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1. 보온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오리진 시리즈 1
윤태호 지음, 이정모 교양 글, 김진화 교양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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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생>, <내부자들>, <인천상륙작전>, <이끼> 등 철저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로 정평이 난 윤태호 작가는 작품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관련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도 늘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 작품의 연재가 끝나면 사라지는 지식들로 인해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는 거다. 흔히 말하는 '교양'이라는 것에 대해 알기 쉽게 서사와 연결하고, 드라마의 힘을 결합한 정보로 기억에 강하게 남는 책을 기획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오리진' 시리즈이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탐구하겠다는 '오리진' 시리즈는 무려 전체 100권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시리즈 1권의 주제는 '보온'이다. 이어 에티켓, 돈, 상대성이론, 지도, 노화, 기원전후, 열쇠, 아름다움, 알파벳 등 인문, 철학, 예술, 과학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진행될 예정이다. '교양'이라고 하면 지루하고, 딱딱한 느낌부터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야기꾼 윤태호 작가라기에 기대감부터 들었다.

 

체온이 떨어진 이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온정이다. 미래에서 온 로봇 봉투가 체온이 떨어진 남자를 안아준다. 그 남자는 망한 과학자들에게 따뜻한 방을 제공한다. 보온은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다.

 

이 로봇이 학습해야 하는 것은교양과 그기원이며 범위는모든 것과 그 모든 것의시작이다. 시간이 지나면 성장한다. 하지만 그냥 더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처럼 성장한다. 배움이 없으면 배움 없이 성장한다.

 

로봇의 연령은 21세기 기준으로 5~6세 정도로 시간이 지나면 성장하지만, 그냥 더 독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시켜야 한다. 이 로봇은 답반을 구하는 로봇이 아닌 학습을 해야하는 로봇으로, 그 과정과 결과가 미래 인류에게 삶의 의지를 일깨워줄 거라는 거였다. 그러다 날린 투자금 때문에 불철주야 회사 근처에서 서식하던 인물 봉황이 나타나고, 그는 돈이 될만한 뭐라도 가져오라는 아내의 성화에 로봇이라도 데려가야겠다고 큰소리 친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마음 약한 그는 갈 곳 없는 과학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비어 있는 방에 하숙을 하도록 권유를 하고, 그렇게 미래에서 온 로봇 봉투와 봉황의 가족, 그리고 과학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같은 따스함이면 너와 같아질 수 있을까.

봉원의 동생이라고 봉투라는 이름이 붙게 된 로봇은 그들의 집에서 아이가 감기때문에 고열에 시달리자, 엄마가 아이의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안고 있는 걸 보게 된다. 평균 체온인 자신의 몸을 찬물 샤워로 시원하게 한 다음 열이 오른 아이를 안고 있으면 열이 부모에게로 옮겨져 온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봉투는 열의 의미와 보온의 중요성을 깨닫고, 비활성화된 하나의 '생각' 중에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어지는 2부 오리진 교양에서는 서울시립과학단장의 글과 알기 쉬운 그림으로 '보온'이라는 것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이루어진다. 사람은 36.5도에서 1~2도만 높아지거나 낮아져도 생명이 위험해지는 존재이다. 그러니 외부 환경의 변화에 관계 없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니, 열을 지키는 보온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2부에서는 그 열과 생명의 탄생된 기원부터 생명의 핵심 과제인 '보온'의 의미, 그리고 보온의 인류사와 지구의 보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이야기를 매우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짚어 내어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만큼, 쉽게 설명되어 있고 도식화된 이미지들이 눈에 잘 들어온 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꼭 아이들을 위한 만화로 된 과학, 역사 동화 종류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거기에 더해 어른들도 함께 교양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조금 더 포괄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할까. 윤태호 작가 특유의 따뜻함을 전해주는 만화도 재미있었지만, 각 분야 전문가가 쓴 논픽션 또한 매우 흥미로워서, 다음 시리즈가 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교양 만화 <오리진> 시리즈는 지난 5월 오픈한 웹툰·웹소설 전문 플랫폼 저스툰에 단독으로 연재되고 있다. 1권 '보온'은 플랫폼 오픈과 함께 두 달 동안 연재된 분량을 묶은 것으로, <저스툰>의 연재 웹툰 중에서 최초로 출간된 책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어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으로 출간되기 전에 먼저 저스툰에서 만나볼 수도 있다는 거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온 AI 로봇 ‘봉투’가 21세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도 매우 기대가 되고, 함께 이어질 각 분야의 교양 정보들도 궁금해진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느라 일반 교과 과정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했고, 대학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학력 콤플렉스도 있었다고 윤태호 작가는 말한다. 그런 그가 지식과 정보의 나열이 이 시리즈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지식과 정보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으로 목표한 백 권에 다다랐을 때 그려내고 싶은 마지막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세상 가장 무식한 사람이 가장 성실한 편집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시리즈에 스스로의 기대가 더욱 크다고 말하는 윤태호 작가의 말이 굉장한 믿음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가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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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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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로군요.” 다하라가 말했다.

“정의의 편?” 가모가 중얼거렸다.

…………..

“그 학생들도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 악인이에요.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니까요. 그런 놈들이야말로 위험인물이죠. 사실은 그런 놈들에게 벌을 내려야만 한다고요.”

“평화경찰은 진짜 나쁜 놈들은 체포하지 않잖아.”

정부는 평화 경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각 지역을 순회하며 사회에 위험이 될 만한 인물을 미리 색출해 공개처형을 한다. 매년 안전 지구를 선정해 평화경찰이 부임해오는데, 올해는 센다이 지역이다. 그들은 테러를 막기 위한 위험인물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연행해 잔인하게 고문한다. 마치 현대판 마녀사냥처럼 벌어지는 이 행위들에 대해 사람들은 그저 그들이 위험인물이어서 적발된 거라고, 보통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없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처형이 되는 사람들부터, 전혀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고발 받은 사람들, 별 의미 없이 연행되어 고문에 의해 자백을 하고 처형당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평화 경찰이라는 자들이 자신의 공권력을 행사해 참혹한 고문을 즐기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자, 몇몇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정의감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불의의 공권력에 대항해 그들과 맞서 싸우는 히어로가 등장한다.

위아래가 연결된 검은색 라이더 슈트를 입고 검은색 모자에, 수중안경과 비슷한 큼지막한 고글을 쓰는 남자. 골프공처럼 생긴 동그란 비밀 무기와 목검을 가지고,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타난 남자. 우리의 블랙 히어로되시겠다. 경찰은 경찰 이외의 사람이 힘을 지니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그 힘이 언제 경찰이나 국가로 향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평화경찰이 공권력을 휘두르는 곳마다 '정의의 편'이 나타나 그들을 방해하고, 그러다 평화경찰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까지 발생하자 정부는 그를 잡기 위해 특별 수사관까지 파견하기에 이른다. 과연 '정의의 편'이라 불리는 수수께끼의 히어로는 무슨 목적으로 사람들을 돕는 걸까. 정말 정부의 불합리한 독재 정책에 맞서 정의를 지키기 위한 의도인 걸까. 흥미로운 것은 이사카 고타로의 히어로는 일반적인 히어로물,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마음과 투철한 의식으로 무장한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반 이후까지는 정체를 알 수 없었던 히어로에 대해서 밝혀지는 후반부로 접어 들어야 실체를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영웅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그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히어로의 모습 일테니 말이다.

 

“다하라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일본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도 있어. 약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 말라리아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도 있어.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화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유치하게 들려, 다하라 히코이치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 아니면 화성에라도 가서 살 것인가. 희망이 없는 선택지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추적당하는 이른바 '감시사회'를 살고 있다. 범죄 예방이라는 대의와 명분 하에 어느 곳이든지 CCTV가 설치되고, 개인의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에게 낱낱이 공개될 수 있다. 이는 국가라고 하는 권력이 마음만 먹는다면 개인의 모든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또한 모든 시민을 위험 요소나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내려놓고, 감시사회를 별다른 의심 없이 용인하면서 살고 있다. 감시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를 악용해 국가가 권력의 횡포를 부릴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래서 전부터 감시 사회를 소재로 한 책과 영화들은 기존에도 많이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많이 떠올리겠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조금 색채를 달리한다.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고 할까. 독재 정치라는 시대를 겪어 왔던 국민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리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지금,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오싹해진다.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가상 현실 속의 공포가 현실의 그것과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진짜 무서워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게 바로 이사카 고타로의 매력이기도 하다.

극중 국가의 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의 말에, 아무리 불만이 많더라도 우리는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하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뭐 사실 맞는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곳을 떠나야 하는 게 용기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왜 떠나는 것이 최선이냐는 것이다. 하다 못해 목검이라도 들고 변화를 위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니냔 말이다. 파란 망토를 두르고 하늘에서 나타나 악인을 차례로 통쾌하게 쓰러뜨리는 그런 멋진 히어로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블랙 라이더 슈트에 스쿠터를 타고 나타나 이상한 무기밖에 휘두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당신은 뭐라도 바꿀 수 있다.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 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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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 모중석 스릴러 클럽 43
제프리 디버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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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등장하는 케일리 타운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버의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그녀가 마치 살아있는 뮤지션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유는 바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녀의 컨트리 음악 앨범 <유어 섀도>에 수록된 모든 노래 가사가 책의 후반부에 별도로 실려 있고, 노래도 실제로 웹사이트를 통해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디버의 웹사이트에서 캐트린 댄스의 타이틀곡 <유어 섀도>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케일리 타운이 실존하는 가수처럼 느껴졌다. 허구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이런 방식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하다니, 제프리 디버는 새삼 놀라운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댄스는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동작 분석이 무엇을 드러내는가? 에드윈 샤프는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댄스 자신이 며칠 전 브리핑에서 매디건과 다른 수사관들에게 말했듯이 스토커는 보통 정신병자이거나 경계성 장애, 또는 심한 신경증 환자이며 현실 감각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설령 완전히 틀린 것이라 해도 스스로 사실이라고 믿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하고 있을 때도 사실을 말할 때와 행동에 차이가 없을 것이다. 더욱 어려운 것은 에드윈의 경우, 스트레스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드러내는 능력이 축소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디랭귀지 분석은 거짓말을 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때에만 효과가 있다.

아름답고 재능있는 컨트리 뮤지션 케일리 타운은 자신의 고향에서 대형 콘서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공연장에서 세부 사항들을 체크하던 중 2미터 위에 걸려 있던 거대한 라이트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행히 그녀는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지만, 얼마 뒤 공연 스태프가 추락하는 조명에 압사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평소에 케일리를 스토킹하던 에드윈 샤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작년 겨울 케일리의 이메일 마지막에 자동으로 서명되는 "XO, 케일리" XO, 즉 포옹과 키스라는 의미의 인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자신이 그녀와 소울메이트라고 판단해 이베일, 페이스북, 트위터, 편지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연락하기 시작한 스토커였다. 게다가 그는 케일리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그곳에 집까지 빌려가면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케일리의 주변에 끊임없이 위험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지만, 에드윈이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그에게는 캐트린 댄스의 동작학 역시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십대의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심문과 동작학이라는 보디랭귀지 분석이 전문인 캘리포니아 연방 수사국 요원 캐트린 댄스는 민속학자이자 음악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녀는 음악이라는 취미 때문에 케일리와 과거에 친분을 가진 적이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도 그녀를 만나 녹음도 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케일리의 주변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급기야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그녀의 곁에서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스토커와 동작학 전문가의 만남이라니, 캐트린 댄스가 그녀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흥미로운 장면들이 상상이 되었지만, 예상외로 그녀는 에드윈을 상대로 능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보디랭귀지 분석은 거짓말을 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때에만 효과가 있는데, 에드윈의 경우에는 스트레스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드러내는 능력이 축소되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위선으로 포장된 최악의 범인인 걸까, 아니면 무고한 희생자인걸까. 이야기가 중반 이상이 넘어갈 때도 범인의 윤곽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수사는 여전히 답보 상태로 진행이 된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전개가 어쩐지 디버 답지 않다고 느껴질 때 즈음, 그가 준비했던 서프라이즈 장치가 등장한다. 바로 최고의 캐릭터인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캐트린 댄스 시리즈에 나타난 것이다!

하루튠은 영장 없이 수색하는 바람에 두 명이 정직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범인은 다른 수사관에게서 권총을 훔쳐 그 역시 정직중이라고 했다.

"미친놈이군." 라임은 이렇게 말했고, 그 소식에 이상하게 기뻐하는 눈치였다. 아마 그가 특히 똑똑하고 어려운 상대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최악의 적수는 권태였다.

실험실로 들어가 찰리 신을 만났다. 하루튠이 이곳에 온 라임을 보고 반가워했다면, 신은 '보잘것없는 곳'에 현장감식의 전설이 찾아오자 제정신이 아니었다.

, 여기서 라임과 색스가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니다. 캐트린 댄스 시리즈에 반갑게도 라임과 색스가 출연했다. 하핫. <XO> 2012년에 출간되었으니, 링컨 라임 시리즈로는 2010년에 출간된 <버닝 와이어> 2013년에 출간된 <킬 룸> 사이쯤의 상황이 될 것이다. <XO>에서는 스토리가 중반이 훨씬 지나도록 캐트린 댄스의 특기인 동작학에 관련된 내용도 거의 나오지 않고, 따라서 용의자에 대한 수사 역시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데, 아마도 제프리 디버가 이 장면에서 라임과 색스를 등장시키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쨌건 링컨 라임 시리즈를 완전 사랑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 너무 반가운 등장이었다.

링컨 라임은 물증 분석, 캐트린 댄스는 언어, 동작학 분석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상반된 수사 방식을 가진 캐릭터이다. 링컨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캐트린에게는 그에게 없는 인간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니 결국 두 시리즈 모두 각각의 전혀 다른 재미를 준다는 거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증거 수집과 분석으로,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표정과 몸짓을 읽는 동작학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실 캐트린 댄스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만한 대목이 많지 않다. 물론 그녀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었던 <도로변 십자가>에서도 블로그, SNS, 온라인게임, 컴퓨터 등등 캐트린의 전공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요소들이 등장했었지만, 이번 작품 역시 그렇다. 미모의 뮤지션을 흠모하는 광기 어린 팬의 집착이 주요 플롯이라, 이제야 캐트린 댄스의 동작학이 제대로 빛을 발하나 싶었는데 말이다. 뭐 이것도 디버가 의도한 반전 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후반부로 갈수록 디버만의 장기인 거듭되는 반전 장치로 몰입감을 더해주며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무엇보다 뮤지션을 주인공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스토리 중간 중간 그녀의 노래 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데,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그 노래들을 실제 음원으로 들어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번째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의 마법은 아직 지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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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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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그의 눈에서 조용한 혐오감이 드러났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을 꾹 억눌렀다. 이 공허함이 그의 분노보다 더 끔찍했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쌓아 올렸던 모든 것들이 정말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가 다시 술을 마신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예전처럼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가 뛰쳐나간 후에 내가 뭘 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서른 넷의 루이즈는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비서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바에서 데이비드라는 환상적인 남자에게 유혹 당해 키스까지 했지만, 이틀 뒤 그가 자신의 직장에 온 새로운 상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맙소사, 그 끔찍한 상황에 그녀는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싱글맘으로, 정신과 의사의 시간제 비서로 근근이 살아가느라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든 그 어떤 남자든 만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하고 살아 왔었다. 그저 아들인 애덤이 그녀 일상의 모든 것이자 전부였었는데, 바에서 만난 그 남자 덕에 여자로서 뭔가를 느끼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깨닫게 된 거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삶은 그녀에게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던 거다.

루이즈와 데이비드는 병원에서 서로 어색함을 묻어두고 일을 함께 하기 시작하고, 루이즈는 애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다 길에서 우연히 아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바로 조각처럼 아름다운 데이비드의 아내였고, 루이즈는 어쩌다 보니 그녀와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자신은 그녀의 남편과 키스한 사이이기에 절대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아델에게 점점 더 마음이 끌렸고, 그녀 역시 루이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만다. 그렇게 루이즈와 아델은 우정을 나누며 점차 가까워지고, 데이비드와 루이즈의 만남 역시 계속 지속되면서 루이즈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아델에겐 남편 데이비드와의 관계를 밝힐 수가 없고, 데이비드에겐 자신이 그의 아내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그 정도의 죄는 저지른다. 그녀가 그와 잤다는 건 정말 싫고, 거기에 내가 이렇게 상처받는다는 사실도 싫지만, 그래도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전에 그를 먼저 만났고, 욕망에 이미 불이 지펴진 상태니까. 그녀는 바에서의, 그 첫 번째 밤에 그 서글픈 인생살이 중에 오랜만에 특별해진 기분을 맛보았을 거다... 물론 그에게 홀딱 반했으리라. 내가 그를 이렇게 사랑하는 판국에 그녀가 그를 매력적이라고 느꼈다고 해서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이야기는 루이즈와 아델의 시점이 교차 진행되면서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이유는 이들의 불륜 관계와 아슬아슬한 우정 때문이 아니다. 바로 루이즈와 아델, 그리고 데이비드까지.. 세 인물 모두 비밀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만 보자면 아델과 데이비드는 아름다운 아내와 멋진 남편의 모습으로 의사라는 탄탄한 직장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엄청난 유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완벽한 부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는 것처럼 서걱대기만 한다. 데이비드는 아델에게 일정한 시간에 꼭 전화를 하고, 그녀에게 많은 양의 약을 지속적으로 처방해 먹게 한다. 아델은 그의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할 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증에 걸린 것처럼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루이즈는 의아하기만 하다. 대체 왜 데이비드는 아내를 그렇게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며, 가끔 나타나는 고압적인 모습은 그의 진짜 성격인 것인지. 아델의 눈에 생긴 멍은 그녀의 말대로 단순히 부딪쳐서 생긴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젊고 매력적인 정신과 의사, 그의 아름답고 우아한 아내.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여자.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면서 그의 아내와는 친구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점점 혼란에 빠진다. 데이비드와 아델 사이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그들의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미스터리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후반부의 엄청난 반전이었다. 반전이 훌륭한 여러 작품을 읽어 왔지만, 이 작품의 그것은 그야말로 '충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결말의 여운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한 동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사라 핀보로가 스티븐 킹의 열혈 팬이자 공포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이력이 있어서인지, 그 어떤 심리 스릴러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결말을 만나게 되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당신도 스티븐 킹의 극찬처럼 이 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재미와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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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8-30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가 보게 되는 사진에서 책보다 조각 케익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

피오나 2017-08-30 07:57   좋아요 1 | URL
하핫..저처럼 케이크를 좋아하시는군요! 책과 디저트와 커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ㅋㅋ

오거서 2017-08-31 08:22   좋아요 1 | URL
책에 풍미를 더하고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
 
기룡경찰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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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족 보행 병기가 발달한 근미래를 무대로 펼쳐지는 SF 경찰 소설이다. 2족 보행 병기란 무엇이냐. 애니메이션 <인랑>과 로버트 A.하인라인의 SF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에도 등장하는 파워드 슈트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로봇과 사이보그를 넘어서,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서 등장한 도구이다. 기존 작품에서의 파워드 수트가 인간이 입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기룡경찰>의 파워드 수트는 올라타는 방식이다. 애니메이션 <건담>에 등장했던 2족 보행 병기를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 이야기는 바로 근접 전투에 맞게 개발된 2족 보행형 병기인 기갑병장이 발달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불법으로 제작된 기갑병장이 갑자기 폐공장에 등장해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순직하고 일반 시민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자 인근 경찰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시청에서도 직할대 순찰차들을 현장으로 급파한다. 그런데 출동한 현장에서 경찰들과 특수부 소속 요원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다투기 시작한다. 특수부는 경시청에서 신형 기갑병장인 드래군을 도입하면서 우수한 인재를 차출하고, 드래군의 탑승 요원으로 세 명의 용병을 영입한 새로운 조직인데, 경찰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모욕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경시청 내부 조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수부는 가까스로 지원에 나서지만, 사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누군가에게 맞았다. 누군가를 죽였다. 누군가를 사랑했다.

그런 이야기는 질리도록 들었다.

나 참,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사연을 품고 있다. 사연만을 품고서 흘러들어 온다. 사연만이 있을 뿐 이데올로기는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싸우다 보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데올로기란 그런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만,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히 도사린다.

'읽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답게, 이들의 전투 과정과 액션 장면들의 묘사에 상당한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테러가 벌어지고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근접 전투와 특수부대가 그들을 쫓는 추적극이 벌어지는 와중에 경찰 조직과 그 속의 인간들의 관계도도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어 이야기에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특수부라는 조직 내의 외부인사들과 경찰 조직 내의 알력 다툼을 비롯해 각각의 조직에 속해 있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들은 이 작품이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을 만큼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분량이 짧은 편임에도 몰입감도 뛰어나고,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황금가지의 새로운 레이블인 LL 시리즈이다.  LL 시리즈는 라이트와 리터러처의 머리글자를 따서 보다 가볍고 신선하면서도 재미와 깊이를 놓치지 않는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한 레이블로, 추리, 판타지, 공포, SF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엄선하여 소개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의 각본가 출신인 쓰키무라 료에의 데뷔작으로, 영상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지는 액션 묘사에서 각본가였던 자신의 장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데뷔작으로 화제가 되었고, 이후 후속 시리즈로 연이어 일본SF대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어지는 다음 시리즈 <기룡경찰자폭조항>, <기룡경찰암흑시장>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LL 시리즈를 통해서 모두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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