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면서 외우는 일본어 문법 30일 완성 (스프링)
나무 지음 / 세나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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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일본어 학원을 열심히 다니다 그만 둔 뒤로는 따로 일본어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가거나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그래도 한때 배웠다고 단어들이 들리곤 해서 제대로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영어든 일본어든 그리 쉽게 시작해지지가 않는 것이 또 외국어 공부이다. 특히나 일본어는 한국어와 기본 어순이 같아서 쉽게 느껴지지만, 한자를 외워야 하는 게 만만치가 않았던 기억이 나서 더욱 다시 시작하기를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에 4페이지씩, 퀴즈를 풀듯 손으로 따라 쓰며 공부하면 한 달 만에 일본어 문법을 끝낼 수 있다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기초 문법뿐만 아니라 초급에 필요한 단어장, 배운 내용이 들어간 회화도 소개되어 있어 문법과 어휘, 그리고 회화를 자연스럽게 함께 익힐 수 있어 더 좋을 것 같았다. 

 

우선 스프링 제본으로 되어 있는 책이라 손으로 직접 쓰면서 공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인 구성은 매일 학습 내용이 도표로 정리되어 있고, 제시된 단어들의 활용법을 빈칸 채우기를 통해 직접 쓰면서 연습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날 배운 문법을 실제 문장을 통해 연습할 수 있도록 문장 완성하기가 이어지며, 간단한 회화 내용을 베껴 쓰면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한다. 각 챕터 마다 곡 외워야 할 단어들이 따로 정리되어 있고, 단어 연습장에 쓰면서 외울 수 있다.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공부한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 풀이가 수록되어 있고,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복습하는 과정도 있다. 1일차에서 4일차에 명사와 형용사의 활용을 공부하면 5일차에 그에 대한 복습이 있고, 6일차에서 12일차까지 동사의 종류와 기본 활용을 배우면 13일차에 그에 대한 복습이 있는 식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외국어 공부 중에 가장 진도가 안 나가고 어려운 것이 바로 문법인데, 기초 문법을 이렇게 딱 한 달 동안 집중해서 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는 마스터할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그냥 눈으로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 페이지마다 계속 직접 손으로 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저절로 단어나 문법의 구조가 외워지지 않을까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일본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해보자. 그것도 책 한 권으로 부담 없이, 가볍게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처럼 일본어 공부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기초 문법이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이번에는 더 미루지 말고, 이 책과 함께 다시 일본어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우선은 딱 한 달만, 무슨 일이든 시작이 제일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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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애인들에게 -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203가지 사랑 이야기
올린카 비슈티차.드라젠 그루비시치 지음, 박다솜 옮김 / 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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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돌이켜보면, 이제부터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셰브를 만난 것도 그런 순간이었다. 그는 내게 사랑의 좋은 것들을 전부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천천히 광기에 잡아 먹히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서서히 그를 옭아매는 광증에는 곧 과대망상이 따라왔다. 그 모든 일이 고작 한 달 만에 일어났다. 정신이 온전한 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길고 느리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지켜보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그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새크,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기억해줘."     -'우리의 플레이리스트', p.43

이별을 하고 나서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린 다음에 가장 난감한 것이 떠나간 그 혹은 그녀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함께 찍은 사진, 서로에게 쓴 편지, 함께 읽은 영화와 책들... 집안 곳곳, 거리 곳곳에 떠나간 연인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할 테고 그 흔적들을 정리해야 비로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보통은 그 사랑의 덧없는 잔해들이 잔혹하고, 슬프고, 실패이기 때문에 흔적을 제거하고, 기억을 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물건을 버리지 말고, 기억과 함께 저장할 수 있는 보관소가 있다면 어떨까. 결과야 어찌 되었든 당시에는 무엇보다 소중한 순간들이었고, 행복한 추억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주 특별한 보관소 '이별의 박물관'이 탄생하게 된다.

2006, 크로아티아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전시가 열렸다. 사랑의 크고 작은 순간들을 기념하는 것처럼이별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4년간 사귄 연인이었던 올린카 비슈티차와 드라젠 그루비시치는 사랑이 끝나고 남은 물건들의 처분을 고민하다 이별 보관소를 만들기로 한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별을 상징하는 물건과 그에 얽힌 사연을 보내왔고, 이별의 박물관은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모든 헤어진 연인들의 망명처 역할을 하고 있다.

 

낡아 해지고 모래가 묻은 이 책들은 최근에 끝난 길었던 사랑의 상징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프루스트의 책에 중독되었다. 특히 휴가를 가면 나는 그녀에게 그의 소설을 소리 내어 읽어주곤 했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알가르베의 타비라섬에서 보낸 몇 번의 여름 동안 읽었다. 우리는 인적 드문 백사장으로 걸어 나가 부목과 대나무, 실크 사롱으로 은신처를 만들고선 대서양의 둔탁한 파도 소리를 배경음 삼아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한 이 산문에 빠져들곤 했다.    - '읽지 못한 결말', p.141

다리가 몇개 남지 않은 지네 인형, 종이접기 꽃, 점토로 만든 여우, 낙하산 장치, 어린이용 자동차, 깨진 거울 조각들, 실리콘 가슴 보형물, 머리카락 타래, 바이올린 로진, 휴대용 체스판, 스틸레토 힐 한짝, 하트 모양 메달 장식, 콘크리트 조각 등등.. 이것들은 이별의 박물관에 사연과 함께 보관된 물건들이다. 이별의 박물관에 전시된 각각의 물건과 사연 들은 사랑이 지속되었던 기간,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와 함께 기록되어 그곳에서 지나간 시간을 영원히 박제 시킨다. 이들의 사연들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한 너무 사소하다. 평범해서 지루하고, 파격적이어서 놀랍기도 하고,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고 내용 또한 가지각색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고, 또 헤어지며 살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가장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별담을 읽으면서 누구나 자신의 지나간 사랑과 이별의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책에는 박물관 설립자 올린카 비슈티차와 드라젠 그루비시치가 직접 선별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애틋한 203가지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흔하디 흔한, 특별할 것 없는 이별담이 당사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그 수많은 이별담 중에서 나쁜 기억은 지워버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잠시라도 존재했던 세상의 모든 연인들을 위한 박물관이라는 별칭만큼 이곳의 존재 이유는 특별하다. 그 누구도 현재 진행형인 사랑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버린 이별에 대해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와 헤어지고 힘들어할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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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웅진 모두의 그림책 19
에런 베커 지음, 루시드 폴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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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모두의 그림책 19권은 에런 베커의 아름다운 아트북이다. 에런 베커하면 <머나먼 여행> <비밀의 문> <끝없는 여행>으로 이어진여행 3부작시리즈로 유명한데, 이번에 만난 책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책이었다.

 

아름다운 빛을 어딘가에 고이 담아 소중한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된 작은 생각이 3년의 치열한 연구와 실험을 거쳐 이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책의 실물을 보게 되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책이다.

 

 

우선 책 표지를 보면 12개의 작고 둥근 창들이 알록달록한 빛깔을 뽐내며 태양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은 창들이 모두 반투명 상태로 앞에서 보아도 책 뒷면까지 보이는 상태이다. 책을 뒤집어 보면 '해를 향해 책을 펼치면 아름다운 빛이 책에 담겨요'라는 문구가 있다. 책을 빛에 비추어 읽으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라니, 첫 번째 페이지를 펼쳐보기도 전에 기대감에 설레이는 기분이었다.

 

 

빛이 있어요.

첫새벽을 부르는.

 

첫 장을 넘기면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의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양한 색상의 빛들이 쌓이게 된다. 표지의 작고 둥근 창들에 있던 여러 색상들이 다채롭게 겹쳐지면서 책을 들어 배경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책을 펼쳐보고, 초록빛깔의 잔디를 배경으로도 들어보고, 알록달록한 꽃들을 배경으로도 책을 펼쳐보았다.

 

 

제목인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의미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빛이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드러나 보이는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드러나지 않아 다를 뿐이지 우리는 모두 각각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에런 베커의 <머나먼 여행>에서 모두들 너무 바쁘기만 해서 혼자 외롭고 심심했던 소녀가 방 한구석에서 마법의 펜을 발견하고, 그 펜으로 벽에 문을 그려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글이 없는 그림책이라서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각자의 판타지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그 작품처럼,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역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아트북이다. 그야말로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할 수 있는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낯선 아트북을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건지, 어떤 방법으로 활용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이리 저리 들여다 보면 어느 순간, 빛에도 다채로운 빛깔이 숨어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도 빛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빛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놀랍지 않은가. 나는 그 아이디어와 상상력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에런 베커의 그림책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면, 그의 새로운 시도인 이 아트북도 함께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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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길을 잃었어 I LOVE 그림책
조쉬 펑크 지음, 스티비 루이스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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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전체가 잠들어 있는 어느 새벽, 고요한 맨해튼의 도서관 앞에서 돌사자 용기가 잠에서 깨어난다. 용기는 짝꿍인 인내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인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내는 매일 밤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도서관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아침이 되기 전에 돌아오지 않은 적이 없었던 인내였기에 용기는 걱정이 된다. 그래서 한 번도 주춧돌 위의 자기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었던 용기였지만, 인내를 찾기 위해 도서관 안으로 뛰어 들어가게 된다.

크고 웅장한 도서관 안으로 처음 들어와 본 용기는 코끼리 열두 마리만큼 높은 천장과 물소 열 마리만큼 넓은 공간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진다. 용기는 도서관 내부를 이리 저리 구경하며 미로와도 같은 방들을 헤매고 다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방들을 지나가야 인내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용기는 모리스 센닥과 신시아 라일런트와 제인 욜런과 제리 핑크니와 주디 블룸의 책 사이를 지나다닌다. 그때 옆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과연 용기는 무사히 인내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뉴욕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자 세계 5대 도서관으로 꼽히는 뉴욕 맨해튼에 자리한뉴욕공공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림책의 주인공인 돌사자 '인내' '용기'는 실제로 5번가 입구의 뉴욕공공도서관 건물 앞을 지키고 있다.

도서관을 누비는 용기와 함께 우리는 애스터 홀, 로스 메인 열람실, 에드나 반스 살로몬 룸 등 뉴욕공공도서관 안의 여러 명소들을 실감나게 방문해볼 수 있다. 뉴욕공공도서관은 3개의 중앙 도서관과 크고 작은 80여 개의 지점 도서관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 그림책을 통해서 잠시나마 곳곳을 가볼 수 있어서 특별한 경험을 안겨 준다.

 

사실 뉴욕공공도서관은 여행을 간다면 필수 코스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맨해튼 한복판에 마치 궁궐처럼 버티고 서 있는 건물은 매우 웅장하고, 아름답기도 한 곳이니 말이다. 게다가 도서관 내에는 3 800만 점이 넘는 도서와 소장품들이 무려 120km에 달하는 책꽂이에 진열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첫 작품집, 제퍼슨의 독립 선언문 자필 원고 등 희귀본도 다수 소장하고 있는 곳이라 더욱 가치 있는 장소이다. 개인적으로는 넓은 천장과 아치형 창문이 중세의 성을 연상시키는 중후한 분위기의 3층 열람실에 있는 긴 테이블에서 책을 읽어 봤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었는데, 이 그림책을 통해서 잠시나마 뉴욕으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도 들었다.

도서관만큼 길을 잃기에 좋은 장소도 없을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도서관에 갔을 때 미로처럼 빼곡한 서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길을 잃고 헤매고 다녀야만 생각지도 못했던 책을 발견하는 깜짝 선물을 안겨주는 곳이기도 하다. 극중 용기와 인내처럼 아무도 없는 한밤의 도서관이라면 정말 멋질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고, 어른들이 읽기에도 너무 따뜻하고 매혹적인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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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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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기말 불꽃처럼 등장한 이들의 주요 무대는 어디였을까? 바로 살롱과 카페다. 빈이라는 도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커피라는 단어와 무척 밀접하게 느껴진다. 빈의 카페를 누비고 다녔던 수필가 알프레트 폴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카페란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동시에 옆자리에 벗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이처럼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살롱과 카페는 자유롭게 작품을 구상하고,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설파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p.53~54

사진작가인 아내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문갑식 기자,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매번 여행하는 곳과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찾아본다고 한다. , 소설, 그림, 조각, 음악 등 우리가 걸작이나 명작이라 부르는 작품을 한껏 감상하고 여행지로 떠나면, 단지 눈에 보이는 그 공간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카페 센트럴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프로이트, 폴가, 츠바이크, 로스가 한자리에 모여 열을 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유럽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위해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는 위대한 예술가 15인의 삶과 예술을 펼쳐놓으며, 그들이 살았던 생생한 삶의 현장까지 소개하고 있다. 클림트, 모차르트, 랭보, 단테…, 그리고 카사노바까지 흥미진진한뒷이야기로 만나는 예술가들의 맨얼굴을 만나 보자. 평범해 보이던 장소도 예술이라는안경을 쓰면 완전히 다르게 보이곤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의 진짜 직업을 둘러싼 논쟁 못지않게 재미있는 것이 존 르카레라는 이름이다. 그는 가명을 쓰는 스파이의 특성상 실명으로 책을 출판할 수 없었고, 상관이 책을 읽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가명으로 내더라도 인세를 받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는 고민 끝에 이런 방법을 썼다. 은행에 입금된 인세를 바로 찾지 않고, 예금액이 일정 액수에 도달하면 연락을 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가 되자, 마침내 은행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전화를 받은 이후 그는 기분 좋게 사표를 던졌다고 하니, 그야말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로망을 실현한 인물이라 하겠다.    p.268~269

개인적으로는 안개 자욱한 스파이와 판타지의 세계를 산책하는 '영국'편이 흥미로웠다. <나니아 연대기>를 탄생시킨 C.S.루이스의 옥스포드, 그리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존 르카레, <자칼의 날>의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런던이다. C.S.루이스와 J.R.R.톨킨이 돈독한 우정을 쌓았고, 서로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나니아 연대기>가 띠고 있는 기독교적인 색채에 대한 배경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하드보일드 작품들을 좋아하고 즐겨 읽었던 독자로서 존 르카레와 포사이드의 작품과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 또한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을 여행하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산책하듯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관찰하며 걷는 것,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곳곳을 살펴보고 그 곳에 숨겨진 이야기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산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보티첼리와 단테의 피렌체, 클림트의 빈, 랭보의 샤를빌 메지에르, 고흐의 생 레미 드 프로방스 등 곳곳에 남아 있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유럽이 가깝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도 들 것이다. 예술 기행 혹은 문학 기행이라고 해서 여행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는 인문학 서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한 곳에 앉아 있으면서도 우리는 책을 통해 세계를 여행한다. 이 책도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들을 통해 더 깊게 여행하는 방법, 더 감각적으로 산책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훌륭한 유럽 예술 여행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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