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1 - 치명적인 남자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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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 ‘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학교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방법으로. 나는 어느새 십 대에 봤던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고, 그 유치한 대사들은 내 현실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았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분명한 건, 그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온 뒤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P.8

테사는 이번에 엄마가 졸업하지 못한 모교에 입학한다. 한 살 연하 남자친구인 노아 역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는 모범생이다. 올해 같이 진학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자주 만나러 오겠다고, 내년에는 같은 학교에 진학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착한 룸메이트만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테사를 기다리고 있던 룸메이트는 밝은 다홍색 머리에 지나치게 두꺼운 아이라이너, 팔에는 총천연색 타투까지 한 모습의 스테프였다. 게다가 그들이 얼빠진 모습으로 당황해 있을 때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두 명의 남자애들. 눈썹과 입술에 피어싱이 달려 있는 금발 생머리의 남자와 짜증스러운 눈빛의 까칠한 매력을 가진 남자. 스테프는 그들과 인사를 하고 곧 방에서 나간다. 엄마는 저런 애들과 함께 방을 사용할 수는 없다고 당장 방을 옮기자고 소리치고,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소동을 피우고 싶지 않았던 테사는 엄마를 진정시키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테사의 대학 생활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2년 사귄 연하 남친과 키스 이상은 해본 적 없는 철벽 엄친딸 테사,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고 딸을 들볶았던 엄마 덕분에 그녀 역시 그렇게 살아 왔다. 이것저것 필요한 건 다 전화기로 알람을 맞추는 게 습관이라, 친구랑 함께 있다가도 알람이 울리면 공부하러 가는 식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면서 전전긍긍하지만, 모범적인 학생이자 의무를 다하는 착한 딸이다. 반면 테사의 삶을 뒤흔들게 되는 주인공 하딘은 헝클어진 갈색 머리에 신비로운 초록색 눈에 상반신을 뒤덮은 타투와 입술 피어싱을 하고, 건방지고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아빠가 대학 총장에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그런 아빠는 하딘의 대학 동창인 랜던의 엄마와 곧 결혼할 예정이다. 하딘의 아빠가 새 가족들과 호화로운 저택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을 때, 엄마는 생활비를 벌려고 일주일에 50시간을 뼈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하딘은 그런 아빠가 가족을 버렸다고 생각하며 싫어한다. 만나는 여자마다 건드리지만 연애는 절대 하지 않는 나쁜 남자 하딘, 조신하고 순수한 철벽 엄친딸 테사,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사람의 로맨스가 이제 시작된다.

 

"하딘, 뭘 원해? 또 키스를 허락한 나를 비웃고 싶은 거야? 여자들은 가질 수 없는 걸 원한다고? 난 더 이상 너한테 놀아나지 않을 거야. 내겐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친구가 있어. 난 남자친구를 두고 아무하고나 즐기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넌,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야. 너랑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게임은 다른 여자랑 해. 난 사절이야."

"내가 널 최악으로 만드는구나, 그렇지?"    p.106

이 작품은 연애소설의 고전『오만과 편견』의 부활이라 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상대를 가늠하고 계산하는요즘 연애를 그리지만, 주인공의 심리나 연애의 과정은 200년 전에 쓰인 소설 『오만과 편견』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작가인 안나 토드 역시 이 작품 속에서 제인 오스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완벽하게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로맨스 소설은 숱하게 많지만,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내숭없이 욕망에 충실한 사랑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낯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연애의 과정들은 뻔한 것 같으면서도 색다르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어느 순간 가슴 설레게 만들어 준다. 하딘을 만나 테사는 최악의 여자가 된다. 남자친구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키스를 허락하고, 하루종일 울면서 그를 미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를 원하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하딘은 테사를 만나 처음으로 좋은 남자가 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그 순간에는 물론 진심처럼 드렸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하딘은 여러 차례 테사를 질리게 하고, 힘들게 하고, 설레게 했다가 증오하게 만들었다가,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일주일 전에는 다시 만나면 테사의 인생을 망쳐버리겠다고 해 놓고선, 오늘은 너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다정한 소리를 해대니... 대체 이 남자의 진심은 뭘까.

저자인 안나 토드는 필명으로 이 작품을 왓패드에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왓패드는 캐나다 토론토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의 스토리텔링 커뮤니티로 작가와 독자를 포함한 월간 이용자수가 약 6천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사이트이다. 이 작품은 독자들의 입소문과 압도적인 스토리에 힘입어 왓패드 1억 뷰를 기록하며 정식 출판되었고,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되어 1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그리고 현재 파라마운트 사와 계약하여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테사와 하딘의 발칙한 현실 연애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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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
가오리.유카리 지음, 박선형 옮김, 하라다 스스무 감수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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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마음 안경을 닦는 가게'가 있었다. 뭔가로 고민하는 분, 스트레스를 받는 분, 기분이 울적한 분들은 마음 안경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게 앞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가게의 주인인 다람쥐 엘리스는 얼마 전까지 구두 닦는 가게를 운영했다. 구두를 닦는 동안 손님들은 엘리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오히려 편하게 말하게 되는 그런 심리 때문일 것이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엘리스는 마음 안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어서오세요, 마음 안경을 닦는 가게입니다.”

 

 

지금 어떤 일 때문에, 어떤 사람 때문에 힘들거나, 실수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불쑥불쑥 우울해지는 것은 사실 사건이나 타인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 우리의 '마음 안경'에 묵은 때가 껴서 그런 거라고. ‘마음 안경사건에서감정이 일어나는 동안 정보를 처리하는 심리 기제로 누구나 마음속에 지녔고, 저마다 다른 마음 안경을 가지고 있다. 이 마음 안경을 닦으면 인생이 한결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고 엘리스는 말한다. 이 책의 부제가 '마음속 때를 벗기는 마음 클리닝 에세이'인 이유가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일어나는 일에 따라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흐트러지는 것이다."

 

사건이 직접적으로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그 사람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마음 안경이 정보를 처리하는 결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생각을 바꾸면 쓸데없는 고민이 사라진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정해진다는 것은 너무도 쉽게 공감할 수밖에 없어서,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있는 마음 안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정의 묵은 때를 만들어버리곤 한다. 일반적인 상식이나 가치관에 맞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더하게 되면서 일종의 집착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상황에도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 모두에게 미움을 받으면 안 된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 한다. 절대로 타인 앞에서 창피를 당하면 안 된다. 상황이나 환경은 항상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등등.. 그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왔던 것들이 묵은 때가 되어 우리의 마음 안경 렌즈를 어둡게 만들고 만다. 불필요하게 고민에 빠지게 하고, 쓸데없이 괴롭히게 되는 원인이 바로 이러한 것들 때문이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마음 안경 렌즈는 스스로 닦을 수 있다는 것. 이 책 속 엘리스는 마음 안경의 묵은 때를 닦아 내는 방법을 6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것은 생각보다 무척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 끈기 있게 지속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자 가오리와 유카리 자매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앨버트 엘리스의 임상심리학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앨버트 엘리스는 수많은 임상경험을 통해 사고의 틀을 바꾸어 합리적인 신념을 갖게 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문제를 치료할 수 있다고, 수동적으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의 기존의 정신분석과 달리 내담자에게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는 치료법으로 정신분석에서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책은 다람쥐 캐릭터 엘리스를 통해서 앨버트 엘리스가 창시한 REBT(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심리 치료를 받는 듯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제목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어' 이지만,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살자고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분들, 스트레스로 인해 지쳐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하고,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감정이 드는 빈도수를 줄어들게 하는 '마음 클리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도 평온함을 느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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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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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코로에게는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사나다 미오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주세요.'

비 냄새를 비웃은 그 애가 고코로 앞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소원이 고코로의 등을 밀기라도 하는 양, 고코로는 양손을 거울 표면에 대고 마치 성문을 밀어젖히듯이 힘껏 밀었다.   p.81

중학교 1학년인 고코로는 입학한 첫 달인 4월만 학교를 가고 그 뒤로는 가지 않고 있다. 등교거부아들을 위한 마음의 교실이라는 스쿨에도 가기로 했다가 아침이면 배가 아파 가질 못한다. 학급의 중심인 미오리네 그룹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부터 고코로는 학교가 싫어 졌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뿐만 아니라 아예 집 밖에도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매일 방에서 텔레비전만 틀어 놓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방에 있던 전신거울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싶어 손을 뻗자 그대로 거울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만다. 그곳은 마치 서양 동화에서나 볼 법한 웅장한 성문이 달려있는 성이었다. 늑대 가면을 한 어린 소녀가 어안이 벙벙해있는 고코로에게 말한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 성에 초대받으셨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성으로 들어오게 된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늑대가면의 소녀는 성의 규칙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부터 내년 3월까지 이 성 안에서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면, 그 한 사람은 원하는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성은 오직 그 기간 동안만 열려 있고, 기간 동안 열쇠를 찾아내지 못하면 열쇠는 소멸, 그 안에 누군가 열쇠를 찾아 소원을 이루면 성은 닫힌다. 매일 성이 열리는 것은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이며, 이후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 후까지 성에 남아 있으면 늑대에게 잡아 먹힌다고 한다. 추리닝 차림의 얼짱 남자아이, 포니테일의 똑 부러진 여자아이, 안경을 낀 성우 목소리의 여자아이, 게임기를 만지작대는 건방진 남자아이, 주근깨투성이의 차분한 남자아이, 조금 살찌고 마음 약해 보이는 남자 아이, 그리고 고코로. 이들은 대체 왜 이곳에 불려온 걸까.

 

"기껏해야 학굔데 말이지."

"기껏해야 학교?"

".'

고코로는 놀라운 그 말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교는 자신의 전부였기 때문에 가는 것도 안 가는 것도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도저히 '기껏해야 학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p.480

영미권의 소설이었다면, 이러한 초기 설정 이후 이야기는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곱 명의 아이들 간의 서바이벌로 진행될 것이다. 소원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소원을 이루는 자도 단 한 명뿐. 게다가 어떤 이유로 불려온 지 알 수 없는 너무도 다른 개성과 스타일을 소유한 일곱 명의 아이들이 모였으니 자연스레 경쟁 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츠지무라 미즈키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아마도 저자가 교육학을 전공했고, '일 년 내내 매일 즐겁게 학교에 가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가야 하는 곳이 자신을 벼랑으로 내몰고 목숨까지 끊고 싶을 정도의 마음이 들게 만든다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등교거부 학생을 바라 본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 혹은 게으르고 꾀병을 일삼는 무기력한 사람 내지는 사회 부적응자, 낙오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츠지무라 미즈키는 그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본다. 학교가 싫은 사람은 싫어해도 괜찮다고. 죽을 만큼 학교에 가는 것이 힘들다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 쯤은 내가 속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누구에게 기댈 수도 없고, 타인에게 상처 받고, 마음속으로는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고립되는 듯한 느낌도 들고, 지독하게 외로울 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 주고, 이해해주고, 나와 비슷한 상처를 경험해 봤던 이가 공감해주고, 마음을 다독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교 거부 중인 현실과 거울 속 세계인 환상을 넘나 들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바로 그런 판타지를 따뜻하고 뭉클하게 그려내고 있다. 판타지스러운 설정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또한 너무도 세심하게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내어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거울 속 세계의 정체, 그리고 과연 누가 소원의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 뿐만 아니라 왜 하필 일곱 명의 학생들이 선택된 것인지, 그들 각각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고코로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로서도 너무 매혹적인 작품이고, 우리 모두 한 때 겪었던 시기를 거쳐가는 한 소녀의 성장 소설로도 너무나 훌륭하다. 특히나 후반부에 가서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는 정말 왈칵 눈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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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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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목사님이 화재 현장에서 제대로 빠져 나오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금식 탓이 클 거예요. 장로님 말씀대로 목사님은 그날부터 계속 금식하면서 기도했으니까요. 밤늦게까지 교회에 머무르는 날도 많았고.... 주일예배 설교할 때도 보니까 얼굴이 거무튀튀하고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좀 조마조마했거든요. 저러다가 쓰러지고 말지, 저러다가 큰 병 나고 말지... 제가 그만두시라고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 화재가 나버린 거예요.  P.61

한적한 시골 마을 목양면의 한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여전히 화재가 발생한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이야기는 화재의 원인을 추리하는 마을 사람들 각각의 증언을 통해서 진행된다. 다들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 주관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들과 경험한 일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거라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 화재는 인위적인 사고로 보이고, 누군가 일부러 그랬다면 과연 누가 방화 사건을 저지른 것일까. 열두 명의 서술자들은 마치 경찰에게 취조를 당해 자백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결국 화재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만, 이 소설의 미스터리는 방화를 누가 일으켰는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번 화재로 사망한 이들 중에 지하 1층 교육관에 혼자 있었던 최요한 목사도 있었다. 그는 이 교회를 세운 최근직 장로의 아들이다. 그리고 최근직 장로는 젊은 시절 사고로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극도의 절망 속에 스스로 생명을 놓을 결심을 했으나 하나님을 만난 이후 제2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누군가는 바로 그 최요한 목사가 스스로 불을 냈다고 하고, 누군가는 당시 금식 중이어서 화재 현장에서 제대로 빠져 나오지 못했을 뿐이라고, 누군가는 그가 모범생 스타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혼자 속으로 삼키고 기도하는 그런 성격이라고, 또 다른 이는 목사를 그 새끼라 부르며 애 엄마에게 푸념을 늘어 놓으며 자신의 언니에게 수작을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목양면 방화 사건의 숨겨진 전말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 목사가 그런 거라죠? 그 새끼가 불낸 거라죠? 내가 그 새끼가 무슨 큰 사고 칠 거 같아서 불안 불안했는데.... 지난달에도 언니한테 이사가자고 했는데... 씨발, 추석만 지나면 알아보려고 했는데... 좆같은 새끼... 죽으려면 지혼자 뒤질 것이지....

진정이 안 되니까 이러는 거 아니에요.... 뭘 아직 몰라요? 조사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요? 불이 거기에서부터 난 거라는데.... 어후, 나 진짜 속에서 열불이 뻗쳐서.... 진짜로 막 여기가, 내 가슴이, 막 다 타버릴 거 같다구요!    P.65~66

이번 이기호 작가의 신작에는 '욥기 43'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기호 작가는 꽤 오래 전부터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읽은 구약 속 욥은, 자신의 자식들이 고통 속에서 죽은 뒤에도 여호화의 이름을 찬송하는 이상한 아버지였기에, 젊었을 때도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된 후에도 여러 번 읽었지만 좀처럼 욥이라는 인물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전체 42장으로 이루어진 성경 「욥기」의 번외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욥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과연 그는 자식을 두 번이나 잃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하나님의 뒤로 숨어버린 현실의 욥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이 소설은 총 열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은 모두 다른 열두 명의 서술자가 등장하여 방화 사건의 원인에 대해 추리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열두 명의 증언자 중 하나로 하나님을 세우고, 신성이 아닌 하나님의 인성을 드러내며 절대 신의 존재를 희화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하여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기호 특유의 유쾌함이 종교를 잘 모르는 이들도 술술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들고 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그 다섯 번째 작품은 이기호 작가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이다.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편혜영 작가를 시작으로 박형서, 김경욱, 윤성희 작가에 이어 이기호 작가의 작품까지 출간이 되었다. 이 시리즈는 매월 25일 출간되는 월간 핀이기도 한데, 이후에 이어질 작가들의 라인업 또한 매우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정이현, 정용준, 김금희, 김성중, 손보미 등...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기도 해서 핀시리즈로 만나볼 그들의 작품이 손꼽아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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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빵 1
보담 글.그림 / 재미주의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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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 함께은행 왼쪽 골목으로 들어와서 빨간 벽돌집을 지나면 꽃집이 하나 있어요.

꽃집 왼편으로 파란 대문이 보일 때가지 걸어오면 근방으로 은혜미용실이 나오죠.

그곳 2층에 '옥탑빵'이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옥탑빵입니다.

얼마 전에 그야말로 '인생 몽블랑'이라고 외치고 싶었던,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 디저트 가게에 아주 우연히 갔었다. 원래 그날 일정이던 장소에 갑자기 못 가게 되어서, 거기까지 간 김에 근처에 있는 다른 곳을 찾아보다 무심코 발견한 곳이었다. 골목 골목을 지나 주택가 안에 있는, 간판도 제대로 달려 있지 않아서 지나갔다 되돌아 오게 만들었던 가게였는데, 그 소박한 외관과는 달리 그곳에 있던 디저트의 수준은 놀라웠다. 아마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옥탑빵' 역시 그런 케이크 맛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면 어디서 밥을 먹을까. 보다 어디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을까.를 더 고민한다. 공들여 잘 만든,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예쁜 디저트들을 먹는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고민과 시름을 모두 다 잊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받게 되는 작지만 달콤한 위로이기도 하고 말이다. 보담 작가의 <옥탑빵>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뭉클한 작품이다.

이 책은 다음 랭킹전 1위에 빛나는 웹툰 <옥탑빵>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저자 역시 극중 지영이처럼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2년 전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빵집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기에, 꿈꾸던 빵집으로 그림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렇게 <옥탑빵>이라는 작품이 나왔다고 한다. 저자가 빵을 좋아하는 만큼 심플한 그림 속에서도 포근한 빵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지영은 옥탑빵을 열기 전 작은 회사에서 일할 때 퇴근 후 사 먹던 케이크 한 조각이 소소한 행복이었다. 빡빡한 업무에 지쳐 집에 가는 길에 씻을 힘도 없다, 눈 감았다 뜨면 집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남아 있는 케이크를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그 날을 버틸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옥탑빵을 연 지금, 자신의 그랬던 마음을 담아 '오늘의 케이크'를 만든다. 계절과 재료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날의 기분이나 먹고 싶은 케이크로 매일매일 새로운 '오늘의 케이크'를 만든다.

인생에 답이 어디 있어. 그냥 각자의 삶을 사는 거지.

사는데 정해진 답은 없잖아.

그러니까 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p.95

누군가는 담백한 통밀빵을 좋아하고, 누구는 달콤한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고, 또 누구는 향긋한 얼그레이크를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빵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누구나 입맛이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르다. 그러니 인생엔 정해진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물론 괜찮아, 잘하고 있다. 스스로 위로하다가도, 애써 외면하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되고, 다독이던 마음마저 지치게 마련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달콤한 케이크이다. 이렇게 맛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싶은 생각이 들만큼 그렇게 잘 만든 케이크. 고소한 빵 냄새, 향긋한 커피 향, 신선한 우유,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크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견디게 만들어 준다.

 

서른 셋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작은 빵집을 차린 지영,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점점 꿈은 멀어지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급급한 혜수, 6년이라는 긴 시간의 연애 때문에 질질 끌려온 은혜... 과감한 결정을 하더라도, 주어진 현실 안에서 어떻게든 버틸 방법을 찾더라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더라도... 누구의 선택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심이 매 순간 들더라도, 자신의 선택에 맞는 책임을 질 수 있는 건 오로지 스스로밖에 없다. 그러니 남들이 하는 말보다는 자신이 하는 말에 더 귀 기울여 보자. 그래야 힘들어도 웃는 날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만화 속 옥탑빵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꼭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꿈과 현실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올 때, 그럴 때 당신만의 옥탑빵을 찾아 보자. 빵 냄새가 솔솔 풍기는 듯한 따뜻한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잠시 쉬어가자. 당신은 지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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