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관찰의 기술 - 몸의 신호로 상대를 꿰뚫어 보는 실전 매뉴얼
조 내버로 지음, 김수민 옮김 / 리더스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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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동은 머리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뇌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쉬지 않고 일한다. 뇌에서 나오는 신호는 심장과 호흡, 소화, 그리고 다른 많은 기능을 통제한다. 그러나 머리의 바깥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머리카락과 이마, 눈썹, , , , , 턱은 일반적인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전 생애에 걸쳐 부모로서, 친구나 직장 동료 혹은 연인으로서 속마음을 드러내는데, 이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면 머리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   p.23

세계 최고의 비언어 커뮤니케이터이자 행동 분석 전문가이자 전 FBI 특별수사관 조 내버로의 신작이다. 그는 현직에 있는 동안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수사 기법을 확립했고, 동료들로부터인간 거짓말 탐지기라고 불릴 정도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선보였다. 전작 <FBI 행동의 심리학>이 비언어적 능력에 대한 개론적 분석을 담았다면, 이번에 출간한된 <FBI 관찰의 기술>은 구체적인 비언어 신호를 최대한 세밀하게 제시하고 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407가지 몸짓 및 표정 언어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있는 '궁극의 보디랭귀지 바이블'이다.

조 내버로는 17살 때부터 인간의 행동에 관한 일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다양하게 행동할까. 이러한 행동의 목적은 무엇일까. 물론 당시만 해도 4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여전히 관찰한 내용들을 카드에 적어 수집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는 그렇게 수년간 수천 개의 항목을 수집했고, FBI 특별 수사관이 되어 25년간 범죄자와 스파이,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데 이러한 관찰 자료들을 사용했다. 이 책은 그렇게 평생에 걸쳐 그가 수집하고 분류하고 검증해온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신호를 집대성하고 있다.

팔은 몸을 보호하고 균형을 맞춰 주며 물체를 옮기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좋은 의사소통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팔로 스스로를 포옹하고,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경우 팔을 들어 올린다. 아이는 애정이 담긴 포옹을 갈구할 때 팔과 손을 뻗는다. 팔은 끊임없이 우리를 보좌하고 따뜻하게 해 주고 타인을 돌봐 주며, 느낌뿐만 아니라 욕구까지 전달한다. 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한다.   p.185

이 책에 수록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표현 또는 신호들은 FBI 요원들이 범죄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상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친구나 연인, 배우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머리, 이마, 눈썹, , , 어깨, 팔 등등.. 신체 부분별로 정리가 되어 있어 마치 사전처럼 필요한 순간에 찾아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행동이고, 머리를 긁는 행위는 의구심이 들거나 불만스럽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걱정스러울 때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코 위쪽으로 주름을 잡는 모습은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표시이며, 입술을 잡아당기거나 뜯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두려움이나 의심, 걱정, 자신감 부족, 이외의 힘든 상황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았는데, '언어가 생각을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면, 몸짓은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타인의 언어에 속지 말고 몸짓을 관찰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혹은 치밀하게 계획해서 의도적으로. 하지만 대개 이들의 비언어는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문제가 있거나, 솔직하지 않거나, 말에 자신이 없거나, 숨겨진 의도가 있거나, 불안하거나 등등..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는 신호나 행동을 포착한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언어들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소통할 수 있게 되고 신뢰와 친밀감을 쌓고, 공감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또는 특정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바라고 두려워하고 의도하는지 파악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쉽고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 누구라도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통찰력을 얻어 실제 일상 생활에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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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리아킴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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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한테 오면 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그런 줄 알지? 근데 아니야. 네가 다른 사람들 말도 안 듣고, 네가 제일 잘났다 하니까 다들 네 비위 맞추느라 그러는 거지. 이제 아무도 네가 제일 잘 춘다고 생각 안 해. '진짜 그런 사람' 정말 없을걸? 시대는 바뀌어. 당연한 거야. 근데 너는 그걸 몰라. 안다면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이제 네 시대는 갔어. 지금은 그냥 쟤네들의 시대인 거야.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라고."   p107~108

세계 대회 팝핀 우승자, 빛나는 K팝 안무의 숨은 주인공, 구독자 1,600만 유튜브 채널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안무가, 모두 한 사람을 지칭하는 화려한 수식어이다. 바로 트레이드마크인 까만 단발머리를 흔들며 때론 파워풀하고 때론 섹시하게 넘치는 에너지를 몸으로 발산하며 춤추는 그녀, 리아킴이다.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가시나>, 트와이스의 <T.T>, 아이오아이의 <너무너무너무>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안무가 바로 떠올려질 정도로 유명한 이 음악의 안무를 만든 것이 바로 리아킴이다. 그녀는 랑킹과 팝핀 장르로 세계 댄스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JYP, CJ엔터테인먼트 등의 댄스 트레이너와 안무가로 활동해왔다. 이력만 보면 태어날 때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았을 것 같은 그녀이지만, 지금의까만 단발머리 리아킴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둘 중 하나야. 계속 혼자 집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든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찾아 네 세계를 깨고 밖으로 나오든지. 네가 널 깨고 나오지 않으면, 지금처럼 밤마다 맥주 마시고, 자고, 자기관리 안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야금야금 갉아 먹으면서, 그렇게 평생 살다 가는 거야. 언젠가는 그만할 수 있겠지. 누구 탓할 수 없어. 네가 그 느낌대로, 매일 선택해서 가는 거니까. 매일 네가 그러기를 선택하고 있는 거라고. 넌 이제 어떻게 할래?"   p.209

이 책은 안무가 리아킴의 삶과 앞으로의 비전을 담고 있는 에세이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욕먹는 아이였다. 왕따에 전따, 지역 일대의 찌질이였던 그녀는 친구 사귀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에 성격장애와 대인기피증의 씨앗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타인과의 만남은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두려웠는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언제나 그들에게 그녀는 조금 차가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왕따에 찌질이였던 중학생 소녀의 삶을 한 순간에 바꿔 버린 것은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이 텔레비전에서 방송 중이었고, 그녀에게 그 장면은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음악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미세한 표정과 호흡, 숨소리, 목소리, 손끝, 발끝의 움직임까지 어느 하나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춤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한다. 문화센터, 댄스팀 등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어디든 찾아 다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노력해 세계 댄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댄스 커뮤니티의 주인공이 되고,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정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댄스 배틀에서 연이어 바닥을 찍고, 눈을 돌려 도전했던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굴욕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바닥까지 내려오고 나서, 철저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비로소새롭게춤추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여정과 함께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수록 용기는 커지고,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깨달음이 그녀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춤을 추고 싶다면, K팝을 사랑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K팝과 춤을 더 신나게 하는 리아킴의 매직에 빠지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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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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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목이 멘다. 나는 무감각해지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도 잠깐 평정심에 금이 간다. 희망으로 가득했던 인생. 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희망이다. 확약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벤처럼. 내 여동생처럼.  p.26~27

영어 선생님 조 손은 20년 만에 고향인 안힐으로 돌아온다. 결코 다시 돌아올 생각도, 이유도 없는 고향이었지만 살다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는 두 달 전 의문의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그는 열다섯 살때 친구들과 함께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폐광의 갱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간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의 유골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의 어린 동생 애니가 오빠를 몰래 따라왔고, 동굴에서 딱정벌레 떼의 습격을 당한 친구들이 도망치려 하다 쇠지렛대로 애니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다. 조는 애니의 손을 놓쳤고, 겨우 밖으로 나왔을 때 애니는 사라진 상태였다. 다행히도 48시간 뒤 애니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 뒤로 애니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20년이 지났고, 한때는 석탄 채굴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폐광촌으로 남은 작은 마을 안힐에서 마을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엄마가 아들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자살한 것이다. 엄마는 피로 아이의 시신 위쪽 벽에 '내 아들이 아니야'라고 휘갈겨놓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조 손은 바로 그 불길한 집을 빌려,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자살한 엄마 줄리아는 평소에 아들을 애지중지했었고, 전혀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살해된 아들 벤은 죽기 두어 달 전에 실종되었다가 24시간 뒤 돌아왔는데, 밝고 착한 아이였던 성격이 내성적이고 산만해졌다고 한다. 조 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20년 전 자신의 동생 애니에게 일어났던 바로 그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진실을 뒤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에 계속 살고 있던 그의 동창들은 그가 과거를 헤집는 것을 고스란히 보고만 있지 않는다. 대체 이들은 뭘 숨기고 있는 걸까. 사라진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그게 인생의 문제다. 절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이게 중요한 순간일지 모른다고 손톱만 한 단서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여유를 두고 그 순간을 흡수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다음이라야 붙잡을 만한 순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나는 행복하고 순수하고 태평하게 깡충깡충 뛰어가는 애니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뛰어가는 동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그때가 마지막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p.219

C. J. 튜더의 <초크맨>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구성, 예리한 문장과 독창적인 플롯이 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작품 역시 굉장히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후속작 징크스 따윈 없이 더 멋진 한방을 보여주고 있다. <애니가 돌아왔다> 역시 전작과 유사한 부분들이 여럿 눈에 띈다. 주인공이 학교 선생님이라는 점,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는 점,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현재 다시 벌어진다는 것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섬뜩한 메시지와 과거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극적인 구성 등등.. 이 그러하다. 하지만 전작이 현실적인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이번 작품은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그려지고 있어 한층 더 음산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만들어 진 것 같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굉장히 오싹하고 으스스하게 그려져 있어 시종일관 공포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튜더가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고스란히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서늘하게 만들어 주는 강렬한 공포와 초자연적인 호러 요소까지 더해 무시무시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첫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이미 후속작 원고를 완성해놓았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후속작을 완성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작품의 분위기만 닮은 게 아니라 작업 속도까지 스티븐 킹을 빼다 박은 것 같다. 세 번째 작품은 '일인칭 시점이 아니라 여러 명의 삼인칭 시점이고 섬뜩한 미스터리라기보다 스릴러에 더 가깝다'고 하니 어서 빨리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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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클라우드 5
유윤종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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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었는지 바닥이 움푹 팬 자리에 한 컵 분량의 물은 족히 담길 것 같다. 이 앞을 수없이 오갔을 젊은 푸치니도 소원을 빌었을까? 그랬다면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와 가족의 곤궁을 면하게 해달라고 빌었을까? 그것이었다면 그는 소원을 초과 달성하게 된다. 이탈리아 대작곡가들의 찬란한 이름을 잇는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했을까? 그런 큰 소원이었더라도, 그는 이뤄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p.61

내가 푸치니의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십여 년 전 한참 뮤지컬에 빠져 있었던 시기였다. 푸치니의 오페라 중에 <나비 부인>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 <라보엠>은 뮤지컬 <렌트>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극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오페라와 뮤지컬은 굉장히 다르다. 대사가 있는 뮤지컬과는 달리 오페라는 오로지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고, 번역이나 개사를 하지 않고 원어로 부르는 것이 원칙이라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당시의 내게 오페라는 너무도 먼 장르였는데, 푸치니의 오페라를 듣게 되면서부터 그 장르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이 깨지기 시작했다. 뮤지컬만큼이나 대중적이고, 서사가 뚜렷하고, 격정적인 드라마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유려하고도 애절한 정에 넘치는 선율이 유명한데,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 음악에 문외한인 이들조차 그 명성을 익히 알 정도로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라인업에 푸치니가 있어서 고대했었다. 푸치니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오페라의 고향 이탈리아를 거닐며 그의 삶과 작품의 발자취를 좇는 특별한 여행기라니 상상만으로도 설레었다. 푸치니는 루카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데뷔한 후 잇따른 대작으로 성공하기까지, 그는 두 도시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거장으로 발돋움했다. <라 보엠> <나비 부인>의 탄생지 토레델라고를 거치면, <잔니 스키키> <토스카>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은 피렌체와 로마로 향하는 여정은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역에서부터 해안가로 걸어 나온다. 그림 같은 빌라들이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고, 남국의 이름 모를 꽃들이 정원마다 한여름의 향기를 마음껏 뽐낸다. 해변을 한 블록 남겨두고는 해송이 빽빽한 공원이 짙은 향기를 뿜어댄다. 공원 옆으로 해안과 한 블록 차이로 평행하게 난 기다란 길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트 거리다. 호텔과 음식점들이 소나무 공원과 마주 보고 이어진다. 이 길가에 푸치니의 마지막 집이 있을 것이다.    p.261~262

거장의 흔적을 따라 실제 그 곳의 공기를 마시며, 직접 보고, 느끼는 이 여행이야말로 그들의 소설을, 그림을, 음악을 이해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 아닐까. 그들이 살았던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품이 탄생했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세계와 작가를 새롭게 조망한다는 엄청난 기획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특별한 여행가이드'이자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는 인문학'이다. 그 어떤 여행 가이드북이나 여행 에세이에서도 만날 수 없는 특별한 현지의 풍경들과 장소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수백 년간 우리 곁에 존재했던 고전 명작들의 실체를 느껴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은 말이다. 무엇보다 세계의 명작들 자체보다 그 위대한 작품 너머에 있는 한 인간의 삶과 발자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풀어내는 스토리라 더욱 매력적이다. 거장이 살았던 시대, 그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각,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계기와 배경, 그리고 그가 누굴 만나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독자인 우리는 몸으로 하는 여행만큼이나 더 생생한 머리로 하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우리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으면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서 페소아가 사유했던 거리 곳곳을 만나고,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쿠바 아바나까지 헤밍웨이의 작품과 함께 배경지를 탐방하고, 도쿄 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에서 묘사되는 바로 그 온통 흰색으로 세상, 터널 저쪽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기도 한다.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모차르트의 뮤직 로드를 따라가보기도 하고, 기나긴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어둠을 견뎌내야 하는 노르웨이에서 뭉크가 사랑했던 신비로운 여름밤 풍경을 바라보고, 오스트리아 알프스가 보이는 산악 지방 티롤의 한가운데 잘츠부르크에서 클림트의 흔적을 만나고,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인 베네치아,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베로나 등 지중해 연안을 따라가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텍스트 안에서만 존재하던 거장의 실체를 직접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보고 싶다면, 문학과 음악, 그림을 입체적으로 읽어내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거장의 작품들과 그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체험해보고 싶다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적극 추천한다. 일상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러나 여행을 가기엔 현실적으로 걸리는 부분들이 너무 많을 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있다면 책상과 소파, 침대에서, 수고스럽고 비싼 여행을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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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어 - 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을 범죄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해부하다
애덤 벤포라도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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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범죄자의 얼굴, 태도, 행동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직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매일 그런 직감을 활용한다. 즉 거스름돈을 셀지 말지, 어떤 사람이 새치기를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귀갓길에 언제 길을 건널지 등을 결정할 때마다 그런 직감을 활용한다. 앞에서 나온 네 명의 뉴질랜드 피고인을 볼 때도 이런 무의식적인 조합이 선택을 이끈다. 정말로 우리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한다. 비록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범죄 행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지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p.87

1979 8 11, 여자의 집에 침입해 여자를 구타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존 제롬 화이트는 유죄 평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사실 물리적 증거는 많지 않았고, 범죄 현장에서 수집한 머리카락과 화이트의 머리카락 사이에는 '충분한 유사성'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피해자가 화이트를 가리키며 "저 남자입니다."라고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라고 세 번이나 확인했다는 사실이었다. 증인석에 앉아 피고를 가리키며 바로 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살아 있는 인간보다 설득력 있는 증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는 범인이 아니었고, 2007년 실시한 DNA 검사 결과 화이트는 무죄로 방면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생의 거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뒤였다. 조사 당시 피해자는 그가 가해자임을 거의 확신했다. 그녀가 그렇게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경찰서에서 피해자가 보았던 다섯 명의 남자 중에 진범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지목한 화이트가 세 번째 서 있었고, 다섯 번째 서 있었던 제임스 에드워드 퍼햄이 진짜 범인이었다. 물론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흐른 뒤였지만 말이다.

대체 왜 피해자는 자신을 짐승처럼 잔인하게 강간했던 사람, 같은 공간에서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단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고른 걸까. 이 책은 이렇게 선한 의도를 가진 선한 사람이 결과적으로 끔찍한 부정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법학자 애덤 벤포라도는 형사 사법제도의 허점을 맹렬하게 좇으며, 오늘날의 수사와 재판이 상당히 허술하다고 지적한다. 변호사 활동 후, 드렉셀대 법학 교수가 된 벤포라도는 인지 심리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등 형사 사법제도의 문제에 천착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그는 피해자, 피의자, 수사관, 판사와 검사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기억의 한계' 같은 법 실행 과정에서 저지르는 오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편견과 착각에 휘둘린다. 법 집행도 그렇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형사 사법제도는 21세기에 도착한 건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적잖이 당혹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범인을 찾아 처벌함으로써 도덕적인 평형을 회복하려는 욕망이 때로는 공정한 대우에 대한 헌신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우리는 이미 스스로의 이런 측면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인정하기는 죽도록 싫지만 말이다. 폭력과 피로 얼룩진 이런 불공정이 역사책이며 신문 지면을 더럽히고 있다.    p.282

이 책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나온 새로운 연구 결과에 의존해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를 해치는 요소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저자가 들려주는 사례들은 우리의 직관에 반하며,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혼란스럽고 놀랍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과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의식적인 통제 없이 진행되는 자동 처리 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이란 불편부당하며 법률 소송의 승패는 증거와 철저한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고 싶겠지만, 지난 20년에 걸쳐 심리학자, 신경과학자들은 의식적인 자각 너머에서 작용하는 여러 인지적 요인들을 밝혀냈으며, 이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려 주고 있다. 법률 소송 결과가 사실은 피고의 자백 녹화영상에서 카메라 앵글, 하루 중에 어느 시간에 심리가 진행되는지, 반대심문에서 단순한 단어 선택 같은 무관해 보이는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있겠는가 말이다.

겉으로는 정의롭고 공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책에 따르면 실제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는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그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찰의 강압적인 심문 기법, 잘못된 기억으로 범인이 아닌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목격자, 피의자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를 피의자 측 변호인에게 넘겨주지 않는 검사, 사람인 이상 편견을 가지고 재판에 임할 수밖에 없는 배심원과 판사 등등..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개혁안도 제시하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법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다양한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매우 이해하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례들과 함께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어떤 개혁이든 출발점은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저자가 '불평등'이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이 책을 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테고 말이다. 우리 모두 기존의 형사 사법제도를 새로운 눈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심리학과 신경과학 연구 결과에 대한 인식을 넓히게 된다면, 현재의 결점들을 발견하게 되고, 더불어 향후 나아갈 방향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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