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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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헤밍웨이, 피델 카스트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럼, 시가 등등.. 쿠바를 대표하는 단어에는 낭만적 상상이 가득하다. 하지만 실제로 쿠바에 가 본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고, 우리에게 낯선 나라이긴 하다. 낭만과 현실은 다른 법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 소설가 백민석이 홀연히 쿠바로 떠난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 책은 소설가 백민석이 쿠바에서 느꼈던 감흥을 2인칭 시점으로 담백하게 풀어놓은 여행기이다. 쿠바라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도 궁금하지만, 여행 에세이가 마치 소설처럼 2인칭으로 쓰였다는 것도 굉장히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장치는 이 책을 흔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일종의 소설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줄테니 말이다. 

 

쿠바는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멀고 낯선 나라에 속한다. 문득 바다 생각이 낫다고 해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3개월 이상의 준비가 필요한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과 수교가 안 돼 있어 정식으로 여권 비자를 받는 게 아니라 별도의 여행자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를 가진, 덥고, 습한 나라이다. 소설가 백민석, 그는 대체 왜 많은 나라 중에 쿠바를 다녀오게 된 것일까.

 

 

"아바나 어때?" "멋져. 정말 멋져." 쓸데없는 대화다. 아마나에 대해서라면 당신의 언어는 무력하고, 백 마디의 말보다 사진 몇 장이 더 효과적이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백민석이 직접 찍은 것들이다. 그는 여행 초반에 카메라를 잃어 버렸고, 쿠바의 어느 점포를 가도 팔지 않는 카메라를 포기하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로 한다. 그리고 나머지 멋진 풍경은 플래시 메모리 대신 자신의 기억에 담아 가기로 하고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원료로, 그에 어울리는 글을 덧붙이는 과정으로 쓰인 이 책은 단순히 여행지에서의 감흥을 끄적인 에세이라기 보다는, 사진이 곁들어진 짧은 단편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는 쿠바의 아바나를 다섯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에서 찍은 사진의 순서를 뒤섞어서 무작위로 배치한 뒤, 사진의 차례가 정해지는 대로 글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난 뒤, 백팩을 메고 산책을 하고 나서, 플로리다 해협에 지는 낙조를 보며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런 일상을 보내면서 그는 아바나의 하늘이며 구름이며 바다며 방파제며 그 무엇도, 자신이 그 동안 알던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자주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는 덥고 습한 나라에서, 그는 그렇게 고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매일같이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수시로 쏟아지는 장대비는 그치다 말다를 반복하고, 태양은 눈을 찌를 듯이 화끈거리게 덥기만 하다. 하지만 그곳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아바나'였고, 계획 없이 쏘다닌다 하더라도 아바나는 그를 심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곳이었다. 무작위로 길을 떠나 걸음을 멈추면 그곳이 가볼 만한 곳이 되고, 어제 걸었던 길을 또 걸어도 또 다른 볼거리가 나타난다는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백민석은 석 달이라는 긴 여행 동안 아바나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사실 아바나를 걷는 일은 아바나 시민들도 때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뙤약볕은 현지인에게도 견디기 힘든 것이고, 부채를 이마를 가려도 햇볕은 가볍게 뚫고 들어온다. 아바나에서는 서늘하게 그늘진 골목을 찾는 일이 어렵다고 한다. 모든 좁은 골목마다 격렬하게 뜨거운 미친 태양의 볕이 가득 차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바나에서 끝없이 걷는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아바나에 대한 독서 행위나 마찬가지다. 낱말을 읽듯 집집마다 기웃거리고, 행간을 읽듯 골목마다 헤집고 다니고, 문단을 읽듯 지역을 훑는다. 나중엔 책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듯 아바나 전체를 알게 되거나, 알게 되었다고 자신을 속이게 된다.

 

쿠바는 햇볕이 강하고 대기오염이 적은 탓에, 카메라로 피사체를 겨냥할 때마다 명암의 멋진 대비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셔터만 눌러도 사진이 되어 나온다는 그곳에서, 소설가 백민석의 사진도, 마치 전문 포토그래퍼가 찍은 것처럼 근사하다. 스펙터클한 대자연의 장관이 언제나, 다양하게 펼쳐지는 나라. 그곳에선 태양도, 구름도, 파도도, 하늘도, 당신이 알고 있던 그것이 아니다.

 

 

백민석은 처음 한 달 동안 그 낯선 나라에서 가이드북 없이 다녔다고 한다. 한 번도 사전 계획 없이, 스케줄을 짜지 않고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이런 낯선 나라에서 무계획으로 여기저기 떠도는 여행이라는 것이 어떨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는 덕분에 늘 길을 잃었고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미지의 것들과 부닥치며, 쿠바라는 나라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는 말한다. 당신이 아바나를 싫어할 만한 이유는 쌔고 쌨다고. 스페인어를 모르면 식당에서 곤란해질지도 모르고, 게다가 외국인에게는 이중 환율제를 적용하고, 동남아의 찜통더위하고는 또 다른 미친 태양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은행 자동 인출기를 써야 하는데 비자 카드가 없다면 또 큰 곤란을 겪게 되는 나라이다. 그러니 당신이 한국에서와 독같이 생활하고 싶다면, 아바나가 싫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저런 영혼의 족쇄를 훌훌 벗어던질 수만 있다면, 당신은 아바나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쿠바는 쉽게 상상하는 관광지로서의 나라가 아닐 거라는 느낌이 점점 강해지면서,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한번쯤 여행을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 간다.

 

 

사실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에 가서 일부러 짬을 내 현지 시민들의 일상을 둘러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리는 외국에 자주 나가는 편이 아니고, 여행을 가서도 그다지 길게 머물지 못하니, 이름난 곳부터 둘러보게 마련이니 말이다. 나 역시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든 비슷한 경험을 해 왔다. 그런 내게 이 책 속 여행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색다르고, 매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가고 싶은 여행지 하면 주르르 떠오르는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있지만, 단 한 번도 쿠바를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마음은 어느새 반쯤 아바나로 향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계절, 일상을 벗어나, 잠시 자신의 삶을 놓아두고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쿠바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 미친 태양이 작열하는 그곳에서 당신은 예상보다 훨씬 뜨겁고 눈부신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바나는 그런 곳이니까 말이다. 낭만과 현실은 다르다. 그러나 아바나에는 그것을 뛰어 넘는 무언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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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8-06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바도 좋고, 아바나도 좋고, 백민석도 좋고, 이 글도 좋군요. 백민석의 에세이라... 낯설긴 하지만 무척 땡기는군요

피오나 2017-08-06 14:37   좋아요 0 | URL
혹시 쿠바 가보신적 있으세요? 저는 여행지로 단한번도 꿈꿔보지 않은 나라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가보고 싶어졌어요ㅎㅎ
 
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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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캐릭터, 마음 속을 다 헤집어 놓는 것 같은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내면에 감춰진 것을 끄집어 내는 초현실적인 공포까지... 시리즈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멋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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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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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처럼 살고 있군,' 루스 스캐펠리는 생각한다. 여덟 명을 죽이고 몇 명인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로큰롤 콘서트장에서 수천 명의 십 대 소녀들을 죽이려고 했는데 여기 이렇게 앉아서 전담 직원이 가져다 주는 밥을 먹고, 병원에서 빨아주는 옷을 입고, 면도까지 남이 해 준다. 1주일에 세 번씩 마사지도 받는다. 1주일에 네 번씩 스파에 가서 뜨거운 욕조에 몸도 담근다.

도널드 트럼프 같다고? .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 어느 사막의 족장의 삶에 더 가깝겠다.

이야기는 7년 전 그날, 메르세데스 킬러가 등장했던 그 순간에서 시작한다. 시티 센터 채용박람회 참석자들 사이로 차를 몰고 돌진해서 여덟 명의 사망하고 열다섯 명이 중상을 입었던 그 사건이 막 벌어지고 난 뒤의 상황과 남겨진 피해자들로 시작한 데는 다 의미가 있다. 시리즈 첫 작품의 오프닝을 조금 다르게 변주하면서, 바로 그 메르세데스 킬러가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콘서트 장에서 대규모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려다 홀리에게 머리를 맞고 식물인간인 채로 보호 감호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가.

메르세데스 사건으로 인해 전신 마비 환자가 되었던 마틴 스토버와 그녀를 돌보던 노모가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마도 어머니가 범인인 것으로 추정되는 그 현장에서 홀리는 재핏이라는 구식 게임기를 발견한다. 이상한 것은 그 집에 사는 두 여 자 중 한 명은 나이가 80에 가깝고, 나머지 한 명은 게임은커녕 전등 스위치도 켤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호지스와 홀리는 연이어 벌어지는 의문의 자살 사건들과 구식 게임기와의 관련성을 추적하다, 일련의 상황들이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디 하츠필드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브래디는 여전히 뇌 손상 병동에서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지만, 호지스는 그가 의식은 멀쩡한 게 아닐까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브래디야 말로 자살 설계자이자, 자살 전문가였으니까 말이다.

이 사건은 이게 다가 아니에요! 절대, 절대,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들은 깔개 밑으로 쑤셔 넣고 진짜 이유도 숨기려 들잖아요. 실은 메르세데스 킬러 때문에 찜찜하게 은퇴한 당신과 다르게 피트는 이 사건을 훌훌 털어 버리고, 언론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없이 홀가분하게 은퇴식을 치르고 싶어서 그러는 거면서. 나는 이 사건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당신이 그걸 안다는 것도 알고, 당신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정말로 걱정이 되기 때문에 당신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 줬으면 하지만 그 딱한 엄마하고 딸은.......그렇게........어디로 쑤셔 넣어 버려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스티븐 킹은 이번 작품에서 게임기를 통환 최면, 그리고 웹사이트를 통해 퍼져나가는 연쇄 자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청소년들의 자살 문제나 게임 중독,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다룬 작품이야 기존에도 많았었지만, 스티븐 킹이 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시리즈는 그의 첫 추리소설이었지만, 이번 작품은 그의 장기인 공포, 판타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이다.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과정은 매우 비현실적이라 어쩐지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특히나 브래디가 게임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조종하는 장면들은 굉장히 무시무시하다. 자살에 이르게 되는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약점과 불안한 환경들 틈 속으로 들어가 내면의 어둠을 바깥으로 이끌어 내어 표출하게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오싹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 진짜 공포는 피가 난무하는 것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속의 어둠이니 말이다. 과연 췌장암 말기 판정으로 시한부를 선고 받은 호지스는 이번에도 브래디의 대규모 자살 도미노 계획을 막을 수 있을까. 

스티븐 킹이 생애 첫 탐정 추리소설로 집필한 <미스터 메르세데스> 시리즈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빌 호지스 3부작은 첫 작품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시작으로 외전격인 2 <파인더스 키퍼스>를 거쳐 이번에 출간된 <엔드 오브 왓치>를 끝으로 완간 되었다. 미스터리와 호러가 어우러져 시리즈의 피날레를 멋지게 끝맺었기에, 빌 호지스의 마지막이 덜 아쉽게 느껴진 것 같다. 스티븐 킹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캐릭터, 그리고 마음 속을 다 헤집어 놓는 것 같은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내면에 감춰진 것을 끄집어 내는 초현실적인 공포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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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토어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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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침실이며 욕실, 주방, 다이닝룸까지 다 있잖아요. 이게 집이 아니면 뭐겠어요? '모두를 위한 집', 들어봤죠? 사람들은 여기에서 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놀이방에 맡기고 구경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하루를 보낸다고요.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요. 여기가 당신에게는 집이라고요."

오르스크는 스칸디나비아풍을 표방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거대 가구 회사이다. 이케아보다 싼 가격으로, 더욱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겠다는 슬로건으로, 이케아의 모조품 버전으로 어마어마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228명의 정규직 직원과 90명의 시간제 직원으로 이루어진 파트너들은 새로운 물건을 채워 넣고, 상품을 쇼룸에 배치하고 고객들을 맞이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정교하게 고안된 오르스크의 이 시스템에 사소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직원 전용 출입구 옆에 부착한 직원카드 리더기가 멈춰버린 것이다. 결국 직원들은 고객 전용 출입구를 사용해 출근을 해야 했다. 몇몇 불안한 징조는 전부터 있어 왔다. 몇 주 전 직원 몇 명에게 '살려줘요!'라는 메시지가 전송되었던 것이다. 번호를 차단하거나 통신회사에 문의했지만, 누구도 그 메세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난 6주 동안 매장에서 갖가지 사소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했다. 아침 근무팀이 매일 아침 손상된 가구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파손된 제품이 꽤 늘어나 더 이상 쉬쉬할 수만은 없어지자, 지점장은 은밀히 조사할 것을 부지점장 베이즐에게 지시한다.

베이즐은 신중하고 책임감이 강한 루스 앤과 회사에 불만이 많지만 타지점으로 전근하려는 에이미에게 야간 추가 근무를 제안한다. 루스 앤은 애사심이 강해서, 에이미는 전근 신청을 승인해주겠다는데 혹해서 추가 근무를 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밤 10시에 모두들 퇴근하고 조용해질 때까지 휴게실에서 기다렸다가 순찰을 하기로 한다. 누군가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누군가 정말 매장에 침입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낮 동안 그곳은 어떤 면에서도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건물로 가구와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이었지만, 밤이 되고 복도에 넘쳐나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건물 뒤편 사무실에는 불이 꺼지고, 마지막 고객이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뒤 문에 걸림 장치가 채워지고 나면, 그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아마도 회사에서 밤샘근무를 해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괜히 공포 영화에서 어두운 밤 회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곤 하겠는가. 과연 그들이 어두운 밤 쇼룸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무엇일까. 스토리는 전형적인 유령의 집 이야기처럼 진행되기도 하고, 예상 외의 전개로 독특한 유머를 발산하기도 하면서 달려간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거의 다 왔는데......'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랬다. 그녀는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녀는 평생 뒷걸음질 치고, 포기하고, 남보다 뒤떨어졌다. 손대는 것마다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 책은 대놓고 이케아를 패러디하는 것만큼 책의 판형부터 잡지 카탈로그처럼 널찍하고, 배송서비스 신청서, 쇼핑몰 지도, 상품 일러스트와 소개, 쇼핑몰 광고까지 실려 있다. 처음에 책을 보고는 이게 대체 소설인지, 정체가 뭔지 의심스러웠을 만큼 신선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소설의 매 챕터는 오르스크에서 판매하는 상품 일러스트와 색상, 사이즈, 제품번호 등이 기재된 상품 설명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소개된 상품이 해당 챕터의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상품들은 멀쩡한 제품들로 시작해 점점 공포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물건들로 아무렇지 않게 바뀌어 오싹함을 주고 있다.

예전에 이케아 매장을 처음 가보고는 그 엄청난 규모와 꽉 찬 사람들의 규모에 놀랐던 적이 있다. 굉장히 큰 규모의 건물과 창고형의 넓은 매장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이리저리 치이느라 제대로 물건을 고르지도 못했고 말이다. 물론 '이케아' 하면 산뜻한 색감의 디자인과 실용적인 가격이 메리트라, 신혼부부나 독신인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 체감하긴 했다. 그래서인지 '이케아의 모조품 버전'이라고 작가가 소개하는 이 작품의 배경인 오르스크의 매장 규모와 스타일이 어느 정도 상상이 되어서 그 공포감이 더 다가왔던 것 같다. 출입구와 각종 가구로 둘러싸인 쇼룸, 주차장과 사무실 등등 작가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공간은 물론 가상의 그것이지만, 실제처럼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독자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은 책의 외형과 구성만큼이나 색다른 호러물이 아니었나 싶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코드도 있고, 공포물을 싫어하는 이들도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산뜻한 커버도 한 몫을 하고, 무엇보다 술술 너무도 잘 읽힌다. 코미디와 호러의 경계 그 어딘가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그 오싹한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그 동안 만나왔던 그 어떤 호러 소설과도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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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도서관 - 호메로스에서 케인스까지 99권으로 읽는 3,000년 세계사
올리버 티얼 지음, 정유선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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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세계사를 책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너무도 매력적이다.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짚어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지만, 무엇보다 그 시간들을 문학을 통해서 읽어낸다고 하니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무생물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한 사람이 시신의 뼈로 인형을 만들고, 생명을 넣게 되며 시작한다. 이 괴물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창조한 사람' '창조된 것'은 죽음에 이르는 대결을 하게 된다. 이 원작에는 이후 무명의 창조물이 계속해서 더해졌고, 오독이나 오해가 늘 따라다니게 됐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창조자의 이름이지만, 현재는 대부분 창조된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지칭해 부르고 있다. 또 창조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라고 알려졌지만, 책 속에서 그는 한낱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프랑켄슈타인>은 모두가 알고 있거나, 더 정확히는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삶이 문학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간단 테스트'라는 항목으로 15가지 문항이 작성되어 있다. 1~5개는 문학적 삶을 살 가능성이 있고, 6~10개는 꽤 문학적인 삶을 사는 사람, 그리고 11~15개는 완벽히 문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란다. 나에게 해당되는 문항은 13, 나의 삶은 문학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결론. 하핫. 자신도 모르게 책에 빠져들어 읽다가 목 결림, 수면부족 등으로 몸이 힘들었던 적이 있다거나,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거나, 문학 작품에서 파생된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본 적이 있다거나.. 이 책은 그렇게 삶이 곧 문학인 이들에게는 완벽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문학적 삶을 꿈꾸게 만들만한 환상적인 가이드가 될 테고 말이다. 비밀의 도서관이라는 매혹적인 제목만큼이나 설레 이는 서두로 시작하는 책 속으로 그렇게 들어가 보았다.

다양한 장르의 책에 관해 생긴 질문을 탐구하고,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하며 시작되었다는 저자는, 잘 알려진 책의 덜 알려진 면을 밝히는 것과,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우리 주변의 세계와 놀라운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도서관 책장 뒤로 넘어가 대체로 잊힌 책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간과된 사실을 갖고 있는 책들에게 집중한다. 역사 속의 책에 대해 분류하고, 그리고 있기에 카테고리는 시대 별로 나뉘어져 있다. 고대,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낭만주의, 빅토리아 시대, 그리고 미국, 유럽,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문화적 사건을 개략적으로 다루고 있어 3,000년 세계사를 한 번에 읽을 수 있기도 하다. 호메로스, 이솝, 유클리드부터 단테,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을 거쳐, 찰스 다윈, 루이스 캐럴, 마크 트웨인, 그리고 빅토르 위고, 레프 톨스토이, 프란츠 카프카, 안네 프랑크에 이르기까지 총 99권의 책을 통해 읽는 세계사는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다

 

1897, 고딕소설의 팬들은 한 편의 소설에 특히 열광했다. 어둡고 스모그 자욱한 당시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영국 동부에서 막 런던으로 온 수수께끼 같은 이방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인물이다. 다양한 인물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 소설은 동성애, 과학적 발견, 런던에서 일어나는 범죄 등의 주제로, 후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에 교묘하게 다가간다. 이 책의 초판은 빠르게 매진됐으며, 계속 인기를 끌었고, 1919년 영화화됐다.

위 설명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아니라, 적어도 당시에는 <드라큘라>보다 더 많이 팔렸지만 지금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에 관한 묘사다.

읽는 사람은 없어도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책인 기하학원론,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방귀 뀌는 악마,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쓴 최초의 극작가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 최초의 탐정소설은 뭐였을까. 그리고 탐정 홈즈를 만든 단 하나의 책,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3주 만에 소설을 쓴 피츠제럴드, 법정에서 온갖 욕을 하게 만든 책, 채털리 부인의 연인 등등 목차만 읽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항목들이 가득하다. 원래 제목이 '끝이 좋으면 다 좋다'였던 <전쟁과 평화는> 잘 알려지기는 했지만 끝까지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 대단한 소설 중 하나다. 흔히들 이 소설을 역사상 가장 방대한 분량의 소설로 여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이 역사적 기록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만큼이나 대단한 일은, 톨스토이가 아내와 이별하기 40년 전, 이 작품을 쓸 당시 아내 소피아가 원고 전체를 손으로 일곱 번이나 필사하면서 그를 맹목적으로 도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랫동안 아내를 멀리하다 이별했고, 며칠 뒤 폐렴으로 기차역에서 사망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작품이 쓰인 당시의 뒷 이야기, 숨겨진 배경, 실제 출간된 시점의 시대적 반응, 역사적 가치, 작품이 가진 의미 등 역사적으로 뿐 아니라 문학사로서도 이 책은 매우 가치가 이다.

책이란 것이 '위대한 문학 작품'이거나 '읽고 싶어도 시도할 시간이나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소설'일 필요는 없다. 책이란 생각보다 더 실용적인 것일 수 있고, 서양 역사에서 책이 지니는 중요성은 더 폭이 넓고, 그것들이 실제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익숙하거나 망각된 책들로 가득 찬 상상의 도서관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그저 아무 페이지나 들추고 잠깐씩 멈춰서 구경하더라도 당신의 삶이 문학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당신의 삶은 문학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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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8-01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스타필드 도서관에서 사진 찍으시는 센스! 아무페이지나 들춰서 구경하더라도! 이 문구 맘에 드네요

피오나 2017-08-01 09:13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딱 스타필드 도서관이 떠오르더라고요ㅋㅋ

cyrus 2017-08-01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897년에 나온 소설 제목이 궁금하군요. 저는 발표연도와 내용을 보자마자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라고 생각했거든요. ^^

피오나 2017-08-01 11:06   좋아요 0 | URL
리처드 마시의 <딱정벌레>라는 작품이래요ㅎㅎ 전형적인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 공포소설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품입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