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했을 때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것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한혁섭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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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 동안이나 사람은, 더 정확히 말하면 남자는 여자를 성적으로 흥분시켜서 유혹하거나 혹사한 허리를 회복시키는 물질을 찾고 있다. 20세기 후반 정확히 최음제는 아니지만, 비아그라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장 유명한 최음제는 스패니쉬 플라이였다. 딱정벌레 날개로 만든 이 최음제는 로마 시대부터 피곤하거나 음탕한 사람이 남용하였다. 그 명성을 어떻게 지켰는지 모르겠지만, 미스터리에 쌓인 최음제 효과는 비뇨기의 자극 정도였으며, 구토, 설사, 영구적인 신장 손상에서 심장 부정맥, 사망까지 이르는 부작용이 있었다.   p.42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진실과 다른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가짜 과학은 그 시대의 아집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그러한 과거의 수상한 과학 이론을 추적해 우리가 한때 믿었던 진실 뒤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전혀 믿기 힘든 사실들을 과거의 사람들은 실제로 믿었던 과학 이론들은 다소 충격적인 부분도 있고, 실소를 머금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가장 의심스러운 가짜 과학 중 어떤 것은 최근에야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의학이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지금부터 백 년 뒤에 이 책과 비슷한 책이 쓰여진다면,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을 미래의 그들은 비웃게 될 지도 모르겠다.

두개골 측정으로 개인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골상학으로 시작되는 흥미로운 과학 이론들의 세계는 굉장히 놀랍고,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과거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적이 실제로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흥미로운 과학 이론들은 이렇다. 원숭이 고환으로 정력을 회복하고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지구에 비어있는 지하 공간이 있으며, 북극과 남극을 통해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코카인과 헤로인으로 많을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어 약으로 사용했으며, 담배로 인간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 화학의 바탕인 연금술에서는 모든 비금속은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여성의 오르가슴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빅토리아 시대 의사는 쉽게 화를 내는 강한 성격의 여성에게 생식기 마사지를 권장하기도 했다. 덕분에 의학적인 치료 목적으로 의료 자위행위를 돕는 의사들이 있었으며, 이 치료법은 결과적으로 성인용품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간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세기까지 수천 명의 여성이 남편 모르게 의사에게 반복적으로 자위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수상한 과학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아돌프 히틀러도 역시 지구 공동설을 지지하였다. 모든 신비한 것에 관심을 가진 극우 괴짜들의 모임인 툴레협회가 독일의 지원 단체로 가담하였다. 나중에 이 비밀스러운 협회에서 갑자기 나치가 생겼다. 툴레협회는 아주 옛날에 사라진 지배 종족의 발상지라고 생각한 티베트에 지하 세계의 출입구가 있다고 믿었다. 히틀러와 추종자 대부분이 이것을 사실이라고 믿었다.   p.126

이 책에 소개된 가짜 과학 중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것은 바로 잠재의식 메시지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영화관에서 있었던 비밀 실험으로 관객들에게 '콜라를 마셔라' '팝콘을 먹어라'는 플래시 이미지를 영화와 합쳐 편집된 영화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16주 동안 4 5천 명의 영화 관객에게 했던 이 실험으로 휴게실의 콜라와 팝콘 판매가 각각 18퍼센트, 57퍼센트 증가했다고 하는데, 이는 놀라운 광고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과연 그 실험의 결과과 과학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것일까.

사실 이는 일종의 정치적 음모와 사기 행각이었고, 이는 꽤 오래 계속 퍼져나갔다. 게다가 속기 쉬운 대중의 탐욕은 실제로 엄청난 시장의 힘이었기에, 이는 수면 학습법, 모차르트 효과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모차르트 음악과 듣는 사람의 지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결론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은 대중들에게 퍼져 수백만 명의 예비 엄마가 태아에게 긍정적인 메시지와 모차르트 음악을 함께 듣게 하기 위해 몰려들었으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아니냐는 생각부터 들게 하는, 그러나 우리가 한때 믿었던 충격적인 과학 이론의 세계는 마치 재미있는 역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 시대적인 배경과 당시의 상황으로 인해, 지금 보면 어리석고 이상해 보이는 이론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렇게 수상한 이론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과학 이론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탄생배경을 함께 살펴보고 있기에 과학 도서로서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왜 빅토리아 여왕이 주치의의 조언으로 아편을 복용했는지, 어떻게 세균설의 인정을 주저하다가 살인을 초래했는지, 왜 가톨릭 탐험가가 남미의 부족을 식인종이라는 소문을 만들어냈는지 등등 흥미진진한 가짜 과학 이론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게다가 몇몇 이론들은 여전히 오늘날까지 믿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또한, 그러한 가짜 과학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이론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어쩌면 당신도 믿고 싶은 거짓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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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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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을 '태어났다, 살았다, 죽었다'로 요약할 수 없듯이 신문에 난 몇 줄의 기사만으로는 일의 내막을 알 수 없다. 사건 기록은 수십, 수백 배나 두껍다. 공판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보면 기사의 행간으로 읽을 수 없는 구구한 사정과 복잡한 동기가 있어 몰래 울컥해지는 사건도 있는 법이다. 실제의 인생, 실제의 사건은 사건 기록보다 또 수십 배는 두꺼울 것이다. 그리고 법정에서 드러난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p.34

20대 초반의 남성이 열 살 가까이 연상인 여자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했다. 얼마 후 모텔 프런트에 여자가 사색이 되어 달려온다. 남자친구가 젤리를 먹다가 목에 걸려 숨을 못 쉰다고, 남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질식사로 사망한다. 남자의 가족들은 슬픔 속에 장례를 마치고 시신을 화장했는데, 사십구재를 앞둔 어느 날 한 장의 서류가 날아온다. 남자가 가입한 3억 원짜리 사망보험증서, 수익자는 엉뚱하게도 여자친구였다. 의혹을 느낀 남자의 가족은 수사를 요청했고, 검찰은 젤리가 목에 걸려 죽은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여자친구가 보험금을 노리고 남자친구의 숨을 틀어막아 죽였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살인죄로 구속기소되었다.

사건의 개요만 보더라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서도 숱한 보도가 되었던 실제 사건인 '산낙지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도진기 작가는 당시의 재판을 비난하거나 누구를 규탄하거나 현실의 결론을 바꾸려는 의도로 작품을 쓴 것이 아니므로, 소재도젤리로 바꾸었고, 당사자들의 성별도 바꾸었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그 사건과 이 작품의 사건을 동일시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허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도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1심에서는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시신을 부검하지 않고 화장했으므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였는데, 사실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이 사건은 재판부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더 이 작품이 궁금했다. 대체 이 사건의 배경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으며, 또한 법은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말이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하려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 민사재판은 두 사람이 싸우는 일이기에 한쪽이 상대방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증거를 갖고 있기만 하면 이긴다. 거칠게 말하면 51퍼센트의 증거로도 승소한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한 인간을 감방에 보낼까, 말까, 심지어는 교수대로 보낼까, 말까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 정도 증거로는 턱도 없다. 합리적인 선에서의 '의심'이 전혀 없는 수준까지 입증되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원칙이며,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p.131

이 사건의 경우 피고는 이미 다수의 범죄전력이 있는 신용불량자였고, 빚 독촉을 받던 중 보험금을 타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목격자도 없고, 영상 기록도 없고, 피고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증거를 떠나서라도, 보험수익자를 변경한 후 일주일 만에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가 사고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이 과연 직접적인 증거보다 범죄를 입증할 힘이 적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합리적 의심'이 무슨 뜻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이란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른다는 원칙에 근거,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 때문에 살인자를 그대로 사회로 내보내도 되는 것일까.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보험금을 노리고 계획살인을 한 게 분명한 정황이 가득한데, 법적으로는 유죄 심판에 필요한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결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작품은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끝내고 변호사가 된 작가 도진기가 처음으로 쓴 본격 법정물이다. 기존에 발표했던 그의 작품들이 추리소설,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이 작품에서는 의외의 범인이나 트릭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굉장히 흥미롭게 읽힌다. 거대한 사법 시스템과 법적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데다 피고인과 수사기관, 법원이 날 선 공방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부장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법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며, 판사 역시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편에 서고자 했던 인간적인 판사의 고뇌와 행동 덕분에 억울하고, 화가 나는 현실의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정의'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은 '법치'에 불과하고, 그 법치는 공정한 결론보다 공정한 절차를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나쁜 놈은 충분히 처벌되지 않고, 손해배상은 늘 부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판사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의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이고, 주인공 역시 '가상의 인물'이지만, 어쩐지 나는 도진기 작가가 부장판사로 재직 당시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도진기 작가가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더 많이 써주길, 독자로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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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8 - 에이 설마~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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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시리즈를 처음 만난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그리고 어느새 시리즈는 여덟 번째 이야기가 출간이 되었다. 고양이나 개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야 많지만, 사박사박 소리가 들리는 듯 담백한 느낌의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진 만화라 개인적으로 콩고양이 시리즈를 가장 좋아한다. 두 주인공 고양이는 이름도 무려 '팥알이' '콩알이'로 그 이름만큼이나 깜찍하고 귀엽다. 그리고 그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시바견 '두식이'는 시리즈 네 번째 작품에서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개와 고양이를 과연 한 집안에서 키울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는 우리의 편견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둘도 없는 단짝들이다.

자신을 개가 아니라 고양이로 알고 자라온 두식이는 등장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줬던 기억이 난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가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한참 인기였던 시기라 번역가님이 센스 있게 두식이에게 드라마 속 유시진 대위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 주셨는데... 그 특유의 말투는 이제 완전히 두식이의 성격과 닮아 있어 더 귀엽다. 사람 말을 죄다 알아듣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총명함을 자랑하다가도, 두 고양이 팥알이와 콩알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순진무구 두식이는 특별한 말투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너구리가 등장했었고, 일곱 번째 이야기에는 두식이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마성의 고양이가 등장했었다. 개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무서운 고양이 누님이라 개를 싫어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개의 만남이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수수께끼의 신원불명 회색 고양이는 콩고양이 콤비만 챙기고, 두식은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운 눈빛으로 달려들었다. 우리의 순딩이 두식이는 그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었는데, 이번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는 바로 그 무서운 그레이 언니가 주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레이의 진짜 이름과 대체 왜 그렇게 개를 싫어했는지에 대한 사연도 보여지며, 살짝 뭉클함도 안겨준다. 무엇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냥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마치 마법처럼 말이다.

 

 

 

이번 작품에 실린 에피소드는 특별히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았다. 회사에 가기 전에 팥알이, 콩알이를 쓰담쓰담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부러워 그 높고 비좁은 곳을 비집고 올라간 두식이도 너무 귀여웠고, 그레이의 비밀 외출을 따라간 두식이와의 에피소드도, 그리고 그레이가 떠난 후 남겨진 콩알이, 팥알이, 두식이가 그리워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두식이를 위해 비옷과 강아지용 장화를 사와 산책을 가는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대공감이었는데, 아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웃긴 에피소드였다. 거기에 더해 내복씨가 머리도 젖지 않게 하라고 삿갓을 두식이에게 씌워 주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배꼽 잡고 한참 웃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식을 하러 나가 집이 비어 있는 사이, 팥알이와 콩알이가 두식이를 이용해서 간식을 찾아내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마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마담 북슬과 함께 두식이의 다이어트도 시작되는데.. 간식은 절대 금지이고, 사료도 다이어트용으로 바꾸는데.. 과연 두식이와 마담 북슬은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누구나 가끔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좀 쉬고 싶게 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럴 때는 딱딱하고 머리 아픈 독서대신, 가볍고 유쾌하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독서가 제격이다. 팥알, 콩알, 두식이네 일상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분과 함께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콩고양이 시리즈는 여백이 많은 프레임에 둥둥 떠있는 짧은 대사와 간간이 미소 짓게 만들고, 또 그 틈틈이 뭉클하게 만들고, 그 와중에 지나간 추억도 떠오르게 만들어 준다.

오늘도 콩고양이네 집에는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여 버라이어티한 대가족의 알콩 달콩한 이야기가 계속 된다. 그저 소소하고 평범하게, 반려동물들과 집에서 함께 지내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쓱쓱 그려낸 필치가 너무도 심플하고 위트가 넘쳐 중독성 있게 페이지를 자꾸 펼쳐 보게 만들어주는 만화이기도 하다. 콩고양이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되길.. 벌써부터 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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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문신한 소녀
조던 하퍼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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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놈들이 여기 도착할 때쯤 우리는 없을 거다. 놈들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거란 말 꼭 전해." 아빠가 말했다.

"지금 총을 든 건 너니까 네 맘대로 해봐. 하지만 온 세상이 널 쫓고 있어. 네가 온 세상을 죽일 수는 없잖아. 그 남자가 말했다.   p.51

열한 살 소녀 폴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거의 절반 동안 아빠를 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문을 나오다 거기 우뚝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를 마주한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고, 강도이고, 감옥에 있어야 했다. 탈옥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의 아빠를 보며 폴리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생각하며, 공포에 얼어붙었다.

"아빠 말 잘 들어. 넌 나랑 같이 간다. 당장. 수선 피울 시간 없어."

도망치고 싶었고, 무서웠고,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폴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빠가 시킨 대로 따라간다. 낡은 차를 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모텔이었고, 아빠는 팔뚝에 파란 번개 문신을 한 남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이건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지금 아주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가 이 상황을 바로잡겠다고 말하며 나간다. 대체 이들 부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네이트는 감옥에 있을 때 범죄조직 아리안 스틸의 두목인 미치광이 크레이그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 대가로 크레이그는 그에게 사형 집행 영장을 내린다. 크레이그는 철통같은 경비가 유지되는 감방에서 살고 있었지만, 바깥 세상에는 그의 발과 눈이 되어주고, 손이 되어줄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하여 네이트와 그의 전부인, 그리고 딸이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고, 네이트는 전처인 애비스와 그의 새 남자가 시체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놈들이 아이를 쫓고 있을까?

네이트는 이제 자신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하나 아니면 죽어야 하나. 네이트는 자신이 파멸로 몰고 간 이 아이, 폴리를 구해낼 때까지는 살아 있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세상 끝까지 계속 도망쳐야 했다.

 

 

"강해지려면 먼저 약해지는 걸 느껴야 해." 네이트가 말했다.

"?"

"닉 삼촌이 예전에 자주 이렇게 말했어. 근육을 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근육의 힘이 다 풀리면서 스스로 약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밀어 붙여야 한다고. 인생의 이치가 대부분 그래. 시종일관 자신이 강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더 이상 강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야. "     p.143

계속 도망치는 것은 정답이 될 수 없었다. 세상 어디도 그들에게 안전한 곳은 없었으니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미치광이 크레이그가 사형 집행 명령을 철회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네이트가 선택한 것은 그들의 사업에 손해를 입히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폴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현금을 훔치고, 마약을 강탈한다. 아리안 스틸은 사업체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네이트는 그들이 휴전을 원할 때까지 계속 그들의 것을 훔칠 작정이었다. 네이트는 폴리에게 갱단들의 계급 체제를 알려주고, 운동을 시키고, 무기 사용법과 목 조르기 등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을 익히게 한다. 그래서 어린 딸과 아빠가 조직으로부터 도망다니는 추격 서사는 여타의 작품에서와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아이큐가 높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생활을 했던 열한 살 소녀는 강도 짓을 하며 쾌감을 느끼고,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딸에게 관심조차 없었던 아빠는 아이 대신 자신의 목숨으로 거래를 하겠다고 생각할 만큼 부성애를 깨닫게 된다. 이들 부녀는 쫓기는 입장이 아니라면 마치 가해자처럼 보일 정도로 당당하게 마약 창고를 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과 맞서 싸운다.

책을 읽는 내내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딸과 아빠가 위험에 빠져 있다는 설정과 세상 전체가 적이 되어 버린 그들에 대한 암흑 조직의 추격 스릴러라는 익숙한 서사가 뻔하지 않게 흘러 가는 전개도 흥미로웠고, 네이트와 폴리, 그리고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를 비롯해서 여러 등장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더욱 긴장감 넘치게 흘러간다는 점도 지루할 틈이 없도록 만들어 주었다. 암흑 조직과 관련된 각종 묘사와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장면들의 속도감 역시 이 작품을 마치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데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인 조던 하퍼가 인기 드라마의 작가이자 총괄 제작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흘러가는 스릴러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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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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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육체로 내 삶을 평생 경험한다. 성실하게 돈을 벌 것이며, 지난해 퇴직한 아내와 함께 딸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행복과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소소한 행복을 자주 맛보며 살고 싶다. 그런 기쁨을 주위에 나눠주고도 싶다. 하지만 늘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내 속에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궈진 마음을 온통 쏟아 부을 그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럴 때 나는 내 몸 이상이며 내 마음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p.38

생태보호연구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 진우는 어느 날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를 발견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우주를 꿈꿔왔던 진우는 우주인 선발에 지원하고 다섯 번의 관문 중에 3차에 통과한다. 4차 테스트를 하루 앞두고 진우는 팀장과의 면담에서 이번 연구 평가에서 그에게 미달이라는 평점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납득할 수 없다며 성과를 다시 점검해달라고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군항공학교에서의 스케줄은 닷새 동안 그곳에서 먹고 자며 우주복에 싸일 몸의 모든 것을 검사하는 과정이다. 대뇌 소뇌, 각막 수정체, 고막 달팽이관, 치아 목젖, 목뼈 척추, 췌장 비장, 소장 대장... 이 모든 걸 감싸주는 피부와 정신 상태까지도... 그 모든 것을 검사하는 시간 동안 몸이 견뎌내야만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주를 꿈꾸던 한 샐러리맨 연구원이 우주인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도전과 경쟁 그리고 우정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한 나라에서 뭐든 최초가 되려면 여러 능력이 필요하다. 용기나 돌파력 같은 것도. 지식보다는 지혜가 중요하고 지혜보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이진우와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경쟁자들은 이러한 희박한 확률을 뚫고 우주인 후보에 선발이 될 것인가. 과연 누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될 것인가.

 

 

사실은 여기 오지 않고 인생을 다르게 살 수도 있었는데.... 훨씬 평범하게. 축구하고 등산 가고 연구하고 딸애들 데리고 꽃놀이에 단풍 구경 다니고. 모스크바는 돈 모아서 구경 올 수도 있었는데. 아버지 모시고, 가가린센터도 하루 관광 코스로 넣어서. 하지만 이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지 않는가.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는 내가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p.251

이 작품 속에서 '일상의 중력'을 벗어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주인'이라는 실체를 잡기 어려운 꿈같은 목표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낯선 풍경들을 보여 준다. 우주에서 중력이 없어지고 기압도 낮아지면 몸 속에 있는 가스가 몸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만약 썩은 치아가 있다면 그 틈새로도 가스가 나와 통증 때문에 우주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신체 검사 과정에서는 어금니 하나하나까지 검사를 해야만 한다. 우주에 다녀오면 평소보다 저혈압이 돼서 어지럽게 마련인데, 그걸 잘 견디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혈압을 높였다가 갑자기 떨어뜨리는 테스트 과정도 있다. 혈압이 170이 되었다가 갑자기 70까지 떨어지게 되었을 때의 현기증과 메쓰꺼움으로 인해 실신하는 지원자들이 속출한다. 이렇게 기절할 만큼의 물리적인 상황 속에서 그저 정신력으로 버텨야만 하는 거라는 걸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거기다 이들은 우주로 가려고 더 높은 관문을 지날수록 이직이나 휴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4차 테스트 후 열 명이 러시아로 가서 5차를 치르고, 넷이 남으면 한 해 동안 정식교육을 받게 되는데, 정작 우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이다.

작가는 우주인 후보들과 함께별의 도시라고 불리는 즈뵤즈드니 고로도크까지 동행하여 우주인 선발 경쟁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우주인 선발 과정과 훈련 과정은 굉장히 리얼하고, 현장감있다. 일반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디테일한 묘사들이 매우 현실감 있게 전달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작가가 13년 동안 취재하고, 무려 35번의 개고를 거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이 꿈을 쫓다가 수렁에 빠지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평범한 샐러리맨들에게 작은 울림을 남겨줄 것 같다. 누구나 한때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어른이 되어 가면서 현실적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확률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을 접고 한때 뭔가를 동경했다는 사실마저 차츰 잊어 버리고 산다. 하지만,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고 싶을 만큼의 갈망을 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지금의 현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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