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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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녀석들이 찾아올 때까지 한번 잘 기다려봐." 레이가 말했다.

"네가 그 여자애를 납치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말이야. 네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그 애가 실종됐다는 걸 잊지 마. 사람들이 전부 수상하게 여기고 있어, 알아? 다들 수군거린다고."

아서는 결혼 후 아내인 실리어를 한 번도 고향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십대 시절 벤트로드에서 큰누나 이브를 잃은 뒤로는 절대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을 피해 25년 만에 아서의 가족은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야기는 이들의 여정이 출발하는 첫 단락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시커먼 어둠 속을 달리는 스테이션왜건 속의 실리어와 아들 대니얼, 딸 에비는 트럭을 운전하는 아서를 놓치고 만다. 경사진 듶판을 따라 차를 향해 돌진해오는 검은 형체들의 정체는 텀블위드였지만, 그러다 도로를 가로질러 차 앞으로 뛰어드는 시커멓고 커다란 형체와 부딪칠뻔 한다. 그들이 칠 뻔한 그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혹은 그저 텀블위드나 사슴이나 코요테였는지 알 수 없었던 채로, 그들은 그렇게 벤트로드에 도착하게 된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아서의 가족이 그곳에 이사온 뒤 마을에서 한 소녀가 실종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은 낯선 타인이었고, 그들이 오자마자 소녀가 실종됐기에 그들 가족을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냉담하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오랜만에 만나는 작은 누나 루스와 그녀의 남편 레이의 관계 역시 평탄하지만은 않다. 아서는 작은 누가가 레이의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분노한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아서의 큰 누나 이브를 살해한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에, 당시 그녀를 사랑했던 레이를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루스는 자기 언니를 죽인 인간과 결혼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의심은 생전의 이브와 닮은, 현재 실종된 소녀의 행방에 레이가 뭔가 관여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가 소녀에게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그 와중에 에비는 죽은 고모의 유품에 이상하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대니얼은 아빠의 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에비와 대니얼은 그곳에서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매일 홀로 떠돈다. 아서와 실리아는 끊임없이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왜 그랬을 것 같아? 왜 그렇게 많은 걸 숨겼는지 알겠어?"

"사람은 뭐든 적응하기 마련이에요." 실리어가 말했다. "그렇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면서요. 세상일이 다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지는 거죠." 그녀는 상자로 손을 뻗어 타원형의 매끄러운 구슬 하나를 골라 루스에게 건넸다. "진실이 두렵기 때문이었겠죠."

과거에 벌어졌던 죽음의 비밀, 수십 년간 외면해왔던 고향과 가족들, 낯선 이들이 등장하고 이어진 갑작스런 실종 사건에 대한 의혹,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자의 비밀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작품은 시종일관 불안감을 자아낸다. 플롯 자체만 보자면 살인 사건이 있었고, 실종 사건도 벌어지지만 그에 대한 수사가 벌어지는 부분은 거의 묘사되지 않기에 평범한 일상들이 주를 이룬다. 이야기 자체만 보자면 전혀 스릴러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만큼.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이 어느 순간 쩍 하고 갈라지며 그 모든 평화를 깰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아주 사소하게 시작한 불안이 결국에는 영혼 전체를 잠식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 모자이크를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직조해내는 작가의 솜씨가 그야말로 놀랍다.

로리 로이는 '미스터리 소설계의 오스카상'이라 일컫는 에드거상 역사상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장편상을 모두 거머쥔 작가이다. 에드거상의 육십여 년 역사에서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장편상을 모두 수상한 여성 작가는 그녀가 처음이라고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그 에드거 신인상을 받은 그녀의 데뷔작이 바로 이 작품 <벤트로드>이다. 그녀가 써낸 세 작품 모두 1960년대 전후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 거대한 이야기의 첫 발걸음인 셈이다. '고딕으로 장식된 느와르', '미국 아메리칸 고딕 소설의 새로운 전범'이라 극찬받았다는 말이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이 작품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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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력 - 사람을 얻는 힘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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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처세술이니, 인간관계론이니, 사람공부니 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데 두려움이 없는 편이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조정을 하거나,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도 그다지 어려움을 겪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웬 걸 예전에는 몰랐던 부분들을 이제 더 알게 되어서인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관계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라는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된 내 사람을 얻는 힘에 대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회사에서 팀을 운영할 때도, 개인적으로 모임의 멤버로 활동할 때도 나는 보편적으로 잘 지내는 사람들과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을 구분하는 편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말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내 의견을 믿고 따라줄 수 있는 사람, 진짜 내 사람은 몇 명인지 헤아려 보고는 한다. 사람을 얻어야 전부를 얻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참 쉽다고 생각했던 인간 관계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나이를 먹게 되고, 넓었던 인간 관계가 제한적이 되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갈수록 개인주의적이 되어가는 이 사회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가치관이 흔들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경험이 쌓이고, 시간을 통과할 수록 더 쉬워져야 하는 법이거늘, 거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이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일 거다.

회사에서 엄격하고 꼼꼼한 관리자.

가정에서 자식 사랑이 끔찍한 아버지.

부모님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아들.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꾸러기.

 

다양한 인격을 적절히 사용할수록 건강한 사람이다.

 

항상 똑똑하고 잘나가던 우등생이었던 이 책의 저자는 젋은 시절 자만심에 들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실에 몸담았을 때 지도 교수가 한 말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자네도 수고했어. 참 우수한 학생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붙임성이 없어!" 그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어 평생 동안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는 결점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그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교만과 무의식적인 거만함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점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고, 스스로 결점이 없는 사람이라 믿으며, 결점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려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은근한 교만과 함께 무의식적인 거만함이 뿌리박혀 주변 사람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니 말이다. 스승이 그에게 가르쳐 준 '붙임성'이라는 덕목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과 결점을 인정하고 미숙함을 인정하는 유연함이었다. 그것의 중요성을 깨워준 스승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지택하고 이끌어주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가장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찾으세요.

반드시 그 사람을 좋아하도록 하세요."

놀랍게도 우리는 나와 같은 결점을 가진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싶지만, 그건 우리가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신 인간관계 문제에 부딛 쳤을 때 인간력에 대해 생각해보고, 인간관계가 원활해지는 마음습관에 대해 떠올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다사카 히로시는 인간력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마음 습관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하나. 인정하자,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미숙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인간은 완벽한 사람보다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 단단하기보다는 부드러워져라. 용기 내 솔직하게 먼저 다가가면 상대방과 더 깊이 이어진다.

. 내 안의 작은 자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마음속 작은 자아의 합리화에 넘어가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책임을 떠안는다.

넷.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타인의 결점을 개성으로 받아들인다.

다섯. 말의 힘을 터득하면 관계가 보인다. 내뱉은 말이 내 감정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안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않는다.

여섯. 설사 멀어지더라도 영원히 끊지는 말라.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일곱. 악연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곱씹어라. 불행하고 괴로운 경험을 성장으로 이어나간다.

말로 하고, 머리로 이해하기야 쉽지 직접 실천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쉽겠냐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사람을 만나고 돌아서서 허무함이 든다면,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 문제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렇다면 한번쯤 고민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꼭 필요한 해결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지만,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아 좋았던 것 같다. 인간력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인간 관계에서 얼마나 필요한 능력인지 깨닫게 되어, 이제는 어느 곳에서 누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두려움 없이 시작하게 될 것 같고 말이다. 인간을 수양하고 인간력을 높이는 길이, 고전을 읽는 것도 아니고, 산에 틀어박혀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매일 인연으로 만난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좋은 관계를 위해 발버둥 치며 노력해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인간력'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훨씬 더 나아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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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첩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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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는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수화기를 들었지만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내려놓았다가 귀에 대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방금 전 남자가 부서뜨릴 듯 내려놓았을 때 고장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시간은 벌써 8 30분이 다 되어 있었다. 아무리 서둘러도 옥스퍼드 테라스까지는 15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는 오늘 일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궁금했다.

"술이 간절해 보이는 표정이군." 리버스가 자리로 돌아오자 딕 토런스가 말했다.

"그거 알아, ?" 리버스가 말했다. "내 인생이 블랙코미디 그 자체야."

"그래도 비극보다야 낫잖아, 안 그래?"

리버스는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매듭과 십자가>에서 경찰 15년차인 존 리버스는 파탄으로 끝난 결혼 생활으로 엄청난 자기연민에 휩싸여 있었다. <숨바꼭질>에서 경사였던 그는 경위로 진급했고, 연인이었던 질 템플러 경위와 헤어진다. 브라이언 홈스라는 파트너가 첫 등장했었고 그는 리버스의 집에 와 사방에 널린 책들을 보며 리버스가 책벌레였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이빨자국>에서는 어떤 사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에게는 할 일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읽어야 할 책도, 기록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럼에도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 붙인다. <스트립잭>에서는 하원의원의 스캔들과 더불어 책 절도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데, 희귀서적 절도 사건을 책벌레인 리버스가 맡게 된 덕분에 더욱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리버스는 연인인 페이션스 에이트킨의 집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아파트를 대학생들에게 세를 준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 <검은 수첩>에서 페이션스와의 언쟁 끝에 쫓겨나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마약 거래 혐의로 기소되어 3년을 복역한 그의 동생 마이클이 갑자기 아파트로 찾아와 골방을 내어주게 되고, 그들 형제는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다. 어느 날 리버스의 동료 홈스가 괴한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의식을 잃게 되고 사건을 쫓는 그에게 경고라도 하는 듯이, 동생 마이클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죽을 뻔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리버스는 홈스가 늘 가지고 다니던 검은 수첩에서 수년 전 화재로 사라진 센트럴 호텔에 관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악명 높은 조직의 보스 캐퍼티가 있을 거라 의심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는 선과 악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잔인함이나 욕정 같은 나쁜 생각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교화된 사상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리고 그런 상태로 하루 종일 고문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결국에는 사회에서 행해진 행위로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전혀 헤아릴 필요가 없다. 리버스도 끊임없이 샘솟는 암울한 핏빛 상상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행동으로 그 상상을 넘어설 수만 있다면 기분은 무척 좋아질 것이다. 옳은 일을 한 셈이니까.

참 다양한 시리즈에서 활약하는 형사 캐릭터들을 만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존 리버스에게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집에 언제나 책이 사방에 널려 있고, 서점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며, 책을 수집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캐릭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언젠가 일주일 휴가를 받게 되면 몰아서 읽으려고 아껴둔 책들만 침대 옆에 쉰 권도 넘게 수북히 쌓여 있다.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고, 도스토옙스키에 심취해있는 형사 캐릭터를 그 어디서 만나볼 수 있겠냔 말이다.

특히나 이번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이 중요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이언 랜킨은 시리즈가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들자 몇 가지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검은 수첩>이 그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리버스가 활동하는 장소에 실재하는 거리 이름을 붙여 현실성을 더하고, 기존에 등장한 캐릭터뿐만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앞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내내 리버스와 대척점에 서 있게 될 악당 캐퍼티는 이전 <이빨 자국>에서 인상적인 카메오로 등장했다 이번 작품에서 제대로 된 캐릭터로 자리매김한다. 이언 랜킨은 어떤 면에서 악당 캐퍼티가 형사 리버스와 아주 흡사하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빨리 늙어가고 있고, 변화하는 주변 환경을 못마땅해하는 것도 똑같다며, 그들이 꼭 카인과 아벨, 동전의 양면, 혹은 지킬과 하이드같다고 말이다. 물론 리버스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또 이번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 쇼반 클락 경장 역시 굉장히 매력적이다. 기존에 리버스에게는 이미 조수가 있었지만, 홈스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던 탓에 이번 작품에서 그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캐릭터로 그녀가 등장하게 된다. 상관을 존경하지만 그가 규칙을 무시할 때는 대놓고 화를 낼 줄도 아는 당돌한 부하 형사야말로 존 리버스와 완벽한 케미를 자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말이다. 역자 후기를 보니 이 작품에서 정확히 22년 후 출간된 존 리버스 컬렉션 스무 번째 작품 <황야의 얌전한 개들>에서는 경위가 된 쇼반 클락의 요청으로 이미 은퇴한 리버스가 킬러의 표적이 된 숙명의 라이벌 빅 제르 캐퍼티를 보호하게 된다고 하니, 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물론 그 전에 시리즈 여섯 번째부터 열아홉번째 작품을 모두 거쳐야 만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시리즈는 영국에서 매년 팔려나가는 범죄 소설 중 무려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의 모든 작품은 출간되고 3개월 만에 50만 부 이상 팔려나가며, 3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타탄 누아르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국민작가이자 유럽 범죄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이언 랜킨의 작품들을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면, 이번 <검은 수첩>으로 시작해보시길 바란다. 시크하고 냉소적이지만, 인간적인 존 리버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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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야무진 첫마디 - 속터지는 엄마, 망설이는 아이를 위한
정윤경 외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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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키우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매 순간, 모든 일들이 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초보 엄마인 나는 언제나 실수투성이에 서툴기만 하다.

엄마가 급한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자. 엄마의 관심과 노력은 아이가 바깥세상에서 버텨나갈 수 잇게 해주는 막강한 힘이 된다.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행동과 의사표현을 어떻게 알아듣지? '였다. 밤바다 울어대는데, 기저기도 갈아주고, 수유도 하고, 덥지 않게 온도, 습도 체크해주고 이것저것 확인할 건 다 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자지러지게 울까. 그럴 때마다 초보 엄마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게 마련이니 말이다. 이제는 걸어 다니고, 의사 표현을 하고, 말을 하기 시작하니 '이럴 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훈육할 때는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가 제일 큰 관건이다. 도대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말을 안듣고, 자기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려 하는 시기이다 보니 무서운 표정과 소박한 협박, 그리고 긴 시간에 걸친 설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 투성이다. 별 거 아닌데, 그냥 해버리면 될 일을 아이는 왜 저렇게 싫어하고 안하려고 하는 걸까.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아들 키우는 엄마는 종잡을 수 없는 아들의 행동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어서 딱 미쳐버릴 것 같다고. 그래, 나도 숱한 육아서를 찾아 읽으면서, 경험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입력해두었던 정보와 실제로 겪으면서 체험하게 되는 현실이란 말그대로 굉장하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니 말이다. 우리 아들은 이제 겨우 세 살인데도 벌써 이러니, 앞으로 얼마나 더할까 싶어서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었다. 이 책은 <속터지는 엄마, 망설이는 아이를 위한>이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부모가 당장 상황별로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굉장히 실용적인 팁들을 소개 하고 있다. 훈육의 시작을 알리는 유아기(2~5세),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아동기(6~10세), 독립을 연습하는 청소년기(11~15세)로 나누어 발달의 각 영역별로 일어나는 실제 갈등을 중심으로 부모가 아이와 나눌 수 있는 대화 요령을 담고 있다.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나 양치질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자주 자다 깨서 울 때, 공공장소에서 고집부리며 울다 바닥에 누워버릴 때, 자주 징징거리고 짜증이 심할 때, 기다리지 못하고 고집을 피우며 떼를 쓸 때 등등..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상황들이 구체적인 대화 방법과 대안 제시로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고집을 피우며 떼를 쓸 때, 우선적으로 제지하려는 마음부터 먹었던 나였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왜 그럴까. 라는 생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을 내거나 행동을 제지하더라도 먼저 공감의 표현으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수반되면, 아이가 그만큼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육아의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엄마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이들은 점차 걷고 뛰며 말도 하게 되면서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제지하면 큰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엄마와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 대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은 엄마와 아이 모두 지치게 하지만, 아이의 자율성이 순조롭게 잘 발달하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반가운 전쟁이기도 하다.

책의 후반부에는 양육을 위한 부부 공감 대화와 싱글 부모와 아이를 위한 공감 대화 챕터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특히나 대부분의 양육을 아내가 책임지는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에 양육에 무관심하거나 참여도가 낮은 남편에게 섭섭한 경험이 있었던 엄마들이라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다툴 일이 거의 없는 부부도 갈등의 원인이 되는 건 항상 아이에게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빠와 엄마가 양육에 대한 신념과 태도가 완전히 동일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부부는 아이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다. 아이로 인한 갈등에 부부는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최소한 아이에게는 그렇게 보여야' 하니 말이다. 양육 문제에 대해서 부부는 절대로 완벽한 의견 일치를 볼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단, 아이 앞에서 부부는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통일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양육에서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는 건 잊지 말아야 하고 말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일이 바로 '육아'라 가끔은 누구나 하는 걸 과연 힘들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어려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돈과 경력을 포기할 수 없어 눈물겨운 워킹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엄마도, 종일 집에서 아이만 돌봐야 하는 전업 주부인 엄마에게도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모자라 퇴근 하자마자 집에 와서 제2의 일을 시작해야 하는 워킹맘의 고달픔이야 실제 엄마가 아닌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24시간 아이와 함께 지내느라 온 마음과 시간을 다 투자해야 하는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맘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매일같이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직장 생활을 다시 하는 게 아이를 종일 돌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겠는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 청소해놓아도 바로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집,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한 꺼 번에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엄마들. 하지만 자식들, 남편을 포함해서 가족들은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엄마들도 평생 나를 그렇게 키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든 그저 '당연한' 일이란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족들이 매번 따뜻한 밥에, 깨끗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곧 누군가의 엄마가 될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지 말아야 하고, 육아를 하는 전쟁 같은 이 상황 또한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지 충분히 느끼고, 그 상황을 즐기며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엄마'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굉장한 가이드 라인이 되어 줄 것 같다. 가족 간의 대화라는 것이 별 거 아닌 것 같고, 쉬운 것처럼 보여도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으니 말이다.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주면서, 부모의 생각과 의견은 확실하게 담아 전달할 수 있도록, 아이가 커가는 내내 이 책은 내 곁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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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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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때로 '이야기' '소설'에 매달린다. 최면 상태에서 읽히는 이야기들은 때로 인간에게 운명에 맞서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이야기를 구성하는지, 소설을 새롭게 하고 생명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삶의 가능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야기가 반드시 마음을 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만이 작가가 (삶에서) 과잉의 가능성이 펼쳐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목격할 수 있게 한다. 견딜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시련이야말로 관습이 강요하는 편협한 한계에 싫증 내는 독자들이 기대하는 탁월한 통찰력을 작가에게 줄 수 있다.

이 작품은 첫 소설 《눈 이야기》로 약간의 명성을 얻은 바타유가 그로부터 칠 년 후인 1935년에 탈고한 장편소설이다. 불길한 나치즘에 흔들리고 전쟁에 위협받는 당시 유럽을 배경으로,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주인공인트로프만의 폭력과 죽음, 섹스로 점철된 광기 어린 일상을 담고 있다. 다행이 다소 어려웠던 전작보다는 훨씬 이야기 자체는 어렵지 않아 읽기가 수월했다. 조르주 바타유가 기성에 대한 전복을 열렬히 주창한 좌파 지식인이라는 점을 상기 해볼 때,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물론 이번 작품의 전반적인 이야기 역시 에로티슴을 주축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나 이 작품에서도 변태적 성행위, 엽기적 폭력성, 원초적 광기가 넘쳐나는 포르노그래피로서의 모습을 충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왜 점잖은지 알아요? 무서워하는 거예요, 알아요?"

점잖다는 걸 일종의 존재 방식이라고 말하는 디르티의 말은,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막 내뱉는 말로 흘려 보내기에는 의미 심장하다.

 

갖가지 방법으로 아내를 기만하며 외도를 일삼는 주인공의 일탈 행위는 방탕함과 음란함을 넘어서 시체를 애호하는 시간자에 이르기도 한다. 끔찍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이 전작과 다른 가장 큰 점은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고, 스스로의 행동이 정상적인 삶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한다는 점이다. 착란된 현실 속으로의 짧은 탈선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실제 현실 사이를 오고 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가 비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가, 그가 무척이나 불행하기 때문에, 아마도 고통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고 할까.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쓰레기였고, 내 자신의 악의에 운명의 악의가 덧씌워져 있었다. 언제나 불행을 내 머리 위로 불러들였고, 이제 여기서 죽어가고 있었다. 외로웠고 비겁했다.

그는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상상하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은 멋지게 죽을 거라고. 자신은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거라고. 자신은 누군가에게 살해 당하고 말 거라고 말이다. 마치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그 원동력으로 사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아마도 조르주 바타유는 그를 통해서 죽음을 피하지 않고 긍정하고 사랑하자고 말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형식을 빌고 있으니 분명 허구의 이야기일 테지만,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당시 직접 목격한 유럽의 정치적 상황이 고스란히 깔려 있다. 그가 올려다 보는 하늘의 빛깔, 그 찬란한 하늘의 푸른 빛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한 인간의 사유가 추한 것으로 둘러 싸여 있지만 눈부시게 아름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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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09: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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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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