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의 말
켄 로런스 지음, 이승열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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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ke.

결국 당신이 받은 사랑은 당신이 베푼 사랑과 같아요.

-폴 매카트니가 쓴 가사 가운데 존 레논이 최고로 뽑은 대목이다.

2002 6 6일자 <더 프레스>에서(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중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비틀스는 모를 수가 없다. 오죽하면 "20세기 대중음악은 비틀스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 있겠는가. 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올린 밴드, 빌보드에서 가장 많이 차트 1위를 차지한 밴드, BBC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팝 그룹 중 하나인 비틀스, 그리고 그 일원으로서 존 레논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음악계의 지형도가 만들어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 책은 존 레논이 남겼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가감 없이 소개하고 있다. 영어 원문과 해석, 그리고 언제 그런 말을 했는 지와 어느 매체에 수록되어 있는지 까지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어 더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되어 있다. 뛰어난 언변과 독특한 유머감각으로 비틀스에서 언론 인터뷰를 도맡았던 존 레논이기에, 거침없는 그의 말들은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덕분에 그는 논란의 주인공이 될 때가 많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의도치 않게 휩쓸리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초한 거 였기도 했으니 말이다.

If art were to redeem man, it could do so only by saving him from the seriousness of life and restoring him to an unexpected boyishness.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뿐이에요. 진지한 인생에서 어린아이 같은 예상 밖의 쾌활함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죠.

_1968년 발언.

1996 9 29일자 <선데이 태즈메이니안>(호주)에서 인용.

존 레논은 자신이 가난한 노동자 출신임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흙수저 신분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말한 첫 번째 흙수저 계급 음악가'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엄청난 유명세와 인기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 유명세, 가족, 약물 복용, 논란을 불러일으킨 말, 반전운동, 정치 등등의 카테고리로 구분해 그가 했던 말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그의 말들은 존 레논이라는 한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비틀스의 성공 이후 방황과 굴곡의 시기를 거쳐 오노 요코를 만나 아티스트이자 평화주의자로서 거듭나며,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죽는 순간까지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오노 요코와의 관계, 멤버 간의 불화설 등 수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서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소통하려했고 사랑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려고 했다. 이 책을 번역한 뮤지션 이승열은 존 레논을안티히어로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고 말한다. 존 레논의 음악과 가사는 위정자들을 향한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고, 욕이었다고. 인터뷰에서의 그의 도발적인 유머와 거드름은 록 스타로서의 지위에 걸맞았다고 말이다.

존 레논은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현재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나머지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말했다. 예의 바르게 살려고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은 심술궂지만 위트가 넘치는 존 레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그의 말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의 음악과 영혼을 만나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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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지하철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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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황하 잉어들이 호구 폭포를 뛰어올라 용문을 통과해 용이 된 후 장안성 지하에 보내진다고 했다.

"우리는 잉어였을 때 정말 최선을 다했어. 언젠가 용문을 통과해 잉어 허물을 벗고 용이 되면 단숨에 하늘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잔뜩 기대했지. 하지만 용문을 통과하자마자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지. 우리는 용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장안성 군대에게 잡혀 이곳으로 끌려와 매일 터널을 달리고 있어. 하늘은 고사하고 햇빛도 보지 못해."    p.56

<장안 24>라는 작품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었던 마보융의 신작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던 당나라의 서울, '장안'을 배경으로 긴박감 넘치는 대테러전을 그렸던 전작에 비해, 이번에 만나게 된 <용과 지하철>은 같은 장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판타지물이다. 역사서에서 기록된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허구의 인물과 실재했던 역사 속 인물들을 함께 등장시켜 개연성 뛰어난 팩션을 만들어냈던 작가가 용이 등장하고, 신비한 도술이 펼쳐지는 판타지라니 의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보융은 역사 미스터리, SF, 판타지, 단편 코미디, 대중적인 역사 논문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해 '문학 귀재'라는 별명까지 얻은 작가이니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장안 24>로 마보융의 매력에 푹 빠졌던 터라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가 되었는데, 굉장히 색다르면서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장거리 마차 여행이 처음인 열살 소년 나타는 멀미로 고생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차가 급정거하고, 마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얼룡들의 습격이 벌어진 것이다. 얼룡은 시커먼 연기가 모여 몸통을 이루는데, 대부분 용의 형상을 하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존재였다. 천책부 공군이 등장해 얼륭을 물리치고, 그 과정에서 나타는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경이로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나타의 아버지가 이정 대장군이라 항상 바쁜 관계로 옥환 공주가 대신 소년을 데리고 장안 구경을 시켜 준다. 모든 게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것은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는지하룡이었다. 진짜 살아 있는 수백 마리의 용들이 터널을 뚫고 달리며 수많은 장안 백성들을 원하는 곳에 대려다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타는 그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지하에만 있으면 용들이 답답하지 않을까. 나타는 용들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 안타까웠다. 그래서 다음날 혼자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자 지하룡들을 만나보기 위해 역으로 향하고, 용들이 모여 사는 지하 터널 끝 동굴로 숨어든다.

 

옥환은 들을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만약 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지하룡이 흉수가 아니라 나타를 구해준 나타의 친구란 말인가? 순간 울먹이는 나타 얼굴이 떠올랐다. 나타와 용이 정말 친구였을까? 이렇게 황당무계한 일이 또 있을까? 사람과 짐승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데? 하지만 이 둘이 친구여야만 이 모든 상황이 설명이 된다.   p.134~135

장안에서는 매년 용문절이 열리는데, 그때 수많은 잉어들이 호구 폭포를 거슬러 올라 용문을 통과해서 용이 된다. 매년 용문을 뛰어넘으려는 잉어는 수만 마리가 넘고, 그 중 가장 강인하고, 똑똑하고, 행운을 타고난 몇 마리만이 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오를 거라는 그들의 기대는 용문을 통과하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용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장안성 군대에게 잡혀 지하로 끌려와 매일 터널을 달리게 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늘은 고사하고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용이 되자마자 지하로 끌려왔기 때문에 한 번도 하늘을 날아본 적이 없던 그들은, 하늘을 나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알지 못했다. 용이 하늘을 날 생각이 없다니, 나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바람도 없는 용들의 눈빛을 보며 나타는 큰 충격을 받고, 그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로잡힌 용들의 분노가 쌓여 만들어진 얼룡은 점점 나타나는 빈도가 잦아지고, 역린의 원한과 분노가 곧 초대형 얼룡으로 변해 장안을 덮치게 되는데.. 과연 장안을 공격하는 악룡의 출현과 지하룡들의 자유를 찾아주고 싶은 소년 나타의 바램은 어떻게 될지 이야기는 숨가쁘게 흘러 간다.

상상의 동물인 용이 실재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욕심으로 용들을 지하철로 만들어 이용한다는 기발한 상상력도 흥미진진했지만, 무엇보다 용과 인간의 갈등을 화해시키려는 존재가 어린 소년이라는 점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매력적인 전개를 펼치고 있다. 소년의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이 지하룡들과의 소통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사람과 짐승이 친구가 된다는 황당무계한 상황에도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신화와 과학이 공존하는 세계 자체에 거부감 없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책에는 <용과 지하철> 외에도 단편 세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SF와 기담, 환상문학을 아우르는 마보융의 단편들은 소재도 다양하고, 흥미로워 마보융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여 주었다. 그의 다음 작품도 무조건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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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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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우드를 증오해왔지만, 그리 강렬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것은 추수 전에 들이닥치는 우박을 동반한 폭풍, 들판을 뒤덮는 메뚜기 떼 같은 것이었다. 그보다 더 끔찍하고 악몽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연의 일부다. 하지만 이제는 우드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느껴졌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를 모두 해치기 위해 악의로 똘똘 뭉친 채 서서히 접근하는 생물체로, 우리 마을 전체를 굽어보며 집어삼킬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 생물체로 느껴졌다.   p.287

전부터 <테메레르> 시리즈가 너무 궁금했었는데, 전체 9권으로 완결이 되었기에 그 분량 때문에 선뜻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해당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으로 쓰인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에 <업루티드> 부터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겨우 만나보게 되었다. 나오미 노빅이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폴란드의 민담과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는 이 작품은 2016년 네뷸러상 장편부분 수상작이기도 하다.

마법사이자 불사의 존재이기도 한 드래곤은 십 년에 한 번씩 열 일곱 소녀 한 명을 자신의 탑으로 데려간다. 그는 소녀를 십 년 후에 다시 마을로 돌려보내는데, 그때가 되면 소녀들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소녀들을 드래곤에게 제물로 바치게 된 지 백 년이 넘었고, 그 동안 드래곤은 '우드'라는 무시무시한 숲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었다. 올해는 주인공 소녀 아그니에슈카가 열일곱이 되는 해였다. 드래곤의 소녀가 될 후보는 총 열한 명이었지만, 다들 아름답고 영리하고 똑똑한 카시아가 선택될 거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소녀였던 카시아는 자신이 떠나게 되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와 항상 함께 지냈던 아그니에슈카는 자신의 친구를 데려갈 드래곤이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선택의 날이 왔고, 드래곤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카시아가 아닌 아그니에슈카의 손을 낚아채 허공으로 사라진다. 당사자인 아그니에슈카를 비롯해서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난 분별력 따위는 원하지 않아요!"

내가 정적을 깨며 크게 외쳤다.

"분별력이 생기는 게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라면요. 사람들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가 뭐가 있나요?"    p.435

이야기의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을 빨아들이며 폴니아 왕국을 잠식해온 '우드'라는 숲이 있다. 그 숲에 발을 들인 사람 누구도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상태로 나오지 못했다. 눈이 먼 채로 비명을 지르며 나오거나, 온몸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리고 일그러지거나, 미치광이가 되곤 했다. 그 중 가장 끔찍한 것은 멀쩡한 얼굴로 걸어 나와 살인을 저지르는, 내면이 뭔가 크게 잘못된 사람들이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우드의 저주를 두려워하며 살아 왔다. 아그니에슈카가 드래곤의 탑으로 간지 얼마 뒤, 카시아가 '우드'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거대한 대벌레처럼 생긴 워커가 종종 숲에서 사람들을 채가곤 했는데, 카시아가 물을 길으러 갔을 때 워커 세 놈이 그녀를 데려가고 만 것이다. 카시아의 엄마 웬사가 아그니에슈카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우드로 끌려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설사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하더라도 오염되지 않은 채 나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없을테고 말이다. 하지만 아그니에슈카는 카시아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드래곤 몰래 길을 나서고, 무시무시한 저주의 숲 '우드'로 향한다.

67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작품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페이지가 쓱쓱 넘어가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극 초반, 드래곤이 아그니에슈카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그녀가 점차 마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정말 아무 것도 몰랐던 천방지축, 왈가닥 소녀가 청소와 요리를 할 수 있는 마법부터, 마을에 퍼진 우드의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마법과 그 과정에서 늑대에게 물려 온몸으로 오염이 퍼진 드래곤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화하는 마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마법에 재능을 타고난 천재 소녀가 아무렇게나 툭툭 위기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간단한 마법만 간신히 턱걸이로 배우고 있는 평범한 소녀가 급박한 상황에서 재기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라 누구라도 손에 땀을 쥐고 소녀의 편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융통성 없고 고집 센 마법사 드래곤을 비롯해서 형이 물려받은 왕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폴니아의 둘째 왕자 마렉, 왕실의 제1마법사가 되기 위해 간신 노릇을 일삼는 마법사 팔콘 등 분명하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지루할 틈 없이 끌고 나가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다.

 

판타지는 가장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불가능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현실도피 수단이 바로 판타지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판타지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 작품은 판타지 소설이 줄 수 있는 가장 최상급의 재미를 선사한다. 진부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탈출하고 싶다면, 소설이란 자고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나오미 노빅은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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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 전 세계가 열광한 빅히트 아이디어의 비밀
앨런 가넷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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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케팅 서적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이 책은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대단한 성공을 낳는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침서다. 여러분은 창의적 발상의 역사를 배우고,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 스냅챗과 인스타그램 등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이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창의적 발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p.35

 

빅데이터 전문가인 앨런 가넷은 늘 패턴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고, 패턴에 매혹되었으며, 패턴을 찾는 데 열중해왔다고 한다. 현재 그는 낮에는 대형 브랜드 기억들이 그들의 마케팅 데이터 속에 있는 패턴을 찾도록 도와주는 회사를 운영하고, 밤에는 히트한 창작품 속에 숨은 패턴을 찾는 일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지난 2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 성공한 세계적 거장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많은 이들이 열광한 작품 뒤에는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있으며 그들만의 패턴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히트한 창작품 속에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이 책을 쓰게 된다. 유명 셰프, 베스트셀러 소설가, 최고의 유튜버들을 비롯해 소위 천재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리더들이 보여주는 크리에이티브의 법칙은 어떤 것일까.

폴 매카트니가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에서 비롯되어 만들게 된 '예스터데이'의 탄생 비화부터, 창의력에 관한 영감 이론의 화신인 모차르트가 실제 어떤 과정을 거쳐 작곡을 했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거쳐, 피카소, 스티브 잡스, J. K. 롤링 등 창의적인 발상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스토리에 대한 진짜 현실을 들려 준다. 이들의 뛰어난 업적이 천재들에게 벌어진 마법같은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과학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평범한 그 누구라도 그들이 이룩한 것을 의도적으로 모방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창작해내어 엄청난 성공을 맛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천재 크리에이터들만이 가지고 있는 성공의 공식인 '크리에이티브 커브'를 알아보자.

창작의 성공 비결을 파헤치는 연구를 하면서, 나는 분야가 달라도 창작 과정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작가의 기법은 기업가의 수법과 아주 비슷했고, 셰프는 작곡가와 같은 방식으로 계획을 짰다. 그리고 영화 제작자는 벤앤제리스가 새로운 맛을 선보이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히트작을 만들었다.

결국 모든 상업적 창작활동은 비슷비슷하다. 특정 시기에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여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p.292

 

J. K. 롤링은 맨체스터를 출발하여 런던으로 향하는 열차를 탔는데, 열차가 지연되었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마법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롤링은 아파트에서 공책에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고, <해리 포터>는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해리 포터>의 성공 사례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영감으로 하룻밤 사이에 대성공을 거둔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구도를 잡고,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스토리를 계획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5년 동안 창의적 반복 작업에 몰두하여 총 일곱 권의 플롯을 구성한 다음 첫 번째 책을 썼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소설을 읽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 왔다. 천재 크리에이터들이 그럿듯, 롤링은 장차 창작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원료를 공급받기 위해 치열할 정도로 소비에 몰두해 왔으며, 연구를 거듭하고, 짜임새 있고 추진력 있게 글을 써나가는 작가였다. 그러니 그녀는 단순히 꿈을 그려가는 작가가 아니라, 엄청나게 노력을 쏟아붓는 야망 있는 기획가였던 것이다.

롤링처럼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몇 해씩 힘들여가며 계획을 짜고, 개요를 만들고, 참고 자료를 모아 끝없는 반복 잡업을 거치고 설계를 해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크리에이티브 커브 법칙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창작의 로또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읽고 계획을 짜고 쓰는 데 몇 해를 보낸 그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해리 포터>였다는 것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서 밝혀내는 패턴과 공식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실제로 현실에서 실천해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자기 계발이 필요한 직장인들에게도, 수많은 패턴 속에서 공식을 찾아 내야 하는 마케팅 관련일을 하는 이들에게도, 그 외의 모든 창의성과 상상력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놀랍고도 실용적인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신이 타고난 천재가 아니더라도, 놀랍고 위력적인 영감과 통찰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크리에이티브의 4가지 법칙을 따를 수 있다면, 누구라도 창의적 재능을 터득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가. 평범한 아이디어를 빅히트 아이템으로 바꾸는 과학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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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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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마이제공화국에는 슬픈 노래가 없습니다.

내용이 슬프더라도 웃으면서 부릅니다. 그것이 루프마이제공화국의 정신입니다.

바깥은 어두워지고 있는데 집 안은 축제 분위기. 마치 철 지난 하지 축제처럼 떠들썩합니다. 마리카의 탄생이 그만큼 멋진 일이라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희망으로 가득한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p.41

<츠바키 문구점>의 오가와 이토가 라트비아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오가와 이토는 라트비아 여행 일기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발트 3국 중 하나인 이 나라를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라트비아는 미지의 나라일텐데, 오가와 이토는 이 나라를 다녀와서 루프마이제공화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만들고 이야기를 써냈다. 이곳 사람들은 음식이나 수공예품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연 신앙도 아직 남아 있으며, 과거의 생활양식을 지켜나가고 문화를 소중히 여긴다. 오가와 이토는 전작들에서도 소소한 이야기로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던 작가인지라, 그녀가 왜 라트비아라는 나라에 매혹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잊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간직할 줄 아는 작가이니 말이다.

이야기는 마리카가 태어난 어느 추운 겨울 아침에서 시작한다. 마리카가 태어난 날 아침, 할머니는 곧바로 작은 엄지 장갑을 뜨기 시작한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의 겨울은 몹시 추워서 엄지장갑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화려한 색깔의 아름다운 엄지장갑을 끼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털실로 뜬 엄지장갑과 함께 평생을 한다. 태어날 때 받은 엄지장갑이 작아지면, 손 크기에 맞춰 또 다른 엄지장갑을 뜨고,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도 장갑을 뜨고, 특별한 소망을 담아 장갑을 뜨기도 한다. 이들에게 엄지장갑은 방한용품이고, 축제 때 사람들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특별한 장신구이기도 하다. 게다가 여자들이 시집갈 때는 큰 궤짝에 엄지장갑을 가득 채워 혼수로 가져간다고 하고, 여성이 청혼한 남성에게 선물하는 수락의 대답도 역시 장갑이라고. 결혼식용 장갑이 신랑 손에 꼭 맞으면 결혼 생활이 순탄하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이들에게 장갑이 어느 정도의 의미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마당 너머로는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그 너머에 치유의 땅이 있습니다. 치유의 땅은 정령들이 사는 신성한 숲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가면 호수가 나옵니다.

가진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p.101

이 작품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오빠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마리카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건강한 아이로 성장해, 첫사랑을 만나고, 한 남자와 사랑을 나누게 되어 결혼을 하고, 결혼한 지 5년 만에 국가적 불운을 겪게 된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이 얼음제국에 무력으로 병합되어, 나라를 빼앗기게 되면서 수많은 역경을 겪게 되고, 남편이 강제 연행되면서 그와 생이별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선량한 마음으로 전통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답게, 그들은 힘든 때일수록 더 활짝 웃는다.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고, 슬퍼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도 없으니 말이다.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살아간다. 마리카가 일흔 살 되던 해에 기나긴 겨울의 시대가 끝나고, 루프마이제공화국은 독립을 되찾아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미소가 잘 어울리는, 경건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박한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읽힌다. 오가와 이토의 라트비아 여행에 동행한 일러스트레이터 히라사와 마리코의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삽화들도 이야기와 잘 어울려서 다정하고 아름다운 여정을 완성하고 있다. 수제로 만든 흑빵과 소박한 식탁, 숲과 호수에 둘러싸인 곳들의 풍경, 대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엄지장갑과 함께하는 이야기는 추운 겨울 시린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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