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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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벽의 7>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라는 인물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 젖은 사형집행인'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유태인 학살의 주요 계획자였으며, 하인리히 히믈러를 월등히 뛰어 넘는 수준으로 190이 넘는 장신에, 4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취미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수영, 스키, 승마, 펜싱 등 스포츠에도 만능이었으며 똑똑하고 비상하기로 소문한 인물이었다. 영화는 그를 암살하는 작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최근에는 체코 레지스탕스 2명의 코드네임을 따서 <앤트로포이드>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로랑 비네의 <HHhH> 역시 바로 그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에 대해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존의 그 어떤 이야기와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소하고도 낯설게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는 싸움이다. 이런 이야기는 솔직하게 할 수밖에 없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등장인물, 사건들, 날짜들, 끝없는 원인과 결과, 사람들, 실존했던 사람들, 그들의 인생, 활동, 빙산의 일각처럼 다뤄 보는 그들의 생각, 실망스러운 인간관계의 덩굴이 멈추지 않고 언제나 더 높고 더 무성하게 퍼지는 역사의 벽, 그 벽에 번번히 부딪히는 나.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서 '' 1인칭 화자가 아닌 작가 자신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하이드리히 암살 작전을 구상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쓰는 전 과정을 그린 일종의 작가 노트와 소설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구성이다. 작가는 '실존인물' '실제사건'이라는 역사 소설의 기본 공식을 매우 충실하게 따르면서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허구의 그 어떤 것도 첨가하지 않을 작정이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녹음, 속기 자료를 토대로 에피소드와 대사를 구성하고 취재, 집필 과정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는데, 덕분에 그가 그리고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그 긴박한 시간 속으로 독자가 완전히 '몰입'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 감정 이입을 하거나 극적인 구성을 따라가며 긴장감을 느끼거나 극에 몰입해서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현실을 잊어버리는 일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작품의 정체가 뭔가.

'역사적인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고증하는 소설도 있고, 실제 일어난 사실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소설도 있고, 왜곡까지는 아니지만 역사적 진실이라는 벽을 교묘히 우회하는 역사 소설도 있다.' 하지만 로랑 비네는 자신이 역사를 픽션으로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며, 매 순간 모든 장면이 실화라는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 날 수 있게 글을 쓰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 교과서를 쓸 마음은 없기에, 개인이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써 나갈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저 일어난 일들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작가의 시선이 개입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그는 '역사적 사실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등장인물을 만드는 것은 증거를 위조하는 것과 같다'며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다가 205 챕터에 이르러 (전체 257 챕터) 자신이 쓰고 있는, 혹은 쓰고자 하는 소설의 방식에 대해 정의한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은 '인프라 소설(실화, 가상의 내러티브, 작가의 생각이 결합된 소설)' 이라고 말이다. 작가가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 이해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날카로웠던 부분들이 조금은 뭉툭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종일관 대체 무슨 작품이 이렇지? 싶어 다소 불편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소설처럼 구멍이 뚫려 버린다. 일반 소설이라면 소설가가 구멍의 자리를 정하지만 조심성이 지나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카를 다리를 지나 바츨라프 광장을 거슬러 올라 박물관 앞을 지나는 장례 행렬 사진들을 훑어본다. 다리 난간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석조 동상들이 하켄크로이츠를 굽어보고 있다. 뭔가 역겨운 느낌이 든다. 차라리 성당 회랑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는 게 낫다. 조그만 자리가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말이다.

<HHhH>라는 독특한 제목은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로 불린다(‘Himmlers Hirn heißt Heydrich).’라는 뜻이다. 나치의 수장 히믈러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과 유태인 학살의 계획을 세웠던 건 하이드리히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하이드리히가 아니다. 그는 작전의 표적이지 주체가 아니므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배경을 설명해 주는 역할에 그친다. 그를 암살한 두 영웅, 즉 유인원 작전이라 불렸던 하이드리히 암살 작전의 주체였던 가브치크와 쿠비시가 진짜 주인공이다. 로랑 비네는 이들 두 사람을 단순히 소설 속 문단을 이루는 검은색 글자로만 표현되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역사 속 인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그렇게 역사 속 특정 영웅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흥미로운 건 끊임없이 작가가 개입해서 자신이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밝히지만, 어느 순간 역사의 한 복판에 서서 그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거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는 2차 세계 대전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아무리 최선을 다해 실화에 가깝게 스토리를 구성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이라고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설마 저런 일이 진짜 벌어졌을까. 인간이 실제로 저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싶을 만큼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역사라는 이름 아래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있었던 사건들을 나열하는 방식보다는, 역사지만 픽션으로 재창조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기에 작가가 끊임없이 토를 달고, 코멘트를 붙이고, 주석을 덧붙이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의 그런 노력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역사와 소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현실과 픽션 사이의 경계에서 부단히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전혀 껄끄러움없이 말할 수 있다. 자고로 역사 소설이란 이렇게 쓰는 거다. 그렇지 않은가. '역사' 소설이라는 그 자체보다 그것이 쓰이는 방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만으로도 이 작품은 우리를 2차 세계 대전의 그 언저리 어디쯤인가로 데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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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6-12-1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읽으면서 가장공감할수없는게 폴란드에서는 테러리스트였던 그들을영웅으로 인정하고학교수업에 관람하는코스를만든것 한국이었다면 인정은커녕 아예심기거스릴까 악당으로교과서에 수록했을테러리스트들 그래서 멋있다 그리고올바른정의라생각되는

피오나 2016-12-13 08:24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어요. 근데 저는 내용보다는 이 책이 쓰여진 형식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
 
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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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향수를 지배하는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옛날 옛날에 말이야. 로 시작하는 그것, 혹은 예전에 내가 말이야. 로 출발하는 미지의 세계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향수에 젖게 만들고,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 지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아마도 살아 계셨다면 나를 너무도 예뻐하셨을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꽤 오래 사셨던 친할머니는 나와 동생이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워하셨기에 나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다. 그래서 여름이면 외할머니 댁을 찾는 주인공 소년이 겪게 되는 그 경험들이 너무 부럽기만 했다.

내 마음속의 프랑스는 주로 이야기책의 산물이었다. 그렇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바로 그 기억할 만한 저녁에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검을 휘두르고, 줄사다리를 기어오르고, 비소를 들이마시고,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잘려진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 마차를 타고 여행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허구 세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국적이고 멋지고 어찌 보면 희극적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에는 와 닿지 않았다.

소년은 누나와 함께 시베리아 초원 지대 인근 마을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곧잘 여름 방학을 보내곤 했다. 프랑스 여인이었던 그의 외할머니는 오래된 사진, 낡은 책들, 그리고 단풍잎을 연상시키는 비단 부채, 부적 같은 것들을 통해 존재했던 추억들을 이야기로 들려준다. 소년의 할머니 샤를로트 르모니에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프랑스의 역사, 그리고 20세기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증언과도 같았다.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어온 그녀의 삶 자체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어린 그들은 당시 거의 깨닫지 못했다. 다만, 꼭 어른한테 얘기하듯이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말투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할머니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그렇게 마치 안개 자욱한 아틀란티스처럼 그들의 마음 속에서 떠올랐다.

당시 소년은 프랑스어를 가족들만 쓰는 사투리 정도로 간주했었다. 가족들이란 보통 집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별명들이라던가, 집 안에서만 쓰는 은어, 말버릇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그들이 집 안에서만 쓰는 사투리인 프랑스어가 출렁거리는 검은 물에서 그들만의 환상의 도시 '아틀란티스'가 구축되고 있었다. 특히나 소년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것이 바로 프랑스어라는 언어였다는 점이 매우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데, 기억과 읽기, 쓰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유는 굉장히 유려하게 표현되고 있다. 소년은 도서관에 소장된 프랑스에 관한 글이나 책을 전부 찾아서 읽으며, 한 세기에서 다른 세기로 이어지는 시간들을 마치 점묘화를 그리는 인상파 화가처럼 개요만 들려준 이야기의 틈을 메우면서 프랑스에 깊이 매료되어 푹 빠져 지냈다. 책이 꽉꽉 들어찬 먼지투성이 미로에서 보낸 그 기나긴 날들이 그의 사춘기를 지배했던 거의 전부였으니까. 한 노부인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한 나라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그렇게 한 소년에게로 이어진다. 마치 동화처럼, 그렇게 어딘가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그려지는 정밀화처럼, 누구나의 상상 속의 그곳 아틀란티스처럼.

그리고 책을 읽으며 찾아내야 하는 건 일화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책장 위에 멋지게 배열된 단어들 역시 내가 찾아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심오하고, 동시에 훨씬 더 자연스러운 그 무엇, 그러니까 일단 시인에 의해 계시되면 영원 불멸한 것이 되는 가시적 세계 내의 심원한 조화였다. 그 뒤로 내가 이 책 저 책 읽으며 찾아 다녔던 것은 바로 이것,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이것의 이름이 바로 '문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 안드레이 마킨의 자전적인 요소가 다분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소년은 작가 그 자신처럼 보인다. 세 살 때부터 프랑스 출신 할머니에게 배운 제 2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직접 작품을 썼고, 프랑스어로 쓴 그의 원고는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러시아 작가가 굳이 프랑스어로 작품을 써야 하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대체 그는 왜 그래야 했을까. 그에게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 언어는 어떤 의미일까.

소년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그는 자신의 할머니를 프랑스로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결국은 그가 프랑스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러시아에서는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신이 러시아 사람이라고 느끼는 아이러니함이 그와 할머니의 삶을 통해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작가인 안드레이 마킨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체험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과거를 되살리고,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시간의 가역성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추억을 회상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기억 또한 삶 그 자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들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 수 많은 것들을 언어로 그려내는 마법과도 같은 책이다. 작가가 만들어내고 있는 언어들과 그것들이 빚어내는 미지의 세계는 당신의 눈 앞에도 아틀란티스가 떠오르는 것 같은 기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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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생각해보니까 프랑스 작가의 글을 선호하는 이유가 프랑스 특유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인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표현하니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 ㅎㅎㅎ 아무튼 저는 이국적인 문학 작품을 좋아해요. 그래서 한국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에요. ^^;;

피오나 2016-12-09 23:39   좋아요 0 | URL
저도 문학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풍경과 분위기 좋아합니다.ㅎㅎ 그래서 북유럽 스릴러들을 즐겨 읽는 것이기도 하고요. <프랑스 유언>은 특히나 프랑스어라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더라고요. 러시아 작가가 쓴건데 말입니다. ㅋㅋ
 
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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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던, 예순세 살의 브릿마리는 지금 고용 센터의 어느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녀가 일을 하려는 이유는, 자신이 죽었을 때 누군가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 주길 바라기 때문이란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직업도 없다면, 죽은 지 몇 주 만에 발견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지만, 일을 하면 출근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알아차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40년 동안 살림만 하며, 평생 살던 동네를 벗어난 적 없었던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야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한다.

아가씨는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머리칼을 만지작거린다.

"그래서.........일을 하시려는 이유가........그러니까.............."그녀는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브릿마리는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며 한숨을 쉰다.

"그 여자는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직업도 없었어요. 그런 여자가 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어요. 일을 하면 출근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알아차릴 거 아니에요."

어느 날 남편이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그 일로 인해 내연의 여자가 브릿마리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여자 향수가 배인 그의 셔츠를 빨아가며 1년 내내 모른 척 했던 진실과 대면하게 된 그녀는 더 이상 그와 함께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혼자 지내다 죽어서야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 악취로 이웃 주민들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을 하려고 한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거든요."

고용 센터의 여직원은 특별한 능력도, 경력도 없는데다 나이까지 많은 할머니의 우격다짐이 난감하기 그지 없었지만, 우연찮게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일자리를 주선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해서 브릿마리는 얼마 후에 폐쇄될 작고 외진 동네, 보르그로 차를 몰고 떠나게 된다. 그곳은 문을 닫은 축구장과 문을 닫은 학교와 문을 닫은 약국과 문을 닫은 주류 판매점과 문을 닫은 보건소와 문을 닫은 슈퍼마켓과 문을 닫은 쇼핑센터가 있는 동네였다. 유일하게 레크리에이션 센터는 문을 닫지 않았지만, 제대로 닫을 시간이 없어서 남겨졌을 뿐 곧 같은 운명에 처해질 곳이긴 했다. 겨우 3주 동안 일할 수 있는 그곳은 외딴 곳에 있었고 보수도 워낙 형편없었지만, 브릿마리 입장에서야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40년 동안 언제나 팩신과 과탄산소다로 집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살아왔던 그녀에게, 마치 쓰레기 처리장과도 같은 지저분한 그곳이 어떻게 느껴졌을 지는 안 봐도 훤할 것이다. 그렇게 평생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던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쓰레기 천지인데 내가 여기서 일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브릿마리 씨?"

"뭔데요?"

"우리 어머니가 평생 사회복지 쪽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그 쓰레기들 한복판에서, 그게 가장 두툼하게 쌓인 곳에서 눈부신 이야기가 탄생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모든 게 보람을 갖게 된다고요." 그녀는 미소와 함께 그 다음 문장을 전한다.

"브릿마리 씨가 저의 눈부신 이야기예요."

자신의 아이를 낳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집을 지키며 남편의 아이들을 건사했고, 아이들을 다 키운 뒤에도 자신의 인생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집을 번듯하게 가꾸고 남편을 내조했고, 친구를 사귀지 않고 집안 일에만 신경 쓰는 그녀에게 남편은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자신이 두 사람 몫의 사회생활을 하겠다고 그녀에게 몇 년 더 집을 지키라고 했고, 그 몇 년이 십 수 년이 되었고, 십 수 년이 평생이 되었다. 브릿마리에게도 처음 부터 아무런 기대도, 꿈도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것들의 유통기한이 지났을 뿐. 그런데 어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 그녀 혼자 뿐일까. 나는 브릿마리를 보며 대한 민국의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며 모든 시간과 노력과 삶을 쏟아 부었지만, 정작 성인이 된 아이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되며 부모님을 찾는 걸 멀리하고, 평생 자신에 대한 남들의 평가보다 남편에 대한 사람들의 이목을 더 따져가며, 남편의 내조를 해왔지만, 정작 남편은 그녀가 매일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순간에 기분이 나빠지는지, 언제 상처받고, 언제 외로운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면 남은 세월보다 지난 세월이 더 많은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 버린다.

어느 나이쯤 되면 인간의 자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오베라는 남자>에 등장했던 밉지만 짠한, 무섭지만 뭉클했던 쉰 아홉의 까칠한 오베를 기억할 것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삿대질을 하고, 다그치고, 노려보는 남자. 평생 자명종 없이 6 15분 전에 눈을 떴고, 40년 가까이 매일 아침마다 정확히 똑같은 양의 커피를 내려 마시고, 항상 동네 시찰을 하러 거리로 나가는 남자. 뭐든 간에 발길질을 해대고, 툭하면 욕설을 내뱉는 남자. 하지만 매 순간 세상 전부와 싸우고 있는 듯한 그는 아내를 잃어버리고 종일 그녀를 그리워하는 외로운 노인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엘사는 일곱 살 이라는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한데다 얄밉도록 지나치게 똑똑해,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왕따, 선생님들에게는 눈엣가시이며, 주변 어른들에게도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독특한 존재였다. 애 어른 같은 엘사에게 당연히 친구도 없고 말상대라고 해 봤자 병원 운영으로 너무 바쁜 엄마를 제외하고 할머니뿐이었다.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의 세 번째 작품 <브릿마리 여기있다>에 등장하는 예순 셋 브릿마리 역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캐릭터이다. 오베가 세상에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그저 옳은 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던 것처럼, 브릿마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해야 할 일, 약속 시간 등을 자신의 리스트에 적어 정리하고, 그 리스트에 있는 일들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반드시 실행하려고 한다. 이들은 세상을 흑과 백으로 구분해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과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일로 명확하게 구분해 행동하는 덕분에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도, 당황스럽게도 만들지만 사실 뭐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세상사라는 게 다 비슷한 거긴 하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더라도, 그걸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다면,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질 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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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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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껴가며 책을 읽고, 조심스레 공들여 보관하고 관리해도 시간이 지나면 책 등은 누렇게 변색되고 고슬고슬한 책장은 뻣뻣해지게 마련이다. 2007년에 내가 처음 만났던 <열세 번째 이야기>도 상태가 깨끗한 편이긴 하지만 책 등이 바래고 페이지들도 거칠거칠해졌다.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손때 묻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오래된 책이 좋다. 도서관에 가면 특유의 향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오래된 종이에서 나오는 냄새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낡은 종이 냄새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윈터 여사는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방 한구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고정된 바로 그곳에, 그녀의 지나온 세월이 지금 이 순간보다도 더, 그녀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보다도 더 선명하게 펼쳐져 있는 듯했다. 그녀의 입가에, 그리고 눈동자에 슬픔과 혼란이 뒤섞인 무언가가 스쳤다. 그녀와 그녀의 과거를 잇는 가느다란 줄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그 줄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까 봐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이야기가 중단될까 봐 두려웠다.

아버지와 함께 헌책방을 꾸려가며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전기를 쓰는 마가렛 리는 어느 날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비다 윈터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오랜 세월 비밀스러운 과거로 유명했던 그녀가 이제야 비로소 진실을 말하겠다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고 제안해온 것이다. 마가렛 리는 현대물이 아닌 고전에 매혹되어 왔고, 그래서 항상 죽은 작가들의 전기만을 써왔다. 게다가 그녀는 비다 윈터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다. 마가렛 리는 비다 윈터의 책 <변형과 절망의 열세 가지 이야기>를 아버지가 수집한 희귀 초판본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 작품은 마지막 열세 번째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았다. 사라진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품고 비다 윈터를 만나게 된 그녀가 만나게 되는 것은, 시골 마을 앤젤필드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음산하고 기괴한 이야기였다.

옛날 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이 있었지!

옛날 옛날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 있었어!

옛날 옛날에, 쌍둥이가 있었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신경질적이고, 오만하고, 어느 면에서는 다소 무례하기까지 하며 진실을 말할 거라고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비다 윈터를 마주한 마거릿은 그녀의 저택을 떠나려하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뒤를 돌아보고 만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쌍둥이 자매가 있었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그녀를 잃었으며, 그 사실을 여태 숨겨온 부모 덕분에 최근에서야 그 비밀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직업이 오직 진실만을 다루는 전기 작가였고, 자신이 한 눈에 사로잡힌 <열세 가지 이야기>를 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자신이 늙고 병들었으므로 그 동안 세상에 보여준 수많은 거짓말 대신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외치는 비다 윈터의 목소리에서 두려움과 비슷한 무언가에 사로잡힌 감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거릿은 엔젤필드라는 마을의 대저택에 살았던 가족, 조지와 마틸드, 그들의 아이들인 찰리와 이사벨, 이사벨의 아이들인 에멀린과 애덜린의 삶과 운명,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과 그들의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 이야기에 대해 물으셨죠?"

내가 말했다.

"이야기 따윈 없다고 자네가 말했지."

"제게도 이야기가 있어요."

"있고말고. 그 사실을 의심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네."

윈터 여사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와 함께 헌책방을 운영하며 책을 읽는 것이 오로지 낙인 소녀와 대저택에 거주하며 은둔생활을 하는 비밀스런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 이 작품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저 설레임을 주는 작품이다. 게다가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배경들은 고딕 소설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보여주며, 비다 윈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뒷조사를 하는 마거릿의 이야기는 웬만한 미스터리 소설 못지않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대저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화재, 금기를 뛰어 넘는 사랑, 가문의 저주, 유령의 존재,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비극, 그렇게 18세기 영국 시골 마을 엔젤필드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은 매우 고풍스러우면서도 전혀 지루하거나 촌스럽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이미 나는 9년 전에 이 책을 읽은 터라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점차 폐가로 변해가는 대저택과 그곳에 버려진 쌍둥이 소녀의 이야기와 비다 윈터가 들려주는 말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는 마거릿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며 어느 순간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결혼이나 죽음, 고귀한 희생이나 기적적인 소생, 비극적인 이별과 뜻밖의 재회, 엄청난 파멸과 꿈의 실현... 그런 것들이야말로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마거릿은 비다 윈터의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 소설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합리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소설을 사랑했고, 항상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렸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이야기만 써왔기 때문이다. 부업인 전기 작가 일 외에 그녀의 본업은 책방에서 책을 '돌보는 것'이었는데, 마치 죽은 자의 무덤을 보살피듯 그녀는 책을 보살핀다. 책을 닦아주고, 작은 흠집을 보수하고, 말쑥한 상태로 유지하며, 날마다 책을 한두 권 뽑아 몇 줄, 몇 페이지를 읽으며 죽은 자의 목소리가 자신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마거릿이 매일 책을 아무거나 뽑아서 몇 줄, 몇 페이지씩 읽는 대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책을 제대로 보살피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책장 가득 진열해놓고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 먼지를 닦아주며 오로지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도 아닌, 책을 끊임없이 읽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책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순간이야말로 책이 지닌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이 작품은 여전히 페이지 곳곳에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 있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개정판은 두툼한 두께는 비슷하지만, 작은 판형으로 사이즈가 콤팩트해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더욱 좋아졌고 말이다. 내 책장 속에서 초판본 책이 그 동안 먼지를 쌓아가며 시간을 버텨내는 동안 나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 9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모도, 성격도,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책 속의 이야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 덕분에 책장 속에 가득한 책들을 한번 더 살펴보고, 꺼내어 보게 되었다. 극중 비다 윈터의 말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그들을 잃었다고 해도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있으니까. 그들에게서 멀어지거나 등을 돌려도 가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러니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어느 화창한 날, 당신의 하나의 이야기, 소설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이 이 작품 <열세 번째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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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2-04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오나 님의 글을 읽고서 저한테 있는 책을 한 번 꺼내봅니다. 책등과 페이지가 누렇게 변해 있군요. 초판과 개정판을 모두 소장하시다니 부럽습니다. ^^; 피오나 님이 책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겠고요,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

피오나 2016-12-04 21:05   좋아요 1 | URL
五車書님 역시 저만큼 책을 사랑하는 분같은데요.ㅎㅎ 책등과 페이지가 누렇게 변해있는 책들을 가지고 계시다니 말이죠. ^^ 이 작품은 뭐랄까, 오래된 책냄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혹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읽어도 읽는 내내 설레더라고요. 하핫..
 
콩고양이 5 - 뭐야뭐야? 그게 뭐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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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이 너무도 추웠기에, 올해 겨울은 이 정도면 안 춥네 싶다가도 어느 순간 매서운 날씨에 깜짝 놀라게 된다. 겨울은 어쩔 수 없이 겨울이니 말이다. 쌀쌀한 바람에 두 볼이 빨갛게 물들고, 손도 꽁꽁, 발도 꽁꽁이라 어디 외출이라도 한번 하려면 완전 무장에 이것저것 싸매고 나가도, 막상 겨울 날씨와 마주하면 괜히 나왔다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보니 일본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고다쓰도 국내에서 팔더라. 이런 날씨에는 그저 고다쓰 처럼 낮은 테이블 아래 발을 집어 넣고 따뜻함으로 몸을 무장한 채 뜨거운 커피나, 호빵 같은 걸 먹으면서 만화책 삼매경에 빠지는 게 제격이다. 그리고 그런 풍경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 <콩고양이> 시리즈가 두식이와 함께 돌아왔다. 지난 네 번째 작품에서 처음 등장했던 두식이는 이번 다섯 번째 작품에서 더욱 흥미진진한 활약(?)을 펼치게 된다.

 

우리의 팥알이와 콩알이의 주인님은 "나는 역시 고양이가 더 좋은 가봐. 개가 좋다고 달려드는 거 좀 그래"라며 두식이가 달려들어 반기는 거에 난색을 표하지만, 의외로 집동자귀신 아저씨는 "나는 의리 있고 똑똑한 것이 개가 더 좋은데. 고양이는 불러도 안 오지만 개는 발딱 일어나 오잖아."라고 대꾸한다. 사실 이것이 바로 개와 고양이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개는 사람의 곁에 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주인을 올려다보는 반면, 고양이는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보지 않나. 게다가 그 표정 또한 개는 주인을 위해 뭐라고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면, 고양이는 세상 만사를 다 꿰뚫어보는 듯한 시크 그 자체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다른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콩고양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개도, 고양이도 모두 다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두식이의 등장 때문에 팥알, 콩알이 외에 가족들의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두식이와 산책을 나가고 관심을 보이는 집동자귀신 아저씨도 마트 애견 코너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는 마담 북슬도, 두식이를 데려온 장본인인 안경남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집동자귀신 아저씨와 두식이의 이별 에피소드는 정말 최고이니, 이 작품의 후반부를 주목해서 보시길 바란다. 뭉클하면서도 코믹하고,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들을 기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는 기막힌 에피소드니까.

 

아마도 만화의 가장 좋은 점이 이런 거 아닐까 싶다. 여백이 많은 프레임에 둥둥 떠있는 짧은 대사와 간간이 미소 짓게 만들고, 또 그 틈틈이 뭉클하게 만들고, 그 와중에 지나간 추억도 떠오르게 만들고 말이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도 없는 책 읽기란 퍽퍽한 현실에서 벗어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뭐 해? 너 물웅덩이에서 노는 거 좋아하잖니."

뭐 그리 말씀하셔도 그닥 씻고 싶지 않지 말입니다.

요즘처럼 시국이 어수선할 때는 딱딱하고 머리 아픈 독서보다는, 가볍고 유쾌하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독서가 제격이다. 반려동물과 체온을 나누며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에게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이들이라면, 팥알, 콩알, 두식이네 일상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분과 함께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다. 추운 계절, 날씨만큼 마음도 얼어붙게 만드는 뉴스들로 삭막한 세상 살이 속에 조금의 위로, 혹은 그래도 삶이 아름답다는 위안을 얻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의 세계 속에서 잠깐들 쉬어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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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는 책 다음으로 꽂힌 것이 애니입니다. 이제야 제게 덕후 본능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

피오나 2016-12-03 18:31   좋아요 0 | URL
오..덕후본능을 찾으셨다니 어쩐지 반갑네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