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문신한 소녀
조던 하퍼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놈들이 여기 도착할 때쯤 우리는 없을 거다. 놈들에게 득보다 실이 많을 거란 말 꼭 전해." 아빠가 말했다.

"지금 총을 든 건 너니까 네 맘대로 해봐. 하지만 온 세상이 널 쫓고 있어. 네가 온 세상을 죽일 수는 없잖아. 그 남자가 말했다.   p.51

열한 살 소녀 폴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거의 절반 동안 아빠를 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문을 나오다 거기 우뚝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를 마주한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고, 강도이고, 감옥에 있어야 했다. 탈옥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의 아빠를 보며 폴리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생각하며, 공포에 얼어붙었다.

"아빠 말 잘 들어. 넌 나랑 같이 간다. 당장. 수선 피울 시간 없어."

도망치고 싶었고, 무서웠고,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폴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아빠가 시킨 대로 따라간다. 낡은 차를 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모텔이었고, 아빠는 팔뚝에 파란 번개 문신을 한 남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이건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지금 아주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가 이 상황을 바로잡겠다고 말하며 나간다. 대체 이들 부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네이트는 감옥에 있을 때 범죄조직 아리안 스틸의 두목인 미치광이 크레이그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 대가로 크레이그는 그에게 사형 집행 영장을 내린다. 크레이그는 철통같은 경비가 유지되는 감방에서 살고 있었지만, 바깥 세상에는 그의 발과 눈이 되어주고, 손이 되어줄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하여 네이트와 그의 전부인, 그리고 딸이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고, 네이트는 전처인 애비스와 그의 새 남자가 시체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놈들이 아이를 쫓고 있을까?

네이트는 이제 자신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하나 아니면 죽어야 하나. 네이트는 자신이 파멸로 몰고 간 이 아이, 폴리를 구해낼 때까지는 살아 있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세상 끝까지 계속 도망쳐야 했다.

 

 

"강해지려면 먼저 약해지는 걸 느껴야 해." 네이트가 말했다.

"?"

"닉 삼촌이 예전에 자주 이렇게 말했어. 근육을 강하게 키우고 싶으면, 근육의 힘이 다 풀리면서 스스로 약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밀어 붙여야 한다고. 인생의 이치가 대부분 그래. 시종일관 자신이 강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더 이상 강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야. "     p.143

계속 도망치는 것은 정답이 될 수 없었다. 세상 어디도 그들에게 안전한 곳은 없었으니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미치광이 크레이그가 사형 집행 명령을 철회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네이트가 선택한 것은 그들의 사업에 손해를 입히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폴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현금을 훔치고, 마약을 강탈한다. 아리안 스틸은 사업체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네이트는 그들이 휴전을 원할 때까지 계속 그들의 것을 훔칠 작정이었다. 네이트는 폴리에게 갱단들의 계급 체제를 알려주고, 운동을 시키고, 무기 사용법과 목 조르기 등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을 익히게 한다. 그래서 어린 딸과 아빠가 조직으로부터 도망다니는 추격 서사는 여타의 작품에서와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아이큐가 높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생활을 했던 열한 살 소녀는 강도 짓을 하며 쾌감을 느끼고,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딸에게 관심조차 없었던 아빠는 아이 대신 자신의 목숨으로 거래를 하겠다고 생각할 만큼 부성애를 깨닫게 된다. 이들 부녀는 쫓기는 입장이 아니라면 마치 가해자처럼 보일 정도로 당당하게 마약 창고를 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과 맞서 싸운다.

책을 읽는 내내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딸과 아빠가 위험에 빠져 있다는 설정과 세상 전체가 적이 되어 버린 그들에 대한 암흑 조직의 추격 스릴러라는 익숙한 서사가 뻔하지 않게 흘러 가는 전개도 흥미로웠고, 네이트와 폴리, 그리고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를 비롯해서 여러 등장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더욱 긴장감 넘치게 흘러간다는 점도 지루할 틈이 없도록 만들어 주었다. 암흑 조직과 관련된 각종 묘사와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장면들의 속도감 역시 이 작품을 마치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데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인 조던 하퍼가 인기 드라마의 작가이자 총괄 제작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흘러가는 스릴러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육체로 내 삶을 평생 경험한다. 성실하게 돈을 벌 것이며, 지난해 퇴직한 아내와 함께 딸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행복과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소소한 행복을 자주 맛보며 살고 싶다. 그런 기쁨을 주위에 나눠주고도 싶다. 하지만 늘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내 속에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궈진 마음을 온통 쏟아 부을 그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럴 때 나는 내 몸 이상이며 내 마음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p.38

생태보호연구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 진우는 어느 날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 공고를 발견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우주를 꿈꿔왔던 진우는 우주인 선발에 지원하고 다섯 번의 관문 중에 3차에 통과한다. 4차 테스트를 하루 앞두고 진우는 팀장과의 면담에서 이번 연구 평가에서 그에게 미달이라는 평점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납득할 수 없다며 성과를 다시 점검해달라고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군항공학교에서의 스케줄은 닷새 동안 그곳에서 먹고 자며 우주복에 싸일 몸의 모든 것을 검사하는 과정이다. 대뇌 소뇌, 각막 수정체, 고막 달팽이관, 치아 목젖, 목뼈 척추, 췌장 비장, 소장 대장... 이 모든 걸 감싸주는 피부와 정신 상태까지도... 그 모든 것을 검사하는 시간 동안 몸이 견뎌내야만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주를 꿈꾸던 한 샐러리맨 연구원이 우주인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도전과 경쟁 그리고 우정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한 나라에서 뭐든 최초가 되려면 여러 능력이 필요하다. 용기나 돌파력 같은 것도. 지식보다는 지혜가 중요하고 지혜보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이진우와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경쟁자들은 이러한 희박한 확률을 뚫고 우주인 후보에 선발이 될 것인가. 과연 누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될 것인가.

 

 

사실은 여기 오지 않고 인생을 다르게 살 수도 있었는데.... 훨씬 평범하게. 축구하고 등산 가고 연구하고 딸애들 데리고 꽃놀이에 단풍 구경 다니고. 모스크바는 돈 모아서 구경 올 수도 있었는데. 아버지 모시고, 가가린센터도 하루 관광 코스로 넣어서. 하지만 이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지 않는가.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는 내가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p.251

이 작품 속에서 '일상의 중력'을 벗어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주인'이라는 실체를 잡기 어려운 꿈같은 목표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낯선 풍경들을 보여 준다. 우주에서 중력이 없어지고 기압도 낮아지면 몸 속에 있는 가스가 몸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만약 썩은 치아가 있다면 그 틈새로도 가스가 나와 통증 때문에 우주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신체 검사 과정에서는 어금니 하나하나까지 검사를 해야만 한다. 우주에 다녀오면 평소보다 저혈압이 돼서 어지럽게 마련인데, 그걸 잘 견디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혈압을 높였다가 갑자기 떨어뜨리는 테스트 과정도 있다. 혈압이 170이 되었다가 갑자기 70까지 떨어지게 되었을 때의 현기증과 메쓰꺼움으로 인해 실신하는 지원자들이 속출한다. 이렇게 기절할 만큼의 물리적인 상황 속에서 그저 정신력으로 버텨야만 하는 거라는 걸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거기다 이들은 우주로 가려고 더 높은 관문을 지날수록 이직이나 휴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4차 테스트 후 열 명이 러시아로 가서 5차를 치르고, 넷이 남으면 한 해 동안 정식교육을 받게 되는데, 정작 우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이다.

작가는 우주인 후보들과 함께별의 도시라고 불리는 즈뵤즈드니 고로도크까지 동행하여 우주인 선발 경쟁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우주인 선발 과정과 훈련 과정은 굉장히 리얼하고, 현장감있다. 일반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디테일한 묘사들이 매우 현실감 있게 전달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작가가 13년 동안 취재하고, 무려 35번의 개고를 거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이 꿈을 쫓다가 수렁에 빠지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평범한 샐러리맨들에게 작은 울림을 남겨줄 것 같다. 누구나 한때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어른이 되어 가면서 현실적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확률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을 접고 한때 뭔가를 동경했다는 사실마저 차츰 잊어 버리고 산다. 하지만,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고 싶을 만큼의 갈망을 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지금의 현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강왕 곤충 슈퍼 대도감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11
이수영 지음, 남상호 감수 / 글송이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11권은 '곤충 슈퍼 대도감'이다. 우리나라의 곤충 150종이 총집합되어 있다고 하니, 아이들의 과학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곤충은 지금까지 알려진 종류만 해도 약 100만 종,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종류까지 합치면 무려 300만 종이 넘는,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이다. 지구 동물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곤충의 세계는 그 종류만큼이나 몸의 생김새와 생활 방식도 다양해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이제 여섯 살이 되는 아이가 요즘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바로 바다 생물과 곤충이다. 더 어릴 때는 공룡에 열광하더니, 동물, 바다 생물, 곤충으로 점차 관심사가 확대되고 있다. 물론 이 중에서 '곤충'이 누구에게나 가장 익숙한 분야라서 어른들도 쉽게 알려줄 수 있는 이름들이 많지만, 흔한 만큼 압도적으로 그 종류가 많아서 낯설게 느껴지는 곤충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보는 곤충 대도감을 통해서 아이와 함께 나도 곤충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사는 곤충은 약 1 4천 종이라고 한다. 그중 딱정벌레목이 40퍼센트, 나비목이 25퍼센트로 가장 많고, 그다음은 벌목, 노린재목 순이다. 그 종류가 너무 압도적으로 많아서 알아볼 엄두가 안나지만, 꼭 알아야 할 대표적인 곤충들이 소개되어 있어 쉽게 관찰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화보처럼 생생한 사진은 굉장히 리얼하게 근접 촬영이 되어 있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데 굉장히 좋았다. 각 페이지 별로 곤충이 어떤 목 분류에 포함되는지, 그리고 이름과 학명이 소개되어 있고, 해당 곤충의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과 크기, 활동기, 사는 곳 등 기본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기한 곤충 상식'이라고 해서 해당 곤충에 대한 가장 중요한 상식들이 별도로 소개되어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산호랑나비는 들보다 산을 좋아하며, 남방노랑나비는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고, 왕자팔랑나비는 배에 난 털을 알에 붙여서 천적의 눈을 속인다고 한다. 덤불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뿔나비도 있었고,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한국 고유종인 깜둥이창나방도 있고, 몸속에 독성 물질이 있는 청가뢰, 도토리 속에 알을 낳는 도토리거위벌레 등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곤충이 성장 단계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탈바꿈의 과정도 수록되어 있어, 완전 탈바꿈과 불완전 탈바꿈을 하는 곤충들이 어떻게 다른지 한 눈에 알아보기 쉬웠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는 산과 들에서 보이던 곤충들이 자취를 감추곤 하는데, 그러한 곤충들이 겨울나기를 어떻게 하는지도 소개되어 있다. 알에서 어른벌레가 되기까지의 한살이 과정도 단계별로 수록되어 있어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도시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평소 일상에서 곤충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산과 들에 일부러 찾아 가거나, 시골 어디로 여행을 가는 등 시간을 내고 멀리 이동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곤충들이라 이렇게 책을 통해서 다양한 곤충의 세계를 접하는 시간이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아동 도서 퀄리티가 정말 훌륭해서, 화보도 생생하고, 수록되어 있는 정보도 교과서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정보 전달 식으로 되어 있어 더욱 좋은 것 같다.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는 그 동안 동물, 공룡, 생물, 요괴 등 다양한 시리즈로 출간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다음 번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과학 도감을 만나게 될 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예측 -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정현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존에는 인생을 두 시기로 나눴습니다. 배우는 시기, 그리고 배운 것을 활용하는 시기로 말이죠. 배우는 시기에 자아가 형성되고 교육이 이뤄졌다면, 다음 시기에 사람들은 배운 것을 사용해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21세기에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학습하고 혁신해야 합니다.   p.50

이 책은 진화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세계 석학들과 다가올 미래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 <총균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슈퍼 인텔리전스> 닉 보스트롬을 비롯해서 인재론의 권위자인 린다 그래튼, 경제학의 대가인 다니엘 코엔, 노동법 전문가 조앤 윌리엄스, 인종사가 넬 페인터, 전 미 국방부 장관 윌리엄 페리까지.. 그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여덞 명의 석학들을 인터뷰했다. 저자인 오노 가즈모토는 놈 촘스키, 마이클 샌델, 짐 로저스 등 세계 주요 인사들과 단독 인터뷰를 해온 경험 풍부한 국제 저널리스트인데, 베테랑 언론인답게 날카로운 질문으로 깊이 있는 대담을 이끌어 내고 있다.

무엇보다 여타의 인문학서나 미래 예측을 다루고 있는 책들에 비해 술술 잘 읽히고, 전혀 어렵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들을 완독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다. 이유는 다소 어렵고, 분량도 있고 해서 쉽게 읽기엔 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들의 핵심 사상들을 알짜배기만 쏙쏙 골라 이해할 수 있게 담고 있는데다, 대화체 서술로 읽기도 편하고, 책의 두께도 얇아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앞서 말한 정년과도 맞물리는 이야기인데, 6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기업에서도 이를 지원해야 하고요. 60세에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더군다나 출생률까지 낮아지면 다음 순서는 명백한 파국입니다. 그런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60대 이상의 고령자와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p.132

역사를 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연대나 지역을 한정해서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 각각에 집중해서 연구하는 방법과, 장기적 시계에서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방법이다. 최근에는 유발 하라리를 비롯해서 많은 학자들이 후자의 방법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자면 역사학뿐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철학 등 전 분야에 걸친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에 답한 것이 바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처럼 인류 문명에 대한 거시적 전망과 개인의 삶에 대한 미시적 탐구를 모두 담고 있으려면, 전혀 다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사상을 한꺼번에 읽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발 하라리의 자택에서 미래에 인류가 어떤 현실을 맞닥뜨리게 될 지와 세계의 가치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미래 예측을 시작한다. 이어 제레드 다이아몬드와의 대담에서 저출산 고령화나 격차와 같이 전 세계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닉 보스트롬과 인공지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은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 전반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 이끄는 혁명의 한가운데 있고, 그것이 미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예측 가능한 면도 있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세계적 지성들의 혜안 있는 식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미래 예측뿐만 아니라 실업 문제, 난민 문제, 북한 핵 문제 등과 민주주의의 위기, 혐오 사회의 도래 등 바로 현재의 그것을 함께 담아내고 있어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어 흥미로웠다. 물론 아무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여덟 명의 석학들이 제시하는 예측과 날카로운 통찰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또는 앞으로의 위험에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해 고민해본다면, 이 책은 당신을 미래로 이끌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
bonpon 지음, 이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모던한 패션에, 새빨간 립스틱. 꽤 시선을 끄는 스타일이지만 사실 저는 내향적이라, 눈에 띄는 차림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다만, 굳이 이 나이가 되어서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뭐라던 무슨 상관이야, 나만 즐거우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어요. 백발이 되어 새로운 멋을 알게 되다니. 나이를 먹고 나서야 즐길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p.100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귀여운 옷차림의 노부부는 일본 센다이에 거주하는 60대 부부이다. 요즘은 웬만한 60대들에게 백발을 보기가 힘들어서인지,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 있는 두 부부의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bon은 남편, pon은 아내의 별명이다. 딸이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들 부부는 2016 12, 두 사람의 닉네임과 결혼기념일(1980 5 11)에서 따온 계정 ID ‘bonpon511’으로 부부가 함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2019 2월 현재, 팔로워 수 80만 명에 이르는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하얗게 센 머리와 꼿꼿이 선 포즈, 닮은 듯 다른 옷차림을 하고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전 세계 SNS 유저들은 "이런 부부가 되고 싶다",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 "나이 드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우리도, 이렇게 입어볼까?", "이런 게 멋지게 늙어간다는 거구나!" 라며 멋쟁이 노부부의 삶에 공감하며 열광하고 있다. 비슷한 옷을 입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설레 이는 소년, 소녀의 모습처럼 느껴져서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염색하지 않은 흰 머리와 너무나 꼿꼿해 조금은 어색한 자세마저 만화 캐릭터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을 즐기는 그들만의 특별한 방법과 4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원만한 부부 사이의 비결, 그리고 여전히 알콩달콩 재미있게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우리 부부는 묵묵히 걸을 뿐이지만, 굳이 대화가 없어도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고,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즐겁고, 편안해요.

세상에는 여러 부부가 있고, 저마다 다른 모습일 거라 생각합니다.  p.175

남편의 퇴직을 2년 앞두고, 함께 살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들 부부는 정년퇴직 후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넓은 집을 처분하고 오랫동안 살던 아키타를 떠나 새로운 도시 센다이로 이사를 결정하게 된다. 오랫동안 시어머니, 두 딸과 함께 살던 단독주택에서 노부부를 위한 작은 아파트로 옮기는 과정은 많은 것들을 버리고, 줄이고, 간소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이 책의 전반부는 그렇게 시작되는 그들의 세컨드라이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사를 결정하고, 내부수시를 하고, 살림살이를 처분하고, 온전히 두 사람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는 소소한 일상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이들 노부부의 스타일링에 대한 대목이 등장한다. 염증으로 인해 흰머리 염색을 조금 이른 나이에 포기하게 된 아내와 새치 때문에 이미 흰머리였던 남편의 사연으로 시작해, 백발이 되고 보니 기존의 옷들이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게 되어 조금씩 스타일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들은 백발이 되어서야 새로운 멋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커플 코디로 옷을 입고 외출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실제로 스타일의 방법이라든가, 코디룩들이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시밀러룩에 관심이 많은 패셔니스타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남편이 정년 퇴직을 하게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어 아내가 더 피곤해진다고, 그래서 노부부들이 다투게 될 상황이 많아진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다. 젊은 시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남편이라 아이들과 따뜻한 애정을 나누지 못해 이제 다 커버린 자식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회사와 집만 오가느라 변변찮은 취미 한번 누리지 못해 퇴직 후에 오히려 집에서 공허해지는 남자의 상황도 이해가 간다. 반면 평생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지친 아내 입장에서는 아이도 커서 독립하고 남편도 바깥일을 안하게 되니 이제는 좀 쉬고 편하게 살고 싶은데, 집에서 남편 세끼 밥상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니 귀찮고 피곤할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은퇴 후 제2의 인생, 소위세컨드 라이프를 두 사람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수십 년 후면 나에게도 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사는 둘이 함께 분담하고, 식사는 간소하게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같은 취미를 찾아서 시작하고.. 이들의 일상처럼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할 수 있다면 나이 드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를 먹은 후에야 즐길 수 있는 일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백발이 되어도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다가올 내일이 설레 이게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