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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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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은 매번 궁금해서 보기는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는 않은 종류에 속하는 작가였다. (물론 <멀베이니 가족>이나 <블론드>를 읽었다면 또 달랐겠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그녀의 작품 중에 고딕 풍의 독특한 색깔을 자랑하는 작품들만 읽었던 탓이기도 하다) , 어쨌든 여기서 방점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체험한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그녀의 작품 중에 <좀비>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대디 러브>의 소아성애자 유괴범처럼 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유독 그랬는데, 그녀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동안 그 악인이 직접 되어보도록 한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동안 사이코 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해야 한다는 건데, 사실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굉장히 불편함을 동반하는 행위이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시선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광기 어린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라니, 보통 사람들이라면 살면서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그것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블 아이>에서의 일그러진 사랑과 관계, 그리고 <악몽>의 불안과 우울, 광기를 넘나드는 꿈과 현실 속을 헤매는 것 또한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이번 신작 <그들>을 읽는 내내 그렇게 기분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난 느낌이랄까. 혹자는 이 작품의 어마어마한 두께와 특유의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지루함을 느낀다고도 했지만, 나는 기존에 만났던 그녀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이 정도면 천국이 따로 없다는 심정이었던 터라 700페이지의 두께도 술술 넘기며 읽었던 것 같다.

1937 8월의 어느 따뜻한 저녁, 사랑에 빠진 소녀가 거울 앞에 섰다.

그녀의 이름은 로레타.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 꿈 같고 즐거운 사랑에서 불안하고 맹목적인 설렘 같은 것이 솟아났다. 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일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열여섯의 소녀 로레타에게서 시작한다. 그녀는 주중에 에이젝스 세탁소에서 일했고,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설레 이는 토요일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실직 상태라 늘 침대에 누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댔고, 그녀의 오빠인 스무살 브룩은 신경질적인 악의로 눈을 반짝이는 한심한 청춘이었다. 한 마디로 그녀의 가족은 형편이 어려웠고, 가족 중 그녀의 보호자로서 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오빠 또한 세상에 불만 많은 형편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녀는 오빠의 밥을 차려주고 그가 가지고 있는 총에 대해 한 마디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며 허세를 부린다. 그리고 그녀는 원래 일정 대로 친구의 집으로 향하지만, 가는 도중에 남자친구 버니를 그야말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와 어울리다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어차피 집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의 방에서 버니와 관계를 맺게 되는데,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 보니 옆에 누운 버니가 죽은 채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단번에 자신의 오빠 짓이라는 걸 알게 된 로레타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나갔다 경찰인 하워드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버니가 어차피 어디서든 저렇게 죽을 줄 알았다며 욕을 퍼붓다가, 순간의 열정에 휩싸여 로레타를 강제로 범하게 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설레 이며 기다리던 꿈 많은 열여섯 소녀가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잠자리를 한 날, 오빠에 의해 그를 잃어버리고,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가 경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는 엄청난 스토리는 어처구니없게도 로레타에 의해 이렇게 정리되고 만다. '하워드가 어느날 아침에 경찰관 제복을 입고 불쑥 나타나서, 그녀를 구해주고, 사랑해주고, 결혼까지 해서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임신했고, 하워드와 결혼해서 곧 유부녀가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비극이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에게서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어지는 그녀의 삶은, 역시나 평탄하지만은 못하다.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의 간섭에서 도망쳐온 그녀는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역시나 삶은 그녀에게 녹록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바톤은 그녀의 아이들인 모린과 줄스가 이어받게 되는데, 사실 전체 이야기의 분량에서 보자면 로레타보다는 모린과 줄스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1966 4. 사랑에 빠진 소녀가 거울 앞에 서 있다. 꼼짝도 않고.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모습에 고정돼 있다. '모린 웬들'이라는 이름이 그 모습에 붙어 있다. 싸구려 화장대 거울에 흐릿하게 비친 모습이다. 그녀가 이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그녀가 가진 것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사랑.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푹 잠겼다......

1937년 여름, 열여섯의 로레타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1966년 봄, 스물여섯의 모린으로 이어진다. 두 여인 모두 자신의 이름에 속한 구석을 벗어버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엄마와 딸, 그 두 여인 사이의 간극은 두터운 시간의 폭만큼이나 엄청나다.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격동의 삶을 살아낸 한 가족의 연대기를 서술하는 이 작품은, 폭력으로 얼룩진 가난한 디트로이트에서 살아내고자 애썼던 사람들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자들은 자라면서 남자들한테 온갖 짓을 당하고 부서지는 법이라며, 원래 세상이 그런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로레타와는 달리 그녀의 딸 모린은 엄마의 인생은 전부 잠들어 있다며, 자신은 항상 깨어 있는 의미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폭력과 범죄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줄스는 여자 친구가 쏜 총에 죽을 뻔하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춘으로 돈을 벌려고 했던 모린은 새아버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겪고 거의 죽다 살아난다. 어떤 꼴을 당하든, 어떤 일을 겪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라는 명제가 무색해질 만큼, 이들이 겪은 일은 무시무시하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은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 기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녀가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을 때, 학생 중 하나였던 이가 바로 극중에 등장하는 모린이다.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 오츠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이런 것이 현실일 리가 없어!'였지만, 사실 우리네 현실에서는 소설보다도 더 끔찍하고 엄청난 일들이 실재로 버젓이 일고 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모린의 고백을 통해 그려진 이야기라, 실제 극중에 오츠가 등장하기도 한다. 오츠는 자신이 서두에 인용한 존 웹스터의 비극 <하얀 악마>에 나오는 '우리가 가난하므로 사악해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난이란 때로 모든 것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그들'이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문학적인 기법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그들'인 웬들일가를 지칭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쩐지 우리 모두 '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당신도 '그 사람들'중 하나이고, 이들이 겪은 비극 또한 삶을 살아내는데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을 이미 여러 권 읽었었지만, <그들>을 읽고 나니 마치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의 작품일 으제야 처음 만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아직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면 꼭 <그들>에서 시작해야만 한다두툼한 두께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당신에게 뭔가를 남겨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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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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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신의 존재를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신을 믿든, 믿지 않든 말이다. 누구나 막막하고 힘겨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한 번쯤은 생각할 것이다. 신이시여,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혹은 불공평하고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생각할 것이다. 대체 신이라는 존재가 있기는 한 거야? 라고 말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 신이라는 존재를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가끔은 나 역시 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은 어떤 점에서는 매우 통쾌하기까지 한, 그럼에도 어딘가 편하지만은 않은 이상한 작품이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주제 사라마구는 '카인'의 입을 빌어 시종일관 하나님이 행한 정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그의 존재를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삭이 물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아버지는 저를, 아버지의 독자를 죽이고 싶어 하셨나요. 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이삭. 그런데 왜 마치 제가 어린 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 목을 따고 싶어 하셨나요, 아들이 물었다, 만일 그 사람, 여호와께서 그 사람을 축복하시기를, 그 사람이 나타나 아버지의 팔을 잡이 않았다면, 아버지는 지금 시체를 안고 집에 가시는 중일 겁니다. 그건 여호와의 생각이었다, 시험을 해보시려는 거였지. 무엇을 시험하는데요. 나의 믿음과 나의 복종을. 도대체 무슨 하나님이 아버지더러 자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까.

 

카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알려진 아담과 하와(이브)의 큰아들로 그의 어린 동생을 죽이고 영원히 헤매는 벌을 받게 된 인 물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바로 그 다음부터 상상력을 발휘한다. 카인이 십여 년 간 떠돌면서 창세기 속 사건을 곁에서 보고 느끼며 경험하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카인을 통해 보여지는 하나님의 형상은 기존의 그 어떤 모습과도 달리 너그럽지도 자애롭지도 않아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구약에 기록된 시공간을 떠도는 카인은 일종의 시간여행자가 되어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노아의 방주 등등.. 이른바 구약의 명 장면들을 가까이서 보고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듯 하나님에게 이야기한다.

불에 타버린 소돔과 다른 도시들에도 아이들처럼 죄가 없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고,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발한다. 그에 대해 하나님은 소돔을 멸한 것이 아주 깨끗하고 능률적으로 훌륭한 작업이었다고 하고 말이다. 특히나 책의 후반에 카인이 노아의 방주 계획을 망쳐 버린 후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압권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여줄 날이 와야만 했습니다."

"너는 진실로 카인, 아우를 죽인 그 비열하고 악한 자로구나."

"당신만큼 비열하고 악하지는 않습니다. 소돔의 아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이 장면은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직접적인 목소리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는 가톨릭 교회,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한 목소리로 비판 받은 공산주의자 작가이다. 공산당 활동을 했던 그에게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이 국교인 포르투갈의 정부는 갖가지 탄압을 가했고, 그는 노벨상 수상 후 자신은 신앙인들은 존경하지만 그 기관에 대해서는 존경하지 않는다고 응수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여호와는 전에도 말한 적이 있어 외우고 있는 말을 되풀이하듯이 대답했다, 세상은 부패하여 폭력이 가득하다, 내 눈에는 세상에서 폭력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모두가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악함이 크고, 그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을 향하고 있다, 나는 땅 위에 사람 지은 것을 한탄하고 있다, 사람 때문에 마음에 근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종하겠다,

 

카인은 우리의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가 완전히 미쳤다고 말한다. '오직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미친 자만이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자신의 직접적인 책임이라고 인정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테니 말이다.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해도 '단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자식을 죽여 장작 위에 올려놓고 태우라고 명령하는 건 옳을 수가 없다'는 그의 말은 너무도 공감할만해서,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동생을 단지 질투심 때문에 죽인 카인이 맞는지 의심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하늘의 불로 타서 재가 되어버린 소돔의 아이들 역시, 사실 결과 그 자체만 보자면 그의 주장이 완전히 억지라고 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여호와의 정의는 '인간의 정의가 어때야 하는지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의 관념'이라며, 하나님이 행한 정의에 문제 제기를 하는 카인의 태도는 너무도 불경스러워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다면 분개할 것만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이것을 문학적 텍스트로 읽어보자면,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환상적이고 우화적인 수법으로 구약성서 속 주요한 사건들을 읽어가며 '그분'의 정의에 대해 제대로 딴지를 거는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매우 놀랍기 그지 없다. 하나님은 완전히 미쳤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세상에 완벽한 '절대 정의'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요즘처럼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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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미스터리 스토리콜렉터 39
리 차일드 외 지음, 메리 히긴스 클라크 엮음, 박미영 외 옮김 / 북로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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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브로드웨이에서 허드슨 강으로 이어지는 웨스트 84번가에는 에드거 앨런 포 가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포가 '갈까마귀'를 집필했을 때 살던 집이 바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1844년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진짜 에드거 앨런 포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은행강도 스타크는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리버사이드 파크의 낡은 철문 옆에 앉아 허드슨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낡은 철문이 옆으로 미끄러지더니 죽은 사람처럼 퀭한 장발의 남성이 철문으로 덮여 있던 구멍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는 자신을 엗거 앨런 포라고 밝힌다. 그리고 바위에 난 구멍 속의 사다리를 따라 내려가 백 년 전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보여준다. 와우, 세상에. 기본 플롯을 듣기만 해도 이야기가 마구 궁금해진다. 에드거 앨런 포가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니 말이다. 이것은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저스틴 스콧의 <더할 나위 없는>의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 애가 거짓말쟁이, 사기꾼, 도둑이었을까? 나는 모른다. 그날 라나를 슬쩍 밀치던 그 애의 행동을 내가 완전히 오해한 걸까? 그것 역시 나는 모른다. 시간이 지난 뒤에 아이들이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는 것과 완전히 다를 수 있으니까. 혹은 어른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떠면 그 애는 애초에 그렇게 살게끔, 그 암울하고 불 꺼진 곳에서 죽게끔 운명 지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아닐지도.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다. 내게 있어, 그리고 모든 부모에게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란 그저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는 것뿐임을.

                                                           -토머스H.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

리 차일드, 제프리 디버, 그리고 토머스H.쿡까지!! 내가 사랑하는 최고의 작가들이 모였다. 거기다 뉴욕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즐기는 미스터리라니! 미스터리 작가 17명이 뉴욕의 상징적인 장소들을 하나씩 골라 이야기를 만들었다. 참여 작가 17명 중 10명이 뉴욕에서 태어났거나 뉴욕에 살고 있다고 하니 더욱 그럴듯한 이야기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센트럴 파크, 헬스 키친, 유니언 스퀘어, 타임스 스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월 스트리트, 차이나 타운 등등.. 뉴욕 곳곳은 미스터리하고, 매혹적인 장소로 변신한다. 게다가 해당 장소에 대한 사진과 위치를 표시한 지도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뉴욕을 아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의 히어로 잭 리처이다. 리 차일드는 뉴욕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플랫아이언 빌딩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23번가 지하철역에서 나온 잭 리처가 텅 빈 거리에 온통 폴리스라인으로 막혀져 있는,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뉴욕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제프리 디버는 보헤미안들의 수도인 그리니치 빌리지를 배경으로 평범해 보이는 제빵사의 이중 생활, 즉 스파이에 관한 미스터리를 만들었다. 리 차일드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과 제프리 디버의 <블리커 가의 베이커>는 단편이라 아쉬울 정도로 짧게 느껴졌던 이야기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모두 이들이 시리즈 물에 얼마나 강자인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장편 미스터리의 최고 작가들이 써낸 단편은 너무도 매혹적이었지만, 사실 그 자체로도 완벽한 이것들은 장편으로 만들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토머스H.쿡의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는 소재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것들로 문장과 단락을 만들어서 빚어내는 분위기 자체가 더 매혹적인 작가답게, 단편이지만 여운을 남기는 결말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건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그의 유려한 문장들은, 이렇게나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맨해튼 주민들의 휴식처인 평화로운 유니언 스퀘어를 배경으로 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5달러짜리 드레스> 또한 토머스H.쿡의 작품처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러 간 손녀가 마주하게 되는 비밀이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평생을 한 침대에서 살아온 부부에게도 이렇게 엄청난 비밀이 있을 수 있다면 말이다. 미국에서 평방미터당 가격이 가장 높은 동네인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배경으로 한 마거릿 메이런의 <빨간머리 의붓딸>에서는 뉴욕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비싼 사립학교에서 난데없이 유행하는 머릿니를 통해 짧지만 임팩트 강한 미스터리를 선보이고 있다. 숨쉬고 있는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가족이기에, 질투와 비밀 등 미스터리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가장 많은 단골 소재가 아닌가 싶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쓸 거요?"

"다시 미스터리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포가 말했다. "베스트셀러까지 됐죠. 그래서 제 에이전트가 책에 아낌없이 자금을 쏟아 부어줄 출판사를 찾고 있어요. 무조건 미스터리를 쓰라 더군요. 그렇게 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미스터리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좋아해요. 하지만 에드거를 수상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저스틴 스콧 <더할 나위 없는>

그 외에도 차이나타운을 누비는 아줌마 탕정 부터, 수상한 뉴욕의 환경미화원, 이탈리아계 마피아 가족의 비극과 브로드웨이의 미결 사건, 이웃 간의 사소한 다툼이 만들어낸 죽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인의 버킷리스트에서 시작된 소동 등등... 뉴욕이라는 도시만큼 이나 다양한 미스터리 단편들이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다. 각 이야기마다 뉴욕의 특정 장소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담겨 있어, 미스터리 단편 앤솔러지인 동시에 뉴욕 여행 가이드 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기도 하다. 특히나 국내에 그 동안 작품이 소개된 적이 없던 미스터리 작가들과의 만남도 미스터리 팬들에게는 마치 이 책이 종합선물세트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거서 크리스티가추리소설의 배경을 뉴욕으로 잡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뉴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추리소설이니까.” 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뉴욕이 얼마나 미스터리와 잘 어울리는 곳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미스터리는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범죄가 발생했으며, 그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이상의 무엇이다. 왜냐하면 사실 미스터리는 우리의 복잡하고, 고단한 삶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마워, 친구." 여자는 한 모금 더 마시고 말했다. "천국이 따로 없어, 그렇지?"

정말 그랬다. 보석 같은 미스터리 단편들이 모여 있는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내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극중 에드거 엘런 포의 작품에 대한 논평을 빌려보자면,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는 말로는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도 멋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인' 미스터리 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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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3 - 야!야!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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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6개월이 된 아이에게 매일같이 책을 읽어 주느라 본의 아니게 요즘 유아용 그림책과 동화책들을 즐겨 읽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삼 느끼게 된 건데, 아이들을 위한 대부분의 책은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나, 가끔은 사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뽀로로도 그렇고, 폴리도 그렇고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에서도 언제나 사람은 그들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러니 어릴 때는 자연스레 동물도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며, 사물에게도 의지와 감성이 있다고, 믿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분명 그랬던 시기가 있을 테고 말이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각박하게 살아내다 보니, 마음의 문을 닫고, 동심의 세계와는 멀어지게 되었지만. 아이덕분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네코마키의 <콩고양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에도 고양이나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나 만화가 있었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의 행동과 생각이 스토리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콩고양이> 시리즈에서는 전적으로 콩알이와 팥알이의 행동과 생각으로 모든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그들과 함께 사는 주인의 식구들은 그저 조연일 뿐, 진짜 주인공은 고양이라는 점이 마치 유아용 그림책을 읽을 때처럼 우리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나 이번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등장 인물(?) 덕분에 더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전개되는데,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마담 북슬씨와의 바로 이 장면이었다. 평소에 고양이를 너무 싫어해 틈만 나면 팥알이와 콩알이를 내보내려고 하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호통만 치던 그녀였는데, 어느날 개인기가 가능한 고양이를 티비에서 보고는 샘이나서 팥알이와 콩알이에게도 개인기를 마스터해보겠다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티비에 나온 고양이가 할 줄 아는 것은 손! 반대쪽! 했을 때 자신의 손을 내밀고, 음식 앞에서 애교~ 그리고 빵~ 하면 꽈당 넘어지는 시늉을 하는 것인데, 과연 우리 팥알이와 콩알이가 그걸 따라할 것인지.. 아 진짜 이들의 반응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볼때마다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사고뭉치 팥알이와 콩알이가 벌집을 건드리는 바람에 벌의 공격을 받게 되었을 때, 내복씨가 마치 자신의 목숨이라도 던질듯이 팥알이와 콩알이를 데리고 도망가는 장면은 웃기지만 뭉클하기도 했다. 뭐 비장했던 내복씨에 비패 결과는 마담 북슬이 신문지로 타악, 쳐서 벌을 간단하게 무찌르는 걸로 끝나 버리지만. 내복씨와의 에피소드는 언제나 이렇게 웃기지만, 감동적이다. 꼭 말썽꾸러기 손자들을 혼내려는 부모를 피해서 몰래 응원하는 진짜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새롭게 등장한 식구인 '아기 참새' 덕분에 색다른 이야기 거리들이 풍부해졌는데, 무려 다음 네 번째 시리즈에서는 강아지가 등장한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고양이인 줄 아는 시바견 '두식'이 새로운 식구인데, 고양이와 개가 만나면 늘 투닥 거린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지,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 덕분에 항상 철부지처럼 보였던 팥알이와 콩알이가 자신들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있지, 밥 주는 사람이 엄마인 거냐옹?

그건 그렇지 않나?

그럼 우리 엄마는....? 근데 왜 하나도 안 닮았냐옹?

 

비둘기도 참새도 다 엄마랑 자식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왜 우리는 엄마랑 안 닮았을까. 에서 시작한 그들의 고민은, 그렇다면 우리도 어른이 되면 '사람처럼' 다리가 두개, 털은 머리에만 있는 그런 모습이 되는 걸까. 로 발전해 사실은 살짝 기억하는데 진짜 엄마는 폭신폭신하고 진짜진짜 좋은 냄새가 났다며... 다들 어떻게 지내려나 보고 싶다고 말이다.

 

강아지를 십여 년 넘게 키우면서 거의 식구가 되어 버렸지만, 가끔은 나도 우리집 강아지가 자신의 진짜 엄마를 그리워하진 않을까. 기억은 하고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기에, 마지막 이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그들이라고 왜 자신의 진짜 엄마를 떠올리지 않겠는가. 다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갈 뿐이지.

 

꽤 길었던 설 연휴가 끝나고,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봄이 되려면 한참 멀었고, 날은 아직도 너무 너무 춥다. 연휴가 끝나고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겁다면, 혹은 으슬으슬한 추위에 외출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면, 이렇게 따뜻 발랄한 만화책과 함께 해본다면 어떨까. 이 책은 답답한 지하철 속에서 킥킥 거릴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줄 것이다. 그리고 팥알이와 콩알이 덕분에 남은 겨울은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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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톰
매튜 매서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은 국가와 사회의 기본 틀이다. 세계는 이와 같은 기본 틀을 흔드는 총성 없는 사이버 전쟁 중이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컴 오피스 업데이트 파일로 위장한 악성코드가 대량 유포되고, 청와대 사칭 해킹메일부터 삼성그룹 메신저 위장 악성코드까지 북한발 사이버 테러 주의보를 내린 것이 바로 최근의 일이다. 사이버 테러 관련해서 가장 많이 뉴스에서 언급된 것이 바로 북한인데, 그들은 과거에도 디도스 공격으로 주요 정부기관·포털·은행사이트·외국기관 등을 일거에 무력화시킨 적이 있으니 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언론사 서버, 은행 전산망, 서울메트로 및 코레일 전산망들이 죄다 해킹 공격을 받았으니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테러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실제로 나도 전 직장에 근무할 때, 회사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난리가 났던 일을 직접 경험했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자신이 직접 피부에 체감하는 일을 겪지 않는 이상 이런 일들로 인해 세상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그저 마우스 클릭 한 번만으로 세상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말이다.

"사람들은 사이버 전쟁에 대해 나름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사이버 전쟁이라고 하면 비디오게임이나 떠올려. 아주 깨끗한 전쟁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야.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데."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새로운 사이버 무기를 개발 중이고 아무도 테스트를 하지 않은 것뿐이야. 핵무기라고 하면 일단은 너부터도 겁을 내지. 히로시마나 비키니 섬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건은 잘 알려져 있으니까. 그런데 사이버 무기라고 하면 파괴력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양국의 정부 기관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의 사회기반시설을 사이버 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거라고. 크리스마스트리에 지팡이 모양 사탕을 매달 듯이 가볍게 최후의 심판 일을 도래시키는 거야."

여느 때와 같았던 추수 감사절, 뉴스에서는 미국 정부의 웹사이트가 해킹됐고, 항공모함을 두고 중국해군과 미 해군이 대치중인 상황에서 양국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마트의 바코드 스캔 장치가 작동을 멈춰 한 시간이 계산대에서 기다리던 성난 사람들은 돈도 내지 않고 물건을 들고 나가버린다. 이어서 보도되는 뉴스는 중국 전투기의 추락,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물류 시스템이 멈춰버리고, 조류 독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들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내리기 시작한 작은 눈송이들마저 사람들을 불길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들고 있었다. 휴대폰 네트워크며 인터넷이 다운되고, 전국의 응급 의료 서비스가 엉망이 되고, 눈보라를 시작으로 폭풍우가 몰려온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사람들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짓인지, 중국인들의 공격인지, 그냥 지나가 버릴 사소한 문제들인지 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기가 끊어져있고, 창 밖으로는 눈이 휘날리고, 눈 섞인 돌풍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의 비상사태통제 시스템의 90퍼센트를 한 회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사실 회사 하나만 해킹하면 이렇게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하는 일을 교란시키고, 보급선을 끊고, 대중교통을 마비시키고, 통신을 두절시키고, 민간인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겁을 주고, 산업 기지를 박살내고, 전기 공급이 차단되고, 사이버 공격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형태를 띠고 사람들의 삶을 서서히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려 두 달 가까이 지속된다. 과연 혹독한 겨울 추위와 눈 폭풍 속에 고립되어, 전기, 난방, 수도가 끊기고 통신도 모두 두절된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복도에 앉아 있는데 이상한 기시감이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기시감이라고는 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레나가 70년 전 레닌그라드 포위전 때 겪었다고 한 일을 내가 여기서 다시금 겪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이버 전쟁은 미래와는 무관하게 이미 과거의 일부인 듯했다. 마치 병에 걸린 벌레처럼, 서로에게 끝없이 고통을 가해온 인류의 본질 속으로 파고 들었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과거를 돌아보면 된다.

결혼 전 원룸에 살 때, 가끔 두꺼비 집 차단기가 내려가 정전이 되곤 했었다. 요즘 시대에 웬 정전이냐 싶겠지만, 어이없게도 강남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곤 했다. 건물 자체가 워낙 낡기도 했거니와, 오래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종종 일어났던 상황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굉장히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전기가 차단되거나, 인터넷이 끊기거나, 해킹으로 인해 개인정보가 털리거나 다들 한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를 너무도 불편하게 만드는 그것들은, 현재의 사회 기반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그런 세상에 어떻게 익숙해져 있는지 여실하게 깨닫게 만들어 주곤 한다. 하물며, 이렇게 사소한 일들도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죄다 마비가 된다면 얼마나 무시무시할까.

매튜 매서의 <사이버 스톰>은 그렇게나 현실적으로 리얼한 지옥의 풍경도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을 '극사실주의 종말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구분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타의 종말소설, SF소설과는 다르게 실제 사이버 보안 및 컴퓨터 나노 기술 등 IT 전문가인 저자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정말 '있을 법한' 일들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무시무시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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