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 어른인 척 말고 진짜 느낌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기
박산호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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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 보면 또 넘어질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넘어져도 될 순간과 안 될 순간을 구분하는 지혜를 기르고, 그렇게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지니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는 묘미란 걸 요즘은 조금 알 것 같다.    p.50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어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외로운 분투를 응원하며, 라는 문구때문에 뭉클해졌다. 사실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명사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그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가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아서 그것에 따른 제대로 된 어른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저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거나,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긴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에 가까운,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라고. 왜냐하면 다들 나이 드는 건 처음이니까. 다들 사는 게 처음이니까, 세상에는 처음인 것 투성이니 말이다.

박산호라는 번역가의 이름을 처음으로 머리에 새긴 건은 톱 롭 스미스의 걸작 <차일드 44>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이후로 존 하트,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로렌스 블록, 제이슨 매튜스, 존 코널리 등의 작품을 거쳐 최근 돈 윈슬로의 <더 포스>에 이르기까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작가들의 작품에 항상 이름을 같이 하는 믿고 보는 번역가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어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인 경우에도 옮긴이가 박산호라는 걸 알게 되면, 어쩐지 작품이 궁금해져서 찾아서 일게 되곤 한다. 그런 그녀가 써낸 에세이라고 해서 이번 작품은 정말 기대가 되었다. 영어나 번역에 대한 글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과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어른'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고 하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했다.

 

 

준비하다 탕 소리가 나자마자 달리는 경주 같은 인생에서 경주마처럼 눈이 가려진 채 헉헉거리며 달리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끝나버리는 인생이라면 너무 허망하다. 그보다는 이번 도쿄 여행에서 호텔을 찾아가다 길을 잃고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우아한 정원에 넋을 잃은 것처럼 인생에서 만난 우연한 순간에 감탄하고 싶다. 목적지로 최대한 빨리 직진하는 것보다 그 여정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이란 걸 느끼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알알이 느끼며 살고 싶다.    p.189~190

통역가를 꿈꾸다 읽고 쓰는 게 좋아 번역가가 된 후 16년 넘게 번역을 하고 있는, 이제는 베테랑 번역가로 이름만 들어도 믿고 지지하는 독자가 있는 위치에 있는 저자는, 여전히 자신이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지, 자각도 자격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혼과 출산 후에 찾아온 우울증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이혼 후 아이와 함께 건너간 영국에서의 삶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고 한다. 번역가로서 일을 하면서도 프리랜서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그 모든 날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깨닫는다.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어른이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겨도 멈칫하지 않으며, 인생이란 선의를 주고받으며 서로 돕고 사는 걸 이제는 알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몸과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까지 무리해서 아둥바둥할 필요는 없다고도 말한다. 무엇보다 내 몸을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지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이 분명 있고,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런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실패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있을 거라는 말에 위로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만하면 괜찮아. 이만하면 아주 잘했어. 라며 나를 다독여주고, 나이를 먹어서 서글퍼지는 게 아니라 나이가 주는 위안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 괜찮은 어른, 느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어른이 되는 건 어렵다. 그러니  어른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당신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다. 사는 게 마음 같진 않지만 분명 인생이 다정해지는 시기가 온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 보자. 분명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희망이 당신을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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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심리학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영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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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욕망 중에는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금세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 당장 채우기 어려운 욕망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참고 견딘다. 좋은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고 싶고 놀고 싶은 당장의 욕구를 억누른다. 학자들은 이런 행동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p.50

25년 차 베테랑 검찰 수사관이 파헤치는 놀라운 속임수의 세계라니 책을 읽기도 전부터 호기심이 들었다. 저자는 현직 검찰청 수사과장으로 재직하며 사기, 횡령 등 각종 형사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생생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과 심리학 이론을 넘나들며 속임수의 사기의 수법에 대해서 낱낱이 알려준다. 신종 보이스 피싱과 전자 금융사기, 다단계 사기, 애정을 미끼로 한 결혼 사기 등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다양한 속임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쉽게 속는 걸까. 검찰 수사관으로 각종 사기 사건을 수사해온 저자는 그러한 속임수 뒤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심리 법칙에 대해 이야기 한다.

최근 교사, 의사, 약사, 기자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보이스 피싱에 속아 돈을 송금한 사례가 제법 있었다고 한다. 학력이 낮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만 속임수에 걸려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얘기이다. 저자는 말한다. 속임수 기법에는 공통적으로 세 가지 심리가 있다고. 바로 '욕망' '신뢰, 그리고 '불안'이라고 한다. 만약 우리가 이 세가지 심리를 이용한 속임수의 기술을 제대로 알고 숙지한다면 수만 종의 사기와 속임수에 절대 걸려들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하다. 한 사람의 물질적,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평생 정신적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 타인이 보내는 신호를 잘못 읽고 엉뚱하게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p.103

"설마 30년 죽마고우인 친구가 나에게 사기 칠 줄은 몰랐습니다." 친구 때문에 전 재산을 날린 피해자가 검찰청에 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 저자가 사기 사건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기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혀 모르는 남이 아니라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는 사람'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하다. 심리적으로 친구나 친척, 지인 등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기 힘든 점을 이용해 '좋은 사람' 일수록 잘 속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의리남, 의리녀가 더 잘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러한 감정과 의리가 주로 작용하는 관계인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의 관계를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속임수와 사기가 난무하는 현실에서는, 분별력을 갖춘 냉철한 의리가 필요한 요즘이다.

놀랍게도 저자 역시 젊은 시절 사기꾼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재세 공과금만 부담하면 고가의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경품 이벤트에 속아 넘어갔고, 아는 선배에게 낚여 다단계 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간신히 빠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 속임수에 걸려드는 데는 나이도, 학력도, 직업도 없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문자메시지 하나에 40만 명이나 속았던 까닭은? 똑똑한 사람이 어쩌다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까? 처음 보는 점쟁이는 어쩜 그렇게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을까? 저자는 수많은 실재 사례들을 통해서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는 기술들을 알려 준다. 이 책을 통해서 속임수 뒤에 숨은 인간의 심리와 이를 이용한 사기꾼들의 전략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들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사기 범죄율 1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지닌 대한민국에서, 사기꾼에게 걸려들지 않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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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그림 하나 -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해
529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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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일 일요일

사소한 것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간신히 씻고 누웠을 때 이불에서 풍기는 좋아하는 섬유 유연제 향이나, 언젠가 마음에 와 닿아 책갈피로 표시해 둔 책 속의 구절이라든가, 별 내용도 없이 시시콜콜한 친구와의 전화 한 통 같은 것들. 정말 아주 사소한 것들이 계속해서 힘을 내어 날 나아가게 한다.    p.34

매년 새해가 되면 다짐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기 쓰기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이후로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한 번도 꾸준히 써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상도 받고 그런 재미로 또 부지런히 글을 쓰곤 했었다. 이사를 하면서 지금은 그 많은 일기장들을 다 잃어 버렸지만, 몇몇 대목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게 만드는 기억들이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좋은 건 비슷비슷한 나의 하루가 특별한 순간으로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사진을 찍어서 남기는 것처럼, 일상의 한 대목도 그렇게 순간 포착해서 기록으로 남겨 두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꺼내어 볼 수 있으니 참 쉽고도 멋진 일이 아닌가. 이제 올해도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마 나는 내년 초가 되면 또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을 할 것이다.

이 책은 1년간의 삶을 365편의 일기로 기록한 감성 일러스트레이션 북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529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포근한 색연필 드로잉으로 몽글몽글 그려낸 365일 그림일기는 귀엽고 착한 일러스트만큼이나 소소하고 솔직한 일상들을 담고 있다. 나도 그림을 이렇게 그릴 수 있다면, 그냥 일기가 아닌 그림 일기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따뜻하고, 예쁜 일기장이다.

 

4 5일 수요일

늦은 저녁 돌아오는 길에 아껴 읽던 책을 꺼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는 종이 냄새와 팔랑이는 소리가 듣기 좋아, 듣던 노래를 멈추고 종이 넘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두워진 길을 달리는 버스의 살짝 열린 창 틈으로 비 냄새가 났고, 책 속 구절처럼 완연한 봄이었다.    p.104

오래 결심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고민, 라섹 수술 이후에 불편했던 일상들, 우연히 본 꽃집에서 산 튤립 세 송이의 기쁨, 본가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발견한 아빠가 사주시던 도시락집, 인터넷으로 선물할 책을 고르려다 어느새 내가 읽고 싶은 책만 한 가득 장바구니에 넣고 만 어느 밤, 작년 이맘때의 그림들을 정리하며 치열했던 여름을 돌아보던 시간, 늦은 시간 돌아오는 길에 들른 빵집에 내가 좋아하는 빵이 남아 있어 기분 좋은 날, 정신 없던 이사를 끝내고 한숨 돌리던 순간의 평화, 처음으로 만들어 마신 아이스 밀크티가 너무 맛있어서 하루에 세 잔이나 내리 마셨던 날 등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 솔직 담백함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내용들이다. 게다가 너무 착해 보이는 그림들 속에서 따뜻함과 소박한 진심이 느껴져서 더 편하게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일러스트레이터 529는 어느 날 문득, 일이 아닌 자신의 생활에 대한 건 전혀 기억으로 남은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일에 치여, 일상에 매여, 스스로를 돌보기는커녕 쫓기듯이 살아가는 날들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지나간 하루가 어떠했는지 잊어 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 한 줄이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참 작업 중인 늦은 새벽에, 혹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뜬눈으로 누워 있다 일어나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녀가 그리고 쓴 1년간의 그림 일기를 읽으면서 나도 이제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끊임없이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좀 돌보고, 내 일상들이 그냥 지나가 버린 하루로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붙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처럼 사소한 단상들을 끄적여 일기의 형태로 남겨도 좋을 것 같고, 짧은 메모나 사진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고 말이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을 때, 의기소침해진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따뜻하고 포근한 그림 일기를 통해서 소박한 행복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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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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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를 입고 모두에게 축복받으며 최고로 행복해하던 순진무구한 여자는 어느새 "나는 당신의 가정부가 아니야!"라며 분노하는 주부가 됐고,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누구 돈으로 밥 먹고 사는데?"가 입버릇)에게 방치된 나머지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고자 섹시한 남자(대부분이 놈팡이)와의 불륜에 빠져 자멸하고 만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틀에 박힌 스토리가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닌 현실로 자리 잡게 됐다.   p.6

 

내가 조금 어렸을 때,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막연히 가족이라는 개념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수십 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과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가끔은 무조건 희생해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사실은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유지되는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은 사랑의 문제가 아닌 책임의 영역이었고,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숨 쉬는 순간까지 서로 맞추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완벽하게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왔던 남자와 여자가 동거에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남녀가 연애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현실을 함께한다는 것의 중심에는 '집안일이라는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저자는 아오이 유우 주연의 [재패니스 걸스 네버 다이]라는 영화의 원작 <아즈미 하루코는 행방불명>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녀는 20대 후반부터 결혼에 대해 고민하다, 30대의 문턱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도호쿠대지진을 계기로 피붙이 하나 없는 도쿄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이 무서워 시작한 동거 생활은, 예상만큼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파악하게 되는 남자의 실태가 매우 신랄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각 장의 끝에는 귀엽게도 남자 친구의 항변이 담겨 있는 페이지가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여성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이런 부분들 때문에  '공평하게' 각자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웠던 책이었다. 이 책은 결혼한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을 것 같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은 물론 미혼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남편이 쓸모 없다고 처음으로 느낀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이사 때였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진짜 아무것도 안 하네. 입만 살았어.....'라며 충격을 받았던 그날로부터 벌써 4년이 되어간다. 다음 달에 또 한 번의 이사가 있을 예정인데, 이번에 남편은 대기 선수처럼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하지만 아무것도 맡기지 않을 테다. 다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제발 시키는 거나 제대로 해주길.....     p.188

 

갈수록 비혼, 저출산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 4명 중 1명은결혼을 하지 않고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여성을 중심으로 연령이 낮을수록 '결혼을 해야 한다',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낮다고 한다. 아직은 자녀를 낳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지만, 미혼이나 청년층은 자녀출산을 위해 결혼이 전제돼야 한다는 인식이 차츰 변하는 추세이고,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겨우 과반수를 넘을 정도였다. 성별로 나눠보면 상대적으로 남자는 해야 한다는 비율이 높은 반면, 여자는 과반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직까지는 여자에게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는 서로에게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하기 싫은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 순간만큼은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단점은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주위에서 뭐라고 얘기를 하든 흘려 듣게 마련이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함께 살게 되면서 우리는 그 비현실적인 필터링에서 벗어나, 서로의 원래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민낯까지 공유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혹은 그녀가 맞는지 혼란스럽고, 뭔가 속은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로 분하고 서운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는 완벽하게 다른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존재이다. 사실은 더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 어리광부리고 싶은 것이며, 각자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아내와 남편은 둘 다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다.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가정 내 여남평등은 물론 두 사람 모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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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산다는 것 -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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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너무 애쓰며 살아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심리적으로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조금만 살아보면 그것이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환상을 버리지 못한 채 매사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p.45

바쁘게 앞만 보면서 살다 보니 가끔은 지칠 때가 있다. 매일 같이 챙겨야 할 것들,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빠짐없이 해내야 하고, 그러다 보니 가족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엄격해지기 일쑤였으며, 실수와 단점들이 눈에 띄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일도 인간관계도 완벽해지고자 하니 늘 기대감이 못 미치는 것 같은 기분에 초조해지기도 했다. 수십 년간 인간관계를 분석해 온 정신과 정문의 양창순 박사는 나처럼 아둥바둥 여유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담백함'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녀가 말하는 담백한 삶이란 한마디로 말해 덜 감정적이고 덜 반응적인, 의연한 삶을 뜻한다. 물론 음식에서 담백한 맛을 매기가 어려운 것처럼 우리의 삶이나 인간관계에서도 담백해지기란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담백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담백함은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을 때 느끼는 기분'이라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자신의 실수와 단점에 대해 여유로워진다면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남이 나를 괴롭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은 가벼워질 테니 말이다. 마음이 억울하고 힘들수록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한 걸음 물러나 현재 내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반응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실 힘든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여유를 갖는 건 삶의 어느 순간에서든 정말로 중요하다. 인간관계도 담백해지므로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린 너 나 할 것 없이 담백하고 편안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호감을 느끼는 상대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결과적으로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인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내 인복은 내가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p.163

살면서 가장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 책은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양창순 박사의 관계 심리학 결정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계에 대한 훌륭한 팁들이 많이 담겨 있다. 실제로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사람일수록 관계 속에서 바라는 것이 많은 편이다. 언제나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하고, 내가 모임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나를 최고로 좋아해야 한다는 바로 그 '높은 기대치'는 그야말로 환상에 가깝다. 과연 누가 세상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언제부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가 바라는 것을 주지 않으면 혼자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욕구와 기대치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왜 나에게만 이런 힘든 일이 생기는 걸까. 나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 필요한 마음은 '딱 한 걸음 물러서기'이다. 딱 한 걸음만 물러서서 보면 대부분의 상황이 똑바로 보이기 시작하니 말이다. 똑바로 볼 수 있다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나의 열등감과 자만심을 치유하도록 노력해보자. 마음에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자가 알려 주는 담백한 마음 처방전을 읽다 보면 누구라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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