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한마디가 삶의 철학이 된다 - 세계사에 담긴 스토리텔링
한수운 엮음 / 아이템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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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장이여, 신발보다 더 높이는 보지 말게."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화가 아펠레스의 명언으로, 자신의 그림에 갓신 만드는 구두장이가 전문성을 앞세워 그림 속의 갓신이 잘못 그려진 것을 지적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림의 나머지 부분에 관해서까지 지적을 하자 아펠레스가 구두장이에게 한 말이다. 아펠레스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누구나 내키는 대로 비난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비난을 스스로 공손하게 경청할 수 있도록 거리에 세워둔 그림 뒤에 숨어서 솔직한 비판을 들으며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p.44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장면을 역사적 순간의 결정적 한마디로 정리한 '역사인물스토리텔링 교양서'이다.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로 시대를 구분했고, 그 속에서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클레오파트라, 마키아벨리, 셰익스피어, 갈릴레오, 데카르트, 모차르트, 라이트 형제, 아인슈타인 등 다양한 장르 속 시대를 앞서간 엘리트들이 등장한다.

 

 

우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가장 유명한 말인 '너 자신을 알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하게 된 사연과 당시의 배경을 함께 담고 있어 이야기로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어지는 피타고라스의 수학 이론과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명언, 공자의 생애와 어록 등 정치, 철학, 역사,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중세로 넘어가면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 등 과학 분야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셰익스피어의 문학 세계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예술 작품들에 이른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
이 말은 오늘날 현실 감각 없는 무능한 정부를 비난하며 많이 쓰이는 문장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시 프랑스 민중들을 향해 내뱉은 망언이라며 혁명세력이 퍼뜨린 말이다. 1780년대 말 대흉작으로 빈곤이 극에 달했을 때 민중들은 빈곤과 굶주림에 허덕였으나 감히 왕을 탓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내일 당장 살아남는 것이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명세력은 민중을 동요시키기 위한 프레임이 필요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왕녀 출신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겨냥하여 각종 악의적 거짓 정보를 만들어 민중들의 분노를 자극시켰다.    p.328

 

근대사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정신혁명을 주도했던 데카르트로 시작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한마디는 인간이 생각한다라는 자신의 힘만으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 이성의 독립선언이었다. 근대철학의 창조자였던 데카르트에 이어 스피노자의 자유사상을 거쳐 현대사에서는 뉴턴의 만유인력과 에디슨, 라이트 형제의 발명 이야기로 시대를 앞서갔던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들려 준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는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57장면 속 57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적 호흡과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명언과 인물화, 그리고 미술 작품으로 보여지는 생생한 역사적 스토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역사나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한 챕터씩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레카!”,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등등 누구나 아는 명언이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결정적 한마디가 어떻게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장면을 만들어 냈던 것인지 궁금하다면, 고대에서부터 중세, 근대, 현대를 거치며 완성된 세계사의 진짜 스토리텔링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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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부의 미래 -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자본·문명의 대전환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신희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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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각광받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의 첨단 과학과 신기술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세계를 극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하지만 결정된 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지금 상태에 머무르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뿐입니다.    p.34

 

이 책은 NHK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엮은 것으로, 지구촌 차원의 위기에 직면한 현 인류가 미래를 향해 던지는 질문들에 세계 석학 5인의 전망과 통찰을 담고 있다.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 <플랫폼 제국의 미래>의 스콧 갤러웨이, 암호화폐 개발자, 찰스 호스킨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 천재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까지 이 시대 최고의 지성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5인의 인터뷰를 한 권에 모은 것이다. 작년 봄에 나왔던 <초예측>에서 진화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세계 석학들과 다가올 미래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 책에서는 세계의 부와 권력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향방을 전망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현대의 종교가 된 자본주의가 과학기술과 만났을 때 펼쳐질 미래를 내다본다. 그는 기술이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준다고 말하면서, 오늘날의 한반도를 사례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는 하나의 민족이 동시대의 과학기술을 사용해서, 남쪽엔 자유 민주주의 정부가 이끄는 IT 강국이, 북쪽엔 핵을 보유한 가난한 독재 국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같은 기술이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가능하게 만드는 미래 사회의 시나리오 역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스콧 갤러웨이는 현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IT 기업들의 폐해를 독자적인 시점으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은 그 첫 글자를 따 가파 GAFA로 일컬어진다. 그는 거대한 플랫폼 기업들인 GAFA가 인간의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에 호소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 구글은 신, 애플은 섹스, 페이스북은 사랑, 아마존은 소비를 향한 욕구에 호소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관점도 흥미로웠고,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GAFA에 맞서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앎의 가치’는 결코 공격 대상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잃고 말아요. 민주주의가 기능하려면 진실이 중요하며, 지식 없이는 진실을 검증하고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면 사회는 안정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입니다. 우리는 '국가'라는 개념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사회는 탈진실로 인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펼쳐지는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p.159

 

찰스 호스킨슨은 암호화폐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시장을 열어젖힐 것이라고 하며 과학기술에 내재한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장 티롤은 과학 기술이 가져올 시장 실패에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탈진실의 시대에 가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찰스 호스킨슨은 아직은 어렵게 느껴지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알기 쉽도록 이야기했고, 장 티롤은 시장 경제가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자연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와 경제의 협력이 민주주의까지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역사, 경영, 경제, 철학 등 각 분야의 세계 석학들이 세계 경제와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찰력있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 기반한 거대한 네트워크와 곧 인간을 능가할 것 같은 인공 지능, 그리고 유전체 분석까지 해내는 바이오 기술이 사회를 빠르게 바꿔나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암호화폐는 비트코인 버블을 몰고온 것도 모자라 끔찍한 디지털 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전염병, 테러, 선거 등 민감한 사회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가짜 뉴스는 확산되고 있으며,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위기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지적 기반을 제공한다. 누구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에,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자, 그럼 지금의 자본주의를 둘러싼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세계가 어디로 향하게 될 지에 대한 그들의 전망을 지금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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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몇명 스토리 2
윤종문 지음, 샌드박스 네트워크 감수, 총몇명 원작 / 미래엔아이세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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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독자 226만명의 '총몇명', 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만화책 형식에 맞춰 재구성한 책이다. 1권을 읽으면서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한 스토리 전개에 어이없어 지기도 했고, 그만큼 신선하고 색다른 이야기에 훅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인기에 힘입어 벌써 2권이 출간되었다.

 

2권 역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7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모리의 애착 인형 이야기, 모리의 인생 첫 소개팅, 행복시를 공포에 떨게 만든 괴생명체의 등장 등 전편보다 더 오싹하고 무시무시한 스토리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모리의 엄마는 어느 날 마트에서 자신을 임신부로 착각하는 직원의 실수에 충격을 받고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한 달 안에 10kg 감량을 시켜준다고 장담하는 헬스 클럽에 등록을 하게 되는데,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어도 감량을 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한 것이다. 그런데, 목표 달성 시 금액을 추가 결제해야 한다는 문구가 적힌 수상쩍은 계약서부터, 마음껏 먹어도 되지만 자신이 시키는 게 뭐든 믿고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트레이너까지 뭔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헬스 클럽에서 시키는 운동이라고는 엉덩이로 이름 쓰기만 주구장창 하는 거였는데, 인바디를 재보면 체중이 줄어든 걸로 나오는 거였다.

 

그렇게 한 달 후, 드디어 10kg 감량에 성공했다며 인바디 결과지를 들고 집에 온 모리의 엄마, 아무리 봐도 턱도 더 커진 것 같고 체중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수상한 헬스클럽의 정체는 무엇이며 모리 엄마의 다이어트 계획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스토리만 보자면 평범한 것 같지만, 사실 이 에피소드에도 총몇명 스토리 특유의 오싹한 개그가 여기저기 포진하고 있다.

 

 

'총몇명' 시리즈에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부분이 바로 코믹, 공포, SF, 병맛을 넘나드는 스토리라는 점일 것이다. 처음에는 좀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계속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보게 되는데 뭔가 찜찜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마력이 바로 거기에 있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책에서는 에피소드 만화 중간중간에 유튜브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집중 취재! 저주 인형의 정체', '숨은 복선 찾기', '월간 아무말' 등의 특별 페이지가 수록되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기존 유튜브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면 당연히 만화책도 소장용으로 챙겨봐야 할 것이고, 총몇명 스토리를 처음 접한다면 마음을 단단히 붙들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너무 오싹하고, 기괴한데, 이상하게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훅 빠져들 테니 말이다.

 

 

소위 '병맛' 내지는 'B급 감성'이라고 표현하는 그것에 어울릴 법한 스토리 전개는 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 상자를 안고 있는 것처럼 조바심 내며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고, 누군가 '발로 그린 듯한 그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비호감인 그림체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아마 대부분은 극중 나천재의 대사처럼, '어머나, 세상에! Unbelievable!'을 외치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저주의 인형부터, 생애 첫 소개팅 현장에 나타난 무서운 외모의 그녀, 어디선가 목격된 아빠의 도플 갱어와 시간 여행 기계의 오작동으로 탄생한 괴생명체까지.. 정말 상상력의 끝판왕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야기들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상상력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비호감, 비주류 등 매우 부정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그야말로 대략 난감의 감정을 이끌어 낸다. 그게 또 재미가 있고, 배꼽을 잡게 하는 지점이 있으니 그것부터 놀라울 따름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초판 한정으로 총몇명 스토리 인스가 수록되어 있다. 내 맘대로 오려 붙일 수 있는 스티커인데, 작품 속 캐릭터들이 총망라되어 있으니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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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기술 - 유혹의 시대를 이기는 5가지 삶의 원칙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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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평생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계속해서 이사를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좋은 일자리를 얻든 이상형의 배우자를 만나든 '정복'의 기쁨이 워낙 빠르게 사라져버려, 더 새롭고 더 나은 일자리나 배우자를 너무도 쉽게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의 쳇바퀴에 오른 우리는 노상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계속해서 쳇바퀴를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순간의 쾌락을 계속해서 느끼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투여량을 높이는 마약 중독자처럼 말이다.    p.42

 

<철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대중적이고, 쉬운 철학을 보여 주었던 스벤 브링크만의 신작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공영방송 라디오 강의 시리즈를 통해 유쾌한 철학 강의로 열광적인 호응을 받은 심리학자이다. 이번 책에서는 헛된 욕망을 물리치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법을 알려주며 '행복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데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이 욕망이 아니라 절제라고 한다면, 행복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데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로 가득하고, 그러한 유혹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경험하고, 소유하며, 성취해내는 삶이 모두가 꿈꾸는 이상이 되어 버린 지금, 저자는 오히려 기꺼이 뒤처지고 더 많이 내려놓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심리학, 철학, 윤리학, 정치학, 미학으로 바라본 절제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스벤 브링크만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지키는 절제의 원칙을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선택지 줄이기,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 기뻐하고 감사하기, 단순하게 살기, 기쁜 마음으로 뒤처지기이다. 선택지를 줄이는 것은 내 삶의 한계에 대해 깨달을 심리적 준비이기도 한데, 때론 적당히 만족하고 내려 놓을 줄 알 때, 행복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는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실존적 이유가 된다. 이것저것 다 원하지 말고 한 가지만 바라야 비로소 정말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기울이게 될 테니 말이다. 기뻐하고 감사하기는 말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중요하다. 이는 경제학이 알지 못하는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욕망만 좇지 말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감사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단순한 것만 원하는 태도가 개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필요한데, 이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일상이 즐거워지는 삶의 미학적 형식으로 기쁜 마음으로 뒤쳐지기가 있다. 항상 새롭지 않아도 괜찮다고, 일상을 반복할 용기를 낼 때 진정한 삶의 기쁨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살지 않은 삶이란 우리가 상상과 예술, 꿈에서 사는 삶을 말한다. 필립스는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이 실제 살아가는 삶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한 현실도피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를 지금 모습으로 만든 것은 바로 우리가 하지 않기로, 기꺼이 놓아버리기로 선택한 것들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꺼이 놓아버리는 것들 역시 우리라는 사람을 만든다. 무언가를 기꺼이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삶은 틀을 얻는다.    p.89~90

 

“나는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 단 하나, 유혹만 빼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의 눈길과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많이!'라며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이 가득하니,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매 순간 전전긍긍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혹시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진 않을까, 유행에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나만 소외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몇 가지를 선택하고, 거기에 지속해서 마음을 기울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려, 헛된 욕망으로 가득한 이들의 마음을 ‘구멍 난 항아리’에 빗댄다. 거기엔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결코 안을 채울 수 없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우리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새롭고 더 많은 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내려놓는 절제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뒤처지지 말라고, 계속 더 많은 것을 성취하라고 말하지만, 행복의 비결은 오히려 잘 포기하고 기꺼이 뒤처지는 데 있다. 행복이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고 나누는 데서,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는 데서 생기는 의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적당히 만족함으로써 정말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쓰는 법,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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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니 트윌과 종이 심장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1
찰리 N. 홈버그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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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마법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따분하지 않아. 금속 마법처럼 자극적이거나 플라스틱 마법처럼 혁신적이지는 않겠지만 창조성을 발산할 여지는 충분해. 보여줄까?"
시어니는 인상을 쓰고 싶었지만 그 제안에 지루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차피 이 남자 밑에서 최소한 2년 동안은 견습생으로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그의 마음에 들 필요가 있었다. 시어니는 애써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문으로 향했다.   p.39

 

태기스 프래프 마법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졸업을 앞두고 평생 어떤 마법 재료를 다루며 살지 선택하게 된다. 마법은 인간이 만든 물질하고만 결합기 가능하며, 마법사는 평생 동안 한 물질하고만 결합할 수 있었다. 최우수 졸업생인 시어니 트윌은 지난 5년 동안 금속 마법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해왔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이 마법에 배정된다. 현재 활동 중인 종이 마법사의 수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어 아무도 원치 않는  ‘종이 마법’ 견습생이 되고 만 것이다. 시어니는 19년을 노력해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그 동안 성취한 모든 것이 날아간 기분이었다. 유리, 금속, 플라스틱, 고무 등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마법 재료 등이 많았는데, 고작 사양의 길을 걷게 된 종이 마법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시어니는 그런 마음으로 견습생 생활을 하게 된 에머리 세인 마법사의 집 앞에 도착한다. 런던 변두리의 황량한 지역에 위치한 그곳은 무서운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우중충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집 전체를 가린 거대한 스케일의 정교한 환영 마법이었고, 종이 해골 집사가 등장해 그녀를 안내한다. 시어니는 에머리를 만나기도 전에 그는 분명히 정신 나간 마법사라고 결론 내리지만, 그에게 종이 마법을 전수받으면서 차츰 종이 마법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그는 알고 보니 시어니가 마법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익명으로 도와준 후원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전신을 받고는 세인이 장기 출장을 다녀오는데, 그가 돌아오고 나서 신체 마법사 리라가 들이 닥친다. 금지된 마법을 행하는 흑마법사인 리라는 세인의 심장을 훔쳐 가버리고, 그는 죽음에 위기에 처하고 만다. 시어니는 마법으로 종이 심장을 만들어 간신히 위기를 벗어나지만, 종이 심장은 겨우 이틀 정도 그의 목숨을 연장해 줄뿐이었다.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선 리라를 찾아가서 직접 심장을 되찾아오는 수밖에 없었고, 시어니는 스승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아직 마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견습생인 그녀가 과연 무시무시한 흑마법사로부터 무사히 심장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일어서면서 시어니는 문득 이 환영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인의 심장 속 깊은 곳에 담긴 이 희망은 너무도 생생하고 진짜 같아서, 꽃줄기 안쪽 깊은 곳에 담긴 당분의 달콤한 냄새도 코끝에 와 닿았고 저물다 만 태양의 열기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척이나 평화로운 희망이었다. 시어니는 자신의 심장이 이런 아름다운 희망의 절반만큼이라도 품을 수 있을까 싶었다.    p.250~251

 

이 작품은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총 3권과 1권의 번외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번에 1권과 2권이 함께 출간되었고, 곧 3권과 외전도 나올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곧 디즈니플러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어 진다고 하니 제2의 해리포터처럼 될 지 기대가 된다. 사실 이 작품은 표지 이미지에서부터 느껴지듯이, 해리 포터류의 성장 서사보다는 로맨스 드라마에 가까운 장르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마법 소녀가 견습생에서 정식 마법사가 되는 과정, 그리고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는 악의 무리와 겪게 되는 모험 서사가 펼쳐진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재료여, 창조자가 명한다. 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평생 나와 연결될지어다."

 

무엇보다 인간이 만든 재료들인 종이, 유리, 금속, 고무, 플라스틱 등과 결합한 마법사들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배경인 20세기 초 런던의 풍경과 작가가 만들어낸 마법 세계관이 잘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종이라는 재료로 동식물과 같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물론, 눈송이 같은 자연물, 폭탄이나 장거리 메신저까지 만들어내는 '종이 마법' 또한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시어니가 처음 종이 마법에 배정되었을 때, 앞으로 마법 편지봉투 따위나 만들어 집으로 보내는 게 고작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얇고 가벼운 종이로 만들어내는 마법의 세계는 매우 놀라웠던 것이다. 자, 이제 시어니 트윌의 두 번째 모험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환상적인 마법 속으로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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