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으로 간 뇌과학자 - 실험실에 갇혀 살던 중년 뇌과학자의 엉뚱하고 유쾌한 셀프 두뇌 실험기
웬디 스즈키 지음, 조은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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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아름다운 뇌가소성의 한 가지 예일 뿐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그리고 그것의 기간과 강도가 뇌에 영향을 준다. 탐조 전문가가 되면 뇌의 시각 체계가 변하여 아주 작은 새들까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탱고를 매일 추면 정확한 발놀림을 수용할 수 있도록 운동 체계가 변한다. 몇 년간 다이아몬드 교수의 강의실에서 배운 인생의 교훈은 내가 매일 뇌의 형태를 빚고 있으며 당신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p.34

신경과학자로서 권위 있는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종신 교수 자격까지 얻었으며, 여성 과학자들의 롤 모델이기도 한 웬디 스즈키는 어느 날 문득 아주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꿈에 그리던 경력을 쌓느라 사회생활과 연애를 멀리했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지 못했으며, 오로지 일만 하느라 다른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몸은 정상 체중보다 9킬로그램이 더 나갔으며, 과학 외에 일상생활은 엉망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하게 된다. 신경과학에 관한 자신의 모든 지식을 삶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뇌 전체를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뇌와 몸을 연결해야 했다. 그녀가 번아웃을 극복하고 새로운 뇌 영역과 몸 전체를 깨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어떤 것일까.

그녀는 스스로 운동과 뇌가소성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표본이 되어 셀프 두뇌 실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결론으로 운동하는 뇌의 잠재력을 주제로 한 테드(TED)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 강연은 640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는데, 바로 그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화제의 강의를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운동과 뇌가소성의 관계를 이해하고 뇌를 활성화하면 누구나 스스로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밝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완벽한 허구다. 현실 세계에서 운동은 에디 모라의 알약이나 윌 로드먼의 가스처럼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처럼 의식적인 운동은 매일 사용하는 다양한 뇌 기능에 명확하고 두드러진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운동이 청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나는 '운동이 뇌를 바꿀 수 있을까?' 수업을 통해 그것을 다뤄볼 완벽한 기회를 잡았다.    p.144

뇌가소성이란 인간의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지식이나 경험이 쌓일 때 두뇌 신경 연결망이 더해져 변화하는 성질을 말한다. 저자는 신경과학자로서 뇌가소성, 즉 경험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뇌의 능력에 주목했고 번아웃 극복의 핵심이 황폐해진 뇌를 쉬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뇌 전체를 균형 있게 사용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두뇌에 치우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신체와 두뇌의 균형을 맞추자 새로운 뇌 영역이 깨어나고,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체중 감량, 운동의 중요성이야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 실제로 그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직접 실천하는 경우는 아는 것에 비해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뇌과학이라는 매우 논리적인 이론을 통해 실제로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을 체감하게 만든 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웠다. 아인슈타인도 사는 게 복잡할 땐 몸을 움직였다고 하니 가히 뇌를 깨우는 브레인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운동은 당신을 더 똑똑하게 만들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몸을 쓰는 것이 두뇌 활동에 도움이 된다니.. 어쩐지 이해가 안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의식적인 운동은 다양한 뇌 영역을 활성화한다. 운동이 어렵다면 오감과 인지기능을 자극하는 방법도 있다며 몇 가지 직접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신경과학, 뇌과학.. 이라고 하면 뭔가 더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데, 저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되어 있는 이야기라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과학적인 여러 지식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신경과학 분야 최신 연구로 밝혀낸 '운동하는 뇌'의 비밀에 대한 과학 입문서로도 훌륭하고, 우리의 운동 습관, 생활 방식에 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특별한 자기 계발서로도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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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아지 웅진 모두의 그림책 10
박정섭 지음 / 웅진주니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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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여기서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어쩌면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은 산책길이었을 것이다. 강아지에게 뼈다귀 하나 물려 주고,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주인은 어디론가 가 버린다. 남겨진 강아지는 주인이 시킨 대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주인이 나를 데리러 올 테니까, 그렇게 나와 약속했으니까, 그런 믿음으로 강아지는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

반짝이던 하얀 털이 온갖 먼지와 매연에 숯검정이 될 때까지, 그리하여 검은 강아지가 되어 버릴 때까지 말이다.

 

강아지는 의리의 동물이다. 실제로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를 하염없이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 강아지의 사연이 방송되었던 적도 있고, 주인이 먼저 죽고 나서 매일 같이 주인의 무덤에 가서 시간을 보내던 강아지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온 적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려견이라는 존재가 가족이 아닌 악세사리나 장난감처럼 취급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릴 때는 예쁘니까 쉽게 키우려고 하지만, 키우다가 병이 들거나, 귀찮아지면 너무도 쉽게 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멀쩡한 강아지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렸다는 사람의 행동에 누군지도 모르는 그를 향해 너무 화가 났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생명이 가지는 무게감을, 소중함을 종종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게 하고 싶다. 그럼 최소한 자신이 쉽게 버린 그 생명이 어떤 생각을 했을 지, 어떤 마음으로 주인을 기다렸을 지 알게 될테니 말이다.

 

예전에 방송에서 가수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을 버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감정을 표현한 거라는 걸 알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적이 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잠깐이면 될 거라고, 여기 서 있으라고 그렇게 말한 대상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이 그림책 속에서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마음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은 강아지가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버려진 후 강아지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어 더욱 뭉클했다. 검은 강아지가 되어 버린 강아지가 자신과 똑 닮은 친구를 발견해, 주인이 올 때까지 함께 놀기로 하고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그런 순간들 속에서는 검은 강아지가 덜 외로워 보여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마도 반려견을 키운 적이 있다면, 혹은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 돌아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는 특별한 부록이 숨겨져 있는데, 바로 그림책 작가 박정섭과 뮤지션 슌의 <검은 강아지> CD이다. 책의 첫 번째 페이지에 있는 집의 문을 열면 보이는 QR코드로도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림책에는 담기지 않은 검은 강아지의 회상, 주인과의 추억들이 뮤직 비디오로도 제작되어 담겨 있으니 놓치지 말고 봐야 한다.

그림책과 음악, 영상 분야의 컬래버레이션이 신선했는데, 하나의 작품을 이렇게 다채로운 방식으로 읽고 보고 듣게 되는 체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검은 강아지의 모델은 실제 박정섭 작가와 오래도록 함께했던 강아지 공주라고 한다. 책이 출간되기 3년 전 공주가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는데, 공주가 그에게 주고 간 소중한 선물들을 추억하며 만들어진 그림책인 셈이다. 그래서 강아지의 움직임이나 표정 등에 모두 반려견 공주에 대한 작가의 추억과 시간이 쌓여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생생한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해 버려지는 유기견의 수가 10만 마리를 넘는다고 하는 충격적인 보도를 들었다. 대체 그들이 뭘 잘못한 걸까. 남겨진 동물들은 죄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주인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날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잊어버린걸까.. 버린 건 아닐거야."

너무 예쁜 그림책이었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한참 먹먹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겠지만, 어른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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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왕 신비한 우주 슈퍼 대백과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13
레커사 엮음, 최기영 감수 / 글송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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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13권은 '신비한 우주 슈퍼 대백과'이다. 우주에 관한 모든 것을 총정리하고, 우주에 관한 모든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1장에서는 태양계부터 시작해 우주 공간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과 태양을 비롯한 각각의 행성 별 특징과 정보들을 알려 준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2장인데, 최신 과학으로 밝혀진 우주 연구 자료와 함께 우주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언제부터 존재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UFO와 외계인은 정말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건지, 우주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부터 초자연적인 정보까지 총 망라되어 있다. 우주에 관한 연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그러한 부분들을 반영해 호기심을 풀어주는 거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을까? 별은 영원히 살 수 있을까? 블랙홀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장 거대한 별은 무엇일까? 지구와 꼭 닮은 행성이 있을까? 등등 어린이들이 궁금해 할만한 흥미로운 주제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각각의 테마에 대해 현재 어느 정도 연구가 되어 있는지가 표시되어 있어서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중성미자는 정말 존재할까? 라는 질문에는 연구 성과가 90%, 그에 비해 암흑에너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는 연구 성과가 10%로 표기되어 있다.

우주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연구 성과가 무려 100%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우주 공간에서 휴면 상태로 살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은 바로 곰벌레라고 한다. 2007년에 과학자들이 이 곰벌레를 직접 우주 공간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고, 이들은 치명적인 우주 환경에 노출되었지만 대부분 살아서 돌아왔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3장으로 가면 한창 연구 중인 우주 기술을 포함하여 우주에 가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우주인이 되기 위한 훈련 과정과 우주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 등 우주인 선발에 관한 궁금증들이 수록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에 우주와 관련된 직업이 있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최강왕 시리즈를 계속 보면서 느낀 건,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설명이 되어 있고, 흥미로운 그림이나 생생한 사진들로 아이들에게 정보 전달이 빠르다는 거였다. 이번 책 역시 신 과학으로 밝혀진 우주의 비밀을 생생한 사진과 잘 정리된 키 포인트가 있어 눈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우주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주제 68가지를 Q&A 형식으로 꾸며 수록하고 있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궁금증을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 4장에는 우주 용어 사전, 우주개발의 역사, 사계절 별자리 등 우주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어 필요할 때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실 우주에 관해서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라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정보들을 만나게 되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는 그 동안 동물, 공룡, 생물, 요괴, 위장 생물 등 다양한 시리즈로 출간이 되었는데, 다음 시리즈도 역시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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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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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커는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다보았다. 고향인 오하이오와 무척 비슷해 보였다. 반쯤은 살아 있고 반쯤은 죽어 있는 곳. 실제로는 죽은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어쩌면 중요한 의미에서, 재미슨은 아까 정곡을 찔렀다.

나는 카산드라와 몰리의 살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잡으려 하고 있어. 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 세상에는 늘 살인자들이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이게 내 세상이다. 내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p.49

이 시리즈의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는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이다. 그는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 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이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5개월 동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의 삶은 처참히 무너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범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와 자백을 한다. 데커는 그와 관련된 사건 해결에 활약한 것을 계기로, FBI 미제 수사팀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이번 작품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에 이어 네 번째 시리즈이다. 에이머스 데커는 동료 FBI 요원인 알렉스 재미슨을 따라 그녀의 언니 집에 휴가차 오게 된다. 그들의 상관인 특수 요원 보거트가 데커에게 휴가 비슷한 거라도 좀 내라고 닦달하지 않았다면 선뜻 그녀를 따라 나서지 못했겠지만, 사실 달리 갈 만한 데가 단 한군데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곳은 배런빌이라는 소도시로 한때 제분소와 광산으로 번영했으나 지금은 쇠락하여 폭력과 마약만이 들끓는 곳이다. 그날 데커는 밤하늘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살지 않는 뒤쪽 집에서 전등이 깜빡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단단한 물건이 부딪히는 쿵 소리, 뭔가를 긁는 소리에 이어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수상한 느낌에 데커는 뒷집을 향해 달려가고, 그곳에서 두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침 이 곳에서는 지난 2주 사이 벌써 네 차례의 기괴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경찰은 갈피조차 못 잡는 상태였다. 데커와 재미슨은 현지의 경찰들과 함께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데커는 화염을 피하다 머리에 부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완벽한 기억력과 공감각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데커 씨, 당신은 토비하고 다른 사람들을 죽인 자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내가 하려는 일입니다."

"토비는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내 생각엔 정말이지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p.298

이 시리즈만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아마도 에이머스 데커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에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시리즈들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당한 사고로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가지게 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어떤 기억을 찾으려고 할 때 머릿속의 영상 저장 장치를 켜면, 눈 앞에서 그 형상들을 마치 녹화된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보기라도 하듯이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능력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도록 만든다. 거기에 더해 데커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하는 수사란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능력은 매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던 그 완벽한 기억력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데커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코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캐릭터의 변화가 앞으로 이어지게 될 시리즈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이고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들며 인물들의 관계가 연결되고 교차되면서 플롯은 더욱 복잡해졌고, 에이머스 데커에게 새롭게 닥친 문제점이 그의 내면과 행동에 모두 영향을 끼쳐 변화의 지점을 시사하고 있다. 1996년 데뷔작 <앱솔루트 파워> 이래로 지난 20여 년간 30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며 뛰어난 작품 완성도와 대중적 재미로 사랑 받는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는 판매부수로만 봐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함 범죄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 3천만 부나 판매되었으니 말이다. 대중성과 작품의 완성도를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재미와 수준을 함께 보장해준다. 그리고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야말로 이제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올해 4월에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Redemption'이 출간된 상태이다.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진화하는 캐릭터 '에이머스 데커'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어떤 활약을 보여 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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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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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 엄마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게는 없는 존재와 함께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내 삶에 그들의 삶을 덧대어보고는 한다. 사지 않을 옷을 거울 앞에 들고 서서 몸에 대어보듯이. 그러고 나면 잔상이 남는다. 펜으로 눌러쓴 자국이 다음 페이지에까지 남듯이. 그 자국을 손끝으로 훑으며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지만 예쁘기는 참 예쁘던 옷을 떠올리듯이. 결국 삶이란,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의 덧셈이나 뺄셈이 아닐까. 했어야 하는 일과 하지 못한 일의 곱셈이나 나눗셈일지도 모르고.     -'룰루와 랄라' 중에서, p.51~52

언젠가 늦은 밤에 누군가 우리 집 현관의 비밀번호 키를 잘못 누르는 소리를 듣고는 오싹했던 적이 있다. . 삐삐삐삑.. 물론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아마도 술에 취해 자신의 집인 줄 착각했던 남자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고, 희미하게 번호키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혼자 사는 여성이 아니었고, 내가 거주하는 곳도 대부분 가족들이 함께 사는 집들이었지만, 그때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혹은 그 남자가 집주소를 착각했던 게 아니라 나쁜 마음을 먹고 찾아 왔던 거라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도 무서웠다. 최근 술에 취한 채 낯선 여성의 뒤를 밟아 그 여성이 집에 따라 들어가려고 했던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처럼, 그렇게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대한민국은 안전한 곳이 아니다.

표제작인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여자는 새로 이사 온 오피스텔에서 밤마다 찾아오는 낯선 남자들을 통해 그러한 공포를 경험한다. 다행히도 그들은 주인공 여자에게 딴 마음을 품고 나쁜 짓을 하려 했던 이들은 아니었고, 오피스텔 성매매를 하러 온 남자들이었다. 더블타워 오피스텔은 입구만 다를 뿐, 두 동의 외형과 구조가 같았고, 그래서 주소를 착각해 잘못 찾아온 남자들이 밤마다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눌러댔던 것이다. 장류진 작가는 이 책에 등장하는 밤의 남자들을 쓰면서, 자신이 실제로 알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좋은 학교를 졸업해, 좋은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와 아내도 있는 그들은 성매매 경험을 본인의 입으로 공공연히,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SNS에 화목해 보이는 가족사진을 올리고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이중적인 인간들이었다. 그들이 만약 이 작품을 읽게 된다면 작가에게 연락할 지도 모른다. 이거 설마 내 얘기냐고.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 이거 네 얘기야.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바로 당신."

 

너도 이제 그만 선배를 이해해줘.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잖아. 하나는 전체를 위한 거지만 전체가 하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지나는 항상 입바른 소리를 지껄인다, 고 보라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나는 생래적으로 부친 살해의 욕망조차 박탈되어 있잖아. 민주화에 투신한 부모를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차라리 아버지를 미워했으면 좋겠다고...아버지는 누구에게나 카프카의 아버지인데 내게는 아버지를 미워할 당위조차 없으니 억울하지 않니? 지나의 말과 함께 창밖 풍경이 빠르게 멀어진다. 우리는 결코 우리일 수 없었다.    -'예의 바른 악당' 중에서, p,188

여자는 직장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상사를 고발했다가 퇴직을 강요 당하고, 싸우기도 지쳐서 그 길로 회사를 나와 버린다. 그리고 5년간 사귄 남자 친구에게 그간의 일들을 말하며 자신의 편을 들어줄 믿음직한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얼굴이 벌게 져서 벌떡 일어난 남자의 입에서 나온 건 고작 그 따위 일에 밥벌이를 때려치우다니 지금 제정신이냐는 분노의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그 따위 일이라니. 저게 날 사랑한다는 연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가. 그렇게 그녀는 실직과 실연을 동시에 겪게 된다. 그런데 그들에겐 결혼과 미래를 꿈꾸며 함께 저축해온 데이트 통장이 있었으니, 통장의 명의는 남자였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이 월세와 공과금으로 다 나가버리고 당장 쌀 살 돈도 궁하게 되어 그에게 내가 부은 액수는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위자료로 받아두겠다며 억울하면 경찰이라도 부르라고 개 풀 뜯는 소리만 해댄다. 전 남친에게 통장도 털리고, 멘탈도 털리고, 직장에선 쫓겨나고.. 그런 상황에서 여자가 저지르는 일탈은 황당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당돌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 담겨 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이 책에는 제각각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그녀들이 있다. 눈먼 섹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밤마다 찾아오는 남자들의 얼굴을 촬영해 프린트해 두는 여자, 성추행을 일삼는 상사를 고발하고 자발적으로 잘리고 만 여자, 연애라는 이름으로 섹스를 해야 했던 미성년 소녀, 정치적 올바름으로 주장하느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애인과 친구를 떠나는 여자, 선생님들의 추행을 폭로하는 포스트잇을 학교 복도에 붙이는 소녀, 결혼을 꿈꾸며 함께 모은 데이트 통장을 남자에게 털리고 멘탈도 함께 털린 여자 등... 나에게도,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이미 일어났던 그런 일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사건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분별하기 어려운 그런 일들을 겪은 그녀들의 삶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분명 픽션으로 그려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에겐 현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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