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제 그의 집은 어디에도 없고알파마의 아파트는 수도사의 방처럼 을씨년스럽다어느 집이든 발을 디디면 그의 집이 없다는 사실만 상기될 뿐이다.

1904년 리스본, 고미술 학예사 보조로 일하는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연인과 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게 된다. 인생에서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서 분노와 절망에 그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세상을 등지고, 신을 등지고, 반발하면서 걷는다. 달리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그렇게 기이한 애도의 시간을 1년 보내다 어느 날 기록보관소에서 우연히 17세기 고문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한 신부의 일기장이었고, 사랑하는 이들이 죽은 뒤 토마스는 오직 신부가 만든 물건의 흔적을 쫓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일기 속 내용을 따라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하게 된다.

1939년 포르투갈, 시신을 다루는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에게 늦은 밤 아내 마리아가 찾아 온다. 두 사람은 에거서 크리스티의 팬으로 함께 크리스티의 책을 읽고 토론해왔다. 그날 밤 마리아는 크리스티의 소설과 복음서의 유사성에 대해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내가 돌아간 뒤 또 다른 마리아가 찾아온다. 그녀는 검은 상복 차림의 노부인으로 가방에 담아온 남편의 시신을 부검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부검을 통해서 남편이 왜 죽었는지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다고.

1981년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는 40여 년을 함께했던 아내가 죽고 나서 엄청난 상실감에 마치 유령처럼 지낸다. 동료들의 권유로 며칠 가벼운 휴가 겸 출장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한 침팬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침팬지 오도에게 자석 같은 끌림을 느끼고, 오도 역시 계속 피터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피터는 어쩐지 목구멍이 뻐근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 거액을 들려 침팬지를 사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포르투갈로 건너가 침팬지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3주 동안아니 한평생일까? ─ 쉼 없이 움직였는데, 이제 할 일이 없다. 무수한 종속절과 수십 개의 형용사와 부사가 들어가고, 기발한 접속사들이 문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는 와중에예기치 못한 막간의 촌극까지 끼어들고하이픈 없는 명사들이 난무하는 장문이 마침내, 놀랍도록 고요한 마침표와 함께 끝이 난다. 한 시간쯤, 꼭대기 층 계단참에 나가 앉아서, 지치고 조금 긴장이 풀리고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그 마침표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 문장은 무엇을 가져오려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리고 남겨진 이들에게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상실감으로 세상이 끝난 것 같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은 어찌 되었든 계속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의 이치이다. 각기 다른 시대의 세 사람은 모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죽음으로 잃고 혼자 남겨 졌다. 토마스는 연인과 아들, 아버지를 잃었고, 에우제비우는 의문의 사고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으며, 피터 역시 40년 동안 함께 했던 아내를 병으로 잃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가혹한 삶을 살아 낸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세 남자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장소를 통해 이어진다. 토마스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그를 기다리는 교회가 있다고 믿고 거기 도착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고, 에우제비우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인근에 살고 있으며, 피터는 자신의 고향이지만 두 살 때 떠나와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포르투갈로 가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슬픈 사실은 의사들이 뭐라고 하든 자연사는 없다는 점이에요. 모든 죽음은 살해로, 사랑하는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죠.

이 작품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삶의 전부였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체 왜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얀 마텔의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연한 죽음이란 이 세상에 없다. 모든 개별적인 죽음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죽음 앞에서 남겨진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여정은 이야기 자체로서도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그들의 끊임없는 고뇌와 사유를 따라다니면서 어쩐지 내가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특히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가 노부인의 남편 시신을 부검을 끝내고 나서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굉장히 기묘하고 어떻게 보면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드는 그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통해 노부인의 다소 이상한 행동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 부부가 함께한 시간과 사랑을 마치 눈으로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체감할 수 있었다. 토마스가 포르투갈에서 겪게 되는 종교적인 그것도, 피터가 챔팬지 오도와 함께 교감하면서 깨닫게 되는 놀라운 체험도 우아하면서도 아름답게 상실을 겪어내는 인간의 이야기들이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산이 없다. 그저 언덕들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믿는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상실을 겪고 슬픔을 견뎌내는 것에 대해 얀 마텔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를 뿌리는 소녀
니시 카나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케미스토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그렇다. 성장의 종착점은 죽음이다. 료처럼 바보같이 우쭐대고, 아버지처럼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그리고 미라이처럼 비참해지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죽는 것이다. 반드시 죽는다.

우리는 죽기 위해 성장하는 것이다.

얼마나 잔인한가. 어째서 성장해야 하는가.

 

자그마한 온천 마을에 사는 11살 소년 사토시. 주민의 대부분이 온천 여관을 운영하는데, 사토시의 부모 역시 중하 정도의 규모인 아카쓰키칸이라는 여관을 운영 중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 집의 딸 마나는 가장 먼저 생리를 시작하는 등 여성적인 면모로 남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해왔는데, 어느 날 전학온 고즈에 덕분에 대번에 판도가 달라진다. 고즈에는 엄마와 함께 아카쓰키칸에 왔는데, 입주 종업원이 지내는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다. 고즈에는 마치 중학생 모델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빼어난 미인이었기에, 순식간에 마나의 인기를 뛰어 넘는다. 사토시는 눈에 띄지 않는 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는데, 고즈에가 사토시네 집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주목을 받아 그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이제 막 사춘기에 발을 들이게 된 사토시는 매일 우울하다. 자신의 몸이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도 징그럽게 느껴지고, 어른 남자가 된다는 것을 야만스럽다고 생각할 만큼 싫어한다. 여러 번 바람을 피우다 엄마에게 걸리고도 여전히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아빠의 모습도 불결하고 저질로 느껴졌고, 마을에 자신이 되고 싶을 만큼 동경하는 어른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의사와는 별개로 몸이 점점 변해 어른 남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체 왜 죽기 위해 성장 당해야 하느냐고, 그냥 앞으로 지금 이 모습으로 계속 있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 사토시의 삶에 아름답지만 이상하고도 독특한 고즈에라는 소녀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된다.

 

"사토시, 고마워."

그러고 나서 고즈에가 한 말을, 나는 한마디도 빠짐없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 있지, 눈이 있어서 좋아. 코가, 입이 있어서 좋아.

우리 별에서는 그런 거 필요 없었거든. 이미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바로 그 순간에 뭔가를 볼 필요가 없던 거지. 뭔가를 느끼지 않아도 됐던 거야."

고즈에라는 캐릭터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4차원 소녀이다. 빼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보고, 뿌릴 수 있는 것은 뭐든 닥치는 대로 뿌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는데, 거기다 자신이 어떤 별에서 우주선을 타고 왔다고 말한다. 그녀의 함께 지내는 엄마는 생물학적 엄마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별에서 살던 생명체이며, 그 별에서는 누구나 나이가 들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무슨 어이없는 황당한 소리인가 싶다가도, 그녀의 말을 조금씩 듣고 있자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우리 모두 고즈에처럼 11살이었던 순수한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설정 때문에, 그녀가 겪게 되는 모든 일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행동들이 그녀에게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신기한 일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그런 그녀였기에 사토시가 거부하는 신체적인 성장과 낯선 어른의 세계 조차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너를 이루는 알갱이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이루고 있는 알갱이는 언젠가 모두 새롭게 교체되는 거지."

"교체돼?"

"지금의 너는, 완전히 새로운 너로 다시 태어나.

 

고즈에는 말한다. 자신이 뿌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전부 떨어지기 때문에 멋진 거라고. 뭐든 영원히 계속된다면 멋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니까 멋진 거라는 그녀의 말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매 순간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지금 내가 무심코 흘려 보내는 이 시간도 역시 생애 단 한 번뿐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거고, 소중한 거라는 말이다. 사토시는 깨닫는다. 고즈에 덕분에 매일 일기를 써 나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에 조용히 감동하게 된 것이다. 어제, 오늘, 내일.. 하루도 놓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날마다 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로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1살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다, UFO, 우주인까지 등장하며 엉뚱한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뭉클한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나 마음에 와 닿았던 장면은 누구나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루이의 말을 곧 대로 믿은 건 바보처럼 보였던 도노 뿐이라는 것을 사토시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도노는 누군가가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거나, 어차피 거짓말일거라고 단정 짓지 않고, 그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믿는다고 말한다. 사실 같은 건 전혀 상관 없다고, 그저 상대가 믿어 주길 바라면 믿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믿은 것이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제대로 상처입으면 된다는 거다. 믿은 게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될까 봐 처음부터 믿지 않는 건 싫다고, 전부 믿고 나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 상처 입을 거라고 말하는 그의 어눌한 말이 심장에 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할까. 왜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무조건 믿어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아마 다들 했을 것이다. 니시 가나코는 나오키 상을 수상했던 작품 <사라바>에서도 믿음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믿을 걸 누군가한테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스스로를 믿으라고 말이다. <우주를 뿌리는 소녀> <사라바>에 비해서 분량도, 분위기도 가벼운 느낌이지만 조금 더 마음을 울리는 잔상을 남겨주는 것 같다. 아름답고, 뭉클하고, 따뜻한 이 작품은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도, 그리고 아직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운 소년, 소녀들에게도 멋진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걱정, 근심, 게으름, 시기, 질투, 나태, 친일파, 자격지심, 악성댓글, 독재자, 뻔뻔함, 교만, 식탐, 성욕, 의심, 위선, 이기심, 군부세력, 불평등, 폭력, 성범죄자, 혐오, 피해의식, 적폐, 질투, 차별, 꼰대, 자기혐오를 내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거기는 뭐 넣기만 하면 씨팔 다 없어지던데.

 

 

워낙 티비 쇼프로그램은 잘 보질 않아서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가끔 뼈있는 발언을 마치 농담처럼 툭툭 던져 화제가 되곤 하는 유병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가 책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블랙코미디> 라는 농담집이다. 이 책에는 지난 3년 동안 저축하듯 모은 에세이, 우화, 아이디어 노트, 미공개 글 138편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두를 "개나 소나 책을 쓴다. 이 땅의 백만 저자들에겐 면목없는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 같은 놈까지 책을 냈으니 말이다"라는 말로 열고 있다. 사실 연예인이 책을 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반응을 한다. 좀 뜨니 책도 내는 구나. 이제 개나 소나 책을 쓴다고 나서네. 라고 말이다. 정말 아무나 글이 아닌 이름으로 책을 낼 수도 있는 시대이지만, 이 책은 그들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 싶다.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독설, 위트를 빙자한 그의 쓴소리들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차마 말로 내뱉지 못했던 일상 속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그의 짧은 글들은, 길지 않아서 오히려 더 와 닿고, 뜨끔하고, 공감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운명이 말했다. 작작 맡기라고." 단 두 문장으로 이렇게 가슴을 콕 찌를 수 있는 작가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말에 가시가 돋아서 기분이 안 좋은 줄 알고 걱정했어. 성격이 안 좋은 거였구나." 이런 문구들은 너무 웃기면서도, 괜히 내 얘기 같아서, 혹은 내가 아는 그 누구의 얘기 같아서 뜨끔했다. "대한민국에서 아들딸로 살기 힘든 이유: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함" 이라는 문구를 보는데, 요즘 한참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뉴스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렇듯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어찌 보면 마치 자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자기반성'이라는 테마와 사회의 이면을 예리하게 바라보며 눈치보지 않고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할말 다 하는 '세상' 그 자체를 읽어내는 테마가 공존하고 있다.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이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건강한 코미디란 바로 이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내용 자체와 수위는 그리 건전하다고만은 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하핫.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존재인지는,

대부분 담배꽁초 바닥에 버리고, 알바한테 반말하고, 엄마한테 짜증부리고,

이런 기억에도 남지 않을 미세먼지 같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결정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영화나 만화, 혹은 소설을 보면 주인공에게 항상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 드라마틱한 갈등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누구인지 정의해줄 수 있을 만한 그런 순간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인생에서 그런 결정적인 순간이란 아예 없거나, 모르고 지나가거나 그러지 않을까. 인생은 영화가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일상에서 매일 짓는 표정, 자주 내뱉는 말투, 누군가에게 짜증내는 상황, 나도 모르게 하는 습관들이 모여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된다는 말은 그래서 참 서글프다. 애초에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할, 정말 미세먼지 같은 순간들이 쌓여 나란 존재를 구성한다니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내 인생도 정확하게 기,,,결로 흘러가서 중요한 순간에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고, 장대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일상의 사소하거나, 중요하지 않는 순간들은 좀 더 대충, 편하게 흘려 보낼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이 책은 페이지마다 글보다 여백이 더 많고, 전체 두께도 얇은 편인데 이상하게 여러 번 들춰서 계속 읽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미 며칠 전에 다 읽어놓고, 오늘 또 뒤적거리다 눈에 들어온 페이지는 '우리 형'이라는 에피소드였다. 뭐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소한 일로 형이랑 다투고 난 뒤 형이 정말 너무 미워서 뒤통수만 봐도 짜증이 치밀고 소리만 들려도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화가 나서 머릿속으로 상상한 형의 행동 중에 실제로 형이 한 행동은 단 한가지도 없더란 말이다. 그는 생각한다. "내가 미워하는 누군가는 실재하는 누군가인지, 내 상상이 만들어낸 누군가인지" 말이다. 미움도,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가끔은 상대 그 자체보다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 자체에 빠져서 내가 그를 사랑하는 구나 착각할 때가 있고, 가끔은 상대가 너무 미워서 그에 대한 감정을 자꾸만 키워나가 점점 더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본래 화가 많은 편이라, 용기가 부족해 삼켰던 분노들을 글로 써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기백은 없고 불만만 많은 인간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피해의식과 때때로 술기운까지 곁들여진 부끄러운 글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정의롭고 도덕적인 판단으로 언제나 멋지게 자신의 소신껏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처럼 크레딧 오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인생은 계속 되니 말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 또한 고스란히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 말이다. "오해들 하는데, 내가 겁이 많아서 참는 거지 착해서 참는 게 아니야."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커는 쉬지 않고 양동이째 들이붓는 것 같은 빗줄기 속에서 지지목에 기대선 채 어둠을 응시했다. 데커는 기만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질렀다.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선택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그 나쁜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멜빈 마스. 189센티미터, 104킬로그램, 지방이라고는 없는 단단한 바윗덩이 같은 몸을 지닌 남자. 내셔널 풋볼 리그 최고의 유망주였으나,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20년 째 수감 중이다. 그리고 마흔두 번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이제 단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나타난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은 그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을 하고, 그의 형 집행이 연기된다. 에이머스 데커,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 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5개월 동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의 삶은 처참히 무너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범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와 자백을 한다. 전작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그와 관련된 사건 해결에 활약한 것을 계기로, 이번 작품에서 데커는 FBI에서 특수한 직책을 맡게 된다. 그리고 FBI 미제 수사 팀에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죽기 직전 드라마처럼 목숨을 건진 사형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데커는 순간, 과거 대학 시절 미식 축구 경기에서 멜빈 마스와 맞붙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감옥에서 20년이라니, 그것도 어쩌면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범죄 때문에. 게다가 진짜 살인범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세부 사항들을 알고 있는 다른 남자가 갑작스럽게 자백을 한 것은 데커의 가족 살인 사건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한때 풋볼 선수였으며, 가족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한참 뒤에 누군가 나타나 범죄를 고백하는 것까지 너무나 비슷한 운명의 두 사람. 데커는 운명을 전혀 믿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자백한 그 남자가 살인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마스의 경우가 완전히 같은 일을 직접 당해봤으니 말이다. 그는 FBI 미제 수사 팀에게 마스의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야겠다고 한다.

"놈들이 당신을 죽이겠다고 했잖아요."

"덕분에 희망을 얻었죠."

"빌어먹을, 제정신이에요?"

"그자들이 겁을 먹지 않았다면 왜 날 위협했겠어요?"

"당신은 겁을 먹어야 해요."

"이미 겁먹고 있어요. 미식축구 구장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겁을 먹었죠. 경찰이 된 후 순찰을 나갈 때도 그랬고요. 그렇다고 내가 내 일을 하는 걸 그 누구도 막을 순 없었어요."

매년 무죄로 밝혀져 석방되는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고한데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중 데커의 말을 빌리자면 단 한 명이라도 너무 많다. 그리고 분명히 한 명은 넘을 테고 말이다. 이것은 분명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범죄 소설, 영화의 플롯으로 자주 사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 '억울함'이라는 테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게 만든다. 하지만 데이비드 발다치의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소재자체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 전작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사고를 당했고,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가지게 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됐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뭘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어떤 기억을 찾으려고 할 때 머릿속의 영상 저장 장치를 켜면, 눈 앞에서 그 형상들이 보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마치 녹화된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보기라도 하듯이. 그런 능력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도록 만든다. 거기에 더해 데커는 그것에 숫자와 색깔이 연결됐고, 시간도 그림처럼 눈에 보이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색깔들이 불쑬 불쑥 생각 속으로 끼어들고 사람이나 사물을 색깔로 인식한다. 그러니 당연히,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사형 직전의 순간에 목숨을 건진 마스는 세계 최고의 행운아인 것일까. 여전히 살해당한 가족과 그 장면을 잊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불운을 가진 데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숨겨진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있는 전개로 이 두툼한 페이지의 끝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초반부터 꽤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거듭되는 반전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너무나 비슷한 운명을 가졌지만 완전히 다른 성향의 흑인과 백인, 두 남자가 굉장히 어렵게, 천천히 우정을 나누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더욱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을 선사한다. 데커와 마스가 결국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그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매끈하게 잘 빠진 스릴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다니, 진정 완벽한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마자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가 둘이면 모든 것이 더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장보기, 목욕시키기, 병원 가기, 집안일 하기 같은 것들. 고지서가 쌓여갔다. 미리암은 침울해졌다. 공원에 나가는 일이 끔찍하게 싫어졌다. 겨울날 긴 하루하루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밀라의 투정에 진절머리가 났고 아당이 첫 옹알이를 해도 무관심했다. 혼자 걷고 싶은 욕구가 하루하루 조금씩 더 커가는 것이 느껴졌고, 거리로 나가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고 싶었다. 때로 그녀는 속으로 '얘들이 날 산 채로 잡아먹는구나.' 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리 10구 오트빌 가의 근사한 아파트. 구급대원들과 경찰들, 그리고 이웃 사람들이 건물 아래 모여 있다. 아기는 몇 초 만에 죽었고, 여자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몸부림치다 죽는다. 그렇게 이 작품은 제목과는 달리 그다지 달콤하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모에 의해 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가 쇼크 상태로 지르는 비명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다. 완벽해 보였던 보모의 손에 죽은 두 아이, 그녀는 왜 그토록 아꼈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이들 가족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리암은 밀라를 임신했을 때 법학 공부를 끝내가고 있었다. 약하고 짜증 많고 끊임없이 울어대는 아기였던 밀라가 겨우 한 살 반이 되었을 때, 그녀는 또 임신했다. 남편인 폴은 유명한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아티스트들의 변덕과 그들의 스케줄에 붙들려 밤낮을 보내고 있었다. 둘째 아당이 태어나자 그녀는 점점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힘겨워졌다. 저녁이면 문가에서 애타게 남편을 기다렸고, 그에게 한 시간씩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밤이면 폴은 하루 종일 일한 뒤 마땅히 푹 쉬어야 할 자의 깊은 잠을 잤고, 원망과 서운함이 미리암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지쳐갈 무렵, 그녀는 우연히 법학과 동창을 만나게 되고, 다시 변호사로서 일을 하게 된다. 이제 문제는 아이들을 맡길 보모를 구하는 거였고, 그들은 루이즈라는 믿음직스러운 보모를 구하게 된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루이즈가 길을 걸을 때면 음산한 이 후렴구가 그녀를 따라다닌다... 더 이상 아무것도 그녀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이제 사랑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인정해야 한다. 그녀는 심장에 담긴 모든 애정을 다 소진했고, 그녀의 손은 더 이상 아무것도 스치지 않는다.

'이러니 벌을 받을 거야. 사랑할 능력이 없으니 벌을 받을 거야.' 라고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소리를 듣는다.

루이즈의 남편은 죽었고, 스무 살이 된 딸은 독립해서 그녀는 현재 혼자 지내고 있다. 그녀는 예전 고용인들의 평가 또한 완벽한 보모였다. 미리암과 폴의 일상 속에 루이즈가 함께 하고부터 숨 막히고 비좁던 아파트는 평온하고 밝은 공간으로 바뀐다. 그녀가 오고 나서 몇 주 후, 뒤죽박죽이엇던 아파트는 완벽한 중산층 실내 공간으로 바뀐다. 루이즈가 오고 몇 주 후 아당은 걸음마를 배우고, 밤마다 울어대던 아이가 아침까지 새근새근 평온한 잠을 잔다. 조금 사납고 약은 아이인 밀라 또한 루이즈는 서서히 길들인다. 아이들에겐 친절하고, 요리부터 청소까지 모든 일에 철두철미한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보모였다.

 

이야기는 루이즈가 미리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그녀가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는 고독의 시간이 교차 진행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루이즈가 밀라와 아당의 보모로 지내는 시간이다. 그녀는 부모인 미리암과 폴을 대신해 진짜 아이들의 부모처럼, 그들 집안을 지탱해주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녀의 많은 행동과 생각들이 보여지지만, 사실 루이즈라는 캐릭터는 안개처럼 모호하게 보여진다. 극중 누구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가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말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살인의 과정 자체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저 그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그저 조용히 들여다볼 뿐이다. 강요 받는 모성, 경력 단절 여성, 산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 계급적 소외를 겪는 빈곤층의 이야기는 한국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더욱 공감되고, 이해되는 대목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여성이라면, 특히나 어머니라면 이 작품이 다가오게 되는 의미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다. 여성 작가로는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12번째 수상이라고 하는데, 그럴 만큼 대단한 작품을 만난 것 같다는 기분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두렵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혼자라는 고독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만큼 내 곁의 가족을 돌아보게 만드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