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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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원 미상의 남자에게 납치되어 외딴 벙커에 갇힌 여섯 명의 사람들, 이라는 설정만으로 자연스레 몇몇 영화들이 떠오를 것이다. 큐브, 쏘우, 더 홀 등등...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더 이상 기존의 그 어떤 작품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케빈 브룩스는 그만큼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을 그려냈으니 말이다.

이봐요, 이 글 읽고 있어요? 만약 그렇다면 신호를 보내 주세요. 천장을 두드리든가 뭐라도 하시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당신하고 연결된 김에 할 얘기가 있어요. 말 좀 할게요. 난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 아주 잘 알고 있죠. 당신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고요. 실은,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내 생각까지 죽이지는 못해요. 생각하는 데 몸이 필요하진 않거든요. 생각은 공기를 필요로 하지도 않아요. 생각은 음식이나 물, 피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러니 만에 하나 당신이 나를 죽인다고 해도, 난 계속 당신을 생각할 거예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난 당신을 생각할 거라고요.

일요일 이른 아침, 열여섯 소년 라이너스는 거리에서 우연히 팔걸이 붕대를 한 시각 장애인을 만난다. 그의 부탁에 가방을 밴 안으로 옮겨주려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고, 다음 날 외딴 벙커에 무참히 던져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방 여섯 개와 부엌, 욕실, 그리고 간단한 가구들과 냉장고, 식기 류 들이 모두 여섯 벌씩 있었다. 다음 날 내려온 승강기 속에는 아홉 살 소녀 제니가 있었고, 이틀 뒤에는 젊은 여자와 덩치 큰 남자, 며칠이 더 지난 뒤에는 경영컨설턴트라는 뚱뚱한 남자, 마지막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노인까지 도착한다. 이제 그곳 벙커에 납치된 사람들은 모두 여섯이다. 감시 카메라와 도청 장치가 설치된 그곳에서 그들은 필요한 물품들을 종이에 적어서 승강기로 올려 보내고 식재료들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탈출을 시도하거나, 감시 카메라를 부수려고 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마다 무언의 처벌을 받기도 한다. 온도를 내리거나, 불이 켜지지 않게 하거나, 음식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제제를 받으며 사람들은 점점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마음을 접기 시작한다. 하지만 라이너스 만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강구한다.   

여섯 명의 서로 모르는 이들은 모두 이유도 모른 채 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한 버스에 타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서로에게 기대려 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서로를 도와주려 하지 않고 말이다. 그들의 삐걱거리는 관계는 열여섯 소년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지만, 소년 역시 원래 그렇게 사람들과 잘 지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 장소가 그를 조금씩 바꿔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납치한 정체불명의 인물은 어느 날 아침 이런 쪽지를 보내온다.

들어라_내 말을: 다른 사람을 죽이는 남자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며, 이들은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는 열여섯 소년이 쓰는 일기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이후 보여지는 몇 장의 여백은 그 어떤 충격적인 단어로 표현된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렇다. 삶이 항상 해피엔드일 수는 없으니까. 나는 이렇게 기가 막힌 결말을 본 적이 없다.

아냐와 같은 사람의 문제는 위험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평생 안락함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그들이 아는 두려움이라곤 작은 것들뿐이다 -- 걱정, 근심, 사소한 것들. 아냐는 아마 한 번도 무엇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진짜로 두려웠던 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벌써 곤경에 처한 것이다.

두려움은 도움이 된다.

두려움은 오싹한 영화를 보거나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두려움은 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주로 청소년 소설을 발표했던 케빈 브룩스가 2013년 발표한 <벙커 다이어리>는 그의 열세 번째 작품으로, 납치되어 벙커에 갇힌 소년이 두 달에 걸쳐 쓴 일기를 그리고 있다. 납치, 폭력, 마약, 고문, 강간, 살인 등 충격적인 요소가 가득하나, 자극적인 소재로 흥미를 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존재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시종일관 내용이 어둡고, 결말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기에 발표 당시 어린 독자들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책 표지에 경고 문구를 넣어야 한다거나 16세 미만 연령에게는 읽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발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훌륭한 어린이 청소년 도서에 주어지는 유서 깊은 카네기상을 이 작품이 받은 것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는 무려 10년 전부터 이 작품을 낼 계획이었으나, 어두운 내용과 결말 때문에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편집자들은 그에게 조금만 밝게,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고쳐 쓰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고,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만약 그가 편집자들의 조언 대로 내용을 고쳐 썼다면 훨씬 오래 전에 책을 출간할 수 있었겠지만, 아마도 지금 이 작품만큼의 찬사는 받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10대 청소년 화자의 순수하고도 투쟁적인 자의식이 느껴지는 케빈 브룩스의 문체 또한 너무도 멋지다. 열여섯 소년을 화자로 설정한 것도 매우 탁월하고, 소년의 사유 또한 너무도 매력적이다. 철학적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자극적인 소재지만 진부하지 않다. 게다가 결말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라우며, 한마디로 그저 굉장하다. 독창성, 재미, 가독성, 문장, 플롯, 캐릭터, 그리고 역대급 결말까지... 모든 항목에서 별 다섯 개! 강추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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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4-3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찜했습니다....

피오나 2017-04-30 23:24   좋아요 0 | URL
ㅎㅎ 탁월한 선택이 되실 거예요. ^^
 
로스트 -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찰스 디킨스 지음, 정의솔 옮김 / B612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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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누군가는 순수문학 작가로 이름 난 찰스 디킨스가 추리 소설을?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의 걸작 <황폐한 집> <두 도시 이야기>역시 범죄, 미스터리 소설의 범주로 읽어야 한다. 그러니 그의 유작이 추리소설이라는 것에 어떠한 의문도 가질 필요가 없다.

삽시 씨의 저택은 하이 스트리트에 위치해 있고 그 건너편은 '수녀의 집'이다. 저택은 '수녀의 집'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고, 군데군데 현대적으로 개축한 흔적은 마치 몰락해 가는 세대가 '흑사병과 열병' 대신 산소와 빛을 갈구하는 듯 느껴진다. 현관에는 실물 절반 정도의 크기로 삽시 씨 부친의 나무 조각상이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가운을 입은 채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으로 서 있다. 그 고상함과 손가락의 모양, 망치, 단상의 자연스러운 형태는 그 동안 감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몇 년 전에 매튜 펄이 <디킨스의 최후>라는 작품에서 실제 찰스 디킨스의 생전 모습과 그의 사후 당시 분위기를 묘사한 적이 있다. 12회 연재로 예정되어 있는 미스터리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 6화까지 집필하던 중이었던 디킨스가 갑작스레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의 신작을 기다리던 출판사가 엄청난 위기에 놓여 미완의 원고를 찾아내 독점 출간하기로 한다. 하지만 원고가 사라지고 그 와중에 살인이 벌어지면서 디킨스의 유작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펼쳐진다. 디킨스가 세상에 남기지 않은 소설의 엔딩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한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역사 추리 소설이라는 타이틀로 나왔던 만큼 디킨스의 말과 행동, 성격까지 실제 있었던 대화와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했다고 해서 화제였던 기억이 난다.

디킨스 사후 수십 년 동안 이 작품과 관련한 새로운 증거들이 등장해 여러 작가들이 그것에 상상력을 펼쳤지만, 작품의 결말을 둘러싼 궁금증은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작품, 논란의 유작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실제 영국의 로체스터에서 발생한 삼촌이 조카를 살해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전해지는 이 작품은 디킨스가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체화시켜 글을 썼다고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악인의 극치로 평가 받는 인물 존 재스퍼를 탄생시킨다. 실종된 에드윈 드루드의 삼촌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존 재스퍼인데, 겉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조카의 약혼녀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너무도 분명한 동기가 있는 셈인데, 탐욕과 광기로 무장한 악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작품이 중단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루져스 씨는 입이 딱 벌어진 끔찍한 형체가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머리 쪽으로 손을 쳐드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 젊은 커플 중 한 명인 선생의 조카는 자신이 예정된 삶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것에 대해 선생이 몹시 실망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며칠 동안 선생한테 그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던 그가 내게 내려와서 그 소식을 선생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은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선생에게 말하고 있고, 그는 떠나고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추가로 실려 있는 <삽시미완의 원고> <작가창작노트> 그리고 <초판표지화>이다. 결말에 대한 단서를 독자인 우리도 추측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엄청난 증거 자료들인 셈이다. 전체 12부를 예정으로 잡지에 연재 중이던 이 작품은 디킨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6부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작품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미완의 원고는 사후 그가 남긴 원고들 사이에서 발견된 몇 장의 종이에 있던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창작 노트는 디킨스가 월간지에 게재했던 다른 소설들을 창작할 때 만들었던 창작노트들과 비슷한 형식을 띠는데, 사실 거장의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굉장히 매혹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이디어, 인물의 이름, 대사 등이 포함되어 있고, 글을 쓰기에 앞서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각 챕터의 방향성과 주 내용도 정리되어 있다.

누구를 범인으로 하고 어떤 결말을 낼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아주 오랫동안 있어왔는데, 애초에 시작부터 디킨스가 작정하고 악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드러나 있긴 하다. 그러니 범인에 대한 추측보다는 미완의 유고가 남긴 미스터리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디킨스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특유의 장광설이야말로 사회적 배경과 인물의 심리와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로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의 소설만 읽어대다 19세기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글을 읽다 보니, 새삼 디킨스가 장황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위대한 작가이지만, 읽어내기가 버거운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쩌면 진정한 미스터리란 바로 이 작품을 두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그 이전에 작품의 존재 그 자체가 미스터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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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8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킨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영혼을 만난 영매사가 미완성된 작품을 마무리지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서프라이즈>에서 본 건데 디킨스 마지막 작품이 오늘날까지 ‘미완성‘으로 알려진 걸로 봐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

피오나 2017-04-28 07:39   좋아요 0 | URL
하핫...그런 얘기도 있었군요ㅎㅎ <서프라이즈>에서 까지 나올 정도이니...그동안 이 미완의 원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ㅋㅋㅋ
 
[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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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누스 시리즈의 그 여덟 번째 이야기이다. 특히나 이 작품은 넬레 노이하우스가 시한부 선고를 이겨내고 2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게다가 타우누스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두 권으로 출간되는 만큼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며, 이야기 역시 가장 큰 스케일과 재미를 주고 있다.

보덴슈타인은 실망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 세상이 거짓말과 허위로 가득했다. 전에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정말 지쳤다. 집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창문 뒤로 헤롤트 부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일상과 비극의 틈새는 얼마나 좁은지! 만일 그의 예감이 적중해서 불탄 시신이 클라우스 헤롤트로 밝혀진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듯했다. 거기다 그의 아내가 받을 배신감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지난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일상의 기억 위에 거짓의 그림자가 여생 동안 짙게 드리워질 것이다.

숲들로 둘러싸인 타우누스 언덕에 위치한 루퍼츠하인 마을, 인근의 숲속 캠핑장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한다. 불탄 캠핑카 안에서 불타버린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그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시한부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던 할머니가 살해 당하고, 그녀를 최근에 만났던 마을의 신부까지 살해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대체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건은 42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보덴슈타인의 과거와 연결되고,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한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사실 보덴슈타인은 연말쯤 1년간 휴직을 할 생각이었다. 정의를 믿고, 규칙과 가치를 믿고, 선과 악을 믿었던 그였지만 지난 몇 년 사이 그가 생각하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신물이 나 엄청난 무력감이 경찰직에 대한 거북함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보덴슈타인과 함께 수사를 해왔던 피아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하며 갑자기 혼자 내버려진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이번이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사건이자, 진한 동료애의 마지막 합작품이 될 거라는 생각에 울고 싶은 심정 마저 들었던 그녀는, 사건의 방향이 보덴슈타인의 과거로 향하자 점점 그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사건 관련 인물들은 전부 그와 아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각자를 둘러싼 소문이나 비밀까지 알고 있는 사이였기에, 객관적으로 사건 맥락을 꿰뚫어보기도 어려워 보였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그들에게 점점 휘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언가 나쁜 기운이 거미줄처럼 마을 위에 펼쳐진 듯했다. 모든 비극이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여겨온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불신과 불안이 독처럼 스며들었다. 소문이 돌고 추측이 난무했다. 살인자가 이방인이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곧 그들 중 하나,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이 마을은 폭발 직전의 적대적인 분위기로 확 바뀌었다. 작은 불꽃 하나만 있어도 금방 폭발해버릴 듯했다.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보덴슈타인은 세월이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불쾌한 상황들을 연이어 떠올리게 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거다. 선천적으로 외톨이였던 그는 패거리 안에서 편한 적이 없었고, 그들 중 몇몇은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집단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소심한 시도는 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고, 겨우 그런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5학년 때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시리즈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면서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과거가 전면적으로 드러난 이번 작품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더욱 비밀스럽고,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피아과 보덴슈타인이 사건의 흔적을 따라갈수록 42년 전의 과거가 점점 수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보덴슈타인의 나이가 쉰넷이니까, 당시는 열한 살, 아니 거의 열두 살이 다 돼 갈 즈음이었을 거다. 현재 사건의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는 실종된 소년은 그와 아는 사이였던 정도가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였다.

보덴슈타인은 형사 생활을 해나갈수록 초창기에 품었던 이상주의를 조금씩 잃어갔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세상에 더 많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젠 그 믿음조차 흔들리고 있다. 정말 좋은 사람이 더 많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단지 자신과 자신 가족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은 것을 기뻐할 뿐, 자신들이 속한 세계의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뭔가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무언의 침묵과 마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공포 앞에서 그들이 연쇄 살인을 멈추기 위해선, 42년 전 그날 숲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밝혀내야만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고, 그들 각각이 어떻게든 관계를 가지고 있어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연결되는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에 대해 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무엇보다 보덴슈타인이라는 인물의 숨겨두었던 내면에 접근하는 이야기라 타우누스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매우 흥미진진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자고로 미스터리는 두꺼워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기에, 두툼한 두 권짜리 분량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진실도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로 보이는 것조차 빈틈이 있을 경우, 또는 맥락을 도외시할 경우 전체 그림을 왜곡할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전체 그림을 봐야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덴슈타인은 절대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없다는 데에 아이러니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의 특별함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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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라이터즈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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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작가라는 설정은 언제나 흥미롭다. 최근 시작한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처럼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쓴 글대로 타인의 운명을 바뀐다면? 타인의 운명을 설계하는 유령작가들의 치열한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미은 씨. 잘 들어요. 내가 하나만 얘기할게요."

"......... 말씀하세요."

"사람이 너무 착하면 좋은 소설가 되기 힘들어요. 소설이란 게 뭐예요? 이야기란 게 뭐예요? 다 주인공에게 일이 터지고 문제가 생기고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고, 그걸 해결하고 그러는 게 이야기의 본질이잖아요."

.............."핵심은, 이야기란 결국 주인공에게 문제가 일어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데, 작가가 너무 착하면 주인공에게 문제를 만들어내기가 무지무지 어렵거든요. 그죠?"

 

시영은 정식으로 데뷔한 소설가이다. 하지만 현재는 남의 작품 대신 써주기, 자서전 집필 등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글쓰기로 겨우 먹고 사는 중이다. 그는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인스턴트 식품보다 못한 음식을 만드는 가짜 요리사. 군대처럼 까라면 까고, 회사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하청업자, 그러니 자신은 그저 가짜라고 말이다. 회사 대표의 이름으로 나온, 시영이 쓴 작품은 현재 인기 웹소설 플랫폼에서 조회수 2회를 기록하며 화제지만, 그건 그의 작품이 아니다. 마감 조금 늦었다고 고료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고스트라이터 신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지만, 당장은 돈을 벌어야 했다. 그 돈으로 시간을 벌고, 번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데, 돈을 벌려고 유령작가 짓을 하느라 정작 자신의 작품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자신을 찾아온다. 2년전 마약 과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오른 뒤 몰락한 배우 차유나였다. 그녀는 시영에게 글을 써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출연하고 싶은 감독과의 미팅 내용을 상상해서 소설로 써달라고. 감독이 그녀를 자기 작품에 출연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 내용으로 그녀의 미래를 그려달라는 거다. 그녀는 자신이 그 글을 읽고 나면, 그대로 이루어 질거라고 말한다. 그는 이게 무슨 황당한 이야긴가 싶지만, 당장 돈이 필요했고 고료를 선입금해준다는 소리에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렇게 감독의 영화를 분석하고 차유나에 대한 동영상들을 찾아본 뒤, 그녀의 미래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얼마 뒤 차유나는 정말 그가 쓴 대로 영화에 캐스팅되었고, 그는 거액의 돈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정작 자신의 두 번째 소설은 전혀 써지질 않는다.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난 오진수라는 인물은 그에게 말한다. "고스트로 사는 동안 넌, 너 자신의 글을 쓸 수 없어" 라고. 시영은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고스트라이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미래를 써줄 자신의 고스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그의 능력을 눈치 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손 강태한에게 납치되고 만다.

대한민국 소설가 중에 총구를 마주했던 사람이 있을까? 총 맞을 뻔한 적이 누가 있을까?

어제는 내게 총구를 겨눈 놈에게 달려들었고, 몇 대 맞긴 했지만 살아남았다. 그래, 살아남았으면 살아남은 것에 대해 쓰면 된다. 작가에게 특별한 경험이란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면 써라.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써라.

나는 썼다.

잠을 깨우던 인쇄 거리의 기계 소리와 오토바이 시동 소리는 이제 내게 노동요가 되었다.

 

당신은 내가 쓰는 대로 살게 된다는 플롯이 미스터리의 시작이지만, 그 속에 작가로서 창작자의 고통도 들어가 있고,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권력욕 속에 현실 비판적인 배경도 녹아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흘러간다. 카카오페이지 선연재 때도 엄청난 화제였던 걸로 아는데, 출간되고 나서는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유명인의 뒤에서 그 사람의 이름으로 자서전이나 연설문 등을 대신 써주는 유령 작가라는 소재는 기존에 영화나 소설 등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소설을 써서 타인의 운명을 설계하는 유령작가라는 소재는 기존에 없었기에 이 작품의 시작점은 매우 기발하고, 흥미롭다. 고스르라이팅의 조건은 대상에 애정이나 분노를 가지고 써나간다면, 이다. 그 말인즉, 고스트라이터가 쓰는 글로 인해 누군가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분노의 감정으로 누군가를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의 진짜 갈등과 클라이막스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스토리가 매우 군더더기없이 그려지고 있고, 단순하면서도 드라마틱해서 바로 영상화시켜도 무리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은 전체 10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장마다 글쓰기에 관한 작가들의 명언들로 오프닝을 열고 있어 '작가'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작가란 무엇인가? 글 쓰는 사람이다. 글쓰기를 계획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책을 요약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자료를 조사하는 것도 글쓰기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들도 모두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E. L. 독터로

극중 오진수가 이야기에 대해 정의를 하는 대목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고로 스토리는 재밌어도 안 되고 웃겨도 안 된다고. 무조건 궁금해야 된다고. 자고로 뭐든 이야기는 궁금해야 하는 거라고. 사람들이 안 보면 되는데도 끝까지 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말대로 이야기는 궁금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궁금함이 최우선일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는 미스터리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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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4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자가 너무 착하면 책에 좋은 소리만 합니다. 책에도 문제가 있는데, 독자가 너무 착하면 그런 생각을 밝히기가 어려워합니다.

피오나 2017-04-24 21:16   좋아요 1 | URL
ㅋㅋㅋ 맞습니다. 너무 불만만 늘어놔도 문제겠지만, 반대로 좋은 말만 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니까요
 
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런 악의 없이, 너무도 사소하고 평범하게, 모든 드라마의 전형적인 시작처럼. 처음에는 다들 주목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수상한 조짐들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비밀도 마찬가지이고. 이 작품은 작은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삶에 대해 묻는다. 과연 당신의 삶은 어떠했냐고.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일이 있어요. 반장님도 아시다시피 저 역시 자신감을 잃고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살아왔어요. 나는 왜 이리 외로울까? 나는 왜 사람들과 쉽게 교감하지 못할까? 나는 왜 내 자신을 믿지 못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신에게 묻곤 했지만 답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아마도 해답이 내가 결코 찾아낼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우린 자주 자신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늘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지만 결국 완벽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고 봐요.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이죠."

퇴직형사 리처드 린빌은 어느 날 한밤중에 유리창이 깨지는 듯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에 신고했어야 마땅한 상황이었지만, 강력계 수사 반장을 지낸 체면 때문에 곧바로 신고하지 않고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41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는 3년 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그 역시 다음 달이면 일흔 살이 되는 고령이지만 금연과 절주를 지속해 아직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게다가 항상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아직 체력이라면 자신 있었고, 위험한 사태에 대비해 권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침입자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고, 3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은 진척이 없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된 케이트가 런던경찰국에 긴 휴가를 내고 스캘비로 내려와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시킨다. 그녀와 아버지 사이가 워낙 각별했기에 아직 그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조나스 크레인은 아내와 수 년 동안 인공수정을 여덟 번쯤 시도했으나 포기하고 현재는 아이를 입양해서 살고 있다. 하지만 클리닉에 다니느라 빌린 대출금도 아직 다 갚지 못했고, 집을 살 때 빌린 융자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다, 아이를 위해 아내도 일을 그만둔 상태라 경제적인 부분에서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파국이 임박한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다 번아웃 증후군을 진단받고 의사의 권유로 가족들과 일주일간의 휴가를 떠나기로 한다. 동료로부터 완전히 외따로 떨어진 지역에 있는 농장을 빌려 잠시나마 세상과 절연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노트북컴퓨터와 휴대폰도 놔두고, 그야말로 아무와도 연락할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행 직전 지난 5년간 한번도 연락 없었던 아들 새미의 생모인 테리가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며, 남자친구인 닐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농장에 가서도 그들이 느닷없이 농장에 나타날까봐 신경이 곤두서있던 조나스의 예감은.. 그대로 실현되고 만다.

"설령 물었더라도 진실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반장님은 제인이 보여주고 싶어 했던 모습만 본 거예요."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갈 때조차도 어두운 실상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

케이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샤를로테 링크의 소설은 거의 모든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이야기들은 매범 범죄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건과 수사라는 플롯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속에 관계된 여러 인물들의 삶과 심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버지를 신에 버금갈 만큼 완벽한 인격체라고 믿고 살아 왔던 딸의 철석같은 믿음에 균열이 가고, 죽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하고, 한 남자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여인도 등장한다. 탁월한 상황 판단력과 뛰어난 직감과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형사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 동료들로부터 언제나 배척당해야 했던 케이트는 알코올중독과 싸우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를 극복한 케일럽 반장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그는 케이트를 동료 경찰의 딸 그 이상은 아니었다.

리처드 린빌의 사건을 수사하는 케일럽 형사와 케이트의 독자적인 수사, 그리고 휴가를 떠난 조나스가 겪게 되는 입양한 아들의 생모와 그녀의 남자친구에 의해 겪게 되는 상황이 교차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처럼 흘러가다 어느 순간 교집합을 이루면서 증폭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실수, 하지만 두려움에 시작된 작은 거짓말, 가족에 대한 애정에 기인한 복수... 사실 따지고 보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 아니었기에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로 명백하게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을 법한 인간적인 동기들이니 말이다. 비록 그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 그것이 결국 몇 사람을 죽이고, 몇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하고,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놓게 되지만.. 사실 그것은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평범하고, 그보다 더 부족하고 허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사소한 이기심으로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책임은 다름 아닌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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