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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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당신에게 벌어질 일을 다 알고 있는 미래의 자신과 꿈속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뭘 물어보고 싶을까? 혹은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젊었을 적의 자신을 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럼 무슨 말을 하게 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 <>은 인간의 뇌 활동이 가장 활발히 일어난다는 제6단계 수면을 다루는 모험 소설이자 과학 소설이다.

자크의 두 번째 생일날, 카롤린은 깊이 잠이 든 아들 곁에서 우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접했다. <낮에 꿈꾸는 사람은 밤에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흐릿한 시야에서 영원의 틈들을 포착한 그는 깨어나는 순간 위대한 비밀의 문턱에 잠시 머물다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전율한다.> 이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알려진 잠의 세계를 확장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유명한 신경 생리학자인 카롤린은 수면을 연구하는 의사이다. 잠의 세계를 연구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면의 단계를 아주 얕은 잠인 1단계부터, 아주 깊은 잠인 4단계에 이어 5단계 역설수면까지 나누는데, 5단계는 전체 수면 과정에서 아주 기이한 단계이다. 심장 박동은 느리고 체온은 떨어지는데, 뇌는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여 멋지고 환상적인 꿈을 꾸게 만드는 단계이기도 하다. 카롤린은 그 다섯 번째 단계를 지나 그 다음 6단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꿈 너머의 꿈, 콜럼버스의 시대에 탐험가들이 발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녀는 그곳을 미지의 영역, 새로운 영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비밀 실험을 하던 중, 피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피험자는 잠의 대가로 불리는 인도인 요가 수행자였는데, 잠의 5단계까지 너무도 빠르게 집입해 바닥까지 내려갔으나, 6단계에 이르러 갑작스레 심전도와 맥박이 불규칙해지고 심폐 소생술을 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만다. 그 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병원에서 해고 된 그녀는 다음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유일한 가족인 아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카롤린의 아들인 자크는 28세의 의대생이다. 항해사였던 아버지는 자크가 열한 살 때 항해 중에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는 자크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꿈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그가 4단계인 숙면에 이르도록 유도했고, 덕분에 그는 몸과 정신을 고루 사용하며 기억력이 뛰어난 아이가 된다. 그리고 5단계인 역설 수면에 이를 수 있도록 꿈속 여행에 대해 더 가르치면서, 꿈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더 다양한 꿈의 세계를 위해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어 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야뇨증이 생기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꿈의 세계를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를 풀 수 있고, 삶을 바꾸기 위해 자유 의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그렇게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생이자 존경하는 어머니였던 카롤린이 갑작스레 사라져 버리자, 경찰에도 찾아가고, 탐정에게 의뢰도 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자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꿈속에서 20년 뒤의 자신, 48세가 된 자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어머니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며 위험한 상황이니 어서 구하러 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꿈의 민족이라 불리는 수수께기의 세노이족을 찾아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자크는 과연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봤지. 믿음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게 되는 거야. 엄마가 전에 얘기해 줬지? 역설수면 중에 꾸는 꿈이 우리를 다시 진실로 데려다 놓는다고. 꿈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는 선물 같은 거야. 꿈의 메시지는 상징이나 알레고리, 기묘한 이미지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돼. 무의식이 말을 하는 거야. 무의식은 의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해. 그러니까 꿈을, 네가 꾸는 꿈은 믿되 사람은 믿지 마, 이 엄마조차.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자신이 과학 전문 기자 시절에 썼던 자각몽자에 관한 르포였다고 말한다. 자각몽이란 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꾸는 꿈을 말하는데, 아마도 다들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 더 오래 버티고 싶어 잠이 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거나, 꿈속에서 깼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속으로 되돌아간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불면증을 겪으면서 스마트폰에 수면 곡선 분석 프로그램을 깔아 놓고, 수면의 다섯 단계를 밟아 역설수면에 이르며 수면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경험도 역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작품은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만나왔던 소재이다. 베르베르는 꿈 속의 세계를 일종의 신대륙처럼 설정해 환상의 영토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며, 여타의 작품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답게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재미와 흡입력을 보여준다.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그리고 과학적인 정보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해내는 그의 능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제대로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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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고양이
샘 칼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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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뉴스에서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알레포에서 고양이를 위해 사는 남자의 사연을 본 적이 있다. 내전으로 인해 수백만의 사람들이 피난 가는 시리아에서 100마리가 넘는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남자의 사연이었다. 계속되는 내전으로 고통 받는 상황에서 도망가는 사람들이라면 보통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해 시리아 알레포를 떠나지 않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캣맨'이라고 불리는 그였다. 그 뉴스를 보면서 새삼 남자들이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는 걸 깨달았는데, 이번에 바로 그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작 뉴턴, 마크 트웨인, 윈스턴 처칠, T.S.엘리엇, 레이먼드 챈들러, 어니스트 헤밍웨이, 말런 브랜도, 앤디 워홀, 칼 라거펠트,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과학자부터 작가, 정치가, 배우, 미술가, 패션 디자이너까지 각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던 이들은 얼핏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캣맨이라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미술가, 작가, 과학자, 철학자 등 수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서재와 스튜디오를 고양이들과 공유해왔다. 이 책은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위트 넘치는 설명, 그리고 역사 속 캣맨들의 명언을 담은 아트북이다. 고양이에 매혹된 남자들과 그들의 고양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뮤즈와 짧지만 강렬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유명한데,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의 뮤즈는 그가 무척 아끼는 털이 긴 샴 고양이 슈페트다. 그는 77세라는 늦은 나이에 캣맨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개를 좋아한다고 말해왔던 그가 친구의 고양이를 봐주다 슈페트와 사랑에 빠졌다고. 디자이너 식기로 라거펠트와 함께 점심과 저녁을 먹고, 슈페트가 하는 행동과 기질을 매일 일지에 기록하는 개인 집사가 두 명이나 있다고 할 정도이니 뭐 그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것이다. 오죽하면 라거펠트는 슈페트가 자신의 첩이며, 합법이었다면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10년 동안 미국을 떠돌며 술을 마시고, 잠시 피클 공장에서 일하고, 우체국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한 부코스키는 마흔아홉 살이 되어서야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폭력적이고 생생하며 때로는 다정했던 그의 시들에는 햇볕을 받으며 조는 고양이, 자동차들 아래를 돌아다니는 고양이, 새를 잡아먹는 고양이 등 고양이 수십 마리가 등장한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나눈 인터뷰에서 "기분이 나쁘면 그냥 고양이를 보라.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고양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고양이를 많이 키울수록 더 오래 산다. 고양이가 100마리 있다면 10마리 있을 때보다 10배 더 오래 살 것이다." 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주로 힘든 삶을 거칠게 그그리기로 알려졌던 그가 말년에 아내와 여러 고양이와 함께 살았을 때는 굉장히 감상적인 글을 썼다는 것만 보아도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들 옆에서 저녁 식사하기를 좋아했던 윈스턴 처칠. 그가 임기를 두 번 수행하는 동안, 그의 고양이들은 치열한 환경에 꼭 필요한 가벼움을 제공했다. 탱고, 미키, 넬슨 등 그가 그린 여러 고양이는 손님들에게 필수적인 직원으로 알려졌다. 고양이를 무려 19마리나 키우기도 했던 마크 트웨인도 있다. 그는 '먹이를 잘 먹고, 적절한 돌봄과 사랑을 많이 받는 고양이가 없는 집도 어쩌면 완벽한 집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배우 말런 브랜도의 고양이 사랑 역시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인 캐릭터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영화 <대부>의 오프닝 장면에서 등장하는 고양이는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고. 현장에서 코폴라 감독이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로 착안을 했는데, 브랜도는 고양이가 추가되어 무척 좋아했지만,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그의 대사 대부분은 오버 더빙해야 했다고 한다.

 

인상주의 대표 음악가로 꼽히는 모리스 라벨은 <어린이와 마술>이라는 오페라에서 고양이 연인 두 마리를 등장시키는데, 그들은 뮤지컬 <캣츠>에서 만큼이나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그는 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는데, 그들 고양이는 피아노 위에 앉아 20세기 프랑스에서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인 라벨의 뮤즈가 되어 주었다. 고양이하면 하루키도 빼먹을 수 없다. 그는 여러 소설을 쓸 때 고양이를 대동했다. 그의 이야기는 우물 바닥으로, 고립된 도서관으로, 다차원적 호텔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는데, 그 속에서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말할 수 있고, 고양이들은 대답한다. 팬들의 질문을 받는 임시 웹사이트에서 한 독자가 잃어버린 고양이 찾는 법을 조언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고양이는 가끔 그냥 없어집니다. 주위에 있을 때 사랑해주고 고마워해아 합니다"라고 답했다. 과연 하루키 다운 대답이 아닐까 싶다.

아이작 뉴턴은 최초로 고양이 문을 발명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윈스턴 처칠의 집에는 아직도 그들이 키웠던 고양이들의 후손이 있다. 윌리엄 S. 버로스와 앤디 워홀은 고양이에게 영감을 받은 책을 썼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성들 중에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천재성과 유산에 고양이의 기여가 있었다. 찰스 디킨스는 '고양이의 사랑보다 더 큰 선물이 무엇인가'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들의 고양이에 대한 무한 애정 공세는 그들의 삶과 그 궤적을 같이 해 감동을 주기도 한다. 샘 칼다의 감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일러스트 또한 캣맨들의 삶과 그들의 명언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그렇게 고양이에 대한 순수하고 끈질긴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서른 명의 유명인들은 고양이가 인간의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멋들어지게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더없이 훌륭한 이 아트북을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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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7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읽은 뉴턴 위인전에 고양이 문을 만든 일화가 있었어요. 뉴턴이 어미 고양이가 출입하는 문, 새끼 고양이가 출입하는 문을 따로 만들었어요. 뉴턴의 친구가 그걸 보고 어미와 새끼 모두 출입 가능한 문을 만들지 않느냐고 지적하니까 뉴턴이 다시 고양이 문을 만들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

피오나 2017-06-17 08:19   좋아요 0 | URL
그 내용이 뉴턴 위인전에도 있었군요ㅎㅎ 이 책에도 뉴턴의 고양이 문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어요^^
 
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 괴물학자와 제자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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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하기도 어려운 '몬스트러몰로지'는 인간에게 대체로 적대적이며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특히 신화나 전설의 산물로 여겨지는 생물을 연구하는 학문 혹은 그런 존재를 사냥하는 행위라고 한다. 그러니 제목인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괴물학자와 그의 조수, 즉 안트로포파기라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종족을 연구하고 사냥하는 자들을 지칭한다. 흥미로운 것은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문서와 작품에서 실제로 어깨 밑에 머리가 자라는 종족 안트로포파기가 등장해왔다는 점이다.

안트로포파기가 우리들 바로 옆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은 굶주려 있었다. 나는 엘리자 번튼의 머리카락이 놈들의 우물거리는 턱 아래로 흘러내리던 모습을 뇌리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악몽에서 뛰쳐나온 듯한 괴물들이 저 밖을 배회하고 있는데, 어째서 저런 낡은 책이나 뒤지고 지도나 보고 거리나 재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 당장 주민들을 모아 놈들을 잡으러 가거나, 아니면 적어도 놈들이 습격해 올 경우를 대비해 방어벽이라도 세워야 하는 게 아닌가. 안트로포파기가 어떻게 뉴예루살렘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수수께끼를 풀 시간은 놈들을 없앤 뒤에도 충분할 텐데. 무엇보다 지금은 우리의 목숨을 구하는 게 시급하지 않은가. 나는 의아했다.

 

이야기는 액자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극중 작가인 릭 얀시가 자신이 서기 1876년에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일기를 입수하게 된다. 취재를 위해 요양원 원장과 알게 되었고, 최근에 사망한 입주자였던 노인의 소지품에서 두툼한 공책 열세 권을 발견했는데, 그에게 친척도 없고 신분증도 없었던 탓에 그것이 가족 친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냥 미친 노인이 끄적인 소설인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백서른 한 살이었던 그가 과거에 겪었던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그의 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12세 고아 소년 윌 헨리와 그의 괴팍한 스승인 괴물학자 펠리노어 워스롭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도굴꾼이 박사를 찾아와 시체 한 구를 넘겨주는데, 그것은 머리가 없는 식인 괴물인 안트로포파기의 습격을 받은 소녀였다. 박사는 보통 서른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짓는 안트로포파기의 습성을 알고 있기에, 원래 미국에 서식하지 않는 그것들이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인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인간을 잡아먹는 사람과의 직립보행 동물인 안트로포파기는 머리가 어깨 밑에 자라는 종족이라는 설명으로 셰익스피어에도 등장하는 괴물이다. 키는 2미터에 팔은 길고 다리는 굵고 튼튼하며 몸의 색깔은 시체처럼 희멀겋다. 머리가 없는데, 가슴에 뻥 뚤린 구멍이 있으며, 단단한 근육질의 가슴 아래 위치한 입, 눈은 어깨에 붙어 있는데 눈꺼풀은 없고 눈동자 전체가 새까맣다. 안트로포파기는 인간의 가장 고결한 장기인 뇌를 선호한다. 그리고 안트로포파기의 가장 놀라운 특성 중 하나는 새끼들을 거의 맹목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인데, 그들이 결코 제 새끼를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 그들 종족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난폭하고 무자비한 공격을 일삼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리고 연약한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이야말로 인간이 그들과 전쟁을 치를 때 공략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 고독하고 별난 인물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세상에서 제일 난해하고 비밀스러운 학문에 평생을 바쳤건만 세상천치 알아주는 사람 하나, 기억해 주는 사람 하나 없고 그럼에도 이 세상 모두가 너무나도 큰 빚을 지고 있는 천재 과학자. 인간미나 다정함이라고는 단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고, 타인의 마음은커녕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열두 살 소년의 심정도 헤아릴 줄 모르는 작자였다! ...........그는 얼버무리지 않았다. 상투적인 위로나 진부한 사탕발림도 늘어놓지 않았다. 그가 나를 구한 것은 내 목숨이 그에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내 목숨을 구했다. 앞으로도 자신의 야심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심지어 자비를 베풀 때에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사람이었다.

 

12세 소년 윌 헨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 박사의 괴팍하고 이상한 부분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도 전달이 된다. 소년은 자신의 스승처럼 귀신이나 유령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았지만, 박사의 곁에서 안트로포파기의 실체를 직접 경험하고는 겁에 질린다. 오로지 아버지가 박사의 조수였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갈 곳 없는 그를 데리고 있는 박사는 자상하지도, 너그럽지도 않지만, 소년은 그를 거의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 어떤 잔인한 상황 속에서도, 무슨 끔찍한 일을 벌이더라도 항상 조수가 곁에 있어야 하는 박사이기 때문에 소년은 어린 나이에 말도 안 되게 무서운 모험들을 겪게 된다. 시리즈가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윌 헨리의 모험과 성장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러브크래프트와 스티븐 킹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5침공>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릭 얀시의 대표 시리즈이다. 19세기 말엽 미국을 배경으로 괴물학자라는 색다른 직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으로 4부작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기괴하고 유머스럽지만 오싹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 요즘 같은 날씨에 더위를 한 방에 날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밤에 읽으면 오싹함이 배가 되니, 꼭 캄캄한 밤에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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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시간, 그 너머 - 원자가 되어 떠나는 우주 여행기
크리스토프 갈파르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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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해본 적이 있는가? 고층건물 꼭대기 층의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고? 그랬다면 이미 죽었을 테니까. 나 역시 그런 짓을 했다면 죽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걸까?

답은 간단하면서도 신비하고 심오하다. 인류가 지구와 하늘의 작은 일부를 지배할 수 있게 된 이유가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 별을 보고 온 이유도 그 안에 들어 있다. 또한 자연의 법칙이 그 답과 관련되어 있다.

달랑 우리 몸 하나로 저 먼 우주를 여행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한, 시공을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것은 머릿속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정보를 운반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가능하다. 크리스토프 갈파르는 인간의 정신이 그려낸 우주를 여행하는 화자가 되어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억 개나 되는 새로운 은하들을 지나치며, 별들이 폭발해서 초신성이 되는 모습도 보고, 광대한 우주 공간에서 비인간적인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광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핵의 온도가 섭씨 1600만이나 되는 태양의 안쪽으로 들어가보기도 하고, 지구에서 100억 광년이 넘는 거리에서 최초의 별들조차 태어나지 않았던 우주 암흑시대를 여행하기도 한다.

스티븐 호킹의 직속제자이자 차세대 천체물리학자 크리스토프 갈파르는 과학에 전혀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도 쉽게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마치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이 책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그저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가볍고, 편안한 방식으로 접근해도 오늘날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알아낸 우주를 여행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가 현대 물리학으로 현실을 파악하게 된 과정이라고 하면 뭔가 딱딱한 수식이 가득할 것만 같지만,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식이라고는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방정식 단 하나에 불과하다. 전 세계가 극찬한 천체 물리학 입문서이자, 대중 과학서의 걸작이라는 평가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걸, 단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빅뱅, 블랙홀, 암흑 물질에서 상대성이론까지... 차세대 천체물리학자가 알려주는 우주의 신비는 매우 놀랍고도, 황홀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아인슈타인도 생각실험을 많이 이용했다. 그는 빛의 속도가 고정된 한계속도라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해보았다. 자신이 광자 위에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그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던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들어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 책에서 내가 타고 여행했던 비행기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비행기가 400년 뒤의 미래에 도착하게 된다. 이것도 역시 ''으로 증명되었다.

직관은 지금까지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준 상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지만, 100여 년 전부터 수많은 새로운 발견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처럼,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에 나타나는 우주가 '지금'의 우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매혹적이면서도 설레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밤하늘의 우주는 과거의 한 조각이며, 그 과거는 지구에 있는 우리 때문에 지구를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말도 된다. 크리스토프 갈파르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이웃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물건들도 모두 자기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자기 우주의 중심에 있고, 우리는 우리에게 닿는 빛을 통해 그 우주를 탐사할 수 있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들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우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저 지금 있는 곳에서 빅뱅과 그 너머까지 바라볼 수 있고, 눈 깜짝할 사이에 700만 년 전의 과거에 도달하고, 또 한 번 눈을 깜박이며 6500만 년 전에 가 있고, 또 한 번 눈을 깜박하며 40억 년도 더 전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20억 년 정도를 더 거슬러 올라가 출발할 때 보았던 우주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우주가 보이는 지점에서, 지구가 태어나기 50억 년 전으로, 그리고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역시 암흑시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천체물리학자인 크리스토프 갈파르의 인생 목표가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대중들에게도 최첨단의 과학 지식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한 게 아닌가 싶다. 인류의 역사를 빛낸 위대한 과학자들의 실험 방법으로 우리를 우주와 시간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쉽고, 친근하고, 재미있다.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과 양자물리학, 그리고 중력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쉬울 수도 있구나 놀라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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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증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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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신작 '저체온증'이 출간되었다. 형사 에를렌뒤르 시리즈로 국내에 출간된 순으로는 네 번째 작품이다. 그 동안 국내에 <저주받은 피>, <무덤의 침묵>, <목소리>가 출간되었었고, 이 책들은 모두 절판 상태이다. 그리고 무려 8년 만에 만나게 되는 새로운 에를렌두르 시리즈라니.. 감격스럽다!!! 에를렌두르 시리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서늘하고 슬픈, 북유럽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게다가 경찰소설로는 독특하게도 사건 수사 자체보다 주인공의 내면 묘사가 큰 비중을 차지했던 시리즈들이기도 하다.

"아들 일과 관련해서 무슨 소식이 있소?" 노인이 커피를 반쯤 마시고 나서 물었다. "새로운 소식은?"

"아니요, 죄송하지만 새로운 소식이 없습니다." 에를렌뒤르는 지금껏 몇 번을 반복했을지 모를 대답을 재차 했다. 그는 노인의 방문을 자기에게 떨어진 시련으로 여기지 않았다. 에를렌뒤르 입장에서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다른 부분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자기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지옥을 안겼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어떻게 아무 소식도 없을 수 있는지 되풀이해서 말하는 노인의 항변을 묵묵히 듣는 것 말고는 달리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 여성이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된다. 각별한 사이였던 어머니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많이 힘들어했다는 주변의 증언과 정황들로 그녀의 죽음이 그저 평범한 자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는 마리아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에를렌뒤르 형사에게 강력하게 주장하며,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마리아가 영매와 나눈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를 준다. 범인을 잡고 처벌하는 것보다, 남겨진 무고한 사람들에게 다시 진짜 삶을 돌려줄 답을 찾아내는 게 수사의 진짜 목적이라고 믿는 에를렌뒤르는 동료들 몰래 혼자 수사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그 스스로도 마리아가 살해됐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는 그저 그녀가 자살한 이유가 알고 싶었다.

 

아이슬란드의 고독한 형사 에를렌뒤르.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고독과 자책감에 귀 기울이며, 넋두리 같은 원망을 듣는 일을 지겨운 시련으로 여기지 않는 형사. 기꺼이 사라진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수호천사가 되고자 하는 남자. 무려 삼십 년 전에 실종된 아들의 부모가 여전히 에를렌뒤르를 찾아온다. 아들 소식이 없나 해서 경찰서에 들른 것이다. 당시 경찰은 그들의 아들이 실종된 사건 관련하여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하지만 에를렌뒤르는 그 사건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에게는 그 어떤 사건도 과거의 그것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겨진 이들에게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자살한 여자의 남편과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앉아 대화를 주고받는 남자, 죽은 이들과 사라진 이들과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지극히 사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자, 그렇게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 모두가 그에게 개인적인 상처와 슬픔이 된다.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형사 생활이 위태로워지지 않습니까?"

"이 사건은 손에 잡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이, 의심에 의심만 쌓인 사건입니다. 근거로 삼을 것이라곤 파편들뿐이죠. 제게는 단순한 연결 고리들이, 나중에 발생한 사건들을 잇는 일종의 배경이 필요합니다. 이야기 속 간극을 채워야 합니다. 그들의 재정적인 배경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이런 부탁을 드리는 이유는..... 범죄행위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이런 부탁을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도 모르는 추악한 범죄를.... 요주의 인물이 저지르고..... 상황을 모면한 듯 보입니다. "

신기하게도 이 작품은 그렇게 시종일관, 아무런 단서도 없이 홀로 마리아의 삶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해 조사를 하는 에를렌뒤르 형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경찰이 수사가 아니라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조사하는 내용이 거의 책 내용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죽게 되면 남겨진 이들은 자책한다. 내가 그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그때 내가 어떻게 했더라면 지금 뭐라도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에를렌뒤르가 수사를 하는 목적이 바로 그것에 있다. 마리아의 친구와 주변인들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고통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그들에게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어 주기 위해서. 왜냐하면 이미 죽은 이는 그 어떤 대답도 들려줄 수 없으니까. 남겨진 이들은 답을 찾지 못하는 한, 영원히 그 죽음을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은 직업인으로서 경찰이 겪는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경찰 조직을 스쳐 지나가는 배경 정도로만 남겨두고, 곧장 주인공 에를렌뒤르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그렇게 경찰 수사의 디테일과 조직 내 구성원으로서의 고뇌 등을 덜어내는 과감한 선택을 통해, 주인공의 개인적 고통과 사적인 불행이 그의 직업과 어떤 식으로 연관을 맺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독특한 미스터리가 만들어진다. 살인과 죽음이 아니라,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경찰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평생을 상실감과 고통을 안고 견뎌야 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경찰 역시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는 특별하다. 이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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