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사소한 사건이나 계기로 산산조각 내어 버리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고는 한다. 가벼운 듯 보이는 유머와 너무도 평범해서 실제 일상처럼 보이는 삶과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사건들은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외면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끝내 마주보게 만든다. 바로 그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가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고, 이 작품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볼까. 시게노리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좋다. 시계를 보았다. 서두르면 면회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괜히 또 시게노리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다.
별것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평범한 우리 집에 큰 사건 같은 게 일어날 리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공부는 때려치운 유스케는 불량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되는 대로 살고 있다. 어느 날 밤 중년 남자에게 돈을 빼앗고, 기분에 취해 비슷한 일을 저지르려다 경찰을 만나 혼쭐이 난다. 유스케와 그의 친구들을 때린 건 강력계 형사인 구노이다. 그는 부서장의 지시로 동료 형사를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장사를 하고 있는 전직 여경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어 복무규정 위반으로 처벌하기 위해 동료 형사의 뒤를 캐고 다니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았으나, 윗 선의 지시라 그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 대상인 하나무라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구노에게 복수의 이를 갈고 있는 중이다.
슈퍼마켓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교코의 삶은 소박하다. 가끔씩 사치를 부리는 남편은 취미인 경마에서 돈을 땄다고만 하지만, 그녀는 뜻하지 않은 수입이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그러다 남편 시게노리의 회사에 의문의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마침 당직이자 최초 목격자인 남편을 형사들이 의심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회사 사람들이 집을 방문해 알 수 없는 당부를 하고, 형사들은 계속 찾아와서 남편에 대해 묻고, 교코의 가슴속에도 천천히 불안감이 생긴다. 점점 남편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증거들이 눈에 보이고, 그녀는 점점 초조하고 무서워져 현실을 외면하고만 싶다.
무서울 일은 전혀 없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부자도 아닌, 평범한 가정인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세상의 모든 불행한 일들은 그렇게 평범한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곤 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버린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느 순간 일상에 스며들어 버리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범죄에 휘말리고, 자신도 모르게 위험한 일에 가담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한 번에 훅 가기도 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다.
교코의 목소리가 떨렸다. 완전히 관계 회복의 길을 잘라 버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본성을 다 드러낸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온화한 척했던 것은 쫓기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늘 관객 편에 있었다. 감상만 말하면 되었다. 미칠 듯한 사랑도, 빵 하나를 열 명이 나눠 먹어야만 하는 치열한 싸움도, 아무 것도 경험하지 않았다. 지금 그것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유스케는 괜한 치기로 벌였던 일 덕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구노를 눈엣 가시로 여기는 하나무라가 야쿠자와 결탁해 유스케를 이용하려고 하게 된 것이다. 하나무라는 유스케를 통해 구노의 폭력에 대한 피해 서류를 제출하게 만들고, 그것을 취하하게 만들기 위해 구노의 동료들은 유스케를 찾아가고, 유스케는 야쿠자와 형사들 사이에서 그저 도망치고만 싶다. 오래 전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고 장모에게 점점 더 의지하게 된 구노 역시 자의와 상관없이 상사의 지시대로 이행한 일 때문에 형사 일을 그만둬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구노는 시게노리의 방화 사건을 수사하면서 부인인 교코에게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고, 자주 연락이 되지 않는 장모에게 더욱 신경을 쓰게 되면서 급기야 일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어 동료들의 걱정을 산다.
시게노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것은 일상을 부숴버릴 만한 짓이었을까.
남편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지고, 과거에 미심쩍었던 일부터 현재 의문이 가시지 않은 일들까지 모두 떠올라 교코를 괴롭힌다. 그러던 차에 아르바이트 사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에 가담하게 되면서 점점 직장에서 윗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급기야 계산대에서 창고로 업무 재배치가 된다. 매스컴이 남편의 범행을 의심하는 기사를 싣게 되자, 주변 사람들 모두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하고 그녀는 점점 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교코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감당하기 힘든 일에 직면했을 때 부딪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순간을 모면하려고 미루고, 피하려고만 했던 게 아닐까. 그녀는 남편의 결백을 직접 본인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의 대책을 함께 강구해보자고 의논하지도 않고, 그저 혼자 그 모든 문제를 끌어안고 전전긍긍하기만 한다. 남편은 소소한 부정을 저질렀을 뿐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으니 말이다.
사소한 절도만으로도 가족의 울타리는 간단히 붕괴되고, 가족 중에 누군가 범죄자가 되면 그 가족 모두 같은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보니, 교코는 어떻게 해서든 가정을,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하는 마지막 한 방도,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태연자약한 이기심도, 너무도 현실적이라 서글프고 쓸쓸하기만 하다. 10년 넘게 성실히 경찰 일을 해왔지만, 어이없고도 허무하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상황에 처한 구노의 삶 역시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런 식으로 결정되어도 좋은 것인지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었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자신만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방해하는 일상의 수많은 것들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이들을 보면서, 아마 누구라도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당장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니 말이다. 이들의 고군분투가 그저 허구의 이야기 속 상황 같지만은 않아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내내 이야기의 여운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