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현대작가들 A To Z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앤디 튜이 그림, 정윤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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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대한 현대미술가들 A to Z』, 『위대한 영화감독들 A to Z』에 이어 『위대한 현대작가들 A to Z』가 출간되었다. 앤디 튜이는 이 중에서 이번 책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52명을 고르느니 차라리 520명을 고르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20세기를 빛낸 작가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어려웠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1871년에 태어난 마르셀 프루스트이고, 가장 젊은 사람은 1954년에 태어난 가즈오 이시구로다. 되도록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읽히는 작품을 쓴 작가들, 수십 년 이상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작가들을 선별하고자 했다고 한다.

앤디 튜이가 그린 작가들의 초상화는 매우 독특하다. 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일러스트에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선이 단순하고, 색채도 심플해서 보자마자 바로 시선을 사로잡는 다고 할까. 작가의 모습 뒷면에 그린 배경 도한 분위기를 절묘하게 살려주고 있는 감각적인 이 초상화는 바로 다음 페이지에 실려 있는 작가들의 실제 모습 사진보다 더 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은 그렇게 마야 안젤루를 시작으로 슈테판 츠바이크, 시몬 드보부아르, 가즈오 이시구로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까지 52명의 주요 현대작가들의 초상화와 그들의 작품 세계, 삶, 그리고 중요한 가십거리까지 실려 있는 입문서의 역할을 해준다.

사뮈엘 베케트는 어느 날 밤 파리에서 집으로 걸어가던 중 돈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걸인의 칼에 찔렸다. 이후 감옥에 있는 걸인을 찾아간 베케트는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었다. 걸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누군가 인간 행동의 동기에 대해 묻는다면 베케트가 내놓을 답 또한 걸인의 말과 같을 것이다.

베게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기이한 모습에 대한 이유가 베게트 자신의 삶에서 있었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짚어내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작가들의 약력을 정리하고 대표작을 수록한 책이 아니라, 작가들의 삶에서 있었던 인상적인 에피소드와 작품 세계를 포인트만 잡아서 간결하게 설명하고, 그 중 꼭 읽어야 할 주요 작품들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유별한 취미나 성향에 대한 팁도 실려 있어 아기자기한 재미도 주고 있는 책이다.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나. 나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방인>의 첫 문장은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을 간단히 압축해서 보여 준다. 인간은 고독 속에 갇혀 있고 나머지 인류와 동떨어진 채 소외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나 숨통을 조이는데, 만약 이런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에 대한 또 다른 사실은, 그가 자신의 애완 고양이를 '담배'라고 부를 정도로 소문난 애연가였다는 것. 그리고 축구를 아주 좋아했으나 결핵 판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으며, 그가 맡은 포지션은 골키퍼였다고. 그의 할머니는 축구화가 더러운 날에는 손자를 야단치곤 했다고 한다. 카뮈가 감정과 감각이 결여된 작가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실제로 그의 문장들이 무미건조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축구라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스포츠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서 의외의 면이 보이기도 한다. 독자들을 죽음과 절망 속으로 이끌고는 했던 그가 동료들과 축구를 하며 골을 막았을 때 환호성을 지르고 땀을 흘리며 뛰는 모습이란 어쩐지 상상이 잘 되지 않기도 하니 말이다.

그 밖에도 필립 K. 딕이 쌍둥이로 태어난 여동생을 생후 6주만에 잃은 경험 탓인지 '또 다른 자아'를 잃은 것 같은 감각이 그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이나, 윌리엄 포크너가 군대에 자원했으나 키가 16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대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나, 헤밍웨이가 말년에 지독한 피해망상에 시달려 급기야 자신을 몰래 따라다니는 스파이가 있다고 믿었으며,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전기 충격 치료를 열다섯 차례나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이후에 정말로 미국 내에서 헤밍웨이를 염탐하던 KGB요원이 있었음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이야기 등등.. 작가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작가들의 거의 모든 작품은 자전적인 것에서 출발하거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가 살아온 환경과 겪어온 경험들이 직, 간접적으로 작품에 투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나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을 써왔던 작가라면 더욱 그들의 배경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오게 된 거구나. 라고 수긍을 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들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연표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에서는 작품 속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장에서는 작가의 가장 드라마틱한 삶의 한 순간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작가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순간만 포착해서 간결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보니, 한 마디로 지루할 틈이 없는 작가 입문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앤디 튜이의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일러스트 때문이다. 굉장히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이고, 작가들의 성격과 특징을 사진보다 더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는 그의 초상화들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완성도가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라면, 앤디 튜이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해보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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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서 - 이민혜 그림 에세이
이민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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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무심코 받은 적이 있다. 일상적인 몇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곁에 있던 남자친구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물었다. 누군데 전화를 그렇게 받느냐고. 별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무뚝뚝한 말투와 신경질이 묻어난 대답, 짜증 섞인 표정까지... 나는 회사에서도, 친구들에게도, 연인에게도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엄마에게만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왜 엄마는 이기적이고 틱틱거리기나 하는 딸을 아끼고, 챙기고, 사랑하는 걸까.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정말 사근사근한 말투와 상냥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누군가도, 자신의 엄마와 통화할 때만큼은 나랑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왜 우리의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걸까. 또 우리는 왜 매번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다 허용되고 묵인되는 거라고 이기적으로 생각해왔던 걸까.

 

이민혜 작가의 그림 에세이를 보면서, 나는 새삼스레 엄마에 대해 생각해본다.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가 매 페이지마다 내 마음을 쿡쿡 찔러 댄다. 유쾌하고 시니컬한 모습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들이지만, 함께 있는 글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은 엄마를 잊어 버리고 사는 당신에게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는 걸까.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라고. 왜냐하면 그 누구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자식을 통해서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고, 내가 이렇게 옹알이를 하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보았겠구나. 하며 자신이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되면서 다시 한번 더 자식이 되어, 내 부모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이 내가 속을 썩일 때마다 한숨처럼 내뱉던 그 말, "너도 너랑 똑같이 닮은 자식 새끼 낳아봐라. 그때는 내 마음 알 거다."라는 대사가 비로소 체감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당연하게'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는 존재가 엄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엄마의 입장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족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어찌 보면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는 그냥 처음부터 엄마인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이가 어디있겠는가.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손해보면서도 티내지 않고, 억울해도 참고, 힘들어도 아닌 척 하고.. 그렇게 정해져 태어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가 얼마나 자식들을 힘들게 키웠는지..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내가 속 썩이고 걱정끼치는 건 생각지 않고, 오로지 엄마가 하는 잔소리만 듣기 싫어 하면서, 나중에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면 저런 소리 안 해야지하는 생각 따위는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엄마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불면증에 시달리는 건, 아직도 여드름이 올라오고 배가 나오고 못생긴 건, 마음에 들었던 소개팅 남에게서 연락이 없는 건, 클라이언트의 지나친 언사에 매번 말 한마디 못 하는 건, 마감이 코앞인데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건!

", 엄마 때문이야!"

못난 딸의 분노는 왜 늘 엉뚱한 방향으로만 향했을까.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뱃속에 있을 때의 태동이 어땠는지를 기억하신다. 하도 요란하게 엄마 배를 발로 뻥뻥 차서 길을 걸어가다 깜짝 깜짝 놀라서 멈춰야 했다면서 말이다. 처음으로 젖을 떼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썼고, 그게 싫어서 아기였던 내가 어떤 얌체 같은 행동을 했었는지, 등에 엎고 시장에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틈이 싫어서 사람들을 하도 꼬집어대서 미안해했다는 사연까지.. 엄마는 그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아직 생생하게 내가 아기였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계셨다. 매우 유순한 편이었던 동생과 달리, 나는 어딜 가도 맘에 드는 걸 사달라고 떼쓰며 보채는 고집쟁이였던 터라 엄마를 매우 힘들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엄마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져있다. 이런 게 바로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인 것이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았지만, 절대 억울하지도 그 시절이 불행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이 모든 걸 생각하면서도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짜증섞인 말을 내뱉고 말았다. 대체 나는 언제 철이 든 듬직한 딸이 되는 걸까.

 

어느 일요일 아침, 이불을 널기 전에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힘껏 털 때마다 이불과 함께 나도 날아갈 것 같았다. 팔과 어깨가 뻐근해왔다. 남편이 문득 말했다.

 

"엄마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나는 대번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이토록 끝없이 반복되는 고된 집안일을 엄마는 어떻게 몇 십 년간이나 혼자 해왔단 말인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 청소해놓아도 바로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집,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엄마들. 하지만 자식들, 남편을 포함해서 가족들은 엄마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엄마들도 평생 나를 그렇게 키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든 그저 '당연한' 일이란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족들이 매번 따뜻한 밥에, 깨끗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엄마를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사는 게 급급한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곁에 엄마가 있다는 걸, 엄마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이젠 엄마 옆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딸이라서 더 서운했던 것들, 엄마라서 더 안타까운 것들, 그것들이 한데 섞여 원망이 되고 후회가 되었던 시간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세상의 모든 딸들과 모든 엄마들이라면 비슷한 상황들을 경험해왔을 것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애하느라 정신없다고, 사는 게 녹록치가 않아서,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를 챙기느라, 어쩌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엄마라는 존재를 미뤄왔던 게 아닐까. 나부터 미안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굉장히 뭉클하고 감동적이고,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그리고 있지만, 이민혜 작가의 그림들은 매우 기발하고, 유머스럽고, 예리하고 날카롭다. 가끔은 너무 적나라한 표현에 서글퍼지고, 또 가끔은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혼 전 불평 많고 철없는 딸과 그런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일상과 딸의 결혼 후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만나는 딸과 엄마의 일상들은 이거 전부 내 얘기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감 또 공감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제 가끔은 뒤 돌아서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소녀같은 감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세월이라는 무게가 서글퍼지기도 한다. 

수십 년 전에도, 몇 년 전에도, 평일에도, 주말에도, 어제도, 오늘도.. 하루도 빠짐없이 가족들일 위해 밥을 짓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제는 미안한 감정도 든다. 우리들을 위해서 엄마의 청춘이 다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 이제는 어른이 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된 나에게 아직도 얼굴만 보면 밥 먹었냐고 챙기는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맙고 먹먹해서 말이다.

내일은 엄마에게 꼭 말해야겠다.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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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7 - 민폐 삼형제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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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캐릭터로 너구리가 등장했었는데, 이번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는 두식이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마성의 고양이가 등장한다. 그것도 개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무서운 고양이 누님이다. 나는 개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어릴 때 한번 고양이도 한 식구였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 고양이는 다른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고, 오로지 처음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먹을 거리들을 주었던 아빠 곁에만 가서 몸을 비비고 앉아 있곤 했다. 어린 마음에 원래 고양이란 애들은 저렇게 도도하고, 예민해서 다가가기 쉽지 않은 동물이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딱 그런 이미지의 고양이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다. 팥알이, 콩알이 처럼 귀여운 사고뭉치가 아니라, 진짜 예민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고양이.

시바견 두식이가 처음 등장부터 자신이 고양이인 줄 알고 있다거나, 고양이를 다른 개들보다 더 좋아하는 이상한 개로 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인 고양이와의 에피소드는 더욱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개를 싫어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개의 만남이니 말이다. 하핫.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수수께끼의 신원불명 회색 고양이는 콩고양이 콤비만 챙기고, 두식은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운 눈빛으로 달려든다. 우리의 순딩이 두식이는 그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과연 이들의 동거는 어떻게 진행될까.

대부분의 개와 고양이들은 식탐이 많은 편이다. 물론 먹고 싶은 걸 충분히 먹을 수 없고, 정해진 사료만 먹어야 하다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마담 복슬이 팥알이, 콩알이, 두식이에게 사료를 챙겨주어서 식사를 다 하고 난 뒤, 고양이 집사가 등장해 이들에게 다시 밥을 주는 장면이 있다. 식사를 하고도 배가 고팠던 콩알이는 자신이 언제 밥을 먹었냐는듯 맛있게 먹지만, 팥알이랑 두식이는 대충 먹는 시늉만. 식욕이 별로 없나 싶어 하는데, 마담 북슬이 등장해 한 마디 한다.

어랏? 좀전에 다들 먹었는데?

?! 속았어..........

하핫. 나도 개들을 키우면서 늘상 겪어 왔던 상황이라 너무 웃겼다. 방금 먹어놓고도 안 먹은 척 밥을 부어주면 또 허겁지겁 먹어대던 토토가 생각나서 한참을 웃었다. 그래서 가끔 끼니를 제때 챙겨주지 못하도록 오랜 시간 외출할 경우에는 밥을 두 끼 분량으로 한번에 채워 주는데, 거의 대부분 끼니마다 양만큼 먹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끼 분량을 다 먹어 버린다. 아마 대부분의 개들이 그럴테지만 말이다.

시바견 두식이가 등장하면서부터 집동자귀신아저씨와 산책하는 장면이 주기적으로 보여지는데, 중대형견 이상 크기의 개들은 산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활발한 성격과 에너지를 바깥에서 어느 정도 분출을 하는 게 좋기 때문인데, 우리 집 개 토토도 코카스패니얼이라는 중형견 이상의 크기라 산책을 꼭 시켜야 한다고 들었었지만 그만큼 해주지 못했다. 함께 사는 동안 매일같이 출근한다는 핑계로, 퇴근 후에는 피곤하다고, 주말에는 데이트나 약속이 있다고 미루고 귀찮아했던 거다. 그 점은 아직도 토토에게 미안하다. 이제는 토토가 나이가 많아서 가끔 나가는 산책에도 힘겨워 할때가 있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두식이가 산책길에서 발견한 나뭇가지에 집착하는 모습도 토토를 보는 듯해서 재미있었다. 토토는 아주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조그만 코끼리 인형을 지금은 할아버지 뻘인 나이가 되어서도 물고 빨고 좋아한다. 아마도 처음 애착을 가졌던 대상이라 그런 걸수도 있고 말이다. 암튼.. 두식이가 애착을 가지게 된, 사실 아무도 관심없어 하지만 다들 탐낸다고 생각하는 그 나뭇가지에 관한 에피소드는 유쾌하기도 했지만 추억이 많이 떠올라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식구 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내복씨인데, 정말 볼품없는 외모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등장하지만... 그 누구보다 팥알이, 콩알이를 챙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의 열네번째 콩깍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정말 뭉클했다. 팥알이와 콩알이가 가르릉대면서 내복씨 옆에 가서 부비부디하다 무릎에 올라 앉으니, 그걸 지그시 바라보던 두식이도 무릎에 털썩 안긴다. 그 모습을 보고는 지나가던 안경남이 말한다.

너네 뭐니? 완전 다닥다닥 붙어선.

허허. 너도 어렸을 때 곧잘 내 무릎에 앉아 있었잖누.

안경남이 꼬마였던 시절, 내복씨도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저씨의 모습이었던 그 시절말이다. 손주들은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릎에 안기길 좋아한다. 물론 이미 어른이 된 안경남은 내가 그랬었나 하며 기억도 못하지만, 내복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애들은 어찌나 눈 깜짝할 새에 자라는지 정말 아쉽다고 말이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그런 내복씨에게 우리가 있잖아. 하면서 안기는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인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내복씨의 손주들처럼 보였다.

묘령의 여인 고양이 그레이가 등장하고, 고양이 집사를 비롯해 식구들은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며 반기지만, 어쩐지 두식이만은 안절부절이다. 그저 지나가면서 보기만 해도 예민한 태도를 보이며 찌릿찌릿 눈빛을 보내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레이였기에, 그레이와 팥알이, 콩알이가 엄마와 아기처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며 두식이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급기야는 내복씨 옆에서 자리를 잡지도 못해, 오밤중에 집동자귀신아저씨 품에서 자려고 자리를 잡기도 하고 말이다. 과연 센언니 그레이와 두식이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까. 앞으로 이들 가족에게 벌어질 에피소드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처음 등장부터 자신이 고양이인 줄 알고 있다거나, 고양이를 다른 개들보다 더 좋아하는 이상한 개로 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인 고양이와의 에피소드는 더욱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개를 싫어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개의 만남이니 말이다. 하핫.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수수께끼의 신원불명 회색 고양이는 콩고양이 콤비만 챙기고, 두식은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운 눈빛으로 달려든다. 우리의 순딩이 두식이는 그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과연 이들의 동거는 어떻게 진행될까. 개와 고양이를 과연 한 집안에서 키울 수 있을까. 라는 편견을 단 번에 깨트려주는 두식이와 팥알이, 콩알이였는데... 이제 그런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해버리는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다. 과연 그레이와 두식이의 동거는 어떻게 전개될지, 빨리 다음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향부터 확연히 다른것이 사실이지만, 어쨌건 <콩고양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개도, 고양이도 모두 다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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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6 - 너구리 잠든 체하기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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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시리즈가 어느 새 여섯 번째 이야기로 찾아 왔다. 그동안은 항상 추운 겨울에 만나왔기에 으슬으슬한 추위에 외출할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 따뜻한 이불 속에서 킥킥거릴 수 있는 여유를 줬던 기억이 난다. 팥알이와 콩알이의 따뜻 발랄한 에피소드들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줘서 봄을 기다리는 겨울 날씨가 그리 춥지만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더운 여름에 새로운 시리즈로 찾아와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팥알이와 콩알이 외에도 세 번 째 이야기에서는 아기 참새,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시바견 두식이가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해서 많은 재미를 줬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너구리가 등장하면서 깨알 같은 재미를 주고 있다.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갑자기 어디선가 등장해 두식이의 밥을 가로채서 먹는 너구리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러다 마닥복슬과 안경남 등 이 집 식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니까 갑자기 휘청휘청 하더니 풀썩 바닥에 드러눕는 장면은 정말 빵 터졌다. 일명 '너구리 잠든 체하기'인데, 적으로부터 습격 받았을 때 죽은 체해서 잡아 먹히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거란다. 너구리나 주머니쥐 등이 그렇다는데, 안경남은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못 일어난다며, 너구리를 안아서 한 켠에 눕혀놓고, 식구들이 모두 숨어서 보게 한다. 그랬더니 너구리는 금방 번쩍 고개를 들고는 두리번거리다가 후다닥 사라져 버린다. 이후로도 너구리는 종종 나타나 밥을 함께 먹기도 하고, 너구리 잠든 체 하기 기술을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에게 전수해주기도 하는데, 실전에서 팥알이와 콩알이가 너구리 사부의 잠든 체하기를 해내는 모습은 정말 너무 너무 귀여웠다

아이가 이제 네 살인데 작년 까지만 해도 개를 무서워하더니, 이제는 막 올라타려고 하고 꼬리를 잡거나, 다리를 잡아 당기려고 해서 그럴 때마다 토토가 놀라서 도망가곤 한다. 나름대로 애정의 표시이거나 함께 놀자는 의사일텐데... 아이가 익숙하지 않은 개도, 동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서로가 아직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아직은 아이는 개를, 개는 아이를,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 앙숙처럼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딱 이번 작품에서 손님으로 등장한 고양이 집사의 절친과 그녀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어린 아이들 두 명을 데리고 셋째를 가져서 배가 불룩한 상태로 놀로온 그녀. 아이들은 팥알이와 콩알이를 보자마자 귀엽다면서 달려든다. 부드럽게 쓰담쓰담 만져줘야 한다고 알려주지만, 아직 힘 조절이 어려운 아이들이다보니 팥알이와 콩알이는 너구리 잠든 체 하기 기술을 이용해 빠져 나올 궁리만 한다. 게다가 두식이를 발견하고는 아이들 두 명이 한꺼번에 등에 올라타고, 두식이도 너구리 잠든 체하기 기술을 구사해보지만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정말 우리 아이와 토토와의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아 공감 백만 개가 느껴지는 장면들이었다.

나는 거의 평생을 개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릴 적부터 그들과 함께 지냈다.  그들과 함께 한 세월 동안 아마도 가장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옷 방 한 켠에 미처 개지 못하고 흐트러져 있던 옷들이 한군데 쌓여서 그럴듯한 옷 무더기를 만들었고, 개가 그 속에 쏙 들어가서 자고 있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처음 그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대체 어떻게 이 옷들을 하나로 모아서 그 속에 쏙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시리즈에서 팥알이와 콩알이가 셔츠와 스웨터 위에서, 두식이가 원피스 위에서 부비거리면서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우리 개가 떠올랐다. 옷 위에서 자면 섬유에 털이 묻어서 세탁도 다시 해야 하고 여러가지 번거로움이 있기에 처음 볼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게 마련이다. 대체 왜 얘네들이 옷 위에서 잘까를 고민하는 딸에게 마담 복슬이 한 마디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장면 또한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깔깔대고 웃고 말았다.

방이 너저분하니까 그렇지. 좀 치우지 그래! , 문제 해결!

그러고 보니 방이 엉망진창이었던 거다. 그 속에서 푹신하고 따뜻한 옷들을 찾아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가 보금자리를 찾았던 거고 말이다. 이렇게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에피소드들이 일상의 잔잔하고도 소소한 즐거움으로 남고는 하는데, 네코마키는 그런 일상들을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해서 장면으로 구성해내고 있다.

집동자귀신 아저씨와 두식이가 산책을 다녀와서 씻지 않고 발만 닦아주는 모습이나, 강아지 훈련하기 책을 보면서 몇 번이고 단호하게 반복해서 지시를 하고, 말하는 대로 잘 따르면 아낌없는 칭찬을 줘야 한다고 쓰인 대로 두식이와 훈련을 하는 모습도 내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읽는 내내 자연스레 미소가 떠나질 않았던 것 같다. 맞아, 맞아, 우리 토토랑 나도 그랬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정말 뭉클했던 마지막 장면, 내복씨와 함께 자는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감정을 일깨워주었다고나 할까. 우리 집도 아주 어릴 때부터 개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기에, 항상 자다 일어나보면 드 뒤에 있거나 발치에 있거나, 거의 떨어져서 자는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이 때문에 그렇게 함께 자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런 생활을 십 년 넘게 해왔기에 그 따뜻한 체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만화의 가장 좋은 점이 이런 거 아닐까 싶다. 여백이 많은 프레임에 둥둥 떠있는 짧은 대사와 간간이 미소 짓게 만들고, 또 그 틈틈이 뭉클하게 만들고, 그 와중에 지나간 추억도 떠오르게 만들고 말이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도 없는 책 읽기란 퍽퍽한 현실에서 벗어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반려동물과 체온을 나누며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에게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이들이라면, 팥알, 콩알, 두식이네 일상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분과 함께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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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달콤한 고통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어쩔 수 없이 상투적으로 변명하며' '이곳 생활은 아주 신나지도, 재미있지도 않아' 라는 글귀가 가슴 아팠다. 편지를 받을 당시에는 저 글귀가 마음에 걸렸고, 이제는 심장에 콱 박혀 생생했다. 그녀는 제럴드를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한 적도 없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결혼이었다. 데이비드는 결혼 한 달 전,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취소하라고 그녀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젊은 과학자 데이비드 켈시, 그는 낡고 스러져가는 주택가에 있는 하숙집에서 지내며,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주말이면 요양원에 있는 아픈 어머니 곁을 지킨다. 담배와 술은 전혀 하지 않았고, 워낙 깔끔한 성격에 직접 청소까지 해서 청소 아줌마가 그의 방에는 아예 들를 필요가 없었다. 여자에게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상적인 세입자이자 괜찮은 청년, 혹은 성인으로 생각했다. 그곳으로부터 한참 떨어지는 마을에 멋진 집을 가지고 있는 윌리엄 뉴마이스터, 그는 주말마다 근사하게 인테리어된 자신의 집에서 사랑하는 연인과의 삶을 꿈꾼다.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으며 인생을 사는 법, 웃는 법, 행복해지는 법까지 아는 남자였다. 

네가 나더러 성공했다고 하니 아주 좋긴 하다만, 너 없이 나는 불완전해.

사실 이 두 인물은 한 사람이다. 회사가 있는 프로스버그의 누추한 하숙집에 살고 있는 데이비드 캘시는 자신의 월급 90퍼센트를 쏟아 붓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교외에 있는 이 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새로 이름을 짓고,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 애나벨과의 삶을 꿈꿨다. 애나벨은 2년 전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집에서 마치 그녀와 함께 있는 듯 행동했고, 그녀와 같이 잠들었다.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지만, 결국 그녀가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다시 머리가 맑아졌다. 애나벨이 그랜트 바버와 결혼하게 내버려둬야지, 한 번 더 뻔한 실수를 하게 둬야지, 오래가지 않을 테니. 그런데 재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바보처럼 일정이 뒤로 밀린다. 그 자식이 애나벨이 누운 침대에 기어들어 간다고 상상하자 식은땀이 흘렀다. 뭔가 확실히 해둬야 한다. 편지를 또 보낼까? 그는 편지는 포기했다. 그랜트의 목을 졸라 쾌감을 선사하며 죽이는 방법도 있지만 그랬다간 그가 감옥에 가야 한다. 증오심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약간의 위안과 미움, 경멸을 선사한다. 그래도 그는 애나벨을 완전히 미워할 수 없었다.

예의 바르고 조용하며 회사에서는 유능한 수석 엔지니어인 데이비드의 완벽한 이중 생활은 모두 한 여자 때문이다. 일주일 중 닷새는 회사 근처 허름한 하숙집에서, 나머지 이틀은 가명으로 구입한 멋진 집에서 지내면서 애나벨 과의 삶을 꿈꾼다. 그는 끊임없이 이미 결혼해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출산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만나자고 연락하고, 그러다 급기야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우린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당신이 그녀와 결혼했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데이비드는 지나친 집착과 망상에 빠져 있는 정신 나간 스토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그녀, 애나벨도 평범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완전히 마음을 내어주지도 않으면서 그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다정스런 말투로 이야기하며, 편지에서는 나야 당신을 봐서 좋았다. 여전히 사랑을 듬뿍 담아, 난 당신 생각을 많이 해. 등의 표현으로 그가 희망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고, 데이비드에게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면서 단칼에 그를 거절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서, 우유부단하게 그를 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데이비드의 완벽한 이중 생활은 그를 짝사랑하는 이웃집 에피와 결혼 생활에서 도피하려고 여자들을 기웃대는 동료 웨스 덕분에 점점 쉽지가 않아 진다. 그의 집요한 편지 때문에 화가 난 애나벨의 남편은 그를 찾아오고, 그의 삶은 점점 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1955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36년에 걸쳐 완성한 『리플리』 연작을 쓰던 중, 1960년 이 시리즈의 속편이라 할 만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발표한다. 집착이라는 감정을 그 극단까지 밀어 붙여 파고드는 이 작품의 주인공 데이비드 캘시는 여러 모로 톰 리플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또 굉장히 다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시작된 주제가 리플리에 이르러 제대로 완성되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이 작품은 리플리 시리즈를 예고한 수작이기도 하다. 과연 데이비드의 감정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나는 그가 사이코패스나 변태 혹은 스토커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의 감정이 참 안타까웠다. 정확한 마음을 알 수 없었던 애나벨의 우유부단함도, 진심이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었던 에피의 짝사랑도, 아내와의 불화로 끊임없이 여자들을 기웃거리며 가정을 외면하는 웨스의 무심함도... 다 그럴 수도 있을 법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법한 감정들이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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