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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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미워하면 나도 미워하면 되는데 나를 미워하게 되더라.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꼭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그 사람을 좀 싫어할 필요가 있더라.    p.52~53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어피치, 튜브, , 무지, 프로도, 네오, 제이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의 사랑스러운 여덟 캐릭터와 젊은 작가들이 만났다.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그 세 번째는 소심한 오리 튜브와 국민 시팔이 하상욱 작가이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은 각자 서로 다른 성격에 콤플렉스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특하지만 친근한,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따뜻하고 위로를 안겨주는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페이지 구석구석에서 그들 캐릭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겁 많고 마음 약한 오리, 튜브. 평소에는 소심한 성격이지만 화가 나면 입에서 불을 뿜으며 밥상을 뒤엎는 미친 오리로 변신한다. 작은 발을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튜브도 화가 날 땐 솔직하게 감정을 터뜨리며 오리발 킥을 날린다. 작가 하상욱, 스스로를 고매한 시인이 아니라 '시팔이'라 불러달라고 자청하는 그의 촌철살인 유머와 위트가 이러한 튜브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카카오프렌즈 시리즈가 사실 글보다는 라이언이나 어피치등 카카오 프렌즈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책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튜브만큼이나 작가의 글도 마음에 콕콕 박혀서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꿈을 꾸기 힘들었고, 나이가 드니 꿈을 깨기 힘이 드네.

하고 싶은 걸 몰라서 힘든 것보다,  할 수 없단 걸 알아서 힘이 들더라.    p.194~195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하기 싫은 일을 이렇게나 많이 하면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이 먹고 힘들까 봐 하는 일들이 나이 먹는 내내 나를 힘들게 하네', '안 해도 되는 말을 해버리면, 꼭 해야 되는 말이 생기더라', '시간이 없을 땐 하고 싶은 게 많고, 시간이 있을 땐 하기 싫은 게 많고,', '나이가 들면 세상을 더 알게 되는 건 맞지만, 세상을 다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등등 피식 웃게 만드는 농담 한마디처럼, 빵빵 터지는 말장난처럼 읽히는 글들이 때로는 그 짧은 문구 속에 세상이 다 담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상처 받고 울고 싶을 때 위로 따윈 필요 없다고 소리칠 수 있는 용기를 안겨 주기도 한다.

 

'일이 힘들면 관계가 귀찮고, 관계가 힘들면 일이 안되고.', 학생 때는 '공부가 하기 싫지만 학교 친구는 좋고',  직장인이 되니 '일은 하고 싶지만 회사 사람이 싫은' 그렇게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게다가 왜 그렇게 영혼 없는 위로나 겉치레들은 많은지.. 전혀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런 위로들은 살면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위로는 "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넌 할 만큼 했어"가 아니었을까.라는 작가의 말이 공감과 위로라는 말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미친 오리로 변신한 튜브가 야무지게 내뱉는 말들이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널 아끼니까 하는 말인데."

"그냥 아껴둬."

 

"내가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생각만 해."

 

튜브의 오리발 킥처럼 날리는 속 시원한 위로의 말들이 당신의 하루를 '잊고 싶은 오늘이 아닌, 잇고 싶은 오늘'로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 사랑스럽고 너무도 익숙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페이지 곳곳에 나타나서 그 귀여운 자태를 뽐내주는 것만으로 마음 속에 작고 동그란 행복들이 가득 차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시리즈이다. 그래서 다음에 나올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는 누구일지, 또 어떤 작가와의 콜라보로 웃음과 위로를 안겨줄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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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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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는 어떤 논리인지 이해했다. 지넷이 좋아하는 탐정소설이었다면, 애거서 크리스티나 렉스 스타우트나 할런 코벤의 작품이었다면 지금이 바로 미스 마플 아니면 네로 울프 아니면 마이런 볼리타가 사건의 전말을 폭로하는 마지막 장의 클라이맥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중력처럼 견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 p.163

열한 살 소년이 잔인하고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어린이 야구단 코치이자 교사인 테리 메이틀랜드가 거의 1,6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된다. 그곳은 야구 경기장이었고, 경기는 9회 말 상대팀이 1점차로 리그의 준결승전에서 이기고 있는 참이었다. 모두들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그 중요한 순간에, 경찰관 두 명이 3루 베이스라인을 따라 걸어 들어온다.

"테런스 메이틀랜드, 당신을 프랭크 피터슨 살인범으로 체포한다."

 

테리는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도 프랭크 피터슨이 언제 죽었는지 신문과 뉴스를 봐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자신은 다른 도시에 동료 교사들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에게도 그를 공개적으로 체포할만한 막강한 증거가 있었다. 범행 전후로 추측되는 현장 근처의 수많은 목격자들이 증언했고, 법의학적 증거 역시 테리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테리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확실했다. 피터슨이 납치됐을 때 유명한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었으며, 피터슨이 살해됐을 때는 최소 여덟 명과 저녁을 먹고 있었고, 그 이후의 시간 역시 동료 교사들, 호텔 라운지의 바텐더, 호텔 보안 영상 등으로 완벽한 알리바이가 만들어졌다. 상식적으로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의 완벽한 대역 혹은 공모자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범인이 죽어서 기뻐요. 기뻐요.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져서 기뻐요. 내가 너무 끔찍한 소리를 하나요?"

"그 사람은 지옥에 있지 않아요."

여자는 뺨이라도 얻어맞은 듯이 움찔했다.

"지옥을 몰고 오지."

홀리는 데이턴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조금 늦었지만 과속하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법이 정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 p.104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이나 채소가 색이 변질되고 형태가 망가지는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멍들지 않고, 탐스러웠던 과일들이 갈색 덩어리로 변해서 달콤했던 냄새는 사라지고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으로 변해버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겉보이게 매우 괜찮아 보이는 과일을 골랐는데, 먹으려고 반을 갈라 보니 안에서 벌레들이 득시글거리는 경우도 있다. 물컹하지도 않았고, 껍데기에 흠집 하나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 벌레는 어떻게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이 작품의 1권과 2권 표지에 등장하는 캔털루프 멜론의 겉과 속 모습이 보여 주듯이, 스티븐 킹은 바로 이 설명할 수 없는 의문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풀어 낸다.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자신만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서, 오싹하면서 소름 돋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경우 여타의 스릴러 작품이었다면, '몇 년 동안이나 가깝게 지내왔지만,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내가 알았던 그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어요.' 등등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범죄자의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은 평소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여기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초자연적 공포를 결합한다.

이 사건의 중심 플롯은 '마치 지문과 DNA가 일치하는 대역이라도 있는 것처럼, 살인 용의자가 동시에 두 곳에서 목격되었다'는 점이다. 그 미스터리는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예상 외로 사건은 쉽게 종결이 되어 버린다. 그것도 1권의 중반이 조금 지나서, 느닷없이, 다소 허무하게 말이다. 하지만 담당 형사 랠프 앤더슨에게는 여전히 의문점들이 남아 있었다. 범인의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발자국이 딱 끊겨 버렸으니 말이다. 영영 해답을 찾을 길 없는 질문들이 남았고,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거꾸로 뒤집어서 살펴 볼 것, 그리고 고정관념을 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직 경찰 알렉 펠리는 '파인더스 키퍼스'로 전화를 걸어 빌 호지스를 찾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3부작'에서 등장했던 바로 그 말이다. 빌이 없는 지금 홀리 기브니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2권이 시작되면서 홀리는 미궁에 빠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녀는 이 일련의 범죄에서 '이방인(outsider)'의 존재를 감지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불안하고, 불편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마력으로. 그렇게 우리는 홀린 듯 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1권을 읽기 전에, 2권도 미리 준비해두어야만 한다. 누구라도 1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면, 숨도 못 쉬고 2권의 첫 페이지를 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작가가 독자를 어디로 이끌어갈지에 대해서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스티븐 킹의 어떤 작품에서든, 내용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냐 싶긴 하지만.  그러니 일단 읽어보시길. 스티븐 킹이 왜 '이야기의 제왕(king)'인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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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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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지금은 모르겠지요.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이랍니다."

노부인이 사라지자 콜레트가 말했다. "감동적이네요."

"그렇게 생각해요?" 위니는 콜레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러면서 콜레트 뒤쪽에 있는 돌벽 너머 공원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왜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가 어떤 축복을 받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드는 걸까요? 왜 우리가 입는 손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죠?"     p.118

퍼펙트 마더라니, 제목부터 무시무시하다. 물론 '엄마'라는 존재가 직접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그게 뭐 대단한가 싶은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뭐든지 최선을 다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 해줘야 하고, 그 어떤 해로운 것도 가까이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또 기울였다. 그럴 때마다 지인들에게 듣는 얘기는 한결 같았다.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엄마라는 것이 그렇게 몇 년 잠깐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매사에 완벽을 기하려고 하면 금새 지쳐서 나가떨어질 거라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이제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한 엄마'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돈과 경력을 포기할 수 없어 눈물겨운 워킹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엄마도, 종일 집에서 아이만 돌봐야 하는 전업 주부인 엄마에게도 육아란 결코 수월할 수 없는 일이다. 에이미 몰로이의 첫 작품은 '현대사회가 모성에게 주는 압박감'을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5월에 첫 아기를 낳은 초보 엄마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5월맘'이라는 엄마들의 모임을 만든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유모차를 끌고 공원 잔디밭에 모여 이런 저런 육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교환하고, 고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준다. 출산하기 한참 전부터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 왔고, 출산 후에는 새로 얻은 엄마라는 삶에 대해서, 현실 친구라면 절대로 참고 들어주지 않을 수준의 이야기를 낱낱이 나눈다.

콜레트의 가슴속에 공포가 밀려들었다. 포피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날 밤 젖을 먹이며 보았던 아이의 얼굴. 진한 푸른 눈동자에 순전한 사랑을 담고서 콜레트를 보던 딸의 얼굴. 이토록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콜레트의 가슴이 죄어들었다. 이토록 바닥이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니. 어릴 적 보았던 버려진 채석장이 떠올랐다. 너무 무서워서 뛰어들 수 없었던 그곳. 좀 더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떤 남자아이가 그곳에 떨어졌었다. 끝내 시체를 찾을 수 없었을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p.404~405

모임의 멤버들은 싱글맘 위니가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우울해 보이는 것 같아, 그녀를 좀 쉴 수 있게 해주자는 계획을 세운다. 하룻밤이라도 아기 보는 일에서 잠깐 벗어나 동네 술집에 모여 간단하게 한잔하기로 한 것이다. 넬은 자신의 베이비시터 알마를 위니에게 소개시켜주고, 그들은 그렇게 고된 육아에서 벗어나 단 몇 시간, 딱 한 잔, 한 줌의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그날 밤 위니의 아기가 그녀의 집에서 베이비시터가 잠든 사이 요람에서 증발한 듯 사라져 버린다. 완벽한 엄마들의 단 하룻밤 일탈은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악몽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 납치 사건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데, 이유는 사라진 아기의 엄마가 한때 유명 배우였기 때문이다. 물론 5월맘 모임의 멤버들은 아무도 위니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위니는 10대 시절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1990년대 초반 드라마 스타였던 것이다. 유괴된 부잣집 아기, 한때 유명 배우였던 아기 엄마는 싱글맘이었으니 방송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소재였다.

그리고, 아기가 사라진 그날 밤, 아무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웃고 노래 부르던 엄마들의 사진이 뉴스 1면을 장식하면서, ‘자격 없는 엄마들이란 꼬리표가 붙은 악몽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하룻밤, 아기를 맡겨 두고 외출했을 뿐이다. 그 몇 시간의 일탈 때문에 그간의 갖은 노력과 고생과 마음들을 다 싸잡아서 '엄마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이들을 비난해도 되는 것일까. 사라진 아기를 찾는 과정과 범인을 추적하는 플롯에 대한 긴장감과 반전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육아휴직, 상급 권력자와 부하 여직원의 미투, 낙태 등 여성의 삶에 직면한 사회적 이슈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어 현실감 있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언론과 사회의 편견, 모성이라는 신화, 각각의 엄마들이 간직한 비밀과 거짓말, 내 아기도 잃어 버릴 지 모른다는 실체 없는 공포까지.. 읽을 수록 빠져드는 속도감이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케리 워싱턴 주연으로 곧 영화화될 예정이기도 하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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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간 - 부와 권력을 지배하는 인공지능의 보이지 않는 공포가 온다
해나 프라이 지음, 김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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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은 유죄 여부를 판정하지 못한다. 피고와 검찰의 주장을 저울질하지도, 증거를 분석하지도, 피고가 진심으로 뉘우치는지 판단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머지않아 알고리즘이 판사를 대체하리라는 기대는 접으시라. 그렇지만 믿기 힘들게도 알고리즘은 개인정보를 이용해 재범 위험률을 계산할 줄 안다. 게다가 많은 판사가 재범 가능성을 고려해 판결을 내리므로, 따지고 보면 알고리즘의 그런 능력이 꽤 쓸모 있다.    P.92

문명이 발달할 수록 인간과 기계는 동반자가 되어 간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알고리즘의 권력은 점차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주어진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 방법, 명령어들을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넷플릭스가 취향 별로 추천하는 영화를 자연스레 선택하게 되고, 핸드폰에서 검색한 키워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웹사이트의 배너 광고로 마주하게 되고,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로 사용자의 취향을 예측해 맞춤형 광고를 붙이는 식이다. 이런 기술의 뒷면을 보면 언제나 알고리즘이 숨어 있다. 이렇게 기계 시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부품인 알고리즘은 오늘날 소셜 미디어부터 검색엔진, 의료, 법원,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경제, 데이터, 의료, 예술 전반을 뒤흔드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주도권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알고리즘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그 기능과 힘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알고리즘이 아직 풀지 못한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경찰이 체포할 용의자를 결정할 때 쓰는 알고리즘에서는 범죄 피해자와 결백한 피고인 중 누구를 보호할 것인지, 판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의 형량을 정할 때 쓰는 알고리즘에서는 사법 제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을, 무인 자동차를 움직이는 알고리즘에서는 도덕률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뒤, 당신이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도심 거리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고 해보자. 교통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었는데 자동차에 이상이 생겨 차를 멈출 수가 없다.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차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도로에서 벗어나 콘크리트 벽을 들이받아 탑승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달려 탑승자는 살리되,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칠 것인가? 우리는 이때 자율주행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도록 설계해야 할까? 누가 죽을지를 어떻게 결정할까?    P.191~192

만약 당신이 폭주하는 전차의 진행경로에 있는 5명과, 전차의 경로를 바꾸면 희생될 한 명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는 1960년대로 거슬러 가는 유명한 사고실험인 전차 문제에 대한 대응 문제이다. 이것이 무인 자동차의 사례가 되면 상황은 이렇게 바뀐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신나게 달리고 있을 때, 신호가 빨간 불이 되었는데 차에 이상이 생겨 멈출 수가 없다.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탑승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인가, 보행자를 칠 것인가. 2016년 초가을에 열린 파리 모터쇼 전시회장에서 이러한 질문을 받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대변인은 "우리는 탑승자를 구합니다."라고 대답했다가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퍼센트가 탑승자를 희생시켜서라도 되도록 많은 사람을 살리는 쪽이 더 도덕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경우가 된다면,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 나와 남의 목숨이 지닌 가치를 저울질하는 알고리즘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지적하고, 고민한다.

알고리즘이 적용되는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하는 팽팽한 갈등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알고리즘의 선택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한계와 가치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자동화가 삶의 모든 영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늘날 알고리즘은 인간을 도와 유방암을 진단하고, 연쇄살인마를 붙잡으며, 비행기 추락을 방지하고, 누구나 손끝으로 인류의 방대한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주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즉시 연결되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리즘이 남겨준 문제들에 대해서 짚어보고, 알고리즘의 힘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기계와 인간의 완벽한 공생을 통한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각종 위기와 쏟아지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당신은 착취당할 것인가,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완벽하게 공생할 것인가. 미래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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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티스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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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가 올여름 마시 교수와 함께 서부에 가지 않는다에 천 달러 걸겠어.”

내가 대꾸했다.

“좋아. 내기를 받아주지.”

그 순간 깨달았다. 비록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여름 내내 소름끼치게 뜨거운 사막에서 미치광이로 소문난 늙은이와 오래된 뼈를 파내며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것을.     p.15

마이클 크라이튼 사후 세 번째로 발표된 소설이다. <쥬라기 공원>이라는 너무도 유명한 그의 대표작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 마이클 크라이튼은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과학 스릴러의 거장이다. 사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작품은 내게 거의 충격이었다. <쥬라기 공원> 이후로 과학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해, 공룡이라는 테마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한동안 관련된 책들을 찾아 푹 빠져 지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전 추리소설과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 있던 내게 그의 작품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너무도 오랜만에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되어 읽기 전부터 굉장히 설레었다.

이 작품은 마이클 크라이튼이 1970년대에 집필한 미공개작으로, <쥬라기 공원>의 프리퀄 격인 작품이다. 현재까지로는 그가 남긴 작품 중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후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사람들이 금을 캐러 미 서부 인디언 지역으로 몰려들던 1870년대이다. 모두가 금을 찾아 서부로 향하던 시대, 공룡 화석을 찾아 그곳으로 간 이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 활약했던 실존 인물인 코프와 마시, 두 고생물학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팩션 모험극'이기도 하다. 아직은공룡이란 존재를 믿을 수 없던 시기이자 창조론과 다윈의 진화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 시절, 사라진 공룡의 세계를 찾아 서부 대평원으로 떠나는 여정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현지 발간 당시전성기의 마이클 크라이튼을 다시 만난 듯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자연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것들이 아주 많다네. 이 브론토사우루스가 활보하던 시대에는 빙하의 얼음이 녹고, 지구 전체가 열대로 바뀌었지. 그린란드에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알래스카에 야자수가 무성했어. 미 대륙의 광활한 평원들은 당시에 거대한 호수들이었고,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호수 바닥이었네. 죽은 동물의 사체가 호수 바닥에 가라앉으면 진흙 침전물이 그 위에 쌓여 점차 돌로 굳어지지. 그렇게 보존된 화석을 우리가 발견한 거야. 만약 이런 증거들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런 거대한 동물의 존재를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나?"    p.213~214

1800년대 후반 미국의 고생물학자였던 코프와 마시는 공룡 화석 발굴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서로 비방하는 것은 기본이고 상대방이 발견한 화석을 도둑질하는 등 상대를 이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들의 흥미로운 대결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부유한 예일대생 윌리엄 존슨은 라이벌인 친구와 미국의 미래가 서부 개발에 달렸다는 주장에 대한 말싸움을 하다 발끈해 즉흥적으로 서부 여행을 가겠다고 선포한다. 예일대의 마시 교수는 해마다 학생들을 선발해 탐사 여행을 떠났는데,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굴리는 걸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친구와의 내기 때문에 마시 교수를 따라 서부로 가게 된 윌리엄은 결국 일행들과 여정을 시작하는데, 마시 교수는 그를 자신의 라이벌인 코프의 스파이라고 의시종일관 의심한다. 결국 마시의 탐사대로부터 버림받아 혼자 남겨진 윌리엄은 우연히 마시 교수의 라이벌인 필라델피아 대학 고생물학과 교수 코프를 만나게 된다. 코프는 마시의 탐사대에서 쫓겨난 윌리엄을 자신의 탐사대에 합류시키고, 예상치 못하게 윌리엄은 그들과 함께 화석 탐사에 나선다.

‘고생물학’과서부라는 소재가 전혀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마이클 크라이튼의 솜씨는 이 두 가지를 기가 막히게 요리해내고 있다. 과학 스릴러 거장의 마지막 작품을 만난다는 조금의 감격스러움도 있고, 아주 오랜 만에 만나는 그의 '공룡 이야기'라는 점도 설레임을 더해주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쥬라기 공원>의 프리퀄 격이라는 의견은 그다지 와 닿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공룡의 화석을 찾으러 떠나는 이들의 여정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이 <쥬라기 공원>이 만들어지는 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짐작은 충분히 되었다. '과연 윌리엄은 무사히 공룡 화석을 발굴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이야기의 주요 플롯이지만, 실존 인물인 두 고생물학자의 대결과 골드 러쉬와 인디언과의 긴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 서부 지역이라는 배경이 전해주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오래 전 <쥬라기 공원>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작품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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