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하는 뇌 - 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밝혀낸 인간 창의성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앤서니 브란트 지음, 엄성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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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물들도 드문드문 창의력을 보이지만 인간만큼 뛰어난 창의력을 보이는 동물은 없다.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걸까? 인간의 뇌는 감각적 자극과 반응 간의 구역에 보다 많은 뉴런이 있어서 신경회로에 더 많은 추상적 개념과 경로가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인간은 유난히 사회성이 뛰어나 서로 상호작용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정신적 씨앗을 뿌린다. 때로 인간의 창의력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 간의 협력으로 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p.67

2007 1 9일 스티브 잡스는 무대에서 "가끔 혁명적인 제품이 나와 모든 걸 바꿔 놓습니다. 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재발명하려 합니다." 라고 말한다. 여러 해 동안 이어진 무성한 소문과 추측 끝에 드디어 아이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위대한 혁신의 특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아이폰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대개 발명은 한 순간에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며 놀라운 계시 같은 걸 받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사람과 아이디어가 한데 모이면서 힘을 축적해, 몇 개월 혹은 몇 년 또는 몇 십 년을 거치면서 혁신 기술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훗날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은 그저 이것저것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봤을 뿐이고,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으로 합성하는 거라고 말이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 그리고 예술과 과학을 접목해 인간 정신을 연구해온 작곡가 앤서니 브란트가 뇌와 창의성의 비밀을 밝혀가는 지적이고 흥미진진한 여정을 담고 있다. 뇌과학자와 음악가라고 하니 어쩐지 너무 다른 분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창의성의 근원을 밝히는 것은 과학적 접근과 예술적 감각이 모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니 그야말로 기가 막힌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은 '넷플릭스' 화제의 과학 다큐 <창의적인 뇌의 비밀>의 원작이기도 하다.

우리의 뇌는 신축적이다. 뇌는 딱딱한 돌에 새기듯 고정불변을 지향하기보다 끝없이 그 자체의 회로망을 바꾸며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 뇌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신축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놀라움을 안겨준다. 뇌 속 회로의 끝없는 재창조로 우리 삶은 날로 노련해지는 작품처럼 발전한다... 만약 인간의 창의성을 보다 잘 이해한다면 교실에서 중역 회의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p.224~225

저자인 뇌과학자와 작곡가가 함께 밝혀낸 인간 창의성의 비밀은 3가지 전략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휘기(Bending), 쪼개기(Breaking), 섞기(Blending)이다. '휘기'에서는 원형을 변형하거나 뒤틀어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안무가 마사 그레이엄의 혁신적인 안무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보여준 곡선 형태의 건축물, 영화 <300>에서 슬로 모션과 패스트 모션을 번갈아 사용하며 시간을 뒤튼 것이 그 예가 된다. '쪼개기'에서는 전체를 해체한다. 하나의 원형을 해체해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새로운 창조의 재료를 만드는 것이다. 피카소가 평면을 분해해 그림 조각 맞추기 같은 입체적 형상을 탄생시킨 것, 통신 지역을 셀(cell)로 나눠 현대 휴대 전화(cellphone)의 기반을 만든 것이나, 하나의 화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세 결정 수백만 개로 이뤄진 LCD TV 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섞기'에서는 2가지 이상의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이는 다른 유전적 조직을 하나의 개체에 담는 유전공학, 과거 음악의 노랫말이나 멜로디 등을 수정하고 섞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힙합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인간의 창의성은 언제 어디서든 주변의 모든 것을 원재료로 삼아 휘고 쪼개고 섞고자 한다. 이 세 가지 전략은 각자, 때로는 둘 이상 협력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혁신을 완성한다. 인간의 창의성이 특별한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왜 소는 인간처럼 몸을 이용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춤을 안무하지 못할까? 왜 다람쥐는 나무 꼭대기까지 쉽게 먹이를 운반할 수 있는 승강기를 만들지 못할까? 왜 악어는 쾌속정처럼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발명하지 못할까? 이 책은 그 답이 자신의 기대를 깨뜨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가 발전해 만들어진일탈하는 창의성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 속 창조와 혁신의 비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수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가득한 이 책을 통해 인간 창의성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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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과학 - 하나의 세포가 인간이 되기까지 편견을 뒤집는 발생학 강의
최영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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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배 속 아이의 발달 과정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은데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이 겪는 변화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관심이 적습니다.... 그래서 굳이 '엄마의 몸'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습니다. 수정란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최대한 불리는 난자, 자궁에 착상을 하면서 엄마 세포를 먹어버리는 배아, 자궁에만 잠자코 있지 않고 엄마의 혈액 속을 돌아다니는 배아의 DNA까지, 임신은 축복이고 기쁨이라는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품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살펴봤습니다.    p.40

발생학이란 하나의 세포가 하나의 개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공부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이 책의 저자인 최영은 교수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생기는 건 달랑 세포 하나죠. 그런데 태어나는 아기는 사람 형태를 하고 있잖아요. 그 사이에 엄마 배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이 바로 제 수업 내용입니다."라고 발생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한다. 이 책은 약 2년 동안 《과학동아》에 연재된 '강의실 밖 발생학 강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발생학이란 낯선 학문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 이론을 개괄한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배아 복제, 세포 치료제, 암 줄기세포, 인공 장기 등 과학과 의학의 경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이슈까지 망라하고 있어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이야기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정자가 이동하는 데 자궁 근육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 정자뿐 아니라 난자 역시 치열한 경쟁을 거친 존재라는 것 등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동안 우리는 정자의 관점에서 수정 과정을 이해해왔다. 그 무대에서 난자는 조연이었고 자궁은 배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파적이며, 낡은 정보였던 것이다. 과학은 사실을 밝히는 학문이지만, 진짜 목표는 '점진적으로 편견을 없애는 것'이라는 말이 체감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유전학은 예외가 허락되지 않는 뻣뻣한 학문이 아닌, 여러 가지 설명과 가설이 모여서 선보이는 풍부한 맛이 일품인 학문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딱 멘델의 법칙까지만 배우죠. 도미노 블록이 넘어지듯 성별이 결정되는 것도, 염색체 하나가 통째로 꼬깃꼬깃 구겨져 세포의 한쪽으로 치워지는 것도, 세포가 엄마 유전자와 아빠 유전자를 구별하는 것도 모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쉽게 배울 수 없는, 그래서 있는지도 몰랐던 유전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p.70

남녀 성별은 어떻게 결정될까? 머리는 왜 몸통 위에 있을까? 손가락 모양이 각기 다른 이유는 뭘까? 왜 엄마의 면역 시스템은 배아의 태반을 공격하지 않을까? 자연 유산의 대부분은 엄마의 행동과 무관하다. 엄마의 몸 속 태아가 항상 선한 천사는 아니다. 등등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정보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정자를 밀어 올리는 자궁의 힘, 엄마 세포를 먹어버리는 배아, 난자들의 치열한 경쟁 등 우리의 시작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부터 우리는 잘못 알고 있었다는 깨달음으로 시작했던 이 책은 하나의 세포가 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처럼 그려낸다.

 

배아에서 시작해 머리부터 엉덩이, 등과 배 등 큰 부분들이 결정되고, 뇌와 손가락, 발가락 등 각종 기관이 만들어지고 점점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 간다. 하나의 세포가 인간이 되는 과정은 한마디로 경이로웠다. 두 세포가 만나 하나의 세포가 되고, 다시 이 세포가 하나의 인간으로 발달하는 과정은 셀 수 없이 많은 물질들과 구조와 규칙 속에서 모두가 쉴 새 없이 자기 몫을 해내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시작은 특별했던 것이다.

 

이 책은 실제 연구에 기반을 둔 과학적 사실들을 소개하고 있음에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어 누가 읽어도 거부감 없이 과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 같다. 선생님도, 인터넷도 알려주지 않는 신선하고, 놀라운 발생학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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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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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져요." 마음이 진정되자 피오나는 마침내 그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이 밤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나도 그래요." 토머스도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이것을 공유하는 특권을 누린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벅차서 뭐라 말하지도 못했다.

그 순간 예상 밖의 맑은 목소리로 피오나가 말했다. "저 별들이 아테네에도, 우리의 고향집에도 비치고 있겠죠. 모두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우리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그들은 짐작이나 할까요."     p.163~164

지중해 푸른 바다의 빛깔을 닮은 곳 그리스, 아테네의 고대유물과 산토리니의 그림 같은 풍경, 크레타의 아름다운 카페, 미코노스의 슈퍼파라다이스 비치 등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곳들이 가득한 나라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곳 그리스의 작은 바닷가 마을 아기아안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기아안나는 낭떠러지 중간에 만든 마을이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눈부신 바다와 항구가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 언덕 아래 항구에서 유람선 화재 사고가 발생해 선홍색과 오렌지색 불길이 아기아안나만에 떠 있는 배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푸른 바다 위에서 날름거리는 불길과 검은 연기는 마치 그림 한가운데에 찍어 놓은 그로테스크한 하나의 점처럼 보였다. 언덕 위에 자리한 음식점에서 우연히 함께 끔찍한 비극을 목격하고 있는 이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다들 언덕까지 올라오는 데 세 시간 정도 걸렸을 정도의 거리라 다시 내려간다고 해도 도움이 될만한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냥 설레이고,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풍경 속에서 예기치 못한 우연으로 커다란 비극을 목격하게 된 여행자들은 그날 어둠이 내리고 별이 하나 둘 떠오를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여행을 온 사연과 각자의 고민도 다른 네 명의 여행자는 어제 이맘때까지 만난 적도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모든 문제에 대해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삶에 관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바다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을 품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 주면서 다정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는, 내 주변 누군가에게는 일어났던 일처럼 느껴지는 그런 고민들이 여행이라는 비일상성이 주는 묘한 설레임과 만나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그런 게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행운을 바라는 그 모든 사람들을 봐요. 복권을 사는 사람들,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그 많은 사람들, 별자리점을 보는 숱한 사람들,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하거나 사다리 밑으로 지나가지 않는 사람들 말이에요. 다 소용없는 거예요, 안 그런가요?"

"하지만 사람들에겐 희망이 필요해요." 피오나가 말했다.

"물론 필요하죠. 하지만 우리의 행운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일이 잘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거죠. 앞에 검은 고양이가 지나간다거나 전갈자리로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 바깥에서 작용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p.307

독일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엘자는 방송국 대표와 사귀다 그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깨닫고 직장을 그만 뒀다. 그리고 남겨 두고 온 어떤 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며, 장기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미국 대학의 영문학 교수인 토머스는 안식년을 맞아 일 년간의 여행을 계획했다. 사실 이혼한 아내가 재혼을 하게 되어, 전처와 아들이 조금 더 편하게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아일랜드의 간호사인 피오나는 남자친구를 반대하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쳐 그와 함께 여행 중이었다. 문제는 함께 여행 중인 남자친구 셰인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과 그녀 만이 그런 그를 굳게 믿고 있다는 거였다. 영국인 청년 데이비드는 오직 사업과 돈 버는 데만 관심 있는 부모로부터 도망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세계여행 중이었다. 이렇게 너무 다른 네 여행자와 이곳의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삶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는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해나간다.

작년 겨울에 <그 겨울의 일주일>이라는 작품으로 마음 시린 계절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작가 메이브 빈치가 이번에는 눈부신 여름 풍경 같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리며 인물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그 마음이 페이지마다 느껴지는 작품이다. 누구나 살면서 삶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이 작품 속 네 명의 인물들처럼 말이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선택하는 순간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도, 선택을 번복할 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그럴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선택은 달라질 수도 있다. 누구도 혼자여서는 안 되는 밤, 서로의 곁을 지켜준 네 여행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 여름밤이 선사하는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해 보자. 그리고 당신 곁에는 누가 있는지 떠올려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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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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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미워하면 나도 미워하면 되는데 나를 미워하게 되더라.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꼭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그 사람을 좀 싫어할 필요가 있더라.    p.52~53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어피치, 튜브, , 무지, 프로도, 네오, 제이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의 사랑스러운 여덟 캐릭터와 젊은 작가들이 만났다.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그 세 번째는 소심한 오리 튜브와 국민 시팔이 하상욱 작가이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은 각자 서로 다른 성격에 콤플렉스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특하지만 친근한,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따뜻하고 위로를 안겨주는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페이지 구석구석에서 그들 캐릭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겁 많고 마음 약한 오리, 튜브. 평소에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화가 나면 입에서 불을 뿜으며 밥상을 뒤엎는 미친 오리로 변신한다. 작은 발을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튜브도 화가 날 땐 솔직하게 감정을 터뜨리며 오리발 킥을 날린다. 작가 하상욱, 스스로를 고매한 시인이 아니라 '시팔이'라 불러달라고 자청하는 그의 촌철살인 유머와 위트가 이러한 튜브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카카오프렌즈 시리즈가 사실 글보다는 라이언이나 어피치등 카카오 프렌즈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책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튜브만큼이나 작가의 글도 마음에 콕콕 박혀서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꿈을 꾸기 힘들었고, 나이가 드니 꿈을 깨기 힘이 드네.

하고 싶은 걸 몰라서 힘든 것보다,  할 수 없단 걸 알아서 힘이 들더라.    p.194~195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하기 싫은 일을 이렇게나 많이 하면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이 먹고 힘들까 봐 하는 일들이 나이 먹는 내내 나를 힘들게 하네', '안 해도 되는 말을 해버리면, 꼭 해야 되는 말이 생기더라', '시간이 없을 땐 하고 싶은 게 많고, 시간이 있을 땐 하기 싫은 게 많고,', '나이가 들면 세상을 더 알게 되는 건 맞지만, 세상을 다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등등 피식 웃게 만드는 농담 한마디처럼, 빵빵 터지는 말장난처럼 읽히는 글들이 때로는 그 짧은 문구 속에 세상이 다 담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상처 받고 울고 싶을 때 위로 따윈 필요 없다고 소리칠 수 있는 용기를 안겨 주기도 한다.

 

'일이 힘들면 관계가 귀찮고, 관계가 힘들면 일이 안되고.', 학생 때는 '공부가 하기 싫지만 학교 친구는 좋고',  직장인이 되니 '일은 하고 싶지만 회사 사람이 싫은' 그렇게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게다가 왜 그렇게 영혼 없는 위로나 겉치레들은 많은지.. 전혀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런 위로들은 살면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위로는 "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넌 할 만큼 했어"가 아니었을까.라는 작가의 말이 공감과 위로라는 말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미친 오리로 변신한 튜브가 야무지게 내뱉는 말들이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널 아끼니까 하는 말인데."

"그냥 아껴둬."

 

"내가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생각만 해."

 

튜브의 오리발 킥처럼 날리는 속 시원한 위로의 말들이 당신의 하루를 '잊고 싶은 오늘이 아닌, 잇고 싶은 오늘'로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 사랑스럽고 너무도 익숙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페이지 곳곳에 나타나서 그 귀여운 자태를 뽐내주는 것만으로 마음 속에 작고 동그란 행복들이 가득 차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시리즈이다. 그래서 다음에 나올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는 누구일지, 또 어떤 작가와의 콜라보로 웃음과 위로를 안겨줄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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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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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는 어떤 논리인지 이해했다. 지넷이 좋아하는 탐정소설이었다면, 애거서 크리스티나 렉스 스타우트나 할런 코벤의 작품이었다면 지금이 바로 미스 마플 아니면 네로 울프 아니면 마이런 볼리타가 사건의 전말을 폭로하는 마지막 장의 클라이맥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중력처럼 견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 p.163

열한 살 소년이 잔인하고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어린이 야구단 코치이자 교사인 테리 메이틀랜드가 거의 1,6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된다. 그곳은 야구 경기장이었고, 경기는 9회 말 상대팀이 1점차로 리그의 준결승전에서 이기고 있는 참이었다. 모두들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그 중요한 순간에, 경찰관 두 명이 3루 베이스라인을 따라 걸어 들어온다.

"테런스 메이틀랜드, 당신을 프랭크 피터슨 살인범으로 체포한다."

 

테리는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도 프랭크 피터슨이 언제 죽었는지 신문과 뉴스를 봐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자신은 다른 도시에 동료 교사들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에게도 그를 공개적으로 체포할만한 막강한 증거가 있었다. 범행 전후로 추측되는 현장 근처의 수많은 목격자들이 증언했고, 법의학적 증거 역시 테리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테리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확실했다. 피터슨이 납치됐을 때 유명한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었으며, 피터슨이 살해됐을 때는 최소 여덟 명과 저녁을 먹고 있었고, 그 이후의 시간 역시 동료 교사들, 호텔 라운지의 바텐더, 호텔 보안 영상 등으로 완벽한 알리바이가 만들어졌다. 상식적으로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의 완벽한 대역 혹은 공모자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범인이 죽어서 기뻐요. 기뻐요.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져서 기뻐요. 내가 너무 끔찍한 소리를 하나요?"

"그 사람은 지옥에 있지 않아요."

여자는 뺨이라도 얻어맞은 듯이 움찔했다.

"지옥을 몰고 오지."

홀리는 데이턴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조금 늦었지만 과속하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법이 정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 p.104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이나 채소가 색이 변질되고 형태가 망가지는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멍들지 않고, 탐스러웠던 과일들이 갈색 덩어리로 변해서 달콤했던 냄새는 사라지고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으로 변해버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겉보이게 매우 괜찮아 보이는 과일을 골랐는데, 먹으려고 반을 갈라 보니 안에서 벌레들이 득시글거리는 경우도 있다. 물컹하지도 않았고, 껍데기에 흠집 하나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벌레는 어떻게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이 작품의 1권과 2권 표지에 등장하는 캔털루프 멜론의 겉과 속 모습이 보여 주듯이, 스티븐 킹은 바로 이 설명할 수 없는 의문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풀어 낸다.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자신만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서, 오싹하면서 소름 돋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경우 여타의 스릴러 작품이었다면, '몇 년 동안이나 가깝게 지내왔지만,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내가 알았던 그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어요.' 등등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범죄자의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은 평소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여기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초자연적 공포를 결합한다.

이 사건의 중심 플롯은 '마치 지문과 DNA가 일치하는 대역이라도 있는 것처럼, 살인 용의자가 동시에 두 곳에서 목격되었다'는 점이다. 그 미스터리는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예상 외로 사건은 쉽게 종결이 되어 버린다. 그것도 1권의 중반이 조금 지나서, 느닷없이, 다소 허무하게 말이다. 하지만 담당 형사 랠프 앤더슨에게는 여전히 의문점들이 남아 있었다. 범인의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발자국이 딱 끊겨 버렸으니 말이다. 영영 해답을 찾을 길 없는 질문들이 남았고,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거꾸로 뒤집어서 살펴 볼 것, 그리고 고정관념을 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직 경찰 알렉 펠리는 '파인더스 키퍼스'로 전화를 걸어 빌 호지스를 찾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3부작'에서 등장했던 바로 그 말이다. 빌이 없는 지금 홀리 기브니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2권이 시작되면서 홀리는 미궁에 빠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녀는 이 일련의 범죄에서 '이방인(outsider)'의 존재를 감지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불안하고, 불편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마력으로. 그렇게 우리는 홀린 듯 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1권을 읽기 전에, 2권도 미리 준비해두어야만 한다. 누구라도 1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면, 숨도 못 쉬고 2권의 첫 페이지를 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작가가 독자를 어디로 이끌어갈지에 대해서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스티븐 킹의 어떤 작품에서든,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냐 싶긴 하지만.  그러니 일단 읽어보시길. 스티븐 킹이 왜 '이야기의 제왕(king)'인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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