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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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암과 파타가 열심히 노를 저으면 12일 만에도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버지로서 도저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문제, 그의 입 속을 활활 태우는 문제. 그들에게 배는 달랑 한 척뿐이었다. 파타의 짐작대로 마디는 이미 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지금 그를 쏘아보는 불같은 눈, 미움과 절망이 뒤섞인 저 눈, 그를 완전히 원망하는 눈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바다, 폭풍, 불운이 모두 그의 탓이라는 듯이, 순전히 그의 탓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누구를 남길 건데?"     p.35

 

파도가 일어나고 6일이 지났다. 파도는 세상을 집어삼키고 집, 차, 가축, 사람, 모든 것을 한바탕 쓸고 갔다. 쓰나미가 밀려왔고, 미쳐 날뛰는 날씨와 거의 쉬지도 않고 퍼붓는 폭우에 시달린 끝에 루이의 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섬사람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도 루이의 가족들은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화를 면한 것이다. 집은 무사했지만 이제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은빛의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구조대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6일째 되는 날에도 해수면은 조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먹을 것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바다의 수위는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떠나야했다. 물 밖으로 나와 있는 땅까지 이동하려면 배로 꼬박 12일은 걸릴 터였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배에는 가족 모두 탈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루이의 가족은 무려 열한 명이었다. 9남매 중에 형들 두 명 리암과 마테오는 열다섯, 열세 살이었고 루이를 포함한 중간 셋은 각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루이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뒤틀린 채로 나와 절름발이였고, 그 아래로 페린은 어릴적 사고로 한쪽 눈이 없는 애꾸눈이었고, 노에는 마치 난쟁이처럼 몸집이 왜소하고 작았다. 그들 아래로 딸 넷은 겨우 여섯 살, 다섯 살, 세 살, 한 살로 아직 너무 어렸다. 맨 처음 태어난 형들은 체격이 건장하고 잘생겼고, 나중에 태어난 네 딸에게도 아무 결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루이는 중간 아이들만 왜 이 모양인지, 그들만 세 명의 실패작이 아닌지 생각한다. 자, 과연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데려가야 할까. 엄마는 누구도 선택할 수 없었고, 아빠가 최대한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리암과 마테오는 아빠와 함께 교대로 노를 저어야 하고, 어린 딸들은 아직 부모의 손길이 너무도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중간 세 명을 남기기로 한다. 엄마는 제일 성치 못한 애들을 남기자는 거냐고 하지만, 아빠는 그들은 매우 영특한 데가 있으니 어떻게든 버틸 거라고 말한다. 과연 남겨진 세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들 가족은 무사히 육지에 도달해서, 남겨진 세 아이를 데리러 돌아올 수 있을까.

 

 

애들을 혼내서는 안 된다. 이제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은 저 어린것들밖에 없다. 그가 다음의 일, 다음 끼니를 앞질러 고민할 때 과거를 잊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순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저 아이들이 백 번 천 번 옳다. 파타는 어린 딸들의 동물적인 자발성이, 계산이 깔리지 않은 생동감이 부러웠다. 그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지 않고 내일로 나아가니까. 선악을 모르는 백지 같은 영혼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들은 이기적이고 눈부셨다. 파타는 딸들을 눈 속에 품고 한두 시간쯤 선잠을 잤다. 딸들이 없었다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p.215

 

거대한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은 일가족 11명, 그러나 안전한 곳으로 탈출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다.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대단히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대단히 흡입력 있는 서사를 보여준다. 차세대 프랑스 누아르 소설가 중 가장 뛰어난 작가로 손꼽히는 상드린 콜레트의 작품으로 우화처럼 읽히기도, 심리 스릴러처럼 읽히기도 하는 대단히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모가 힘겨운 선택을 하고 남겨진 세 명의 아이의 시점에서 먼저 이야기가 진행되고, 나머지 여섯 명의 아이들과 배를 타고 섬을 떠난 부모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교차 진행된다. 남겨진 아이들은 생각한다. 왜 하필 우리 셋일까. 아빠 엄마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답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남겨진 그들끼리 부모가 돌아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한편,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섬을 떠난 부모의 상황 역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는 점점 더 험악해졌고, 배 한 척도 과히 믿음직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생존, 그것도 자신의 그것이 아니라 어린 자녀들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로서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와 닿도록 하는 세심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자비한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내몰린 인간으로서의 선택, 그 잔인한 딜레마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게 읽히고,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속도감과 차가우면서도 따뜻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재난 소설과 휴먼 드라마로서도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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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방 - 개정증보판
오쓰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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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때 깨달았다. 아빠에게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엄마에게는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는 아무도 없다고, 아빠와 엄마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아빠와 엄마 어느 한쪽이 죽은 거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아빠는 엄마가 죽어 나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반대로 엄마는 아빠가 죽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서로가 보이지 않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각자에게 보이는 것은 나뿐이었다.     - 'SO-far'중에서, p.73

 

열 살인 나는 곧 고등학생이 되는 누나와 함께 창문도 없는 작은 사각형 방에 쓰러져 있다가 눈을 뜬다. 대체 어떻게 이 방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엄마가 장을 다 볼 때까지 누나가 나를 돌보던 중이었고, 그들 남매는 산책로를 걷던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뒤쪽 수풀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고, 머리에 지독한 아픔과 함께 이 방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곳은 어디인지, 누가 그들을 가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차가운 회색 상자 같은 방에는 바닥의 중앙 부분을 관통해서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 중에 체구가 작은 소년이 도랑 안을 지나서 방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그리고 도랑을 타고 다른 방을 넘나들며 이곳에 있는 방이 일곱 개라는 사실과 각 방에는 영문도 모르고 갇혀 있는 사람이 한 명씩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매일 저녁 6시, 도랑에 흐르는 물에 붉은 색깔이 비치며 끔찍한 것들이 떠내려온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들 남매는 이 방을 탈출할 수 있을까.

 

표제작인 <일곱 번째 방>은 마치 영화 '큐브'를 연상시키는 설정으로 초반부터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몰입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 남매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동기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극한의 공포를 선사하는 이 이야기는 놀라운 결말에 이르기까지 오싹한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섬뜩할 정도의 상상력으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오츠이치의 천재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논란과 찬탄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마성의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오츠이치 답게 본격 추리 미스터리에서 SF, 호러, 블랙코미디 등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자유자재로 선보이고 있는 소설집이라 오츠이치 종합 선물 세트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헤드라이트 불빛 아래, 하얀 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 양 옆의 마른 풀이 빠른 속도로 뒤쪽을 향해 멀어져갔다. 조금만 있으면 간판이 나타난다. 늘 결심이 꺾이고야 마는 장소다. 나는 숨을 멈췄다. 차가 그 지점을 통과한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암흑 속에서 차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우주에서 정지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순간이었다.     -'ZOO' 중에서, p.120

 

유치원생인 나는 아빠랑 엄마랑 셋이서 살고 있었다. 그들 가족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자주 함께 앉아서 일상을 보내곤 했는데, 항상 내가 가운데 앉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엄마와 아빠는 서로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셔서 우리 둘뿐이지만 열심히 살자고 했고, 아빠는 엄마 몫까지 꿋꿋하게 살자고 말했다. 나는 아빠에게는 엄마가 보이지 않고, 엄마에게는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빠는 엄마가 죽어 나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반대로 엄마는 아빠가 죽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보이지 않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각자에게 보이는 것은 나뿐이었고, 나는 아빠와 엄마 사이를 오가며 두 사람 각각과 생활을 해야 했다. 아빠가 살아 있는 세계와 엄마가 살아 있는 세계, 그리고 각각이 겹쳐진 곳에 존재하는 나, 대체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SO-far>라는 작품이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결말 이후에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였고, 오싹한 감정과 먹먹한 슬픔,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주는 충격까지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집은 <일곱 번째 방>을 비롯해 <ZOO>, <카자리와 요코>, <SO-far>, <양지의 시> 등 5편의 단편이 옴니버스식 영화 <ZOO>로 개봉해 마니아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이번에 출간된 이 작품이 오츠이치의 신간이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 소설집은 국내에 2007년에 출간되었던 <ZOO>의 개정판이다. 표지 분위기가 바뀌었고, 수록된 작품 중에 표제작을 바꾸어서 제목이 달라졌을 뿐이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을 이렇게 새로운 옷으로 바꿔 입혀 재출간하게 되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언제나 반기지만, 요즘은 개정판이라는 표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 신간인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신간이라고 구매했는데, 읽다 보니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인 경우도 있을테고 말이다. 오츠이치의 작품은 국내에도 꽤 많이 출간된 편이다. 그의 작품은 크게 섬세함과 안타까움을 기조로 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퓨어 계열'의 화이트 오츠이치와 잔혹함과 처참함을 기조로 하는 '다크 계열'의 어두운 블랙 오츠이치로 나누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이고, 작품 스타일에 따라 필명을 바꾸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규칙이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섬뜩할 정도의 상상력과 인간의 두려움, 뒤틀린 내면에 대한 묘사가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이 소설집은 가장 오츠이치 다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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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초등 공부 대백과
송재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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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을 1년 남짓 앞둔 고등학교 3학년생들 중 우등생들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공부를 잘하던 아이들은 20% 남짓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80%는 한때 공부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어떤 계기를 만나서 우등생 반열에 든 학생들이었다. 그러하니 우리 아이가 지금 공부를 좀 하는 편이라고 자만할 필요도 없고,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해서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p.85

 

부모가 된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이가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두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올해 1년이나 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걱정되는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교육과정이며 환경이 우리 세대와는 너무도 확연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마치 평생 단 한번도 초등학교 경험을 안해 본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책들을 찾아보고, 지인들에게 경험담을 듣고, 정보들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22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선생님이 알려주는 '초등학교 공부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의 '공부'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제시하는 유일한 대답이자 명쾌한 실천법이라고 하니 예비 초등 학부모로서 든든한 마음마저 들었다. 게다가 이 책의 기획 취지가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모든 부모들이 교과서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쯤 있었으면 좋겠다'였다고 하니, 나처럼 아무런 경험이 없는 부모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았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책 읽기’가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보다는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은 아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방향타이자, 그 아이의 가치관을 형성할 지적 자산이다. 아이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깊이와 넒이만큼 사고한다. 내 아이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아이의 손에 들린 책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아이의 손에 들린 책을 바꿔주자.    p.200

 

학년과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22가지 공부 법칙이 각각의 카테고리로 정리되어 있어, 한 눈에 알아보기 쉽고 아이의 나이에 맞춰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독서'부터 시작해서, 어휘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 정체감이 생겼을 때 극복하는 방법, 개념 원리와 암기의 법칙 등등 실제로 아이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현실 정보들이 가득하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공부에도 가성비가 중요하다는 '공부 가성비의 법칙'과 낭독이 묵독을 이긴다는 '낭독의 법칙', 지적 희열을 경험하게 하라는 '유레카의 법칙'등이었다. 집중 학습보다는 분산 학습이 효율성이 높고,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게 하는 것이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책을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학습 효과가 높다며 소리 내어 읽기 방법이 설명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스토리텔링 수학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초등학교 학년별 수학 교과서가 비교 이미지로 수록되어 있어 도움이 되었고, 자기 주도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한 계획표 예시,  학년별 추천 고전 목록은 각 학년마다 월별로 책이 수록되어 있어 활용하기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공부 습관과 성적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부모로서 더 힘을 내야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22가지 공부 법칙 중에 어떤 점은 잘 맞기도 하고, 어떤 점은 전혀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타고난 기질과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너무 막막한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될 때,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뭔가 가이드를 해주는 책이 있다면 조금은 든든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부모 세대의 공부하는 방법과 시대가 완전히 바뀐 요즘의 공부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초등 6년 내내 곁에 두고 아이의 공부와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그에 꼭 맞는 해결 방법을 찾아볼 수 있도록 이러한 교과서가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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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매기 앤드루스.재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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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이혼 절차 때문에 기혼 여성에게 재산을 소유하고 계약을 체결할 법적 지위가 없었던 시절인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서는 대중적으로 아내를 파는 관행이 생겨났다. 아내 판매는 공공장소에서 이뤄지기도 했고 때로는 신문이나 포스터로 광고되거나 마을 안내원이 소식을 전했다. 18세기의 한 신문은 다음과 같은 공고를 냈다.
“제 아내 제인 허버드를 5실링에 팝니다. 체격이 건장하고 사지가 튼튼합니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며 쟁기를 들고 팀을 꾸려 일합니다. 입이 걸걸하고 고집이 아주 세기 때문에 고삐를 바짝 죈 그 어느 건장한 남자에게도 말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p.93

 

영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기념하여 쓰인 이 책은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거나, 여성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오늘날까지도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물건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발달해온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여성의 역사를 오래도록 연구해 온 두 명의 영국 여성학자가 남다른 시선으로 세심하게 골라낸 여성 생존의 도구와 증거 100가지가 고스란히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쓰는 세계사'가 된다는 점에 있어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너무도 다양한 100가지 물건들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바꿔온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점이 놀랍고도 흥미롭게 읽힌다.

 

사회와 가족은 아내이자 가정주부인 여성에게 수많은 기대를 걸고, 엄청난 양의 충고와 질책, 비난을 해왔다. 목소리를 내면 굴레를 씌웠고, 술을 마신다고 규탄했다. 정말 경악할 만한 것 중의 하나로 '잔소리꾼 굴레'라는 물건이 있었다. 16세기 스코틀랜드, 메리언 레이는 이웃을 간통죄로 고발했다가 다수의 비방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녀는 '문제적인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고소인들의 용서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24시간 동안 '일체의 휴식 없이' 입을 막는 굴레를 채우는 고문을 받아야 했다. 묵직한 쇠틀로 만들어진 이 장치는 피해자의 머리 위로 뒤집어 써 칼라처럼 목둘레에 걸치는 방식이었는데, 책에 수록된 사진만 보더라도 매우 충격적이다. 당시 가부장적인 기대치를 벗어나 불손하거나, 제멋대로 말하는 여성이나, 통상적인 여성의 관념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잔소리꾼이라는 터무니없는 꼬리표가 붙었고, 이 장치는 바로 그 '잔소리'에 대한 처벌이었던 것이다. 이 굴레는 18세기까지도 계속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남아 있으므로, 여성들은 거의 200년 동안이나 잔소리꾼 굴레로 침묵을 강요당해 온 것이다. 이는 현대의 여성 혐오 표현들과도 이어지는 충격적인 역사의 잔존물이다.

 

 

이날 백인들의 좌석은 모두 차 있었다. 로자는 '유색인' 구역 맨 앞줄에 앉아있었는데 한 백인 남성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기사는 백인 남성이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로자가 앉아있는 열에 있는 모든 흑인 승객들에게 뒤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세 명의 흑인 승객이 버스기사의 지시에 따랐지만 로자는 거절했다. 그는 나중에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항상 내가 피곤해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신체적으로 지쳐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단지 굴복하는 것에 지쳐있을 뿐이었다."    p.430

 

18세기와 19세기, 기혼 여성에게 계약을 체결할 지위가 없던 시절 이혼의 수단이었던 아내 판매 광고에 대한 내용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물론 아내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계층에게는 아내 판매가 일종의 이혼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여러 나라에서 이혼 절차가 한결 간편해졌고, 20세기 후반에는 좀 더 자유로운 이혼법이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이혼에 따른 재산과 소득의 분할은 여성들에게 재정적인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100가지 물건들은 여성의 몸, 사회적 역할의 변화, 기술의 진보, 미의식과 소통, 노동과 문화, 정치 등 총 여덟 가지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여성사의 전말을 담아내고 있다.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대의를 주장했음을 알려주는 작품들, 불의와 억압에 대한 투지를 보여주는 상징들은 안타까우면서도 뭉클했고, 여성이 도움을 받거나 직접 그 발달에 기여한 기술들, 즐거움이었지만 억압의 대상이기도 했던 의생활의 아이템들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서사 자체가 역사와 세계사를 관통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여성들은 너무나 자주 잊히는 현실 속에서도 통치자로서, 과학자로서, 창조적인 재주꾼들로서 자기 자신의 역사뿐 아니라 모두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 책을 통해서 항상 '역사에서 가려져' 있었던 여성의 역사가 얼마나 매혹적일 수 있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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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장례식 제제의 그림책
마리에 오스카손.지바 라구나트 지음, 로스 키네어드 그림, 김경희 옮김 / 제제의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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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길에서 지렁이를 발견한다. 움직이지 않는 지렁이를 보고 아이들은 죽었다고 생각해 장례식을 치러 주기로 한다.

 

노래는 내가 부를게! 나도 할래. 아냐, 내가 할 거야. 내 목소리가 더 커!
좋아, 그럼 다 같이 부르자.

 

겨우 노래 부르는 것부터 서로 자기가 부르겠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은 과연 지렁이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러줄 수 있을까.

 

 

각자 지렁이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도 제각각, 지렁이를 나뭇잎 위에 올려두다가 떨어뜨리기도 하고, 땅을 파는 것도 익숙지가 않다. 엄숙하고 슬픈 장례식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고 색다른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장례식이라는 절차가 이제 다시는 상대를 볼 수 없게 되는 거라는 걸 아이들이 인지하고 있어, 지렁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각자 지렁이를 위해 한마디씩 남기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경쾌하고 발랄하게 다루고 있다. 아이들 버전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인 셈이다. 아이들은 땅 속에 묻힌 지렁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한다.

 

그럼 이제 뼈만 남는 거야?
내일 가서 파 보면 알겠지, 뭐!

 

아이다운 순수함이 잘 드러나 있는 장면이라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사실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 궁금한 건 어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 일곱 살이 된 아이가 어느 날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극중 캐릭터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이도 벌써 '죽음'이라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읽기에 전혀 슬프거나 어두운 내용 없이 밝게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깜찍한 반전도 숨겨져 있어 아이들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과 단순한 그림체 속에서 개성 있고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친근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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