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아버지가 영오를 무릎으로 밀어내며 화를 냈다. 정신 사납게, 저리가! 영오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뒤로는 아버지 가까이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앉아 있든, 서 있든. 그날 아버지는 피곤했거나 일터에서 모욕을 당했거나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했을 것이다. 아니면 몸이 아팠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있든 없든, 많든 적든,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일이 가시처럼 기억에 박히기도 한다. 어떤 틈은 희미한 실금에서부터 벌어지고, 어떤 관계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목만으로도 망가진다.  p.69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야근 중인 참고서 편집자 영오,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나 이마에 붙인 상처 얘기가 나와 며칠 전 아버지가 살던 곳을 찾아갔던 일을 떠올린다. 엄마는 사 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를 간호하는 동안 몇 안 되는 친구들과도 멀어졌었다. 외가든 친가든 드문드문하던 친척들과의 왕래마저 끊겼고, 지난 가을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을 때 빈소에는 영오 혼자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소원해져, 사 년 동안 예닐곱 번쯤 만난 정도가 다였다. 갈 때마다 아버지는 중학교 경비실에서 근무 중이었고,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외동딸이 와도 왔냐 소리도 제대로 않는 아버지를 보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였다. 그리고 며칠 전 아버지가 살던 곳의 집주인 연락을 받고 월세 보증금 천만 원과 밥솥 하나를 아버지의 유품으로 받아 왔다.

아버지가 남긴 밥솥에는 얇은 수첩이 하나 들어 있었다. 수첩의 앞 두어 장은 백지였고, 세 번 째 장에 크고 비뚜름한 글씨로 '영오에게'라고 써 있었다. 그 아래 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빚쟁이들인가 싶었지만, 아버지에겐 빚이 없었다. 아버지의 휴대폰에도 수첩 속 인물들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 이름 중 하나인 홍강주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 그를 만나게 되고, 그가 아버지가 경비원으로 일했던 학교의 수학 교사라는 걸 알게 된다. 영오는 그와 함께 나머지 두 명을 찾아 나서게 된다. 아버지는 영오에게 대체 왜 이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긴 것일까.

 

강주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작년에 자살한 학생. 살아 있었다면 이번에 졸업이죠. 내가 가르친 애는 아니에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 녀석. 다들 쉽게 말하지만....."

택시가 우회전했다. 거리가 밝아지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차들의 속도도 빨라졌다. 모퉁이 하나로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했다. 영오는 달라진 세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알겠어요. 사람들은 몰라요. 아무도, 아무것도."   p.150

이야기는 참고서 편집자인 영오가 죽은 아버지가 남긴 수첩에 적힌 세 사람을 찾아 나서는 여정과 영오가 일하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질문을 퍼붓는 열일곱 소녀 미지의 사연으로 진행된다.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미지와 회사에서 잘린 아빠는 집에서 쫓겨난다. 그들이 예전에 살던 아파트를 팔지도 않고 세를 놓지도 않은 상태로 두었던 터라, 엄마에게 쫓겨난 부녀는 당분간 예전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엄마가 치킨 집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충분했지만, 백수 남편이든 백수 딸이든 안 된다는 엄마는 나가서 정신을 차리든가 속을 차리든가 하라고 했다. 옆집에는 성격이 괴팍한 할아버지가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고, 미지는 버찌라는 고양이와 친해지며 할아버지와도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이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세상과의 관계가 서투르다. 하지만 각자 어떤 계기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닫힌 마음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서게 된다. 이제 서른 셋이 된 영오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넌 정말 개떡 같은 책이야.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어.'라고. 그렇지만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여기서 다치고, 저기서 넘어지고, 삶의 길목마다, 일상의 고비마다 상처를 받고, 흉터를 만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서른세 살 영오와 열일곱 살 미지가 살아가는 녹록하지 않은 삶의 여정들이 공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 역시나 뭔가 부족한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삶을 채워가는 이야기는 담백하게 유머스럽고 가볍게 진행되고 있지만, 분명 어딘가 뭉클한 지점이 있다. 그건 바로 이들의 이야기가 나와 당신의 그것이기도 해서 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누구 하나 상자 속 나라에는 손을 댈 수 없다. 상자 밖은 무방비다. '죽음'도 존재한다 어린 시절, 아득히 멀리에 있던 그것은 점점 가까워진다.

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이불 속 유해를 마주했을 때, 한순간 무서웠다. 그러나 깨끗이 닦고 관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가 훅하고 바뀌었다.

유해는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두려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안도였다.   p.46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안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한 순간이 오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 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것이 바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사실 마스다 미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에 굉장히 특별한 사건이나, 엄청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만드는 일들은 없다. 그녀는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도 사소한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위로 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당신의 하루 또한 절대 별 볼 일 없지 않다고, 일상의 수많은 그 순간들이 쌓여 당신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간다고, 그러니 당신의 오늘은 너무도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만화를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오늘의 인생>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원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시선을 사로 잡는 표지처럼 따뜻하고 활기차고 기분좋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작품이 나온 그 즈음에 나는 아버지의 완전한 부재라는 상실을 겪고 있었고, 마스다 미리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일상을 보내는 에피소드가 짧게 나마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하나의 에피소드 때문에 그만 감정의 둑이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슬픈 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밤에 눈이 퉁퉁 부어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마스다 미리 특유의 담백한 그림과 대사가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슬픔을 강조하지 않고, 억지로 감정을 짜내려고 하지 않기에 그 뒤에 숨어 있는 마음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번 작품 <영원한 외출>에서는 본격적으로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들과 죽음 이후 슬픔과 상실감을 보여 준다. 하지만 역시나 '신파'가 아니라 작가 특유의 덤덤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라 더욱 애틋하고 뭉클하다.

 

 

같이 가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 같이 가고 싶지 않았던 내가 아버지의 딸이다.

정말로 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갔을 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어주길 바란 게 아닐까. 그러나 "아빠, 다녀오시죠? 혼자 가볍게." 하고, 두 번 다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쓸쓸한 일이었다.   p.94

이야기는 삼촌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삼촌이 세상을 떠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진다. 구급차에 실려가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고, 남은 시간이 대략 6개월이라는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아버지는 퇴원한다. 검사고 치료고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는 어째선지 목소리에 생기도 돌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마스다 미리는 그렇게 아버지와의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 듣게 되는 그 시절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 온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든, 사고를 당하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든, 전혀 예상하지 못했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가족을 떠나 보내고, 장례를 치르고, 여러 가지 행정 절차를 해야 하고, 일상이 다시 이어진다. 누군가 죽는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살아 있는 이들은 또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아무렇지 않게, 가끔은 웃고, 가끔은 후회하고, 또 가끔은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마스다 미리처럼 아버지와는 유독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성격이었고, 성미가 급해서 자주 발끈하셨고, 애정 표현에 서툴었고, 바로 그런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식 걱정 많은 아버지였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늘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하는 아버지였다. 사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는 독립해서 따로 살았기 때문에 본가를 떠난 지 꽤 오래 되었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연락하거나 명절 때마다 찾아가는 자주 미루던 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 동안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실감이 나지 않은 채 일상을 보냈다. 아이와 일상을 전쟁처럼 보내느라 늘 녹초였고, 바빴고, 피곤했다. 그러다 가끔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보게 되면 시간이 멈추곤 했다. ,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구나.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스다 미리의 말처럼 '소중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잃었다고 해도 있었던 것을 내가 알고 있으니 그걸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는 나는 이렇게 살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지만, 그것이 어쩌면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분인지도 모르겠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따스한 위로 같았다.

 

마스다 미리는 말했다. 인생은 계속 이어진다고. 오늘의 인생을 넘기면, 그 다음의 오늘의 인생이 있고, 내일의 내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가까운 이의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 이후의 삶에 더 포커스를 맞춰 아버지의 딸의 삶을 그리고 있어 더 공감되었고,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의 기본 - 의식주 그리고 일에서 발견한 단단한 삶의 태도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 누구를 만나도 괜찮다. 어느 때고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다. 바짝 긴장되면서 자신감이 살짝 붙는다. 이런 느낌을 주는 질 좋은 흰색 셔츠가 나의 기본 아이템입니다.

레귤러 칼라 셔츠, 싱글 커프스의 지극히 정통파적인 것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리넨을 걸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옥스퍼드 옷감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p.22

일본 셀렉트 서점의 시작으로 평가 받으며, 책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이 찾아가는 명소가 된 카우북스의 대표이자 41세의 젊은 나이에 잡지 「생활의 수첩」의 편집장에 취임하는 등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프로패셔널 마쓰우라 야타로가 자신만의 기본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먼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고,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생활 속 자신만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나다움'이라고 그는 말한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보편적인 취향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 있는 무엇을 찾는 분위기는 아마도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다움을 표현하는 옷차림의 기본, 나 자신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생활의 기본, 그리고 나만의 규칙을 세우는 일의 기본이라는 세가지 카테고리로 나뉘어 나만의 기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질 좋은 기본 셔츠 한 장만 있으면 다양한 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결국 질 좋은 셔츠는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고. 무슨 셔츠 하나에 이런 힘이 있겠냐 싶은 생각이 든다면, 한번 잘 생각해보라.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출근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자신이 어떠했는지. 불편한 셔츠를 입었을 때 남 앞에서 겉옷을 벗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얼마나 난감했는지를 말이다. 물론 값비싸고 화려한 옷일 필요는 없다. 그저 자신에게 잘 맞는, 자신의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어떤 옷과도 스타일링을 해볼 수 있는 그런 기본 셔츠면 충분하다.

'할 생각이다'라는 말은 버리세요. 깨끗하게 인정하는 게 좋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요. 엄격한 규칙이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안일하고 애매한 마음가짐으로 일터에 나와서는 안 됩니다.   p.218

저자의 집에는 아내와 딸과 자신, 각각 세 사람의 개인 공간이 있다고 한다. 모든 방에 천연섬유로 된 커튼이 걸려 있고, 각자 침대가 있고, 사소한 소지품이나 공유하지 않는 개인 소유물은 모두 자신의 방에 둔다고 한다. 문은 잠겨 있지 않으나 서로의 방에 들어가거나 간섭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개인 공간' '세 사람의 공유 공간'을 선명하게 나누어 생활하는 가족을 본 적이 없는 터라 굉장히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각자가 개인의 세계를 가지면서 공동생활을 한다'는 가족의 모습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가족도 소중히 여긴다는 말에도 공감이 되었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말도 너무나 이해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가족과 함께 살 때 온전한 '개인'인 나로 있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방식도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을 입고 먹고 생활하고 어떻게 일을 하느냐가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일상에 밀착되어 있는 의식주와 일을 중심으로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기본적인 것들이 사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결국 그러한 것들이 나라는 한 인간을 만들고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사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나답게'라는 말을 잊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가면서, 어느 정도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하는 어른이 되면서 나만의 개성, 색깔 그런 것들을 누르고 지내다 보니 점점 더 나다움이란 게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으니 말이다. 그러니 겉치레와 시답잖은 자존심에서 생겨나는 거짓으로 치장된 모습으로 살아온 것이 비단 저자의 이야기만은 아닐 거란 말이다. 그렇게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온전히 열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기본을 찾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일과 생활, 인간관계를 잘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기본이라는 건 매우 심플한 것이다.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것을 생활 속 자신만의 기본으로 삼는 것 역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있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어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마천 사기56 - 본기, 세가, 열전, 서의 명편들 현대지성 클래식 9
사마천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약 안영이 오늘 살아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마부가 되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로 하여금 즐겁고 부러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이토록 찬미했던 사람은 바로 안영이다. 사마천은 왜 그토록 안영을 찬양해마지 않았던가? 사마천은 특정 인물의 행동과 개성화된 언어로써 인물의 내면 세계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글에서도 그러한 면모는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연 사마천이 그토록 앙모하던 안영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탐색해 보도록 하자.    p.385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함께 인물 전기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사마천의 <사기>이다. <사기>사성이라 불리는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쓴, 모두 130 52 6 500자로 이루어진 역사서이다. 전체 이야기가 총 130편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인데, 사실 지나치게 방대하고 또 현대에 이르러 효용성이 없는 부분도 적지 않기에 이 책에 사기의 정수를 계승하되 뜻이 깊고 문장 구성이 탁월한 56편을 중국 전문가 소준섭 박사가 엄선하여 한 권에 담았다. 그래서 제목이, 사마천 가시 56>이 되었다. 하지만 56편 단권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만한 분량은 아니다. 페이지수가 976쪽에, 각주만 해도 총845개에 달하는 책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외부인들이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기>야말로 오늘날까지 중국의 문화와 정신을 면면히 조형해 온 중요한 역사적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루쉰은 《사기》를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장이라고 말했고, 마오쩌둥은 전쟁터에서도 항상 <사기>를 들고 다녔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인간사 흥망성쇠의 비밀을 풀어낸절대 역사서이자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과 삶의 지혜를 담아낸 최고의인간학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사기>를 제대로 한 번, 정확히 읽어 보고 싶어졌다. 이번에현대 지성 클래식시리즈의 통일된 디자인에 맞춰 표지가 변경되어 새롭게 출간되었기에 벼루던 작품을 드디어 만나보게 되었다.

 

 

여기에서 사마천은 혜왕의 무능과 우둔함을 폭로하는 한편 악의의 확 트인 흉금을 동시에 선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한편 사마천은 기이한 일을 좋아하여 기이한 사건을 즐겨 묘사하였지만 <전단 열전>은 사마천의 문장 중에서도 백미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청나라 시기 문학평론가 오견사는 "전단은 전국 시대 제1의 기인이고, 화우는 전국시대 제1의 기사로서 태사공 제1의 기문으로 되었다."라고 평하였던 것이다.   p.548

<사기> '본기' '세가', '', '', 그리고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업적을 기술하고 있는 '본기'의 이야기부터 시작되는데, 각 편을 시작하기 전에 소준섭 박사가 관련된 해설이 실려 있어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제후국의 흥망성쇠와 영웅들의 업적과 사건 등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기존 역사 기재 방식에 구속되지 않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인식태도로서 사실적으로 기록하여 인물의 전모를 객관적으로 반영했다.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기 이전 시기에 역사란 단지 왕후들의 역사로만 국한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기>는 평민의 입장으로 평민의 시각에 의하여 평민의 정서로써 역사를 파악하고 역사를 기술했으며 역사를 해석했다. 그리하여 역경에 처해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고, 영광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영광을 지키는 이치를 깨닫게 되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처세의 도리를 터득하고, 경제를 하는 사람은 경제의 원리를 장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인생의 처세를 알고자 하는 이에게는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유 방식에 대해 알려주기도 한다. 사기의 완역이 일종의 유행으로 되었지만, 이 책을 만나고 보니 이렇게 정수만 모아서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인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원전의 정확성과 전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대중적인 책이 되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오래된 고전을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의 우리가 직접 읽고 있다는 그 순간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주 인포그래픽 - 당신이 알아야할 맥주의 모든 것!
Michael Larson 지음, 박혜진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포그래픽으로 알아보는 맥주 스타일 대백과이자, 맥주 덕후들을 위한 종합 맥주 가이드북이다. 천차만별의 색, 아로마, , 질감의 조합으로 세상에 독같은 맥주는 없다. 이 책은 총 90가지의 맥주 스타일들을 그 유래한 지역에 따라 분류해 설명하고 있다. 사실 단 4가지 재료만 있으면 맥주가 완성된다. , 맥아(몰트), 효모(이스트), 그리고 홉의 배합으로 맥주 색이 변하고, 농도가 달라지며, 탄산감과 쓴맛의 정도가 결정된다.

맥주의 원재료부터 시작해, 실제 양조되는 과정과 맥주의 보관 방법, 잔을 선택하고, 맥주를 따르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맥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맥주보다 함께 먹는 안주가 더 중요한 나이기에,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맥주의 음식의 궁합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고르는 방법, 즉 페어링을 위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있다.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들은 홉이 많이 들어가거나, 로스팅된 몰트가 많이 들어간 맥주와 잘 어울린다. 이런 맥주들은 주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다. 탄산감이 많은 맥주는 미각을 정돈하기에 알맞다.

각각의 맥주가 소개되어 있는 페이지마다 하단에 어울리는 음식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맥주의 음식의 맛이 비슷하거나, 대조되지만 의외의 궁합을 자랑하는 음식들의 예시들이다. 악마의 맥주라 불리는 벨기에 스트롱 페일 에일은 인도 음식이나 중국 음식이 잘 어울리고, 상큼하고 가벼운 과일 람빅은 초콜릿 디저트나 단맛이 강한 치즈류와 잘 어울린다. 도수도 높고 강렬한 맛의 아이스바크는 구운 돼지고기나 크렘 브륄레와 잘 어울리고, 깨끗하고 밝은 아메리칸 라거는 샐러드, 피자, 햄버거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IPA, 포터, 라거, 스타우트 등 총 90가지의 맥주들은 각 스타일마다 맥주의 색과 알코올 도수, 쓴맛 정도 등 기본적인 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그 스타일이 탄생한 유래와 대표적인 맥주에는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도 소개되어 있고, 맥주 스타일에 대한 설명을 원자 구조 도표로 표현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도표에는 시음노트, 해당 스타일을 잘 만드는 추천 양조장들, 스타일에 대한 간략한 역사나 재미있는 사실 등 부가 설명들이 정리되어 있다.

맥주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맥주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편의점에서 한참 수입 맥주 세일을 하면 네 캔에 만 원, 혹은 여섯 캔에 만 원 정도 밖에 안 하는데 그럴 때 좀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어쩌다 보니 늘 사던 것만, 먹던 것만 사다 보니 아쉽기도 했었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해야만 맥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잇는 모든 맥주 스타일들에 대한 탐구를 하면서, 맥주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맥주의 다양한 맛과 잘 어울리는 페어링 음식들은 내가 생각했던 그것보다 훨씬 더 방대한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인포그래픽으로 알아보는 방식이라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점도 좋았고, 마치 사전처럼 필요한 정보들을 쉽게 찾아서 필요할 때마다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만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