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X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박현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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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옴진리교 사건 이후 20.. 극단적 종교 단체 '교단 X'를 통해 절대 악을 그려내는 또 다른 픽션이 등장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피해자들의 일상을 통해서 서서히 지옥에 접근했다면..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악의 심연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그리고 종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선과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단 안은 픽션 같았다. 과도하게 집중해서 모아진 정신의 집합이 공간을 왜곡시키는 것처럼. 컬트 종교의 내부는 대개 픽션과 비슷할지 모른다. 나라자키가 고등학생쯤이었을 것이다. 여러 대의 지하철 차량에서 독가스 사린이 동시에 뿌려지는 경악할 만한 테러리즘이 일어났다. 범인은 컬트 종교 집단이었다. 숨어 있던 픽션이 일상 속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돌발적인 픽션 앞에 일상은 무력했다. 그리고 언제나 눅눅하고 흐리멍덩하다. 일상은 픽션을 해체하고, 사형을 선고하고, 모든 걸 평균으로 돌려놓는다.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고, 그리고 또다시 대비할 것이다. 다음 픽션을 말이다.

나라자키는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고바야시에게 행방불명 된 연인을 찾아 달라고 한다. 자살을 예고하고 갑자기 사라진 여자, 다치바나 료코. 고바야시에 의하면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고.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이름 없는 종교 단체와 더불어 뭔가 기묘한 부분들을 느꼈고, 이상한 예감이 드니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그 여자한테는 뭔가 있다고. 거기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를 걱정하는 고바야시에게 나라자키는 이런 말을 던진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지?"

나라자키는 고바야시한테서 받은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다치바나 료코가 소속되어 있다는 종교 단체를 직접 방문한다. 주위에서는 종교 단체로 보고 있지만 사실 정식 단체 이름도 없고, 종교 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도 않으며, 신자라는 개념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이 그저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생각하는 모임이었다. 그렇게 수상한 종교 단체의 내부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게 된 그의 눈을 통해 우리는 옴진리교 처럼 극단적 종교 단체인 교단 X가 계획하고 있는 사상 최대의 테러리즘에 대해 알게 된다.

그의 말을 들으며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빈곤 박멸을 원하는 젊고 선량한 몽상가. 하지만 그것을 꿈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든 적도 있었다. 사람이 죽어간다. 굶어서 죽고, 대국들에게 조종당해 총탄을 맞고 죽어간다. 그것을 멈추게 하려는 노력이 꿈같은 이야기가 돼버린 세상.

그는 원래 작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이야기를 창조하는 걸 그만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을 창조하기로 했어.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어. 내가 노리는 건 근원적인 뿌리야. 세상을 바꾸겠어."

<쓰리>, <왕국>, <미궁>의 나카무라 후리노리의 신작은 오랜만이었다. 그가 데뷔 10년을 앞두고 발표한 그의 열한 번째 작품 <미궁> 이후로 거의 삼 년여 만에 만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기존의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은밀한 욕망과 숨겨진 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교단 X'의 신자들이 오로지 성적 탐닉으로만 비참한 자신의 존재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야기는 극도로 적나라하고, 선의의 기쁨도, 동정의 가슴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고통의 비명 속에서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교주 사와타리가 신을 원망하며 모든 것이 파멸하기를 바라 그만큼 우울하고 묵직하기도 하다. 인간의 결함을 파고들어 그 영혼마저 지배하는 절대악. 그 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 그 바닥을 살펴보는 나카무라 후리노리의 글은 어느 순간 선과 악의 경계선을 지우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지금 시대에 국가는 추상적인 의미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이용하기 위해서 국가 개념을 사용할 뿐이다. 국민들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만나왔던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은 긴장감 넘치는 추리 소설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철학적인 메세지를 던져주어 인상적이었다. 가벼운 두께의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지만, 언제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느껴지는 여운이 긴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뭐랄까, 나카무라 후미노리 소설 인생의 종합판이라고나할까. 그 동안 그가 고민해온 악과 운명에 대한 탐구가 그 끝에 이른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는 일본의 정치 상황을 교단 X에 투영시켜 동시대를 뒤흔드는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도 무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자의 선이나,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인간의 선.. 그것들이 얽히고 무수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다란 비극을 저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관객으로, 그저 그 현상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짜 비극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나라의 어딘 가에서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이비 종교 집단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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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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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굿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제는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포르노그래피의 질이다.”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이 생각을 훨씬 더 멀리까지 확장해보자. 문제는 의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의식과 지식의 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주체가 갖는 완성도의 질-역대 가장문제적인 기준-에 대해 고려해볼 것을 권유한다. 실제로 미치지 않은, 이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기껐해 봐야 조금 나은 혹은 잠재적인 미치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부정확한 얘기 같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문학 장르로서의 포르노그래피'라는 범위에 대해, 나는 전혀 아는 게 없다. 그런 작품을 접해본 적도 없거니와,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거나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내가 조르주 바타유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는 아마 다들 짐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르주 바타유의 그 짧은 이야기를 차마 버티지 못하고, 뒷부분에 실린 수전 손택의 해설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과 김태용 작가의 해제 '부위의 책'을 먼저 읽어야 했다.  그는 이 책은 '여타의 해설 없이, 그리고 자신의 글도 읽기 전에 머리를 비우고 체험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글을 체험'하라는 말은 굉장히 어불성설 같지만, 이상하게도 바타유의 글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몸으로 체험한다는 것이 더 적합하게 느껴지긴 한다. '머리를 비우고 체험해야 하는' 글이라니 당황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열여섯 살이 된 소년이 시몬이라는 또래의 소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먼 친척 간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서로 알게 되고 사흘 후, 소년과 소녀가 별장에 단둘이 남게 되면서부터 서로에게 탐닉하게 시작하게 된다. 사춘기의 소년에게 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들의 행각은 어찌 보면 '더럽다'고 느껴질 만큼의 수위라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르가슴, 성욕, 성교, 수음, 음경, 엉덩이, 정액 등등... 나는 이렇게나 과도하게 성에 대한 것들을 묘사한 글을 본 적이 본 적이 없다. 엉덩이로 달걀을 깨는 기벽을 갖고 있는 시몬, 마치 이성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소년, 그들의 외설적인 모습들은 그렇게 백여 페이지 이상 이어진다.

 

이 작품은 문학, 미술, 철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전방위적 영역에서 파란만장한 지적 자취를 남기며 프랑스 68혁명 이후 현대 지성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조르주 바타유의 첫 문학적 시도이자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에로티슴 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뚜렷한 결심 없이, 특히 자신이 개인적으로 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것을 잠시만이라도 잊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상상에 의해 꾸며진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자신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매우 음란한', 즉 엄청나게 파렴치한 근원적인 이미지, 폭발이나 착란을 일으키지 않고는 그것을 견뎌낼 수 없는 의식이 그 위에 무한히 미끄러지는 바로 그런 이미지가 일치하는 정신의 어떤 심오한 지점에서, 이처럼 비정상적인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내가 여기에 몇 자를 더 끄적인다고 해도 나는 이 작품을 온전하게 '체험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에로티슴의 거장이라 불리는 조르주 바타유의 자전적 첫 소설을 만났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수전 손택의 날카롭고도 통찰력 있는 글이 거의 바타유의 소설만큼의 비중으로 실려 있기에 그 글을 통해서 이 작품을 느껴보기로 한다. 아마도 수전 손택의 글과 김태용 작가의 글이 없었더라면, 나 같은 무지한 독자들은 이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조르주 바타유, 그가 이 작품 이후 칠 년 후에 탈고한 장편소설<하늘의 푸른빛>은 또 어떤 충격을 안겨줄 지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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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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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모두 습관의 동물이야. 당신도 다르지 않지.

당신은 매일 아침 같은 코트를 걸치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선호하는 좌석이 있어. 어떤 에스컬레이터가 가장 빠른지, 어떤 개찰구로 통과해야 하는지, 어떤 매점 줄이 가장 짧은지 정확히 알지.

나도 당신의 그런 점들을 알고 있어.

...............반복되는 일상은 편할 거야. 친숙하고 안정적이겠지.

안심하게 만들겠지. 하지만 그런 일상이 당신을 해칠 수도 있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사무 업무를 보는 조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다가 광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진지하고 편안한 만남을 원하는 기혼 여성이라는 모토로 간단한 숫자와 웹주소만 기재되어 있는 그 데이트 광고 속 여성의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얼굴로 보였다. 걱정이 되어 집에 도착해 가족들에게 신문을 보여주지만, 누군가 장난을 친 것이거나, 그저 그녀와 닮은 누군가 일 거라고 치부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조 역시 자신일 리 없다고, 자신의 사진을 신문에 내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생각한다.

소매치기 전담팀에서 석 달 동안 근무한 순경 캐시는 다시 지구 치안팀으로 복귀한다. 그런 그녀에게 소매치기 전담팀의 마지막 날 수사했던 피해자에 관한 제보가 들어온다. 피해자의 사진이 <런던 가제트>의 광고란에 실렸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열쇠를 잃어버리기 직전에. 그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 그녀는 자신의 사진도 같은 서비스 광고에 실렸다고 제보하고 캐시는 더 이상 자신의 소관이 아니었지만 사건의 연관성을 깨닫고 수사를 하기 시작한다. 열쇠를 잃어버린 캐시는 얼마 뒤 자신의 집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발견해 열쇠를 바꾸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조는 살인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다가 피해자가 바로 어제 광고에 실린 여성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하철에서, 집에서, 어디서든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뒤쫓고 있다고 느끼면서 점점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그럼 이 남자들은 누굴까?

당신의 친구, 아버지, 형제, 친한 친구, 이웃, 상사들이지. 당신이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사람들이야. 직장과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당신은 충격 받을 거야. 그들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을 테니.

하지만 당신이 틀렸어.

'감시'라는 주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만으로 치부되지 않는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든지 안전을 이유로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까지 더해져 더 이상 누군가의 사생활도 완벽하게 보장받을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반복되는 일상이란 습관이 되어 버려서 매일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위치와 시간, 점심 시간의 이동 경로, 퇴근길과 주말의 행보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행사나 일정이 있지 않는 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지만 편할 것이고, 그 낯설지 않음이 안정적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그런 당신의 일상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면 어떨까. 당신의 그 사소한 습관들을 매일같이 기록하고 감시해왔다면, 그러던 어느 날 늦게 퇴근해서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낯선 발소리가 가까워진다면 말이다. 주위엔 당신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 둘뿐이라면? 생각만 해도 오싹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바로 내일 나한테 벌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니 말이다. 일상의 친숙함이 공포로 바뀌는 그 순간, 이 작품 속 이야기는 현실이 되어 다가올 수밖에 없다.

클레어 맥킨토시는 12년 동안 영국 경찰로 재직하며 범죄 수사과 형사와 공공질서를 담당하는 총경을 지낸 이력을 가진 작가이다. 전작인 <너를 놓아줄게>가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끝까지 범인을 추적하는 경찰들과 비극 이후 완전히 달라져버린 인물들의 풍경들이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달려가는 이야기로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작품 역시 흥미로웠다. 21세기 감시 사회라는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해봤을 만한 문제를 가지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더욱 오싹하기도 했고 말이다. 현대의 감시 사회라는 모티프는 다른 여타의 작품에서도 다뤄진 적이 많은 소재이지만, 클레어 맥킨토시가 전직 경찰이었던 작가이기에 좀더 탄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유독 민감한 요즘이라 더욱 이 작품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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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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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타, 우리 다섯 사람의 나이를 다 합하면, 거의 5백 년이야, 알기나 해? 지금 이게 우리 나이에 할 짓이야?"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매우 우아하고 섬세하기까지 한 노인 판 로빈 후드를 만나게 된다.

은행 강도 연습을 하는 것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절대로 우리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돼. 다시 말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일들을 국가가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개입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해! 이 점을 잊지 마."

갈퀴는 속으로 생각했다. '21세기의 로빈 후드가 되겠다는 거야? 하지만 셔우드 숲속의 영웅이 할망구와 비교되는 것을 좋아할지 모르겠군..............'

전작인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에서 이들 노인들은 다이아몬드 요양소의 운영방식에 반발해 강도가 되기로 결심했다. 누구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강도 짓을 해서 현행범으로 잡히는 것이 목표이다. 피를 안 보고도 충분히 감옥에 갈 수 있는 금융 사건을 계획하는데, 세금도 안 내면서 돈만 모으는 부자 놈들의 돈은 훔쳐도 괜찮으니 그들의 것을 훔쳐보자는 것이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매력 만점의 이 캐릭터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계획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로 모의하는데,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이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글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의 흥미로움이 가득하다. 특히나 메르타, 천재, 갈퀴, 스티나, 안나그레타까지 다섯 명의 캐릭터들만의 색깔도 뚜렷해서 앞으로 이야기가 시리즈로 전개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내가 이렇게 범죄자가 될지는 나도 몰랐는데, 여하튼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 국가가 먼저 나서서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일을 해주었다면 나 같은 힘없는 늙은이들이 이렇게 나서지는 않았을 거야....."

이번에는 스웨덴을 떠나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로 향해 대담하게도 카지노를 털기로 하는 노인 강도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국에서 이미 지명 수배를 받고 있기에 그 동안은 이곳에서 모두들 조심하며 몸을 사려 왔지만, 다른 건 다 참아도 지루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이들이 제대로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다. '부자들은 갈수록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가난해지는 세상에서, 노인 강도단은 가장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돈으로 노인과 청소년 시설, 문화 시설 등에 익명으로 기부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돈이 중간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우연히 획득했던 다이아몬드 마저 세관원과 실랑이를 하다 실수로 잃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새로 구한 그들의 빌라 이웃에는 폭주족 클럽의 두목들이 살고 있었으니, 수상한 노인들과 더 수상한 폭력 조직원들이 엮여서 스토리를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지고 꼬여 재미를 더 해준다. 훔친 돈을 다시 도둑맞고, 실수로 잃어 버리고, 그것들이 더 나쁜 놈들의 손에 들어가 다시 찾아와야 하는 일련의 상황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메세지들이 곳곳에 등장해 웃으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현실과 극중 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이지. 어떻게 해서든 우리 기금에 돈을 집어넣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우리의 선행은 끝이야. 그런데 우린 단 하루도, 아무 잘못한 것이 없는 노인들이 형편없는 환경에서 사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볼 수가 없어. 노인들만이 아니잖아. 노숙자들도 있고 예산이 줄어들어서 쩔쩔매는 학교와 문화 시설들.... 무언가를 해야 돼, 우리가!"

"하지만, 메르타, 우리가 세상 사람 모두를 구할 수는 없잖아! 지구 전체를 구하겠다는 메르타의 갸륵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시작으로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도로시 길먼의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 그리고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까지 노인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작품들을 만나는 일이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졌다. 백세의 알란, 쉰 아홉의 오베, 육십 대 초반의 폴리팩스 부인, 그리고 여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메르타 할머니까지.. 이들은 그 나이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을 만큼의 압도적인 추진력을 자랑하는데, 덕분에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눈 팔지 않고 시원하게 달려나간다. 지루할 틈 없이 그야말로 유쾌하고 상큼 발랄하게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황당무계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설정이 바로 다섯 명의 노인 강도단이 등장하는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가 아닐까 싶은데, 이상하게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들의 이야기에 설득 당하고 만다. 회 양극화와 노인 문제로 차별을 겪은 적이 있었다면, 혹은 유사한 상황에서 분개한 적이 있다면, 그야말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만한 이야기인데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웃길까'를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전개가 이들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어우러져 진심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주요 플롯이 일종의 범죄 소설 스토리라는 점에 있어서는, 다소 황당하다 싶을 정도의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쉽게만 진행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 그런 부분 쯤은 눈감아 주고 싶을 만큼 재미있다는 점이 아마도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가만히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 공포에 굴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당차고 유쾌한 노인들의 모습은 언젠가 내가 나이를 먹어서 되고 싶은 이상향에 가깝기도 하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는 멋지게 나이를 먹는 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주는, 그리고 노인이야 말로 그가 보내온 세월의 두께만큼 현명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게다가 그 와중에 배꼽 빠지게 웃음 폭탄까지 선사하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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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 - 상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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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14(1519) 8. 자연 만물이 그렇듯 바다도 계절마다 제 얼굴색을 바꾼다. 8월의 바다는 진청색이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서 시작된 은빛 물비늘이 파도에 끌려 육지로 가까워지면서 점점 자리를 넓힌다. 열네 살의 소녀 사임당은 짙푸른 바다 위로 쏟아지는 은빛을 황홀하다는 듯 바라본다. 저 청연한 바다색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롯이 빛나는 자연 그대로의 색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자연에서 채취된 색이지만 인간의 손이 닿는 순간 색은 자연 그대로의 빛깔을 잃어버린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고 현재는 대학교의 강사인 지윤, 그녀는 교수 임용을 앞두고 여러 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미술사학계의 실세인 민정학 교수를 위해 그의 집안일이며 연구실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던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오백 년 된 안견 선생의 <금강산도>를 발견한 민교수가 그것이 진품임을 입증하는 논문 작업을 지윤에게 맡기게 된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미술작품을 대하는 안목만큼은 남달랐던 그녀였지만, 말로만 듣던 <금강산도>는 뭔가 이상하기만 했다. 그 의심은 학술회장에서 무심코 내뱉은 대답 때문에 일파만파 커지게 되고, 그 일로 민교수는 이탈리아 학회까지 데려가서 지윤을 위기에 몰아넣고 그녀는 연구원 해직에 시간강사 자리까지 잃어 버리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펀드 매니저로 일하는 남편 민석을 찾는 채권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난리가 난다. 지금 그녀에게 남은 거라곤, 우연히 이탈리아 고서점에서 발견한 사임당 신씨의 일기로 추정되는 고서인데, 그 속에 금강산도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에 진품에 대한 단서가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었다. 어쨌거나 삶은 지속되었고, 사는 동안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현재의 지윤이 그렇게 가정과 직장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야기는 훌쩍 과거로 간다. 때는 중종 14(1519), 열네 살 소녀 사임당이 색에 대한 관심으로 진사댁 자제로서 비단옷을 걸치고도 색을 구하려고 나무를 올라타고 산으로 강으로 들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던 그 시간으로 말이다. 그녀는 진보적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 신명화 덕분에 여자인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안견 선생의 <금강산도>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간 헌원장에서 장난기 가득한 눈빛의 낯선 도령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이겸이다. 그들은 그림을 좋아하는 공통점 덕분에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두 어린 예술가는 서로의 영혼을 이해하고 예술을 견인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시대는 두 연인을 갈라놓고 마는데, 기묘사화의 여파를 무심코 그림에 담았던 사임당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이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임당은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의 엄마가 된 사임당과 첫사랑 이겸이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이어지고, 그들 사이에 질투에 눈이 먼 휘음당과 권력의 화신 민치형이 끼어 들면서 과거사는 파도에 휘청거리며 급 물살을 타게 흘러간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유민들을 바라보던 사임당은 이내 생각에 잠긴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신분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이들은 자신의 처지에 굴복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부와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진 세상을 전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산에 굴러다니는 칡넝쿨이라도 캐서 허기를 달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세상은 바꿀 수 없어도 사람의 인생은 바꿀 수 있다.

현재의 지윤이 발견한 고서를 복원해서, 그 한자들을 해석하는 이야기가 과거 사임당의 일상을 담은 일기로 교차 진행되는 스토리는, 굳이 타임 슬립 소재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만큼 임팩트는 적지만 그 자체로 흥미로운 부분은 많다. 현재의 지윤은 여덟 살 아이를 둔 엄마이고,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모략으로 위기에 처해 있고, 남편이 가정을 어렵게 만들어 시부모와 가족들 모두의 생계를 그녀가 갑자기 떠안게 된 상태이다. 과거의 사임당은 네 명의 아이를 둔 엄마이고, 사랑 없이 결혼한 남편은 벌이가 수월치 않았고, 집까지 날려먹는 등 사고만 쳤고, 그녀의 힘으로 아이들과 함께 폐가에서 겨우 살아내야 하는 처지였다. 지윤은 사임당의 일기를 읽으며 과거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집도 절도 사라지고 나앉게 생긴 처지가 마치 자신의 일 같았고, 사임당의 셋째 아들 현룡은 하는 말이며 행동이 꼭 자신의 아들 은수 같았으며, 일만 저질러놓고 사라진 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지금 자신의 남편 민석과 닮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사임당이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갔을지 다음 내용이 궁금해졌다. 현실이 너무도 참담했고,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눈앞에 놓은 문제는 해결해야 했으니 말이다. 삶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었으니까.

이영애, 송승헌 주연의 드라마 사임당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만 읽어도 왜 사임당 역할에 이영애인지 알 것만 같았다. 사임당이 보여주고 있는 엄마로서의 모습, 예술인으로서의 모습, 아내로서, 여성으로서의 모습들 모두에서 단아하고, 기품 있는 그녀의 선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배우로서 오랜만의 복귀 작이라 엄청난 화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자체의 반응이 막 뜨겁지는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꼭 드라마가 아니어도 이 작품은 소설로서도 그 자체 매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것만 읽어도 누구나 그녀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어머니상으로서의 사임당뿐만 아니라 그녀의 예술혼까지 보여주는 보석 같은 이야기라서 더욱 가치가 있을 테고 말이다. 단순히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임당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렇게 세련된 필치로 풀어내는 방식이라면, 위인들에게 관심 없는 청소년들에게 추천해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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