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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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가언을 만드는 일과 표어를 찢어버리는 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어떤 명제를 만들거나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 글로 자신이 온전하게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단언하듯 문장을 만들지만 그 문장이 얼마나 불안정하며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알고 있다. 바보 같은 줄 알면서 계속 쓰고, 단언하지 않으려 하면서도하얀 눈 위의 구두 발자국같은 문장을 끊임없이 찍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흔들리며 글을 쓴다.

책을 읽는 것을 즐겨 하는 이들은 대부분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읽어본 수많은 작법서, 글쓰기, 문장 등에 대한 책들은 사실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라는 건지, 일단 잘하라는 건지, 즐기다 보면 잘하게 된다는 것인지,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즐기라는 것인지' 유명한 잠언이나 경구 들은 하나 마나 한 말들이거나, 어쩌라는 것인지 난처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에 만난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소설가 김중혁이 처음으로 밝히는 글쓰기 비법과 창작의 비밀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장난기 어린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절반 이상은 문법, 문장, 이야기 구성 등등에 관한 비법이 아니라 작가라는 존재의 신변잡기에 가까운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창작의 도구들이라고 해서 글을 쓸 때 필요한 물품들의 나열로 시작해서 글을 쓸 때의 일상, 쓰지 않을 때의 일상, 서점의 발견과 글을 쓸 때 듣는 음악 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러고는 창작의 시작 단계를 거쳐 실전 글쓰기 항목에 이르지만, 뭐 딱히 작가 만의 창작 비법이라든가 글쓰기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우리는 소설가라는 인물의 머릿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작가라는 존재는 뭔가 대단히 창조적인 영감이 번뜩이는 순간을 마주하고, 갑자기 뭔가에 영향을 받아 마구 글을 써내려 갈 줄 알았던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공감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보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그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평소에도 김중혁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었고,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도 자주 들었던 나 같은 독자들이라면 그 친근함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일종의 평행 우주다. 종이 위의 문장들은 실재하는 현실과 무척 닮아 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글을 쓰는 사람은 종이 위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고, 가보지 못한 길을 상상할 수 있다. 픽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우리는 글 속에다 새로운 우리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인 척할 수 있다. 더 현명하거나 더 세련된 사람인 척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나 그럴 수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더 나은 사람인 척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글쓰기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는 그런 일상생활이 첫 번째 인생이고,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곱씹는 순간들이 두 번째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김중혁 작가는 이 책에서 바로 그 첫 번째 인생으로 농담처럼 이야기를 시작해, 점점 두 번째 인생을 보여주며 작가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내용이 너무 가벼워서 책장이 쉽게 넘어 가는데, 이상하게도 책의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어떤 글이든, 무엇이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심각하지 않고, 어렵지 않고, 딱딱하거나 복잡하지 않은 글쓰기에 관한 두서 없는 생각들이 결국 목적지로 도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다 작가의 명백한 의도라는 얘기일 것이다. 글쓰기란 머리 아프고,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항상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핑계 대는 것은 변명일 뿐이라는 것,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만으로 뭔가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다 헛소리라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실제로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고 있으니 이 책은 자신의 제목을 고스란히 책임지고 있는 대단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읽기는 쓰기를 낳고, 쓰기는 다시 읽기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 좀 읽어봤다 싶은 이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글을 쓰고 싶지만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되는 건지 에서부터 막막한 이들에게는 뭐라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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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탄생 -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문명의 역사
알렉산더 데만트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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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측정하는 시간은 객관적이다. 원칙에 따르는 모든 이들이 같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주관적 시간이란 우리가 느끼는 시간을 말하며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동안, 또 신체의 작용을 통해 주관적 시간을 경험하며 자연의 흐름이나 사건의 패턴을 통해 외부적 시간을 경험한다. 이 시간은 우리 기억의 형태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저장되거나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항상 현존하며 멈출 수 없고 한 방향으로 저항할 수 없이 나아간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현재 시간이 새벽 1 55분인데, 런던은 오후 4 55, 벤쿠버는 오전 8 55, 두바이는 저녁 8 55분이다. 평소에는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자각하면서 살고 있지 못하지만, 이렇게 여러 나라의 동일 시간대를 보게 되면 새삼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이란 인간이 편의상으로 수치로 나눈 개념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달력의 연대기로만 볼 수만은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시간에 대한 정의는 각양각색인데, 시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쪽과 시간은 필요에 의해 정의된 거라는 쪽으로 대립되고 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시간을 인정하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말이다. 현재의 시간 개념에 도달하기 위해 인류는 얼마나 먼 길을 여행해왔는가. 1년을 12개월로 나누기 시작한 것은 3천여 년이 넘었지만 달력에 주 단위로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20년이 넘었다. 그 동안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무수한 방법과 실험, 우회와 오류, 퇴행이 거듭 이루어져 온 것이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사회까지 3천여 년의 문명사 동안 '시간'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대하는 관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일상적인 계획을 비롯해 시간을 셈하는 방식, 7일을 한 주로 구성하고, 각 날에 요일을 붙이고, 달마다 이름을 붙이며, 달력을 만들고 절기와 나이 그리고 영원의 개념을 만든 것들 모두 고대의 유산에 포함된다고 저자인 알렉산더 데만트는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을 둘 만한 가치가 있는 방식으로 역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는데, 시간이라는 복잡한 관념을 고대의 문명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매혹적인 방식인 것 같다. 고대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조차도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현대사를 거의 반세기 동안 연구해온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굉장히 쉽고 재미있는 역사서가 아니었나 싶다.

시계를 은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비단 세상과 유지 관리 체계 혹은 국가만이 아니다. 시간에 대한 다양한 비유적 표현도 역시 존재한다. 가령 '12 5분 전이야!'라는 표현은 때가 무르익었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위해 '종을 울리면' 그 사람은 죽을 것이다. 1940년에 쓴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종소리는 죽음의 신호였다. 막스 피콜로미니가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운이 좋은 이에게는 결코 종이 울리지 않는다.

시간이 항상 삶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미국인들의 신조나 의미 없는 일을 하거나 그저 빈둥거릴 때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한다거나, 괴테의 말처럼 시간은 하느님과 자연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는 식의 표현들 말이다. 우리가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 또한 너무도 익숙한 표현이라 공감이 되었다. '시간'이라는 단어의 언어적 역설은, 시간이 의인화되었으나 물체처럼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사실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간은 단위가 작아도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은데, 이는 종종 인생의 은유에도 적용된다. 하루 중의 시간이나 한 주의 요일, 계절이나 시대가 전체적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단위가 되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루의 시간 혹은 매 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아침과 저녁의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이후의 문학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주를 왜 7일로 정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달의 순환 주기가 28일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한 달의 순환을 반으로 나누게 되면 크게 네 시간으로 나눌 수 있게 되는데, 이 간격을 계산해보면 7일이자 한 주가 된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달력은 빵이나 꿀, 미네랄워터 같은 생필품뿐만 아니라 시장과 지급일, 등록과 마감일, 계약과 유효 기간 혹은 복역 기간, 직무수행 기간, 세금납기일 등 모든 영역을 망라해서 지배한다. 그 외에도 가장 긴 시간인 영원이라는 개념, 고대의 달력과 기독교의 달력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진화, 한 해의 시간을 파악하게 되면서 구분된 사계절, 인간이 살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과 최장수 사례에 대한 기록, 인생의 단계 등등... '시간'이라는 테마를 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도 다양하고 광범위 해서 마치 '시간'을 초월한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 마저 들었다. 책 표지에 '시간에 대한 이야기 속에 빠져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어느 순간 그렇게 되고 만다. 하드커버 양장으로 700여 페이지의 책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의 가치는 그 이상일 거라는 기분이 드는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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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인생
데이나 스피오타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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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를 믿는다. 그럼으로써 거래 관계에서 신뢰 관계로 옮아간다. 이 부분이 그녀는 좋았고, 전화상에서는 자신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임을 알았다. 그녀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지어내는 것은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감정, 진짜 감정과 진짜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환상인가 아닌가는 그녀에게 중요치 않았다.

영화란 착각 위에 세워진 예술형식이다. 정적인 영상을 빠르게 보여줌으로써 움직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 영화는 실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눈에 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실제가 아닌 장치를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술과도 같고, 영화 감독이란 위대한 사기꾼, 굉장한 거짓말쟁이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그토록 놀랍고도 아름다운 영화라는 장치의 맨 얼굴을 세 여성의 삶을 통해서 고스란히 보여준다.

1부의 이야기는 인터넷 사이트여성과 영화에 실린, 유명 여성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메도 모리의 에세이로 시작한다.  10대 시절 부모에겐 거짓말을 하고 유명 영화 감독 집에 머물면서 그와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었다는 글이다. 이는 그녀가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글에 대한 댓글 반응들은 상당히 좋지 않다. 유명인이랑 붙어먹기로 출세한 거 아니냐, 미성년자가 뚱뚱한 노인과의 사랑이라니 역겹다, 등등. 흥미로운 것은 단짝인 캐리에 대해서는 왜 언급이 없냐, 절친이었던 그들이 절교해서 서로 말도 안 한다는 등의 언급이다. 메도는 다큐멘터리 감독, 그녀와 단짝이었던 캐리는 코미디 영화 감독이다. 역시나 '여성과 영화'에 실린 캐리의 에세이는 3부에 등장한다. 2부에서는 메도와 캐리 외에, 목소리 하나로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의 연인이 된 수수께끼의 여인 니콜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니콜은 시각 장애인이었다. 선천적인 맹인은 아니었고, 뇌막염으로 죽다 살아나면서 하룻밤 새에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서서히 어느 정도는 시력을 회복해 형체와 빛과 색깔은 어느 정도 볼 수 있었지만, 흐릿한 시야 덕분에 지팡이 없이 돌아다니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본명은 에이미, 별명은 젤리이지만,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에게는 니콜이다. 그녀는 콜 센터에서 일하다 어느 날 재미로 낯선 이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녀의 첫 번째 '순수한' 통화 경험이었다. 통화 자체가 목적이었고, '이유'는 없었던 통화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배우 지망생인 친구를 통해 유명인 들의 연락처를 몇 개 받아 조사를 하고 배경 지식을 쌓은 뒤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가끔씩만 걸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점차 자신도 이 환상적인 세계의 일부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의 삶과 그들의 삶 사이의 거리가 따지고 보면 그렇게 멀지 않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생겼냐고? 나는 젤리 도넛처럼 생겼어.

젤리는 일어나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외모와 성격이 다를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 사람, 이 여자가 아니야. 그리고 사진 속 린도 아니야. 잭은 알 거야, 잭은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창문이야. 나는 소원이야. 나는 속삭임이야. 나는 젤리 도넛이야.

메도는 우연히 할리우드 인사들에게 전화하던 수수께끼의 여자 '니콜'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녀와의 통화는 사적이고 에로틱하기까지 했지만 노골적이진 않았고, 전화로 남자들을 유혹한 게 아니라는 점과 오랜 시간 친분을 쌓고 만나려고 하면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고 사라져버린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니콜을 만나 설득해 그녀의 삶을 영화로 제작하고, 그 영화는 <내부의 교환원>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게 된다. 니콜은 전화를 통해서 자신의 진짜 모습, 됐어야 했지만 되지 못한 모습이 될 수 있어서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걸 한 번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그녀의 삶을 담은 영화는 수작으로 호평을 받지만, 니콜은 메도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비난한다. 3부에서 캐리는 메도의 삶과 예술에 대해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메도를 동경하면서도 그녀와 전혀 다른 방식의 영화를 연출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그녀의 삶과, 메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친구로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메도라는 난해한 인물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그리고 시간의 길이- 영화가 지속된 시간, 관객이 견딘 시간-가 기다리고 있는 관객을 설득하여 마음을 돌려놓는다. 그 순간은 한 시간 만에 올 수도 있지만 어쨌든 관객은 계속 본다. 그리고 영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 작품에서 메도와 캐리의 인생은 순차적인 서사로 보여지고 있지 않고, 띄엄띄엄 진행된다. 줄거리 자체가 선형적 구조를 취하고 있지도 않고, 기승전결 식의 클라이막스나 주요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3친칭 시점과 1인칭 시점을 오가는 형식이다. 거기에 더해 전기적 에세이, 비디오 녹취록, 일기, 인터넷 댓글 등을 활용한 방식은 이야기를 더욱 낯설게 보이게 만든다. 한 마디로 독자 입장에서 읽기에 쉬운 소설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낯선 형식의 소설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마 더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영화라는 예술에 지대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메도가 만든 이상한 기록물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캐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어쩌면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수정하는 이 모든 행위는 흥미로웠지만 대체 무엇을 위해서란 말인가? 이 영화들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고 메도의 극단적 방식에 종종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캐리의 시선이야말로 평범한 이들의 그것일 것이다. 메도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어디에 다다랐는가는 어떻게 그곳에 다다랐는가 만큼 중요하지 않음을. 힘들게 얻었다면, 힘들게 얻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정리만 하면 됐다. 그 후에는 그냥 내버려둬라'는 식의 사고 방식은 메도의 영화와 삶의 태도에 고스란히 보여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여성 예술가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자신이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작품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조금 여유 있게 천천히 읽어 보기를 권한다. 계속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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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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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충격은 오래 전에 사라졌고, 그와 함께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어쨌거나 그녀의 마음은 그때 일을 거의 돌이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된 삶, 그 가공의 삶은 수정처럼 날카롭고 투명하게 존재했다.

아름다운 아릴랜드 서부의 스토니브리지에 위치한 호텔 스톤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출간 전에 전체 10편의 이야기 중에 3편을 먼저 티저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읽기 전에는 전체의 반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읽어 봤자 소설의 맛보기만 하는 건데, 그걸로 이 작품이 어떤지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는 겨우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작품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 모두 각각 하나의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들 또한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스토니브리지의 농장에서 아버지를 도와 암탉을 돌보던 소녀 치키는 언니들, 형제들이 큰 도시로 떠나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떠나는 모습을 본다. 그녀는 대단치 않은 일을 하더라도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날 잘생긴 미국인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육 주 동안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즈음 치키도 그를 따라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집안 식구들은 노발대발 난리법석을 피운다. 치키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의 끝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하지만 그녀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남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게 된다.

 

"저는 제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하지만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이제 중년이 된 치키에게 뜻밖의 제안이 생기고, 고향의 스톤하우스를 인수해 호텔로 개조하는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스토리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그러나 남자와 눈이 맞아서 고향을 떠나왔지만, 행복한 시간이란 그리 길지 않았고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녀가 고향의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거짓으로 꾸며낸 삶으로 행복한 척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딘가 뭉클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것만 빼면 돈을 아끼느라 휴가도 즐기지 않고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그녀에게 '꾸며낸 거짓 삶이 보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결국 그녀가 떠날 때 고향 사람들의 우려가 모두 틀렸고,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유일하게 그녀를 살아 있게 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안타깝고, 이해가 되어 응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치키의 이야기에 이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살며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경찰에 붙잡힐 처지가 된 리거, 런던에서 회사 생활을 하며 지쳐 버린 치키의 조카 올라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스톤하우스는 손님 맞을 준비를 모두 끝낸다.

메이브 빈치는 아일랜드의 국민작가로 불리는데, 사후에 발표된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이 작품이다. 누구나 살면서 삶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내가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선택하는 순간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도, 선택을 번복할 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의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 인생이란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단 한 번뿐이니 말이다. 메이브 빈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리며 인물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스톤하우스에 도착하게 되는 손님들의 사연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다음 이야기를 빨리 만나보고 싶다. 마음 시린 이 계절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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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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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항상 처음이 있는 법이지요, 페퍼 씨. 저의 제안을 기억해주세요.”

아서는 작별 인사를 하고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에도 메라 씨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음 행선지…… 참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추적해본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1년 전 오늘, 아서 페퍼의 아내 미리엄이 죽었다. 40여 년의 결혼 생활 끝에 이제 집에는 예순아홉의 아서 페퍼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딸인 루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혼자 살고 있었고, 아들인 댄은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다. 아서는 열쇠 수리공으로 자물쇠 영업을 하느라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만 하느라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고, 덕분에 자식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삐걱거렸다. 아서는 일주일 넘게 그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은 채, 집에서 규칙적인 일상을 지키려고 애쓰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웃집 여자 버나뎃만이 지난 몇 달간 집에서 만든 음식을 들고 찾아왔지만, 그는 대체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집에 가둔 채 칩거하며 시간을 보내다, 오늘 아내의 기일에야 겨우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러다 아내의 부츠 속에 들어 있는 조그만 상자 속에서 여러가지 모양의 참이 달려 있는 금팔찌를 발견한다. 코끼리, , , 팔레트, 호랑이, 골무, 하트, 그리고 반지 여덟 개의 참들이 달려 있는 팔찌는 아무리 기억해봐도 생각나지 않는 물건이었다. 아서는 미리엄이 그 팔찌를 끼고 있는 걸 본 기억도, 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없었던 것이다. 아서는 코끼리 참에 새겨진 글자와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어 보기로 하고, 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아서는 상실감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한 걸음으로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려고 했던 건데, 그녀의 옷장에서 발견한 낯선 팔찌 하나로 인해 당혹스럽기만 하다. 고민 끝에 그는 참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추적하는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집 밖으로 외출 조차 안 하던 그가 말이다. 어쩌면 아내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 '나를 만나기 전에 그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런던과 파리, 인도를 누비며 아내의 남자들을 찾아나선 아서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40년을 그녀와 함께했던 아서의 삶과 추억이 모두 와르르 무너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팔찌에 달린 참에 대한 사연 추적이 그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휘저어놓기 시작해서, 이 여정은 더 이상 미리엄이라는 존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서 자신의 문제가 되어 가기 시작한다.

 

"나도 잘 모르겠어." 아서가 한숨을 쉬었다. "팔찌를 찾기 전엔 꼭 그렇게 살고 있었고 미리엄도 내가 그렇게 살길 바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아내를 잘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것들, 내가 아는 걸 원치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이런 것들을 비밀로 간직했다면, 또 뭘 감췄을까? 나한테 신의는 지켰을까? 나 때문에 아내가 따분하게 살진 않았을까? 아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내가 못하게 했을까?"

아서는 아내 미리암이 자신을 만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었는지 그녀의 시간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참에 담긴 사연들을 추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변하고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 마저 들었던 것이다. 아서는 그 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이 여행을 통해서 아내가 자신한테 말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너무도 역동적이고, 화려한 그녀의 과거 삶에 대해서 알아 가며 아서는 생각한다. '나 때문에 아내가 따분하게 살진 않았을까? 아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내가 못하게 했을까? 이런 것들을 비밀로 간직했다면, 또 뭘 감췄을까? 나한테 신의는 지켰을까' 의문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자신의 삶 전체가, 아내와 함께 해왔던 시간 전체가 부정되는 듯한 기분 마저 느끼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때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있다. 내가 상대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기대하는 바가 상대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많은 것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생김새, 생일, 연락처, 취향, 습관 등등이 그 사람의 전부는 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이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맞나 싶어 상처를 받게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온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타인이 서로의 마음을 백퍼센트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우리는 알 수 없는 상대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어야만 한다. 나를 만나기 전, 내가 그를 알게 되기 전에 그가 살아온 삶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그리고 지나간 과거보다 함께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만 하니까. 극중 아서는 의심과 질투에서 비롯된 여정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진실들을 통해 허탈감과 공허감으로 무너져 내리는 대신,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나가기로 결정한다.

 

이 작품은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는 특별한 여행의 여정을 통해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모험을 보여주기도 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아들과 딸, 아버지, 그리고 아내와 남편의 모습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나 주인공 아서 페퍼가 대단한 모험가도, 괴팍하고 꼬장꼬장하기로 소문난 동네의 유명한 할아버지도 아닌, 튀는 데도, 모난 데도 없이 자신이 그어놓은 삶의 범주 안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살아온 대체로 평범한 할아버지라는 점이 투박하지만 정겹고, 뭉클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주고 있다. 아서 페퍼의 황당무계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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