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들기 전에 동물원 사이트에 들어가 라이브 캠으로 판다를 보곤 한다. 화면 속 판다는 자거나 졸거나 멍때리거나 가끔 대나무 잎을 먹고 있다. 그 통통한 삼각김밥 모양의 뒤태를 보며 하루를 반성한다. 너무 부지런히 살았던 건 아닌지. 돈벌이에 눈이 멀어 나의 귀여움을 뽐내는 걸 소홀히 했던 건 아닌지. 내일은 더 대충 살자. 다리가 짧아 엉덩이 대신 허리로 앉는 판다처럼.    p.19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어피치, 튜브, , 무지, 프로도, 네오, 제이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의 사랑스러운 여덟 캐릭터와 젊은 작가들이 만났다.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그 두 번째는 바로 귀여운 악동 어피치와 울리다 웃기기 전문 악동 작가 서귤이다. 애교 넘치는 표정과 행동으로 카카오프렌즈에서 귀요미를 담당하고 있는 어피치의 핑크핑크 에너지가 가득한 책이다.

 

섹시한 뒤태와 아름다운 분홍빛을 무기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어피치! 뒤집어진 복숭아 모양이라 엉덩이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귀염뽀짝 뽀샤시 캐릭터라 그런지, 이번 에세이의 제목도 너무 그럴 듯하다. 그런데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하다니, 무슨 뜻일까.

저자는 말한다. 길바닥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문득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토실토실 말랑말랑, 그 어떤 거친 바닥에서도 나를 폭신폭신하게 받쳐주는 엉덩이. 심한 말, 못된 말, 독한 말을 들은 하루 몽실몽실 내 마음을 감싸주는 마음의 엉덩이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너는 가장 최근에 달려본 적이 언제냐고 물었고, 나는 생각이 나질 않아 입을 다물었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어.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려본 게 언젠지. 어느 순간 알아버렸거든. 내가 달리든 걷든 기든 이 고만고만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를 테면 이번에 신호등을 건너든, 4분 후에 건너든 나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p.182

이 글을 읽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웬만한 순간에는 달리질 않는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려본 건 너무도 까마득하다. 단순히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조금 빨리 간다고 해서 인생사 뭐 크게 달라질 거 있나 싶은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들의 그 에너지가 눈부시게 느껴지곤 했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유치하다고 느껴질 만큼 가벼운 글들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유머와 밝음이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타켓층은 정확히 10 20대 사회 초년생 정도가 아닐까 싶다. 30대만 넘어가도 오글거리는 감수성으로 느껴질 테니 말이다. 어피치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읽어야 하고, 평소에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카카오프렌즈가 사실 글보다는 라이언이나 어피치등 카카오 프렌즈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책이긴 하지만, 사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책을 집어드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그러니 뭐 꼭 에세이가 진지하고 심오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힐링과 위로라는 테마로 쓰인 에세이들이 모두 겉모습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비슷하기도 하고 말이다. 사랑스럽고 너무도 익숙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페이지 곳곳에 나타나서 그 귀여운 자태를 뽐내주는 것만으로 마음 속에 작고 동그란 행복들이 가득 차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라... 다음에 나올 카카오프렌즈 시리즈도 기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즈덤 - 오프라 윈프리, 세기의 지성에게 삶의 길을 묻다
오프라 윈프리 지음, 노혜숙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지금까지 했던 올바른 결정들은 직감에 귀를 기울인 덕분이었다. 모든 잘못된 결정은 내 안에 있는 그 작고 조용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결과였다.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속삭이며 넌지시 말한다. ",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그 속삭임을 무시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돌멩이를 던지면서 경고한다. "문제가 있어. 위험해." 이 신호를 계속 무시하면 불가피하게 묵직한 벽돌에 머리를 맞은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삶이 벽돌 담장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p.88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2011 25년간 지켜온 <오프라 윈프리 쇼>를 은퇴하며 자신의 이름을 건 OWN 채널을 설립했다. 그리고 현재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각계각층의 명사들을 초청해 솔직하고 통찰력 있는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 <슈퍼 소울 선데이>를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고정 시청자만 100만 명 이상, 9년간 16시즌을 거듭하고, 에미상을 일곱 차례나 거머쥔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이 책은 오프라 윈프리가 <슈퍼 소울 선데이>에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음 깊이 와닿은 말들을 순간순간 기록해둔 작은 노트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수많은 명사들의 사상과 오프라 윈프리의 깨달음과 생각들이 담겨 있다.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엘리자베스 길버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시리즈의 잭 캔필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에크하르트 톨레 등의 유명 작가들과 세계적인 기업가 등 존경 받는 명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최고의 토크쇼 <슈퍼 소울 선데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셈이다.

지능이 직업적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성공, 직업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서 성공하게 만드는 요인의 75퍼센트는 지능이나 기술적 능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낙관적인 생각, 우리가 하는 행동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p.220

오프라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한 것들을 분야와 종교를 넘어 오랜 통찰과 지혜를 지닌 시대의 지성들에게 묻고, 그 답을 10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전하고 있다. 그녀는 마이클 싱어와의 대화 중에 인도에 갔을 때 요가 수행자를 만났던 일화를 들려 준다. 그가 자신에게 명상을 하자고 청했고, 눈을 감고 몇 가지 사물의 이름을 말할 테니 다음 물건을 말하면 전에 말한 것은 잊으라고 한다. 당시에 그녀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나 온갖 생각들을 머릿속으로 하며 산다. "나는 능력이 부족해. 나는 실업자야. 그가 나를 떠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우리 아이가 그런 짓을 했다니 믿을 수 없어." 등등...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이클 싱어는 말한다. 그것들은 생각에 불과하다고. 우리 자신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생각에서 우리 자신을 분리할 수 있을까.

그녀는 삶을 충만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살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 내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오프라가 묻고, 세기의 지성들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책에는 삶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통찰력과 지혜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녀의 산타바바라 집과 주변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어 깨달음의 순간을 더욱 인상적으로 느끼도록 해준다. 영성과 영혼,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등 약간 종교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현실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느낌도 드는 책이라, 복잡해진 삶을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가 필요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내일 1~2 세트 - 전2권
라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정말로, 살아갈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잖아요."

"... 나는.. 놓쳐버린 시간이 너무 많은데.. 다시 한 번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나야 모르죠. 근데, 그전에도 많이 넘어졌지만 늘 다시 일어났잖아요. 그건 아저씨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거예요."    1, p.30~31

최고의힐링 웹툰’ ‘인생 웹툰으로 첫손에 꼽히는 네이버 연재작 <내일>의 단행본이다. 인물들 삶에 공감하며읽는 내내 울었다” “죽고 싶었는데 다시 힘을 내보겠다는 독자들의 리뷰가 줄줄이 이어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네이버 평균 별점 만점!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승과 저승, 천국과 지옥은 일정한 비율을 맞춰가며 무한한 순환이 이루어지는데, 주어진 수명을 다 살지 못하는 망자가 늘어나는 경우 큰 혼란이 야기된다. 자살은 그러한 순환을 깨버리는 일이라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막는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그들을 찾아서 사정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그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는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저승사자들이 사람 살리는 일을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게을러터진 새X가 세상에서 자기만 제일 힘든 사람인 척하는 게 꼴사납지도 않으세요? 저딴 새X 때문에 열심히 하는 사람들까지 힘든 티 함부로 못 내는 거라고요!"

"500년을 넘게 존재해온 내게도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멋대로 평가할 권리는 없어. 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저런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쟤 인생을 재단하고 평가해? 네가 뭔데? 단 한 사람의 단면만 보고 네 멋대로 한심한 인생이라고 쉽게 단정 짓지 마."     2, p.122~123

병원 외과 과장인 아버지에, 판사 어머니, 검사 큰누나에 의대생인 작은누나까지..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나 나무랄 데 없는 학벌과 넓은 인맥과 원만한 인간관계까지.. 무엇 하나 남보다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준웅, 그러나 세상이 미친 건지 지원하는 회사마다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인턴에, 신입사원 공채에 심지어 알바 까지 다 거부 당하고 보니.. 대체 내가 뭐가 부족한 건지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강 다리에서 자살하려던 노숙자를 말리려다 함께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그런 그를 찾아온 건 바로 특별 임무를 수행 중인 저승사자 구련과 임륭구였다. 이들은 자살 가능성이 큰 이들을 찾아내 그들이 다시 한 번 삶의 의지를 갖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제안으로 준웅은 저승독점기업 ㈜주마등 특별 위기관리팀에서 일하게 된다.

1권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있는 중학생을 자살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고, 2권에서는 스무 살 재수생 남궁재수를 구하기 위한 작전 계획을 세우게 된다. 카리스마 넘치는 센 언니 구련, 잘생긴 외모와 달리 취미가 코 파기인 임륭구, 심성은 착한데 눈치는 없는 최준웅, 이들 삼인방이 빚어내는 좌충우돌 이야기도 재미있고, 죽으려는 자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으려는 저승사자들의 쿨한 한 마디들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힘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누군가가 보기엔 '겨우 저것 가지고?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별것 아닌 일이어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수 있다. 아픔의 무게는 주관적일테니 말이다. 단행본에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 등을 담은 '작가의 말'과 함께 주요 캐릭터의 개성을 한껏 살려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표지’, ‘미공개 컷등이 수록되어 있으니 웹툰을 재미있게 보았던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그는 살아 있는 좋은 친구보다 죽은 좋은 친구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생각을 처음 했을 때, 그는 자기가 맞는지 보려고 마음속에서 전화번호부 페이지를 넘기듯 친구들의 생사를 확인해봤다. 그가 옳았다.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처음에는 슬펐다. 그러나 서서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바람이 심한 날 바람을 의식하지 않듯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곳에 바람은 없다.    p.69

나는 신주쿠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하라주쿠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는 보통 일본 여자보다 키가 큰 여성이 서 있었고, 우리는 함께 열차에 탄다. 빈 좌석이 없어서 서서 가다가 나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서 좌석이 비었다. 나는 앉지 않고 서서 그녀가 앉기를 기다린다. '제발 앉아요. 저는 당신이 앉기를 원해요.' 빈자리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자리를 그녀에게 권했고, 그녀는 앉으면서 나에게 영어로 '땡큐'라고 말한다. 불과 이십 초 만에 일어난, 복합적이고도 조그만 삶의 발레동작은 내 마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땡큐'라는 단어가 그토록 슬프게 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는 더 진행되지 않는다. 그저 젊고 슬펐던 그녀의 '땡큐'가 유령처럼 내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을 뿐, 나는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신주쿠 역에서 내릴 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은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색다른 에너지가 있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공허한 인간관계를 어쩔 수는 없다. 이 작품 속에서 나는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재회를 약속하지만 다음 날 장소가 기억나지 않아 인연을 놓치고, 낯선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만 말없이 스쳐 지나가 버리곤 한다. 내일이 없는 관계란 삶의 덧없음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 수록 집착에서 멀어지고, 매사에 허망함을 느끼기도 하고, 아웅다웅 사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달으며 노년의 쓸쓸함을 향해 간다. 브라우티건이 이 작품에서 도쿄와 몬태나를 오가는 특급열차를 타고 가고자 했던 곳은 결국 어디였을까.

나는 자기 나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 배역을 맡은 배우를 유심히 살펴본다. 서리 내린 것처럼 머리카락을 하얗게 분장한 그는 배역에 맞는 나이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뼈와 근육과 피가 노쇠하고, 심장이 망각으로 가라앉고,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집들이 사라지며, 그리고 자신의 문명을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나 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p.226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전세계 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브라우티건의 말년의 삶이 드러난 작품으로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일본 도쿄와 미국 몬태나를 오가며 쓴 131편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의 초기작에 비해 40대에 접어든 브라우티건의 쓸쓸한 위트를 맛볼 수 있는, 조금은 '소프트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고, 짧은 건 한 두 페이지 혹은 단 몇 줄로도 이루어져있는 단상들이라 더욱 임팩트있게 읽히는 글들이기도 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마음에 훅 들어오는 이야기들이었고, 여러 번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문장들이었다.

1960년대 자유주의 정신을 갈망했던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1970년대 서양문화가 벽에 부딪혔다고 생각해 그 대안으로 일본행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몬태나와 도쿄를 오가며 131개의 에피소드를 집필해 이 책을 출간했지만, 결국 사 년 후 마흔아홉의 나이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특유의 위트와 해학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타지 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 나이 들어감에 대한 슬픔과 허무, 그리고 죽음에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느낌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삶을 응축한, 한 편의 시 같은 소설들이라 더 마음에 오래 남겨두고 싶은 기분도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꾸밈없이 써왔던 오사카 사투리를 온전히 간직하고, 오사카를 떠나 있어도 오사카 사투리와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다. 오사카 사투리로 덕 보는 일 따위 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p.24~25

마스다 미리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스물여섯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그 뒤 도쿄로 터전을 옮기고 십 년을 넘기자 그녀는 '도쿄에 사는 오사카 사람의 눈으로 고향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사카 사람에 대해 통계를 내본 적도 없고 역사나 문화도 잘 모르지만, 그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오사카와 오사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그녀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추억하는 오사카의 이모저모와 오사카 사람들 특유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에세이와 만화이다. 사실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 대부분이 공감할 부분이 많고 술술 읽히는 편이었지만, 이 작품은 아무래도 지역적인 특색이 강하다 보니 처음 듣게 되는 단어나 상황들이 많아 조금 낯설기는 했다.

그러나 그만큼 일본의 지역 색이 우리 나라의 그것과도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했고, 그들의 일상문화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한 작품이었다. 경상도니, 전라도니 지역에 따라서 너무도 확연하게 다른 말투와 식습관과 문화가 우리 나라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본도 그에 못지않게 지역 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흥미롭기도 했고 말이다.

도쿄에서도 남자들의 별것 아닌 행동이나 동작이나 시선에서 '나도 이미 젊지 않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지만, 오사카라는 땅에는 그것과는 좀 다른 독특한 포인트가 있다. 요컨대 남자들이 나를 열심히 '웃기려고 애쓰느냐' 마느냐.   p.107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오사카하면 사람들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짭쪼롬한 다코야키, 역사와 전통의 한신 타이거즈, 개그계의 본산 요시모토 흥업,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각종 랜드마크, 도톤보리 거리의 맛집들... 그 중에서도 마스다 미리가 손꼽는 오사카의 명물은 다름아닌, 붙임성 좋고 재미있는 오사카 사람들이라고 한다.

오사카 사람들은 한 집에 한 대 다코야키 기가 있다던데.. 오사카 사람은 오코노미야키를 밥이랑 같이 먹는다던데.. 오사카 사람은 무빙워크에서 십중팔구 걷는다던데... 등등 마스다 미리는 도쿄에서 도쿄 사람들에게 이런 애기들을 많이 들어 왔는데, 그러한 에피소드들을 유쾌하고 재미있고,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사카 말을 도레미로 표현하는 거였다. 놀자고 친구를 부를 때 '미리짱'은 솔파솔!, '노올자!는 파파솔~ 헤어질 때 인사 '아안녀엉'은 솔파~솔파~ 이런 식으로.. 귀엽고 엉뚱한 마스다 미리만의 해석으로 특유의 어감을 표현해주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마스다 미리는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세 가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오사카를 소재로 한 책, 그리고 엄마와 대중목욕탕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 이 세가지 책은 모두 비채의 마스다 미리 컬렉션으로 출간되고 있는데, 지난 번에 만났던 <여탕에서 생긴 일>과 이번에 만난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에 이어 곧 출간될 <엄마라는 여자>라는 책도 기대가 된다. 엄마, 여탕, 오사카, 우연히 전부 이응으로 시작되는 세 개의 키워드가 그녀에게도 매우 커다란 존재였다며, 이 시리즈를 '이응' 삼부작이라고 이름 붙이겠다고 하니 귀엽게 그지 없다. '이응'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