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도서관 웅진 모두의 그림책 12
다니엘라 자글렌카 테라치니 지음,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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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모두의 그림책 12권은 나만의 미니어처 서재를 만들 수 있는 <나의 작은 도서관>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서재를 가지고 싶다는 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원하는 대로 모두 구입할 수 없어서, 혹은 그 많은 책들을 정리할 공간을 마련할 수 없어서 서재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여기, 그런 이들의 로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책이 있다.

 

고풍스러운 패턴의 아름다운 상자를 열면 아담한 방이 나타난다. 고운 햇살이 드는 창, 고풍스러운 비취색 벽지, 맨발로 걷고 싶어지는 결 좋은 나뭇바닥으로 꾸며진 그곳은 바로 '작은 도서관'이다. 그리고 그 도서관은 내가 직접 만들고 꾸미는 대로 나만의 도서관이 된다.

손끝으로 오리고, 접고, 붙이고, 꾸며 완성될 30권의 작은 책 만들기는 여느 DIY들과는 다르게 너무 쉽고, 간단하게 할 수 있다. 가위랑 풀만 있으면 되고, 너무 단순한 방법이라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쉽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쉽지만 시간은 꽤 걸린다. 무려 30권이나 되는 책을 일일이 자르고, 접고, 붙여서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만드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

 

30권의 책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샤를 페로의 <빨간 모자>,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 에드워드 리어의 <올빼미와 고양이>, 루이스 캐럴의 <재버워키> 등 명작 동화와 <식물 도감>, <열두 별자리>, <세계지도>, <상상의 동물 사전>, <조류 도감> 등의 흥미로운 정보들이 담겨 있는 책, 그리고 열 권의 나만의 책이다. 

 

<내가 쓴 이기한 이야기>, <작고 소중한 나의 보물들>, <내가 쓴 모험 이야기>, <나의 일주일>, <나만의 무늬 그리기 책>, <우리 가족 앨범> 등 내용이 비어 있어서 직접 이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재미있는 사진을 잘라 붙여서 완성할 수 있는 나만의 책들이 있어 더욱 흥미로운 서재가 완성된다.

완성된 미니어처 책들은 생각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게다가 미니어처라고 해서 내지를 대충 만들지 않고, 각각 표지에 맞는 고급스러운 패턴의 속지와 본문의 내용들 또한 실제로 읽을 수 있는 크기의 글자와 내용에 맞는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지도 이미지도 멋졌고, 동화 속에 나오는 장면들을 그린 일러스트도 굉장히 멋지다.

 

짜잔. 그렇게 해서 완성된 나만의 작은 도서관이다. 핑크색 상자를 열고 바닥에 세우면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도서관이 나타난다. 게다가 대부분의 미니어처들이 만들때는 재미있고, 완성하면 뿌듯하지만, 막상 보관이 애매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은 보관 방법도 훌륭하다. 독서가 끝나면 상자를 다시 눕혀서 만든 책과 책꽂이를 넣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 그대로 상자 채로 책처럼 책꽂이에 세워서 보관도 가능하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언제든 펼쳐서 볼 수 있는 나만의 도서관이라는 비밀 공간이 생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이, 어떤 대상을 사랑하면 소유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책을 수집하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이란 얘기다. 나 역시 나날이 늘어나 네 벽을 완전히 둘러 방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책꽂이들의 틈새에서 매일 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은 책들이 자가증식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들이 늘어나고 있어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나의 서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물론 책등의 컬러 별로, 시리즈 별로, 출판사 별로.. 보기 좋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완벽한 서재의 모습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뒤죽박죽 바닥까지 쌓여 있는 책들의 숲이지만 말이다.

 

<나의 작은 도서관>은 책 한 권이 주는 수만 가지의 즐거움을 감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나처럼 책을 수집하고, 읽고, 책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만의 비밀 서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추천한다. 내 손으로 직접 책을 짓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이 체험은 읽기의 대상을 넘어 감각의 대상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확장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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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파리
데이비드 다우니 지음, 김수진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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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살롱입니다." 관장이 설명했다. "그리고 노디에가 기대어 서 있었던 벽난로가 바로 저기지요."

그 순간, 밖에서 들리던 자동차 소리가 귀에서 멀어져 갔다. 잠시 시간의 흐름이 멈추었다. 나는 노디에가 살았던 시절 그와 함께 했던 그림과 책, 물건들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기억과 먼지가 켜켜이 쌓인 비옥한 흙냄새가 나는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랬더니 어느 날 저녁 살롱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한 뒤마의 글이 떠올랐다.    p.59

파리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약혼녀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온 할리우드의 작가인 주인공이 어느 밤 자정에 파리의 골목길을 헤매다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와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 영화는 그야말로 파리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설레이는 작품이었다. 불꺼진 상점들 너머 길을 잃은 자정이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를 발견한다는 낭만적인 설정도, 위대한 작가들이 쉼쉬는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호사스러운 공상도 너무 매혹적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헤밍웨이가 불쑥당신은 어떤 소설을 쓰지? 문장은 간결해야 해하고 조언해주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가 쓴 글을 평가해준준다니,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 꿈꿀 달콤한 상상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리라는 도시는 이 영화에서처럼 '매일 밤 12시가 되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1920년대행 자동차'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설레이는 판타지가 진짜 벌어질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다우니는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매력의 원천에는 물리적 아름다움이나 고급스러운 삶뿐만 아니라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역사와 여행과 회고록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저자가 파리로 건너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파리와 파리의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탐색에 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말은 잊기 바란다. 그리고 한밤중 대신 새벽에 몽마르트르를 가로질러 산책해보기 바란다. 마녀가 출몰할 것 같은 이 시간이면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장소들은 텅텅 비어 있다. 이제 저속하고 시대착오적인 것들 대신 마법처럼 역사 속 인물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장밋빛 불빛 속에서 마르스 신은 모딜리아니가 긴 목을 지닌 한 연인과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거투르드스타인은 전신으로 받은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바토 라부아르에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정신 없는 작업실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p.421

푸치니의 오페라, 플로베르와 빅토르 위고의 소설,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나다르와 브라사이, 드와즈노,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속에는 낭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를 본 사람들이 파리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파리를 낭만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낭만의 토대이자 뿌리가 되는 것들, 정말로 중요하지만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거대하고도 어둡고 비밀스런 것들, 파리와 파리지앵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선과 다름없는 것들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센 강변과 생 마르탱 운하, 중세풍의 거리, 멋지고 오래된 건물들 모두 하룻밤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뚝딱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노래와 와인, 장미로 생기가 도는 완벽한 도시의 밤 풍경은 섬세하고도 세심하게 계획해서 만들어낸 환영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의 매력에 빠져 이주해온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가 읽어내는 빅토리 위고, 조르주 상드, 샤를 보들레르, 오노레 드 발자크, 펠릭스 나다르 등 위대한 낭만주의자들의 삶과 사랑은 대단히 흥미롭게 들려진다. 파리라는 도시의 세속적이고 낭만적인 곳을 찾아 순례를 하며 세계적인 문학가, 예술가들이 깃들어 있던 곳들을 직접 찾아가보고 감상하고 탐구하고 그들의 사랑과 인생, 해프닝,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여정은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100여 컷의 역사적이거나 현대적인 사진이나 스케치, 그림들은 우리가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 내는데 더 생동감을 부여한다.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파리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면 이 책으로 인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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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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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외는 왕족뿐이다. 더불어 정부는 안락사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할 방침이다. 대상자가 그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p.9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고 하는 장례 풍습으로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다. 설화로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늙은 부모를 산에다 버리는 풍습을  풍습과 관련된 설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다. 일본에도 '우바스테야마'라는 이름으로 전해졌고 말이다. 굳이 인간의 도리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내 상식으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싶지만, 어이없게도 '고려장'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노부모를 해외 여행지에 버리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며 매년 증가하는 노인 학대에 대한 뉴스가 실제로 있었으니 말이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 싶어 씁쓸했지만, 나의 부모도 점점 나이가 들테고, 나 역시 언젠가는 노인이 될테니 오싹해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70세 사망법안'이라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인한 문제는 많은 작품에서도 다루어온 소재이지만, 이 작품 만큼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적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극중 정부는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와 복지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고,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 인구는 충당되지 않는 사회적 악순환의 고리를 일거에 끊기 위한 대체 요법으로 '70세 사망법안'을 내놓았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의 파탄이 일시에 해소된다고는 하지만, 명백한 인권친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이 법안은 2년 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까 법안이 시행되는 2년 후면, 70세 이상이 되는 노인들은 전원 죽어야 한다는 건데... 그게 현실이라면 너무도 잔인한 일이지 않을까. 가키야 미우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지극히 평범한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냐. 아빠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좀 편해지고 싶다. 내 시간도 필요하고."

"아빠, 그거 잘못된 생각이에요. 우리 세대는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그러니까 아빠도 죽을 때까지 일해요."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는 아버지를 보고 이번에야말로 개과천선했나 보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사람이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p.350

 

침대에 누워 운신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수발을 든 지 이미 십삼 년째,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며느리 도요코에게 70세 사망법안은 한 줄기 희망이 된다. 도요코가 쉰다섯이니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15, 남편은 쉰여덟이니 앞으로 12, 시어머니는 여든넷이니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2. 시어머니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앞으로 2년 후를 상상만 해도 해방감에 도요코는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은 주말에도 전혀 집안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좋은 대학에 멋진 직장을 다녔지만 인간관계로 인해 회사를 그만둔 지 삼 년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아들은 방에만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있었다. 집을 나가 혼자 살고 있는 딸 역시 엄마를 도와 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가족들을 보살폈지만 아무도 그녀의 수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늘 그녀에게 고약하게 굴고, 남편은 집에 있는 날에도 피곤하다며 늦잠만 자고, 딸은 집을 떠나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아들은 2층에서 좀처럼 내려 오지 않고, 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들의 이해와 도움이 없는 가운데 홀로 수발에 지쳐가는 노인 돌봄 문제는 실제 현실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극중 도요코는 급기야 집을 나가기에 이른다. 그녀를 가출에 이르게 한 그 모든 상황들이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져 있어 안타깝고, 공감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도요코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그리지 않고, 각자의 입장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 흥미로웠다. 시어머니 기쿠노는 혹시 자신이 부르지 않으면 며느리가 영원히 오지 않는 건 아닐까, 자신이 여기 누워 있다 죽어도 모르지 않을까. 불안했고, 아들인 마사키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다가도 이름 있는 회사가 아니라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딸인 모모카는 어쩌다 노인 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노인들을 돌보면서 비로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70세 사망법안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반가운 소식으로, 누군가에게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로, 누군가에게는 열심히 살아왔던 인생 자체를 무시당한다는 처사로 다가오게 된다.

사람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에서 시작된 이야기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실재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야 찾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다 같이 조금 더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작가의 시선 또한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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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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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제가 사직을 결심한 것은 마나미의 죽음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만약 마나미의 죽음이 정말 사고였다면,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도, 그리고 제가 저지른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도 교사직을 계속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직하는가?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p.28

"내 딸을 죽인 사람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과 함께 범인인 열세 살의 중학생들에게 믿을 수 없는 가혹한 복수를 실행하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0년 전에 읽었지만, 아직도 생생할 정도로 당시 인상적이었던, 미나토 가나에의 강렬한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번에 한국어판 출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세심하게 번역을 다듬고, 세련된 디자인과 한결 가벼운 장정으로 독서의 맛을 배가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이었다. 여교사 유코는 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퇴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1학년 B반 여러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마지막 학생이라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그녀는 딸 마나미를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로 잃었다. 미혼모로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유아원에 다니는 마나미를 학교에 잠시 데려다 두곤 했었는데, 어쩌다 그런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나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시작된 이야기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이어진다. 마나미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자신의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다고 밝힌 것이다. 범인이 바로 우리 반에 있다는 말에 학생들은 술렁대지만, 유코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는 범인인 학생들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한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준비한 복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충격적인 복수였다.

 

살인이 범죄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체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물체가 소멸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p.223

충격적인 교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각 장 별로 다른 화자가 등장해 일인칭 고백체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피해자와 가족들, 가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사람들. 모든 화자들이 자신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기에, 그 과정은 매우 잔혹하고 불쾌하고, 그러면서도 슬프다.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가해자와 피해자를 비롯해서 관계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매 장마다 충격적인 전개로 독자들을 당황시킨다. 자식이 살해당했다면 경찰에 진상을 알리고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어른의 의무이지만,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로서 범인들을 죽여버리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 아닐까. 더구나 범인이 열세 살 어린 소년이라면, 그럼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일까.

얼마 전에 자신의 자녀가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한 교사가 가해자로 의심되는 학생을 3년간 수차례 괴롭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교사 A씨는 자신의 아이를 때리고 왕따 시킨 10 B군을 위협하고, 그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의심해 학교와 경찰 등에 신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서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나왔고, 경찰에서도 불처분 결정이 나왔다고. 그렇다면 부모인 교사 A씨가 자신의 자녀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재판부는 피고인이 현직 교사이면서도 자녀의 입장만 생각하고 B군도 보호받아야 할 아동이라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 행동 때문에 B군이 입은 정신적 고통이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과연 가해 학생이 스트레스로 응급실행을 한 것이 아동학대로 벌금형을 받아야 하는 일일까. 역시나 가해자의 인권만 중시하는 사법부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물론 기사에서 보여지는 사실이 전부는 아닐 테지만 말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교사로서의 윤리보다 아이를 잃은 한 부모로서의 분노와 절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지만, 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무책임한 청소년 범죄와 그것을 처벌할 수 없는 제도적 허점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면 아마도 더욱 그럴 것이다. 소년 범죄, 등교거부, 왕따, 사적복수, 에이즈, 미혼모, 존속살해 등 어느 작품보다 충격적인 소재로 인해 편히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분명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단히 잘 쓰인 문제작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0년 만에 다시 읽어도 여전히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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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2 - 이게 사랑일까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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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넌 날 미치게 만들어. 글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으로 만든다고! 널 사랑하냐고? 그렇게 묻는 그 뻔뻔함은 대체 뭐야? 그딴 걸 왜 물어봐? 내가 어쩌다가 한 번 말했다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이미 말했잖아. 근데 왜 또 물어보는데? 거절당하는 걸 즐기는 모양이지? 그래서 내 주위에서 빙빙 도는 거잖아, 아니야?"  p.60

이 작품은 내숭없이 욕망에 충실한 사랑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는, 가장 현대적인 모습의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낯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연애의 과정들은 뻔한 것 같으면서도 색다르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어느 순간 가슴 설레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1권을 덮자 마자 이어지는 2권의 내용이 너무도 궁금해졌다. 사실 2권으로 완간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페이지의 3권으로 이어진다는 문구에 실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사와 하딘의 연애 스토리는 너무도 흥미진진해서.. 3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이어지더라도 계속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

전편에서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인 테사의 파란만장한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었다. 2년 사귄 연하 남친과 키스 이상은 해본 적 없는 철벽 엄친딸이었던 그녀가 헝클어진 갈색 머리에 상반신을 뒤덮은 타투와 입술 피어싱을 한 건방지고 비밀스러운 남자 하딘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이런 모습이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테사의 행동은 스스로를 당황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딘은 점점 더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진다. 하지만 하딘은 만나는 여자마다 건드리지만 연애는 절대 하지 않는 나쁜 남자였고, 테사는 조신하고 순수하고 모범적인 여자였다. 애초에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남녀가 티격태격하면서 조금씩 로맨스를 쌓아 가는 과정은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게 순식간에 닥쳤다. 이해가 잘 안 된다.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과 친해지려 내가 쏟아 부었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나는 이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하딘은 왜 저기 서 있는 거야? 무슨 일이야?  p.347~348

2권에서는 대학 총장인 하딘의 아빠가 랜던의 엄마와 결혼을 하게 되고, 집에 얼굴도 잘 비추지 않던 하딘은 테사 덕분에 부모님의 결혼식에 참석도 하고, 집에서 자고 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 엄마의 착한 딸이었던 테사는 남자친구 노아와 헤어지고, 하딘과 함께 하기 위해 기숙사를 나오게 되면서 엄마와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다. 결국 테사의 엄마는 하딘을 계속 만난다면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학비며 기숙사 비용도 전혀 지원하지 않겠다고 딸을 협박하기에 이르고, 테사는 엄마가 지금 내가 행복해지려는 걸 막고 있다고, 내 일은 알아서 할 테니 참견하지 말라고 맞서게 된다. 아빠가 집을 나간 후 8년 동안 엄마가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며 외롭게 살아왔다는 건 알지만,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한다고,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나를 통해 보상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테사는 생각한다. 하딘을 만나기 전의 그녀라면 꿈도 꾸지 않았을 그런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딘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테사를 사랑한다. 그들은 만난 지 겨우 몇 달밖에 안됐고, 그나마도 매번 싸우기만 했지만, 하딘은 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서 함께 살자고 한다. 테사는 결혼하기 전까진 누군가와 동거하게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그럼에도 하딘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러기로 한다. 결혼은 정말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 테사, 그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출판사에서 꿈에 그리던 인턴십을 하게 되고, 매력적인 남자 친구가 생겼지만, 그녀의 일상은 언제나 스펙타클하다. 하딘은 한 시간 전만 해도 그녀를 '친구'라고 남들에게 소개했으면서, 지금은 엄마를 보러 영국에 가자고 하는 등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는 모습을 보이고, 뜨겁게 사랑하다가도 별 것 아닌 일로 투닥거리는 모습이야 대부분의 연인이 비슷한 모습 아니겠나 싶지만... 2권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테사에게 충격을 안겨 준다. , 과연 그녀와 하딘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3권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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