다니까. 난 당신을 어제 봤는데 일 년이 지나 있는 식이지."

"그럼 당신은 연중 24시간 이외에는 어디에 머물고 있지?"

"연중 24시간을 빼면 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아서는 아버지로부터 등대를 유산으로 받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는 조건으로 지하실 벽면 안쪽에 벽돌로 막혀 있는 철제 문을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24방위 바람의 등대와 오래 전 실종된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잔뜩 그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지난 30년간 자신은 풀지 못했던 등대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과제를 아서에게 남겨준 것이다. 아서는 아버지가 금단의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자 자신에게 그 일을 떠맡긴 거라고 생각한 그는, 오래 전 아버지가 벽돌로 막아둔 철제 문을 열어 보기로 한다. 그곳은 너비가 10평방미터쯤 되고 벽면이 다듬어지지 않은 석재로 이루어진 방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빈 공간이었지만, 잠시 후 갑자기 강력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다 그의 등 뒤로 문이 저절로 닫히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깨어난 곳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성당 안, 그는 팬티 차림에 진흙투성이 샌들을 신고 있는 상태로 경찰에게 잡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다. 보스턴에 있던 그가 도대체 어떻게 갑자기, 뉴욕에 있는 성당으로 오게 된 걸까. 거기다 신문 기사에 표기된 날짜는 무려 1년이 지난 시점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에게 벌어진 일을 알게 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사실 돌아가시지 않았으며,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날 때마다, 무려 일년씩 지난 시간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그는 이런 일을 먼저 겪었던 할아버지를 통해서 등대의 저주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지만, 시간 여행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그리고 시간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된 여인 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가 강제로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리자에게 그는 오직 1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남자일 뿐이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1년에 단 하루만 함께 할 수 있는 상대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아서는 그녀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루가 지나면 그녀의 곁에서 사라져야 하는 남자, 그러니 미래가 없는 남자, 매일매일 하루를 살 때마다 그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남자.. 아서의 시간 여행은 그렇게 24번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현재가 더 중요한 사람도 있고,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명백하게 전자인데,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재미있게도 내 남편은 완벽하게 후자인데, 그는 행복해질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고생쯤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가치관이지만, 기욤 뮈소의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언컨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내자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내팽개치지 말자는 것.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모든 걱정과 우려는 시간 낭비라는 것. 매 순간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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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앞치마 - 타인과 친구가 되는 삶의 레시피17
조선희.최현석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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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현석 셰프가 꼭 만화 캐릭터 같다고 생각했었다. 셰프를 주인공으로 한 순정 만화가 있다면 그가 주인공으로 너무도 잘 어울릴 만한 조건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우선 우월한 키와 탄탄한 몸매, 유학파가 많은 요리 계에서 고졸 셰프라는 출신, 호텔 주방장이셨던 아버지를 비롯해서 어머니와 형까지 모두 요리사인 집안, 하지만 넉넉하진 못했던 형편, 천 가지가 넘는 새 메뉴를 개발한 크레이지 셰프라는 별명,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인 허세 캐릭터, 그러나 그 뒤에 숨어 있는 수줍은 미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연약한 내면까지. 이건 그냥 만화 캐릭터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가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허세 캐릭터로 사랑을 받기 전부터 여타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그를 보아 왔는데, 항상 느꼈던 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크리에이티브한 그의 음식들이 놀랍다는 거였다. 그렇게 특별한 그의 요리처럼, 이번에 그가 낸 책도 보통 다른 셰프들이 내곤 하는 레시피 북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진과 요리의 만남이라니! 그것도 조선희 작가가 찍는 그의 요리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쓰디쓴 절망의 순간, 음식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 너무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요리하고 싶지도, 무언가 입에 대고 싶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음식은 맛보다도 그 정성 때문에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몇 해전 드라마 <파스타>에서 등장했던 매력적인 셰프. 주방에서는 까칠하지만 여자친구에게는 너그러운 멋진 남자 이선균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때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사람들에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연예인을 능가하는 외모와 입담의 셰프들이 방송을 통해서 캐릭터화되면서부터 그것은 구체화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그들이 일하는 주방이 전쟁터라는 것은 우리 일반인들이 실감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최현석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정말 단어 그대로 그들이 주방에서 '매일같이 전투를 치르고 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전쟁터였는데, 그 선봉에 선 최현석 셰프야 말로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그 까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버럭 셰프가 아닌가. 아무래도 실제 드라마의 모델이었던 샘킴 셰프의 성격보다는 최현석 셰프가 더 드라마 속 매력만점의 셰프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요리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꽤 많은 요리 레시피북과 요리 에세이 등을 읽었지만, 전문 사진 작가가 촬영한 음식 사진은 본 적이 없기에, 이 책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수준이었다. 17가지의 레시피가 실려 있는데, 각 장마다 요리하기 전 원 재료의 사진과 완성된 음식의 사진이 있다. , 그런데 조선희 작가의 사진은 그야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마치 그림 같은 비주얼이다.

 

대체 누가 갈치를 이렇게 멋지게 찍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처음 이미지를 보고는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이 아름다운 피조물은 뭐지? , 갈치도 이렇게 감각적으로 화보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멋진 재료로 완성된 음식은 바로 이것이다.

이 음식은 작년에 올리브쇼를 통해서 보았을 때부터 정말 먹어보고 싶은 요리였다. 최현석 셰프의 오리는 이렇게 눈으로 먼저 먹는 음식이다. 플레이팅도 예쁘거니와 갈치 순살과 베이컨의 조합이 생소하면서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시 방송에서는 샤프론이 아니라 좀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치자로 색을 냈었는데, 한번쯤은 따라 해보고 싶은 요리였다. 물론 생선 뼈 옆을 오려내듯 갈치를 살만 발라낼 자신이 없어서 아직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나는 자주 패한다. 특히 홍석천 씨와의 대결에서는 늘 고배를 맛본다. 석천이 형은 타고난 사업가여서인지 게스트의 취향과 입맛에 맞춰 요리할 줄 안다. 반면 나는 요리사라는 자존심에 퀄리티와 요리 기술 등을 게스트에게 강요한다. 그렇게 몇 번의 패배를 겪으며 좋은 요리의 요건이 무조건 비싼 식 재료나 요리 기술 등이 다가 아님을 깨달았다. 음식의 내공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요리란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취향이며 감성적인 부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현석 셰프와 조선희 작가는 전혀 친분이 없는 상태로, 이 책을 위해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넉 달 동안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냈고, 맛에 대한 주제를 통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최현석 셰프가 그 추억을 연상시키는 요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완성된 음식을 조선희 작가가 카메라로 담아내고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각자의 경험 속에 녹아난 요리와 맛의 추억에 대한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게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들은 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 갔다고 하는데, 성격도, 취향도, 일하는 분야도 너무 다른 그들이었기에 그 시간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일을 이십 년 넘게 해 왔고, 오로지 그것밖에 없던 이십 대를 보낸 열정을 품고 살아 왔다는 것 밖에 없었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완전히 다른 전부를 다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교집합이 아닌가.

 

이 책에 실린 레시피들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조선희 작가의 배추떡볶이와 최현석 셰프의 두부김치를 가장한 토마토카프레제 샐러드이다. 우선 조선희 작가의 배추떡볶이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레시피라 생소하면서도 궁금한 맛이 아닐 수 없다. 배추를 큼직하게 잘라 볶다가 고추장 한 숟가락, 간장, 물 조금 넣고 끓이면 배추에서 나온 달달한 물과 함께 최고의 양념이 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 숨이 죽으면 거기에 떡과 오뎅, 따로 구워 놓은 만두를 넣어서 조금만 더 끓이면 된다는, 완전 초간단 레시피의 떡볶이이다. 지친 영혼을 위로하며 먹는 최고의 음식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배추떡볶이는 내게 친구다, 아니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그 행위가 내게는 친구가 된다'라고. 이건 정말 누구라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라 부담 없이 만들어 먹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현석 세프는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보는 것과 맛은 다르다'는 것을 요리로 직접 보여준다. 일명 '페이크 요리'라는 것인데 비주얼과는 전혀 다른 맛과 질감을 주는 요리를 말한다고 한다. 첫눈에 보기엔 영락없는 한식인데 먹어보니 이탈리안 요리라든가 하는 식이다. 선입견이 깨질 때의 충격과 즐거움을 요리에 접목한 것인데, 그가 팔 년 전 개발한 토마토카프레제 샐러드는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의 일종인데, 정말 모양이 영락없는 두부김치이다. 이런 요리를 먹으면 맛은 기본이고 재미와 유쾌함까지 더해줄 것 같다. 엔다이브를 소금에 절여 말린 토마토와 배, 바질을 섞어 소스를 만들고 배추김치 모양으로 플레이팅 한 후, 모짜렐라 덩어리를 두부처럼 잘라 곁들이는 이 요리는 남편에게 만들어주고 싶다. 아마도 너무도 당연하게 두부 김치라 생각하고는 한입 먹을 텐데, 깜짝 놀랄 모습이 눈에 그려져 요리를 만들면서도, 먹는 걸 보면서도 즐거울 것 같다.

그 외에도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추억을 하며 먹는 차가운 명란크림파스타, 아주 특별한 날을 위한 초콜릿을 올린 푸아그라 요리, 속이 갑갑할 때 먹고 싶은 녹차굴비소면, 내 안의 집착과 후회를 버리고 싶을 때 먹는 문어파스타 등 흔하게 요리 책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 강한 요리 레시피들이 가득 실려 있다. 특이한 건 요리 전 재료와 완성 사진만 있고, 요리 과정에 대한 사진이 없어 마치 이 요리들이 마법같이 느껴진 다는 것. 거기다 최현석 셰프와 조선희 작가의 추억까지 더하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울 푸드가 아닌가 싶게 느껴진다.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진짜 소울 푸드가 궁금하다면, 지금 이들의 함께한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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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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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른 손님에게 서점 주인이 말한다. 이 책은 손님에게 팔고 싶지 않다고. 뭐 이런 이상한 서점이 다 있을까. 또 이런 일을 당한 손님은 얼마나 황당할까. 내가 내 돈 주고 책을 사는데, 내 마음대로 책을 살 수 없다니 말이다. 게다가 이 책방 주인은 왜 손님과 언성을 높여가면서 피곤하게 살까.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책방은 바로 파리, 센 강 위에 떠 있는 독특한 수상 서점, 종이약국이다. 손님의 상처와 슬픔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책으로 처방하는 것이 바로 주인인 페르뒤 씨가 책을 파는 방식이다. 페르뒤 씨는 말한다. 자신은 의사들이 결코 진단하지 못하는 감정들과 고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들을 치유하고 싶다고. 그런데 어떻게 잠깐 한 사람을 보고 그의 고통을 짐작하거나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손님에게 팔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여자 손님의 손에서 살며시 <>을 빼냈다.......

그러자 그 여자 손님은 서점 주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요?"

"막스 조당은 손님에게 맞지 않아요."

"막스 조당이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요?"

". 손님에게 맞는 타입이 아니에요."

"내 타입이라고요? , 그렇군요. 지금 나는 이 서점에서 책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드리고 싶군요. 남편감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고요."

"실례지만, 손님께서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는 것보다 어떤 책을 읽으시냐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합니다."

그는 귀와 눈과 직관을 이용했다. 상대방의 몸에서, 태도와 움직임, 작은 몸짓에서 어떤 감정이 그를 굴복시키고 압박하는지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은 의사인 동시에 약이기도 해요.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죠. 손님이 안고 있는 고통에 맞는 적절한 소설을 소개하는 것, 바로 내가 책을 파는 방식입니다." 라고 한다. 이 남자가, 이 여자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일까? 이들의 삶의 동기는 무엇일까? 이들은 자신 이야기의 조연일까? 자신의 스토리에서 남편, 직업, 아이들, 일이 텍스트를 야금야금 모조리 차지하는 바람에 자신을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그의 머릿속에는 약 삼만 가지의 이야기가 들어있단다. 그것도 현재 유통되는 백만 권 이상의 책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라며.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8000권이 이 서점에 있고, 그는 사람에 맞추어 치료법을 작성해서 책을 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페르뒤 씨가 치유하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신이었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과거에 갇혀서, 처참한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수십 년을 외면하던 그 순간과 마주하게 된 그는 드디어 과거와 마주서보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는 종이약국을 출항시켜 과거를 향한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또한 매우 흥미롭다. 우리들 대부분 그렇지 않나. 남의 일에 간섭하고 충고를 하는 건 잘하면서, 자기 자신의 일에는 그렇게 객관적일 수 없어서 방치해두곤 하니 말이다. 그래서 종이약국과 함께 하는 여정은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위안'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나와 같은 누군가, 혹은 내가 과거에 겪었던 상처와 현재의 내 모습과 닮은 그것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소설의 목적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거나, 혹은 내가 되고 싶은 누군가를 찾거나, 혹은 위로 받고 치유되거나, 그저 책을 읽는 시간에 힐링이 되는 것 말이다.

페르뒤 씨는 그 얇은 책을 집어 들었다. 조당은 여기저기 연필로 밑줄을 긋고 그 옆에 질문들을 써 놓았다. 책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읽히고 싶어 한다.

독서는 끝없는 여행이다. 기나긴, 그야말로 영원한 여행. 그 여행길에서 사람들은 더 온유해지고 더 많이 사랑하고 타인에게 더 친근해진다. 조당은 그 여행을 시작했다. 이제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세상과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걸 가슴속에 품게 될 것이다.

실제로 문학을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하다. 작년에 읽었던 <소설이 필요할 때>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듯이 문학치료사가 사람들에게 소설을 처방하는 것이다.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서 전 세계의 다양한 의뢰인들에게 일대일로 소설을 처방했던 문학치료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알코올 중독일 때는 이런 책을, 사람에 정나미가 떨어질 때는 이런 책을,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을 때는 이런 책을 읽으라는 식으로 기발하고 재미있는 처방도 있었고, 삶의 중요한 기로에서 힘이 되어주는 처방도 있었다. 그래서 책의 역할이 이렇게까지 다양할 수도 있구나, 새삼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그 페이지의 한 문장, 하나의 단락, 그리고 숨겨진 여백을 통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아주 잠깐이라도 주마등처럼 스치는 우리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순간이다.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실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삶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세상이 나를 져버릴 때마다 나는 책에게 매달렸다. 그것은 나에게 적개심을 가질 일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상처를 줄 일도 없는 거의 유일무이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아주 사소한 뭔가만 삐끗하더라도 어긋나고, 깨어지기 마련이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은 마치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게 만들곤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되는 일상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를 바 없이 그저 견뎌야 하는 하루가 되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 책만 있다면, 나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종이약국>처럼 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면 그냥 막 힘이 난다. 책의 가치가 떨어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누군가는 그 가치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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