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
백두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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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으면 불행한 이유는 꿈을 이룰 수 없어서가 아니라 꿈을 꿀 수 없어서인 듯하다. 꿈을 꾼다는 것은 오늘을 버티게 하는 연료 같은 거다.

어쩌면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을 꾸는 동안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선은 오늘의 삶을 버티고 봐야 하니까.

사실 그 동안에는 나이에 대한 자각을 그다지 하지 않고 살았었다. 조금 동안인 편이라 어딜 가도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봐주는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했고, 그다지 나이를 의식하면서 조심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게 되니, 아이가 쑥쑥 자라나는 것만큼 내 나이를 저절로 인식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곤 했다. 얼마 전부터 아이가 어린이 집을 다니면서 생애 최초로 엄마 없이 낯선 타인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니.. 그 나름의 사회 생활(?) 비슷한 걸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들이 고스란히 눈에 보이면서 새삼 내 나이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치고, 잘못하면 혼내고, 서투른 부분에선 다시 할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도 혼내지 않는 나이, 뭐든 알아서 해야 하는 나이가 되겠지. 지금 내가 그런 나이인 것처럼 말이다. 백두리 작가의 신작을 읽는 내내 그렇게 어느 샌가 서툰 어른이 되어 버린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을 겪었고, 나름 오래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상처도 받고, 실수도 하고, 여러 경험들을 하면서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끄덕 없이 잘 버티고, 어지간하면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다고, 나는 이제 어른이니 단단해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에 여전히 휘둘리기도 한다고. 어른이라고 천하무적은 아니라고 말이다. 저자는 집에서 독립한 지가 15년째, 혼자 산 지는 7년째이지만, 갑자기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며 대부분 혼자 먹었던 밥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힘겨운 사회 생활에 이제 적응될 만도 한데, 뭐든 혼자 하는 데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누군가에게 상처 받는 데에는 익숙해서 이번에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세상에 익숙해지는 건 없는지도 모르겠다. 먹어도 먹어도 먹고 싶고, 자도 자도 자고 싶고, 놀아도 놀아도 놀고 싶은데, 이상하게 일은 해도 해도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엄마, 내가 있는데 뭐가 서러워. 울지마, 울지마, 에고, 아팠어요?"

내가 있잖아!.... 라고 든든한 딸인 척, 강한 어른인 척 했지만,

어른들은 강한 게 아니라 강해지려고 노력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조카가 '?'를 입에 달고 다니는 시기가 왔고, 결혼 안 한 이모는 곧잘 호구가 되곤 하며,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투정부리는 아이가 되어 버리고, 첫사랑은 이제 너무도 오래돼 생각도 나질 않고, 남자 연예인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아이돌 덕후가 되어 버리고 만, 삼십 대 작가의 사소한 일상들은 특별할 건 없어도 맞장구 치고 싶어지는 공감대를 형성해주어 읽는 내내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언니가 아이를 키우며 겪게 되는 육아의 고달픈 일상들과 가족들을 위해 너무도 오랜 세월 꿈을 잊어 버리고 살아온 엄마의 서글픈 마음들도 내 이야기, 우리 가족의 이야기처럼 와 닿았고 말이다. 그런 거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고만고만한 불행과 역시나 비슷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물론 힘들 때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것 같고, 나에게만 시련이 오는 것 같고, 남들은 다 즐거워 보이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에게 잘 하고 있는 건지, 나는 딸로서 우리 엄마에게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우리는 이미 어른이지만 순간순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불안과, 고민과, 의문들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찡하게 그림과 함께 풀어내는 에세이는 술술 읽히지만, 마음에 여운을 남겨준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고, 우리는 완벽한 어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있어 든든한 위로도 되고 말이다. 그렇게 이 소소한 이야기들은 정답이 없는 현실에서 고군분투 중인 서툰 우리 어른들을 위한 응원이자 삶에 지친 어느 날 우리 일상에 여백을 주기 위한 힐링이 되어 준다.

내 삶에 성실한 걸까.나를 위해 노력한 걸까.

오늘 하루, 나 최선을 다한 거 맞지?

당신은 지금 잘 하고 있다. 오늘의 나로 충분한 자신을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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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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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열여섯 살 이후부터는 자기를 보면 꺅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을 숱하게 봐왔다.

아까 공작새랑 같이 집 안에 있을 때는 아침에 저지른 무례한 행동을 파자마 아가씨가 용서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테이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예상했던 것과는 아주 딴 판이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추리 소설에 푹 빠져 살았던 터라, 내가 로맨스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 학창 시절 잠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유는 당시 반 친구들 사이에서 할리퀸 로맨스가 인기였기 때문인데, 그때는 누군가 책을 한 권 사면 순서를 정해서 친구들끼리 돌려서 읽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책을 빌려주는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와 당시 유행하던 장르를 적절하게 섞어서 읽었던 시기였다. 대부분 등장인물만 약간 다르고, 기본적인 스토리는 거의 똑같은 로맨스 물이었는데, 주드 데브루는 할리퀸 로맨스계의 대모라고 불리는 작가였다. 그래서 이번 신작의 작가 이름을 보고는 우와, 이 분이 아직도 작품을 쓰고 계셨구나 싶은 마음에 반갑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이 장르를 떠올리면 바로 머릿속에 연상될 정도로 주드 데브루는 독보적인 할리퀸 로맨스의 여제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마흔세 권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썼고, 1980~90년대 할리퀸 열풍을 이끌며 전 세계 6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녀의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 거의 90년대 후반부터였으니, 20년 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무려 불후의 고전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 21세기 감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게 세련된 표지 이미지와 감각적인 스토리 라인이 더해져 '할리퀸 로맨스'라는 다소 케케묵은 장르가 2018년 지금에도 여전히 읽히는 세련된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케이시는 돌아서서 오솔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더뎠다. 지금껏 대체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테이트 랜더스는 나랑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 남자는 스포트라이트에 둘러싸여 레드 카펫을 밟으면서오스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야. 집에 다 왔을 무렵 케이시는 깨달았다. … 자신과 테이트 랜더스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절대진지한 사이가 될 리 없다는 것이다. 둘의 세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녀는 요리사고, 그는 슈퍼스타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남자 친구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충격을 받은 케이시는 휴가를 내고 변방의 작은 마을 서머힐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베란다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젊은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경찰을 부르거나 적어도 비명이라도 질러야 했지만, 남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지만 그와의 만남은 서로에게 불쾌한 기억만을 남기게 된다. 테이트는 지역 연극에 참여하기 위해 잠깐 들른 유명 배우였던 탓에 케이시가 자신을 몰래 촬영하는 파파라치라고 생각해 언성을 높이고, 케이시는 그를 무례하고 거만한 연예인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테이트는 로맨스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인기 배우였지만, 케이시는 그가 나온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을에서는 연극 '오만과 편견'을 공연하기 위한 배우 오디션을 진행하려던 참이었고, 케이시는 그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요리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형편없는 연기 실력 덕분에 연출인 키트는 케이시가 실제로 테이트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무대에서 표현해 줄 것을 제안하게 된다.

테이트를 오만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 치부하고 그를 싫어하는 케이시의 감정은 극중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생각하는 것과 같아 묘하게 연기에 설득력을 부여하게 되고, 케이시는 얼떨결에 연극에 캐스팅되고 만다. 그것도 테이트가 연기하는 다아시의 상대역인 엘리자베스 역할에 말이다. , 서로에 대해 오해와 편견으로 시작된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어느 정도 상상이 될 것이다. 자존심과 오해, 미묘한 감정싸움과 남녀간의 은밀한 밀당에 주드 데브루 특유의 유머와 따스함이 더해져 사랑스러운 작품이 만들어진다. 잘생긴 남자 주인공, 솔직하고 당돌한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들 사이를 훼방하는 방해꾼의 등장, 이야기는 적절한 탐색전과 클라이막스를 거쳐 위기에 흔들리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너무 뻔하지 않으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기 시작하면 페이지를 쉽게 놓을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이 장르만의 중독성있는 매력이 아닐까. 유치하고 오글거리지 않느냐고? 로맨스 장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가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라 책을 읽는 동안 멋진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았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할리퀸 로맨스의 부활을 반기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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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명작 시리즈 미니북 세트 - 전3권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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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사랑은 그 사람 땜에 잠 못 자고, 가슴 설레고, 참 많이 아픈 거예요.

사랑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요,

 

사랑은 있어요.

 

                                                                    -'거짓말' 중에서

 

인생 최고의 드라마로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을 꼽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무려 이십 년 전 드라마이지만, 아직도 캐릭터며, 대사며, 그 풍경들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떠오를 만큼 좋아했고, 여러 번 봤던 드라마였다. 남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인물들의 삶에 모두 특별했고, 슬프고, 아름다웠고, 사랑에 대한,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빛났던 그 작품은 당연히 대본집으로도 사랑을 받았다. 요즘은 웬만큼 화제가 되는 드라마들은 거의 모두 방송이 끝나고 나서 대본집으로 출간이 되고 있는데, 어쩌면 그 시초가 노희경의 드라마들이 아니었나 싶다. 노희경 작가만큼 대본이 책으로 많이 출간된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그녀의 대사들은 드라마 만큼이나 사랑을 받았으니 말이다.

 

 

노희경 작가의 필력은 대본이 아닌 에세이로도 매우 뛰어나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번에 작가 노희경의 명작 세 권이 '한정판 MINI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노희경 작가의 첫 에세이이자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비롯해 소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데뷔 20주년 기념 명대사집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까지 세 권이다.

 

 

아버지한테 화내지마. 이제 늙어서 힘도 없는 사람이야.

부모자식간은 서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그러는 거 아니다.

남남끼리나 상식적으로 대하면 끝이지. 핏줄은 그러는 게 아니야.

핏줄은 피로 이해하는 거야. 무조건 이해하고 무조건 용서해줘.

 

                                                        -'내가 사는 이유' 중에서

 

이번 미니북 세트는 새로운 일러스트의 너무 예쁜 표지를 입은 리커버 버전으로, 한 손에 들어오는 핸디 사이즈로 되어 있다. 미니북이지만 글자 크기와 여백이 충분해 실제로 글씨를 읽는 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대부분의 미니북이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는데 반해, 글을 읽기 에는 다소 빽빽하거나 작아 어려웠는데, 이 책들은 매우 실용적인 셈이다. 그리고 세트의 특별 선물로 95개의 드라마 명대사가 들어 있는 '노희경 명대사 노트'도 같은 크기로 제작되어 있어 더 훌륭하다.

 

노희경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책을 시작하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어쩌면 이 짧은 문장 안에 담긴 그 수많은 감정들은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그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는 게 참 묘하다고 말하는 노희경 작가가 엄마에게 바치는 절절한 사모곡이 바로 이 작품이다. 드라마로도 좋았지만, 소설로도 정말 기가 막히게 좋다.

 

 

 

 

'사람이 전부다'라는 변함없는 인생철학을 20년간 드라라마에 투영해오며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 노희경. 그래서 늘 그녀의 작품 속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게다가 글과 삶이 따로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20년을 한결같이 매일 8시간 이상 글을 써온 성실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들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 나는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 게다가 이번 미니북 세트는 따뜻하고 촉촉한 감성 충만 일러스트들이 너무도 아름답게 삽입되어 있어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미니북이라 크기도 예쁘고, 예쁜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아 책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말만 남겨진 삶이 아니길, 말이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이길,
말이 목적이 아니길, 어떤 순간에도 사람이 목적이길.

대사를 잘 쓰려 애쓰던 서른을 지나고, 말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사십의 야망을 지나, 이제 오십의 그녀는 말 없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촌철살인의 대사로 유명한 그녀인데, 자신의 드라마에 대사가 모두 없어진다 해도 후회는 없을 만큼의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말이 목적이 아니고, 사람이 목적인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오직 노희경 만이 쓸 수 있는 그런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를 앞으로고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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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견주 2 - 사모예드 솜이와 함께하는 극한 인생!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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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덩치는 우람하지만 터널과 작은 개를 무서워하는 귀여운 허당 솜이의 매력에 푹 빠졌던 터라.. 1권보다 200% 더 강력해진 2권이라고 해서 정말 기대가 되었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문제견들을 합쳐놓은 것 같은 미운 5개월 '개춘기' 시절의 솜이를 그리고 있다니 말이다. 하핫. 개춘기라니.. 사실 우리 집 개는 이미 노견이라... 5개월 즈음엔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유독 말썽부리고 말을 안 들었던 시절도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나 이번 2권은 표지에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1권에서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했던, 그리고 가장 많이 공감하게 했던 페이지가 바로 주인과 개가 똑같이 울상을 짓는 저 장면이었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갔을 때 주인을 반기는 개의 행동 치고는 너무도 과격한 솜이 때문에 고민하다가.. 모른척 하면서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법을 써보기로 했는데... 결국 솜이의 저 표정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는 에피소드였다. 결국 그 방법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 진짜 그 장면 읽으면서 배꼽이 빠지도록 울었던 것 같다.

2권의 표지에 등장한 솜이의 표정 또한 압권인데... 개춘기를 겪으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시기답게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기대되는 표지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솜이가 한 방에서 같이 잘 때 워낙 잠 못자게 하고, 말썽을 피우는 바람에 테라스 바깥에 있는 솜이 집에서 자라고 내 쫓는 장면이다. 낮에도 혼자 테라스에서 낮잠도 자고 하긴 했지만... 밤에 이제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자라는 소리에 울먹거리는 솜이의 표정이 정말...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못지 않게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솜이의 나름 치열한 수면 교육(?) 에피소드는 정말 눈물겹도록 웃겼다.

 

 

<극한견주> 시리즈가 너무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렇게 중요한 에피소드가 끝나면.. 실제 그 장면에 해당되는 솜이의 진짜 사진이 척 하고 등장한다는 거다. 집에 있으면 테라스로 나가겠다고 힝힝거리고, 테라스로 내보내면 집에 들어오겠다고 힝힝거리는.. 너무 귀여운 솜이의 모습은 실물이 정말 예쁘다!! 사모예드는 시베리아의 눈처럼 하얀색 털이 인상적인 개인데, 솜이는 정말 사모예드 중에서도 극강의 미모를 자랑하는 개가 아닌가 싶다. 정말 눈에서 하트가 그려진 상태로 만화를 본 것 같다.

 

우리집 개도 코카스패니얼로 중형견이기 때문에, 게다가 사모예드처럼 털이 많이 빠지는 종이라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참 많았다. 이번 2권에서도 토토와 솜이의 공통점들이 너무 많아서... 개들이 다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개껌 숨기기 에피소드가 그랬는데, 토토도 간식을 주면 항상 어디론가 들고 가서는 숨겨 놓고 오곤 했다. 간식을 물로 어디론가 후다닥 가서는 왔다갔다 고심하다가, 옷 무더기 속에, 혹은 침대 근처 구석에다, 또는 이불 속에다 숨겨놓고 오곤했다. 마당이라는 공간이 있었다면 아마도 솜이처럼 땅을 파서 그 속에 간식을 넣고도 남았을 거다. 그 장면을 고스란히 솜이의 리얼한 표정으로 보고 있자니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고 말았다.

솜이는 이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찮고 귀여운 녀석...

나도 우리집 토토를 볼 때마다 들었던 궁금증이다. 이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핫.

 

자.. 드디어 고대하던 개춘기에 관한 에피소드다. 성ㄱ견이 되기 전의 청소년 강아지를 말하는데, 인간으로 치면 10대 시절되겠다. 사람도 그렇듯 개들도 사춘기 때문의 특성이 있는데, 솜이는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개처럼 변해버렸다. 얼굴은 원숭이, 이갈이 중이라 이빨은 맹구, 감정과잉에 말은 더럽게 안 듣기 시작... 게다가 마일로가 그린 솜이의 모습이라니... 미운 새끼 솜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마리 맹수.. 너무도 리얼한 솜이의 달라진 모습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 모습마저도 너무 귀여웠으니.. 나는 진정 솜이의 매력에 빠져 눈이 멀어버린 걸지도.

말썽쟁이 강아지들을 사람들은 자주 '악마견'이라고 부른다. 비글, 코카, 슈나우저.. 되겠다. 하핫 그 3대 악마 견종에 우리 토토가 있다는 건 안비밀... 뭐 어쨌거나 저들을 악마 견종이라 부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타견종에 비해서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라.. 더 많은 운동량을 필요롤 하고 산책 등으로 충분히 에너지를 소모해줘야 한다는 것. 그래서 솜이도 두배 세배로 열심히 산책을 시켜주기로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솜이의 에너지는 지칠줄 모르고.. 결국 인간들만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는 슬픈 에피소드. 게다가 덩치가 자라면서 더 이상 주인이 솜이의 힘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데... 어쩌면 솜이의 이야기는 점점 더 뒤로 갈수록, 솜이가 더 커갈수록 흥미진진할 것 같다.

 

 

<극한 견주>는 제목 그대로 개를 키우며 겪는 에피소드와 반려인의 애환을 담고 있는데, 충동적으로 대형견을 키우고 싶어질 땐 이 책을 먼저 읽어 보라고 권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읽게 되면 솜이의 매력에 빠져 앞뒤없이 대형견을 키우겠다고 달려들 수도 있는 위험이 따르지만.

그리고 단행본 책으로만 만날 수 있는 특별 에피소드와 솜이의 미공개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웹으로 이미 만나왔던 독자들이라도 단행본으로 꼭 책여보시길. 솜이의 질풍노도 시절 역시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니, 1권을 재미있게 보셨던 분들도 꼭 챙겨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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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날들의 글쓰기 - 죽음은 그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가지 않았다
에드위지 당티카 지음, 신지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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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회고록 작가 애니 딜러드는 그녀의 저서 <창조적 글쓰기>에서 모든 이야기를 쓸 때는 이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마치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글을 쓰라고 권했다. "이와 동시에, 불치병 환자들로만 이루어진 청중에게 글을 쓰는 거라고 가정하자.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무슨 글을 쓸 것인가? 죽어가는 사람을 분노하게 만들지 않도록, 어떤 사소치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다행히 그 동안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장례식장이라고는 몇 년전 회사 동료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딱 한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작년 말에 그 일을 직접 겪게 되고 보니..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그것 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과거의 삶을 돌아보게 마련이고,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며 이제 곧 사라질 미래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의 작가인 에드위지 당티카는 어머니의 암 투병과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대부분 그렇지 않나.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영원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부모님도 언젠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고,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휴한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이는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족의 죽음, 혹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은 그 동안 많이 있어왔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하고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언제나 죽음을 소재로 한 글을 써왔고, 글쓰기를 상실과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 책에서 그 동안 자신이 읽어온 문학 작품 속에 드러난 여러 가지 죽음의 형태를 분석하고 있다. 토니 모리슨,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레프 톨스토이, 알베르 카뮈, 무라카미 하루키, 손턴 와일더 등 거장들의 문학 작품에서는 죽음이 어떻게 그려지고, 어떻게 사유되고 있을까. 그렇게 문학에서 죽음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탐구하고 있는 이 책은 예리한 비평이자 대가의 문학수업으로 읽힌다.

 

"모든 내러티브 식의 글쓰기, 아니 어쩌면 모든 글쓰기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승으로 내려가 죽은 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어 하는 욕망-에 의한 것이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죽은 이들과의 협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죽음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글을 쓸 때조차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죽음이란 결국 모든 일의 종국적인 결과이자 모든 이야기의 최종 결말이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정말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라고 말했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 <술라>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이 삶을 감당할 길이 없어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는 실제 그의 이웃이었던 한 내연녀가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기차역 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내기>는 사형 제도를 주제로 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고, 또 가장 자주 언급되는 소설이다. 마이클 온다체의 <잉글리시 페이션트> '죽음의 문턱'을 가장 인상 깊게 묘사한 책이다. 이 책은 문학계 거장들의 영원한 화두가 '죽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작가들이 죽음과 대면하는 방식을 그리고 있다. 에드위지 당티카는 거장들의 작품을 거론하며, 죽음과 삶에 대해 고찰한다.

만약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나서 매 순간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한 것들이 가슴에 사무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들은 그럴 때 글을 쓴다. 에드위지 당티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가장 적극적인 애도 방법은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며, 이제 없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억을 더 깊게 새긴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비록 죽음을 어찌할 수는 없어도, 글쓰기를 통해 이 모든 것이 더 쉽게 받아들여지길 희망한다고.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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