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
S. J. 왓슨 지음, 이나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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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때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 엄청나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막 피씨 통신이 활성화 되었던 그 시절, 그러니까 영화 '접속'에서와 같은 그런 만남을 꿈꾸던 이들이 너도 나도 온라인을 통해서 새로운 누군가를 찾아 헤매었다. 연애에 서툰 이들도, 연애에 닳고 닳았던 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왜냐하면 온라인 최대의 장점인 '익명성' 때문에 그들은 상대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지 않아도 되니, 그 순간 자신이 되고 싶었던 누군가로 자신을 마음껏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달콤한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익명성'이라는 것은 반대로 어마 무시한 무기가 되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온라인 데이트의 무시무시한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작가가 S. J. 왓슨이기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그가 다시 온 것 같다. 불빛에서 멀찍이 서 있다. 내 창문을 지켜보면서.

거기에 있지만, 동시에 없다. 그림자를 똑바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불빛이 어른거려서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내 두뇌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 무작위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려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다른 데로 시선을 피하려는데, 그 모습이 또렷해지는 것 같다. 자신을 현실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S. J. 왓슨의 데뷔작 <내가 잠들기 전에>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기억상실이라는 다소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지만, 페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었던 굉장한 서스펜스가 있었고, 극중 화자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밖에 없도록 그려진 심리 묘사 또한 굉장했으니 말이다. 이번 작품은 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한 여자가 동생을 살인 사건으로 잃은 뒤 진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온라인 데이트에 발을 담그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때 예술 사진작가로 유명했던 줄리아는 현재 외과 의사인 남편과 무난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차에 여동생 케이트가 미혼모로 낳은 아들을 입양해서 기르며, 소일거리로 가족 사진을 촬영하며 평범해 보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파리의 골목에서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고 살인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동생의 친한 친구였던 애나를 통해 케이트의 남자 친구가 한 명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정식 남자친구도 아니었고, 온라인을 통해서 남자들과 만나 가벼운 만남을 즐기며 데이트하고 섹스를 즐겼다는 것이다. 케이트를 살해한 범인은 단서 조차 없었기에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줄리아는 케이트가 온라인으로 만났던 남자들 중에 범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케이트가 이용했던 데이트 사이트에 접속하고, 과거에 그녀를 알았을 것 같은 남자들을 찾아 나서다, 한 남자와 가까워지게 되는데,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급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이후의 스토리는 동생의 죽음을 향한 죄책감이 살인범을 찾아내겠다는 편집증으로 번져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하는 언니의 여정을 그린 미스터리 물이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의 생각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쩌면 다소 과격하다고 표현해도 될 것만 같은 온라인 데이트의 극단적인 폐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너무도 현실적이라 더욱 섬뜩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무시무시하다.

애나는 잠시 입을 다문다.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만큼의 행복을 견딜 수 있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재고 있다. "있잖아요. 이상하긴 하지만 모든 게 케이트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 일도 그렇고. 그 일 때문에 삶은 살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연습하는 게 아니라."

"그렇죠." 진부하지만 사실이기에 클리셰가 되는 것이다. "맞아요."

줄리아는 애초에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서 만난 그와 얼굴을 마주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속이고, 생략한다. 그렇게 시작한 거짓말이 쌓여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그녀는 어느 순간 남들이 보듯 스스로를 바라보기에 이른다. 이건 내가 아니라고,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이 만남을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그를 만나기로 한 뒤, 유리처럼 단단해서 도무지 바꿀 수 없던 자신의 미래마저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 잡힌다. 그렇게 점점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깊이 빠져 들수록, 그녀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이야기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는 그녀의 현재가 주요 플롯으로 자리를 잡고, 과거 예술 작가이던 그 시절 만났던 남자 마커스에 대한 비밀스러운 기억과 알콜 중독으로 인해 치료받은 적이 있는 그녀의 상태에 대한 모호함이 곁들어져 현재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S. J. 왓슨 특유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역시나 감탄스럽고, 단순한 플롯 임에도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지는 세밀한 심리 묘사 또한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지만, 동시에 없는, 그런 숨겨진 비밀과 은밀한 욕망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순간 이야기는 폭발한다. 역시 심리 스릴러 분야의 독보적인 작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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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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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작품은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소년이 온다> 까지 읽었으나, 정작 맨 부커상 수상으로 화제가 된 <채식주의자>는 이제야 겨우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채식주의자'라는 제목부터가 나에게 다소의 거부감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들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온갖 이미지로 점철된 이 작품은 과연 놀라울 만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 먹어?"

아이를 넷쯤 낳아 기른 중년의 여자처럼 방심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내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삭아삭 소리를 내어 오랫동안 김칫대를 씹었다.

-'채식주의자' 중에서-

'채식주의자'에서 올해로 결혼 오 년 차에 접어드는 남자는, 아내인 영혜가 극도로 평범한 여자였기 때문에 그녀를 선택했었다고 추억한다.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던 그들의 일상은, 어느 날 새벽 아내가 잠옷바람으로 부엌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후로 완전히 달라진다. 꼼짝 않고 서서 냉장고를 마주보고 있던 아내는 멍하니 서서 꿈을 꿨다는 소리만 반복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육식을 멀리하고 오로지 채식만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말라갔으며, 잠도 거의 자지 않았기에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남자는 처가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아내를 말려보려고 하지만, 언니 인혜의 집들이 자리에서 장인이 강제로 그녀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고 하면서, 아내는 손목을 긋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몽고반점'에서 비디오 아티스트인 남자는 어느 날 일 년여의 고갈상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만한 궁극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것은 무심코 아내가 아들을 목욕시키며 몽고반점 얘기를 꺼내면서, 처제인 영혜는 스무 살까지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었다고 말을 하면서부터이다. 여인의 엉덩이 가운데에서 푸른 꽃이 열리는 장면이 그 순간 그는 충격과도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백일몽처럼 자신이 그리는 이미지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궁리하다, 처제인 영혜에게 자신의 작품에서 모델이 되어 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고 영혜와 비디오작품을 찍게 된다. 벌거벗은 영혜의 몸에 바디페인팅으로 꽃들을 그려놓고 비디오로 찍고, 후배에게 남자 모델을 제안해 남녀의 교합 장면을 찍으려다 실패한 뒤로,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리고 직접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그들의 모습을 촬영한 테이프를 보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인혜는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자신의 동생을 범한 남편을 용서할 수 없고, 그들을 위해 정신병원에 연락한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몽고반점' 중에서-

'나무 불꽃'에서 인혜는 삼 년여 전 동생인 영혜가 갑작스럽게 채식을 시작한 뒤로 벌어진 일들을 떠올려본다. 현재 영혜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남편은 병원에서 정상으로 판명되어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수개월의 소송과 지루한 구명운동 끝에 풀려나고는 잠적해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는 더 이상 둘째 딸을 보려 하지 않았고, 짐승만도 못한 사위를 연상시키는 큰딸과도 연락을 끊었으며, 막내 동생 내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영혜를 버릴 수 없었기에, 입원비를 대고, 그녀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가게를 꾸려나갔으며, 병원에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동생 곁에서 삶을 겨우 버텨나간다. 영혜는 갈수록 육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섭취하는 걸 거부하려 들고, 자신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 되고 싶다며 점점 죽어간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 이렇게 세 작품은 2002년 겨울부터 2005년 여름 사이에 씌어진 연작 중편소설이다. 주인공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영혜이지만, 각각 이야기의 화자는 모두 영혜가 아니다. 1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이, 2 '몽고반점'에서는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가, 3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화자가 되어 그들 시점으로 영혜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어가는 개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를 그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작중 화자는 서로 다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이, '몽고반점'에서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인 영혜의 형부가, '나무 불꽃'에서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가 각각 화자로 등장한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나무 불꽃' 중에서-

영혜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세 인물, 남편과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이야기는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누구나 동일한 장면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같은 상황도 다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 역시 그렇다. 어린 딸의 다리를 물었던 개를 죽이는 아버지의 목적은 그저 자신의 딸을 위함이었지만, 그 끔찍한 기억은 어른이 된 영혜에게 육식 거부로 이어지게 된다. 가족 모임에서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함을 손목을 긋는 것으로 증명한 영혜의 모습이 남편에게는 더 이상 이 여자와 살 수 없다는 그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고, 형부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던져버리려고 한 것이 구역질 나고 삶에 넌더리 나도록 만들었고,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지켜봐 온 언니에게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막을 수는 없었을까. 두고두고 자책으로 남게 된다.

2007 10월에 출간되었던 이 작품은 2016년 맨 부커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어, 벌써 초판 37쇄를 발행했다.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강 작가의 작품이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다지 대중적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고 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그다지 쉽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도 전혀 아니다. 하지만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를 완성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10년 전 한강 작가는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채식주의자'는 그것의 변주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 한다. 물론, 인간의 삶에 있어서 폭력적인 부분을 동물적인 것으로, 그 반대의 평화로운 부분을 식물적인 것으로 은유한 작품이 한강 작가가 처음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려내는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어찌되었든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어디선가 이번 맨 부커상 수상관련 글을 읽다가, 이 작품을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작업한 방식이 '직역'보다는 '의역'에 충실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미지로 구축되고, 완성되는 이야기라 데보라 스미스가 의역한 번역 작품 또한 어떻게 그려졌을지 매우 궁금해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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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그레이스
E. C. 디스킨 지음, 송은혜 옮김 / 앤티러스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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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새벽, 그레이스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다급하게 차를 타고 출발한다. 손가락이 하얘지고 얼얼할 정도로 운전대를 꽉 쥐고 있을 만큼 긴장한 상태에서 누군가 자신을 뒤쫓아오고 있는 듯한 느낌에 백미러를 바라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무들 사이에서 사슴 한 마리가 튀어 나오고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핸들을 꺾었지만 그녀의 차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뭔가를 들이받으며 사고가 난다. 그리고 8일 후, 병원에서 깨어난 그녀는 외상성 뇌손상으로 모든 기억을 잊어 버린 상태였다. ,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침대로 돌아가 누워 눈을 감았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것 같았다. 자려고 애를 써도 잠은 오지 않았고 기분 좋은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온갖 의문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마치 십자말풀이 놀이라도 하듯 머리 속의 질문들을 이리저리 늘어놓았다가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면서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일 필요한지, 무엇을 알아야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집으로부터 그녀는 과연 또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피로가 몰려오면서 그녀는 겨우 잠이 들었다.

퇴원 준비를 하는 그레이스 곁에는 언니 리사가 함께 했지만, 리사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기분은 집으로 돌아가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곳도 역시 낯선 공간이긴 마찬가지였고, 잠시 후 두 명의 형사가 그녀를 찾아 온다. 그레이스의 전남자친구인 마이클이 숨진 채로 발견되었기에, 수사 중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말이다. 그레이스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마치 연극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줄거리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인물들도 모두 낯설기만 한 이상한 연극 말이다. 형사들이 떠난 후 리사는, 사실 그날 아침에 그레이스가 자신의 옷가지를 챙기겠다며 마이클의 집으로 간다고 나갔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물론 살인 사건은 그녀가 그 집을 나온 후에 발생했을 수도, 혹은 교통 사고 때문에 애초에 그 집에 도착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사건을 수사하는 두 남자는 헤켓과 비숍 형사이다. 비숍은 그레이스를 의심하는 상태이다. 애인이 죽었고, 마지막으로 본 게 그녀일텐데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 상황 자체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반면, 헤켓은 무조건 여자친구가 살해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으니 동기부터 파악해야 한다며, 어쩐지 그레이스를 감싸고 도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상사인 비숍에겐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사고 전의 그레이스를 마치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사건을 수사해 나갈수록 비숏의 의심은 커져가고, 헤켓은 어떻게 해서든 그레이스가 한 짓이 아니라는 걸 믿게 하려고 애쓴다. 대체 그레이스와 헤켓 형사는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내가 누군가를 죽였을 수도 있을까?"

"절대 그럴 일은 없어. ,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지. 사람은 누구나 살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예를 들어 누군가 새미를 해치려 한다면 나는 그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이라면 비키의 말에 동의할 지 궁금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한계점에 부딪치게 되면 살인도 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일까?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주인공의 '기억상실'이야말로 너무도 간편한 장치 중의 하나이다. 내가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신도 모르는 상태는 시종일관 이야기 전개에 긴장감을 부여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극중 화자를 진짜 믿어도 되는 것인지 의심하고 싶은 마음과 우리의 주인공이 나쁜 짓을 했을 리 없다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격렬하게 싸우게 된다. 극중 화자는 내가 나를 모르는 상태이므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쉽사리 휘말리게 마련이고,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편도, 자신을 의심하겠다는 편도 모두 진정으로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거짓과 거짓이 쌓이고, 배신과 음모가 곁들여지고, 스스로의 자아 찾기는 그 자체로 사건 해결의 플롯으로 연결되어 기막힌 반전으로 치닫게 된다.

,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인물들이 너무 빨리 자신의 속내를 보이면 결말까지 달려가는 그 과정이 루스 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다는 거다. 이 작품 역시, 처음부터 대놓고 수상해 보이는 언니 리사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헤켓 형사 덕분에 스토리 자체가 좀 맥 빠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기억을 다시 되찾게 되는 시점이 무려 사백여 페이지가 지난 상태라, 거기까지 가는 동안 좀 지루한 면도 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짧게 토막 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내내 긴장감도 떨어지고, 반복되는 내용이 많은 탓에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가 모든 것을 다시 떠올리고 나서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의 반전 또한,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부분이라 '소름 끼치는 서스펜스'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다소 아쉬웠다. 내가 워낙 비슷한 구성과 플롯의 미스터리를 너무 많이 읽어왔던 탓도 있을 테니,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이야기 자체만 보면 영화같은 구성에 실감나는 스토리 전개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긴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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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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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젊은 여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주로 혼자 사는 여성들이었고, 트윗을 통해서 자신의 근황을 종종 업데이트 했기에, 가족들 입장에서야 그녀들을 '실종'으로 치부하기엔 다소 애매한 상태이긴 하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여자들은 2~3년 후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특정 기간 동안 빛 한 점 없는 곳에 갇혀서 굶어 죽은 상태로 말이다. 범인의 유일한 흔적은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파랑새 문신이다. 대체 이 여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우샘프턴에 서서히 밤이 내려앉았다. 햇볕 속에서는 평범해 보이던 건물들이 이제는 한층 음산한 외양을 띠고 있었다. 다니엘 브리어스는 14층 높이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조명들을 보고 가슴 벅찬 희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그곳은 암흑천지일 뿐이었다. 그는 한밤의 어둠을 틈타 잔혹한 범죄를 숱하게 저지르는 살인자, 강간범, 절도범 등 온갖 타락한 인간들을 상상했다.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는 여타의 스릴러 작품과 비교해서 독특한 점이 주요 등장 인물들이 대부분 '여자'라는 점이다. 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의 주요 인물들 모두 여자 형사이고, 과학수사대 팀장도, 총경도, 거기다 헬렌과 대립 관계에 있는 지역신문기자 역시 여자이다. 작가가 남자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여성들의 내면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고, 형사 스릴러 작품에서 돋보이는 뚜렷한 여성 캐릭터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헬렌 그레이스는 꽤나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그다지 공감되지 않은 특별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만 빼고는, 그녀의 말투, 행동, 사고방식 모두 매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문장이나 플롯 보다는 언제나 캐릭터가 기대되는 이야기인데, 덕분에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거의 무조건 따지지도 않고 읽어보게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인들의 실종 사건과 해변에서 발견된 여성들의 시체와의 공통점을 찾아서 수사를 시작하는 헬렌 그레이스는 전작에 이어 역시나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다. 그녀가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에서의 엄청난 사건 해결로 인해 너무도 유명 인사가 되어 버리자, 하우드 총경은 사사건건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결국은 엄청난 음모를 꾸미기에 이른다. 그리고 전작에서 임신으로 인해 찰리가 수사팀에서 빠지게 되면서 거의 새로운 인물들로 다시 구성된 수사팀 내부의 갈등 또한 매우 리얼하게 그려진다.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여성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외롭게 살아 왔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아직 '살아 잇는 듯이' 문자메시지나 트윗을 보내고 있는 상태이다. 사건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와 실종된 여성 루비가 범인과 함께 겪어내는 시간이 교차로 진행되어 이야기에 더욱 긴장감을 부여해준다. 루비는 범인에게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지, 헬렌 그레이스는 이번에도 연쇄 살인범을 찾아내고 복잡한 이 사건을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인지, 하우드 총경이 놓은 덫을 헬렌이 무사히 피해갈 수 있을 것인지..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페이지는 쉴 틈 없이 넘어간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좀처럼 지루할 새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둘은 인형을 하나씩 골라 이름을 붙여주고 각자의 분신으로 여기며 갖고 놀았다. 그들이 아는 모든 왕과 왕비처럼 머나먼 곳에서 낯설고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들을 상상했다. 둘은 날마다 매력적인 환상에 빠진 채 지겨울 때까지 인형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둘만의 특별한 세상을 창조했다. 하지만 그는 인형의 집에 닥친 슬픈 최후를 떠올릴 때마다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제 손으로 그것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그 인형의 집을 지금껏 간직했더라면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여형사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는 국내에 3권이, 영국에서는 5권이 출간되었고, 작가는 현재 6권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작가가 거의 일 년에 두 편씩 글을 써내는 속도에 맞추어 국내에 출간되는 것도 무려 반 년마다 새로운 시리즈가 하나씩 나오고 있어 너무 반갑기 그지 없다. 사실 시리즈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다들 경험해봤겠지만, 시리즈를 이렇게나 빨리 번역해서 출간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지쳐 아예 원서를 사게 되는 경우도 생기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북플라자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는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급박하게 진행되는 전개와 수수께끼를 자아내는 플롯과 구성, 게다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개성의 캐릭터까지. 시리즈로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많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헬렌 그레이스는 스티그 라르손의 리스베트 살란데르 이후 가장 강렬하고 흥미로운 여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캐릭터이다. 터프하지만 상처를 감추고 있고, 거침없고 냉소적이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린 내면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수수께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강인하고 책임감 넘치며 웬만한 일에는 겁먹거나 충격도 받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진실과 동떨어진 정체성이었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항상 진행되는 범죄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사건을 추적하고 조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든 희생자든 그녀와 관계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는 감정 이입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의 시리즈도 매우 기대가 된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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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이제 장마도 끝나버리고,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로 정말 말도 못하게 푹푹 찌는 여름이다. 이런 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는 꼼짝도 안하고 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어디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야 말이지.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조건 호러 물이다. 호러 영화든, 호러 소설이든, 오싹한 이야기야말로 무더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니 말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고바야시 야스키의 엄청난 데뷔작을 읽었다.

[죽은 고양이를 들고 어디 가?]

[아빠한테 졸라서 고양이를 샀는데, 얘가 나를 할퀴기에 콱 밟았거든. 그랬더니 움직이질 않네. 요그소토호스후한테 가서 고쳐 달라고 할 거야. 아빠한테 들키면 분명 야단맞을 테니까.]

어린아이에게 애완동물과 장난감은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물과 무생물이 어떻게 다른지조차 모를 것이다. 하지만 조금 크면 자연스레 그 차이를 깨닫게 된다.

"개는 죽은 고양이를 장난감 수리공의 오두막으로 끌고 갔어. 나는 국도 위의 육교를 건넜고."

-<장난감 수리공> 증에서-

무슨 장난감이든 공짜로 고쳐주는 장난감 수리공이 있었다. 새것이든, 헌것이든, 단순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아이들은 가리지 않고 장난감 수리공한테 가져갔다. 장난감을 망가뜨렸다는 걸 어른들이 알면 야단칠 테니 그건 아이들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느 무더운 날 그녀는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근처 가게에 심부름을 하러 가다가 육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고 만다.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린 동생은 자신의 밑에 조용히 깔려 있었고, 미동도 없이 움직이질 않았다. 더 이상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행복했지만, 부모님이 이 일을 알면 무슨 벌을 내릴지 생각하자 그녀는 장난감 수리공을 떠올린다. 장난감뿐만 아니라 죽은 고양이도 고쳐준다는 장난감 수리공이라면, 죽은 동생도 장난감이라고 속이면 장난감 수리공이 고쳐줄 것 같았던 것이다.

장난감 수리공은 망가진 장난감을 일단 산산이 분해한다. 나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접착제가 사용된 부분도 전부 말끔하게 떼어 낸다. 장난감이 여러 개 일 때도 일단 분해부터 하고 나서 모두 한꺼번에 조립을 하기 때문에 간혹 부품이 뒤섞이는 경우도 생기지만, 어찌되었든 원래대로 멀쩡하게 고쳐 준다고 한다. 그에게 죽은 동생을 데려가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지, 그 뒤의 상황은 헉, 소리가 날만큼 놀랍고도 오싹하다.

나는 데고나가 사고를 당한 후로 어떻게 하면 데고나를 되찾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어. 그리하여 두 가지 방법을 찾아 냈지. 하나는 네게 부탁한 방법, 죽은 세포로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역행이야. 둘 다 현실과 동떨어진 방법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방법은 그것뿐이었지. 처음에는 복제 인간이 좀 더 가능성 있게 느껴졌어. 그래서 의학부에 들어가려고 했지. 너만 합격했지만.

몇 번이고 도전할 생각이었지만, 둘이서 한 가지 방법에 매달리기보다 각각 다른 연구를 하는 편이 확실할 것 같아서 나는 시간 역행을 연구하기로 했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중에서-

<장난감 수리공>과 함께 실려 있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고바야시 야스키가 기존에도 보여주었던 SF를 호러에 접목시킨 이야기로, 굉장히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퇴근길에 들른 술집에서 낯선 남자를 만난 주인공이 굉장히 기묘한 사연을 듣게 된다.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었는데, 남자는 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거다. 남자는 그들이 대학 시절 절친한 친구였다고 말하며, 그들만의 대학 시절 이야기에 대해 들려준다. 양자역학과 시간여행을 모티브로 한 이 스토리는 평범한 캠퍼스의 연인들과 친구들의 사연에다 매우 독특한 설정을 부여하고 있다. 전혀 호러스럽지 않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섬뜩해지는데, 그 재미란 고바야시 야스키만이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싶다.

기존에 <앨리스 죽이기> <조커가 사는 집>에서 고바야시 야스키의 작품을 만나봤었는데,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작가라 그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평가를 듣는 <장난감 수리공>은 정말 궁금했었다. 일본호러소설대상 수상 시 압도적인 만장일치를 받았고, 발표 당시 일본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걸로 유명한 작품은 과연 명성답게 무더운 여름 날씨를 한 번에 날려 줄만큼 오싹하고 무시무시하다. 유혈이 낭자한 것도 아니고,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도 잔혹하고 끔찍하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조차 작가의 어조가 너무도 태연자약해서 당황스럽기조차 하지만, 그래서 더욱 무시무시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정한 호러의 끝판왕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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