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산다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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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두살 기드온 크루는 눈 앞에서 아버지가 인질을 앞세워 농성을 하다 경찰에게 사살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8년 뒤, 그의 어머니는 죽어가는 병상에서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실제로 했던 프로젝트의 내용과 그로 인해 벌였던 인질극이 그의 '실수'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은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음모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에다 어머니는 유언으로 그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해달라고 말한다.

"복수해다오."

"뭐라고요?"

"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해. 터커 그 인간을 박살 내다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놈에게 똑똑히 알려줘 그놈이 그렇게 된 이유를. 누가 그랬는지를."

"맙소사,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당황한 기드온은 황망히 주위를 둘러보며 숨죽여 속삭였다. "엄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요?"

다시 10년이 흐르고, 기드온은 눈부신 변장술과 남다른 두뇌 회전력으로 아버지의 결백을 밝혀내어 멋지게 복수에 성공한다. 엄청난 복수극이 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시작 후 70여페이지 만에 간단히 마무리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아버지의 복수극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기드온은 복수극으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정부의 협력업체로부터 첩보원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다. 최첨단 신무기 설계도를 미국으로 가져오고 있는 중국인 과학자의 뒤를 밟아, 가능한 빨리 설계도를 빼돌리라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그것도 중국인 과학자가 공항에 도착하기 단 네 시간 전에 받은 임무이다. 당연히 기드온은 그 임무를 거절한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할 말도 안 되는 미션이라며, 자신은 이런 일을 해본 적도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공교롭게도 이 일의 적임자가 기드온 밖에 없다며 그의 화려했던 과거 이력에 대해 샅샅이 밝히고, 마지막으로 그가 시한부 신세라는 병원 자료를 내민다. 기드온 자신도 몰랐던 병명을 밝히면서. 아버지의 복수극을 벌이며 칼에 맞았던 상처를 치료한 병원에서 우연히 검사 과정에서 알아낸 병명은 동적맥기형으로 앞으로 길어야 1년을 살 수 있는, 누구도 손쓸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말이다.

남은 1년을 조국을 위해 일하고, 이번 일만 끝내면 엄청난 돈을 가지고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으리라는 그들의 제안은 유혹적이었고, 기드온은 얼결에 임무를 맡게 된다. 사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는 것만큼 강한 무기가 또 어디있겠는가. 애초에 천재적인 실력과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기드온이었지만, 위험천만한 임무에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만큼 위험을 불사하게 만드는 동기도 없을 테니 그에겐 지금 세상 그 어떤 것도 무서울 게 없다. 게다가 이건 FBI, CIA, 정부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세계 경제 구도와 인류 전체의 명운을 바꿀만한 미션이 아닌가. 그렇게 음모는 점점 복잡해지고, 얽혀 있는 관련 인물들은 점점 늘어나고, 남아 있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미션이 거대해질 수록 기드온의 활약은 점점 더 화려하고 멋들어 진다. 속도감은 그 어떤 작품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시원시원하고, 스토리는 긴장감 넘치고, 캐릭터 또한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괴짜 매력남이고, 이 작품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가지고 있다.

노딩 크레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놈은 애써 감추었지만, 기드온은 분명 놈의 두려움을 감지했다. 놀랄 일은 아니다. 놈도 인간이라는 증거일 뿐. 반면 기드온 자신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여기가 막바지다. 이 굴뚝에서 살아 나갈 방법은 없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인데.

그 생각이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노딩 크레인이 절대 알지 못하는 비밀무기를 손에 쥔 셈이었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펜더개스트' 시리즈의 콤비 작가 더글러스 프레스턴 & 링컨 차일드가 만들어낸 새로운 주인공 기드온 크루는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또 다른 임무를 부여 받는다. 과연 이 시리즈가 또 이어져서 그에게 남아 있는 시한부 인생 또한 그의 또 다른 활약을 볼 수 있을 지도 기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그들의 작품 목록에 Gideon's Sword 이후에 Gideon's Corpse 라는 작품도 있었으니 아마도 다음 임무까지는 이어질 테고, 그의 새로운 활약도 매우 궁금해진다.

사실 펜더개스트라는 캐릭터는 스릴러 역사상 정말 보다 보다 처음 보는 말도 안 되는 인물이었다. 외모는 순정만화 뺨치고, 키도 크고 날렵, 우아한데 강인한 체력까지 갖췄으며 부자에 매너는 기본인데다 변장과 임기응변에 능하고 상대를 끄는 능력마저 겸비한데다, 뛰어난 통찰력과 박식함까지 갖추었으니,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가 아닌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기드온 크루 역시 조금 색깔만 달리 했을 뿐 펜더개스트 못지 않다. 그래서 그가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 저리 빠져 나가고, 목적을 이루는 것을 보고 있자면 개연성이 조금 떨어진다거나,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더글러스 프레스턴 & 링컨 차일드 콤비 만의 매력인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나치게 완벽해서 현실에서 있을 법하진 않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이끌고 갈 수는 없다 싶은 만큼의 캐릭터를 우리가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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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그라운드
S.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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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뉴스에서 지구 멸망의 날을 대비한 '초호화 지하 벙커 시설'이 화제라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무려 100억원대 규모의 이 건축물은 핵전쟁, 자연 재해 등 인류 멸망 상황을 대비한 지하 벙커 시설로 약 200명의 인원이 함께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용 거주 공간은 침실 및 거실 욕실 주방 시설이 있는 아파트먼트 형태로 설계되었고, 자체 공기 정화 시스템 및 의료 시설, 발전기, 컴퓨터가 비치된 사무실 등이 있어 장시간 생활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완벽한 공간처럼 보였다.

 

미사일 격납고를 개조한 지하 14층 아파트도 있었는데, 역시나 비상 발전 시설과 최첨단 보안 장치까지 갖추었고, 밖에 나가지 않고 취미 생활도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최고 32억원의 비싼 가격에도 금새 동이 났다고 했다. 아마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초호화 지하 벙커 '성소'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하 14층 아파트를 모델로 이야기를 구상했으리라. 극중 등장하는 벙커는 8층짜리이지만, 구조와 기능이 거의 흡사하니 말이다.

고급 아파트를 지하에 파묻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정말로 그런 거니까.

더 자세히.

알았어...........밖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여. 그냥 해치 입구만 있는데 꼭 금고 문처럼 생겼어(시시해). 그리고 풍력발전용 터빈이 있고 창문 대신 LED화면이 있어(시시해). 잠수함 문짝 같은 문이랑(완전 시시해), 생체 인식 잠금 장치랑(이건 근사하고). 고급스러운 장식처럼 꾸며놨지......진짜 편집광적인 보안 장치야. 누가 여길 부수고 들어온다고 그러는지. 문명으로부터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이거든. 여긴 메인 주 한복판이야. 숲하고 들판밖에 없어. 무슨 중간계나 그런 데 와 있는 것 같아.

 

, 여기 질병, 지진, 핵폭발 등 어떤 재앙이 일어나도 안전한 지하 벙커가 등장한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모습을 보고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누구도 초호화 지하 벙커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말하지는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인간은 욕망의 화신이고, 배려보다는 개인주의를 지향하며, 만약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라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어떤 일도 불사하는 존재들이니, 애초에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면 그들간의 불화야 어느 정도 예상된 바가 아니겠는가.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실제 존재하는 지하 벙커의 설계도와 시설이다.

아래 수영장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그곳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미국까지 빠르게 퍼지자, 일부 상류층 사람들은 초호화 생종형 지하 벙커인 성소로 몰려든다. 그들은 거액으로 성소의 주거권을 구매했기에, 함께 이동할 가족 외에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따라서 가족과 함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황야에 위치한 그곳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세상에선 그들의 거취를 알 수 없게 된다. 과연 이것은 그들에게 안전일까. 위협일까.

 

이야기는 6명의 등장인물 각자의 시점에서 교차되어 진행된다. 게임에 미쳐있는 한국인 소년 재이, 종교를 맹신하는 부모를 둔 소녀 지나,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얼결에 성소에 오게된 베이비시터 케이트, 편집광에 독설가인 아내를 애증하는 제임스,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인 전직 발레리나 트루니, 그리고 성소의 설계와 건설에 참여했던 프로젝트 매니저 윌이다. 8층짜리 지하 벙커에는 2층부터 5층까지 총 다섯 가족이 입실을 했고, 그 외에는 성소에 투자하고, 설립한 담당자 그레그가, 나머지 하나는 아픈 아내를 두고 그레그의 부탁으로 잠시 점검 차 들른 윌이 사용하고 있다. 그밖에 의료실과 수영장, 체육실, 냉장고 저장실, 정수시설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망각의 영혼 때문에 공기가 더 탁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삭막한 공허함이 남았다....시체들은 쌓여만 가고, 이제는 지금 이게 진짜로 일어난 일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것은 한 편의 발레일지도 모른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햄릿>이나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처럼,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는 주지육림에서 무용수들은 몸부림치며 뛰어다니다가 결국 추락하고, 페인트가 튄 타이즈와 가는 팔다리의 집합체가 되어 흡족하게 쌓여가는. 그러나 머리가 깨진 소년에게는 어떠한 흡족함도 없고, 실수로 마지막 숨을 놓친 늙은 여자에게는 어떠한 미학적 아름다움도 없다.

 

각자의 개성과 집안 사정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갑자기 함께 살게 되었으므로, 당연히 여기저기 삐걱대는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어찌되었든 이곳은 위험한 바깥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라고들 여기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성소의 잠긴 문을 열 수 없게 되고, 음식과 물마저 오염되며,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벌어지는 살인 사건들. 이제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비단 바깥에 있는 바이러스 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성소는 결코 안전하지 못한 장소로 돌변한다.

올초 아직 출간도 되지 않은 신인작가의 소설을 할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나서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는 새러 로츠와 편집자이면서 소설가인 루이스 그린버그가 공동 필명 'S. L. 그레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그들의 다섯 번째 소설이 그것이다. 이 작품 역시 지금 당장 영화화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감각적인 장면 전개와 밀도 있는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실제로 미국에선 테러 공포로 인해 지하벙커가 인기가 있어 최상위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집 앞마당 지하 5미터 지점에 설치하는 벙커가 보급되고 있다고 하니, 이 작품 속 상황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 아닌가. 이 벙커는 집안에서 바로 이동이 가능하며, 핵폭발은 물론 생물학전, 화학전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공간으로 삼천 만원에서 오천 만원의 가격으로 2011년부터 보급되고 있다고 하는데, 굳이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솔깃해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이야기가 더 와 닿고, 오싹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은 실재 상황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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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정의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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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장르 중에 SF, 그리고 스페이스 오페라는 어렵다. 그래서 추리, 스릴러 등의 장르 분야보다도 더 소수의 독자들만 읽는다. 왜냐하면 과학의 발달된 미래를 그리고 있고, 황당무계한 과학적 공상은 재미를 보장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구축한 세계의 설정들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지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 작품들은 시작부터 처음 듣는 낯선 용어들이 잔뜩 등장해 겁에 질리게 만들고, 인물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완전히 새롭게 구축되어 있는 특정 세계관을 이해하도록 거의 강요한다.

앤 레키의 데뷔작인 <사소한 정의> 역시 첫 페이지부터 행성, 함선, 보조체, 닐트인, 라드츠 우주, 저체온 세트, 케프, 병력 수송선.... 등등 낯선 단어들로 빼곡하다. 평범한 배경의 소설만 읽어왔던 당신이라면, 내용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단어들을, 문장들을 머릿속으로 읽고 흘려 보내면 된다. 그렇게 읽더라도 어느 순간 극중 화자에게 감정 이입해 광활한 우주를 체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SF나 스페이스 오페라를 처음 접한 독자들에게도 매혹적인 작품이라는 것.

세이바든을 눈 구덩이에서 끌어내려고 가뜩이나 빠듯한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대체 무슨 소용일까? 자기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세이바든은 또 어디 가서 얻어맞거나 케프를 할 테고, 그 지저분한 술집 같은 데에 제 발로 기어들어가 이번엔 정말로 죽어 버릴 텐데. 그게 세이바든이 원하는 바라면 내가 막을 권리는 없다. 그러나 죽고 싶다면 왜 남들처럼 자신의 뜻을 당국에 알린 다음 의사에게 가는 깔끔한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고, 인간인 체하며 지내온 지난 19년도 생각만큼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먼 미래 우주. 인간의 몸으로 무려 19년 동안이나 살아왔지만, 여전히 인간들이 하는 행동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하는, 이 작품의 일인칭 화자는 바로 인공지능이다. 당연히 AI는 실체, 즉 몸이 없기에 합병된 지역 사람들의 죽은 신체에서 만들어져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브렉은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온 보조체로, 스스로를 그 함선의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처럼 행동하며 살고 있기도 하다. 라드츠 제국은 전 우주 인류를 병합하려 했던 그 날 이후, 19년이 지났고 닐트 행성에 홀로 나타난 브렉은 과거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대위, 세이바든을 우연히 구해준다. 브렉은 현재 라드츠 제국의 지배자이자 자신의 창조자이기도 한 아난더 미아나이에게 복수를 하려고 무기를 찾아 다니고 있는 중이다. 아난더 미아나이는 3천 년 동안 라드츠 우주를 다스린 절대군주로 수천 개의 몸을 가지고 있어 병합 현장마다 존재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라드츠의 지배자에게 복수를 꿈꾸고 있는 현재와, 그녀가 행성 궤도를 도는 병력 수송선이던 19년 전의 과거가 교차되어 진행되고 있다. 폭발의 유일한 생존자로 천 년 동안 냉동되어 있다가 깨어난 세이바든 대위의 현재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오만한 확신을 하던 과거와 대립하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그녀를 구한 브렉은 세이바든을 돌봐주긴 하지만 연민하지는 않는다. 브렉은 창조주인 라드츠 군주의 명령에 따르고 충성해야만 하지만, 일련의 사건에 의해 그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 그래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하게 된 상태에 있다. 물론 이것은 그저 인공지능의 능력상 오류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자아'처럼 느껴진다는 데 방점이 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인간과 고장난 프로그램이라는 유사성. 인공지능에 의해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는 인간과 그런 인간을 뛰어 넘는 인공 지능의 자아와 인간성이라는 아이러니.

"브렉은," 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단에서 내려와 성큼성큼 걸어서 지나치던 미아나이가 끼어들었다. "슬픔으로 미쳐버린 인공지능의 마지막 남은 조각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일 것이다. 세상에, 슬픔으로 미쳐버린 인공지능이라니... 작가는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설정을 했을까. 감탄스럽기 그지 없다. 브렉은 감정이 없으면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일조차도 끝없이 이어지는 하찮은 사항들을 비교해야 하는, 몹시 괴로운 일이 된다며, 오히려 감정을 가지고 처리하는 편이 훨씬 쉽다며 그것을 논리적인 필요에 의한 실용성으로 가볍게 정리하고 있지만, 극중 가장 열렬하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렇게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과 공존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3인칭 대명사를 모두 '그녀'로 통일한 부분인데, 사실 그래서 초반에는 읽으며 인물들이 그인지, 그녀인지 헷갈려 의아해하기도 했다. 라드츠 제국에서 쓰는 언어는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다는 설정 때문인데, 남성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여성 대명사를 사용할 때의 문맥상 느껴지는 것은 소박한 충격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책 전반에 등장하고 잇는 여성 대명사의 퍼레이드는 스토리를 해석하는데 다소의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행간의 여백을 생각지도 못하는 것들로 채워주어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은 덧없고, 생각은 일어나는 즉시 휘발된다. 생각이 행동을, 물질적인 형태를 낳지 않는다면. 희망이나 의도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선택을 하도록 등을 떠밀고, 어떤 행위를 이끌어내는 대의나 명분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게 아무리 하찮은 행동이더라도 말이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생각은, 아무것도 아니라기보다는 비겁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인공지능일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만나 성사된 세기의 대결, 즉 인공지능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 대결 덕분에 막연했던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의 실체를 목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인간이 잘 살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 언젠가는 인간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제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말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에 통과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인공지능의 고독한 심정을 묘사한 A4 3장 분량의 단편 소설인데, 실재로 읽어보니 사실 그다지 흠잡을 만한 부분이 없는 작품이었다. 물론 수많은 패턴을 분석하고 이야기 구조를 종합해서 만들어낸 글이겠지만, 감성을 건드리는 문장까지 인공지능이 썼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기술이 아닌 예술은 인간이라는 존재만 할 수 있는 영역인 줄 알았는데, 기계에게 감성 마저 생긴다면 이제 멀지 않은 미래에는 정말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순간도 오게 되는 것이 멀지 않았다. 이 짧은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인공 지능에게 자아라는 게 있는 듯한 기분이 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최근에 국내에 내한했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공지능은 지능은 획득했지만 자신의 개인성 즉 '자아'를 가지지는 못했다" "지능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 않고, 더 중요한 건 자아로서의 인식"이라고 말하며, "로봇이 '나는 컴퓨터다, 나는 소프트웨어다'라고 인식하는 단계부터가 핵심"이라며 "SF적 얘기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인공지능에게 자아와 감정을 부여한 기가 막힌 소설이 출간되었다. 바로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이다. 얼마나 놀라운지, 기가 막힌 지는 직접 읽어 보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앤 레키는 2005년에 지역 글쓰기 모임에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바로 그녀의 스승인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 <> <블러드 차일드>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는 거다. 엄청난 스승과 그만큼 더 뛰어난 제자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다니, SF 장르의 팬들에게는 올해가 굉장한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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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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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그 모든 것을 확실히 이해하곤 하는 경험은 아마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젊은 법학 교수 안토니오 얌마라가 우연히 만나 한때 시간을 같이 보내었던 남자 리카르도 라베르데에 대해 기억하고 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일을 경험했던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의 의미를 나중에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현재, 당시에는 없었던 이해력에 기반해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현재, 그 대화를 되새기고 있는 나는 당시 내가 그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우리가 현재 순간에 대한 최악의 심판관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사실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인데, 내가 방금 전에 쓴 이 문장도 이제는 기억이 되고, 독자 여러분이 방금 전에 읽은 이 단어도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얌마라가 리카르도를 처음 만난 것은 스물여섯 살 생일을 맞이하기 직전의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어느 날이었다. 얌마라는 이년 전에 변호사 자격증을 받았으며, 실제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은 아주 적었지만, 이론적 세계에 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던 (혹은 그렇다고 믿었던) 젊은 대학교수이기도 했다. 그와 짧은 우정 (혹은 그 비슷한 관계)을 맺고, 그가 거리에서 정체 모를 괴한에게 살해당할 당시에 함께 있었던 탓에 자신도 역시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하고,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사건에 대해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스테리한 이력을 지닌 리카르도의 과거를 밝혀내는 일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리카르도의 삶을 추적하던 어느 날, 그의 딸에게서 연락이 온다. 당신은 아빠와 함께 며칠을 보냈으니까, 당신이 아빠의 마지막 며칠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리카르도의 딸 마야를 만난 얌마라는 자신이 리카르도 라베르데에 관해 알고 있던 모든 것과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 그리고 기억하고 있던 모든 것과 잊어버렸다고 두려워하던 것, 리카르도가 자신에게 들려준 모든 것과 그가 죽은 뒤에 자신이 조사한 모든 것을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수많은 서신과 기록을 살펴보게 되고, 그녀와 함께 리카르도의 삶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그를 점차 이해하게 된다.

미국의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죽어가죠. 그게 가장 쉬워요. 가족들 가운데 그런 아둔패기가 있다는 것 때문에 느끼는 수치심, 굴욕감과 싸우는 것보다 더 쉬운 거라고요.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가짜 고아가 수백 명인데, 나는 그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에요. 그게 바로 콜롬비아가 지닌 좋은 점인데요, 누구든 자신의 운명을 결코 혼자 떠맡지는 않죠.

시시한 칼부림과 아무데나 마구잡이로 쏴대는 총질, 싸구려 장사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 등등... 각종 뉴스 채널과 신문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으로 전달되는 이미지들 덕분에 사람들은 폭력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다. 오죽하면 범죄를 이 나라가 지닌 일종의 특이성, 혹은 시대가 자신들에게 남겨준 유산이라고 체념하고 애석해하며 살았을까.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의 절정을 살다간 이들의 상처와 그 시대가 남긴 것들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은 모두 시대의 희생양이다. 역사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던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는 어둡고 부패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콜롬비아 문학을 대표하는 신진 작가로, 이 작품을 통해 수많은 상을 받으며 세계 비평계의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현대사와 그러한 공포의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운명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직조한 작품으로, 의문에 휩싸인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콜롬비아 암흑기의 잔상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콜롬비아의 80, 90년대처럼 폭력의 시대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상황들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 세계가 낯설었지만, 문학을 통한 간접 경험만으로도 공포가 느껴져서 이 작품의 묵직함을 어느 정도는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나 등장 인물들이 역사 속 한 개인의 삶을 추적하면서 각자의 기억을 통해 그것을 구축한다는 점이 매혹적이었다. 삶이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는 마르케스의 말처럼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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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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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안도는 잠시, 병원에서 눈을 뜬 오기는 자신이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신 불구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내와 짧은 여행을 떠나려던 차에 벌어진 교통사고로 아내는 죽고 오기만 겨우 살아 남았다.

어떻게 삶은 한 순간에 뒤 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릴까.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삶이 한 순간 달라져버린 그날 이후를 그리고 있다. 살면서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풍경 속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이란 세상에 없다. 평온해 보이던 그의 일상에 스며있던 불길한 그것을 자신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묵묵히 슬픔을 끌어 올리는 장모를 보면 오기는 함께 울고 싶어졌다. 턱을 움직여 소리 낼 수 있다면 같이 울었을 것이다. 제 슬픔을 장모에게 전달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아내는 죽고 자신이 살아남은 일을 사과하고 싶었다. 함께 아내에 대해 말할 수 없어 미안했다. 가슴속에서 통증이 일었다. 뜨겁게 끓었고 토할 것처럼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그 때문에 오기는 제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흐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침이었다. 오기의 턱이 조금 움직였고 마른 입이 벌어졌고 그리로 슬픔 대신 침이 흘러내렸다. 오기는 계속 침을 흘렸다. 벌어진 턱을 제 힘으로 아물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사고 전 오기는 유명한 교수였고, 정원을 갖춘 타운하우스에서 갈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죽었고, 어머니는 자신이 어린 시절 자살했으며, 아버지 또한 결혼하기 3년 전 돌아가셨으니, 그에게 남아 있는 가족이란 말수가 적어 속을 알 수 없는 장모 한 사람뿐이었다. 장모는 하루에 한 번씩 들러 오기를 염려하는 표정으로 보았고, 오기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자 입주 간병인도 구해주었다. 장모는 정체 모를 종교 모임의 목사님과 기도원 사람들을 집으로 물러 기도와 찬송을 들려주며 오기를 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기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꾸준한 재활이었지만, 물론 그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간병인은 장모가 없을 때 게을렀으며, 오기를 함부로 대했고, 철없고 무례한 젊은 아들을 데려와 술을 마시게 하는 등 오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다 간병인이 반지를 훔친 걸 계기로 그녀를 내쫓고, 당분간 간병비를 줄여야겠다며 장모가 직접 오기의 간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장모는 점점 더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오기를 찾아온 동료들에게 무례한 언사를 한다거나, 오기의 재활훈련을 못하게 한다거나,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고, 인부들을 불러 좁은 정원에 엄청나게 크고 깊은 구덩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떤 가정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얼마 후 비슷한 일이 끝없이 반복될 것 같았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 시야를 가로막은 커다란 앞차가 구멍처럼 보였다. 호흡하기 힘들어졌고 가슴의 압박감이 심해졌다. 어지럽고 탈진할 것처럼 의식이 흐려졌다. 오기는 삶에 애착이 심했지만, 그 순간의 무력감 역시 오기의 것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 아내가 쓰던 '한 인간에 대한 고발문'이 유일하게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아내는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속물이 되는지, 그 관찰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극중에서 그 고발문의 내용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전개되는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 대학 후배 제이와의 불륜을 끊임없이 의심하던 아내,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단점을 그대로 닮아가며 아내에게 훈계하던 오기의 모습 등 그들 부부의 관계는 결코 '행복'이라는 모습과 닮아 있지 않았다. 그저 오기 자신만 자각하지 못했을 뿐. 아내가 알고 있던 걸 장모도 이미 알고 있었을까. 영국식 정원을 만들겠다며 정원 만들기에 몰두하던 아내의 공간은 그녀의 죽음 이후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황폐한 곳으로 바뀌어 버린다.

남겨진 오기의 삶 역시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덩굴식물과도 같이 서서히 변해버리고 만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에 대해서 우리는 대부분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삶을 돌아보게 마련이니 말이다. 특별한 일 없이 매일 계속되던 일상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엉망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게 삶이다. 누구나 상상해본 적도 없는 구멍 속으로 단숨에 끌려갈 수도 있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섬뜩함과 그로테스크함은 빛을 발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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