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맨 - 인류 최초가 된 사람 : 닐 암스트롱의 위대한 여정
제임스 R. 핸슨 지음, 이선주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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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은 항상 최악의 순간에 벌어진다는 머피의 법칙대로였습니다." 라고 훗날 암스트롱은 이야기했다. "이때 우리는 우리를 추적하는 관제소가 하나도 없는 궤도에서 돌고 있었습니다. 무선통신이 거의 끊겼고, 바다에 떠 있는 선박과 잠깐 잠깐 통신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선박조차 우주비행관제센터에 연락을 취하거나 자료를 보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겨우겨우 한두 관제소와 연결이 되어 우리 문제가 무엇인지 전달하고, 우주비행관제센터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   p.201~202

1969,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착륙했다. 내년이면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지 꼭 50년이 된다. 이 책은 달 착륙 5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되는 닐 암스트롱의 유일한 공식 전기이다. 그는 달에 다녀온 후 언론 노출을 극히 꺼렸고, 기자들의 인터뷰에도 거의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면모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러 유명 작가들이 전기를 쓰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암스트롱은 모두 거절했는데,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R. 핸슨 박사는 무려 3년 동안 설득한 끝에 유일한 전기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닐 암스트롱은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두세 살 때부터 작은 장난감 비행기를 사달라고 엄마를 졸랐으며, 그때부터 집에서나 바깥에서나 늘 비행기를 들고 다녔다. 닐은 여섯 살 생일 직전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그는 책을 읽고, 항공기를 보고, 모형비행기를 만들면서 흥미가 생겨 항공기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모형비행기 제작 클럽에 들어가고, 여러 대회에 참가해 1,2등을 한다. 여섯 번째 생일에학생 비행기 조종사 면허증을 받아 1~2주 후에는 처음으로 단독 비행을 했고, 이후 퍼듀대학에 진학해 항공공학을 전공하며 장차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학문적인 바탕을 쌓게 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NACA(미국항공자문위원회)에 들어가 연구조종사가 되었고, NACA가 이후에 NASA로 개편하게 된다. 당시 소련이 세계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궤도로 발사하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했고, 1962 9월 초, 닐은 NASA의 유인우주선센터로부터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세버라이드는 "우리는 이 사람들에 대해 어딘가 이방인 같다고 계속 느낄 거예요. 사실 그들의 아내나 아이들조차 조금 낯설게 느끼겠죠. 우리는 따라갈 수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온 사람들이니까요. 이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지 궁금해요. 달은 이제까지 그들을 잘 대해주었습니다.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가 다른 무엇보다 걱정이 됩니다" 라고 말했다.   p.425

인류 최초로 사람이 달에 착륙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닐 암스트롱의 삶 역시 그러했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때, 시험비행 조종사로 활동할 때, 우주비행사로 훈련 받을 때, 그와 가까웠던 동료들이 계속 사망했고, 그 역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때가 많았다. 달 착륙 훈련을 하던 비행기가 추락해 폭발했을 때 간신히 탈출하기도 했으며, 목숨을 건 도전의 연속을 거쳐 겨우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닐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고, 마치 은둔생활을 하는 것처럼 극도로 언론을 피했기 때문에 아마도 이 책에서 보여지는 그의 일생이 최초로 공개되는 내용일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위대한 영웅의 시작부터 꼼꼼하게 삶을 짚어 나가며,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가 몸담아온 항공우주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초단위로 되살려 놓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지구로 돌아오기까지의 우주 비행 전 과정은 굉장히 놀랍고도 흥미진진하다.

달 착륙이라는 거대한 서사 외에도 닐과 함께 달에 갔지만, 그의 명성에 가려진 버즈 올드린과의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암스트롱에 대한 열등감에 계속 시달렸던 올드린의 삶 또한 너무도 인간적이고, 극적인 대목이었으니 말이다. 과연 누가 먼저 달을 밟아야 하는가. 선장인 암스트롱이어야 할까, 조종사인 올드린이어야 할까. 명성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암스트롱은 왜 사람들이 누가 먼저 달착륙선에서 나가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파트너였던 올드린의 초조함과 스트레스 또한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아폴로11호의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어떤 개인 물품과 기념품을 가져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지구에 전송된 내용이 아닌 우주선의 녹음기에 녹음된 그들의 실제 대화 내용도,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달 착륙 50주년을 앞두고 지난 달 전세계에 개봉된 영화 <퍼스트맨』> 또한 이 책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영화와 원작 모두 챙겨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인류 최초가 된 특별한 영웅의 인생과 20세기 후반 미국의 역사, 그리고 우주 개발의 역사 등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책은 천문학과 우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놓치지 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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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사전 - 우주와 천체의 원리를 그림으로 쉽게 풀이한 그린북 과학 사전 시리즈
후타마세 도시후미 지음, 토쿠마루 유우 그림, 조민정 옮김, 전영범 감수, 나카무라 도시히 / 그린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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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천문에 관한기초 키워드중요 키워드를 그림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서 정리한 사전이다. 태양과 달과 지구를 비롯해서 그 외 태양계의 수많은 행성들과 은하와 우주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300개 이상의 천문학 개념, 원리, 이론들이 담겨 있다. 게다가 너무 쉬운 설명과 간단하면서도 귀여운 일러스트를 통해서 알려주는 것들이라 어른들을 위한 교양과학서로도 좋고, 청소년들을 위한 학습서로도 훌륭할 것 같다.

제목처럼 사전 형식으로 되어 있어 원하는 키워드를 쉽게 찾아 보기도 좋고, 필요한 부분만 펼쳐서 읽기에도 좋다. 관련 주제는 가까운 위치에 정리되어 있어 연결해서 읽기 좋고, 평소에 천체, 우주에 관련해서 나오는 용어 중 모르는 것이 있을 때 활용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밤하늘의 별은 대부분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이는 항성이다. 그리고 항성은 우주에서 은하라는 집단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은하에는 무려 1000억 개 정도의 항성이 있다.  초신성, 중성자별, 블랙홀, 유성, 혜성 등... 별들에 관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태양과 일식, 달과 월식, 지구와 자전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각 키워드의 영어 표현도 함께 표기되어 있고, 해당 키워드에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을 헤드라인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책이다.

 

 

카테고리는 여러 가지 천체’, ‘태양과 달과 지구’, ‘태양계의 친구들’, ‘항성의 세계’, ‘우리 은하와 은하 우주’, ‘우주의 역사’, ‘우주와 관련된 기초 용어의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항목이 따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상관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과학 용어를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다소 딱딱하고, 어렵고, 분량도 많은 편인데, 이 책은 가벼운 분량으로 술술 읽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학창 시절에야 중,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에 이러한 기초 개념들이 나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하겠지만, 졸업 후에 성인이 되고 나서는 관련 내용들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하지만 SF 소설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영화들을 보다 보면 가끔 아주 기초적인 용어나 개념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책을 펼쳐 본다면 매우 흥미롭고 쉽게, 기초적인 토대부터 심도 있는 개념까지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인 후타마세 도시후미가 일반 상대성 이론, 우주론 등을 전공한 우주물리학자라서 우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소개할 때 물리학의 기초 개념을 통해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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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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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는 요리하는 것도 하루하루의 즐거움 가운데 중대한 요소다. 다른 집안일은 그저 필요하니까 할 뿐이지만 요리를 하는 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손이 많이 가고 기교가 필요한 요리는 못 만들지만 자두나 딸기, 복숭아 잼을 만들거나 빵과 달걀과 우유에 바닐라를 넣은 따끈한 과자 얼음사탕을 뜨거울 때 녹인 차가운 홍차 등은 자주 즐긴다. 매년 7월에는 솔덤 자두의 껍질을 멋기고 씨를 뺀 뒤 체에 걸러서 적포도주에 섞은 음료를 만든다. 위스키만 마시는 술고래 아들도 감탄하며 칭찬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리큐어다.    p.72

모리 마리는 환상적이고 우아한 세계를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다. 나쓰메 소세키와 쌍벽을 이룬 대문호인 아버지(모리 오가이)를 두고 남부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성년이 된 이후 두 번의 이혼과 가난한 살림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게다가 생활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성격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만들며 살았다. 그녀는 매일매일 자신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고, 하루 세끼 식사를 맛있고 근사하게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외롭거나 괴로운 일이 있으면 콩소메와 콜드비프, 감자를 넣은 채소샐러드를 먹고, 어린 시절 만났던 메이지풍 서양요리와 양배추 말이를 좋아한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불끈 화가 치밀어 올라 씩씩거리며 화난 채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 와서도 화를 낸다. 요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잘하지만, 본격적인 요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지는 않고 만사 귀찮아하는 편이라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방법으로 요리를 하곤 한다. 게다가 반드시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요리를 자신이 생각한 대로 해서 먹지 않으면 아무래도 싫다며, 그 싫은 정도가 좀 병적일 정도로 심하다고 스스로 어느 정도는 미치광이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괴짜 미식가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는 나 역시 훌륭한 식도락가다. 넘치게 훌륭해서 훌륭함이 거스름돈을 내줄 정도다. 젊은 사람이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누가 노인이라 부를 때 아니라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먹는 걸 좋아하기로는 여전히 아이 못지않다. 그런데 나는 아주 마음에 드는 요릿집에서도 내가 만든 요리가 더 맛있다고 느낀다. , 내가 가는 요릿집을 변호하자면 그 가게에서는 내 지갑 사정에 걸맞은 가격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버터를 넉넉히 집어넣을 수도 없고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안심이나 등심 같은 식재료를 쓸 수도 없다.   P.188

괜찮아,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라는 말은 모리 마리의 인생 모토와도 같다. 두 번의 이혼과 정리가 안 되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 집에 살면서도, 정작 그 속에 사는 당사자는 무사태평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러니까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와 상관없이 지금 그대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 유리를 정말 좋아해서 초록색 얇은 컵에 음료를 따르고 그 가장자리에 입술을 댈 때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라면 며칠 동안 풀로 된 밥상으로만 지내는 것도 아무렇지 않으며, 장미꽃이 새겨진 화려한 찻잔에 홍차를 달여 마시는 순간으로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행복해진다.

모리 마리가 들려주는 맛있는 음식과 요리에 대한 글은 그녀의 소소한 일상들과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린 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이라는 평가처럼 시종일관 철없고 제멋대로에, 하고 싶은 건 기어이 하고, 하기 싫은 건 떠넘기는 뻔뻔한 모습도 매력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만의 확고한 행복에 대한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생각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그러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은 놓치고 마는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당당하게 어른스러워지지 않는 모습을 내보일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모리 마리의 이러한 모습이 다소 뻔뻔하고, 철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충분히 자신만의 소확행을 추구하고 멋지게 살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밥상은 작은 우주와 같다.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음식만큼 일상에서 손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또 있을까. 게다가 요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이 더욱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상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모리 마리의 이 책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그런 포만감과 행복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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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 모든 것을 설명하는 생명의 언어
칼 짐머 지음, 이창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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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은 매우 방어적인 책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다른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비웃는 것을 오랫동안 조용히 듣고 있었고 이들이 자신을 비웃는 모습을 오랫동안 상상해오던 사람이 쓴 책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다윈은 다른 과학자들의 반박에 하나하나 대응해나간다. 오래된 종이 조금씩 새로운 종으로 바뀐 것이라면 왜 동물들은 그렇게 서로 다른가? 여기에 대해 다윈은 이렇게 대답한다. 즉 두 가지의 유사한 종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하나가 멸종됐고, 따라서 오늘날 살아 있는 동물들은 과거에 살았던 모든 종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선택된 종의 후예이다.   p.100

 

가끔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과학책을 만날 때가 있다. 에세이나 인문서, 자기 개발서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과학 도서만의 매력이 있다. 대부분의 전문서들이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서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만난 칼 짐머의 <진화>는 굉장히 술술 잘 읽힌다. 두툼한 페이지 두께가 무색하게 진도가 쑥쑥 나가는 그런 책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진화론'에 대해, 다윈과 '종의 기원'에 대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를 뒤흔든 과학적 발견이야 많지만 다윈의 진화론만큼 심하게 세상을 흔든 것은 없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발견 정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게다가 다윈의 이론은 인간 자신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시각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은 신이 직접 개입할 필요 없이 유전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에 이끌려 조금씩, 그리고 영원히 달라져간다는 그의 말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의 창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은 수많은 종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진화론은 교과 과정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접하기 어렵다. 게다가 생물학 교과서나 <종의 기원> 같은 고전을 보더라도 높은 난이도에 좌절하기 십상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진화 관련 교양서 대부분은 세부 주제나 특정 이슈를 다루는 데 집중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건 보기 힘든 편이다. 칼 짐머의 <진화>가 현존하는 진화에 관한 책 중 단연 최고라는 해외 언론의 평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이런 예측이 옳다면 앞으로 수백 년간 또 한 번의 대량 멸종이 일어날 것이고 생물종의 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생물종이 최고로 다양해졌을 때 지구를 물려받았으므로, 그 중 절반을 잃는다면 절대적인 숫자로 보아 사상 최대 규모의 멸종이 될 것이다.

몇몇 측면에서 이번 멸종은 과거의 멸종과는 다를 것이다. 운석은 궤도를 바꿀 수 없지만 인간은 바꿀 수 있다. 멸종의 규모는 앞으로 100년간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p.289

 

이 책은 '진화'라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그것이 자연과 인간의 경이로운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해내고 풀어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의 역사, 진화의 핵심 개념과 주요 원리, 관련 이슈를 총망라해서 '한 권으로 끝내는 진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동물의 진화 과정을 알기 위해 생물학자들은 괴물을 만들기도 한다. 유전자 하나만 바꿔주는 걸로 돌연변이를 만들어 그로부터 유전자의 비밀을 밝혀낸다. 멸종에 적용된 진화의 법치에 대한 챕터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고생대가 끝나고 중생대가 끝나는 시기인 2 5,000만 년 전에 일어났던 대량 멸종으로 생명체의 90퍼센트가 사라졌다. 이것은 오늘날의 현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과거의 멸종으로 인해 지구의 생명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이고 엄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탄탄한 줄거리와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마치 서사 문학을 읽는 것처럼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이 책은 매 챕터가 흥미로웠지만 '양성의 진화'라는 테마는 특히나 충격적이었다. 성선택은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고자 하는 욕구를 통해 공작의 화려한 깃과 수탉의 커다랗고 붉은 볏을 비롯, 영아 살해, 이타주의와 같은 자연의 미스터리를 훌륭하게 해결하는 것을 보여준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양성 간의 갈등은 동물들 세계의 난잡한 그것을 넘어서 인간들의 생식과 유전자에 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에 적용이 되어 놀라웠다. 연대, 배신, 속임수, 신뢰, 질투, 간음, 모성애, 자살로 이어지는 사랑 등 이 모든 것들이 동물의 수컷, 암컷 세계와 인간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론과 사례들을 읽다 보니 동물의 암컷과 수컷은 어쩔 수 없이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양성 간의 갈등이 인간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류의 기원은 진화 과학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분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40억 년에 걸친 생명의 진화는 그야말로 복선과 반전이 가득한 장엄한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그리고 진화론이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이렇게나 유용한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매우 놀라웠다. 이 책 덕분에 생명의 다양성과 자연의 경이가 새삼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과학책이니,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던 분들이라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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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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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좋아지는 순간은, 더 이상은 단 한 줄도 고치지 못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그때 눈 감고 딱 한 번 더 고칠 수 있다면, 소설은 좋아집니다.

비약적 도약이 아니라 점진적 발전인 것이죠.

진정한 재능이란 지루한 반복을 견디고 지속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에요.

지구인에게는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p.130

 

한때 온라인 서점 직원으로 일했던 그녀는, 서점 직원에게 가장 부족한 건 정작 책 읽을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랫동안 소설가가 꿈이었지만, 소설을 쓰는 대신 소설 리뷰를 쓴 시간이 더 길었다. 소설가가 되는 대신 소설가를 인터뷰했다. 대신 인생. 나쁘지 않았다. 좋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에 잠겨 걷던 늦은 퇴근길, 멍한 얼굴로 정류장에 서 있다가 놓쳐버린 버스가 막차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궁색한 청춘이었던 그로부터 7년 후, 그녀가 놓친 버스에 장편소설 출간을 알리는 광고판으로 그녀의 얼굴이 붙게 된다. 과거의 그녀가 현재의 그녀 모습을 알았더라면.. 그때 조금 덜 힘들었을까. 막막하고 답답했던 시간이 조금 편했을까.

이 책은 1년에 500여 권의 책을 읽는 '활자 중독자'이자 '문장 수집가'인 백영옥 작가가 오랫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밑줄 가운데서 고르고 고른 '인생의 문장들'을 소개하는 에세이다. 힘들었던 시절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으면, 책 속의 글자 하나하나가 울먹이는 자신의 등을 토닥이는 것 같았다는 그녀. 백영옥 작가는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길에서 마주친 글귀에서 문득문득 마음을 흔들었던 문장들을 꼼꼼하게 모아, 위로가 필요할 어느 날, 누군가를 위해 밑줄 처방전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평소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시와 소설, 산문집, 자기계발서 등을 다양하게 읽고, 세상 곳곳 삶의 모습에 관심이 많은 그녀의 성격 덕분에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중요한 건 시를 눈이 아닌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겁니다. 또박 또박, 한자 한자, 쉼표 하나까지 밥알을 꼭꼭 씹어 넘기듯 말이에요. 그러면 시란 본래 읽기 위한 게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처럼 듣기 위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세상에 누구도 없는 듯 아픔이 찾아오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해요. 이 시를 서랍 안에 포개어 잘 넣어두세요. 저처럼요.   p.222

 

시인은 세상의 흩어진 단어를 고르고 골라, 가장 적확한 말들을 우리에게 쥐어준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렇다면 소설가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독자들이 잠시 동안 현실을 잊어 버릴 수 있도록 완벽하게 허구로 만들어진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이 아닐까.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가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소설가'가 쓴 '에세이'라는 점이었다. 비슷비슷한 종류의 에세이들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요즘이다. 누구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하고 흔한 문장들과 사적인 일기장에다 쓰여야 할 것 같은 보통의 사유들 속에 공감하거나, 감탄할 만한 지점을 찾기란 사실 어렵다. 그렇게 겉멋으로 글을 쓰는 것과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책과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 왔던 이가 쓰는 글이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백영옥 작가의 글은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 진심이 새겨져 있고, 문장들이 아름다우며, 깊이 있는 사유가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아픈 사랑과 답이 안 나오는 관계와 막막한 꿈에 대해서, 그리고 평소 지나쳐버리기 쉬운 풍경들과 매일 넘기는 페이지 속의 문장들이 담겨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약해지는 일인지, 때로는 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 진짜 용기라는 것, 누군가를 믿는 다는 것의 의미, 진정한 재능이란 한 순간의 천재적인 반짝임이 아니라 지루한 반복을 견디고 지속하는 힘이라는 것 등등... 그녀가 알려주는 독서 노하우와 수많은 책들 속에서 밑줄 그어 수집한 문장들로 쓰인 이 책에도 나는 종종 밑줄을 긋게 된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 매일이 모여 좋은 책이 되게 해주세요.

 

부디 그녀의 바람이, 그녀의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래본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내게 와준 고마운 것들에 대해, 내가 숨쉬는 이 순간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되는 밤이다. 바로 이 책 덕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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