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당 오가와 - 오가와 이토 에세이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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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향하는 것은 틈.
시간에도, 공간에도, 인간관계에도 틈을 만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물건은 계속 늘어나니 의식해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 없는 물건은 손에 넣지 않는다, 집에 들이지 않는다, 인생에 덧붙이지 않는다, 이런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p.25

 

이 책은 오가와 이토가 <츠바키 문구점>을 집필하던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한 1년간의 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이다. 주인공 포포가 이웃들과 일상을 보내며 대필가로서의 가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소소하게 그렸던 <츠바키 문구점>과 <반짝반짝 공화국>을 참 따뜻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기적을 보여줬었는데, 포포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그들과 사계절을 지내면서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해서 더 재미있게 읽었었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우동, 봄을 농축한 것 같은 상큼한 향의 쑥 삶는 냄새, 식후 산책 길에 먹는 시원하고 달콤한 수제 젤라토의 맛 등등...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실제 작가도 그런 일상을 보내지 않을까 했었다.

 

이번 에세이에서 그녀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음식들이 소소하지만, 풍요로운 힐링을 전해준다. 추운 날엔 마음까지 뜨끈해지는 그라탕을, 봄이 되면 미나리를 듬뿍 넣은 샤부샤부를, 혼자 있는 밤엔 안주를 곁들여 레드와인을 즐기는 평범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내는 보통날의 기적이 펼쳐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도, <달팽이 식당>의 링고에게도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일과 마주하고 있다. 평소에는 피해서 지나온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판단을 잘못하면 앞으로 인생이 장기간에 걸쳐 괴로워질 것 같다. 솔직히 지금도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만. 그러나 이럴 때 가야 할 길의 지표가 되어준 것이 라트비아 십계명과 무히카 씨의 말이다. 어쨌든 나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아무리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걸 깨달아서 너무 좋다.   p.57

 

삶은 유리네를 바싹 구워서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뿌리고 트뤼프 소금을 살짝 뿌려 만드는 뇨키, 겨울철의 별미인 말린 도미로 만드는 감자 도미 그라탱, 산에서 따온 미나리와 크레송, 땅두릅이 들어간 봄의 샤부샤부, 춘권피에 새우와 연근을 넣고 가늘게 말아서 기름에 튀긴 시가렛, 밤을 통째로 넣고, 청주와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마지막에 참기름을 둘러서 먹는 밤밥, 감자를 오븐에 굽고, 돼지고기를 직접 두드려 다져서 만드는 크로켓 등등.. 가족과 자신을 위해 부지런히 만들고, 먹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 날들 속에서 오가와 이토는 곧 출간될 책의 교정을 보고, 사인을 잘하기 위해 손글씨 연습도 하고, 대만으로 여행도 다녀오고, 강아지 유리네에게 간식도 주고, 이메일 대신 전용 만년필로 정성 들여 손편지도 쓴다. 그녀는 매해 반년쯤 독일에 체류하는데, 그곳의 생활양식과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베를린에 대한 애정 가득한 이야기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섬세하고 따뜻한 오가와 이토의 소설들처럼,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는 이 에세이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 또한 작품을 닮은 온기가 가득하다. 사십 대 후반의 작가가 가지고 있는 소녀 감성도 참 예쁘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미소 짓게 되고,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무언가를 요리하는 것이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인데, 햇살 가득한 풍경 속에 서 있는 듯한 건강한 느낌이 페이지마다 묻어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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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상의 봄 상.하 세트 - 전2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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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절실한 목적이나 필요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나 바뀔 수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로. 어른이 아이로.
"사령의 빙의 따위는 그와 관계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원래 한 사람에게 하나 있는 마음이 여러 개 있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 다른 사람이 몇 명 있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상권, p.252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것이 2005년에 국내 출간되었던 <이유>였으니, 벌써 15년이나 지났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작을 찾아 읽었던 작가라 그런지, 이번 작품은 더욱 의미가 있다. 이번 신작은 미야베 미유키가 등단 30주년을 맞는 해에 발표한 81번째 작품으로 9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대작이다. 시대소설에서는 드문 정신 착란, 연쇄살인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어떻게든 살아내면 봄은 꼭 찾아온다는 의미를 담아 제목을 ‘세상의 봄’이라 붙였다고 한다. 에도시대 가상의 작은 번을 무대로, 정신착란을 이유로 연금된 청년 번주와 그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애틋한 충정과 사랑을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발표 즉시 ‘소설사에 유례없는 작품’ ‘21세기 최강의 사이코&미스터리’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되었다.

 

 

다키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혼례를 올렸지만, 시어머니의 폭력과 괴롭힘으로 삼 년이 못 돼서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토목청 감독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은거소로 거처를 옮기고, 오빠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아내를 맞이해 자식을 두었다. 누구에게나 환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게 마련이었다. 원하는 방향으로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나,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게 변덕스럽고 잔인한 운명은 다키 처럼 하찮은 한 여자에게도, 촉망 받던 청년 군주에게도 평등하게 찾아 들었다. 기타미 번 6대 번주 시게오키가 중병으로 인해 은거하게 되고, 7대 번주로 그의 사촌이 오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시게오키의 병환이라는 것이 너무도 기이해서, 모두가 쉬쉬하는 가운데 그가 실성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간다.

 

 

다들 사람이 좋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준다. 기타미 번은 윤택하지는 않지만 영민의 마음은 윤택하고 따뜻하다. 그런 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번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면. 비애와 노여움에 먹먹해진 가슴에 먹물을 떨어뜨린 것처럼 검은 불안이 번졌다. 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정말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보이지 않는 널따란 가을철 목장을 둘러보며 한주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권, p.162

 

호숫가에 절이나 신사처럼 엄숙하게 기와지붕을 이고 고요히 선 저택 고코인, 시게오키는 그곳 저택의 호화로운 병풍과 장식으로 치장된 방에 이중으로 잠겨있는 창살로 둘러싸여 요양 중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의 청년 시게오키는 천진한 소년이었다가, 교태 부리는 여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흉포한 사내로 혼란과 착란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다키는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고코인에서 시게오키의 시중을 들게 된다. 다키가 그곳에 가게 된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가 미타마쿠리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일족이었기 때문이다. 미타마쿠리는 인간의 영혼을 조종해 그것과 의사소통하는 기술로 현재는 거의 사용하는 이들이 없었다. 과연 다키는 자아를 잃어버리고 종종 다른 사람이 되고는 정신이 들면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게오키의 증상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코인의 저택 관리인과 주치의, 하인 등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과 함께 다키는 시게오키를 가두고 있는 어둠의 심연에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악의는  소년 연쇄 실종사건, 쿠리야 일족 몰살사건 등으로 이어지며 두툼한 페이지만큼이나 밀도 있는 서사를 만들어 낸다.

 

 

미야베 미유키의 기존 작품들에 비해서는 가독성이 높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초반에 진도가 잘 안 나가는 편이긴 했다. 시대물임에도 불구하고 연쇄 살인과 정신 착란 등의 현대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워낙 서사 자체가 느리게 진행되는 편이고, 과거와 배경 설명에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어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상권의 중반 정도까지만 잘 따라가면 어느새 캐릭터 각자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미스터리는 물론, 드라마로서도 흡입력 있는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제목과 표지 이미지에서 묻어나듯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상큼한 빛깔의 겉표지를 벗겨내면 만날 수 있는 속표지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결코 적지 않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배경과 성격이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는 그녀가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인간 본질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작가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극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납득하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결론을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게 아닙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가 이 작품을 긴 호흡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 30주년을 넘어 더 오랜 시간 동안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오랜 독자로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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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리딩을 위한 워드 파워 30일
노먼 루이스.윌프레드 펑크 지음, 강주헌 옮김 / 윌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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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어휘학계의 두 거장이 만들어낸 '어원 중심 영단어 학습서의 고전'이다.  1942년 출간 이래 80년이 지난 지금도 GRE, GMAT, TOEFL 각종 수험생들의 필독서로 꼽히며, '고급 영단어 학습서의 바이블'로 통하며 널리 읽히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어원 연구의 데일 카네기’라는 평가를 받는 노먼 루이스와 ‘당대 가장 지적인 사전편찬자’로 명성 높은 윌프레드 펑크이다. 이들은 평생 영단어의 역사와 어원을 연구해 '가장 효과적인 어휘력 확장 학습법'을 고안해냈다.

 

사실 어원 학습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러 파생단어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나중에 낯선 단어를 만나더라도 뜻을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하나의 단어에 대한 배경과 스토리를 읽는 것만으로도, 단어 암기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도 이 책만의 장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 맥락 없이 단어와 뜻만 달달 외우는 것은 성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학창시절 이후 이런 식의 암기는 거의 해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머리가 굳었다는 핑계로 더욱 영어 공부에서 멀어지곤 하는데, 이런 방식의 영단어 공부라면 무엇보다 성인들이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 책은 레벨테스트, 24개의 강의, 5개의 테스트로 이루어진 30일 간의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평균 한달 반에서 세 달이면 독파할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영단어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원과 토픽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단어를 덩어리로 묶어 주제어들을 개념 중심으로 설명한 후 다양한 연습문제를 풀면서 영단어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원문을 100% 수록하여 원서를 읽는 효과도 누릴 수 있는데, 각각의 단어마다 원문을 먼저 읽고, 한글로 두 번째 읽으면서 자연스레 반복 학습을 할 수 있다. 먼저 나왔던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가 교양 영단어의 개념과 원리를 강의식으로 풀어 쓴 입문편이라면 이 책은 그의 요약 실전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하루 한두 시간만, 딱 30일 동안 집중하는 걸로 최고 난이도의 고급 영단어 300여개를 습득할 수 있는 책이니 말이다.

 

 

누구나 가장 많이 결심하고 실패하는 것이 다이어트와 영어 공부가 아닐까 싶다. 다이어트도 그렇지만, 영어 공부도 너무 다양한 책과 방법들이 있어서 자신에게 딱 맞는 걸 찾기가 어렵다는 데에 실패의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물론 작심한 것을 꾸준히 지켜내지 못하는 끈기와 노력도 문제겠지만 말이다. 특히나 영어 공부는 강의도, 책도 시중에 너무 많아서 대체 뭘 골라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가장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 받아온 이런 책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고급 영단어들이라 시작할 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학창 시절에 꽤 오랫동안 영어 공부를 해왔다. 학창 시절 이후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20대 중반부터는 어휘력 향상이 멈추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이제 단어를 무작정 암기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한 것이다.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만 달랑 제시하여 무조건 달달 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특정 시험에만 통용되는 영단어가 아닌 실제 현지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언어 천재들이 만든 최고의 영단어 학습서답게 그 명성에 걸 맞는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커리큘럼에 따라 성실하게 학습해나가면서 노력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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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3-2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너무 좋은 책 소개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책 찾고 있었어요 ~
좋은 하루 되세요
 
방구석 과학쇼 - 사소하고 유쾌한 생활 주변의 과학
Helen Arney.스티브 몰드 지음, 이경주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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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가지고 노는 것은 내면의 과학자를 끌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멋진 도구를 사는데 돈을 쓸 필요 없이, 그냥 부엌 찬장을 열어보세요. 여기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먹을 수 있는 실험 몇 가지를 준비했어요. 식사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토막 과학 지식도 있답니다. 책을 읽으며 남아메리카, 알프스산맥, 그리고 국제우주정거장을 넘나드는 당신의 간편한 아침 음료에 대한 복잡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발견해보세요.    p.42


저자인 스티브 몰드와 헬렌 아니는 과학 코미디 라이브쇼의 멤버들이다. 서문을 쓴 매트 파커까지 이들 세 명은 Domestic Science라는 실험 코미디쇼를 BBC에서 방영했고, Featival of the Spoken Nerd라는 스탠드업 과학쇼를 진행했으며, 그들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뷰를 기록했다. 이들의 유튜브는 https://www.youtube.com/user/fotsn으로 코미디와 과학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이고 인터랙티브한 쇼를 보여준다.

 

 

이 책은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저자들이 무대에서 실제 과학 실험을 한 내용 중 가장 좋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기이함과 의문으로 가득 찬 움직이는 실험실인 우리의 몸에서부터 시작해, 그 몸에 우리가 집어넣는 음식에 관한 색다른 진실과 이 모든 것의 우두머리인 신경중추, 바로 뇌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둘러보며 원소 주기율표를 샅샅이 뒤져보고, 친구들을 초대해 집에서 할 수 있는 단계별 실험 가이드와 과학 칵테일 조리법도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지구의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거나 우주의 좋은 위치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몰락시키고, 재정립하는 미래 기술에 관해 이야기한다. 카테고리를 나누자면, 몸, 음식, 뇌, 원소, 실험, 우주, 미래에 관한 모든 것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어서 내키는 대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아 읽으면 된다.

 

 

어쩌면 이런 재미없는 것들은 빼고, 우리의 몸에 아무런 손상 없이 미래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제 남편은 이렇게 제안했어요. 우선 우리가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지구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나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들의 시간보다 지구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시간이 더 빨리 갔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이 어떻냐는 거였죠.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미래로 의미 있는 거리만큼을 이동하려면 남은 인생을 우리 둘이서만 우주로 돌진해야겠죠. 고맙지만 됐어요. 아무리 우주선에 넷플릭스가 있다고 해도요.     p.197

 

인체의 신비와 특징에 대해 살펴보는 장에서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실험으로 피가 흐르는 자신의정맥을 찾고, 밸브를 발견하고, 눈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공을 느끼는 등 단순히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직접 집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실험으로 시작된다. 읽다 보면 내가 과학 책을 읽는 것인지, 엉뚱한 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페이지를 넘길 수록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이 알려주는 내용들이 쉽고, 단순해서 누구나 따라해볼 수 있고, 게다가 유쾌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식에 관한 과학을 다루고 있는 2장을 흥미롭게 읽었다. 인스턴트 커피에 대한 여러 실험으로 시작해, 통조림 국수에 대한 실험, 보이지 않는 담요로 촛불 끄기 아침 식사 시간의 버터와 시리얼, 팬케이크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들까지 정말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에서 즐길 수 있는 실험들은 놀이로도 매우 재미있어 보였다.  정전기 파티를 주최하는 방법, 스스로 움직이는 구슬, 연기가 들어가는 CD, 불타오르는 회전 쓰레기통, 과학 칵테일에 이르기까지 정말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실험 방법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과학 지식들을 깨알같이 담고 있고, 아무런 도구나 준비물 없이도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과학 실험들이 가득한 책이라 정말 '과학'이라는 것을 쉽고,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장점이 아닌가 싶다. 사실 처음에는 과학 코미디 라이브쇼라니 대체 어떤 걸지 상상이 가질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주변에 이렇게 과학이 많이 숨어 있었구나 싶어서 감탄하게 되었다. 평소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래서 무심코 지나쳤던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과학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점도 흥미로웠고, 반짝반짝 빛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인상적이었다.

 

교과서를 통해서 딱딱한 이론으로 접하는 과학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험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진짜 과학이 궁금하다면, 평소에 과학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점이 많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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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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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는 항상 배심원들을 '단죄의 신들'이라고 불렀는데, 기억하니?"
"그럼요. 그 사람들이 유죄 여부를 판단하니까요. 하고 싶은 말씀이 뭔데요, 아저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서 우리를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단죄의 신들이 많다고. 거기에 몇 명 더 보탤 필요는 없지 않겠니?"   p.33

 

LA에서 유명한 속물이자 악당 전문 변호사인 미키 할러, 그는 지난 해에 스캔들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인해 지방검찰청장 선거에서 패배했다. 간신히 변호해 석방시킨 의뢰인은 또 다시 음주운전으로 무고한 시민 두 사람을 죽였고, 그로 인해 딸 헤일리는 아빠와 인연을 끊다시피 멀어졌다. 당시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의뢰인을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석방시켰다고 언론에서 떠든 덕분에, 헤일리는 비난과 경멸의 눈빛을 견디다 못해 전학을 가야 했고, 그 의뢰인이 죽인 두 명의 피해자는 같은 반 친구와 엄마였던 것이다.  미키의 평판은 바닥이었고, 법정에 가서 건질 의뢰인이 있나 찾아봐야 할만큼 일거리가 없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살인사건 수임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인은 디지털 포주로 함께 일하던 콜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그였고, 두 사람은 돈 때문에 몸 싸움을 했었다. 그는 자신이 방을 나온 뒤 누군가 그녀를 살해한 게 분명하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키 역시 포주라는 직업 때문에 일단 그를 의심의 눈으로 보지만, 살해당한 피해자가 자신을 추천했다는 이야기에 숨이 턱 막히고 만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미키를 찾아오던 단골 의뢰인이었다. 미키는 그녀에게 새 출발을 하라며 충분한 돈을 쥐여주고 비행기를 태워 보냈는데, 그렇게 변호인과 의뢰인 관계의 도를 넘기면서까지 신경 써서 챙겨주었던 의뢰인이었던 거다. 자, 이제 상황이 복잡해졌다. 예전 의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의뢰인을 변호하게 되어 법적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이 생긴다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그녀에 대한 미키의 감정이 특별하다는 게 문제였고, 자신이 그 동안 그녀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된 것도 문제였다. 그럼에도 미키는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에게 일어난 비극의 진상을 밝히기로 하는데, 과연 그는 현재의 의뢰인인 피의자와 과거의 의뢰인이었던 피해자를 동시에 구할 수 있을까.

 

 

"내 말 잘 들어라." 리걸이 말했다. "부당하게 기소된 피고인을 위해 맞서 싸워주는 것보다 더 숭고한 대의명분은 없다. 이 일을 망치지 마라, 미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아래로 푹 숙였다.
"죄책감을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 리걸이 말했다. "이제 그만 영령들을 보내줘라. 그러지 않으면 영령들이 너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을 거다. 그러면 넌 좋은 변호사가 못 되겠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될 테니까."    p.231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 할러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작품이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탄환의 심판>, <파기환송>, <다섯 번째 증인>에 이은 <배심원단>은 '인간쓰레기들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미키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부분일 것이다. 수임료가 높은 살인사건 변호를 맡는다는 생각만으로 온몸에서 전율이 일어난다고 말할 만큼 돈을 좋아하는 미키이지만, 약쟁이나 살인범 같은 인간쓰레기들을 변호하는 일은 그만큼 뼈아픈 대가를 요구한다. 그의 의뢰인 명단에는 노인들을 표적으로 삼은 차량절도범과 데이트 성폭행범, 수학여행기금을 착복한 사기꾼 같은 다양한 범죄자를 비롯해서 성매매와 관련된 살인피의자까지 있었으니.. 딸이 자신과 인연을 끊겠다고 해도 아버지로서 반박할 만한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언제나 세상이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자신은 세상의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그 결과에 대한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경찰 스릴러인 해리 보슈 시리즈보다, 법정 스릴러인 미키 할러 시리즈를 더 좋아했는데, 장르적인 선호도보다는 캐릭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게 했던 작품이었다. 미키 할러는 정의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형사전문 변호사로 설정되어 있지만, 나쁜 의뢰인의 무혐의를 밝히는 과정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뭔가가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진면목은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에 있다. 속물 변호사로서 승소율을 올리고 오로지 돈만 벌면 그만인가와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할 건지에 대한 정의 구현 문제에 대해 매번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니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미키와 이복 형제인 해리는 독립된 시리즈의 주인공이지만, 종종 함께 출연하기도 하고, 이번 작품처럼 까메오같은 느낌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해리 보슈 시리즈가 무려 스물 두 편, 미키 할러 시리즈가 여섯 편이나 쌓인 세월만큼 이제는 완전히 독립적인 캐릭터로 스스로 살아 숨쉬는 것 같은 인물이 되었는데, 그래서 종종 이렇게 다른 작품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도 시리즈의 팬으로서 특별한 재미인 것 같다. 마이클 코넬리는 해리 보슈와 미키 할러 외에도 기자인 잭 매커보이, FBI 특별 수사관 레이철 월링, FBI 프로파일러 테리 메케일렙 등의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시리즈를 써왔고, 이들 역시 여러 시리즈에서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등장한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만을 위한 특별한 재미인 셈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The Gods of Guilt'로 극중 미키의 아버지가 항상 배심원들을 '단죄의 신들'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나온다. 법정에서 배심원단의 평결이 유죄 여부를 판단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신적인 권위를 갖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죄의 신들은 미키의 마음속에도 악령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극중에서 미키는 그 죄책감을 극복하기 이해 더욱 열심히 변론에 임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서 함께하는 목소리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나를 축복하고,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람들, 내 단죄의 신들.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읽어온 미키 할러 시리즈 중에서도 재미 면에서나, 완성도 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시리즈물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시리즈 첫 작품부터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바로 이 작품부터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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