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리커버 에디션)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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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자들의 마음을 얻을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는 대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아주 조그만 소리로 덧붙였다.

"그럼 세상을 팔아 치울 수도 있다니까요!"

스무 살 드니즈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두 남동생을 데리고 큰아버지를 찾아 파리로 상경한다. 여자 관계로 항상 사고만 치는 열여섯 장과 이제 겨우 다섯 살인 어린 동생 페페는 드니즈를 부모처럼 의지하는 철없는 동생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정을 딱히 여긴 큰아버지가 파리에 오면 방을 내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은 이미 1년 전의 일이었고, 그들은 지금 큰아버지에게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온 참이었다. 직물 전문점을 하고 있는 큰아버지는 가게 맞은편에 커다란 백화점이 생긴 이후 장사가 어려워 그들을 거두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런데 마침 백화점의 여성 기성복 매장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지만 만만치가 않다. 촌스럽고 어리숙해 보이는 드니즈를 매장 직원들은 대놓고 무시했고, 은근한 박해로 인해 제대로 실적을 올릴 수도 없었다. 매장에서 종일 쌓이는 피로는 엄청났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언제라도 해고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다. 동생 장은 틈만 나면 찾아와 돈을 달라고 온갖 사연들을 만들어 앓는 소리를 해댔고, 거기에 페페의 보육료를 내고 나면 그녀는 암흑 같은 빈곤함 갈아입을 옷도, 신발도 없이 버텨야만 했다.

한편 이 거대한 백화점의 젊은 사장 무레는 관리 시스템의 운용에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완벽하고 안정적으로 충족시키고자 다른 이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방향으로 백화점을 운영해나가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엄청난 세일을 기획하고, 백화점의 확장을 위해 주변 소상인들을 돈으로 포섭하는 것을 서슴지 않으면서 주변 상인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갔다. 그는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다니며 애정을 남발했지만,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여자라는 존재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랬던 무레가 조금씩 드니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 그는 한 여자가 파리라는 도시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타락해가는지를 보고자 하는 짓궂은 호기심에서 관심을 가졌으나, 점차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놀라움과 두려움에 연민이 뒤섞인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모든 것을 가진 백화점 사장이 가난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볼 수는 없다.

이 작품 속에서 '백화점'이라는 장소는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를 모델로, 19세기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인 만큼, 그에 걸 맞는 스케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대 자본과 소상인의 갈등과 그 속에서 그 메커니즘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 문제와 백화점이라는 것의 존속을 하게 해주는 여성들의 쇼핑 중독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19세기에 쓰인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읽어도 여전히 현대사회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엄청난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의 눈길이 주느비에브에게서 콜롱방으로, 그리고 다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으로 차례로 옮겨갔다. 그랬다, 저 백화점은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아비에게서는 재산을, 어미에게서는 자식을, 그리고 딸한테서는 10년 전부터 기다렸던 남편감을 앗아 갔던 것이다. 드니즈는 이 저주받은 가족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면서 잠시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보았다. 이 가엾은 가족을 짓누르는 거대한 기계에 자신이 힘을 보태려는 것은 아닐까?

대학 신입생 때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백화점의 명품관이라는 곳을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나에게는 처음 그곳을 둘러 보았을 때의 이미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잡지 카탈로그에서나 봤던 수백, 혹은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옷과 악세사리들이며, 그것들로 몸을 치장하고 우아한 몸짓과 말투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샵마스터의 모습까지 당시의 나에게는 신세계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그들이 매일같이 부유한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나와 별 차이 없는 판매원이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부르주아들의 몸짓과 말투가 몸에 배어서 혹은 그저 그런 여인네들을 흉내 내는 그들의 허세라는 걸 알고 있지만 사회 경험이 전무했던 당시의 내가 그런 사실을 깨달았을 리가 만무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백화점의 특정 세일 기간이 되면 그곳이 치열한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고,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입구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 문이 열리자 마자 우르르 몰려서 들어오는 손님들의 행렬을 신기하게 구경하곤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130여 년 전의 파리에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현대적백화점이 존재했다는 점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이 굉장히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던 것 같다. 소비의 신전이라 불리는 백화점이 보여주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들도 재미있었고, 상세하게 묘사된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백화점 안팎의 모습, 매장들의 분위기와 판매원들 간의 관계, 다양한 쇼핑객들의 모습, 그리고 고객과 판매원과의 관계 등은 마치 19세기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 더욱 이야기 속에 빠져들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번에 출간된 리커버 에디션은 합본에인데다 너무도 우아한 표지로 갈아 입고 나와서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야기 자체도 너무 너무 재미있게 읽히지만 책도 소장용으로 정말 우아하고 아름답다. 기존의 두 권에서 합본으로, 무선 제본에서 고급 양장본으로 탈바꿈한 것도 마음에 들지만, 표지 이미지와 색감부터 너무도 고급스럽고 작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훌륭하다. 그리고 리커버 에디션 출간 기념으로 받을 수 있는 사은품 양장 노트도 같은 울트라바이올렛 톤으로 만들어져 책과 잘 어울린다. 그야말로 여자들의 마음을 얻을 줄 아는 에디션이라고나 할까. 실물을 보면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책이다. 게다가 고전문학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술술 읽히고, 흥미진진해서 전혀 고전스럽지 않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굉장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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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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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병원입니다. 병원에서 누군가 약물 쇼크를 일으켰어요. 그게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입니까? 여긴 병원인데요? 양 간호사, 말해봐요. 그렇습니까?"

양 간호사가 눈을 피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쇼크를 일으킨 환자의 담당 간호사였다.

사무장 말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다른 곳도 아닌 병원에서. 특히 중환자실이나 일부 병동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끔은 사람들이 죽으러 병원에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사들이 실패할 때도 있었다.

조선소 밀집 지역인 이인시는 호황이던 조선 사업이 위기를 겪게 되자 모든 것들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업체들이 부도를 내고, 체불 임금이 늘어 이탈 인구수가 급증하고, 노동자들은 백수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고, 도심에 빈집들이 늘어 갔다. 갑작스러운 도시의 쇠락은 종합 병원의 존폐 위기로 연결된다. 병원 측에서는 수익원을 찾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 팀을 꾸리는데, 서울의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다 이곳으로 오게 된 무주가 새 팀에 투입된다. 그리고 무주는 낯선 곳에서 업무를 시작할 때 막역한 우정과 배려를 베풀어 주었던 이석의 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석은 병원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직원이었고, 3년 전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는 아이의 병수발을 하느라 집도 팔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주는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아내의 임신으로 곧 태어날 아이에게 당당한 아버지로 서고 싶다는 정의감과 도덕심 때문이었다.

이석은 아무런 조사 없이 갑작스럽게 해고 되었고, 약물 투여 실수로 인해 환자가 죽을 뻔했던 사건으로 병원에 내분이 일면서 이석은 자연스레 화제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간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이 아니라, 그것을 밝힌 직원에게 화살이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무주가 이석과 친했음에도 그를 고발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석이 저지른 비리 내용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무주가 이석의 작은 실수를 봐주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은 무주를 멀리했고, 결국 무주는 전혀 다른 보직으로 밀려나 야간 근무를 하기에 이른다. 무주는 날마다 술을 마셨고, 무주의 아내는 유산을 하고, 결국 서울로 떠나게 된다. 헛된 공명심과 정의감에 사로잡혀 벌인 일로 인해 무주는 동료도 잃고, 아내와 아이 마저 잃어 버리고 만다.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병원 내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비리를 폭로한 주인공이 오히려 내부 고발자가 되어 조직 안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정작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는 얼마 뒤 병원의 요직으로 복귀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현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병원의 비윤리적 경영이나, 병원에서 통상 일어나곤 하는 투약 과실, 의료 사고로 인한 분쟁들은 의료기관이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지금도 뉴스에서 숱하게 보도 되고 있는 이대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나, 몇몇 유명인들의 의료 사고로 인한 분쟁들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씁쓸한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고 있다. 극중 이석의 말처럼 과연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타락밖에 없는 것일까. 정의를 지켜내고자 했던 무주 역시 이전 병원에서는 상사의 지시대로, 관행이라는 방패 아래 비리가 저질러지는 것을 보고도 묵인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지만, 결과는 더 참담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윤리적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사회의 기만에 맞서 싸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무주의 삶이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그가 냈던 용기가 인간적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것이 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살다보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상황이 매번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때 우리는 과연 아무런 고민없이 윤리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선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편혜영 작가가 2년 만에 발표하는 그녀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핀 시리즈가 흥미로운 것은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이라 '월간 핀'이라는 점인데,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샐러리북개념이라고 한다. 게다가 출간이 예정되어 있는 후속편들 또한 멋진 작가들이 기다리고 있어 기대 중이다. 윤성희, 이기호, 정이현, 김성중, 손보미 등등... 이름만으로도 새로운 작품을 설레이게 만들어 주는 작가들의 라인업이 앞으로 이어질 핀 시리즈에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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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나라 엄마 펭귄
이장훈 지음, 김예진 그림 / 51BOOKS(오일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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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에서 여주인공수아가 아들지호를 위해 직접 만들어 준 동화책이다. 영화를 봤던 이들이라면 실물 책으로 만나는 순간 뭉클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늘 나라와 지상 세계 사이에 눈처럼 하얀 구름 나라가 있었다. 이 곳은 하늘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지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모두 잊힐 때까지 머무르는 곳이라고 한다. 그 곳 구름나라에서 엄마 펭귄이 지상 세계를 내려다 본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대체 엄마 펭귄이 우는 이유는 뭘까.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졌고, 엄마 펭귄은 그 틈을 타서 빗방울 열차에 올라타 지상 세계로 향한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그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무당벌레 의사 선생님도 만나고, 친절한 곰 아저씨도 만나지만, 여전히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때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슬프게 우는 아기 펭귄이 있었다. , 그리고 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에서 소설로도 영화로도 엄청난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13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국내에서 리메이크되었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남자가 비 오는 날 아들과 함께 찾은 숲 속에서, 죽은 아내와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비 오는 날 시작된 기적'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그렇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와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엄마가 아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영화 원작의 이야기만 간단히 보더라도, 이 작품 속에서 동화 <구름 나라 엄마 펭귄>이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어떨지 짐작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동화는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감독이 만든 것이기에 더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이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뭉클하고, 따뜻하고, 먹먹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엄마 펭귄과 아기 펭귄의 이야기를 통해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이 동화는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영원한 사랑의 의미도 자연스레 깨닫게 해 주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는 너무 슬픈 동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귀여운 아기 펭귄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라 슬픔보다는 따뜻함에 초점을 맞춰 아이에게 들려주면 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줘야 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이별이라는 것이 꼭 영화 속 그것처럼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 살면서 누구와도 겪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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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마 저택 살인사건
아마노 세츠코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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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요? 뭔가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다이스케가 붉어진 얼굴로 츠유키를 보았다.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츠유키는 다시 현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명백한 자살 현장이었지만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이 막연한 찜찜한 기분은 뭘까?

오늘은 도지마 신노스케 회장의 65세 생일이다. 축하 파티를 위해 유럽의 고전적인 저택 구조를 모방한 대저택에 온 가족이 모인다. 장녀인 소노코와 맏사위 나오아키, 그리고 손자 히로키, 장남인 다이스케의 친구 타구마와 약혼녀인 카나에, 차녀인 키와코와 막내인 아카리, 그리고 아카리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사에코이다. 거기에 가정부인 키요미와 신노스케 회장의 친구이기도 한 셰프 미야모토가 오늘 요리를 위해 저택에서 한창 준비중이었다. 음식 준비가 마무리 되고 저녁 시간이 되어 다들 신노스케 회장을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나타나지 않아 식구들이 찾으러 가지만, 그는 집 안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거실 테라스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경찰이 방을 수색하고 조사를 하지만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유서도 없었고, 아무런 자살 동기도 짐작되지 않아 다들 의아했지만, 딱히 범죄라는 증거도 보이지 않아 사건은 그렇게 자살로 종결될 것처럼 보였다. 나이에 비해 지극히 건강했고, 병력도 없었으며, 독극물이 검출된 것도 아니고, 우울증이었다는 증거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형사 츠유키는 뭔가 마음에 걸린다. 츠유키는 역시나 그 자살 사건이 뭔가 의심스러웠던 팀원 시마와 타가미와 함께 이상한 점들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인의 정체는 점점 더 모호해지기만 한다.그리고 사건 일주일 후 칠일재 제사를 위해 저택에 그날 밤 거실에 모였던 이들이 모두 모인 날, 그곳에서 또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어찌 보면 완벽한 밀실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도지마 가의 저택에서, 다들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모여 있는데, 대체 범인은 어떻게 살인을 저지른 걸까.

 

 

"그렇지, 이틀밖에 없어. 아니, 이틀이나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제대로 써야 해. 알겠나?. 모두가 단순히 주변 정황에 현혹되고 있어. 아주 표면적인 모습에 말이야. 그래서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모순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이 모순에 집착하고 있는 건 우리뿐이야."

작가인 아마노 세츠코는 무려 60세에 작가 데뷔에 성공했는데, 데뷔작이었던 <얼음꽃> 은 당시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 역시 후지TV에서 방영된 스페셜 드라마시선의 원작 소설이다. 일드의 여왕 나카마 유키에, 연기파 배우 야마모토 코지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방영 당시 일본에서 크게 화제를 모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추리소설에서 전통적인 밀실 트릭의 기법에 초점을 맞추어 미스터리로 읽어도 흥미롭고, 섬세하고 세밀한 인물 묘사를 따라가며 그들의 관계와 드라마에 중점을 두고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범인이 누구이냐, 밀실 트릭은 어떻게 벌어진 것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살해 '동기'이다. 주도 면밀하게 계획한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증거들도 없애고, 확실한 알리바이도 세우더라도, 사실상 절대 없앨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동기이니 말이다. 무차별 살인 사건이 아닌 이상, 항상 범인에게는 동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작품처럼 범인이 특정 장소 안에 있었던 사람, 가족을 비롯해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들도 한정이 될 때는 바로 그 동기가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반전을 완성시키며, 서스펜스를 불러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전은 놀라움보다는 뭔가 서글프고 씁쓸한 감정이 들게 한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럴 만한 배경에도 어느 정도의 이해와 공감이 생기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작가인 아마노 세츠코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고, 그래서 유독 그녀의 작품이 자주 드라마로 만들어져 사랑 받는 이유일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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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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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에서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욕심도 버리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내 집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들을 얻기 위해 무조건 열심히 살고 싶지는 않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라니. 열심히 살지 못해 죄송합니다.도 아니고 말이다. 살면서 평생 노력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만 들어왔던 우리들이기에, 더욱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제목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는 이 책은 일명 '야매 득도 에세이'이다. 저자는 말한다. 불혹이라 불리는 마흔 살을 두 달 앞둔 시점에, 내가 어디로 이렇게 열심히 가고 있는 건지 마음이 싱숭생숭했을 때, 소중히 품어왔던 사표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고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사표를 낸 후였고, 아차 싶었지만 없던 일로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고, 게다가 흔쾌히 퇴사를 반기는 회사까지. 모두가 열심히 사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황당한 소리를 하는 그의 이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말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들은 알고 있다. 노력이란 것이 항상 정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애초에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니 말이다. 6년차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자신이 무명배우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대입 4수를 거쳐서 오랫동안 투잡을 해왔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그렇게 열심히 해도 전혀 사는 게 나아지지 않았고, 열심히 살았는데 겨우 이 정도라면 너무도 억울했다고.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았더라면 덜 억울했을 텐데, 계속 누군가에게 지는 느낌이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케세라세라.

"어떤 사람이 있는데 말이야.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게 정상일까, 그대로 다 안 되는 게 정상일까?"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

"빙고! 그러니까 네가 이 모양인 것도 지극히 정상이라는 얘기야."

"... 위로 맞지?"

이 작품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위트 있는 일러스트들이다. 만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 심각한 대사를 하거나, 노골적인 그림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어 놓고서 촌철살인의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글은 매우 진지한데,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들이 피식 웃게 만들고, 가끔은 깔깔거리게 만들면서 무거웠던 고민들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너무도 리얼하고, 가감 없는 일러스트에서 전달되는 그것은 현실을 꿰뚫는 날카로움과 답답한 사회에 한 방 훅 날리는 시원함이다. 갑작스레 아무런 대책 없이 사표를 내던진 비현실적인 상황에 있으면서도, 말하고 있는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적이라 누구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것들이기도 하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부족한 듯 바쁘게 움직이며 살고 있지만, 내가 가는 길이 제대로 된 방향인지 말이다. 어떤 날은 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쉬지도 못했구나 싶은 날도 있었고, 수험생도 아니면서 자는 시간이 아까워 억지로 졸린 눈을 비벼 가며 뭔가를 했던 날도 많았다.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걸까. 가끔은 아무 목적 없이 산책도 하고, 느긋하게 앉아 음악도 좀 늦고, 또 가끔은 정말 별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한 게 아닐까.

 

열정과 노력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반대의 경우에는 뭔가 도태되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이 어느 정도 덜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나도 굳이 열심히 아둥바둥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떤 기준 없이,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그러니까 기대 없이 인생을 사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이제는 견디는 삶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는 삶도 한번 시작해보고 싶어 졌다.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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