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 빛나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 -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너에게 디즈니 레이디스 시리즈
라푼젤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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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약속은 타인과의 어떤 약속보다도 중요하답니다. 스스로 정한 일을 지키지 않고 계속해서 어기면, 다른 사람의 질타를 받기 전에 자존감을 잃게 될 거예요. 그러니 상황과 타협하고 합리화하며 지키기로 다짐한 것들을 저버리지 말아요. 앞으로 나아갈 힘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니까요.    p.65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곰돌이 푸 시리즈를 시작으로 앨리스, 미키마우스 등 추억의 디즈니 캐릭터들이 책으로 찾아 왔었다. 그리고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 공주 등 디즈니 프린세스들이 있었고, 이번에는 디즈니 레이디스 시리즈이다. 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용감한 공주 라푼젤,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눈을 반짝이던 인어 공주 에리얼, 스스로 삶을 지켜낸 당당하고 용기 있는 겨울 왕국의 엘사와 안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디즈니 시리즈가 친근하게 읽히는 이유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속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제 해당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듯한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림 에세이로 애니메이션 장면들과 문장들이 함께 이야기들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마치 추억 속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고,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들을 다시 보는 듯해서 더 특별한 시간을 안겨 준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좋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해피엔딩'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들이 고난과 역경을 거치는 과정은 모두 달랐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웠던 그들을 기다리는 건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 모든 일이 마냥 꿈꾸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어질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해피엔딩을 꿈꾸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얻습니다. 안정된 수입 대신 삶의 보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발상을 전환해볼까요? 과거에 대한 후회, 부담스러운 인간관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누군가를 향한 원망 등 떨쳐버리고 싶은 것을 하나만 골라 내려놓아 보면 어떨까요? 분명 비워낸 자리에 안정감이나 즐거움과 같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을 겁니다.    p.153~155

 

라푼젤은 18년 간 자신을 납치한 마녀 고델을 엄마라고 믿으며, 성 밖을 벗어날 생각도 못한 채 탑 안에서만 자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탑에 침입한 왕국 최고의 대도를 한방에 때려잡고는, 그를 협박해 꿈에도 그리던 집밖으로의 모험을 단행하게 된다. 과잉보호 모친의 영향으로 세상물정에 너무도 깜깜한 라푼젤 앞에 나타나는 추격과 위협, 음모와 사건들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마세요. 별것 아닌 작은 일이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운 얼굴을 잃지 않도록 내면을 가꾸며 살아가세요. 서로 믿고 의지할 때 관계는 깊어집니다. 믿음과 진심은 언제나 준 것 이상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에요. 등등.. 라푼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모두 캐릭터의 성격만큼이나 밝고 긍정적이다.

 

누구나 자신만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거나,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때 고민하거나 갈등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 마음속 두려움을 이겨내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라푼젤이 자신만의 성에서 나와 비로소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일상을 벗어나는 일은 어렵기도 하고, 두려움 마음부터 들지만 과감히 용기를 내어 한 걸음만 떼어 보면 그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질 수 있다. 라푼젤처럼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면, 오래 전부터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간절한 꿈을 잃어 버리고 싶지 않다면, 우선 한 걸음만 내딛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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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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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이 어떤 책에서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길게 쓸 수밖에 없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너는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던 거잖아. 짧아져야 감동적인 거야. 너저분하게 늘어놓아서는 안 돼. 단편소설은 시를 쓰듯이. 알았냐?”
“요약을 해서 분량을 줄이라는 뜻입니까?”
“요약이 아니라 선택을 하라는 거야.”      -'소설을 잘 쓰려면' 중에서, p.57

 

굉장히 독특한 구성의 소설집이다.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 훨씬 더 짧은 분량의 초단편소설은 플래시 픽션이나 엽편 소설이라 불린다. 1,000자 혹은 2,000자 내외의 아주 짧은 이야기로, 단 몇 페이지의 분량이라 읽는 데 몇 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바쁜 현대인들이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데다, 책을 좀 읽는 독자들도 5,000자 이상의 글은 잘 읽지 않는다고 해서 한때 초단편 소설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단편보다도 더 짧은 초단편 소설들은 굳이 찾아 읽진 않았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플래시 픽션 스물다섯 편을 읽으면서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소설들 그 자체보다도 이 소설집의 구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야기의 단계에 따라 발단, 전개, 절정, 결말 총 4부로 나뉘어져 각각의 카테고리에 스물다섯 편의 이야기들을 수록했고, 각각의 장마다 발단에 대하여, 전개에 대하여, 절정에 대하여, 결말에 대하여, 라는 이름으로 소설론과 작법론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게 소설집인지, 작법서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런 독특한 점 때문에 이 책은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이봐, 당신 남편 어디 갔어?' 아내를 깨워 묻고 싶었다. 아내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다가 거두었다. 두려움에 손길이 가로막혔다. 혹시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남편을 찾아야 한다. 그는 다용도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옷걸이 뒤에 숨어 있을 것이다. 불을 켰다. 옷장 문을 열었다. 그곳에도 남편은 없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다' 중에서, p.148

 

이야기의 시작인 '발단'을 워밍업이라고 생각했다면, 작가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에서 던지는 첫 공이 바로 소설의 발단이라는 얘기다. 가장 긴장되고, 극적인 순간이 '절정'이 아니라 '발단'이라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1회 초 1번 타자가 자석에 들어서는 것이 발단이 되어서는, 독자들 다 도망간다. 긴장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하는 발단은 '소설의 시작이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아니라는 얘기다. 전개는 서핑에서 보드 위에 올라서는 과정과도 같다. 엎드려서 팔을 젓다가 파도의 힘을 이용해 두 발로 일어나는 것, 그래서 보드는 전진하고, 몸은 상승해야 하니 매우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 절정은 소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정은 끝이지만 절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결말로 가는 길은 반드시 뚫려 있어야 한다. 승부가 절정이라면 환호가 결말이다. 절정이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결말로 가는 길은 좁고 분명하기 때문에, 좋은 결말은 외길이다.

 

저자는 소설가이자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웬만한 작법책이나 이론서보다도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론에 대한 부분은 짧고 굵게 딱 포인트만 콕콕 집어서 알려주고, 그 뒤에 각각의 단계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으니 바로 이론을 실전에 적용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발단의 특징이 있는 소설들은 뒤에 이어질 내용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고, 클라이맥스를 연상시키는 절정의 특징이 있는 소설들은 앞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초단편 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소설집으로 읽어도 흥미롭고, 소설의 형식과 작법에 관한 안내서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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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구하기 - 삶을 마냥 흘려보내고 있는 무기력한 방관주의자를 위한 개입의 기술
개리 비숍 지음, 이지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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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지쳐 있고, 버겁고, 가로막히고, 사랑받지 못하고, 지루하고, 돈도 없고, 너무 불안하고, 지나치게 분석만 하고, 자신이 없고, 의욕이 없고, 단절됐고, 방향을 잘못 잡았고, 바닥을 쳤고, 과거에 빠져 있고, 화나고, 용서가 안 되고, 미래가 걱정되고, 두렵고, 못 믿겠고, 아니면 그냥 만날 똑같은 짓만 반복하고 있다면 내가 바로 당신이 찾던 그 사람이고, 이 책이 바로 당신이 찾던 그 책이다. 정말이다. 당신은 이 책이 필요하다. 그냥 읽기만 하지 말고, 이 책을 '이용'해라.    p.14~15

 

군말 빼고 핵심만 명쾌하게, 쓸데없는 희망을 주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단호하고 직설적으로 행동을 이끌어내는 책이었던 <시작의 기술>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그 책의 저자 개리 비숍은 이번 신작에서 '나를 방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역시나 여타의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시작부터 돌직구를 날린다.

 

"내 목표는 딱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당신."

 

우리가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혹은 모르는 척 반복하게 되는 수많은 헛짓거리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이토록 생각이 필요한 시대에 당신은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해준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혹은 그래 봤자 달라지지 않을 거야, 내지는 우리는 그냥 망한 걸까? 라는 생각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그의 말에 뜨끔해질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제대로 실천한 적은 없고,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지만 지키지 못했으며, 이런저런 일을 시작할 거라 다짐했지만 한 번도 성공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똑같은 직장, 똑같은 관계, 똑같은 과체중의 몸에 매여 있다면, 바라던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건 바로 우리 스스로의 문제 때문이다.

 

"당신이 문제다. 그리고 당신이 답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굳은 결심을 하고도, 매번 지긋지긋한 후회를 반복하는 이유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리를 뒤흔들고 방해하는 '잠재의식'때문이라고. 문제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면, 그건 우리가 주도권을 찾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결론을 누가 던져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신은 당신 과거의 피해자가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되기로 결정할 때까지는, 그 순간까지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말이 거북하다면 지금 당신은 피해자로 불리고 싶어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피해자인지 아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이 경우 당신의 삶을 지금처럼 만든 사람은 당신, 오직 당신뿐이다.    p.123~124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아니다. 내일은 징그러울 만큼 오늘과 똑같은 날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바라면서 익숙한 것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정말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결과를 보고 싶다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정서적 정지 화면을 깨고 나가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을 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후회에, 불안에, 무기력에, 후진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면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책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누구에게라도 '실질적인 변화의 계기를 선사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비빌 언덕도, 희망도 없는 사람들, 좌절하고 패배한 이들에게 말이다.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면 된다.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걸 좀 그만 먹었으면' 혹은 '저기에 돈 좀 그만 썼으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그 짓을 계속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 우리가 왜 스스로를 망쳐왔는지에 대해 돌아보고,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목표를 추구하느라 무엇을 희생시켰는지, 인간관계가 어떻게 깨졌는지, 그 모든 실패와 후회, 원망 그리고 절망까지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애쓰고 버둥거리는 것을 그만두고, 지금 있는 그곳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미래에 걸맞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이다. 당신 삶의 주인이 되라. 남은 날 하루하루에 무엇이 가능한지 깨닫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라. 정답은 언제나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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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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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일이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각각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 새로운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으면서 끝없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다. 미래는 현재를 뚫고 나가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는 그런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p.185

 

만약 아버지가 곁에 없다면, 혹은 어머니가 먼저 떠나신다면.. 우린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리는 부모 앞에서 아직 어린 자식이고, 언제 어디서나 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았던 부모가 없다면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나이를 먹는 만큼 우리는 죽음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 데이비드 기펄스는 은퇴한 토목 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엉뚱하고도 기발한 착상으로 자신의 관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그는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함께 관을 만드는 3년 여의 시간 동안 어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를 암으로 잃고,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이미 두 번의 암 치료를 견뎌낸 아버지에게마저 암이 재발하고 만다.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인 날들을 보내며 저자는 죽음과 늙어감, 삶과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죽음과 늙어감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노년의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며 삶과 상실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펼쳐지고 있어 더 뭉클하게 읽힌다.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무계획적으로, 무모하게 세상을 알아가고 우리 자신을 알아간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알아가는 일에, 그리고 그 실수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밝은 빛 속에서 고민에 빠지는 일에 갈수록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그 실수들에는 정보가 가득했다.    p.342

 

세상에 아무것도, 영원하진 않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까운 이의 죽음, 그리고 나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죽음이란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니 말이다. 사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럽다. 그러니 애초에 마음의 준비 같은 건 불가능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날들에 사실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그 사건은 늘 불시에 일어나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수 년에 걸쳐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경험을 한다. 가장 친한 친구와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고, 다음 해 두 사람이 좋아졌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친구가 죽고, 아버지가 새로운 암 진단을 받게 된다. 자신이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고, 부모가 노년이 되었을 때면 누구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겪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다가올 죽음이라는 것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저자가 1095일 동안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관을 만드는 과정은 평범한 일상처럼 반복되면서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해하기에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과장된 감정 표현이 전혀 없음에도, 오히려 그 담담함과 담백한 어조가 잔잔한 물결처럼 어느 순간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든둘의 나이에 세 번째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이언 맨처럼 힘있게 누구보다 활기찬 일상을 보내는 저자의 아버지였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보고 느낀다. 부모의 죽음과 가장 가까운 날들 앞에서,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할 날들에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자식의 마음이라니.. 언젠가는 나도 겪어야 할 일이기에 그 상실과 슬픔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죽음과 화해하는 법', '죽음과 마주하는 태도'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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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건축가다 - 자연에서 발견한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건축 이야기
차이진원 지음, 박소정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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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은 새에게 누가 이런 천부적인 재능을 준 것일까? 재봉새가 지은 둥우리를 보지 않는다면, 둥우리 건축에 있어서 조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특히 더 우수하다고는 절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고 깜찍한 재봉사들은 거미줄이나 나방의 실을 이용하며, 자신의 날카로운 부리를 바늘 삼아 잎을 한 땀 한 땀 꿰매어 가장 편안한 아기 방을 만든다.     P.35

 

전 세계에는 9천여 종의 조류가 있다. 이들은 알 하나하나에 생명의 에너지를 담아 대를 잇는다. 새가 둥우리를 짓고, 둥우리가 알을 담고, 알이 새가 되는 대자연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연구자이자 생태 화가인 차이진원이 대자연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조류가 어떻게 온기 가득한 집을 짓는지 관찰하고 이를 섬세한 손길로 그려낸 것이다. 새 둥우리를 통해서 자연의 신비를 발견하고, 자연 속에서 건축의 원리를 읽어 낸다니 낯설지만, 그만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도심에서는 새 둥우리를 볼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자세히 지켜보면 집 근처나 거리에 있는 나무 꼭대기에 지어진 둥우리를 만날 수도 있다. 보통은 커다란 나무의 꼭대기에 자리한 경우가 많아서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더라도, 형태가 어떤지, 얼마나 수많은 나뭇가지들로 탄탄하게 둥우리를 지었는지는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새 둥우리 하면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얽힌 접시 모양만 생각했다. 그런데 새 둥우리가 참으로 각양각색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저자는 새들의 다양한 둥우리 만들기 방식을 설명할 때 재봉사, 편직 장인, 미장이, 동굴 파기 전문가, 짐꾼 등으로 새들을 묘사하며 각기 새들이 어떤 방식으로 집을 짓는지를 알려 준다.

 

 

굴뚝새는 '벌판의 가왕'이라고 불린다. 체형은 작고 아담하지만 힘이 넘친다. 번식철이면 예쁜 목소리로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새 둥우리를 여러 개 지어내는데, 지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둥우리를 다 지어도 힘이 남아 돌아서, 남의 알을 부리로 쪼거나 새끼를 죽이는 등 다른 조류와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족끼리도 서로 죽이는데, 외형만 보거나 아름다운 노랫소리만 들어서는 굴뚝새의 이런 잔인함과 난폭성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p.121

 

가장 인상적이었던 새는 바로 '재봉새'였다. 작고 아담한 체구의 재봉새는 바늘과 실을 이용한 재봉술로 둥우리를 짓는다. 뾰족한 부리를 바늘 삼아 잎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고, 식물섬유와 거미줄을 구멍 사이로 통과시킨 뒤, 실 끝부분을 공 모양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머니 모양으로 꿰맨 후, 그 안에 가느다란 풀과 솜털을 채워 넣으면 완성이다. 책에 수록되어 있는 섬세한 일러스트를 보자면, 재봉새가 만든 둥우리는 정말 실과 바늘로 만들어낸 것처럼 보여 신기했다. 그 외에도 새들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들과 새 둥우리를 분류하고 측량하는 방법 및 새 둥우리 관찰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어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당연하게도, 종류가 다른 새는 짓는 둥우리도 다르다. 저마다의 깃털처럼 각자 특생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둥우리를 자연 속에서 발견했을 때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간단한 분류법과 관찰법을 익혀 둔다면, 새 둥우리를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조류는 대개 봄에 짝을 찾고 둥우리를 짓는다고 한다. 보통 고지대 조류는 3~5월, 저지대 조류는 4~6월이 번식 절정기라, 이 짧은 4개월 동안이 조류가 둥우리를 짓고 번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적기인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조류의 삶에서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새들과 신기한 형태의 새 둥우리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자연과학 도서이자, 실제 사진보다 더 리얼하고 아름다운 생태 화가의 매혹적인 그림들을 만날 수 있는 관찰 도감이다. 조류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공룡부터 까치, 제비 등 익숙한 새는 물론, 둥우리를 바느질하는 새, 자동차만한 둥우리를 짓는 새, ‘깃털 달린 피카소’라 불리는 새까지 신기하고 놀라운 새들의 건축 이야기와 생활상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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