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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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에 일곱 장하는 돈가스는가정의 평화라는 성찬식 풍경을 완성하며 저녁 식사로 준비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미움을 감춘 채, 가엾고 무해한 자기 딸의 평화에 금이 가지 않도록 고기를 질겅질겅 씹을 것이다. 이것이 비극보다 오래가는 시트콤의 힘이...........문장의 주어가 어느새 ''에서 '그들'이라는 삼인칭으로 바뀌어 있다. 그녀는 오늘의 메모를 글로 옮길 준비가 다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우스꽝스러움을, 유치함을, 자신을 포함한 통속의 세계를 용서한다, 용서한다.   -김성중 '등신, 안심' 중에서, p.53

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소설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들려주는 짧은 소설집이다. 41년의 문학 생활에 걸쳐 늘 관심을 두었던,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소설가 29명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읽고 써낸 결과물은 그 자체로 그저 뭉클하다. 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소설인 '콩트'라는 형식 때문에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나갈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분량이 짧다는 것은 서사보다는 대개 인생의 한 장면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그리는 것이므로, 그야말로 부담 없이 페이지가 술술 넘어 간다.

결혼할 남자를 오로지 순간적인 사랑으로만, 낭만 100퍼센트의 요소로 선택했기에 신혼이 가시기도 전에 싸우기 시작한 부부의 이야기는 애처로운 화해로 끝난다. 등심과 안심을 '등신과 안심'으로 잘못 메모한 아내로 인해서. 그와 나는 둘도 없는 상등신들이고 우리는 화해가 이루어져 안심하고 있구나, 이것은 등신들이 안심하는 이야기구나, 라고 아내는 생각한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지만, 아마도 '비극보다 오래가는 시트콤의 힘'으로 오늘도 남편과, 아내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은 뜨끔할 지도 모르겠다. 김성중 작가의 '등신, 안심'이라는 작품의 이야기였다. 계약직 채용 심사에서 옛 연인에게 반대표를 행사하는 교수의 이야기, 분실물을 찾기 위해 탐정을 방문한 의뢰인이 어쩌다 보니 탐정의 잔심부름만 하게 되는 이야기, 안경을 잃어버린 난시의 주인공이 거래처 사람과 계약을 하며, 카페에서 점원에게 질문을 하며 자신처럼 안경을 잃어 버려 아주 가까운 거리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이야기 등등... 짧은 분량에 전혀 구애 받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마음이란 얼마나 허약한지. 한 몸으로 여러 개의 역할을 하며 살아내야 하는 처지도 같고, 능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 발을 구르는 것도 똑같은데. 너의 과거가 내 현재이고, 내 현재가 다시 너의 미래가 될 수도 있으며, 그런 서로에게 굳은 의리를 느끼는 것도 사실인데. 그런데 끝없이 서로의 현재를 비교하고 다른 점을 찾아내려 한다. 너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너무도 쉽게 치환해 버린다. 나보다 즐거운 너를 견딜 수가, 거리를 둘 수가, 없다. 지혜는 슬기에게서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과거만을 보느라 지금 빛나는 그 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자신이 끔찍했다.   -윤이형, '여성의 신비' 중에서, p.170~171

무엇보다 이 소설집이 중요한 것은 박완서 작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8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가 남겨준 문학의 유산을 기리는 이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강화길 작가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면 늘 박완서 선생님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그녀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위로가 된다고 말이다. 백민석 작가는 대학 시절 여자 동기들이 항상 박완서 선생의 책을 끼고 다녔다고 추억한다. 윤이형 작가는 박완서 선생이 여성에게 삶의 매 순간이 투쟁임을, 문학이 순응이나 타협이 아니라 격렬한 싸움임을 평생 온몸으로 체현하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경외심을 품는다. 임현 작가는 결코 쉽게 쓰일 수 없는 문장들이 쉽게 읽힐 때, 어떤 배려 깊은 다정함도 함께 읽게 된다고 말하며, 한유주 작가는 그녀의 작품에 대해 정밀한 관찰로 삶에 대한 부감을 획득하는 소설의 교본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집은 이렇게 후배 작가들이 선배의 문학 정신에 대해 존경과 애정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답신 같은 글들이기도 하다.

백수린 작가의 '언제나 해피엔딩' 속 주인공 민주는 스무 살 이후 자신이 살았던 삶이란 꿈꾸어왔던 것들을 조금씩 하향 조절하는 날들의 연속이라고 느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꿈을 잊어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극중 민주는 자신은 절대 늙어서 저렇게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될까 두려운 사람의 전형이라고 생각한 박 선생에게 무심코 자신의 불안한 속내를 내비친다. 이 시기만 지나면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냐고. 박선생은 말한다. 엔딩이 어떻든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 다음엔 다 괜찮아진다고. 영화관에서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만 여기, 지금의 온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목 그대로멜랑콜리해피엔딩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 스물 아홉 편의 짧은 이야기들 속에 담긴 생의 순간들을 통해 내 삶을 다시 한번 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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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노멀 - 역경을 인생의 기회로 바꾼 우리 이웃의 슈퍼맨들
멕 제이 지음, 김진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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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에게는 자기 나름의 인생 서막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태어난 곳은"이라는 서두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크립톤 행성을 떠나야 했던 슈퍼맨이나 거미에게 물린 스파이더맨처럼 아이들을 절박하고도 용감한 삶의 여정으로 이끄는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너무나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서 그 사건 이후로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고 삶이 어딘가 망가져 버린 느낌을 받게 된다.   p.44

 

이 책은 '역경을 인생의 기회로 바꾼 우리 이웃의 슈퍼맨들'이라는 부제처럼 불가항력적인 역경과 실패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인 멕 제이는 임상심리학자이자 교육자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20년 가까이 들어 왔고, 그러한 실제 상담 사례를 제시하면서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회복탄력성'을 일깨워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이란 무엇인가. 회복탄력성이란 시련이나 트라우마, 비극적인 사건 또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 앞에서도 잘 적응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심각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예상 밖의 능력이자 중대한 시련을 딛고도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분명 자기가 처한 상황에 적응을 잘 해냈고 여러 사람의 예상보다 더 유능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유는 회복탄력성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단순한 표현들과 통속적인 정의들이 이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알려주는 개인과 공인의 사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회복탄력성에 대한 개념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도 여러 슈퍼노멀은 슈퍼히어로와 닮은꼴을 보인다. 슈퍼히어로는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지만 대개 홀로 집으로 돌아온다. 슈퍼맨은 고층 건물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지만 자신과 로이스 레인과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클라크 켄트 사이의 삼각관계는 뛰어넘지 못한다. 원더우먼에게는 진실의 올가미가 있지만 슈퍼맨과 마찬가지로 스티브 트레버와 자신의 평상시 자아인 다이애나 프린스 사이의 삼각 구도 안에 갇혀 자기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배트맨은 수많은 연인을 거치지만 끊임없이 사랑에 실패한다.   p.426

 

이 책에서 저자는 실제 상담 사례들을 비롯해 스포츠 스타인 안드레 애거시, 팝아트 예술가 앤디 워홀,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세계적인 힙합 뮤지션 제이 지 등의 유명인들의 일화도 함께 소개하면서 슈퍼노멀들의 성공 전략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평범함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뜻의슈퍼노멀(supernormal)' 이라는 단어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처럼 어딘가 현실성이 없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슈퍼노멀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잇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도 슈퍼맨처럼 크나큰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슈퍼노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년기에 겪게 되는 시련은 평생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부모 혹은 어른들에게 성적 학대, 정서적 학대 내지는 가정 폭력을 경험한 경우도 있었고, 알코올중독자 부모를 둔 아이도 있었고,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형제자매 때문에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실제 상담 사례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어린 시절의 시련과 상처를 딛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까지 기어코 날아오른다. 하지만 과거에 경험한 시련의 기억이나 심적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으며,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슈퍼노멀들은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부딪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최악의 상황을 인생의 기회로 삼은슈퍼노멀들의 성공 전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TED 명강사이자 심리전문가 멕 제이가 제안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힘은 당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슈퍼노멀'을 만날 수 있게 해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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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산문집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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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을 선물로 받는 게 더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꽃이라든가, 초콜릿이라든가, 연필 같은 것. 남지 않는 것들. 그걸 영영 간직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것들. 그런 선물이라야 주고받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사물에 사연이 쌓여가서 추억이 사물보다 더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풍경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그 시절의 나는 여렸던 것임이 틀림없다. 실은 선물에 대한 부담이라기보다 나 자신의 여림에 대한 불만 쪽에 더 가까운 심사였을 것이다.   p.22

<마음 사전> <한글자 사전>으로 마음을 이루는 낱말 하나하나를 자신만의 시적 언어로 정의했던 김소연 시인의 신작 신문집이다. 시인은 기존의 산문집과 다르게 경험한 것들만 쓰겠다는 다짐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상을 자세히, 섬세한 시선으로 적어보고자 시작했고 오직 직접 만났거나 겪었던 일들만을 글로 옮겼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되었다. 생각하는 바와 주장하는 바가 아닌, 다만 실제로 경험한 일들만을 글로 쓰는 산문집은 어떤 느낌일까.

 

'나를 뺀 세상의 전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부터 마음에 와 닿았던 책이다. 시인은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내가 만난 모든 접촉면이 내가 받은 영향이며, 나의 입장이자 나의 사유'라고 말했다. 누구나 타인과 관계를 맺어 가면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화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성향도 달라지고, 취미와 생활 환경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환경이 달라지는 것에도 우리는 영향을 받고, 소소한 일상의 작은 것 하나도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모르는 동네의 골목을 구석구석 누빌 때 내가 누구인지를 잠깐 잊고 있었다. 얼마나 바빴는지, 당장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안중에 없었다. 매일, 하릴없이 산책이나 하면서 들꽃이나 꺾으면서 빵이나 사먹으면서, 길거리에서 서성이면서 살아왔던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유리병에 수돗물을 담아 쑥부쟁이를 꽂았다. 비좁은 마음속에 자그마한 자리가 생겨났다.   p.195

 

함께 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서 온 문자 한 통, 지인의 개인전 오프닝 행사에서 만난 다섯 살 아이의 말 한마디, 소설을 읽고, 시를 읽으며 소개하는 문장과 단상, 친구와 나누던 꿈 얘기, 압력밥솥에서 밥이 익기를 기다리며 들리는 소리,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 어린 시절 비밀기지였던 다락방에 대한 추억 등등... 소소하다면 소소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도 있지만, 누구의 일상에서나 쉽게 마주칠 법한 시인의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단어에 대한 예민하고 특별한 감각이 있는 저자라서 그런지, 문장들이 하나하나 콕콕 가슴에 와서 박힌다. 갈수록 개인주의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는 삭막한 세상에서, 누군가와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한 사유가 뭉클하고, 따뜻했다.

모든 글들이 다 좋았지만, 특히나 와 닿았던 것은 저자가 읽는 책들에 대한 사유였다.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하겠지만, 완벽하게 일상의 삶을 잊어 버리고 잠시 나마 허구의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이 독서의 목적이자 가치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잠자코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심연에 불쑥 물컹한 손을 집어넣었다가 뺀다.' 라고. 그렇게 '소설을 읽는다는 자의식을 놓고, 그냥 그 세계에 들어가 잠시 동안 무언가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인물이 되면서' 소설을 읽었다고. 그리하여 '잠에서 깨어난 듯 책을 덮고 났을 때에 나를 둘러싼 방 한 칸이 낯설어질 만큼 그 세계에서 살다 나온다'라고 말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행간의 여백에 담겨 있는 무엇까지 완벽하게 김소연 시인만이 쓸 수 있는 표현과 정서로 빼곡한 페이지들이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므로 완성되어간다'는 문장을 호흡 하나까지 모두 이해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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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스토리콜렉터 7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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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님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흉악 사건 피해자 시신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는 상궤를 한참 벗어났습니다. 시체 손상은 원한 때문에, 해체는 이상 심리로 인해, 혹은 운반하려고 그랬다면 납득이 가지만 이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두부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용해시키다니... 완전히 인간을 장난감으로 보고 있어요."

"내가 알기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생물이에요. 그 중에서도 개구리 남자라는 존재는 인격이 다를 겁니다....."    p.105

잔혹하게 훼손된 시체, 마치 어린아이가 쓴 듯 삐뚤빼뚤한 글씨의 쪽지, 마치 아이가 장난감 대신 시체를 가지고 논 듯한 느낌의 유아성에 기인하는 순수한 잔인함..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마치 개구리 가지고 놀 듯 엽기적인 살인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일명 '개구리 남자'가 돌아왔다! 전편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시리즈로 이야기가 이어질 거라는 생각은 못했기에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이야기는 오마에자키 교수의 집에서 일어나는 폭발 사건으로 시작된다. 오마에자키 교수가 전작에서 한노시 50음순 연쇄 살인 사건의 관계자였기 때문에, 와타세와 고테가와도 현장으로 향한다. 교수의 시신은 사방으로 흩어진 정도가 아니라 산산조각이 났고, 지난 사건에서 개구리 남자가 남겼던 범행성명서와 흡사한 메세지도 현장에서 발견이 된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얼마 전 퇴원만 도마 가쓰오로 그는 과거 오마에자키 교수와 이상적인 주치의와 환자 관계였다. 목격자도 없었고, 폭발물 파편으로 인해 증거 조사만으로도 시간이 좀 걸리는 상태였지만, 와타세는 기존 사건 과의 유사성을 인정한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시체 처리나 기호화 등 자신의 광기를 숨기려 하는 범인을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전 사건을 정확하게 좇는 모방범이라는 면에서는 완벽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과연 완벽한 모방범이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개구리 남자의 귀환인 것일까.

 

", 도마 가쓰오의 심리와 악의에 질려버렸다는 애기군."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이제 와서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와타세는 고테가와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니까 그런 짓을 하는 거야."   p.226

개구리 안에 폭죽을 넣어서 불을 붙여봤더니, 개구리가 불꽃놀이처럼 폭발했다. 뭐든지 녹인다고 하는 황산에 개구리를 넣어봤더니, 연기가 나고 개구리가 눈깜짝할 사이에 녹았다. 뭐든지 납작하게 만드는 전철은 굉장하다. 그래서 개구리를 선로에 떨어뜨려봤다.  등등.. 이번 작품에서도 개구리 남자의 잔혹한 살해 방법과 어린 아이가 쓴 듯한 유치하고 투박한 범행성명서는 여전 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단지 이름만으로 벌어지는 무자비한 연쇄 살인에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로 인해 혼란에 휩싸인다.

와타세 경부 시리즈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가 각각 별도로 있지만, '개구리 남자' 시리즈에서도 이들이 수사의 주체와 관계자로 등장해 캐릭터들의 매력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확실한 캐릭터를 여럿 가지고 있는 작가이고, 각각의 시리즈도 완성도 있고 재미있지만, 이렇게 캐릭터들이 전혀 다른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주고 있다. 전작에서 제기했던 문제인과연 심신상실자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는가’에 대한 주제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 지고 있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막힌 반전과 끝나지 않는 결말의 놀라움까지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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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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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망한 사람의 경우에 타살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그 적확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부검할 때 자살자와 사망 원인이 불명했던 경우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자살자를 왜 부검하는지 궁금해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타살의 의혹이 없는지 정확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나는 월요일마다 죽은 자들을 만나러 간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나는 죽어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p.27

10월의 어느 밤, 생후 11개월 된 아이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응급실로 급히 후송된다. 아이는 여러 검사를 거친 뒤에 경막하출혈로 진단이 되었는데, 담당 의사는 의아해했다. 넘어져 땅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벽에 머리를 굉장히 세게 박을 경우 생기는 경막하출혈은 키가 작은 어린 아이에게는 자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엄마는 눈 주위가 벌겋게 충혈된 채 말한다. 아까 오전에 보행기 없이 걷다가 넘어져서 울기는 했는데, 그것 말고는 어디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등의 사고는 없었다고. 머릿속 출혈을 제거하기 위해 응급 수술이 진행되었지만, 아이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며칠 후 사망했다. 이제 의사가 사인 란에 '병사'라고 적으면 그대로 장례가 진행되고, 아이의 미심쩍은 사망 원인에 대해선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뭔가 석연치가 않았고, 사인을 '외인사'로 적었다. 절차에 따라 병원 행정실에서 경찰에 신고했고, 검사는 부검을 지시했다. 엄마와 아빠는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부검은 진행되었고 추락 또는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경우로 보인다는 소견으로 아이 엄마를 취조해 자백을 받아 낸다. 어쩔 수 없는 결혼과 원하지 않는 아이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었다.

법의학자들은 아이의 시신을 검사할 경우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죽은 아이가 끝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증거 없는 살인에서도, 완벽하게 사고사로 보이는 시신에서도, 전혀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사건에서도 법의학자들은 숨겨진 죽음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법의학자는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이다. 그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늘 고민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법의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죽음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을 소개하며, 모호하고 두렵기만 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법의학자로서 특별히 죽음과 인연 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인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법의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죽음을 숙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래야 우리들 삶이 행복해지겠다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p.166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은 2017년 여름부터서가명강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다른 주제의 강의를 펼쳤으며, 매회 약 100여 명의 청중들은 명강의의 향연에 감동하고 열광했다. 이 배움의 현장을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교수이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유성호 교수의 교양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를 일반인들도 듣고 배울 수 있다는 것으로도 궁금증을 유발시키지만, 법의학자의 예리한 시선과 인문학적 통찰로 풀어낸 죽음 지침서라는 점에 있어서도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은 법의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서 시작해서, 실제 사건에 대한 사례를 통해 법의학이 진실을 밝히게 되는 과정을 들려주고, 법의학의 전문 지식 등도 포함해 죽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있다. 범죄를 포함한 죽음의 사회적 현상, 그리고 죽음의 역사적 맥락 및 인식의 변화, 현재 사회 병리학적 현상으로 여겨지는 사라 등의 문제와 의료 분쟁, 보험 사고 등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만나볼 수 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한다고.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이 책을 읽고 보니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의미가 깊어질 거라고 나 역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삶을 위해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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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02-0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엄청 기대됩니다. 요새 온라인 서점 핫한 책에 이 책 계속 올라오더라고요. 멋진 리뷰를 정성들인 사진과 함께 읽으니 더욱 독서욕구 자극받습니다.

피오나 2019-02-07 22:28   좋아요 0 | URL
ㅎㅎ 그죠? 저도 라인업을 보니 앞으로 이어질 서가명강 시리즈가 모두 궁금해지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