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니 트윌과 종이 심장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1
찰리 N. 홈버그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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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마법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따분하지 않아. 금속 마법처럼 자극적이거나 플라스틱 마법처럼 혁신적이지는 않겠지만 창조성을 발산할 여지는 충분해. 보여줄까?"
시어니는 인상을 쓰고 싶었지만 그 제안에 지루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차피 이 남자 밑에서 최소한 2년 동안은 견습생으로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그의 마음에 들 필요가 있었다. 시어니는 애써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문으로 향했다.   p.39

 

태기스 프래프 마법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졸업을 앞두고 평생 어떤 마법 재료를 다루며 살지 선택하게 된다. 마법은 인간이 만든 물질하고만 결합기 가능하며, 마법사는 평생 동안 한 물질하고만 결합할 수 있었다. 최우수 졸업생인 시어니 트윌은 지난 5년 동안 금속 마법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해왔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이 마법에 배정된다. 현재 활동 중인 종이 마법사의 수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어 아무도 원치 않는  ‘종이 마법’ 견습생이 되고 만 것이다. 시어니는 19년을 노력해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그 동안 성취한 모든 것이 날아간 기분이었다. 유리, 금속, 플라스틱, 고무 등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마법 재료 등이 많았는데, 고작 사양의 길을 걷게 된 종이 마법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시어니는 그런 마음으로 견습생 생활을 하게 된 에머리 세인 마법사의 집 앞에 도착한다. 런던 변두리의 황량한 지역에 위치한 그곳은 무서운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우중충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집 전체를 가린 거대한 스케일의 정교한 환영 마법이었고, 종이 해골 집사가 등장해 그녀를 안내한다. 시어니는 에머리를 만나기도 전에 그는 분명히 정신 나간 마법사라고 결론 내리지만, 그에게 종이 마법을 전수받으면서 차츰 종이 마법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그는 알고 보니 시어니가 마법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익명으로 도와준 후원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전신을 받고는 세인이 장기 출장을 다녀오는데, 그가 돌아오고 나서 신체 마법사 리라가 들이 닥친다. 금지된 마법을 행하는 흑마법사인 리라는 세인의 심장을 훔쳐 가버리고, 그는 죽음에 위기에 처하고 만다. 시어니는 마법으로 종이 심장을 만들어 간신히 위기를 벗어나지만, 종이 심장은 겨우 이틀 정도 그의 목숨을 연장해 줄뿐이었다.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선 리라를 찾아가서 직접 심장을 되찾아오는 수밖에 없었고, 시어니는 스승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아직 마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견습생인 그녀가 과연 무시무시한 흑마법사로부터 무사히 심장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일어서면서 시어니는 문득 이 환영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인의 심장 속 깊은 곳에 담긴 이 희망은 너무도 생생하고 진짜 같아서, 꽃줄기 안쪽 깊은 곳에 담긴 당분의 달콤한 냄새도 코끝에 와 닿았고 저물다 만 태양의 열기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척이나 평화로운 희망이었다. 시어니는 자신의 심장이 이런 아름다운 희망의 절반만큼이라도 품을 수 있을까 싶었다.    p.250~251

 

이 작품은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총 3권과 1권의 번외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번에 1권과 2권이 함께 출간되었고, 곧 3권과 외전도 나올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곧 디즈니플러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어 진다고 하니 제2의 해리포터처럼 될 지 기대가 된다. 사실 이 작품은 표지 이미지에서부터 느껴지듯이, 해리 포터류의 성장 서사보다는 로맨스 드라마에 가까운 장르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마법 소녀가 견습생에서 정식 마법사가 되는 과정, 그리고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는 악의 무리와 겪게 되는 모험 서사가 펼쳐진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재료여, 창조자가 명한다. 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평생 나와 연결될지어다."

 

무엇보다 인간이 만든 재료들인 종이, 유리, 금속, 고무, 플라스틱 등과 결합한 마법사들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배경인 20세기 초 런던의 풍경과 작가가 만들어낸 마법 세계관이 잘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종이라는 재료로 동식물과 같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물론, 눈송이 같은 자연물, 폭탄이나 장거리 메신저까지 만들어내는 '종이 마법' 또한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시어니가 처음 종이 마법에 배정되었을 때, 앞으로 마법 편지봉투 따위나 만들어 집으로 보내는 게 고작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얇고 가벼운 종이로 만들어내는 마법의 세계는 매우 놀라웠던 것이다. 자, 이제 시어니 트윌의 두 번째 모험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환상적인 마법 속으로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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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 탐구생활 슬기로운 중년 생활을 위한 셀-프 문답
이소 인문상담소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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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가는 첫걸음으로서 기억 속 경험을 면면히 살펴보는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자기 개념을 발달시켜 온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철부지였던 아이의 행동을 받아주는 누군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이제 마음속의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 주세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마, 너를 믿어."    p.36

 

40~50대 전후의 여성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갱년기일 것이다.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지만, 누구도 같은 증상을 겪지는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불면증, 우울증, 고혈압, 치매 등등.. 다양하기에, 각자가 겪게 되는 갱년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같은 모습일 수가 없다. 갱년기뿐만 아니라, 퇴직이나 노후 걱정 등과 함께 자식을 다 키우고 나서 공허함과 외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도 바로 중년층이다.

 

 

이 책은 중년의 감정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과 대화해보는 '자문자답서'이다. 요즘 들어 부쩍 짜증이 늘어난 엄마는 왜 그러는 걸까, 갑자기 눈물이 많아진 아빠는 왜 그러는 걸까, 싶은 마음에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빠 마음 탐구생활>과 <엄마 마음 탐구생활> 두 권으로 출간되었는데, 내가 만나본 것은 엄마 편이다.

 

 

그동안 우리가 포기했던 것 중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가치가 없거나 쓸모가 없어서 포기했던 것이 아니기에 포기해야만 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함이 앞섭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시절이라,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 대해 위로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p.144

 

실제 상담이론 활동지 기반의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총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6장까지는 자녀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는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의 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0장까지는 배우자와 소통과 공존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15장까지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실현에 한발 다가서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인생의 길 위에 엄마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를 돌아보고, 조부모 세대, 엄마 세대, 자녀 세대의 각 차이점과 절충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엄마가 자란 집의 분위기, 어린 시절 주로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 당시의 꿈과 기억에 남는 거짓말 등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해나가면서 엄마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고, 함께하는 자녀는 자신이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각 장마다 '탐구활동 돌아보기'와 '심리학 탐구'라는 코너가 있는데, 심리학 이론들을 가볍게 풀어 담고 있어 실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머뭇거렸던 순간을 돌아보고, 나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가를 찾아볼 때 중년의 삶 속에서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할 무언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삶에 지쳐 방전되었다고 느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중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보면 어떨까 싶다. '누군가의 부모'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가족도, 본인도 몰랐던 속마음을 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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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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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폭발해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엄마의 팔을 잡고 등을 밀어서 집안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집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책을 가슴에 꽉 끌어안고 도서관까지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여자 화장실의 무거운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 변기에 앉아 책을 펼쳤다. 나는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거칠게 쿵쿵거리는 심장이 잠잠해질 때까지 최대한 빨리 책을 읽었다. 책에 적힌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내 인생은 단지 하나의 이야기가 될 때까지... 진실이 아닌, 절대 진실일 수 없는 그냥 이야기가 될 때까지...   p.19~20

 

씨씨의 엄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어떤 날에는 성질을 부리며 손에 잡히는 대로 죄다 던지고 깨뜨리다가도, 다음날이면 유리잔에 담긴 물처럼 평온했다. 엄마의 기분이 요요처럼 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동안 아빠는 항상 집에 없었다. 늘 출장 중이었고, 잠깐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와 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해마다 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며 통제력을 잃어갔고, 아홉 살 씨씨에게 유일한 낙은 일요일 마다 이웃집에 사는 오델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과 책들뿐이었다. 외로운 씨씨는 자신의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길로 책을 선택했다. 엄마가 접시를 벽에 던질 때마다 읽을 책 목록에 한 권을 더 추가했고, 엄마가 울 때마다 사전 반 쪽을 몽땅 외웠다. 그렇게 열한 살이 되자 씨씨는 읽은 책이 아주 많고 아는 단어도 굉장히 많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씨에겐 친구가 없었고, 여전히 외로웠고, 집에서 엄마를 홀로 지켜봐야 했다. 결국 엄마는 도로 한가운데 빨간색 새틴 구두를 남겨 놓은 채 어린 씨씨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이야기는 씨씨가 익숙한 공간인 북부를 떠나 남부에 있는 먼 친적 투티 할머니의 집으로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세상에서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외로운 소녀가 투티 할머니와 가사도우미 올레타 아주머니, 그리고 남부의 날씨처럼 따뜻하고 유쾌한 이웃들을 만나면서 점점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활기를 되찾아간다.

 

 

“엄마의 죽음은 너랑 아무 상관이 없어, 세실리아. 내가 장담할게. 인간의 마음은 놀라운 거란다. 우리가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때, 마음이 우리를 보호하지. 때때로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이 너무 무거워지거나 깊어지면, 우리는 그 고통에 항복해야 해. 고통이 우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리 게 내버려두는 거지. 마침내 바닥을 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한동안 평안하게 쉴 수 있단다. 그리고 점점 고통이 줄어들면서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일어설 수 있어.”    p.365

 

통통한 라즈베리를 올린 오트밀, 설탕과 버터의 부드러움이 입안 가득 퍼지는 시나몬 롤.. 그리고 올레타 아주머니의 환상적인 남부 가정식들 때문인지 페이지 가득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들이 나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특히나 투티 할머니와 올레타 아주머니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그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도 따뜻하고, 현명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회를 주지만,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회를 알아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고, 자신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도 뭉클했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도, 어떤 사람이 지혜롭다면, 그건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라고, 지혜는 경험에서 나오는 거라는 말도 너그럽고, 다정하고, 푸근하게 마음을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은 아씨들>의 조, <소공녀>의 세라,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 <빨강 머리 앤>의 앤 등 당찬 소녀 주인공의 계보를 잇는 책벌레 소녀 씨씨의 이야기를 만나 보자. '세상이 끝난 듯 보여도, 몇 명의 좋은 친구가 우리의 인생을 바꿔놓는다'고 한 언론평처럼 나이만큼의 경험을 통해 지혜로움을 쌓은 여성들의 선한 마음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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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 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밥상머리 교육의 비밀, 개정판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리더스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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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식사를 자주 하고, 식탁에서 활발한 의견이 오가는 가정의 아이는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아이보다 훨씬 많은 어휘에 노출되고 있었다. 2년의 연구 기간 동안 연구진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2,000여 개의 단어를 빠짐없이 녹음했다. 이 중 부모가 책을 읽어줄 때 나온 단어는 140여 개에 불과했지만, 가족식사 중에 나온 단어는 무려 1,000여 개에 달했다    p.30~31

 

요즘 가족들은 아이와 부모가 한 식탁에 앉기는커녕 하루에 얼굴 한번 마주치기 어려울 만큼 바쁘게 살아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보다 빨리 집을 나서서 늦은 시간까지 학원 공부를 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이 책은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밥상머리 교육이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은 전통적 가치로만 여겨지던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했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SBS스페셜>의 최고 화제작이었다. 이 책은 방송에서 미처 방영되지 못한 세계 각지의 사례, 전문가 인터뷰, 과학적 실험과 더불어, 구체적인 실천법까지 담고 있다. 개정판으로 출간되면서 표지를 리커버하고, 본문의 사진자료와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올컬러판으로 디자인했으니,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정기적인 가족식사 만으로 아이의 지능발달은 물론 엄청난 학습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입증하며 가족식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1988년 장기간의 연구를 계획했다. 자료 수집 기간만 무려 2년, 엄청난 양의 자료가 수집되었고 3세 아동이 5세가 되었을 때 어떤 요인이 언어 발달을 가장 효과적으로 돕는지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그 실험 결과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았는데, '아이의 언어능력은 부모가 중산층이냐 저소득층이냐에 따라 나뉘지 않았고, 장난감이나 독서 환경으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거다.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아이들의 학습능력의 차이는 가족식사의 횟수와 식탁에서 의견 개진이 활발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렸다는 것이다. 보통 식탁에서의 대화가 가족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학습효과나 언어 발달 측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기에, 이 책을 통해 밝혀지는 내용들이 너무도 흥미로웠다.

 

 

밥상머리 교육은 오래갈수록 효과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선순환 효과가 있다. 처음 대화를 찾지 못해 어색한 과정을 넘기기만 하면, 그 뒤로 점점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화젯거리가 풍부해진다. 대화를 통해 공고해진 가족관계는 다시 아이들을 밥상 머리로 불러모은다. 잃어버린 밥상머리를 되찾은 가족들. 되찾은 건 비단 밥상머리만이 아니었다... 밥상머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떠올린다면 바쁘다는 건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 바쁘고 어려울수록 한걸음 멈춰 서서,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p.224~225

 

이 책에 따르면, 하버드대학 연구진 연구결과 '아이는 책을 읽을 때보다 10배 넘는 어휘를 식탁에서 배운다'고 하며, 콜롬비아대학 카사(CASA) 연구결과 '가족과의 식사 횟수가 적은 아이는 흡연, 음주 경험률이 높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학습을 따라가기 위해 아이가 꼭 알아야 할 단어가 15,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 시절 오랜 기간에 걸쳐 어휘력을 늘려야 하는데, 아이의 어휘력 향상을 위해 부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독서일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밥상머리에서의 대화가 어휘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실제 가족들의 식사 시간을 녹취록에 남겨진 대화로 사례를 들어가며 보여주고 있어 더 흥미로웠는데, 밥상머리 대화가 아이의 지능 발달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명사의 밥상'이라고 해서 유룡 카이스트 교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짐 도널드 전 스타벅스 CEO, 배우 최불암, 교육학자 장병혜 등등 그들이 '밥상머리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그로 인해 자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 식사 대신 사교육으로 일관하는 한국의 교육 문화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밥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이 책은 세계 각지의 사례, 전문가 인터뷰, 과학적 실험을 통해 밥상머리 교육의 놀라운 효과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구체적 지침을 함께 제시하고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밥상머리의 가족 대화가 왜 특별한지를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사실 하루 20분 가족식사가 우리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한번쯤 해볼 필요가 있다고, 부모라면 대부분 생각할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식사 시간이 그야말로 전쟁터였던 한 살 터울 형제를 둔 가족이 직접 체험한 4주간의 잃어버린 밥상머리 되찾기 프로젝트가 수록되어 있다. 밥상머리 대화는커녕 평범하게 밥을 먹는 것조차 꿈같은 일이었던 이들 가족에게 4주간 어떤 변화가 진행되었는지 전 과정이 소개되어 있으니 성장기 아이를 둔 부모라면 특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루 20분 가족식사가 어떻게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 밥상머리의 가족 대화가 왜 특별한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하버드 대학 교수들이 말하는 가장 좋은 조기교육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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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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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말은 해두는 게 좋겠군요."
여자가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을 오른쪽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전 당신을 죽이려고 했어요."
역시, '카푸치노 한 잔이요' 라고 주문할 때 쓰는 말투였다. 뭐라고 대답할 사이도 없이 여자는 차 뒤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이드미러를 보자 여자는 이미 골목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죽음이란 단어만은 잔상에 남았다. 죽음이라.......    p.38~39

 

이 작품의 주인공인 택배 기사는 사람들에게 '행운동'이라고 부린다. 우리는 그의 이름은 물론 어떤 이유로 고향을 떠나왔는지, 과거에 무슨 일을 하다 지금은 집도 없는 신세로 택배 회사의 컨테이너에서 지내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저 그가 배달을 맡은 택배 관할 지역이 행운동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불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일을 하고, 쉬는 날이면 술을 마시고 책을 읽으며, 누구와도 친분을 만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록 동료들과 별다른 말을 섞지 않은 것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인간관계라면 이미 끊어진 과거의 것으로도 충분하니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수 적고, 무뚝뚝한 그의 단단한 틈을 억지로 비집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 근무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택배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행운동 사람들 모두가 그를 가만두지 않는 것이다. 담배 한 개비를 달라는 우울증 환자, 경찰복을 입고 그를 따라다니며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동네 바보, 그에게 경제철학 강의를 해주겠다며 집으로 부르는 노교수, 서비스로 술을 주겠다는 게이바 직원, 흰색 마스크를 쓰고 폐지를 줍는 젊은 여자 등등 각자의 과거와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그들은 이상하게도 그에게 말을 걸고, 그에게 뭔가 부탁을 하고, 그의 삶에 간섭을 하려 한다.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행운동은 그들의 요구가 귀찮고, 그들의 사정에 관심도 없으면서 그들을 마냥 거절하지 못해 항상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것도 전혀 친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하나도 관심 없다는 듯이 시니컬 하고, 무뚝뚝하게 말이다.

 

 

"사회는 집념, 포기하지 않는 노력, 뭐 그런 걸 강요하지만 글쎄요, 제 생각엔 희망이란 게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괴롭히기만 할 뿐인 것 같아요. 그럴땐 포기하면 편하죠. 정말 그래야 할 일은 살면서 한두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 대개의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니까."
"보통은 좀 더 노력해보라고 하는데 기사님은 다르게 말씀하시네요."
"나태하고 게으른 인간이라서 그렇겠죠."    p.189

 

평범한 택배기사처럼 보이고 싶은 주인공 행운동은 아무리 봐도 전혀 평범하지 않은 택배기사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택배기사'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라는 거다. 물론 몸을 쓰는 택배기사라고 해서 가방끈이 길지 말라는 법은 없고, 그 피곤한 와중에 틈만 나면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보통 몸을 사용해서 하는 일인 경우 잡생각 없이 그저 바쁘게 움직이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행운동 역시 평일 평균 150개의 물량을 배송하는 데 8시간 정도 소요되었고, 그러자면 3분에 한 개꼴로 배송을 해야 했으니 담배를 피울 시간도, 점심은 물론이고 잠시 쉬는 것조차 두려워서 못한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바쁜 택배 일을 제대로 해내면서도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만들지 않고, 지쳐 쓰러질 정도에서도 숙소에 오면 책을 펼쳐든다. 이상하기 그지 없는 인물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야기를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중간에도, 혼자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책 속 문장이나 작가의 말, 영화나 미드에 대한 것들을 인용한다. 오죽하면 극중 그와 대화를 나누던 여성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리고 그 말을 인용하면 자신이 근사해 보이나요?'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사실 <침입자들>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한국형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문구도 그렇고, 이 작품이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만,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라 단시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오마주라 칭하는 그 수많은 인용문구들이 없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문장과 대사에 인용이 너무 많은 소설이라 낯설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가끔은 이야기의 흐름과 크게 상관없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아마도 소설 장르에서 등장인물이 이렇게나 많은 인용을 사용한 경우는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들이었고, 현실에 굳게 발 딛고 서 있는 이야기라 통쾌하고, 시원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소설로서의 '재미'도 충분해서 누구라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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