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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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바꿀 수 있는 것을 직시한다.'

노년을 행복하게 사는 힌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은 인생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이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식뿐입니다.

늙어가는 용기, 나이 든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용기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아주 조금 바꾸는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p.92~93

‘산다’는 건 다시 말해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 겪게 되는 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지만, 나이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문제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젊을 때는 나이 든다는 게 어떤 것인지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고,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커다랗게만 보였던 부모님이 늙어가고, 나 또한 나이를 먹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란 내가 상상했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말한다.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하지만,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갈 인생이 더 짧아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도 그렇게 의연한 마음 가짐으로 남은 인생을 대할 수 있을 것인가.

 

<미움받을 용기>로 인상적이었던 기시미 이치로가 이번에 나이 듦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으로 돌아왔다. ‘아들러 심리학 1인자이자플라톤 철학의 대가인 기시미 이치로. 왕성한 활동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일생일대의 사건이 닥친다. 나이 오십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글쓰기는목숨을 부지한 제 사명이라고 말하는 기시미 이치로는 이 책을 통해나이 들어가는 삶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도, 존경 받는 노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이 들수록 더욱 다양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또 책을 읽고 꾸준히 사색해야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바랄 수 있습니다.

하지 못하는 일이 늘어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이를 먹고 지식과 경험을 쌓아서 다양한 의미에서 사람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게 꾸준히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231~232

저자의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거의 누워만 있어야 했는데, 그 상태로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의식 수준이 저하되고 학습이 어려워지자 이번에는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그런 상태에서 애써봤자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어머니의 '무언가를 배우려는 마음과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기력과 의욕을 잃지 않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저자는 예순 살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강연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두 해 정도 되었고, 여전히 실력이 신통치는 않지만, 그럼에도 한국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기회가 와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자신과 마주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불가능이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나이 듦의 긍정적인 면을 체감하기 위해, 젊은 시절에 했던 일을 다시 한번 해보거나, 해보고 싶었는데 여태까지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오래 전에 읽고 어렵다고 느꼈던 책이나 언젠간 읽으려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는 열 명에 두 명은 죽게 된다는 큰 병을 겪으면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보다는 '오늘을 산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알려주는 '지금을 잘 살기 위한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법'들이 와 닿는 걸 보면, 나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작도 끝도 아닌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라는 것을 자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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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번리의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7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정지현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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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 물론 학문적 업적을 남기는 일이 고귀한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걸 알려 주기보다는 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더 즐거워졌으면 좋겠어.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자그만 즐거움이나 행복한 생각들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앤이 꿈꾸듯 말했다.

"난 네가 그 꿈을 매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길버트가 감탄하며 말했다.   p.96

우아한 패턴과 앤티크한 프레임이 아름답고 고혹적인 분위기의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다. 주근깨 빼빼 마른 소녀에서 어여쁜 숙녀가 되어 초록 지붕으로 다시 돌아온 앤의 이야기로, 자신의 모교인 에이번리 학교에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성장해 나가는 앤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그려져 있다.

'빨간 머리 앤'은 빨간 머리의 주근깨투성이 고아 소녀 앤이 실수로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인데,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에이번리의 앤'을 비롯하여 9권의 후속편들이 이어지는 시리즈이다. 이번 작품에서 선생님이 된 앤의 첫번째 부임지에서의 삶이 펼쳐지고, 이어지는 후속편들에서는 길버트와의 사랑과 결혼 생활, 아이들의 삶 등 앤의 일생이 그려진다. 이 시리즈는 저자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자전적 성향이 반영된 소설로, 몽고메리 역시 주인공 앤처럼 어린 시절 상상력으로 외로움을 달랬고, 대학을 졸업한 뒤 선생님이 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앤은 엄밀하게 말해서는 결코 미인이 아니었지만, 앤의 외모에는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매력과 특별함이 있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앤의 가장 큰 매력은 앤을 감싸고 있는 가능성과 내면에 있는 잠재력이라고 느꼈다. 마치 앤은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p.415

사실 어린 시절에 '빨간 머리 앤'이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시리즈로 이어져서 앤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를 통해서 다시 '빨간 머리 앤'을 읽고, 이번에 '에이번리의 앤'을 읽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빨간 머리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초록지붕의 생활에 적응했던 앤이 어느 새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걸 보니 흘러가는 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주근깨 빼빼 마른 소녀를 읽던 당시의 어린 소녀에서 지금은 어여쁜 숙녀가 되어 다시 돌아온 앤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수다쟁이에 공상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는, 회초리 대신 애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포부를 굽히지 않을 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실패하는 것이 두렵고, 여전히 실수투성이에 덤벙대기도 하고, 여전히 혼잣말하는 어린 시절의 버릇도 고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해 가는 앤의 이야기는 다이애나, 길버트 등 주변 인물들과 함께 계속 이어질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나 이번 리커버 에디션은 표지가 초록색이라서 더 산뜻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초록 지붕 집에 사는 빨간 머리 여자아이 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기존 고전 명작 시리즈의 아담한 느낌에서 벗어나 조금 더 커진 판형으로 가독성이 높아진 점 또한 매력적이다.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는 소장용으로, 선물용으로도 많이들 구입하는데, 그만큼 표지와 일러스트들이 너무도 아름다운 책이다. 게다가 앤의 주옥같은 긍정 어록들은 생의 경이로움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을 통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앤을 통해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위로도 받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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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문장 수업 - 하루 한 문장으로 배우는 품격 있는 삶
김동섭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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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속에는 한 민족이 수천 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런 까닭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민족의 역사, 문화, 신화, 생활 방식, 세계관 등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라틴어는 천 년 동안 번성한 로마 제국의 언어였다. 왕정에서 시작하여 공화정의 장년기를 보내고, 제정을 통해 전 유럽과 중동 그리고 이집트를 손아귀에 넣었던 로마의 모든 역사가 라틴어 속에 들어 있다.   p.5

라틴어는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제국 중 하나인 로마 제국에서 사용되던 언어이다. 로마 제국은 천 년 이상 지속되었고, 온 유럽을 자신들의 기준, 즉 자신들의 언어와 제도로 재편했다. 그런 점에서 로마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는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투영하는 거울과도 같다. 학자들은 라틴어가 인류가 사용한 언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논리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 혹자는 라틴어의 문법이 너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10년 넘게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동섭 교수가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라틴어를 배우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쓰였다. 라틴어로 기록된 경구, 속담, 격언 등을 소개하며 그 유래와 역사적 배경이 설명되어 있는데, 다소 복잡한 라틴어 문법도 쉽게 설명되어 있어 전혀 어렵지 않게 읽히는 점이 장점이다.

사실 현대인들 중에서 라틴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라틴어 문장 한 두 개쯤은 어디선가 들어봤거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일곱 가지의 큰 카테고리 아래 80여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을 살아라,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하라, 지혜가 모든 것을 이긴다, 로마인들의 문장, 신의 뜻대로, 마지막을 기억하는 것, 모두는 하나를 위해서, 라는 항목으로 테마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본적인 라틴어의 알파벳과 발음도 소개되어 있고 영어와 라틴어의 공통점과 다른 점도 설명되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한 라틴어 원문들이 생각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불안해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신을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은 신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미국에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미국인에게 신화가 없다는 데에서 찾았다. 정신세계가 피폐해지는 이유를 신화의 부재에서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인들은 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p.196

Festina Lente. 페스티나 렌테. '천천히 서둘러라' 라는 뜻이다. 모순적인 의미를 지닌 이 경구는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Nihil novum sub sole.  니힐 노붐 숩 솔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는 고대 로마인들의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우주 만물이 마치 불교의 윤회사상처럼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으며, 새로운 것도 과거에 존재했던 것의 또 다른 존재라고 역설하는 이 말이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이 경구는 모든 인간은 죽기 마련이고, 이승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도 한낱 먼지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대비하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를 통해 더 알려진 라틴어 Memento는 영어에서는 '시간이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품'이란 뜻이기도 하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다시 산다는 것이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언어 속에는 한 민족이 수천 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민족의 역사, 문화, 신화, 생활 방식, 세계관 등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천 년 동안 번성한 로마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에 소개된 문장들을 하루에 한 문장씩만 따라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라틴어 원문을 직접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 문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어 어렵지 않고, 그에 얽힌 유래와 역사적 배경이 설명되어 있어 지루할 틈도 없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라틴어 문구는 물론이고 고대 로마인들의 문학, 신화, 종교에 대해 구석구석 알 수 있어 인문학적 교양도 풍부해질 것이다. 평소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만나왔던 라틴어의 세계가 궁금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쉽고 재미있게 라틴어 문장들을 배워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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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의인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2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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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런던 시민이 익히 보아왔던 것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범죄 공보였다. 지명수배자들에 관한 추가적인 묘사는 없었고, 그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초상화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을 때, 짙은 파란색 서지 정장에 천 재질의 모자와 체크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같은 전형적인 묘사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것은 있어야 지나가는 행인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법이다.    p.45

에드거 월리스는 영화킹콩의 원작자이자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와 동시대에 사랑 받은 작가라고 한다. 생전 17편의 희곡과 957편의 단편, 그리고 170여 편의 소설을 남겼을 뿐 아니라, 160여 편은 영화로 제작되었고, TV시리즈로도 방영된 유명 작가라.. 국내에 이렇게 뒤늦게 소개된 것이 의아할 정도이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이라는 타이틀로 <트위스티드 캔들>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은 <네 명의 의인>이다. 지금의 세련된 추리, 스릴러 소설 작법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추리의 빈도가 그렇게 높지 않고, 20세기 초반의 대중작가들이 만든 작품 특유의 맛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히기도 한다.

<네 명의 의인>이라는 작품이 1905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야기를 읽는 다면 더욱 그렇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정의를 실현시키려고 하는 네 명의 남자들이 벌이는 일들이 주요 플롯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극중에 신문 칼럼에 등장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이 땅에 내린 정의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직접 법을 고쳐 정의를 실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번성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껴, 일종의 자경단을 경성하여 스스로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얘기이다. 사실 이는 마블 영화의 슈퍼 히어로들을 비롯해서 현대에 우리가 만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 속 영웅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의 방식이 조금 덜 세련되었을 뿐이다.

 

경찰은 그들이 평범한 범죄자가 아니며, 한 번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면, 현재 그들이 레이먼 경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기울이는 세심한 주의는 전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직함이 네 명의 의인의 가장 끔찍한 특징이었다.   p.111

네 명의 의인이라고 불리는 레온 곤살레스, 포이카르트, 조지 맨프레드, 그리고 테리는 영국의 외무부 장관 필립 레이먼 경 앞으로 여러 통의 협박 편지를 보낸다.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의로운 정치 난민을 본국으로 강제 송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외국인 본국 송환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법안을 제출한 외무부 장관을 암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외무부 장관은 이를 신문사에 제보하고, 기사를 통해 이들 4인조가 그 동안 저지른 범죄들의 목록이 밝혀진다. 2년 전 총격 사건 후 4인 중 한 명이 살해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4인 체제로 운영 중이었는데, 테리가 바로 새로 영입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테리는 나머지 세 명과 의견을 좁히기가 좀처럼 쉽지만은 않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정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네 명의 의인의 정체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사실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네 명의 남자를 찾는 일은 경찰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을 네 명의 의인 중 한 사람이라 밝히며 사면과 보상금을 요구하는 자가 신문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과연 협박을 받은 외무부 장관은 어떻게 될 것이며, 네 명의 의인은 무사히 자신들의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생각보다 술술 잘 읽힌다. 고전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말이다. 지금이야 이런 주인공들의 설정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이 작품이 무려 백 년 전에 발표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랍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후 속편이 계속 출간되어 전체 6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다음 시리즈에서는 이들이 또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 지 궁금해진다. 투박하지만 정직한, 촌스럽지만 당시의 시대상이 느껴지는, 그런 고전 추리소설이 궁금하다면 에드거 월리스의 작품을 만나보길. 엄청난 다작을 했던 작가답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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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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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 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p.21

타인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리처드 탈러의 <넛지> 99그램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책 한 권을 나눠서 99그램으로 만든 특별판이다. 보통의 핸드폰이 130그램이라고 하면, 무려 핸드폰보다 가벼운 책인 셈이다. 428페이지였던 책이 99그램 에디션으로 나오면서 4권짜리 책으로 분권이 되었다. 기존의 두꺼웠던 합본보다 확연하게 얇아진 두께는 너무도 가벼워서 부담스럽지 않고, 4권이다 보니 각각의 표지가 색상이 달라서 각 장을 읽을 때마다 느낌도 새로워진 것 같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Nudge'는 일종의 자유주의적인 개입, 혹은 간섭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학교 급식 메뉴에 변화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음식의 진열이나 배열만 바꾸는 것으로 과연 학생들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실험 결과 단지 구내식당의 음식을 재배열하는 것만으로도 특정 음식의 소비량을 올리거나 내릴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건강에 이로운 음식의 소비량은 늘리고, 건강에 해로운 음식은 덜 먹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각각의 학생들이 음식을 먹고, 안 먹고는 선택의 자유이다. 이처럼 넛지는 사람들의 선택에 부드럽게 간섭하지만 여전히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열려 있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뜻한다. 교 급식을 하며 몸에 좋은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지만,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만으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줄여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만들 수 있고, 단지 단지 '내일 투표할 거냐?'고 묻는 것만으로도 실제 투표율을 높일 수도 있다. 새로 구입한 휴대폰에 미리 설정되어 있는 디폴트 옵션(지정하지 않았을 때 자동으로 선택되는 옵션)의 설계, 위험한 커브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도로에 그려진 감속 경고 표시 등...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일상에서 넛지를 당하고 있다. 

 

 

혹시 화가 머리끝가지 난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이메일을 보낸 뒤 바로 후회해본 적이 있는가? 'sdnd' 버튼을 누르는 순간 '메일의 상당 부분이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진짜 보내겠습니까' 하는 메시지를 한번 노출하는 것만으로 몇 시간 후 우리의 괜한 후회와 자책, 무엇보다 더 큰 갈등을 없앨 수 있다. 이처럼 일상 속의 사소한 넛지가 우리 안의 좀 더 선한 본성을 깨워줄 수도 있다. 이처럼 넛지는 보이지 않는 듯해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p.332

우리는 매일 뭔가는 선택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개인적인 선택이 사실은 선택 설계자들이 만들어 놓은 대로였다면, 얼마나 놀라운가.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따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지만, 매우 흥미롭다. 이 책에서 말하는 행동 경제학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알려 준다. 그리고 편견 때문에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들을 부드럽게 '넛지'함으로써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뭐든 읽기 전의 상황보다 훨씬 나은 쪽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수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왜 그토록 넛지에 열광했는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책을 자주 읽지 않는 사람들의 핑계란 대개 비슷하다. 책을 읽을만한 시간이 없다.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너무 무겁다. 읽으려고 샀지만 막상 시작하기까지가 참 어렵다. 등등...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것이 99그램 에디션이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단 10분이면 충분하다는 문구가 과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게가 가벼워 시작하기에 전혀 부담이 없으니 말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친구와 약속 시간이 되기 전에, 혹은 화장실에서 잠깐씩 틈틈이 읽기에 너무 좋다. 가방에 쓱 넣어 가지고 다니기에도 가벼워서 좋고, 가까운 곳으로 외출할 때 그냥 막 들고 다니기에도 좋다.

<넛지>라는 작품이야 워낙 유명해서 읽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제목은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경제학을 다루고 있지만 전혀 어렵지 않고, 2009년에 출간되었지만 2018년 현재 읽어도 여전히 새롭고 유익한 내용이니, 이번 기회에 시작해보시길.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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