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잘레스 씨의 인생 정원 -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배운 삶의 기쁨
클라우스 미코쉬 지음, 이지혜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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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라스는 모래밭 위에 몸을 뉘였다. 하얀 구름이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며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 바다, 흐르는 강물, 아름다운 석양 같은 자연의 풍경들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동시에 세상 그 어느 영화보다도 멋지고 흥미진진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흘려 보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p.36~37

은행에서 투자 상담원으로 일하던 니클라스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우리 회사에는 이제 자네가 필요 없네."라는 지점장의 선택의 여지 없는, 항변 조차 할 수 없는 회사의 결정이었다. 니클라스가 은행에서 고객들과 상담하며 보낸 세월이 꼬박 여덟 해였다. 그런데 별안간 모든 게 끝나버렸다. 서른두 살의 그는 빠르게 포기하는 쪽을 택하고 합의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쫓겨날 자리에서 몇 달을 더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니클라스는 지금껏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었고, 졸업 후에도 한눈 팔지 않고 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따고 곧장 은행에 취직해 일해 왔다. 안전과 성공이 보장된 미래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왔는데, 뜻밖에 닥친 회사의 해고 통보로 인해 갑작스러운 운명의 전환점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는 고민한다. 지금껏 걸어온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한다면 곧장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할 테고, 새 직장은 또다시 은행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어떨까? 집과 익숙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대신 뭔가 다른 걸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회사와 합의한 덕분에 당분간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그는 번잡한 도시를 등지고 회색 구름 대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어딘가로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스페인의 작은 해변 마을 에스테포나에서 지내면서, 팔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작은 텃밭에서 자연주의 방식으로 채소를 가꾸며 살아온 곤잘레스 씨를 만나게 된다. 니클라스는 그곳에서 날마다 곤잘레스 씨의 밭일을 도우면서 속도지향적인 삶에서 내려와 자연 속에서 단순한 삶의 기쁨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마지막 햇살이 산 너머로 사라졌다.

"실패, 버림받는 일, 깊은 슬픔, 고통 이 모든 건 삶의 일부분이야. 그러나 이중 무엇도 영원하지는 않아. 언젠가는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기쁨과 행복이 되돌아올 테니까."

니클라스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굴곡과 실수 없이는 배움도 없고, 끝이 없으면 새로운 시작도 없다.   p.227

채소밭에서 일을 하는 것은 피로와 통증으로 커다란 피로를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니클라스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자신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채소를 수확하기까지 여러 달 동안 식물을 돌보는 과정이 선행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친환경적인 채소를 심고 가꾸고 선호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도시에 살면서 화려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삶 속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두 손을 흙에 묻고 일하는 것이 어떤 기분을 주는지, 어떻게 영혼을 충만하게 해주는지, 그리고 그러한 노동의 강도와 가치에 대해서도 말이다.

정직하게 노동하여 번 돈으로 그날 하루를 살아내며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곤잘레스 씨는 말한다. 앞날을 걱정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이 길로 가면 뭐가 나올까,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것만큼 기운을 소진하는 일도 없다고. 그러다 보면 정작 오늘 할 일에 집중하는 데 쓸 기운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며, 어차피 때가 되면 모든 게 더 좋아질지 나빠질지 알게 될 거라고. 그때까지는 걱정하고 동요하기보다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말이다. 정원을 가꾸어 본 적도, 하물며 밭일을 해본 적도 없는 나 역시 전형적으로 도시 생활에만 익숙한 삶을 살아 왔다. 그래서 가끔 은퇴 후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산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었다. 평생 도시 생활의 편리한 혜택을 누리며 살았는데, 저런 삶은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느긋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 속도지향적인 삶에서 벗어나 나만의 가치지향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곤잘레스 씨처럼 당장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을 마음껏 즐기는 소박한 삶을 살아 보고 싶다면, 조급함을 내려놓고 안절부절못하며 걱정하던 것들을 버리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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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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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딸들더러 남자들의 먹잇감이 되려고 그러느냐 입이 닳도록 닦아세우는 대신 당신의 아들에게 '너는 여자 사냥꾼'이라고 충고하는 걸 그만두세요. 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대신 아들들에게듣는 법을 가르치세요. 딸들에게 치마를 입지 말라고 하는 대신 아들에게 치마는 섹스 초대가 아니라는 걸 이해시키세요. 딸에게 전신을 가리라고 강요하는 대신 아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여성은 몸뚱이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p.38~39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쓴 여성에 관한 가장 실제적이고 현재적인 인터뷰 에세이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다룬 뜨거운 데뷔작 <그녀, 아델>과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과 숨겨진 존재로서 여성을 조명한 작품 <달콤한 노래> 이후 세 번째 만나는 작품이다. <달콤한 노래>는 강요 받는 모성, 경력 단절 여성, 산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 계급적 소외를 겪는 빈곤층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고, <그녀, 아델>은 성의 성욕에 비해 은폐되고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의 성욕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슬리마니는 단 두 번째 작품으로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12번째 여성 작가로 이름을 올렸고, 그녀의 작품은 여성에 관한 가장 현재적이고 세계적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 독일 쾰른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럽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크게 보도된 이후, 모로코 출신인 레일라 슬리마니는 여성의 욕망이 가장 금기로 여겨지는 자신의 고향에 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결과물인 이 책은욕망을 품을 권리조차 가져본 적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슬리마니의 영원한 주제인여성에 대해 소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은 무슬림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걸쳐 있는 여성 문제에 관한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나아갈 방향에 이야기한다.

 

 

그 모든 상황들은 거대한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변명 아래 그 누구도 범죄를 고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성들이 더 자유롭게 사는 사회가 반드시 종교를 거스르는 사회는 아니라고, 그건 반대로 여성들을 오히려 더 잘 보호해주는 사회인 거라고 나는 설명한다. 놀랍게도, 보모도 인정한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이 모든 건 이슬람교의 문제가 아니야. 원인은 딱 한 가지지. 남자들이 문제야."   p.108~109

 

레일라 슬리마니의 바람은 자신을 찾아온 여성들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가공 없이 날것 그대로 내보내고 싶다는 거였다. 파르르 몸이 떨릴 정도로 강렬함을 남긴 말들, 때로는 흥분시키고 때로는 감동을 준 이야기들, 분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서고 싶게 만들던 이야기들. 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똑바로 바라보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이 사회 속 삶의 고통스러운 파편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고 말이다. 종교와 남성 중심 사회로 전락한 모로코의 문화, 성적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로 인해 섹스는 강박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모로코 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행동은 굉장히 용감무쌍한 행동이었다는 걸,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그녀는 서두에 밝히고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로코뿐 아니라 알제리와 튀니지 등에서 살고 있는 여러 방면의 사람들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독립 라디오 진행자, 저널리스트, 경찰, 교수, 영화 감독, 매춘부, 의사, 페미니스트, 자신의 독자 등을 인터뷰했다. 모로코에서는 동성애, 매춘, 혼외 정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실제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재력이 있고 성 문제에 대해 제한을 받지 않는 남성들은 마음껏 성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반대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한 여성들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이것이 비단 모로코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여성, 성 소수자,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유사한 문제들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말한다. 모로코,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의 여성들에게, “여성의 욕망할 권리는 곧 여성의 인권이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모든 여성들의 삶은 더 없이 중요하며, 또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고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영원한 주제가 바로 '여성'이라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녀의 다음 소설이 더 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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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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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조용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간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시간이자, 필요한 무엇이든 창고에 그득하게 채워 넣는 시간이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모아 가까이에 두면 마음이 놓였는데, 온기와 생각 그리고 중요하고 가치 있고 심지어 친숙하기까지 한 나만의 것을 깊은 구덩이 안에 묻어 놓고 내 손으로 지킬 수 있었다. 이제 추위와 폭풍우와 어둠이 몰려들어도 문제없었다.    p.12

토베 얀손이 26년에 걸쳐 출간한무민시리즈 연작소설 전체 여덟 편이 완간 되었다. 이 작품은 그 중 마지막 여덟 번째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작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쓴 작품이다. 무민 가족이 외딴 등대섬으로 떠난 뒤 텅 빈 무민 골짜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무민 가족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무민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의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던 사랑스럽고 조그마한 것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따로 살아가던 이들이 무민 골짜기로 모여든다. 가을이 조용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간,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닫혔고, 곧 추위와 폭풍우와 어둠이 몰려올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이제 무민 골짜기 친구들이 모두 일어날 시간이군' 스너프킨은 쉬지 않고 고요한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너프킨, 밈블, 훔퍼 토프트, 필리용크, 헤물렌 그리고 그럼블 할아버지까지 모두 여섯. 명이 빈집에 찾아 든다. 어쩐 일인지 무민 가족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가족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집이란 뭘까.’

스너프킨은 바닷속으로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계단에 앉았다. 바다는 고요했고 잿빛이었으며 섬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무민 가족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란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몰라. 섬은 지도에 다 나와 있으니까. 거룻배는 물이 새지 않게 구멍을 막으면 되고. 하지만 왜? 그냥 내버려두자. 무민 가족들도 외따로 떨어져 있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p.132

피곤하고, 외롭고, 울적하고... 저마다 다른 이유였지만 각자 무민 골짜기에 대한 기억만은 정겹고, 따뜻하고, 즐거운 그것이었다. 그래서 걱정거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민 가족이 사는 평화롭고 행복한 무민 골짜기를 찾아 온 것이었는데,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텅 빈 집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모두 주인 없는 빈집에 머물며 언제 올지 모르는 무민 가족을 기다리기로 한다. 그렇게 집 안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집은 여전히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도 다른 이들 여섯 명이 한 지붕 아래에서 무민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잘 지낼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원제는무민 골짜기의 11이다. 낙엽들이 바닥에 가득하고, 나무들은 휑해지고, 스산한 바람 소리가 겨울을 불러오는 가을의 끝자락이다. 행복하고 자유분방하며 너그러운 무민 가족이 없는 집에서 여섯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의 소리는 어쩐지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를 위해 글을 쓴 작가의 심정이 투영되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토베 얀손은 56세에 발표한 이 작품을 끝으로 무민 시리즈를 더는 집필하지 않기로 했었기에, 더욱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투영된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행히도 이 작품이 토베 얀손의 마지막 작품이 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서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었던 무민 가족은 끝내 등장하지 않고 이야기가 끝이 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무민파파가 걸어 놓은 남포등이 빛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배는 아주 멀리 있었지만, 그들이 곧 도착할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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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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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업자는 상상해선 안 돼. 표적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혹은 이 사람이 죽으면 곤란한 사람이 있겠지 같은 걸 상상해선 안 된다고. 반대로 표적이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이런 녀석은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 상상은 감정 이입과 이어지지. 인간은 감정이 들어간 상대에게는 냉정해질 수 없어. 즉 죽일 수 없다는 말이지."   p.27~28

사람들은 청부살인업자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사람을 상상할까. 어두운 양복을 입고 왼쪽 옆구리에 권총을 숨기고 있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 마르고 눈이 쫙 찢어진 얼굴에 조직 폭력배 지시로 움직이는 외국인? 러프한 재킷을 입은 핸섬한 터프가이?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도미자와 미쓰루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평범한 경영 컨설턴트를 하며, 부업으로 청부살인 일을 하고 있다. 보수는 1인당 도쿄 증시 일부 상장기업 사원의 평균 연봉인 650만 엔. 세금을 내지 않는 수입이라 1년에 한 명만 죽이면 경영 컨설턴트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 물론 위장을 위해 계속하고 있지만 말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이를 받아들일지를 3일 안에 판단하고, 작업에 착수하면 2주 내에 실행한다. 선수금이 300만 엔, 입금이 확인되면 실행을 하게 되고, 완료하면 잔금 350만 엔이 다시 이체된다. 재미있는 것은 살인의뢰를 받는 사람과 청부살인업자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중간연락책이 두 사람을 중계하고, 그 역시 의뢰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사이에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두고 있어 의뢰인과 청부살인업자는 서로의 정보를 알 도리가 없다는 이중 맹검법으로 이들은 나름 치밀하게 업무를 수행해나간다. 경영컨설턴트이자 청부살인업자인 도미자와 미쓰루, 치과의사이자 살인의뢰를 접수받는 아쿠타가와 이세도노, 공무원이자 중간연락책인 쓰카하라 슈운스케, 이렇게 세 남자가 청부살인을 의뢰 받고, 수행하는 과정이 매우 담백하고 일상적으로 흘러간다는 점 또한 이 작품 만의 특징이다.

 

"나는 의뢰인과 접촉하지 않아. 동기도 모르지. 그래도 여러 명을 죽이다 보면 그냥 알게 되는 게 있어. 인간은 원한이나 증오만으로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지 않아. 그런 동기라면 직접 손을 대지.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기 위한 조건은 내 생각으로는 상대가 살아 있으면 명확하고 구체적인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야...."    p.132

치과의사, 공무원, 경영컨설턴트라는 남부럽지 않은 멀쩡한 직업을 가진 세 남자가 대체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동기나 배경은 알 수 없다. 청부살인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 독특한 직업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일상적으로 그리고 있어 사람을 죽이는 일의 무게보다는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비즈니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각각의 의뢰 건에 대한 단편처럼 읽히는데, 청부살인업자가 의뢰인의 동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미스터리가 주요 플롯이 된다. 그래서 수상한 의뢰인이 등장하고, 청부살인업자는 무심하게 사람을 죽여놓고 그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추리하는 것이다.

저 여자는 왜 한밤중에 공원에서 검은 물통을 씻을까? 퇴근길에 기저귀를 구입하는 저 독신남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자를 흡혈귀에 물린 모습으로 죽여 달라고 의뢰한 이유는? 어딘가 수상한 의뢰인들은 대체 왜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사원이 1년간 열심히 벌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상대를 망자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살인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청부살인업자피해자의 죽음에 얽힌 사연이라는 독특한 구성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물론 너무도 쿨하고 담담하게 청부살인을 수행하는 킬러의 모습이 그다지 와 닿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청부살인업자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다소 어이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쉽게 빼앗을 수 없고, 거기서 생명을 대신 빼앗아주는 청부살인업자라는 전문직의 존재 의의가 있다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이상한 논리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색다른 일상 미스터리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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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기술 - 침대에 누워 걱정만 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7가지 무기
개리 비숍 지음, 이지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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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에게 네 안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으니 네 안의 짐승을 깨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여러분은 호랑이가 아니고, 둘째 역시나 여러분은 호랑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도 누군가에게는 효과가 있겠지만 도저히 낯간지러워서 나는 그런 말은 못하겠다. 나에게 그런 일은 억지로 메이플 시럽을 한 바가지 먹으라는 말과 같다. 고맙긴 한데, 사양하겠다. 긍정의 역설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은 좀 다른 길을 간다.   p.17~18

당신은 아마도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제대로 실천한 적은 없을 것이다.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지만 지키지 못했으며, 이런저런 일을 시작할 거라 다짐했지만 한 번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바꿀 모험을 수십 번, 수백 번 시작했지만 이내 시들해지고 만다. 왜 그럴까. 당신이 아직도 똑같은 직장, 똑같은 관계, 똑같은 과체중의 몸에 매여 있다면, 바라던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임종을 한번 상상해보라. 누워서 당신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후회? 회한? 슬픔? 젠장, 깨어나라!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이 책은 이렇게 계획을 세우지만 매번 실천을 못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일에 핑계만 대는 사람, 겨우 시작은 하더라도 제대로 끝을 맺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의 기술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내일부터는 진짜 달라질 거라고 결심하지만 언제나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후회만 쌓여간 경험이 있다면, 무조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목표는 실제로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속지는 마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말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바라게 만들어서 결국은 인생의 희생자로 만든다. 때로는 그냥 원하는 것을 위해 죽도록 노력하고,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돌진해야 한다. 말그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당신이 만들어야 한다.   p.165

이 책은 처음엔 독립 출판으로 출간되었다가,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내 열성적인 팬들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세계적인 출판사 하퍼콜린스에서 재출간되었으며,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아울러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45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독자들이 만들어낸 역주행 밀리언셀러인 셈이다. 그만큼 여타의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책이다. 시작부터 '어쩌면 당신이 좇는 그 행복, 원하는 몸무게, 선망하는 커리어, 갈망하는 사랑은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 없을지 모른다'고 단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군말 빼고 핵심만 명쾌하게, 쓸데없는 희망을 주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단호하고 직설적으로 행동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무엇보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는 저자의 말이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이 당신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뭘 하는가가 당신을 규정한다'는 말이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멈춰 서거나 꾸물댄다고 해서 인생이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확신하지 못하거나 두려워한다고 해서 인생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뭘 하든 인생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삶을 바꿀 의지가 있는가.에 있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살 의지가 있는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의지가 있는가? 절대 성공하지 못할, 지속되지 않을 관계를 참고 견딜 의지가 있는가? 이런 거지 같은 상태를 더 이상 참고 싶지 않다면, 당신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의지가 없다면, 당신은 이대로 사는 게 그런대로 참을 만한 게 틀림없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렇게 현실을 직시하고, 패배감과 무기력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텔레비전을 끊어라. 읽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끊어라. 과식을 끊어라. 소파에 붙어사는 것을 끊어라. 미루는 버릇을 끊어라. 그리고 그 자리에 뭐든 좋은 것이 들어설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말했듯이, 핑계는 그만 대라! 이제 삽질은 그쯤하고 삶 속으로 뛰어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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