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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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사람들이라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는 나를 보며 순진무구한 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다. ", 그 사람이 말 안 했나요? 당신 전에 살았던 사람들 말이에요. 아무도 영원히 남지는 못했어요. 아시다시피, 그게 바로 핵심이죠."  p.212

 

에마는 얼마 전 집에서 강도를 당했다.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남자친구인 사이먼과 함께 새로운 집을 구하는 중이다. 제인은 얼마 전 상사와의 불륜으로 생긴 아이를 사산했다. 상담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직장에는 사직서를 냈다. 아이를 위한 모든 것이 있었던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두 여자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집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 보는 순간, 세상에! 라는 감탄사부터 나오는 그런 집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해서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집이다.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인테리어 잡지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집! 하지만 이 집에는건축가가 세입자를 승인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다. 기다란 신청서 양식을 작성해 면접을 보고 통과해야만 입주가 가능하다. 그리고 에마와 제인은 그 면접을 통과한다. 각각 과거와 현재에 그들은 같은 집에 살게 된 것이다.

그 곳에는 초인종도, 문손잡이도, 우편함도 없다. 모든 건 앱 하나로 제어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있는 디지털 키 혹은 디지털 팔찌로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문을 열 수 있다. 정원과 돌담 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들에서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벽과 바닥은 모두 같은 빛깔의 석재로 시공되어 있으며, 가구는 거의 없이 텅 비어 있다. 문도, 선반도, 사진도, 창틀도, 전기 콘센트도, 조명도, 심지어 전기 스위치조차 없다. 조명부터 샤워기 수온까지 집안 곳곳의 시설이 거주자의 취향을 반영해 자동으로 조절되어 그런 것들이 다 필요가 없는 집인 것이다. 물론 면접에 합격해서 이 집에서 살 수 있게 된 후에도 지켜야 할 규칙과 하지 말아야 할 금지사항들이 가득하다. 러그나 양탄자 금지, 장식품 금지, 책도 금지, 언제 어느 때고 바닥에 물건이 어질러져 있어서는 안 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아야 한다. 각종 금지 조항이 가득한 이백여 개의 규칙을 지켜가며, 정리정돈부터 삶의 방식까지 관여하는 철저한 통제를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 살고 싶을 만큼 완벽한 공간인 것이다.

 

나는 변해야 한다. 상황을 명료하게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니라.

언젠가 캐럴이 그랬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고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든데도, 우리는 정작 남을 바꾸기 위해 가진 에너지를 모두 투자한다고.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나는 이 엿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될 각오가 선 것 같다.  p.356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는 심리 스릴러이다. 이야기는 과거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에 살던 에마와 현재 이 집에 살고 있는 제인의 관점이 번갈아 가며 서술된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구조는 그 반복 속에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들로 인해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제인은 과거 이 집에 살았던 에마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고, 집주인 에드워드와 관계를 가지며 점점 더 과거의 죽음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에마는 살해된 것일까. 혹은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사고였던 것일까. 죽은 에마를 위해 여전히 이 집에 들러 꽃을 두고 가는 남자는 말한다. 에드워드가먼저 그녀의 마음을 독으로 물들인 후 목숨을 빼앗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과거 에마처럼 에드워드에게 점점 더 마음이 끌린다. 그리고 오래 전 죽은 에드워드의 아내와, 과거 에마와 자신이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갈색 머리에 푸른 눈, 매우 창백한 피부, 게다가 서 있는 자세까지 그들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에드워드는 과거 에마를 데려갔던 곳에 지금의 제인을 데려가고, 같은 상황에서 같은 대사를 한다. 하지만 외모가 닮은 에마와 제인은 그의 같은 행동과 대사에 전혀 다른 반응과 행동을 보이고, 바로 그런 지점들이 독자로서 우리가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제인의 삶에 계속 에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결국 제인이 에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가는 과정 역시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 주고 있다. 그렇게 탄탄한 구성과 독특한 설정, 그리고 우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페이지마다 흐르는 묘하게 섹시한 분위기까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준 이야기였다. 만약 완벽한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것까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완벽한 삶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기가 막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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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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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겨울잠을 자고 있어. 나만 혼자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깨어 있고. 며칠이고 몇 주고 나 혼자 이렇게 걷고 또 걸으며 떠돌아다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눈덩이가 되어 버리고 말겠지.’

그때 숲이 끝나고 무민의 발 아래로 새로운 골짜기가 펼쳐졌다. 맞은편으로 외로운 산이 보였다. 남쪽으로 파도처럼 이어지고 있는 산줄기가 이제껏 그렇게 외로워 보인 적이 없었다.   P.25

어린 시절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은 기온이 떨어지면 동면 준비를 시작해서, 다음 해 봄이 되어 기온이 다시 올라가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고 하는데.. 어린 마음에 사람도 오랜 시간 동안 겨울잠을 자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바깥에 눈은 소복이 쌓여 있고, 하늘은 까맣고, 길에는 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추운 겨울, 따뜻한 집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오붓하게 겨울잠을 어떨까 싶었던 거다. 고요한 집 안 가득, 다가올 봄에 대한 설레이는 기대감으로 모두 한 껏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겨울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이 모두 잠들어 있는데, 나 혼자만 겨울잠에서 깨어 버린다면 어떨까.

 

"엄마! 일어나 보세요! 온 세상이 사라져 버렸어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한 겨울의 무민 골짜기, 무민 가족은 해마다 11월부터 4월까지 겨울잠을 잤다. 가족들은 모두 전나무 잎을 잔뜩 먹었고, 침대 옆에는 이른 봄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무민들이 처음으로 겨울잠을 자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제껏 단 한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무민이 겨울잠에서 깨 버렸고, 다시 잠들지 못했던 것이다. 무민은 가족들을 깨우려고 해봤지만, 다들 일어나지 않았다. 시계들은 멈춘 지 오래였고, 따뜻한 어둠 속에서 무민은 끔찍하게도 혼자 내팽개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감자를 키우고, 꿈을 꾸면서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하는 매사 만사태평인 캐릭터 무민은 사실 소심하고 겁 많은 순둥이였다. 그러니 온 세상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그 긴 계절을 혼자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집 안에 밤과 침엽수림의 냄새가 들어차자, 무민은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걸. 가족들도 가끔은 바람을 쐬어야지.’

무민은 계단 쪽으로 나가 흠뻑 젖은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무민이 혼잣말했다.

“이제 나는 다 가졌어. 한 해를 온전히 가졌다고. 겨울까지 몽땅 다. 나는 한 해를 모두 겪어 낸 첫 번째 무민이야.”   P.154

이 작품은 토베 얀손이 26년에 걸쳐 출간한무민시리즈 연작소설 여덟 편 중에, 다섯 번째 작품이다.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여름과는 상반되는 겨울의 무민 골짜기의 분위기가 낯설기도 하면서, 신비롭기도 하다. 작가가 무민 코믹 스트립을 연재하며 부담을 느끼던 시기인 1957년에 발표한 작품이라 무민의 두려움과 외로움, 책임감을 느끼고 죽음을 경험하는 등 전작보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겨울의 마법을 배워 나가는 무민의 성장기는 놀랍도록 따뜻하다. 사라진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한 기분이 든 무민은 집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난생 처음 겪게 되는 겨울의 세상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잿빛 어둠이 온 골짜기를 뒤덮고 있었고, 모났던 것은 모두 동글동글해졌으며, 생동감 있는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눈을 헤치며 힘겹게 강으로 갔고, 앙상한 가지가 잔뜩 뒤엉킨 재스민 덤불을 보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죽어 버렸어. 내가 잠든 동안 온 세상이 죽어 버렸어.'

아빠의 탈의실에 머물며 꽁꽁 언 바다 밑에서 낚시를 하는 투티키, 눈에 잘 띄지 않고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녀석들, 스키를 타고 나타난 헤물렌, 추위를 피해 들이닥친 손님들까지 무민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혹독한 겨울을 헤쳐 나가면서 '누구나 힘든 일은 하나씩 있게 마련이라고. 어쨌든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난생처음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눈이 이렇게 오는구나. 땅에서 자라는 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눈 더미에 풀썩 드러누우면서 이제 겨울도 좋다고 느끼기도 한다. 무민이 눈보라와 씨름하고, 하늘이 초록빛으로 변하는 오로라와 바다에서 어둠을 뚫고 다가온다는 얼음 여왕으로 인해 엄청난 추위를 겪으면서 느끼게 되는 겨울의 풍경들은, 요즘 같은 날씨에 정말 시원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한 여름에 겪게 되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말이다. 무민이 등장하는 이야기야 언제 읽어도 좋지만, 특히 이 작품은 8월에 읽기에 정말 좋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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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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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지금껏 본 적 없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 사람을 이토록 빛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을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p.85~86

초여름의 도쿄, 좌석 열두 개짜리 작은 공간에 한 레스토랑이 오픈했다. 주문을 틀릴 수도 있다는 이상한 레스토랑.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정작 나온 것은 만두, 손님 테이블로 주문을 받으러 갔다가, 주문을 받으러 온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고, 손님에게 물을 두 잔씩 가져다 드리는 일은 다반사에, 샐러드에 스푼이 나가고 뜨거운 커피에 빨대를 내는 일도 종종 있다. 한마디로 너무나 정신이 없고 산만한 레스토랑이다. 이유는 바로 '이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받는 스태프들이 모두 치매나 인지 장애를 앓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화를 내는 손님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실수를 이해하며, 즐기는 분위기라고 할까.

NHK 방송국 PD인 저자는, 어쩌다 취재를 가게 된 간병 시설에서 예정된 메뉴가 아닌 엉뚱한 음식을 대접받는 경험을 한 후, 치매 어르신들로 스태프를 꾸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본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조금 불편하고 당황스럽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가치관이 퍼져 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치뤄졌고, 전 세계 150여 개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개인과 기업, 단체로부터 참여와 기부 문의가 쏟아지는 등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고령화 시대, 노인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많은 것을 잃었다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과 사회와 이어져 있다. 이어져 있어서 좋다.

그 사실을 구체적인 형태로 명확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이다.   p.126

2025,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가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다. 우리보다 진작에 앞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현재 약 460만 명이 치매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본 정부는 치매 노인의 간병 책임을 국가가 떠안는 정책을 실시했지만, 사회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치매 노인들을 멀리 떼어놓고 행동을 제한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생각했고, 그렇게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기획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레스토랑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뭉클한 식당이기도 했다.

특히나 뭉클했던 것은 직접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을 하거나, 손님으로 왔던 이들의 경험담을 들려준 부분이었다. 치매에 걸렸지만 다시 한번 일하고 싶어 했던 할머니들의 얼굴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 떠오르는 순간들과 일을 즐기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는 그 행복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험을 그들의 머릿속에 기억해 둘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틀림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그 너그러운 마음과 따뜻한 관용과 소통의 손길이야말로, 고령화나 치매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작점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조금 틀리면 어떤가. 조금 다르면 또 어떤가. 이 프로젝트는 이들이 '치매 환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각인시킨다. 실수가 잦고, 정상 범위가 아니고,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던 치매 환자들을 보통 사람들이랑 별 다를 게 없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 지점이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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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사람들의 비밀 - 상처주기도, 상처입기도 싫은 당신을 위한 심리 대화 43
오수향 지음 / 리더스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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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호감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사람과 유사한 점을 찾아 어필해보자. 영업 사원들이 나이, 종교, 고향, 취미 등이 비슷한 고객들과 계약을 잘 맺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는 비슷한 점을 과하지 않은 정도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다. 추임새처럼 상대의 마지막 말을 자연스럽게 따라 해도 좋고, 공략하고 싶은 상대가 있을 때 그 사람 의상 스타일에 맞춰서 입고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생각보다 말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상대방이 불쾌할 까봐 할 말도 못하고 돌아서거나, 원하는 게 있어도 제대로 표현도 못하거나. 하지만 반대로 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사람도 있다. 싸우지 않고 부드럽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이들은 타고난 걸까? 저자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비밀이 있을까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 결과 효과 만점의 대화법은 예외 없이 심리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바로 이 책을 통해 심리학에 기초한 대화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대의 호감을 얻는 심리 대화법,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는 심리 대화법, 예스를 끌어내는 심리 대화법, 이성을 사로잡는 심리 대화법, 지갑을 열게 하는 심리 대화법, 성과를 내게 하는 심리 대화법으로 구분되어 있어 각 카테고리 별로 사례들이 충분히 나와 있어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다. 너무 술술 읽히고, 흥미진진한데 그 모든 것들이 다 심리학 법칙에서 나온다는 점도 재미있었고, 생각보다 대화법이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성공을 부른다는 점도 놀라웠다. 3초 만에 상대를 끌어들이는 첫인상의 마법,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긍정의 스킨십, 스며들 듯 마음의 벽을 허무는 대화의 기술,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부탁의 기술, 가랑비에 옷 젖듯이 화해하는 법, 무의식중에 예스를 끌어내는 마법의 단어 등등... 각각의 사례들을 읽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져 수긍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자랑을 쏟아내는 사람은 대체로 비호감이다. 남녀 불문, 잘난 척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거를 미끼 삼아 툭 던져주는 것은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좋아하고 인정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심리가 있으니 말이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부탁의 기술에서 쓰인 인지부조화 이론이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보다 자신이 친절을 베푼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거였다. 사소한 부탁 하나로 정적 관계에서 우정을 나누는 관계로 변하게 된 벤저민 프랭클린의 실화가 사례로 나왔는데, 너무도 그럴 듯했다. 훗날 프랭클린은 자서전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적이 당신을 한번 돕게 되면, 나중에는 더욱더 당신을 돕고 싶어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단지 서로 코드가 맞지 않거나,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는데,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상대에게 다가가 정중한 부탁을 하는 거라고. 뜻밖의 부탁을 하는 순간, 정적이 친구가 되는 아름다운 대 화해의 모드가 실제로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때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대화의 비밀이었다.

저자인 심리 대화법 전문가 오수향은예전에는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법, 멋진 한마다로 사람들 시선을 끄는 법 등에 대해 사람들이 조언을 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팀장님 말투가 너무 기분 나빠요. 제가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까요?’ ‘제가 한 말 때문에 친구가 큰 상처를 받은 거 같습니다." 라는 식의 조언을 구하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누구나 사회에서, 가정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다 보니 상처를 주기도, 상처를 받기도 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말의 내용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같은 말도 상황에 따라,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럴 때 도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서로가 마음 상하지 않고 왜곡 없이 소통할 수 있을까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할 말 못해서, 또는 할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끙끙 속앓이를 해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43가지 대화법만으로도 당장의 대화가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일의 결과가 달라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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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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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여행을 갈 수 있다거나, 쇼핑몰로 곧바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거나, 연예인의 자궁에서 커가는 태아를 지켜볼 수 있다거나, 혈장액 속에서 신체를 재생하는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술이 실제로 가능한 세상에서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우리 인간들은 여전히 똑같았다. 우리의 삶이 완전히 실패해 버렸을 때 어떻게 할지 몰라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건 똑같았다.   P.46~47

사람들이 흔히들 미래라는 것을 상상할 때 등장하는 것들. 하늘을 나는 자동차, 로봇 하녀, 음식 캡슐, 순간이동 장치, 제트팩, 호버보드, 무빙워크, 레이저건, 우주여행, 달 기지..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이루어진 세계. 2016,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토피아 사회가 이 작품의 배경이다. 이들이 놀라움으로 가득찬 첨단 기술 유토피아 파라다이스에 살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1965년 위대한 과학자 라이오넬 구트라이더가 발명한 무한 에너지 덕분이었다. 라이오넬 구트라이더는 그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할 뿐만 아니라 애정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1년 전, 혁명적인 방법으로 무한하고 강력하면서도 완벽하게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 기술을 발명해, 그야말로 '미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주인공 톰 배런은 천재 과학자인 아버지와 달리 지극히 평범했다. 빅터 배런 박사는 시간 여행 분야에 관한 독보적인 인물로, 곧 엄청난 시간 여행 프로젝트 실험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헌신적이었던 어머니가 네 달 전에 뜻밖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녀가 남긴 유언과 몇몇 상황들로 인해 톰은 아버지의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뛰어난 인재들만 모여 있는 시간 여행 프로젝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가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의 팀장인 페넬로페의 대역으로 각종 훈련을 받으면서 그녀를 몰래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아버지의 야심만만했던 시간 여행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되고, 페넬로페가 자살하는 것을 눈 앞에서 보게 된다. 그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고, 홧김에 시간 여행 장치를 타고 1965년 구트라이더 엔진의 초연 현장으로 무작정 향한다. 그리고  그가 잘못한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인해 미래의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된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게 된 것일까.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역사가 바뀌었으니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역사를 바꿔놓았는데도 나는 태어났고 지금 멀쩡히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시간의 닻인 것이다. 내가 역사의 흐름을 일그러뜨렸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 내가 없어도 되는 역사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여기에 내가 존재하도록 만들어준 사건들은 그대로 일어나 평행 세계에서 내가 있던 시간에 나를 갖다 놓은 것이다.  P.202

이 작품은 영화 '왓 이프'의 시나리오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던 시나리오 작가 엘란 마스타이의 첫 번째 소설로,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였고, 페이지 터너로서의 뛰어난 몰입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SF소설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그다지 신선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에서 다루었던 평범한 소재 임에도 충분히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굉장히 자세하지만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지는 과학적인 정보들도 흥미로웠고, 시간 여행과 평행 세계를 이어주는 플롯 자체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이야기 자체를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할 때 대부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가서 뭔가를 변화시켰을 때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그러니까 살면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과 달라져버린 미래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인해 완벽하게 바뀌어진 미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원래 주인공이 살던 세계가 유토피아라면, 그가 시간 여행을 통해 달라지게 만든 미래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였던 것이다. 물론 주인공의 시선에서 판단하자면 말이다. 작가가 애초에 상상 속에 존재할 것 같은 미래의 시대를, 아주 먼 시점이 아니라 2016년으로 설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2016년 현재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세계이지만, 이미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토피아 사회에서 살던 주인공에게는 지금의 세계가 디스토피아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여는 주인공의 독백이 '나는 우리가 살 뻔한 세상에서 왔다'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 비슷한 소재를 가진 책들을 여러 권 읽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평범한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점점 더 어디로 튈 지 모르겠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고, '미래'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점도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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