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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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라.

가오루코와 얘기하는 중에도 그 말이 몇 번이나 나왔던가. 기적이 일어난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이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 라고. 하지만 그 말을 입에 담을 때마다 허망함이 더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p.83

IT 기업 '하리마 테크'를 운영하는 가즈마사와 그의 아내 가오루코는 8년 전에 결혼했다. 하지만 1년 전 별거를 결정했고, 첫째 딸 미즈호와 둘째 아들 이쿠토는 엄마와 함께 지내고, 가즈마사는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다. 그들은 가즈마사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에 합의했지만, 딸 미즈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그때까지만 잠시 미루기로 했다. 어느 날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부모 면접에 참석하러 간 그들에게 미즈호가 수영장에서 물에 빠졌다는 연락이 온다. 의사는 미즈호가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으며 뇌에 상당히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사실상 뇌사 상태라고 말을 한다. 물론 치료는 계속하겠지만,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명 조치에 불과하다고,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며칠 안에 심정지가 온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장기를 기증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가즈마사와 가오루코는 그 압도적인 슬픔에 절망스럽기만 하다. 딸이 죽는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장기 기증이라는 엄청난 선택까지 해야 하다니 뭔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우리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그 선택을 해야 하는 그 밤이, 그들 부부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밤이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미즈호라면 자신의 몸 일부나마 어디선가 고통을 겪고 있을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생각에 장기 기증을 결심한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고 미즈호의 손을 잡는데, 한 순간 그 손이 움찍한 것처럼 느껴진다. 미즈호의 손이 움직일 리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우리 딸은, 살아 있어요.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장기 기증을 거부하고, 치료를 계속하기로 한다. 가오루코는 미즈호를 집에서 돌보겠다고 선언하고, 간병 교육을 받고, 남편과 이혼 결정도 번복하고 딸의 연명 치료에 들어간다.

 

 

"그런 일에 동조하는 거 말이야. 나도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에 이 일을 하고 또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지만, 상대가 뇌사 환자라면 어떨지 모르겠어. 의식도 없고 회복할 가망도 전혀 없는 환자의 팔다리를 컴퓨터와 전기 신호로 움직이면 뭐 하겠어.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 것 같아."  p.190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작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어 올해 국내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기존 그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범인도, 살인도, 추리 형식도 등장하지 않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흡입력 있게 전개되고 묵직한 뭔가를 던져주는 이야기이다. 딸의 뇌사라는 비극과 맞닥뜨린 부부의 충격적인 선택을 그린 휴먼 미스터리인데, 흔히 예상할 수 있는 플롯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점이 더욱 흥미진진했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인 과학 소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호의 아버지인 가즈마사가 운영하는 회사의 주력 분야는 바로 BMI,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이다. 뇌와 기계를 신호로 연결해 인간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인공 눈, 로봇 팔 등 장애인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아빠 입장에서 뭐라고 해보고 싶은 게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뇌나 경추가 손상되어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자로 하여금 뇌에서 보내는 신호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술을 자신의 딸에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기술의 개발자가 집으로 가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점차 딸을 향한 가오루코의 집착을 불러오게 된다.

겉모습만 보면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전히 아름답기만 한 딸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작품이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넘어선 집착과 광기의 드라마가 놀랍고도 깊이 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장기 이식을 둘러싼 도덕적, 법률적 문제와 의식 불명의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의 가족의 선택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파 작가로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작품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더욱삶과 죽음, 사랑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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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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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남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사악한 마법이 아닌 여성들의 자립심과 욕망이었다. 그래서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자립심 강하고 욕망 있는 여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악마 취급을 했다....종교재판관은 지나칠 정도로 여자들을 증오했으며,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들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크라메르 수도사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욕정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여자를 불완전한 동물이라고 판단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p.163~164

 

수메르인들은 관음증 증세가 심했고,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광란의 사도마조히즘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는 기원전 600년으로, <그레이의 그림자>가 출간되기 2,600년 전의 일이다. 고대 중국의 의사들은 여성들에게 애널 섹스를 치료법으로 추천했고, 중세의 수도사들은 딜도를 즐겨 사용했다. 이 책은 인류가 역사에 남긴 수많은 유물과 문헌, 사건, 사례를 보여주면서 1만 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지속되어 온 인류의 성 문화를 심도 있게 조망하는 책이다.  '섹스'를 통해 지난 1만 년 인류 역사를 되짚어 본다고 하니, 아마도 가장 과감하고, 발칙한 세계사 연대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호모사피엔스는 1만 년 전부터 섹스에 대해 광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그들은 동굴 벽에 포르노그래피를 그렸고, 파피루스에 음담패설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그렇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되어 온 인류의 섹스 문화를 선명하게 복원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성의 영역이 어떻게 오늘날의 인류문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인문학서로서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라캉에 의하면, 너무 적나라하고 욕정을 불러일으키며 불쾌감을 주는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얼굴이 달아오르는바, 이는 자기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그림 속 나체 여인의 배가 약간 부른 모습에서 그녀가 예비 엄마임을 추측할 수 있다. 본인의 출생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정신분석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을 낳은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 역시 억압되는 게 보통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누구에게나 사각지대로 남는다.   p.284~285

 

남녀가 몸을 밀착해 서로 끌어안은 모습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아인 사크리 연인상>은 남녀의 성교 모습을 표현한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으로, 1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피임 처방전도 파피루스에 쓰인 것으로 발견되었고, 그들이 사용했던 고품격 최음제인 맨드레이크는 수 천 년 동안 가장 많이 이용된 최음제이기도 했다. 인류 최초의 포르노 서적인 투린 파피루스는 외설이나 풍자 문학이었는지 또는 섹스 기술을 가르쳐주는 지침서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18세기에 살았던 인류 최고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는 정열적인 페미니스트였고, 19세기에 살았던 타이어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는 아내 몰래 부엌에서 실험하다가 우연히 콘돔을 발명하기도 했다. 점잖고 교양 있던 영국의 산부의과 의사 그랜빌은 1833년 히스테리 치료를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개발했고, 여성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1866년 작품은 자크 라캉 정신분석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1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 곳곳에 깊이 숨겨져 있던 성 담론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저자는 '성의 영역에서 진부한 사실과 전설이 오늘날의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우리의 성적 자유를 위해 싸웠는지 보여주며, 인류의 역사를 보다 과감하게, 정직하게, 유쾌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1만 년 인류 역사의 은밀하고도 치밀한 사랑과 치정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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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미 - <미 비포 유> 완결판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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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뉴욕 커피숍에서 뉴욕 커피를 마시고 있어! 난 뉴욕 거리를 걷고 있어! 멕 라이언처럼! 아니면 다이앤 키튼처럼! 난 진짜로 뉴욕에 있어!'

그러자 2년 전 윌이 내게 설명하려던 게 정확히 이해되었다. 몇 분 동안 생소한 음식을 먹고 이상한 광경을 보면서 나는 순간에만 존재했다. 온전히 현재에 몰두하고 감각이 살아 있었고, 주위의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려고 내 존재 전체가 열려 있었다. 나는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의 딱 한 곳에 있었다.      p.25

조조 모예스의 대표작 <미 비포 유>의 세 번째 이야기이자 시리즈 완결판이다. 그녀를 우리 나라에게 처음으로 소개해주었던 작품 <미 비 포유>는 사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매력적이고 돈까지 많은 젊은 남자와 집안 형편상 돈을 벌어야 하는 씩씩한 여자의 만남이라는 다소 뻔한 설정에서 시작했지만, 그 흔한 신파나 눈물 한 자락 없이, 현실을 직설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여타의 최루성 신파 멜로, 휴먼 드라마의 패턴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지마비환자와 간병인, 게다가 엄청난 부자 남자와 평범한 집안의 젊은 여자라는 이야기의 소재만으로도 앞으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도 뻔히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의 휴먼 멜로 드라마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지만, 지나치게 담백하고, 때로는 유쾌하고, 잔잔하게 따뜻하며, 거기에 추가로 목이 메일 것 같은 슬픔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조조 모예스는 평범한 멜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승부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맨스 소설을 그다지 읽는 편인 아닌 나도 <미 비포 유> 시리즈는 좋아한다.

<미 비 포유>에서 사지마비 환자가 된 남자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야 했던 루이자 클라크,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애프터 유>라는 작품으로 그녀가 새 출발을 하는 과정을 담았었다. 세 번째 이야기인 <스틸미>에서는 루이자가 두 번째 남자친구인 샘을 두고 런던을 떠나 지구 반대편 뉴욕으로 떠나게 된다. 최상류층 집안에 어시스턴트로 고용되어 화려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어 뉴욕 생활에 적응하게 되는 과정과 런던에 있는 샘과 장거리연애를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거리와 시차의 장벽으로 인한 위기를 그리고 있다. 루이자는 더 사랑스러워졌고, 그녀가 윌이 당부한 대로 대담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 과정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해를 못 하네. 자기가 얼마나 변한지 알 수가 없겠지. 당신은 달라졌어, . 이 도시의 거리가 자기 것인 듯 활보해. 휘파람을 불어 택시를 부르면 택시가 오지. 심지어 걸음걸이도 달라. 마치.... 모르겠어. 당신은 본래 모습으로 변했어.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 거지."

"아니, 좋은 말을 하는데 어쩐지 나쁜 말로 들리네."

"나쁜 게 아냐, 그저..... 다를 뿐이지."      p.252

한편, 루이자는 뉴욕에서 우연히 윌을 닮은 남자 조시를 만나게 된다. '그는 윌이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너무나 윌과 닮았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날카로운 지성과 자신감의 조화, 상대가 뭘 던져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분위기, 꼼짝 못하게 만드는 바라보는 눈길 등 태도까지 너무도 비슷했던 것이다. 게다가 샘에게 새로운 업무 파트너가 생겼는데, 그와 최소 하루 열두 시간 붙어 재니게 될 그 여자 파트너가 루이자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섹시한 미남 구급대원 애인과 5,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사는데, 그에게 본든 걸 같은 목소리와 미모를 가진 새 파트너가 생겼다면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말이다. 장거리 연애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낯선 이국에서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기적처럼 나타난 남자 조시는 자꾸만 윌을 생각나게 한다. 게다가 고용주에게 돈을 훔쳤다는 오해를 사고 해고되어 지낼 곳도 없는 홈리스 신세에 실직자가 되어 버린다. 과연 루이자는 자신의 힘으로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될까.

아마도 로맨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되고 진실한 사랑이 승리하는 해피엔드가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이야기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유치하거나, 오글거리는 장면들이 중간중간 등장하면서 부실한 플롯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로맨스 소설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 것이 바로 조조 모예스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고, 로맨틱하지만, 낭만적인 연애를 이상화하기보다는 인물이 현실에 발 딛고 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이다. '로맨스 소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대체 불가능한 로맨스의 여왕이 그러내는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아름다운 해피엔드의 마법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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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전승환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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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영화를 다 보는 게

꿈인 사람처럼

오늘은 영화만 볼 거야.

내 마음에 들어야 진짜 행복이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정해.    p.74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어피치, 튜브, , 무지, 프로도, 네오, 제이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의 사랑스러운 여덟 캐릭터와 젊은 작가들이 만났다.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그 첫 번째는 극강의 귀여운 캐릭터 라이언과 <나에게 고맙다>의 작가 전승환이다.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페이지 사이사이에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 힐링되는 느낌을 선사하는 카카오프렌즈 친구들 덕분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책이다. 

무뚝뚝한 표정과 다르게 배려심이 많고 따뜻한 리더십을 가진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조언자 라이언.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제는 국민 캐릭터가 되어 버린 라이언이다. 그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아무 말 없이 쳐다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듯한 기분이랄까. 사실, 그래서 글보다는 라이언을 비롯해 카카오 프렌즈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책이기도 했다.

일요일,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뒹굴뒹굴 멍하니 쉬어가기.

그렇게 몸과 마음의 박자를 맞춰가기.    p.218

우리의 마음이 짓는 표정들이 모두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국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처럼, 각자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행과 슬픔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힐링과 위로라는 테마로 쓰인 에세이들이 모두 겉모습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여기도 내 얘기 같고, 저기도 내 얘기 같고, 저건 내 친구 누구의 이야기 같고, 또 이건 나의 직장 동료 누구의 상황 같고 말이다. 그러니 문장에서 진심을 느낀다거나, 공감이 된다거나 하는 순간들은 사실 그 순간의 내 감정이나 상황 등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스럽고 너무도 익숙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페이지 곳곳에 나타나서 그 귀여운 자태를 뽐내주는 것만으로 마음 속에 작고 동그란 행복들이 가득 차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내게 조용히 뒤에서 응원해줄게. 라고 말하는 글 속에 담긴 라이언의 듬직한 모습.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내 마음을 돌보는 중이라고 말하는 페이지에는 엎드린 라이언 위로 어피치, 튜브, 무지 등 캐릭터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심각한 장면에서도 풉, 웃음이 터지면서 여유가 생기는 것 같고, 누군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순간에는 그냥 막 내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이 생기는 것 같아 설레고 말이다. 라이언의 두꺼운 일자 눈썹과 작고 동그란 눈, 그리고 덤덤한 표정 안에 우리의 마음 속 다양한 표정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날, 라이언과 전승환이 선물하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세상의 온도가 조금은 더 따뜻해지는 것같은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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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람의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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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를 설명하겠다는 이론 중 상당수는 일반적이지만 아마도 잘못된 것일 한 개념에 토대를 둔다. 깨어 있을 때 온갖 일들에 심란해졌기에, 바로 잡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상태가 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잠이 대단히 유용한 것이라면? 우리의 모든 측면에 생리적으로 유익한 혜택을 주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생물은 왜 굳이 깨어나는 것일까?   p.89

나의 평균 수면 시간은 다섯 시간이다. 몸이 안 좋거나 조금 피곤한 날은 여섯 시간 이상 자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다섯 시간 혹은 그 아래이다. 잠이 건강에 중요한 것도 알고, 잠을 푹 자야 피로가 회복되어 다음날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는 시간을 언제나 줄여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평생 수명의 3분의 1 시간 동안 잠을 잔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라. 깨어 있는 시간에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 다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대체 왜 잠을 자는 데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인가. 솔직히 나는 잠을 자는 시간이 너무도 아까웠다. 대체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이 책은 세계적인 신경 과학자이자 수면 의학 분야의 전문가인 매슈 워커가 늘상 잠을 미루며 삶을 깎아먹는 이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경고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간 잃어버린 잠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드러운 초대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수면 의학의 최전선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잠의 이모저모를 과학적 근거들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잠의 놀라운 능력을 통해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방법을 탁월한 통찰로 제시한다. 잠이란 무엇이며, 사람은 얼마나 자야 하는지, 수면과 수면 부족의 좋은 점, 나쁜 점, 치명적인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수면에서 과학적으로 설명된 꿈이라는 환상적인 세계를 거쳐 불면증을 비롯한 많은 수면 장애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부족한 잠이 당신을 죽이는 방법은 많다. 시간이 걸리는 방법도 있고, 훨씬 더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방법도 있다. 가장 적은 수면 부족에도 지장이 생기는 뇌의 기능 중 하나는 집중력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 집중력 상실이 가져오는 치명적인 결과는 졸음운전이라는 형태로 가장 명백하면서 치명적으로 펼쳐진다. 미국에서는 매시간 누군가가 피로와 관련된 운전 실수로 일어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p.196

잠은 학습하고, 기억하고, 논리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능력 등 뇌의 다양한 기능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잠이 매일 우리의 뇌와 몸의 건강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은 놀랍다. 그렇다면 반대로 잠이 짧아질수록 수명도 짧아진다고 한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암, 알츠하이머, 당뇨병 등에 취약해지고, 삶의 질도 나빠지며, 체중이 늘어나게 되고, 뇌의 기능 중 하나인 집중력 상실을 가져와 운전 중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진다. 저자는 수면이 우리의 삶, 건강, 수명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덜 이해된 행위라고 말한다. 아주 최근까지도 과학은 우리가 왜 잠을 자며, 수면이 우리의 몸과 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잠을 못 자면 건강에 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지와 같은 질문들에 아무런 답을 내릴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진화적으로 봤을 때도 잠을 자는 동안은 그 어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가 없으니, 매우 비생산적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생물이 잠을 잔다는 것은 피해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혜택이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수면 시간은 몇 시간이 적당할까? 세계 보건 기구와 미국 국립 수면 재단은 어른이 하룻밤에 평균 여덟 시간을 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선진국을 통틀어서 성인 중 3분의 2는 하룻밤 권장 수면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만성 수면 부족 사회에 접어들었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의 병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 책에서 알려주는 '명백한 잠의 혜택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잠을 줄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며 살아온 당신에게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한다고. 잠을 푹 자게 되면 다음 날, 음식을 덜 먹고 더 건강한 음식을 찾게 되며, 머리가 더 맑고 더 행복하고 더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인 관계도 나아지고, 업무 효율도 올라가고, 질병에 덜 걸리고, 체중, 혈압, 약 투여량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인생의 3분의 1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바로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남은 3분의 2를 가장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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