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가 돌아왔다. 국내 번역이 2년마다 출간되고 있어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링컨 라임 시리즈는 단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번 <스킨 컬렉터>는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 제목에서 다들 눈치챘겠지만,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본 컬렉터>와 연결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본 컬렉터의 모방범, 혹은 그렇게 보이는 범죄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야기는 옷 가게 여직원이 지하실에 내려갔다 한 남자를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바로 빌리 헤이븐, 인간의 피부에 집착하는 문신 전문가이다. 그는 여자의 복부에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문자를 문신으로 새긴다. 그런데 그는 잉크대신 독을 사용한다. 게다가 그가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 도서관에서 몰래 찢어온 책의 페이지는 바로 링컨 라임이 해결했던 본 컬렉터 사건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의 일부였다. 과연 그는 본 컬렉터의 모방범일까.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스킨 컬렉터가 피해자들의 몸에 남기는 문신을 통해서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범인도 접착 롤러를 갖고 다닌 게 분명해요. 최대한 주변을 밀고 다닌 것 같아요."
"난 영리한 범인이 싫어."
그럴 리가. 색스는 생각했다. 라임은 멍청한 범인을 싫어했다. 영리한 범인은 도전적이고 훨씬 재미있었다. 색스는 N95 호흡기 아래에서 미소 지었다.
"이제 대화 중단해요, 라임. 출입 통로를 조사해야겠어요. 맨홀요."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는 메일 플롯만큼 서브 플롯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러 개의 서브 플롯이 동시에 함께 진행되며, 어느 순간 반전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결말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인물들의 과거로 다가가기도 하며, 새로운 등장 인물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번 <스킨 컬렉터> 역시 본 컬렉터의 모방범을 쫓는 수사 과정 외에 여러 개의 서브 플롯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이끌어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이야기의 초반부터 등장하는 '시계공의 죽음'이다. 시계공이 죽었다니, 그것도 감옥 안에서. 누군가에게 피살당하거나 자살도 아니었고 심장 마비라는 진부한 사인으로. 이 무슨 김빠지는 전개란 말인지. 내 눈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즈를 여태 따라왔던 독자들이라면, 링컨 라임에게 시계공이란, 셜록 홈즈에게 모리어티와도 같은 숙적이자 라이벌 아닌가. 시계공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 <콜드문>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이후로 계속 시리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브 플롯으로 매번 등장해왔다. 그러다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콜드문>에서가 아니라 조연으로 잠깐 등장했던 <버닝 와이어>에서 성형 수술후 링컨의 타운 하우스에 쳐들어 왔다 체포를 당하고 만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이 작품에서 죽음으로 등장하다니.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두뇌형 인간인 링컨 라임이 그의 죽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시계공은 라임이 만난 범죄자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간이기도 했고, 라임을 앞질러 생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범죄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라임이 그의 사망을 애도하면서 꽃을 보낸다는 설정은, 그 동안 라임을 알아왔던 그 누구라도 놀랄만한 일이었기에 매우 유쾌하기까지 했다. 물론 라임의 머릿속에 애도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는 플라스키에게 언더커버 임무를 주면서 언제나 수수께끼였던 시계공의 배후와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죽음을 활용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시계공 만큼이나 그 동안 시리즈에 자주 등장했던 팸은 어느덧 열아홉 살로 대학에 다니면서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팸은 시리즈의 첫 편에서 어머니와 함께 본 컬렉터에게 납치당했었고, <콜드문>에서 엄마가 우익 테러리스트로 밝혀져 수감이 되고, 양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서 현재는 색스의 여동생처럼 지내오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 생긴 남자친구와 같이 1년 정도 여행을 하면서 함께 살 거라고 해서 그녀를 부모처럼 걱정하는 색스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전편인 <킬룸>의 마지막에 결국 고생하던 퇴행성 관절염 수술을 받았는데, 그것이 마술 같은 효과를 발휘해 매 시리즈마다 항상 등장했던 그녀의 고질적인 관절염 통증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도 이번 작품에서 보여지는 굉장한 변화라 하겠다.
어떻게 나를 찾아냈지? 아니, 그건 정확한 질문이 아니다. '라임은' 어떻게 나를 찾아냈지? 그녀도 물론 솜씨가 좋다. 하지만 라임이 더 좋다.
좋아. 어떻게? 정확히 어떻게?
예전에 병원에 들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거기서 미량 증거물을 묻혀서, 조심했음에도 나도 모르게 클로이 무어의 시체 옆에 조금 떨어뜨렸을지도 모른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항상 링컨과 색스를 비롯한 수사팀의 시선과 범인의 시선으로 교차 진행되는데, 매 편마다 경찰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냈는지, 자신의 범행 수법을 알아냈는지 궁금해하는 대목이 등장해왔다. 연쇄 살인범이 자신의 기가 막히게 완벽한 범죄 행각에 자신만만해 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경찰이 그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음을 감지하게 되는 순간, 그와 동시에 범인이 라임과 색스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면서 범행 타겟이 원래의 목적과 함께 그들에게로 향하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매번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된다. 목 위 부분과 왼손 약지만 운동 가능한 전신마비 환자로 처음 시리즈에 등장해 이제는 오른손으로 글록을 잡고 범인을 겨냥할 정도로 오른손 기능이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라임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범인에 비하면 너무 쉬운 타겟이기도 하고, 직감이 뛰어나고 권총 명사수이지만 언제나 현장 감식을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 색스는 전직 모델 출신에다 늘씬한 몸매와 긴 빨강 생머리는 어디서나 눈에 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특히나 이번 신작은 이들 두 사람을 처음 만나게 했던 <본 컬렉터> 사건을 변주한다는 점에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경찰 애인에게 배신당해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순찰 경관 색스와 사고로 전신마비를 당하고 경찰을 퇴직해 삶을 포기하려던 라임이 인간의 뼈에 집착하는 본 컬렉터 사건을 맡으면서 시리즈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연인이 되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라임의 투덜거림을 다 받아주는 톰과 여전히 신참 같은 매력을 풍기는 론 풀라스키를 비롯해 멜 쿠퍼, 론 셀리토 등 라임의 수사팀들도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고 말이다.
제프리 디버에게 반전의 제왕이라는 수식어 자체는 평범할 수도 있지만,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반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반전에 반전, 거기다 다시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고, 꼬면서 몇 번의 반전이 거듭되어도, 개연성에 대한 의심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플롯을 자랑한다. 게다가 디버의 범인들은 너무도 치밀하고, 집요하고, 잔악하고, 완벽해서 잡는다는 게 더 이상해 보일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링컨 라임이 실패를 거듭하다 결국에는 승리한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선악구도에다, 여러 번의 반전 롤링과 익숙한 패턴에서 반복감을 느낄 수도 있는 공식이지만, 사실 스릴러 작품이 이 정도 수준쯤 되면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링컨 라임 시리즈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스킨 컬렉터>를 읽고 서평을 쓰면서 정작 작품에 대한 줄거리는 별로 없고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 링컨 라임 시리즈를 읽고 나서 줄거리며 플롯을 자세하게 분석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직 작품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 대한 굉장히 매너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줄거리만 따라가는 것은 이 시리즈의 매력 중에 겨우 절반만 느끼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 보시라. 시리즈를 꼭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흥미를 느끼는 시리즈 그 어디서 시작해도 상관없다. 기왕이면 이번 신작에서 출발해도 좋고 말이다. 단, 한번 시작하면 절대 발을 뺄 수 없으리라는 것만은 장담한다. 무조건 전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싶어질 테니 말이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현재 열두 번째 작품 <스틸 키스>가 이미 출간되어 있다. 부디 이번에는 2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고대해본다. 그리고 올해에는 중순쯤에 제프리 디버의 또 다른 히로인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그 세 번째 <XO>가 출간될 예정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의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도 찬조 출연한다고 하니, 설레 이는 마음으로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