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걸요 -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
임재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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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몸이 아픈 사람인가, 아니면 마음이 아픈 사람인가?"

"그래도 살고 싶으신가? 아니면 그래서 죽고 싶으신가?"

....죽고 싶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만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죽고 싶을 수 있다는 것이 죽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p.15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신병원이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것처럼 갇혀서 몸을 구속당하거나, 겉으로 보기에도 미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일 것이다. 나 역시 어느 병원을 가든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되지는 않지만, 유독 정신병원이라는 곳만은 나와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세상, 일종의 장벽을 두르고 있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역시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 대부분이 가족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치료가 당장 필요한 사람도 좀처럼 정신병원을 찾지 않는다. 상담을 원하는 환자는 많지만 약물을 원하는 환자는 적고, 통원 치료를 하는 환자는 늘었지만, 입원 치료를 원하는 환자는 여전히 적다. 모두 정신병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전히 정신과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높아 대부분 도움 받기를 포기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저자는 어느 날 이렇게 결심한다. 그토록 오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사회로 나가야겠다고. 그리하여 그는 병원을 나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누구는 그를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라고 부른다. 또 누구는돈키호테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은 물론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눈에도 무모해 보이는 일에 덜컥 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병원을 그만두고, 자비로 구입한 중고 탑차를 몰고 홀로 거리로 나선다.

 

 

아무런 힘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남이, 다시 말해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우리 삶에 절대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나는 더 이상 어렸을 적 그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 아이처럼 어른에게 박수 받으려 하지 말고, 어른이 된 나 자신에게 박수 받으려 노력하자고 알려줘야 한다. 이제부터는 어른인 내가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면 된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남이 아닌 나로 바뀌면,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는 사람도 내가 된다.   p.167

정신질환과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을 부수려면, 중증이 되기 전에 마음 아픈 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수 있으려면, 징검다리 역할을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의 그 무모한 용기 덕분에 상담 트럭 <찾아가는 마음 충전소>가 탄생하게 된다. 그는 병원에서 거리로 나갈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별명을 '행키'라고 짓는다. 행키는 행복을 키우는 사람, '행복 키우미'의 준말이다. 그는 행복을 키우는 사람이자 마음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저자는 상담을 하면서 상대에게 지금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 상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자신이 제대로 공감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란다. 상담의 기본은 이해와 공감이고,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만두고 싶어요'의 다른 말은 '그만두기 싫어요.'이고 '죽고 싶어요'의 다른 말은 '죽기 싫어요.'이다. 무언가로 인해, 혹은 누군가로 인해 나의 기대가 부서지는 바람에 마음이 달리 말하는 것뿐이다. '그만두고 싶어요'는 계속하고 싶은 기대가 부서져서, '죽고 싶어요'는 살고 싶은 기대가 부서져서. 저자가 소개하는 마음 상담소의 여러 사례들을 읽으면서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독박 육아하는 어머니, 알코올중독에 빠진 대학생, 딸이 성폭행 당한 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등.. 물론 이 사례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이다. 그것이 어렵게 속 이야기를 꺼내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말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처럼 보였던 저자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그 무모한 용기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따뜻한 마음이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속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어 그냥 혼자 삭이느라 마음의 병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 다들 괜찮은 척, 아닌 척, 홀로 힘겹게 버티느라 애쓰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살아 있으니 넘어질 수 있는 것이고, 살아 있으니 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의 마음 일기는 이렇게 특별한 위로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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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1228 2018-12-04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행키입니다! ^^ 리뷰 감사합니당~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ㅎㅋ
 
자문자답 : 나의 일 년 - 질문에 답하며 기록하는 지난 일 년, 다가올 일 년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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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써 이 나이가 되었다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모르겠어."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내 인생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당신의 지나간 일 년을 '모르겠다'에서 '알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p.8

 

올해 초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도 이제 한 달여 남았으니, 과연 나는 한 해 동안 얼마나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한 해 동안 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들,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로 맞이할 일년 동안에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 세우는 시간, 바로 다이어리가 필요한 때이다.

 

각종 다이어리와 플래너가 각양각색의 실용성과 예쁨을 뽐내며 시선을 사로 잡는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금액 이상으로 사고 받는 플래너도 있고, 커피 전문점에서 음료를 마시며 도장을 찍어 다이어리를 받기도 한다. 나도 예쁜 문구에 관심이 많아서 매년 다이어리를 몇 개씩 챙기는데, 사실 일년 동안 제대로 활용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역시나 벌써 몇 권의 다이어리를 챙겼는데, 그 중에서도 눈길을 확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의 일년>이라는 책, 일종의 다이어리 북이다. <오늘, 진짜 내 마음을 만났습니다>, <자문자답 다이어리>를 통해 진짜 자신을 발견하는 질문을 던졌던 라이프 코치 홍성향이 2010년부터 진행해온 '일 년 그룹 코칭 프로그램'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질문과 활동을 고르고 다듬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일 년을 계획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플래너이자, 자문자답하는 나만의 리뷰 자서전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새해를 그려봤었다는 것조차 잊을 만큼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가끔 생각날 때 당신이 마음을 다해 남긴 이 기록들을 천천히 읽어보세요. 이 책에 기록한 내년 계획에서 벗어난 일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저 눈앞에 놓은 오늘에 집중합시다.   p.160

 

일 년은 365개의 경험 조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퍼즐과도 같다. 눈뜨자마자 정신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수많은 하루하루가 쌓여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일 년을 천천히 돌아보게 만드는 저자의 질문들은 이렇다. 올해 내가 가장 자주 느낀 감정(기분)은 무엇이었나요? 올해 나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봅시다. 올해의 처음을 떠올려봅시다. 1 1,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올해를 맞이했었고, 어떤 마음이었나요? 올 한 해 간절히 바랐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 결과는 어땠나요? 이런 저런 질문들에 답을 하다 보면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올해 내가 한 게 뭐가 있지? 나에게 남은 게 뭘까? 저자는 말한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소중한 사람이라고. 중요한 것은 한 해 동안 경험한 것들을 돌아본 후에 느끼는 감정이라고. 그저 한 해를 무사히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 그리고 이제 아직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365조각의 새 퍼즐이 있다. 내년에 나의 모습이 어떨지에 대한 페이지는, 흥미롭게도 현재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에게 나를 뭐라고 소개하나요? 나만 아는 내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나는 어떨 때 가장 '나답다'고 느끼나요? 삶 속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다른 건 몰라도 내년에 이것만은 꼭 성취했다고(이뤘다고) 말하고 싶은 것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내년 12 31일을 상상해봅시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내년 일 년을 다 보내고 난 후, 내가 어떤 한 해였노라고 회상하게 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고, 나만의 새해 프로젝트를 작성하고, 내년을 살아갈 나에게 응원의 편지를 써보았다.

후반부에는 일 년 동안 매달 스스로 계획을 점검할 수 있는 부록 페이지도 수록되어 있다. 한 달에 한 번 <나의 새해 프로젝트>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쓴다는 것에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 고 있었는지 점검할 수 있는 시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도 들었으니 말이다.

"수고했어, 올해도.

잘 될 거야, 내년에도."

 

무심코 지나치는 매일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종종 잊어 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 사소한 일상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나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 나의 하루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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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윈터 에디션)
김신회 지음 / 놀(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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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 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할 수 있겠지?   p.15

 

<보노보노> 1986년 출간되어 1988년 고단샤 만화상 수상 후 30년 넘게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네 컷 만화가 원작이다. 이 책은 김신회 작가가 보노보노를 천천히 음미해 읽으며 아직도 서툴기만 한 우리들을 위로해줄 문장들을 끄집어내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해낸 에세이이다. 출간 후 엄청난 공감과 인기를 끌었던 터라, 여름에는 <보노보노의 인생상담>이 방수 커버 에디션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와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모두 새해를 맞이하여 윈터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특히나 윈터 에디션은 양장판이라 선물용으로도 더할 나위없이 고급스럽고 튼튼해서 실용적이다. 게다가 <보노보노>의 원작자인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포근한 겨울을 나는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의 모습을 스폐셜 커버로 그렸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언젠가 방송을 보다가 너무 공감되는 멘트가 있었다. 길을 걷다 만난 초등학생이 너무 예뻐서 강호동이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곁에 있던 이경규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데,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라고 한 거다. 왜 우리는 그렇게 너 하고 싶은 대로, 아무나 되면 된다고 말하지 못할까. 싶은 생각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보노보노에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한다. 홰내기가 자신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 그때 시니컬한 너부리가 말한다. "딱히 되고 싶은 것 따윈 없어. 난 나야.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대사이다. 그저 투덜거리면서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너부리가 하는 말이 사실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지금의 자신이 싫다는 거잖아."라는 말이야 말로 늘 쫓기듯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기란 생각만큼 쉽지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어른이 되면 누군가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직 안 됐다면 "안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p.133

 

보노보노는 소심하다. 보노보노는 걱정이 많다. 보노보노는 친구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보노보노는 잘할 줄 아는 게 얼마 없다. ? 이게 내 얘기인 것 같은데, 싶은 사람들이 비단 김신회 작가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혹은 당신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보노보노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도 잘 놀고, 소극적으로 뭔가를 보고 기다리는 캐릭터. 소심한 만큼 걱정도 많고, 잘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무식하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그런 캐릭터. 느릿느릿,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보노보노의 행동이 정말 묘하게도 위로가 된다. 저자는 보노보노를 알고 나서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고 말한다. 늘 뾰족하고 날 서 있던 마음 한구석에 보송한 잔디가 돋아난 기분이라고 말이다.

어느 날 보노보노는 꿈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상한지 모르겠어서 질문을 하고 다니다가 너부리를 만난다. "꿈이 이상한 이유는 이상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지. 만약 이상하지 않거나 재미도 없다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거 아냐." 보노보노는 또 야옹이 형을 찾아가서 묻는다. "꿈이 왜 이상하냐면, 다들 원래부터 이상하기 때문이야. 깨어 있을 때는 그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따윌 생각하면서 조금 덜 이상하게 행동할 뿐이야." 우리는 원래 이상한 사람들이라서 꿈이 이상한 거라는 이야기가 어쩐지 위로가 된다고, 김신회 작가는 말한다.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꿈을 꾸기 마련이다.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이상한 꿈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꿈을 꾸는 사람은 없으니 결국 사람은 다 이상한 거다! 라고. 하핫. 이게 다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이 책에 실린 보노보노의 네컷 만화를 읽다가도, 저자가 밑줄 그은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대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고 말이다. <보노보노>가 좋은 이유는 젠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오한 이야기를 심오하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심오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이 책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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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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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분명 중대한 순간이었다. 성대하고 공개적인 순간이었다. 지금도 유튜브를 검색하면 쉽게 그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희한하게도 그것은 더없이 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흡사 안팎이 천천히 뒤집히는 스웨터처럼,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서서히 뒤집혔다. 무대, 청중, 조명, 갈채.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지만, 그런 것들이 차츰 내 삶의 평범한 요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리허설도 없고 사진에도 찍히지 않는 순간, 아무도 가짜로 연기하지 않고 상대를 재단하지 않으며 진정 놀라운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순간, 예기치 못하게 마음속에서 작은 자물쇠가 찰칵 열린 듯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p.363

예약 판매만으로 아마존 1위에 오른 올해 최고의 화제작,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첫 자서전이다. 그녀는 말한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에게 주어지는 지침서 같은 건 없다고. 엄밀히 말해서 퍼스트레이디는 직업이 아니고, 정부의 공식 직함도 아니며, 연봉도, 정해진 의무도 없다고. 그저 대통령에게 딸린 사이드카 같은 자리일 뿐이었고, 그녀 이전에 43명의 여성이 그 자리에 앉았었고,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냈다. 게다가 그녀는 백악관에 발 들인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로서, 거의 자동으로 이전 퍼스트레이디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것은 큰 영예였고 기뻤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 화려한 역할에 손쉽게 안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최초의 흑인'이라는 수식어 앞에서 높은 산을 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었고, 오래된 질문과 응답을 마음속으로부터 떠올려야 했다.

나는 충분히 훌륭할까?

그럼, 물론이지.

2009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백악관에 입성한 그녀는, 이후 놀라운 행보를 거듭하면서 전 세계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일했다. 미셸은 아동 비만과 전쟁을 벌였고 건강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식품회사들과 싸웠다. 전 세계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흑인 여성에 대한 편견에 당당하게 맞섰다. 그녀야말로 고루한 권위를 깨뜨리는 가장 지적이고 검소한 퍼스트레이디였다. 그러니 그녀의 자서전 출간은 그 사실만으로 이미 큰 화제가 되었고, 자서전 판권은 사상 최고액으로 판매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동시 출간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내게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 여정에는 끝이 없다.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생을 함께하는 일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며 때로 그 어려움 앞에서 겸허해진다. 나는 어떻게 보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때때로 불안하고 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p.554

이 책은 그녀의 어린 시절 소박했던 꿈에서 시작한다. 개를 키우고 싶었고, 계단 있는 집을 갖고 싶었으며, 가족만 두 층을 다 쓰고 싶었던 소박한 꿈이었다. 어린 시절 소아과 의사가 될 거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던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변호사였고, 병원 부사장이었고, 젊은이들이 의미 있는 경력을 쌓도록 돕는 비영리단체의 책임자였다. 그리고 주로 백인들이 다니는 명문대에서 공부하는 노동 계층 출신 흑인 학생이었으며, 온갖 모임에서 유일한 여성이었고 유일한 흑인이었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무언가가 되면 그것으로 끝인 것처럼 여기는데, 그녀의 이러한 여정은 그게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지난 8년 동안 백악관에서의 삶을 돌아 본다.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여성으로 치켜세워졌고, 성난 흑인 여자라고 깎아 내려지기도 했으며, 미국의 양극단을 직접 목격했던 파란만장했던 삶 속으로 말이다.

시카고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시절부터, 우등생으로 자라나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고, 이후 하버드대 로스쿨에 가고, 일류 법률 회사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다 신입 인턴인 버락을 만나게 되는 히스토리는 마치 드라마처럼 흥미롭다. 버락과 미셸이 음양처럼 달랐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망망대해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배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목표는 주로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 이러한 차이를 인식했고, 그냥 받아들였다고 한다. 버락과의 결혼 후 미셸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로서 그녀가 걸어온 길은 가히 여성들의 아이콘, 롤모델이라 할만했다. 사실 퍼스트레이디에게 행정상의 권한은 없다. 그녀는 군대를 호령하지 않았고, 공식 외교 행위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흑인 퍼스트레이디이자 전문직 여성이자 어린아이들의 어머니라는 다소 신기한 존재로 인해 자신만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부드럽고, 빛나는 모습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했던 것이다.

 

 

“희망 말고는 줄 것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래를 그리세요.”

 

그녀는 말한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라고. 인내와 수고가 둘 다 필요하다고.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앞으로도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언제까지나 버리지 않는 거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쉰네 살인 그녀는 아직도 발전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남편은 더 이상 국가의 무게를 짊어지고 다니지 않고, 거의 다 자란 두 딸에게는 예전만큼 손길이 필요하지 않으며, 정치인 배우자로서의 의무에서 자유롭고 사람들의 기대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제 인생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는 시점에 섰다. 그녀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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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토커 스토리콜렉터 69
로버트 브린자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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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나쁜 놈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세상은 선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만큼 많은 악도 흘러넘치죠. 끔찍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돼요. 당신이 잡아들일 수 있는 자들. 너무 단순하게 들린다는 건 알지만, 그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조금 찾았어요."   p.214~215

지역 가정의학과 의사가 자신의 침실에서 자살봉투로 질식사한 상태로 발견된다. 그는 부인과 몇 달째 별거 중이었고, 침대 옆 탁자 서랍에서 게이 포르노 잡지가 발견된다. 하지만 미리 계획된 범행이라는 흔적이 곳곳에 있었고, 아내의 동생은 폭행 죄로 집행유예 중인 말썽꾼이었다. 그의 처남에겐 범행 동기도 있었고, 엄청난 전과에 악당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가장 용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 과연 이것은 게이혐오 살인인 것일까, 돈과 부동산을 둘러싼 집안 싸움인 걸까. 그리고 며칠 뒤, 또 다른 피해자가 같은 수법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자살로 위장된 깔끔한 살인이었다. 이번에는 영국 텔레비전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 중 하나였다. 두 사람 모두 약에 취한 상태에서 비닐봉지로 질식사했기에, 정확히 동일범의 소행이 분명했다. 그리고 범인이 남긴 단 하나의 흔적이었던, 문에 찍힌 어린아이의 귀 모양에서 검출된 미량의 DNA는 범인이 백인 여자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에리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범인이 여자라는 증거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며, 여성 연쇄 살인범은 대단히 드물다고 반박한다. 에리카는 생각한다. 우습지만 범인과 나, 우리 둘 다 여성으로서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스릴러에서 흔치 않은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로버트 브린자의 '에리카 경감'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인공에리카 포스터경감이라는 캐릭터에 있다. 에리카 경감은 과거 여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공으로 서른아홉밖에 안 된 나이에 경감으로 승진했던 스타 경찰로 주목 받았다. 경찰이던 남편을 작전 수행 중에 잃고 나서 죄책감과 슬픔으로 한 동안 일을 쉬었고, 아직도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등장하지만, 뛰어난 직감과 올곧은 원칙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주위의 어떤 방해나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집요하게 범인을 쫓는다. 여전히 먼저 떠난 남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범죄 피해자들의 애달픈 삶에 마음이 흔들리는 감상적인 면도 가지고 있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윗선과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강한 면모도 보여 주는 캐릭터이다.

 

"저렇게 작은 여자가 살인범이라는 게 걱정스럽지 않으세요?"

모스가 물었다. "언론에서 뭐라고 쓰는지 보셨죠."

"남자가 저지른 강간이나 살인 사건을 수사한다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게 이상해요. 남자는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짓에 별다른 '이유'를 찾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자가 같은 짓을 했다면, 사회 전체가 발칵 뒤집혀서 왜 그랬느냐, 무슨 이유가 있었느냐, 대대적인 심리 분석이 벌어지잖아요."    p.250

에리카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윗선과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승진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직감과 자신만의 원칙으로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여전하다. 남편이 떠난 지 벌써 2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를 생각하며 눈가를 훔치는 감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일에 몰입하는 열정과 대담함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그 실력만큼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치 그림자처럼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완벽한 살인을 감행하여 언론에서나이트 스토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범인의 정체는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아무런 단서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 범죄에 가까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나이트 스토커의 정체를 에리카 경감이 어떻게 밝혀 내는지 이야기는 숨쉴 틈 없이 달려 나간다. 그야말로 한 장면 한 장면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다.

로버트 브린자의 '에리카 경감' 시리즈는 현재 여섯 권이 출간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많은 작품이 최근 3년 사이에 모두 출간되었다는 거다. 시리즈 첫 작품인 <얼음에 갇힌 여자> <나이트 스토커>, <어두운 바다>가 모두 2016년에 출간되었고, 이후 <마지막 호흡>, <콜드 블러드> 2017, 그리고 2018년 최근에 <치명적인 비밀>이 출간되었다. 이렇게 시리즈 작품이 짧은 기간에 연이어 발표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시리즈의 주인공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현실과 모순에 부딪히는, 외유내강하면서, 섬세하고, 발 빠른 여경감 '에리카 포스터'라는 캐릭터가 살아 숨쉬고 있기에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서 빨리 다음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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