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 있는 공간 - 새로운 세대가 리테일 비즈니스를 바꾼다!
정창윤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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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로운 세대는 일상에서 경험한 다양한 콘텐츠를 SNS로 공유합니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직간접적인 경험치를 쌓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제품만으로는 새로운 세대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P.45

아마도 요즘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가장 많이 찾아 보는 것은 아마도 장소가 아닐까 싶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서점도 큐레이션이 잘 되어 있는 감각적인 곳으로, 쇼핑몰, 맛집, 카페 등등 모바일 덕분에 이른바 '핫스폿'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특정 장소의 정보를 수집하고, 미리 알아본 곳을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공간'이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상하이, 런던, 도쿄, 파리 그리고 서울까지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도시 안에서도 인기 있는 공간들을 탐구하고 있다. 공연, 패션,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자로 일해온 저자라서 젊고 독창적인 시선으로 공간 컨셉과 리테일 전략을 예리하게 분석해서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오프라인 매장들이제품 중심의 운영에서 탈피하여 소비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공간 중심의 운영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를 단순히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아니라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관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저자는 리테일 산업의 미래가 과거와 소비 방식이 다른새로운 소비자에게 얼마나 새롭고 차별화된 감각을 독점적으로 경험하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공간을 통해 그곳만이 제공할 수 있는 색다른경험을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가 향후 리테일 산업의 주요 이슈가 된다는 것이다.

공간 비즈니스에서 콘텐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구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3~4개의 콘텐츠라도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나아가 직원들은 콘텐츠를 매개로 고객과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응대에 신경 써야 합니다. 결국 공간은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고 고객도 사람입니다.    p.222

중국 상하이의 복합 쇼핑몰조이시티와 훠궈 식당인치민’, 영국 런던의 복합 문화 시설인바비칸 센터’, 일본 도쿄의 식당인야쿠모 사료등을 비롯해 국내외 컨셉화된 공간을 함께 살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소비자 입장에서 리테일 산업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현재 세대의 소비 트렌드를 읽으면서 나만의 공간 컨셉을 찾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온라인 쇼핑 채널과 오프라인 쇼핑 채널이 각각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짚어주고, 브랜드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컨셉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로 대변되는새로운 세대를 정의하면서 그들이 여러 경로로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주 소비층의 니즈 변화를 분석해 기존의 리테일 공간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렇게 현시대를 주도하는 소비 계층을 분석하고 21세기 리테일 산업의 방향을 모색해보는 다양한 과정을 알려 준다. 이 책은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 예측과 더불어 리테일 공간의 구성 방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 있어서 창업을 준비 중인 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요즘은 그저 커피나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의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필요해서, 자신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위해서, 혹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고, 카페를 작업실이나 도서관의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등등.. 저마다 카페를 방문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단순히 인테리어만 예쁜 카페보다는 차별화된 컨셉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한 공간들에 숨겨진 비밀이 궁금하다면, 왜 공간에도 연출이 필요한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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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예찬
예른 비움달 지음, 정훈직.서효령 옮김 / 더난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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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며 해결책이 많아졌고 환경 요인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하지만 당신이 졸면서 업무가 끝나는 시간을 헤아리며 오후에 눈을 붙일 멋진 해먹을 갈망한다면 이 피로가 무엇 때문에 시작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로마인과 달리 현대인은 질병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뭔가가 빠져 있다는 이런 거슬리는 느낌을 가리키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바로자연 결핍이다.     p.26

언젠가부터 아침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핸드폰 앱을 통해 보는 미세먼지 농도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미세먼지 속에서 살고 있는 일상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고, 가급적 외출을 줄이고,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실내 공기 관리나 공기정화 식물 등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 졌다. 그렇게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늘어나자 식물을 가꾸고 기르며 교감하는 것을 뜻하는 '반려식물'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식물을 기르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많고, 왜 멀쩡하던 식물들이 내 손만 거치면 죽고 시드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식물 기반 공기 정화 시스템인 스코글루푸트의 개발자인 노르웨이의 기계공학자 예른 비움달이다. 오랜 시간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에 관해 연구를 해왔던 그는 식물이 공기 정화와 건강 증진 그리고 업무 능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올바른 식물 관리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혼자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한 가지는 면역 체계를 강화해주고, 피로를 해소해주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삶에 활력과 원기와 기쁨을 더할 뿐 아니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의 연구 자료를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단 한가지가 바로 '숲 속 공기 요법(스코글루푸트)'이다.

실제로 국내에도 식물벽 혹은 플랜트월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실내에 설치해서 인테리어 효과와 공기 정화 효과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은 업체의 시공이 아니라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 DIY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는 이러한 '숲 속 공기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는 노하우와 팁도 공개하고 있다. 원예용품점이나 꽃가게 등에서 사야 할 쇼핑 목록부터, 식물 상자 벽을 설치하는 방법, 그리고 식물을 심고, 조명을 설치하고, 식물에 물 주기 등 관리하는 방법들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 식물과 자연을 두는, 더욱 단순한 삶을 동경하는 마음은 많은 이들에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꿈과 같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이는 꿈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자연 결핍은 진정 심각한 문제이고 그로 인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에, 특히 실내에 자연의 요소들을 도입하는 일이 주변 환경에서 오는 압박감을 완화해주고 여러 건강 문제의 원인을 제거해주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p.258

분명 어젯밤에 푹 잤음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일을 하다 졸고 있다거나,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카페인을 통해서 졸지 않으려고 완강히 버텨본 경험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피곤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대체로 매우 단순할 수 있다고 한다.잠을 자는 게 좋겠어. 이곳은 우리한테 좋지 않아 등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서 두통, 무기력증, 기침 같은 증상을 유발한다. 그러면 우리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몸이 좋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못 하게 피곤하고 우울하며, 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리고 눈이 따끔거리고 이런저런 병에 계속 걸리는 삶에서 아주 작은 것만 바꿔도 달라질 수 있다면 어떨까.

 

밝은 햇빛과 무성한 녹색 식물이 있으면 우리는 낙관적으로 변한다. 미국 나사와 노르웨이생명과학대학이 30년 연구로 밝혀낸 건강하고 생기 있는 공간의 비밀은 생각보다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였다. 숲 속을 걸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면역력이 강화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실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산책을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실내로 이러한 자연을 들여오자는 것이다. 실내 공간에 식물과 적절한 조명을 설치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돌보면서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은 미세먼지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연환경과 실내 환경이 하나의 장소에서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는 것도 놀라웠고, 현대인들의 만성 피로증후군이 자연의 결핍에서 온다고 하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로웠다. 피로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려서, 커피를 마시거나 당을 보충하는 식으로 그저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사람들이 거실과 창가와 사무실 선반에 두는 흔하고 평범한 식물이 우리 주변의 일상 환경에서 가장 해로운 독소를 일부 흡수한다는 사실은 마치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숲 속 공기 식물 벽의 효과는 '아주 작은 뭔가가 아주 큰 뭔가로 이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 식물과 자연을 두는 삶을 경험해보자. 당신의 일상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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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분홍색 부채 에놀라 홈즈 시리즈 4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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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건대 이 문장을 읽자마자 엄청난 만족감이 밀려 왔다. 그녀를 추적하고 그 미스터리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일에서 엄청난 스릴이 느껴졌다. '바로 이거야!' 그순간 레이디 세실리가 벨 스커트처럼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한 이유가 번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p.69

이야기는 셜록 홈즈와 그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나누는 대화로 시작된다. 그들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가 사라진 지 벌써 8개월째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에놀라는 세 명의 실종자를 구하고, 세 명의 위험한 범죄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나이가 이제 겨우 열네 살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자면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들의 걱정은 앞으로 에놀놀라가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 수 있을까였다. 범죄 활동에 관심있는 독립적인 젊은 여성과 결혼하려는 남성은 없을 만한 시대였으니 말이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그 네 번째 이야기이다. 셜록 홈즈의 계보를 잇는 여동생 에놀라 홈즈의 새로운 미스터리 탐정소설은 사회제도에 억압된 여성상에 반기를 들고 모험을 떠나는 스토리라는 점만으로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에놀라는 홈즈 가문의 저력 있는 두뇌와 직감, 본능,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발랄한 발상으로 <사라진 후작>, <왼손잡이 숙녀> 그리고  <기묘한 꽃다발>에 이르는 세 작품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시리즈 2권에 이어 다시 한번 불행한 천재이자 준남작의 딸 세실리가 등장한다. 명문가들 사이에서 재산 보호의 명목으로 공공연히 행해지던사촌 간 결혼 관행의 피해자가 된 세실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에놀라의 모험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때때로 셜록 오빠처럼 나도 매우 극적인 순간을 즐긴다. 나는 그들이 내 잎에서 "." 라는 신부서약을 하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까지 이 미친 역할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서약의 순간에 아주 또렷하게 "절대 안 해요."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참으로 그 매력적인 두꺼비 같은 브램웰을 내가 그리도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사실에 모두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일 바로 그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변장을 벗어버리고 성큼성큼 젠체하며 걸어 나갈 것이다.    p.213

에놀라 홈즈라는 캐릭터의 매력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건 바로 변장술이 아닐까 싶다. 이번 작품에서도 여성 학자, 두엄 수거인, 기자, 매력적인 상류층 여성 그리고 고아 소녀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마치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들킬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기 위해서 변장한 우아한 레이디 차림이 단연코 압권이었다. 무릎 위까지 오는 속바지와 코르셋을 착용하고, 드레스와 그에 어울리는 모자, 장갑 낀 손엔 양산을 들고 다리엔 각반까지 착용해야 했다. 머리카락도 변장을 해야 했기에, 인조 모발로 만든 밤색 가발과 곱슬거리는 앞머리까지 씌운 다음, 다양한 화장품들을 펴 바른 뒤 마침내 준비를 마친다. 그런데 마차에서 내려 우아한 걸음걸이로 이동 중에 가까운 인도 바로 코앞에 서 있는 오빠 셜록과 마이크로프트와 딱 마주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그녀의 변장술은 두 오빠마저도 눈도 끔쩍하지 않게 만들 정도로 완벽했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에놀라와 셜록 홈즈 두 남매 사이의 관계가 더욱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다. 세실리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러 남작의 집에 잠입한 에놀라가 우연히 도랑 바닥에 빠진 셜록 오빠를 발견하게 된다. 대체 어쩌다가 오빠 같은 능력자가 아래로 추락한 걸까 싶은 마음과 참 가관이다 싶은 고소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지만, 에놀라는 오빠를 도와 준다. 그리고 레이디 테오도라가 셜록 오빠에게 일을 의뢰했다는 걸 알게 되고, 세실리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쳐 보자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에놀라는 그렇게 위대한 대탐정에게 "빌어먹을, 셜록 홈즈."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을 수 있는 당찬 성격과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과감히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천방지축 왈가닥 면모까지 너무도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6권인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이제 5권과 6권 두 권이 남아 있다. 나머지 이야기에서는 에놀라가 또 어떤 예측불허의 모습을 보여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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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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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지. 근데 괜찮아, 지금은 다 풀렸어."

"다행이다. 자기 아까는 되게 무서웠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품에 안는다. “다시는 자기가 나 때문에 무서워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날 밤 레일라처럼. 나는 소리 없이 덧붙인다.      p.98~99

연인인 핀과 레일라는 므제브에서 스키를 타고, 파리에 들러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정쯤 도로변 주차장에서 핀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곳이었다. 핀은 그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찾았지만 레일라는 보이지 않았고,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실종'이라는 소재는 너무 자주 사용되고 있는 사건 중의 하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짧은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게 내가 프랑스 A1 고속도로 부근 어딘가에 있는 경찰서에 앉아 경찰에 한 진술이었다. 진실이었다. 온전한 진실이 아니었을 뿐.

그리고 12년 후, 핀은 레일라의 언니인 앨런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앨런은 레일라와 녹갈색 눈동자 말고는 모든 것이 정반대였는데, 핀은 그녀와 레일라의 추모식에서 만나 가까워졌다.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당시 실종 수사를 했던 경찰에게 연락이 온다. 12년 전 실종된 레일라가 목격됐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게다가 집 밖 길바닥에서 레일라가 늘 지니고 다니던 러시아 인형이 발견된다. 이야기는 핀과 앨런의 일상이 보여지는 현재와 핀이 레일라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과거가 교차 진행된다. 과연 레일라가 실종되던 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녀는 12년 전 그날 죽은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지금 목격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레일라가 맞는 것일까.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다 끝내버릴 텐데. 어디 있지 묻는 핀의 이메일에 바로 답장을 준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목소리는 말했다. 그놈에게 알려주지 마, 그놈에게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마. 목소리를 거부할 수는 없어서 핀에게 실마리만 하나 주었다. 제발 그가 실마리를 풀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를 다시 데려가, 너무 늦기 전에.     p.284

심리스릴러의 여왕 B. A. 패리스의 신작이다. 벌써 3년 째 매년 6월에 그녀의 신작을 만나고 있어,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생각나는 작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역대급 데뷔작이었던 <비하인드 도어>는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로 첫 페이지를 열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가독성 최고의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브레이크 다운>은 정신적, 심리적 폭력이 얼마나 극한의 공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오싹한 기분을 안겨주어 무더운 여름 밤에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이번에 만난 세 번째 작품 <브링 미 백>은 상상조차 못했던 짓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반전 스릴러로 여전히 페이지 터너로서의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어느 작가나 그렇겠지만 특유의 패턴이 있어, 작품을 거듭해나가면서 비슷한 구성이나 캐릭터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B. A. 패리스 역시 그러한데, 덕분에 데뷔작 만큼의 임팩트를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에서는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을 계속 읽어 왔던 독자들이나,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 왔던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지점, 금방 눈치를 챌 수 있는 단서들이 많아 상황 파악이 너무 빨리 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장르를 많이 접해 보지 않은 독자들이 읽기에는 가독성이 뛰어난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특히 B. A. 패리스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만났다면, 정말 뛰어난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도 꼭 챙겨 보기를 추천한다.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B. A. 패리스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은 틀림없다. 데뷔작 만큼 놀랍고, 독창적인 그녀의 다음 작품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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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스테이트
시몬 스톨렌하그 지음, 이유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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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이 언제 시작되었던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평범한 여가 활동처럼 시작되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처럼. 사람들은 가끔 텔레비전을 보았고 가끔은 뉴로캐스터를 쓰고 앉아 있었다. 나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뭔가 괴상해지기 시작한 건 1996년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였다. 모드 6 말이다.    p.49

미국의 모하비 사막, 옅은 안개 속에서 회갈색 먼지 층을 걸어가는 10대 소녀와 소형 로봇이 있다. 때는 1997년 봄, 몰락한 첨단기술의 잔해가 나뒹굴고, 드론과 함선이 방치되어 있는 어두운 세상이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작품들이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이 작품은 옛 향수를 자극하는 과거의 미국을 무대로 하는 대체역사 SF이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모드 6이라는 뉴로캐스터 기기의 광고가 등장했는데, 이야기가 시작하면 여기저기 뉴로캐스터를 쓴 채 널브러진 시체들이 즐비하다. 7년 넘게 치뤄진 거대한 전쟁은 드론 조종사들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불운하게 십자포화에 희생당한 민간인들과 전쟁 중에 사산된 연방군 조종사의 자식들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 작품은 TV를 대체하게 된 가상현실 기술이 서서히 일상을 앗아가는 섬뜩한 세계를 거의 실사처럼 느껴지는 생생한 일러스트로 구현해냈다. 그리하여 어떤 그래픽 노블과도 다른, 이전까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SF가 탄생했다. <인피니티 워>, <엔드 게임>, <윈터 솔저> 등 어벤저스 시리즈를 제작한 루소 형제와 각본가들이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전혀 다른 상황에서 봤더라면 나는 그것들을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 편안하고 느긋하게 이 거리를 산책하며 매료되었을 것이다. 어떤 역겨움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열광적이고 기분 좋은 역겨움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모든 것이 거꾸로였다. 우리가 바로 저 매력적인 생장물, 광인들이었다. 건강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픈 영혼들이었다. 이제 우리 뒤에 안전한 일상은, 되돌아갈 정상 지대는 없었으며 유일한 길은 앞으로만 나 있었다.   p.101

이야기의 화자인 10대 소녀는 조손 가정에서 자라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위탁 부모에게 보내졌는데, 그로 인해 동생과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위탁모의 코뼈를 부러뜨리는 등 폭력적인 행동으로 엇나간 성장기를 보낸다. 이후 친구 어맨다와의 이별, 위탁 부모의 죽음 등을 겪었는데, 기괴하게 변한 거대 드론과 뉴로캐스터를 쓴 채 방황하는 사람들로 보여지는 황폐화된 사회의 풍경이 소녀의 불안한 심리를 고스란히 시각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인간의 지능이 뇌세포 수억 개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면, 뇌세포를 수억 개 더 연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 결과는 머릿속 이미지들이 실제로 보이는 세상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믿기 어려운 황폐화된 도시였다. 뉴로닉스 공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영혼 없는 좀비 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셸. 정신 차려. 그건 꿈이었어. 게임일 뿐이었다고. 짐과 바버라 덕에 이제야 나도 깨달았어. 너랑 나는 그냥 놀이를 했던 거야. 그리고 괜찮아. 어차피 그런 척한 것뿐이잖아."

그런데, 만약 꿈이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 게임 속 가상현실이 실재가 된다면 말이다. 황량한 거리, 송두리째 파괴된 도시, 도로에 방치된 몰락한 첨단기술의 쓰레기들..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극대화시켜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일러스트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완성된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래픽 노블 보다 텍스트의 비중이 확실히 높고 밀도가 있으며, 일러스트의 완성도와 퀄리티가 뛰어난 아트북이지만, 디스토피아 SF 소설로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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