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고재욱 지음, 박정은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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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겠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이 말대로 라면 죽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삶을 원하는 만큼 즐겁게 살다가 적당한 나이가 되면 '며칠 앓다가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런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아픈 노인들은 삶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죽음의 몇몇 징후가 보인 후에도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죽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그 곁을 지키는 이에게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시간이 된다.    p.17

 

우리나라에는 70만 명의 치매 환자가 살고 있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 열 명 중 한 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셈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국내 치매 환자 수의 절반가량 되는 34만 명의 요양보호사들이 있다. 이들은 치매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먹는 일, 자는 일, 씻는 일, 입는 일, 배설하는 일 등을 비롯해서 노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정서적 지지자이자 친구가 되어 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때로 치매 노인들에게 이유도 없이 얻어맞기도 하고, 때로는 보호자들에게 자기 부모를 학대하는 사람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요양보호사들에 대해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요양원에서의 노인 학대에 대한 숱한 보도와 기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어서, 그들 중에 진심으로 노인들을 상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이 책은 강원도 원주의 한 요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자가 지난 7년간 노인들의 일상을 돌보며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들을 글로 담았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돌봐야 하므로 극심한 육체노동인 동시에 극심한 감정노동을 하며, 업무 중 재해를 입는 경우도 다반사에 최저임금으로 일을 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들, 그들은 대체 이런 일을 왜 선택한 걸까. 치매 노인들의 암울해 보이는 현실에서 그가 찾아낸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할머니 앞에 슬그머니 새 앞치마를 둔다. 할 수 있는 한 소고기를 듬뿍 담고 텔레비전 채널을 7번으로 돌린다. 죽고 싶은 마음을 위로하는 일에는 대단한 행동이 필요하지 않다. 노인들은 오늘 아침에는 죽고 싶었지만, 앞치마에, 소고기에, 막장 드라마에 웃으며 또 하루를 보낸다. 내일 아침이 되면 그들은 또 죽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시라. 나에게는 아직도 열두 개가 넘는 앞치마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끝장 드라마가 있으니까. 나는 과거에 죽고 싶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데, 현재는 살아 있으면서 죽고 싶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다.    p.248

 

늦은 밤에 누군가 요양원 문을 두드려서 보니, 짙은 술 냄새가 풍기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요양원에서 가장 오래 지내고 있는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늙은 아들은 말없이 할머니 앞에 서 있다가 흐느낀다. "엄마.... 왜.... 안 죽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을까. 병든 어머니에게 자식으로서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누가 이 아들을 탓할 수 있을까. 매달 백여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8년 동안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직접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를 직접 돌보지 않고 요양원에 입소시킨다고 해서 그들이 책임감이 없다거나 불효자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아픈 사람도, 아픈 사람의 보호자도, 그들을 지켜보는 이도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겪어야만 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 몸도, 마음도 늙고 병들게 마련이고 죽음이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니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잔잔하고, 담백하게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가족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며 온종일 문 앞을 서성이고,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어 일부러 요양원에 들어오고, 돌아가신 엄마를 찾아 복도를 헤매는 노인들의 사연은 과장되지도, 신파적이지도 않게 그저 소소한 일상처럼 펼쳐진다. 그렇게 마냥 어둡고, 무겁기만 하지 않아서 더 따뜻하고, 더 와 닿는 이야기들이었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바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맛있는 것 먹고, 멋진 구경도 다녀보고, 하고 싶은 것 죄다 하면서, 그렇게 한번 살아볼걸 그랬어."라는 한 할머니의 말이 심장에 콕 박히는 순간이 오면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른다. 앞만 보지 말고, 옆에도 보고 뒤에도 보고, 그렇게 살걸 그랬다고 후회하지 말고, 오늘을 충분히 즐기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세상의 첫날인 것처럼,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말이다. 그러면 언젠가 삶의 마지막이 찾아왔을 때 조금은 기쁘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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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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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참모습을 두고 그것을 '삶의 진실'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 '내가 그리는 삶의 참모습'은 바로 '내 삶의 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아름답다는데, 삶의 진실은 어떤가? 아름다운가? 그것은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실은 우리 손가락을 씀벅 베어버리는 칼날 같다. 진실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육안으로는 진실을 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대 신화는 꾸준하게 우리를 가르친다.    p.349

 

2000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첫 권이 출간되고 나서 그야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이 불었다. 먼 나라의 옛이야기에 지나지 않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국민 필수 교양으로 자리잡고, 만화와 공연, 전시로 확장되기까지 신화 열풍의 중심에 이 책이 있었으니, '국민 신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첫 출간 20주년을 기념하고 이윤기 선생의 타계 10주기를 기리기 위해, 다섯 권 시리즈를 한 권으로 묶은 특별 합본판이 출간되었다. 이번 특별판은 시리즈 다섯 권의 텍스트를 가감 없이 담고, 기존 책에서 선별하고 새롭게 추가한 도판 자료 220여 점을 수록한, 1200쪽의 두툼한 양장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해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신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대인의 상상 세계가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철학자와 역사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미술과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으며, 과학기술 분야의 용어가 될 정도로 서양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학,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등 인문학 전반을 포괄하는 인류 문화의 원형이라는 점 때문에 이를 다루고 있는 책들도 정말 너무 많다. 신화의 세계를 처음 만나게 되는 경우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말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가장 우리의 정서와 잘 맞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쓴 버전이라 누구나 친근하게, 쉽고, 재미있게 신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가 직접 신화의 무대였던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곳곳의 유적지와 박물관을 누비며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찍어온 사진이 거의 2만 장에 달했을 정도이니,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화를 믿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믿는다고 대답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는 한다. 나는 신화를 믿는다. 신화를 믿는다고 해서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갂아놓고 내 색시가 되게 해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비는 식으로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은 신화의 진실이다. 퓌그말리온의 진실과 그가 기울이는 정성이다. '퓌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은, 스스로를 돌아보되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경우에 나타나는 효과를 뜻하는 말로 지금도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   p.514

 

특별 합본판은 그 압도적인 분량에서 읽기도 전부터 기가 죽게 마련인데, 사실 다섯 권의 분량을 하나씩 읽기 시작하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게다가 탁월한 이야기꾼의 입담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어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기 시작하면 멈출 새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1권은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타이틀로 신화 이해와 해석에 필요한 열두 개의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는 신화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해석, 국내 정서에 맞춰 서술해 가장 이해하기 쉽고도, 흥미진진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2권은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로 잔혹하고 무자비한 신화 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풀어낸다. 신화에 등장하는 성과 사랑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금기를 훌쩍 뛰어 넘고,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 놀랍다. 근친상간, 트랜스젠더, 자기애, 매춘 등 어떠한 도덕적 관념으로도 재단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꼬장꼬장한 도덕군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바로 그 '조금도 윤리적이지 않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음란한' 신화 속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3권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에서는  '신의 마음을 여는 방법'을 주제로 '신들이 좋아한 인간'과 '신들이 싫어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호모 테오필로스(신들이 좋아하는 인간)’과 ‘호모 테오미세토스(신들이 싫어하는 인간)’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화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인간이 없으면 신화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3권이 흥미로운 것은 '신화가 가지는 서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서인데, 정말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지는 느낌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4권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웅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웅이다. 헤라클레스 이야기에는 그리스 신화와 서구 문화의 수수께끼를 여는 황금 열쇠가 숨어 있는데, 그만큼 헤라클레스 신화는 방대한 그리스 신화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5권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으로 이올코스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면, 무려 구백 권이 넘는 책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이윤기의 책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압도적으로 매혹적이고, 무엇보다 소설처럼 재미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 이해의 열쇠가 신화라면 신화 이해의 열쇠는 바로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영웅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미궁 진입과 미궁 탈출에 성공했듯이, 우리는 신화라는 미궁 속에서 그 상징적인 의미들을 알아내기 위해 나만의 아리아드네를 만나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상상력의 빗장을 풀고, 그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가이드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너무도 아름다운 양장본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시작해보자. 신화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해석, 국내 정서에 맞춰 서술해 가장 이해하기 쉽고도, 흥미진진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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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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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넘겼다. 두려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감시 대상자가 됐다. 하지만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 정도면 감시대상자 명단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그녀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없지만, 상습적으로 이혼하는 사람들이나 실직자들 또는 인지능력이 손상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레아는 훌륭한 라이퍼였다. 그녀는 헬스핀에서 일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왔다. 정부 당국도 이 사실을 갈고 있지 않은가?     p.28

 

'영원한 삶'이란 인류의 오랜 숙원이지만, 사실 그것은 결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욕망이다. 하지만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생에의 꿈은 실제 현실에서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을 높이는 것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63세 안팎이던 인간의 평균 수명은 현재 80세 안팎이지만, 점차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로 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거기서 더 나아가 평균 수명이 300세에 이른 근미래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1의 물결이라 칭해지는 과거에 인간은 150세 가까이 살았고, 제2의 물결이라 하는 현재는 300세 이상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제3의 물결이 시작되면 인간은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인 걸까.

 

미래의 뉴욕 시민들은 태어나자마자 수명을 알리는 숫자를 부여 받는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난 신생아는 ‘라이퍼’로 분류되어 몇백 년의 삶을 살기 위한 정부의 온갖 지원 혜택을 받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유전자는 '비라이퍼'로 분류되어 정부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채 병에 걸리거나 노화되어 일찍 삶을 마감하게 된다. 수명 연장자로 분류된 라이퍼들은 정부의 영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가능한 한 오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영원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주인공인 레아 기리노 역시 완벽한 유전자를 타고난 라이퍼로 이제 막 100세가 된 참이다. 그녀는 금융사에서 일하며 파격적인 승진을 앞두고 있으며,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연인과 멋진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이 뒤바뀌는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느 날, 출근길에 88년 전에 사라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뒤를 쫓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이후 정부의 감시자 명단에 오르게 되면서 완벽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왜 묻는 거죠?" 그가 물었다. "당신도 명단에서 이름을 없애고 싶어요?"
"아니요." 레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위커버리 모임에 더는 나가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봐요." 마누엘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할까요? 수명연장 치료를 중단할까요? 당신의 수명을 줄일까요? 아니면 당신을 죽게 내버려둘까요?"     p.278~279

 

회사와 집을 오가며 오직 건강만을 좇는 삶이란 어떨까. 식사로는 정부에서 권장하는 뉴트리팩과 향료가 첨가된 단백질 음료 정도에, 육류와 과일은 금지되었으며, 신체적으로 무리가 갈 수 있는 조깅은 명상으로 대체되었다. 같은 나이의 '라이퍼'들은 생김새는 달랐지만, 키와 근육의 탄력까지 거의 똑같은 체형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상대를 보며 근육과 피부의 상태, 비타민D, 코르티솔 수치 등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 중에 일부는 정부의 수명유지 시술과 금욕적인 삶에 지치고 환멸을 느껴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다. 일명 '수이사이드클럽(SuicideClub)'으로 그들은 라이브 음악 공연을 들으며 동맥경화에 가장 안 좋다는 전통 음식들을 진탕 먹고 마시는 파티를 열어왔다. 인구 감소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정부에서 이렇게 라이퍼들이 영생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고,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시작한다. 레아가 정부의 감시자 명단에 오른 것도 그것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그녀가 일부러 차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SF 디스토피아 소설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가능한 한 오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영원한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것은 극중 인물들만큼이나 현재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유전자에 따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한 가족 안에서도 누군가는 일찍 죽음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수명 연장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와 억압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삶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니, 유한한 삶 속에서 살아 있는 순간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쪽과 완벽한 두뇌와 외모를 갖추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쪽,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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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키스 링컨 라임 시리즈 1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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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땅치 않은 것은 링컨 라임의 타운하우스가 아니라 이곳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라임이 경찰 자문 업무에서 손을 뗐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다. 아주. 개인적으로 색스는 서로 주고받는 자극, 자아의 부딪힘, 그런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창조력이 그리웠다. 그가 일을 그만둔 뒤로 색스의 생활은 마치 온라인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 같았다. 정보는 같지만, 그 정보를 두뇌 안에 집적하는 과정이 대폭 축소되었다.    p.84~85

 

아멜리아 색스는 인간 군상 수만 명이 득실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우연히 인상착의가 용의자와 유사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185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60, 70킬로그램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체형의 호리호리한 남자는 클럽 이름을 따서 붙인 수사 명으로 '범인 40'이라 불렸다. 그는 퇴근 후'40도 북쪽'이라는 클럽에 가던 스물아홉 살의 맨해튼 시민이 강도가 든 둔기에 맞아 끔찍하게 사망한 사건의 용의자였다. 색스는 범인의 뒤를 쫓아 5층 건물 쇼핑센터에 들어가며 지원 인력에게 상황을 알린다.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간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지원 인력과 함께 준비 중이던 색스는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듣게 된다. 목소리는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한 남자가 에스컬레이터의 열린 패널 속으로 몸이 떨어져 허리가 절반으로 잘리고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색스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하지만 피해자는 출혈 과다로 사망하고, 그 혼란을 틈타 범인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문제는 사회다. 그들은 소비하고, 소비하고, 소비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물건을 수집하고, 물건을 수집하는 데 집중한다. 달리 말해 저녁식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만’ 하고, 가족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서 소통하는 자리여야 한다. 최고의 오븐, 최고의 만능 조리기구, 최고의 블렌더, 최고의 커피메이커를 뽐내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물건들에 집중한다,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 아니라.    p.562

 

한편, 라임은 이제 더 이상 뉴욕 시경을 위해 일하지 않는 상태로 등장한다. 한 달 전 라임은 사건 수사 업무를 정리하고 형사행정학교 교수직에 지원했다. 법과학 수업 교수로서의 라임 역시 너무도 훌륭하지만, 색스는 그와 함께 수사를 할 수 없는 점이 매 순간 아쉽기만 하다. 라임이 수사에서 손을 떼자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라임과 색스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시리즈와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성된다. 라임의 수업을 듣는 제자인 줄리엣 아처가 그의 조수를 자처하며 비공식 인턴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녀 또한 라임처럼 휠체어를 몰고 다니는 데다 색스와는 또 다른 명석함으로 라임에게 도움을 죽고 있기 때문이다. 라임과 별개로 범인 40을 추적하는 색스의 수사와 엘리베이터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게 된 라임과 아처의 수사가 별개로 진행되다 서로 교차되는 순간, 법의학 스릴로서의 재미는 정점으로 향하게 된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그 동안 굉장히 다양한 소재들로 살인마들을 등장시켜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물인터넷(IoT) 서버를 해킹하여 원격으로 살인을 하는 색다른 범인이 등장한다. 수천 가지 기계, 도구, 냉난방 시스템, 차량, 산업용 제품들에는 소비자가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 조종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이런 장치들은 우리의 삶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 주지만, 제조사가 수집하는 우리의 데이터는 안전한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스마트 시스템이 오작동할 때 부상과 죽음의 위험이 있다는 점이 취약한 부분이다. 이 작품에서 범인은 바로 그 스마트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 냉장고, 자동차, 오븐처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제품들을 살인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온갖 스마트 제품이 어느 날 살인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지점이 더욱 현실적인 스릴과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오랜 만에 만나게 된 링컨 라임 시리즈 신작이라 정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보통 국내 번역이 2년에 한번씩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링컨과 색스가 처음 만났던 <본 컬렉터> 사건을 변주했던 전작 <스킨 컬렉터> 이후 무려 3년이나 걸렸다. 링컨 라임 시리즈 그 열 두 번째 작품 <스틸 키스>는 표지 색감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론 또 판형이 달라져서 시리즈로서의 통일감은 잃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신간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대체 왜 해리 보슈, 미키 할러, 그리고 링컨 라임 시리즈까지 모두 시리즈 중간에 자꾸 판형과 디자인을 바꾸는 건지 궁금하긴 하다. 이 시리즈는 이번에 나온 'The Steel Kiss (2016)' 이후에도 'The Burial Hour (2017)', 'The Cutting Edge (2018)' 까지 현재 열 네 번째 작품까지 출간되어 있다. 빨리 다 만나보고 싶은데, 국내 번역본을 만나려면 또 시간이 필요하지 싶긴 하다.

 

경찰 애인에게 배신당해 경찰이라는 직업 자체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순찰 경관 색스와 사고로 전신마비를 당하고 경찰을 퇴직해 삶을 포기하려던 라임이 인간의 뼈에 집착하는 본 컬렉터 사건을 맡으면서 시리즈가 시작되었던 것이 2009년이니 벌써 까마득하게 오래 전 일이다. 그 이후로 링컨 라임과 색스는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연인이 되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라임의 투덜거림을 다 받아주는 톰과 여전히 신참 같은 매력을 풍기는 론 풀라스키를 비롯해 멜 쿠퍼, 론 셀리토 등 라임의 수사팀들도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더 애정이 느껴져서 마치 살아 숨쉬는 인물들처럼 느껴지는데, 이게 바로 시리즈만의 묘미이기도 할 것이다. 반전에 반전, 거기다 다시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고, 꼬면서 몇 번의 반전이 거듭되어도, 개연성에 대한 의심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플롯을 자랑하는 링컨 라임 시리즈라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반전을 선보일 것인지 기대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제프리 디버에게 반전의 제왕이라는 수식어 자체는 평범할 수도 있지만,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반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두뇌형 인간인 링컨 라임과 전직 모델 출신에 직감이 뛰어난 권총 명사수 색스의 활약을 만나 보자. 시리즈가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 어떤 작품부터 읽어야 할 지 고민이라면, 바로 이 작품부터 시작하면 된다. 대부분의 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도 링컨 라임 시리즈만의 매력에 푹 빠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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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니 트윌과 대마법사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3
찰리 N. 홈버그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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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유리 파편에 담긴 과거의 기억들은 점점 더 빨리 뒤로 흘러갔다. 유리 마법 견습생이 견습 첫해에 주로 배우는 이 마법은 시어니가 알고 있는 종이 마법을 거의 다 합친 것보다 더 복잡한 수준이었다. 영국에서 종이 마법의 인기가 왜 시들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낮, 밤, 낮, 다시 밤. 떨어지는 빗방울. 맥주병의 파션 속에 흘러가는 기억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아직까지 쓸모 있는 장면은 없었다.    p.118~119

 

이 작품은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그 세 번째 이야기이다. 시리즈의 시작은 태기스 프래프 마법학교의 최우수 졸업생인 시어니 트윌은 금속 마법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해왔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이 마법에 배정되는 걸로 포문을 열었었다. 현재 활동 중인 종이 마법사의 수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어 아무도 원치 않는  ‘종이 마법’ 견습생이 되고 만 시어니는 유리, 금속, 플라스틱, 고무 등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마법 재료 등이 많았는데, 고작 사양의 길을 걷게 된 종이 마법이라니 한숨이 나왔지만, 견습생 생활을 하게 된 에머리 세인 마법사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에게 종이 마법을 전수받으면서 차츰 종이 마법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1권에서는 금지된 마법을 행하는 흑마법사 리라가 훔쳐간 세인의 심장을 되찾기 위한 위험천만한 모험이 펼쳐졌었다. 그리고 2권에서는 영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신체 마법의 공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우게 되는 시어니와 에머리의 이야기가 그려졌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어니는 마법사는 엄청난 비밀인 '평생 한가지 재료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법칙'을 깨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3권에서는 원래 끊을 수 없게 돼 있는 종이와의 결합을 몇 번이나 끊었다가 다시 이어 붙이며 다양한 재료로 여러 마법 들을 시도해 본 상태의 시어니가 등장한다. 그녀는 에머리 세인 마법사 밑에서 견습을 시작한 지 2년하고도 일주일이 되는 날 마법사 자격시험을 치를 계획이었고, 이제 겨우 몇 달 뒤면 바로 그 날이었다. 특히나 그녀가 자신의 계획대로 마법사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 이유는, 에머리와 그녀의 사랑을 눈치채기 시작한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는 동성인 다른 마법사 밑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마법사와 성별이 다른 견습생을 금지하기로 결정이 났고, 그래서 백 명 이상의 견습생들이 재배치될 예정이었다. 에머리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시험관을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베일리 마법사로 바꾸고, 시어니는 시험을 치르기 전 2주일 동안 베일리의 집으로 가서 그의 견습생과 함께 지내야 했다. 에머리와 베일리는 서로 아주 싫어하는 관계였고, 메일리의 성격 또한 만만치가 않아 시어니가 과연 시험을 제대로, 공정하게 치를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2권에서 시어니의 친구를 죽게 만들었던 신체 마법사 사라즈가 사형 집행을 위한 이송 중에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시어니는 사라즈에 맞서기 위해 그의 뒤를 쫓는다.

 

 

시어니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지만 눈 중앙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순간 시어니는 자신이 아무리 대단한 힘을 가졌고 만반의 준비가지 했다 해도 에머리의 심장을 마냥 편하게 해줄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심장은 이미 부서지고 상처받았다. 적어도 떨리는 심장만큼은 진정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p.320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는 총 3권과 1권의 번외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지난 4월에 1권과 2권이 함께 출간되었고, 이번에 3권이 나왔으며, 곧 외전도 나올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곧 디즈니플러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어 진다고 하니 제2의 해리포터처럼 될 지 기대가 된다. 사실 이 작품은 표지 이미지에서부터 느껴지듯이, 해리 포터류의 성장 서사보다는 로맨스 드라마에 가까운 장르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마법 소녀가 견습생에서 정식 마법사가 되는 과정, 그리고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는 악의 무리와 겪게 되는 모험 서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인간이 만든 재료들인 종이, 유리, 금속, 고무, 플라스틱 등과 결합한 마법사들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흥미로운 시리즈이다. 이야기의 배경인 20세기 초 런던의 풍경과 작가가 만들어낸 마법 세계관이 잘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종이라는 재료로 동식물과 같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물론, 눈송이 같은 자연물, 폭탄이나 장거리 메신저까지 만들어내는 '종이 마법' 또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시어니가 모든 재료의 마법을 다루게 된 상태로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다양하고, 화려해진 마법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1권, 2권에 비해 마법사들과의 대결 장면에서의 볼거리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법사 자격시험을 앞두고, 그 동안 서서히 쌓아왔던 시어니와 에머리의 가슴 설레는 로맨스 역시 점점 완성 단계로 향한다. 판타지와 로맨스가 함께 하는 시리즈이지만, 전혀 유치하지 않고, 오글거리지도 않고 그 중간에서 딱 균형을 잡고 있어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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