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선 옮김 / 에이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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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일어나 앉았다. "왜 못 해요? 그러면 여왕이 될 텐데."

"나는 여왕이 되고 싶지 않아! 내가 되고 싶은 건... .나도 모르겠어. 결혼을 할 거라면, 나는 사랑과 로맨스와 열정이 있었으면 해. 사랑에 푹 빠지고 싶다고." 캐스는 찻잔에 차를 따랐다. 손이 떨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상기되었다. 왕 이야기와 재버워크의 습격 탓일 거야... 그렇지만 대체로는 꿈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p.9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던 인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하트 여왕이 아닐까 싶다. 앨리스의 말대꾸에 분노로 얼굴이 벌게져 "저 아이의 목을 쳐라! 목을...." 이라고 소리부터 버럭지르던 하트 여황.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심기를 불편하게 해도,, 금세 불같이 화가 나서는 일분에 한 번꼴로 소리를 지른다. "이놈의 목을 쳐라!" "저 놈의 목을 쳐라!" :당장 목을 쳐라!" 오죽하면 그날 여왕을 처음 만난 앨리스가 여왕이 사람들의 목을 베는 걸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을까. 크건 작건 모든 골칫거리를 잠재우는 여왕의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당작 저자의 목을 쳐라!" 이 작품은 바로 그 하트 여왕의 소녀 시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트 여왕이 어떻게 참수형을 즐기는 냉혹한 미치광이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프리퀄인 셈이다.

마리사 마이어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로 만났던 작가인데, 시리즈 첫 편을 '신데렐라'로 시작해 두 번째 작품은 빨간 모자, 세 번째는 라푼젤을 모티브로 썼고, 마지막 작품은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그려진 이야기였다. 지구에서 달로 건너간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인 '루나', 그리고 오랜 세월 지구와 동떨어진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지구인과는 너무도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된 루나인들을 기본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를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으로 해석해 그려냈었다. 그래서 이번 신작 역시 굉장히 기대가 되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과 수수께끼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내가 어떤 걸 만들 수 있는지 당신은 먹어봐서 알잖아요. 나를 향한 개인적 감정이야 어떻든 간에, 사업적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다른 데서는 먹을 수 없는 가장 풍미 넘치는 케이크, 가장 달콤한 파이, 가장 부드러운 빵을 찾아 사람들이 왕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들 거예요."

하타가 뜻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캐스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베이커리를 열 계획이로군요."    p.368~369

캐서린은 하트 왕국 최고의 제빵사이자 자신만의 베이커리 가게를 여는 게 꿈인 소녀이다. 그 날은 바위 바다거북 만의 후작과 후작부인인 부모와 함께 왕의 파티에 초대장을 받아 무도회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후작부인이 골라준 붉은 벨벳 드레스 차림의 캐서린은 무도회장이 온통 흑백의 바다이자 당황한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가 흑백이라는 것을 어머니가 몰랐을 리가 없고,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키가 작고, 우유부단하고, 그다지 영리하지 않은 왕이, 그날 캐서린에게 프로포즈를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캐서린은 왕과 결혼할 생각도, 여왕이 되고 싶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왕의 고백을 피해 정원으로 도망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데, 그녀를 깨운 건 새로온 궁정의 조커 제스트였다. 그렇게 고양이 체셔, 회중시계 토끼, 공작 부인, 바다거북, 모자장수 등 원작에서 만났던 익숙한 캐릭터들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캐서린은 조커 제스트에게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고, 하트 왕국은 재버워크의 습격으로 소란스러워진다. 과연 캐서린은 왕의 구애를 피해 운명적인 끌림이 이끄는 대로 갈 수 있을지, 그녀의 소원대로 하트 왕국 최고의 베이커리를 시작할 수 있을지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제빵사를 꿈꾸던 사랑스러운 소녀는 어떻게 잔혹한 하트 여왕이 되었을까. 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원작에 등장했던 모든 수수께끼와 비밀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 모든 동화의 결말은 여지 없이 해피엔딩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래서 결국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끝이 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우리의 주인공이 이렇게 고난과 역경을 거치고, 괴롭힘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 잘 될 거야. 라는 식의 이상한 희망 같은 걸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에서 달콤한 레몬 타르트를 보며 반짝반짝 기뻐하던 캐서린은 마지막 장에서 누군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저자의 목을 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한다면, 슬프지만, 아름다운 하트 여왕의 이야기를 꼭 만나 보길.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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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천재가 된 홍 대리 -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는 생활 속 법률 상식 천재가 된 홍대리
김향훈.최영빈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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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고 나니 법이란 게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알아두면 보험을 든 것처럼 사고가 났을 때 실질적 도움이 되고, 믿을 만한 구석이 되는. 우리 삶에서 손해나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닐까.   p.147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무빙워크를 탔다.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 중년 여성, 휴대폰을 보고 있는 중학생, 노부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뛰어가는 초등학생 등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간대였다. 그때 갑자기 무빙워크가 멈췄다. 홍대리는 급하게 무빙워크 손잡이를 잡느라 허리를 삐끗하고, 아기를 안고 있던 아빠는 앞쪽으로 넘어지고, 휴대폰을 보던 중학생이 쓰러지며 나이 든 여자의 팔을 붙잡고.. 줄줄이 넘어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마트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구급차를 부르고 난리가 난다. 그 사고의 원인은 어떤 꼬마가 무빙워크의 비상정지 단추를 누른 거였는데, 아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다쳤다면 책임은 아이의 부모에게 있는 것일까, 마트에 있는 것일까.

이렇듯 돌아보면 일상은 늘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집을 한 채 사더라도 세법을 알아야 절세를 하고, 노동법을 알아야 나를 괴롭게 하는 부당한 회사의 처우에 맞서 단호히 대처할 수 있다. 하물며 가장 안락해야 할 내 집에서조차 이웃으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소음과 흡연 분쟁 때문에 건강을 잃고 경찰서를 드나들기도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반려동물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거나 행인을 물기라도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더 많이 알고 덜 아느냐에 따라 유리함과 불리함이 나뉜다면 누구나 법률에 대해서 기본적인 공부는 할 필요가 있다.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하지만 선뜻 법률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도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한 것이다.

'법전'이라고 하면 두꺼운 사전을 떠올리며 딱딱하고 고정적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법은 오히려 적용 범위에 따라 달라지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었다. 그제야 남 대리가 한 '법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법이란 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면 상대편에게는 그게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p.161

자기계발의 독보적 최강자 홍 대리 시리즈가 이번에는 '법률' 편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회계와 기획 등 회사 업무와 관련된 부분에서, 이후에는 골프, 주식, 독서, 영어, 일본어, SNS, 독서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던 홍대리가 이번에는 법률 천재가 되었다. 홍대리 시리즈는 직장인들이 어려워하는 분야이거나,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분야를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홍대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스토리텔링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벌써 십 년이 넘게 이어지는 시리즈물이라 이번에도 기대가 되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직급인 대리라는 점도 친근감이 있고, 스토리 자체도 흥미롭게 진행되어 지루할 틈이 없는 시리즈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출간된소설로 읽는 생활 법률책으로, 탄탄한 구성과 재미있는 스토리를 따라 가면서 쉽게 생활 속 법률 상식들을 배울 수 있다. 내 재산을 지키는 법률 상식, 일상 속 분쟁에서 이기는 법률 상식, 직장 내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법률 상식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로 누구나 일상에서 부딪칠 수 있는 법률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짚어 주고 있다. 부모님이 산 건물에서는 층간 소음과 반려동물 문제로 매일 이웃 간 싸움이 벌어지고, 친구는 회사가 망했다는 이유로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속을 끓이고, 조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의 관리 소홀과 무책임한 태도로 사고가 빈번하고,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상품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날벼락이 떨어지고.. 오늘도 홍대리의 일상은 파란만장하다.

홍대리에게 닥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우리는 초상권 침해, SNS 1인 마켓 피해, 층간 소음, 교통사고 합의 등 일상 속 분쟁 문제를 비롯해 상표권 분쟁 대처, 임금체불, 부당해고, 업무상 계약서 작성 등 직장 내 법적 문제와 전세 계약 갈등, 임대차계약서 작성, 주식 사기 피해 대처, 유산 및 상속 방법에 이르기까지 재산을 지키는 법률 상식까지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다. 거기다 신뢰할 수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법, 마을 변호사 제도 이용 방법 등 법률에 대한 기본 정보가 전혀 없는 일반인들에 실제 활용할 수 있는 팁들도 가득하다. 일상 속 크고 작은 법적 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굳이 변호사를 쓰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법률 지식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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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평평했을 때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것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한혁섭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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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 동안이나 사람은, 더 정확히 말하면 남자는 여자를 성적으로 흥분시켜서 유혹하거나 혹사한 허리를 회복시키는 물질을 찾고 있다. 20세기 후반 정확히 최음제는 아니지만, 비아그라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장 유명한 최음제는 스패니쉬 플라이였다. 딱정벌레 날개로 만든 이 최음제는 로마 시대부터 피곤하거나 음탕한 사람이 남용하였다. 그 명성을 어떻게 지켰는지 모르겠지만, 미스터리에 쌓인 최음제 효과는 비뇨기의 자극 정도였으며, 구토, 설사, 영구적인 신장 손상에서 심장 부정맥, 사망까지 이르는 부작용이 있었다.   p.42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진실과 다른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가짜 과학은 그 시대의 아집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그러한 과거의 수상한 과학 이론을 추적해 우리가 한때 믿었던 진실 뒤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전혀 믿기 힘든 사실들을 과거의 사람들은 실제로 믿었던 과학 이론들은 다소 충격적인 부분도 있고, 실소를 머금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가장 의심스러운 가짜 과학 중 어떤 것은 최근에야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의학이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지금부터 백 년 뒤에 이 책과 비슷한 책이 쓰여진다면,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을 미래의 그들은 비웃게 될 지도 모르겠다.

두개골 측정으로 개인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골상학으로 시작되는 흥미로운 과학 이론들의 세계는 굉장히 놀랍고,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과거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적이 실제로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흥미로운 과학 이론들은 이렇다. 원숭이 고환으로 정력을 회복하고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지구에 비어있는 지하 공간이 있으며, 북극과 남극을 통해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코카인과 헤로인으로 많을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어 약으로 사용했으며, 담배로 인간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 화학의 바탕인 연금술에서는 모든 비금속은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여성의 오르가슴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빅토리아 시대 의사는 쉽게 화를 내는 강한 성격의 여성에게 생식기 마사지를 권장하기도 했다. 덕분에 의학적인 치료 목적으로 의료 자위행위를 돕는 의사들이 있었으며, 이 치료법은 결과적으로 성인용품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간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세기까지 수천 명의 여성이 남편 모르게 의사에게 반복적으로 자위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수상한 과학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아돌프 히틀러도 역시 지구 공동설을 지지하였다. 모든 신비한 것에 관심을 가진 극우 괴짜들의 모임인 툴레협회가 독일의 지원 단체로 가담하였다. 나중에 이 비밀스러운 협회에서 갑자기 나치가 생겼다. 툴레협회는 아주 옛날에 사라진 지배 종족의 발상지라고 생각한 티베트에 지하 세계의 출입구가 있다고 믿었다. 히틀러와 추종자 대부분이 이것을 사실이라고 믿었다.   p.126

이 책에 소개된 가짜 과학 중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것은 바로 잠재의식 메시지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영화관에서 있었던 비밀 실험으로 관객들에게 '콜라를 마셔라' '팝콘을 먹어라'는 플래시 이미지를 영화와 합쳐 편집된 영화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16주 동안 4 5천 명의 영화 관객에게 했던 이 실험으로 휴게실의 콜라와 팝콘 판매가 각각 18퍼센트, 57퍼센트 증가했다고 하는데, 이는 놀라운 광고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과연 그 실험의 결과과 과학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것일까.

사실 이는 일종의 정치적 음모와 사기 행각이었고, 이는 꽤 오래 계속 퍼져나갔다. 게다가 속기 쉬운 대중의 탐욕은 실제로 엄청난 시장의 힘이었기에, 이는 수면 학습법, 모차르트 효과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모차르트 음악과 듣는 사람의 지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결론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은 대중들에게 퍼져 수백만 명의 예비 엄마가 태아에게 긍정적인 메시지와 모차르트 음악을 함께 듣게 하기 위해 몰려들었으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아니냐는 생각부터 들게 하는, 그러나 우리가 한때 믿었던 충격적인 과학 이론의 세계는 마치 재미있는 역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 시대적인 배경과 당시의 상황으로 인해, 지금 보면 어리석고 이상해 보이는 이론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렇게 수상한 이론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과학 이론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탄생배경을 함께 살펴보고 있기에 과학 도서로서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왜 빅토리아 여왕이 주치의의 조언으로 아편을 복용했는지, 어떻게 세균설의 인정을 주저하다가 살인을 초래했는지, 왜 가톨릭 탐험가가 남미의 부족을 식인종이라는 소문을 만들어냈는지 등등 흥미진진한 가짜 과학 이론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게다가 몇몇 이론들은 여전히 오늘날까지 믿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또한, 그러한 가짜 과학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이론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어쩌면 당신도 믿고 싶은 거짓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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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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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을 '태어났다, 살았다, 죽었다'로 요약할 수 없듯이 신문에 난 몇 줄의 기사만으로는 일의 내막을 알 수 없다. 사건 기록은 수십, 수백 배나 두껍다. 공판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보면 기사의 행간으로 읽을 수 없는 구구한 사정과 복잡한 동기가 있어 몰래 울컥해지는 사건도 있는 법이다. 실제의 인생, 실제의 사건은 사건 기록보다 또 수십 배는 두꺼울 것이다. 그리고 법정에서 드러난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p.34

20대 초반의 남성이 열 살 가까이 연상인 여자친구와 함께 모텔에 투숙했다. 얼마 후 모텔 프런트에 여자가 사색이 되어 달려온다. 남자친구가 젤리를 먹다가 목에 걸려 숨을 못 쉰다고, 남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질식사로 사망한다. 남자의 가족들은 슬픔 속에 장례를 마치고 시신을 화장했는데, 사십구재를 앞둔 어느 날 한 장의 서류가 날아온다. 남자가 가입한 3억 원짜리 사망보험증서, 수익자는 엉뚱하게도 여자친구였다. 의혹을 느낀 남자의 가족은 수사를 요청했고, 검찰은 젤리가 목에 걸려 죽은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여자친구가 보험금을 노리고 남자친구의 숨을 틀어막아 죽였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살인죄로 구속기소되었다.

사건의 개요만 보더라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서도 숱한 보도가 되었던 실제 사건인 '산낙지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도진기 작가는 당시의 재판을 비난하거나 누구를 규탄하거나 현실의 결론을 바꾸려는 의도로 작품을 쓴 것이 아니므로, 소재도젤리로 바꾸었고, 당사자들의 성별도 바꾸었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그 사건과 이 작품의 사건을 동일시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허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도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1심에서는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시신을 부검하지 않고 화장했으므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였는데, 사실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이 사건은 재판부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더 이 작품이 궁금했다. 대체 이 사건의 배경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으며, 또한 법은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말이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하려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 민사재판은 두 사람이 싸우는 일이기에 한쪽이 상대방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증거를 갖고 있기만 하면 이긴다. 거칠게 말하면 51퍼센트의 증거로도 승소한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한 인간을 감방에 보낼까, 말까, 심지어는 교수대로 보낼까, 말까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 정도 증거로는 턱도 없다. 합리적인 선에서의 '의심'이 전혀 없는 수준까지 입증되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원칙이며,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p.131

이 사건의 경우 피고는 이미 다수의 범죄전력이 있는 신용불량자였고, 빚 독촉을 받던 중 보험금을 타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목격자도 없고, 영상 기록도 없고, 피고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증거를 떠나서라도, 보험수익자를 변경한 후 일주일 만에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가 사고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이 과연 직접적인 증거보다 범죄를 입증할 힘이 적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합리적 의심'이 무슨 뜻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이란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른다는 원칙에 근거,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 때문에 살인자를 그대로 사회로 내보내도 되는 것일까.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보험금을 노리고 계획살인을 한 게 분명한 정황이 가득한데, 법적으로는 유죄 심판에 필요한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결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작품은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끝내고 변호사가 된 작가 도진기가 처음으로 쓴 본격 법정물이다. 기존에 발표했던 그의 작품들이 추리소설,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이 작품에서는 의외의 범인이나 트릭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굉장히 흥미롭게 읽힌다. 거대한 사법 시스템과 법적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데다 피고인과 수사기관, 법원이 날 선 공방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부장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법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며, 판사 역시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편에 서고자 했던 인간적인 판사의 고뇌와 행동 덕분에 억울하고, 화가 나는 현실의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정의'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은 '법치'에 불과하고, 그 법치는 공정한 결론보다 공정한 절차를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나쁜 놈은 충분히 처벌되지 않고, 손해배상은 늘 부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판사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의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이고, 주인공 역시 '가상의 인물'이지만, 어쩐지 나는 도진기 작가가 부장판사로 재직 당시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도진기 작가가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더 많이 써주길, 독자로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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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8 - 에이 설마~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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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시리즈를 처음 만난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그리고 어느새 시리즈는 여덟 번째 이야기가 출간이 되었다. 고양이나 개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야 많지만, 사박사박 소리가 들리는 듯 담백한 느낌의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진 만화라 개인적으로 콩고양이 시리즈를 가장 좋아한다. 두 주인공 고양이는 이름도 무려 '팥알이' '콩알이'로 그 이름만큼이나 깜찍하고 귀엽다. 그리고 그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시바견 '두식이'는 시리즈 네 번째 작품에서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개와 고양이를 과연 한 집안에서 키울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는 우리의 편견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둘도 없는 단짝들이다.

자신을 개가 아니라 고양이로 알고 자라온 두식이는 등장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줬던 기억이 난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가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한참 인기였던 시기라 번역가님이 센스 있게 두식이에게 드라마 속 유시진 대위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 주셨는데... 그 특유의 말투는 이제 완전히 두식이의 성격과 닮아 있어 더 귀엽다. 사람 말을 죄다 알아듣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총명함을 자랑하다가도, 두 고양이 팥알이와 콩알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순진무구 두식이는 특별한 말투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너구리가 등장했었고, 일곱 번째 이야기에는 두식이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마성의 고양이가 등장했었다. 개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무서운 고양이 누님이라 개를 싫어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개의 만남이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수수께끼의 신원불명 회색 고양이는 콩고양이 콤비만 챙기고, 두식은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운 눈빛으로 달려들었다. 우리의 순딩이 두식이는 그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었는데, 이번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는 바로 그 무서운 그레이 언니가 주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레이의 진짜 이름과 대체 왜 그렇게 개를 싫어했는지에 대한 사연도 보여지며, 살짝 뭉클함도 안겨준다. 무엇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냥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마치 마법처럼 말이다.

 

 

 

이번 작품에 실린 에피소드는 특별히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았다. 회사에 가기 전에 팥알이, 콩알이를 쓰담쓰담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부러워 그 높고 비좁은 곳을 비집고 올라간 두식이도 너무 귀여웠고, 그레이의 비밀 외출을 따라간 두식이와의 에피소드도, 그리고 그레이가 떠난 후 남겨진 콩알이, 팥알이, 두식이가 그리워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두식이를 위해 비옷과 강아지용 장화를 사와 산책을 가는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대공감이었는데, 아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웃긴 에피소드였다. 거기에 더해 내복씨가 머리도 젖지 않게 하라고 삿갓을 두식이에게 씌워 주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배꼽 잡고 한참 웃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식을 하러 나가 집이 비어 있는 사이, 팥알이와 콩알이가 두식이를 이용해서 간식을 찾아내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마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마담 북슬과 함께 두식이의 다이어트도 시작되는데.. 간식은 절대 금지이고, 사료도 다이어트용으로 바꾸는데.. 과연 두식이와 마담 북슬은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누구나 가끔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좀 쉬고 싶게 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럴 때는 딱딱하고 머리 아픈 독서대신, 가볍고 유쾌하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독서가 제격이다. 팥알, 콩알, 두식이네 일상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분과 함께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콩고양이 시리즈는 여백이 많은 프레임에 둥둥 떠있는 짧은 대사와 간간이 미소 짓게 만들고, 또 그 틈틈이 뭉클하게 만들고, 그 와중에 지나간 추억도 떠오르게 만들어 준다.

오늘도 콩고양이네 집에는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여 버라이어티한 대가족의 알콩 달콩한 이야기가 계속 된다. 그저 소소하고 평범하게, 반려동물들과 집에서 함께 지내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쓱쓱 그려낸 필치가 너무도 심플하고 위트가 넘쳐 중독성 있게 페이지를 자꾸 펼쳐 보게 만들어주는 만화이기도 하다. 콩고양이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되길.. 벌써부터 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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