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갈 곳이 없을까요? 웅진 세계그림책 197
리처드 존스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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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없이 혼자 떠도는 개, 페르. 새까만 털은 비에 흠뻑 젖었고, 발밑은 축축한 풀 때문에 차갑다. 페르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두들 어딘가 갈 곳이 있어 보였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달려가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페르는 온종일 돌아다닌다. 들어가 보고, 나오고, 올라가 보고, 내려오고.. 하지만 그 어디서도 페르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페르는 어디로 가야 할까.

 

<눈구름 사자>의 그림 작가 리처드 존스가 보여주는 따뜻한 색채의 감성들이 쓸쓸함를 그리면서도 다정함과 위로를 품고 있어 더욱 인상적인 작품이다. <눈구름 사자>에서 아무도 모르는 세계이지만 나에게 힘을 주는 세계인 환상의 존재를 탄생시켰던 그이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갈 곳 없는 페르에게 누군가 따뜻한 힘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갈 곳 없이 혼자 떠도는 유기견이야말로, 함께하는 친구가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한때는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존재였을 페르의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유기견 문제는 현실에서도 숱하게 벌어지곤 하니 말이다. 이 추운 계절에 갈 곳 없이 떠도는 현실 속 페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리처드 존스는 작품 속에서 동물들을 자주 등장시켰다. 사자, 고래, 그리고 개 등등.. 그들은 어떤 작품에서는 현실에 디딘 발이 힘을 잃을 때 우리의 안부를 물으러 찾아오는 환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도시 한가운데 유리 어항에 갇혀 사는 외로운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른 책에서는 집을 잃고 버려진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따뜻한 색채와 위로가 되는 감성이 아닐까 싶다. 색채가 너무 푸근하게 느껴지고, 뾰족하지 않고 둥근 느낌을 주는 그림체도 말랑말랑한 기분을 안겨준다.

웅진 세계그림책 197번째 작품은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한 유기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릴 때는 예쁘니까 쉽게 키우려고 하지만, 키우다가 병이 들거나, 귀찮아지면 너무도 쉽게 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명이 가지는 무게감을, 소중함을 종종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지금도 거리를 떠도는 수많은 생명들을 기억하며,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고대하며, 길 위의 작은 생명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다 어느덧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페르 앞에 손을 내밀어 주는 작은 존재가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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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버드 수학 시간 - 삼수생 입시 루저의 인생 역전 수학 공부법
정광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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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수학은 우리 일상과 더 밀접해질 것이다. 더 와닿게 얘기하자면 앞으로 이런 것들이 산업이 될 것이고 직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수학 교육은 1980넌대 후반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유명했던 <수학의 정석>이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에게 제1의 수학 교재인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시험 자체가 새로운 변화에 뒤처져 있는 것이 문제이지, 이 책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p.44

 

학창시절이 끝나자 마자 가장 먼저 잊어 버린 학문이 아마 '수학'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이제 다시는 들여다 볼 필요없겠구나 싶어서 제일 좋았던 과목이 '수학'이었고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대체 이런 교과목은 왜 필요한가, 살면서 아무 짝에도 쓸 일 없는 이런 학문을 위해서 왜 우리는 이렇게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가 말이다. 쓸모 없고, 재미없고, 어렵고, 지루하고...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두 번 다시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은 그런 공부가 수학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늘 수학을 사용하고 있다며, 수학은 그냥 학교 교과목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삼수생이 미국에서 새롭게 수학을 배워 하버드에 들어가고 보스턴 최고의 수학 강사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좌충우돌 미국 수학 적응기와 교습 노하우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수학 공부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나이 마흔에 하버드대 익스텐션 스쿨에 입학, 수학 교육 전공으로 2년 만에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지 보스턴의 스타 강사로 수많은 제자들을 하버드대, MIT, 존스홉킨스대 등 명문대에 진학시켰다. 평범한 수학 투덜이가, 삼수를 하고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던 그가, 영어라곤 "예스, 노"만 하는 수준이었던 그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수학을 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앞선 세 유형 중 등반가가 돼라. 산을 오르는 것은 결국 본인이다. 다만 나는 먼저 그 길을 올라본 선배로서 좀 더 효율적으로 올라가는 팁을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현명한 체력 안배, 알맞은 등산화, 적절한 수분과 당분 보충, 안전한 등산 스틱 사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쉽게 정상에 도달할 테니까. 마찬가지로 수학에 왕도(王道)는 없어도 정도(正道)는 있다.    p.172

 

왜 수학은 이토록 어려울까? 문제 풀이와 공식 암기가 전부인 양 공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의 수학 교육의 현주소를 짚어주고, 뭐가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국의 수학 교육과 비교해가면서, 맥락과 의미를 따라가면 수학 공부는 생각보다 쉽고 즐겁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수학 교육은 '컴퓨터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그들의 수학 교육은 '컴퓨터 쓰는 법'을 배우는 거라는 얘기다. 이 차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수학과 결코 친하게 지낸 적이 없던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자신이 겪은 무수한 시행착오, 직접 지도한 학생들의 사례, 하버드에서 경험한 새로운 수업 스타일 등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가 제시하는 '수학을 이기는 5가지 방법' 또한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나, 수학 계통도를 보며 개념 간 연결 고리를 파악하라.
둘, 기초 쌓기엔 개념서 다독보다 문제 풀이가 더 좋다.
셋, 쉬운 문제 여럿보다 어려운 문제 하나를 붙들어라.
넷, 매일 10분보다 하루를 제대로 투자하라.
다섯, 무조건 암기하기보다 묻고 이해하며 공부하라.

 

저자는 개념 간 연결 고리를 표현한 수학 계통도를 항시 살피며 공부할 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의미와 맥락을 좇아 공부할 때 수학은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어진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초등 수학부터 고등 수학까지 6개 핵심 줄기로 한 번에 꿰는 수학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차함수의 최댓값과 최솟값이 NASA 우주 탐사 프로젝트로, 소인수분해가 미래 암호 기술로, 행렬과 통계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며 '진짜' 수학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수포자'였던 과거가 있는 사람들부터 현재 수학 공부가 너무 힘든 학생과 자녀의 수학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에게도 매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수학? 누구나 잘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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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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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힘들게 힘들게 하루가 갔다/
지구를 두 팔로 안아 들어 올리듯/힘들게 힘들게 하루를 보냈다/
그건 아마 너도 그랬을 터/뱃멀미 거센 파도와 바람 무릅쓰고/
먼바다 흔들리는 먼바다 나가/얼마나 많은 고기를 잡아 왔을까/
그렇지만 아이야/잡은 고기가 비록 많지 않고/이룬 일 비록 많지 않아도/
하루를 마음 졸여 무사히/잘 보낸 것만 우선 고마워하자/


-p.90, '가난한 소망' 중에서

 

사실 표지 때문에 읽고 싶어진 책이다. 표지 이미지는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오아물 루의 작품인데, 최근에 국내에서도 전시를 가지기도 해서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주로 여행지에서 경험한 것들을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 속 풍경들이 선사하는 그 느낌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관심있게 보고 있다.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도 많이 했고, 국내 책의 표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특히나 이번 책의 감성은 계절과 너무 잘 어울려 더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겉표지를 벗겨내어서 접힌 부분을 펼치면, 예쁜 포스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풀꽃 시인' 나태주의 등단 50주년 기념 신작 시집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라는 시, '풀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시를 잘 읽지 않는 이들도 웬만하면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그 시를 쓴 시인 나태주. 이번 신작은 시인의 50년 시력을 기념하는 시집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1971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 등단한 지 햇수로 꼬박 오십 년째라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를 써온 그 길고도 깊은 시간을 차마 헤아리지도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이 시집은 시인이 쌓아온  반세기의 내공을 함축해서 한 권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녁 때/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p.170, '행복' 중에서

 

이번 시집은 1부 신작 시 100편, 2부 독자들이 사랑하는 애송 시(대표 시) 49편, 3부 나태주 시인이 사랑하는 시 6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나 신작 시들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난해하고 복잡하거나, 은유로 점철되어 이해하기 어렵거나 하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동안에도 워낙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와 짧은 분량으로 시를 써왔기에,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시였지만 말이다. 인생이 무엇인가/한마디로 말하는 사람 없고/인생이 무엇인가/정말로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 없다, 사람들이 물이 없는 땅에서도/울창하게 자라는/나무처럼 산다/꿋꿋이 견디며 산다, 지금은 또다시 저녁/어둠이 우리의 피곤한 몸과 마음/감싸 안아 쉬게 한다/쉬어라 쉬어라 다 잊어준다, 그래, 그래, 애썼구나/잘 참아줘서 고마웠단다/이제 좀 쉬어라/쉬어야 다시 또 떠날 수 있지 등등... 담백하지만 위로가 되는 문구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삽니다/모진 마음을 달래며/삽니다/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숨기며 삽니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 살아 있음이 기적이고/내가 또 너를 다시 만나고/너를 사랑함이 더욱 기적 같은 일임을/알기 때문이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등 설레이는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사랑에 관한 시들도 다정하게 읽혔다. '쓸쓸해져서야 보이는 풍경이 있고, 버림받은 마음일 때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럴 때 평소에 안 듣던 음악을 찾아 듣고,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사는 건 매번 만만치 않은 일이고, 사랑 역시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해서 쉬운 일은 절대 없다. 그러니 '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을 함께 겪어 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인은 말한다. '인생은 고행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시인의 따뜻하고 사려 깊은 위로가 필요한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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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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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가 활기 없고 칙칙하게 시작되었다. 윌마는 마지못해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나무 아래 선물을 두었다. 상자 두 개는 위 윌리가 보낸 것이었다. 만약 복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위 윌리에게 전화해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집에 오라고 했을 것이다. 그랬어도 교외 지역의 분위기와 중산층 특유의 세간을 좋아하지 않는 위 윌리는 집에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복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어니가 일을 때려치우고 당장 뉴멕시코로 딸을 만나러 갈 수 있었을 텐데.... , 엎질러진 물이다. 아니, 엎질러진 술이다.     p.27~28

 

결혼 40년차 부부인 윌마와 어니는 항상 같은 숫자로 복권을 사곤 했다. 어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와 그들의 딸이 태어난 해를 조합한 숫자였다.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 특별 뽑기에 당첨이 되어 무려 200만 달러라는 상금을 받게 되었다. 20년 동안 매년 세금 떼고 10만 달러였다. 어니는 윌마가 이 기쁜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문제는 그때 하필 윌마가 언니인 도로시를 만나러 필라델피아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는 거다. 도로시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고, 라디오도 거의 듣지 않았으니 당첨 소식을 아직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어니는 혼자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위한 자축을 위해 바에서 한 잔 하며 이 돈으로 윌마와 어떤 삶을 누릴 것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런데 다음날 정오, 윌마가 집에 왔을 때 어니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복권을 잃어버렸다고. , 이들 부부는 도둑맞은 크리스마스 특별 복권을 찾을 수 있을까.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그게 그 표라니깐요>라는 작품이다.

피터 로빈슨의 <블루 클리스마스>에서는 혼자지만 크리스마스 동안 사흘간의 휴일을 맞게 된 뱅크스 경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볼 영화, 당일과 복싱데이에 볼 영화도 골라놓고, 함께할 음악과 휴일 동안 읽을 새로 구입한 책도 있었다. 아들은 유럽에서 밴드 멤버들과 있을 예정이고, 딸은 엄마와 새아빠와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었다. 뱅크스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와인과 음악을 자유롭게 마시고 즐기는 걸로 충분했다. 물론 한 통의 전화 때문에 그의 계획은 지켜지지 못했지만. 42세 여성의 실종 사건이 벌어졌고, 마땅히 책임지고 수사할 만한 인력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원래 크리스마스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순경이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사소했다. 범죄자들도 칠면조와 크리스마스 푸딩은 먹고 싶은 모양이라고들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과연 뱅크스 경감의 크리스마스 연휴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실종된 여성은 발견되고 사건이 해결될까.

 

 

 

 

내 마지막 범죄는 쾌활하고 편안한 영국 중산층 스타일의 크리스마스 범죄였어. 찰스 디킨스식이었지. 퍼트니 인근에 있는 훌륭하고 오래된 중산층 저택이었는데 마차 발자국이 연달아 있고 집 한쪽에 마구간이 있었어. 두 개의 문에는 문패가 달려 있었고 칠레삼나무가 서 있는 집. 어떤 집인지 그림이 그려지지? 디킨스 스타일을 모방하다니 참 솜씨 있고 문학적이었던 것 같아. 같은 날 참회를 했다는 게 애석할 지경이지.   p.244

 

전설적인 편집자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미스터리 서점을 배경으로 유명 작가들이 집필한 크리스마스 사건들을 엮은 단편집이 벌써 세 권째이다.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이어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작년에 나왔고, 올해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미스터리>가 출간되었다. 작년에 이 시리즈를 읽었다면 모두 기억하겠지만, 원래 <The Big Book of Christmas Mysteries>는 무려 1,000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이라, 작년과 올해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이 되었다.

 

이 멋진 크리스마스 앤솔로지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너무도 소설스럽다. 당시 뉴욕의 미스터리 서점은 여타의 많은 독립 서점과 마찬가지로 거대 기업의 체인점과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온라인 서점과 구식 서점을 위협하는 전자책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토 펜즐러는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미국에 거주하는 추리소설 작가들에게 독창적인 이야기를 써달라고 주문한다. 조건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해야 하고, 미스터리를 포함해야 하고,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었다. 그걸 소책자로 제작해서 고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 주었다. 그것이 화제가 되어 평소에 별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소책자를 손에 넣기 위해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게 무려 17년간이나 이어진 행사였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이 크리스마스 앤솔로지에서 으스스한 것, 가슴 따뜻하고 뭉클한 것, 웃기고 유쾌한 것, 곤혹스러운 것 등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지만 매년 돌아오게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과 함께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물론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긴 겨울 밤을 함께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특히나 여기 수록된 이야기들이 크게 폭력적이지 않고 선혈이 낭자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 더 기분 좋게 미스터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와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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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1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2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커밍 다이어리북 - 참 괜찮은 나를 발견하는 155가지 질문들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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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또는 모든 게 다 있었습니다.

결국 내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첫 자서전이었던 <비커밍>에서 봤던 그녀의 글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다이어리북이다. <비커밍>을 읽으며 시카고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시절부터, 우등생으로 자라나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고, 이후 하버드대 로스쿨에 가고, 일류 법률 회사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다 신입 인턴인 버락을 만나게 되는 히스토리는 마치 드라마처럼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로서 모습은 여성들의 아이콘, 롤모델이라 할만 했다.

 

이번에 만난 다이어리북에는 자기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때론 강렬하게 독자를 글쓰기로 이끄는 155개의 질문들과 미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소소하지만,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어나가면서, 어제와 다른 나, 어제보다 더 나다운 나를 만나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게 무엇이든 다 소중하다. 그러니 시적으로 근사하게 쓸 필요도 없고, 벼락 같은 깨달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꼭 매일 쓸 필요도 없고, 뭔가 중요한 말만 적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들이나 내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는 등.. 나의 경험과 생각, 감정들을 고스란히 적어두면 된다. 그게 바로 일기의 역할이자 목표이니 말이다.

 

내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표면적 성취가 아니라

그것을 떠받친 기틀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수없이 받았던 작은 지지들,

자신감을 키우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핵심이었습니다.

살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린 시절 자란 동네가 어땠는지 적어보세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 그와 다시 대화할 수 있다면, 무엇을 물어보겠어요? 한 해 동안 겪은 굉장한 일 열 가지를 꼽아볼까요. 세상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어린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생님은 누구였나요?  부모님이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고 있나요? 지금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요? 그것을 겪어낼 준비는 단단히 되었나요? 세상에 근심이라고는 하나 없는 듯 마음이 평온했던 순간을 돌이켜 적어보세요.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바꾸는 일을 해본 적 있다면, 무엇인가요? 풍파 속에서도 늘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등등.. 바로 떠올려보고 적을 수 있는 질문도 있고, 좀 생각해봐야 할 것들도 있고,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비커밍,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비커밍 다이어리북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남들과 나누는 과정 자체를비커밍' 으로 보았던 그녀의 메시지에서 출발하는 다이어리북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각종 다이어리와 플래너가 각양각색의 실용성과 예쁨을 뽐내며 시선을 사로 잡는 시기이다. 연말과 새해만 되면 모두들 한 해 동안 얼마나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새로 맞이할 일년 동안에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 세우곤 하니 말이다. 일 년은 365개의 경험 조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퍼즐과도 같다. 눈뜨자마자 정신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수많은 하루하루가 쌓여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매일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종종 잊어 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사소한 일상들을 기억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올해가 시작된 지 벌써 10일이나 지나버렸다. 비커밍 다이어리북과 함께 올 한해는 참 괜찮은 나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내가 되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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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1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20-01-11 02:07   좋아요 0 | URL
저도 매년 별다방 다이어리로 새해를 맞이하는데.. 올해는 비커밍 다이어리북도 함께 하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