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만드는 영국 과자
야스다 마리코 지음, 김수정 옮김 / 윌스타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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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느긋한 공기를 이곳으로 옮겨다 줄 것 같은 과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평소 마시는 차에 수제 비스킷을 곁들이고, 친한 친구가 놀러 오는 오후에는 15분이면 오븐에 넣을 수 있는 레몬 드리즐 케이크를 굽습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에는 커다란 빅토리아 샌드위치를 구워볼까요?    p.2

이 책은 티타임의 나라 영국, 그 본고장의 레시피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달콤한 케이크, 소박한 스콘, 건강에 좋은 오트밀 쿠키 등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다양한 레시피들과 각각의 레시피의 유래와 그에 얽힌 사연도 함께 소개되어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사랑했던 쇼트브레드는 지금이야 일상 속에서 차와 함께 먹는 디저트이지만, 당시에는 아주 비쌌기 때문에 결혼식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편 알버트공을 잃고 실의에 빠진 빅토리아 여왕을 위로해준 빅토리아 샌드위치는 영국 스펀지케이크의 기본이다. 평소 차와 함께 곁들이는 건 물론 생일케이크로도 자주 사용되는, 영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하고 또 중요한 케이크라고 한다.

단순하고 꾸밈없는 담백한 맛의 대명사 스콘! 스콘을 잘 만드는 요령은 바로 '마치 영국 할머니가 된 것처럼 다정한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워낙 레시피가 심플하기 때문에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도 구워진 상태가 달라진다는 마법의 디저트가 아닐 수 없다. 플레인 스콘, 프루트 스콘, 체리 스콘, 애플 라운드 스콘, 치즈 스콘, 마마이트 스콘, 크레송 앤 치즈 스콘, 로즈마리 앤 감자 스콘 등... 아마도 역대 가장 다양한 스콘 레시피가 실려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워낙 스콘을 좋아하는 편이라, 다양한 스콘 레시피들을 보고 있자니, 당장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샘솟는다.

제과점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균일화된 빵과 과자가 아닌, 영국의 소박한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전해주는 진짜 영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레시피들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레시피들이 복잡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단순하지만 손 맛이 필요한,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맛이 달라질 수 있는 그런 레시피야말로 빵과 과자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너무도 도전하고 싶은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뱀의 꼬임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어버린 이브. 가을이면 가지가 휘도록 매달려 있는 새빨간 사과는 이브가 아니어도, 뱀의 유혹이 없어도 먹고 싶어집니다. 살살 녹는 새콤달콤한 사과를 스펀지케이크 밑에 살짝 숨긴, 그야말로 이브의 금단의 푸딩. 한 번 먹으면 계속 손이 가는 멈출 수 없는 맛입니다.   p.107

영국에는 각 가정마다 비스킷 통이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가정의 티타임에는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도 머그컵 옆에는 언제나 비스킷이 있을 정도로 영국인들의 비스킷 사랑은 유명하다. 특히나 영국인들은 적셔 먹기 전문가들로, 홍차에 적셔 먹기는 그들만의 독특한 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레시피 중에 '초콜릿 기네스 케이크'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름에서 보이듯이 아릴랜드의 흑맥주 기네스가 레시피에 들어가는 케이크이다. 흑맥주와 코코아의 씁쓸한 맛이 기분 좋게 섞여 맛에 깊이를 더하고, 마치 기네스 거품 같은 크림치즈 프로스팅도 정말 잘 어울리는 케이크라고 한다. '맥주 케이크'라니.. 단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한번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이 '친절하고 자상한 레시피북'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쪼록 할머니의 레시피 수첩을 떠올려 달라고. 만드는 과정 사진 같은 건 없지만, 오랜 경험으로 익힌 소중한 요령과 가족들에게 사랑받아온 레시피로 채워진 할머니의 요리수첩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단순한 재료로 간단한 레시피를 통해 만드는 베이킹은 따라 하기도 좋고, 읽기에도 수월했다. 대부분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만들고 있는 기본 배합 그대로이라고 하니, 영국의 티타임과 디저트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에게 너무도 훌륭한 책이 될 것 같다.

영국의 과자와 빵은 이웃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소박하고 투박한 경우가 많은데, 그 담백한 맛에 담겨 있는 그것을 참 좋아한다. 영국 과자 전문가인 저자 야스다 마리코는 영국에서 과자 교실을 운영하며 주변의 친구, 단골 레스토랑, 소박한 시골 가정집 등에서 영국 본고장의 레시피를 익혔다고 한다. 진짜 영국의 홈메이드 과자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베이킹에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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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 넘치는 데이터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내는 법
나카무로 마키코.쓰가와 유스케 지음, 윤지나 옮김 / 리더스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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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대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것보다 받는 것이 낫고, 오랜 시간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적당히 보는 것이 나으며, 입학 점수가 낮은 대학보다는 높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든다. 그런데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통설을 믿고 행동했다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돈과 시간까지 버리게 된다면?    p.19

 

건강검진을 받으면 장수할 수 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 성적은 떨어진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면 연봉이 높다? 대부분 그렇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과관계' '상관관계'를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들은 모두 틀린 이야기일 수 있다고 한다. '두 개의 사실 중 한쪽이 원인이고 다른 한쪽이 결과'인 상태를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한다. 한편 '두 사실이 서로 관계는 있지만,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지 않은 것'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인과 추론의 근본 개념을 철저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완전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이기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배경 지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려운 수식 등도 전혀 사용하지 않아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콜릿 섭취와 노벨상, 건강검진과 장수, 지구온난화와 해적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사실' 인지, '진실'인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실전에서 써먹으면 한층 똑똑해 보이는수 읽는 센스를 알려주고 있다. 꽤 많은 도표들과 경제학적 통계와 여러 데이터의 수치들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 어렵지 않다.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에서 우리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고 반사실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사실만 보고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해 무조건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하거나 무턱대고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기대했던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당신의 소중한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p.47

 

우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규모가 점점 더 방대해지고 생성 주기도 짧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 즉 빅데이터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데이터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이 가치 있는 데이터가 되려면 그 정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통계학자 발터 크래머는많은 사람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고 말했다. 엄청난 속도로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더라도, 진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진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남성 의사가 여성 의사보다 뛰어나다? 공부 잘하는 친구와 사귀면 성적이 오를까? 어린이집을 늘리면 여성 취업률이 올라갈까? 명문대를 졸업하면 연봉이 높을까? 저자는 말한다. 보이는 숫자에 속지 마라. 겉으로 드러난 정보에 속지 마라.

 

 

세계은행 출신의 교육경제학자가 알려주는 숫자만으론 읽을 수 없는 경제학의 진실은 빅테이더 시대 최소한의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빅데이터로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바꾸었고 이제 데이터 분석의 다양한 기법은 비즈니스와 정책 모델에 적극 활용되며 그 중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빅데이터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해내며 판도를 뒤집는 전략으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수년이 흘렀어도, 일반인에게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인데,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일본 출간 당시 2017 베스트 경제서 1위 및 아마존 재팬 경제경영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만큼 대중적인 책이기도 해서 빅데이터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파악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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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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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를 원했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걸까?"

"저도 모르겠어요." 라고 했다가, 문득 알 것 같았어.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게 더 슬프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갖지 못한 것들은 상상으로만 존재하고, 상상 속에선 모든 게 완벽하니까." 이게 바로 내가 마리아노 도나텔로를 생각할 때 드는 느낌이거든.

"그래, 그게 맞는 것 같아, 루비. 넌 무척 현명하구나."   p.195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성추문을 일으킨 전직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엄청난 권력남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최근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해 전 분야로 확산된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 운동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자신과 클린턴 전 대통령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당시 클린턴은 르윈스키보다 27살이나 연상이었고,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의 상사였다. 르윈스키는 마흔 네살이 되어서야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이라는 엄청난 권력 차이의 함의를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한다. 그녀와 클린턴과의 섹스 스캔들은 "르윈스키 스캔들"로 불렸고, 2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의 이름 뒤에 따라다닌다.

개브리엘 제빈의 신작 <비바, 제인>은 여러 모로 르윈스키 스캔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실제 이 작품은 '미투(Me too) 열풍'이 거세게 불던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당시 언론에서는 "르윈스키 다시 쓰기"라며 주목했다. 개브리엘 제빈은 "20대 때는 별생각 없이 르윈스키를 '젊고 야망 있고 이기적인 여자'라고 비난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둘 사이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이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라고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유명 정치인과 젊은 여성 인턴의 불륜이라니 뉴스 거리로 딱 좋은 소재 아닌가. 하지만 그 인턴이 당신의 딸이라면 어떨까. 이야기는 하원 의원과의 스캔들 이후 딸에 대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견뎌야 하는 엄마 레이철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야기가 나쁜 결말에 도달하고도 남을 만큼, 형편없는 선택을 이미 잔뜩 해버렸다. 그것을 만회하는 유일한 방법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인데, 당신의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당신은 인간이지 <끝없는 게임>의 등장인물이 아니니까.

이 시리즈의 문제점은, 몇 번쯤 나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엄청나게 지루하다는 점이다. 항상 착하게 살고 언제나 올바른 선택만 하면, 이야기가 무척 짧아진다.    p.360

레이철의 딸 아비바 그로스먼은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인턴으로 일하던 중에 그와 사랑에 빠졌다. 사람들은 아비바가 하원의원이 유부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혹했고, 권력과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달려든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에런의 아내인 엠베스는 그를 용서했고, 티비 뉴스 인터뷰에서 불화의 시기는 지나갔다고 발표했다. 하원의원의 정치 생명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고 그의 일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비바는 롤리타 인턴으로, 르윈스키 따라쟁이로, 난잡함의 다양한 유의어로 낙인찍혔다. 학교 측에서는 그녀에게 휴학을 강권했고, 레이철은 학교 교장 직에서 사임해야 했고, 이후 아비바는 졸업 후에 그 어느 곳에도 취직할 수 없었다. 아비바게이트는 다른 사건의 이슈에 묻혔지만, 그녀가 이력서를 내는 곳에서는 여전히 구글 검색만으로 그 과거를 찾을 수 있었으니 어느 회사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았다. ‘선정적 보도’ ‘관음증적 관심’ ‘신상 털기’ ‘낙인찍기’ ‘모욕 주기’ ‘배척’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 운운등으로 이어지는 성추문 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섯 개의 장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다섯 명의 여성 화자들이 풀어 나간다. 딸 아비바를 지키고 싶었던 엄마 레이철, 홀로 딸을 키우며 웨딩플래닝 사업을 하는 제인, 그녀의 여덟 살짜리 조숙한 딸 루비, 하원 의원의 아내로 남편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며 살았던 엠베스, 그리고 한때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아비바. 5명의 여성 입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스캔들 이후에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스캔들 자체보다는 그 후 여성이 겪어야 하는 편견과 차별에 집중하고 있어 자칫 신파로 흘러가거나,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작가는 시종일관 유쾌한 톤으로 유머를 잃지 않는다. 미투 운동으로 인해 여성의 인권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이러한 사건 이후로 다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쉽사리 주지 않는다. 과연 성추문에 휩쓸린 여자에게도 새로운 인생이 가능할까. 세대와 처지가 다른 다섯 여자, 그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여성에게는 좌절의 상황에서재탄생이 결코 쉽지는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싶게 된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꿔나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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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도서관 웅진 모두의 그림책 12
다니엘라 자글렌카 테라치니 지음,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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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모두의 그림책 12권은 나만의 미니어처 서재를 만들 수 있는 <나의 작은 도서관>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서재를 가지고 싶다는 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원하는 대로 모두 구입할 수 없어서, 혹은 그 많은 책들을 정리할 공간을 마련할 수 없어서 서재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여기, 그런 이들의 로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책이 있다.

 

고풍스러운 패턴의 아름다운 상자를 열면 아담한 방이 나타난다. 고운 햇살이 드는 창, 고풍스러운 비취색 벽지, 맨발로 걷고 싶어지는 결 좋은 나뭇바닥으로 꾸며진 그곳은 바로 '작은 도서관'이다. 그리고 그 도서관은 내가 직접 만들고 꾸미는 대로 나만의 도서관이 된다.

손끝으로 오리고, 접고, 붙이고, 꾸며 완성될 30권의 작은 책 만들기는 여느 DIY들과는 다르게 너무 쉽고, 간단하게 할 수 있다. 가위랑 풀만 있으면 되고, 너무 단순한 방법이라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쉽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쉽지만 시간은 꽤 걸린다. 무려 30권이나 되는 책을 일일이 자르고, 접고, 붙여서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만드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

 

30권의 책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 에드워드 리어의 <올빼미와 고양이>, 루이스 캐럴의 <재버워키> 등 명작 동화와 <식물 도감>, <열두 별자리>, <세계지도>, <상상의 동물 사전>, <조류 도감> 등의 흥미로운 정보들이 담겨 있는 책, 그리고 열 권의 나만의 책이다. 

 

<내가 쓴 이기한 이야기>, <작고 소중한 나의 보물들>, <내가 쓴 모험 이야기>, <나의 일주일>, <나만의 무늬 그리기 책>, <우리 가족 앨범> 등 내용이 비어 있어서 직접 이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재미있는 사진을 잘라 붙여서 완성할 수 있는 나만의 책들이 있어 더욱 흥미로운 서재가 완성된다.

완성된 미니어처 책들은 생각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게다가 미니어처라고 해서 내지를 대충 만들지 않고, 각각 표지에 맞는 고급스러운 패턴의 속지와 본문의 내용들 또한 실제로 읽을 수 있는 크기의 글자와 내용에 맞는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지도 이미지도 멋졌고, 동화 속에 나오는 장면들을 그린 일러스트도 굉장히 멋지다.

 

짜잔. 그렇게 해서 완성된 나만의 작은 도서관이다. 핑크색 상자를 열고 바닥에 세우면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도서관이 나타난다. 게다가 대부분의 미니어처들이 만들때는 재미있고, 완성하면 뿌듯하지만, 막상 보관이 애매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은 보관 방법도 훌륭하다. 독서가 끝나면 상자를 다시 눕혀서 만든 책과 책꽂이를 넣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 그대로 상자 채로 책처럼 책꽂이에 세워서 보관도 가능하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언제든 펼쳐서 볼 수 있는 나만의 도서관이라는 비밀 공간이 생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이, 어떤 대상을 사랑하면 소유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책을 수집하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이란 얘기다. 나 역시 나날이 늘어나 네 벽을 완전히 둘러 방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책꽂이들의 틈새에서 매일 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은 책들이 자가증식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들이 늘어나고 있어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나의 서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물론 책등의 컬러 별로, 시리즈 별로, 출판사 별로.. 보기 좋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완벽한 서재의 모습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뒤죽박죽 바닥까지 쌓여 있는 책들의 숲이지만 말이다.

 

<나의 작은 도서관>은 책 한 권이 주는 수만 가지의 즐거움을 감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나처럼 책을 수집하고, 읽고, 책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만의 비밀 서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추천한다. 내 손으로 직접 책을 짓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이 체험은 읽기의 대상을 넘어 감각의 대상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확장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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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파리
데이비드 다우니 지음, 김수진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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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곳이 바로 살롱입니다." 관장이 설명했다. "그리고 노디에가 기대어 서 있었던 벽난로가 바로 저기지요."

그 순간, 밖에서 들리던 자동차 소리가 귀에서 멀어져 갔다. 잠시 시간의 흐름이 멈추었다. 나는 노디에가 살았던 시절 그와 함께 했던 그림과 책, 물건들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기억과 먼지가 켜켜이 쌓인 비옥한 흙냄새가 나는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랬더니 어느 날 저녁 살롱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한 뒤마의 글이 떠올랐다.    p.59

파리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약혼녀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온 할리우드의 작가인 주인공이 어느 밤 자정에 파리의 골목길을 헤매다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와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 영화는 그야말로 파리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설레이는 작품이었다. 불꺼진 상점들 너머 길을 잃은 자정이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를 발견한다는 낭만적인 설정도, 위대한 작가들이 쉼쉬는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호사스러운 공상도 너무 매혹적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헤밍웨이가 불쑥당신은 어떤 소설을 쓰지? 문장은 간결해야 해하고 조언해주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가 쓴 글을 평가해준준다니,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 꿈꿀 달콤한 상상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리라는 도시는 이 영화에서처럼 '매일 밤 12시가 되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1920년대행 자동차'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설레이는 판타지가 진짜 벌어질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다우니는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매력의 원천에는 물리적 아름다움이나 고급스러운 삶뿐만 아니라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역사와 여행과 회고록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저자가 파리로 건너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파리와 파리의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탐색에 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말은 잊기 바란다. 그리고 한밤중 대신 새벽에 몽마르트르를 가로질러 산책해보기 바란다. 마녀가 출몰할 것 같은 이 시간이면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장소들은 텅텅 비어 있다. 이제 저속하고 시대착오적인 것들 대신 마법처럼 역사 속 인물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장밋빛 불빛 속에서 마르스 신은 모딜리아니가 긴 목을 지닌 한 연인과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거투르드스타인은 전신으로 받은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바토 라부아르에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정신 없는 작업실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p.421

푸치니의 오페라, 플로베르와 빅토르 위고의 소설,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나다르와 브라사이, 드와즈노,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속에는 낭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를 본 사람들이 파리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파리를 낭만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낭만의 토대이자 뿌리가 되는 것들, 정말로 중요하지만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거대하고도 어둡고 비밀스런 것들, 파리와 파리지앵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선과 다름없는 것들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센 강변과 생 마르탱 운하, 중세풍의 거리, 멋지고 오래된 건물들 모두 하룻밤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뚝딱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노래와 와인, 장미로 생기가 도는 완벽한 도시의 밤 풍경은 섬세하고도 세심하게 계획해서 만들어낸 환영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의 매력에 빠져 이주해온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가 읽어내는 빅토리 위고, 조르주 상드, 샤를 보들레르, 오노레 드 발자크, 펠릭스 나다르 등 위대한 낭만주의자들의 삶과 사랑은 대단히 흥미롭게 들려진다. 파리라는 도시의 세속적이고 낭만적인 곳을 찾아 순례를 하며 세계적인 문학가, 예술가들이 깃들어 있던 곳들을 직접 찾아가보고 감상하고 탐구하고 그들의 사랑과 인생, 해프닝,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여정은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100여 컷의 역사적이거나 현대적인 사진이나 스케치, 그림들은 우리가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 내는데 더 생동감을 부여한다.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파리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면 이 책으로 인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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