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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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 계획은 없다. 그렇다고 짧게 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그런 계획이라는 게 전혀 없다. 문제는 계획이 있든 없든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계획 따윈 무의미하다. 그러나 계획이 없다고 후회도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마스 룸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를 만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가 나를 스토킹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하지만 그는 마음먹었고, 그러고 나니 끈질겼다. 저 일들 중 어느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콘크리트 구덩이 속 인생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 타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p.26~27

 

마켓 스트리트의 마스 룸에서 스트립댄서로 일하는 스물아홉 싱글맘 로미는 자신을 몇 달 동안 스토킹한 남자의 머리를 타이어 공구로 내려쳤다. 남자는 죽었고, 체포된 그녀는 두 번의 종신형에 추가로 육 년을 선고 받는다. 약에 취해, 도서관 책들을 읽으며 보낸 몇 해를 후회하지 않았고, 옷을 벗어 버는 수입에 대해 전혀 나쁜 삶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스 룸에서 일했고, 그 남자를 만났던 것을 후회할 뿐이다. 로미가 체포되었을 때 다섯 살이던 잭슨은 어머니가 데려가 보살피기 시작했고, 그녀가 구치소에 있으면서 재판을 거치는 동안 아들은 일곱 살이 되었다.

 

 

로미가 사선변호인을 둘 만한 돈이 없었기에 국선변호인이 배정되었고, 그는 그녀를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로미를 미행하고 지켜보고, 그녀의 쓰레기를 뒤져 알아낸 번호로 서른 통씩 전화를 걸고, 곳곳에서 불쑥 나타나 괴롭혔지만 법정에선 그 무엇도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 검사는 남자의 과거 행적들이 사건 당일 밤에 급박한 위험을 야기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사를 설득했고, 배심원들에게는 스토킹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열두 명의 배심원들에게 알려진 것은 미심쩍은 도덕성을 지닌 젊은 여자가 강직한 시민을 죽였다는 사실뿐이었다. 결국 사건의 모든 정황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녀의 삶은 스탠빌 교도소로 향하게 된다.

 

 

그 모든 후회의 말들. 저들은 당신의 삶이 한 가지, 당신이 이미 저질러버린 그 한 가지를 중심으로 맴돌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그 되돌릴 수 없는 일로부터 스스로를 성장시켜야만 한다. 저들은 당신이 무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저들은, 당신 자신을 미워하게 만든다. 저들 자신이 곧 세상인 양 굴고, 당신이 그 세상을, 저들을 배반했다는 양 굴지만 세상은 그보다 훨씬 크다. 후회한다는 거짓말, 선로를 이탈한 삶이라는 거짓말. 무슨 선로. 삶이 곧 선로다. 삶 그 자체가 선로이고, 삶이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삶은 제 길을 끊기도 한다. 내 길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p.514~515

 

가상의 공간인 ‘스탠빌 여자 교도소’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여성 범죄자들의 사연들은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마약중독자인 부모 밑에서 자라 같은 처지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여자, 상습사기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은 흑인 성전환자, 친구들과 중국인 유학생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미성년자,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여자 등.. 이 작품은 그녀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작가인 레이철 쿠시너는 애초에 직업과 안정적인 주거와 적합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이들이 어떠한 종류의 자비도 허락 받지 못한 채로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삶을 살게 된 과정에 관심을 가진다. 소외와 학대의 피해자들이 결국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오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레이철 쿠시너는 범죄와 처벌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으로 캘리포니아 교정법제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교도소와 법원을 다니면서 어쩌면 가난과 폭력이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난의 문제에는 눈감으면서 폭력의 처벌에는 열을 올리는 국가?사회?제도의 모순에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 남자가 죽었다. 하지만 진짜 피해자는 죽은 남자가 아니라 그를 죽게 한 여자이다. 물론 세상은 그러한 진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교도소에 도착한 첫날, 삼십칠 년 뒤에나 있을 가석방 심의의 기회 마저 날려버린다. 임신한 채로 수감된 어린 여자애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출산하려는 걸 도와줬다는 이유로. 과연 로미는 교도소의 생존방식을 터득해가면서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레이철 쿠시너는 이 작품으로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주인공 로미의 사연에 집중하기 보다 교도소에 수감된 여자들의 다양한 삶에 대해 보여주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각자의 과거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고, 혹은 휘말리고 교도소에 오게 되었는지를 통해 캘리포니아 교정법제 전반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녀들의 범죄를 미화하거나, 동정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더욱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도,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희망도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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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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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생전 처음으로 그는 고독을 느꼈다. 밤에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방구석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램프의 불빛이 구석의 어둠에 맞서 너울거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둠이 빛 속으로 모여들어 그가 읽던 책에 나오는 상상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다. 그러면 자신이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거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한데 모이고, 죽은 자들이 그의 앞에 되살아났다. 그렇게 과거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 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환상을 보았다.    p.24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군청 직원의 권유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는 대학 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했지만, 모든 학생의 형식적인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 강의를 들으며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강의들처럼 부지런히 저자들의 이름과 작품 등을 모두 외웠음에도 첫 번째 시험에서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만나고는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 해 2학기에 스토너는 농과대 커리큘럽을 따르지 않고, 영문학 강의를 비롯해 다른 강의들을 듣기 시작하며 문학 쪽으로 공부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결국 스토너는 문학사 학위를 받게 되고 졸업식이 끝난 후에 부모에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더 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농과 대학에서 농사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배우고 돌아오길 바랬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대학에 들어 와서도 아무런 환상도 꿈도 없었던 그의 삶은 그렇게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친구들은 애국심에 도취해 입대를 자원했지만 스토너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이어 갔고, 전임 강사로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첫 눈에 반한 여인과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하지만, 한 달도 안 돼서 그들의 결혼이 실패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게 되지만, 분노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주어진 상황을 견뎌낸다. 아내가 친정에서 엄청난 돈을 빌려와 무리하게 집을 구입한 것이 경제적인 궁핍으로 연결이 되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가지게 된 자신만의 서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작은 행복을 느끼고, 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아내 대신 딸을 돌보는 일을 대부분 맡고 있었지만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소박한 기쁨으로 매일을 살아 낸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한 남자의 삶이 이어진다. 열아홉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고,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나게 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꾸민 끝에 서재가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p.140~141

 

이 작품은 1965년에 출간되었는데, 초판 2천 부가 팔리지 못하고 이듬해 절판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눈 밝은 독자들 사이에서 이 책이 돌아다녔고, 출간된 지 거의 50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국내에는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행됐을 때의 초판본 표지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번 에디션에서는 기존 판의 문장을 다듬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추천사 전문을 실었으며, 초판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을 완벽히 재현한 양장본이다. 초판본 표지 이미지는 스토너가 평생을 보낸 대학에 있는, 화재로 모든 게 스러지고 기둥만 남은 어느 건물을 보여 준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기둥만은 불쑥 솟아 있는 모습은 스토너가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난관을 극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옮긴이의 말)'인 스토너는 그저 계속 참고, 견디며 삶을 관조한다.

 

좋은 소설은 한 번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다르고, 처음 읽었을 때와 몇 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또 한 번 달라진다. 5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페이지 마다 새록새록 당시의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과거의 내 모습을 마주했다. 당시에 나는 실패하고, 절망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고독을 견뎌내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일종의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외로움을 덜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근원적으로는 외로운 존재이고, 감추고 닫아 두었던 속마음을 누군가 들어주는 것 같을 때, 내 안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해 받은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문학 작품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에는 평범한 주인공이 그의 앞에 나타난 장애물들을 헤치고, 역경을 극복하는 통쾌한 스토리도 없고, 묵직한 가르침을 주려는 현학적인 묘사도 없고,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전개도 전혀 없다. 그저 한 인물이 태어나고 자라서, 누군가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훌 넘겨 가며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에 그 여운이 한 동안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살면서 어떤 순간에든 다시 꺼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을 만나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이 지구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이 도시, 이 나라, 이 순간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스토너는 우리 각자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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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유가 있어서 멸종했습니다 - 고생대부터 현대까지 이유가 있어서 멸종했습니다
마루야마 다카시 지음, 사토 마사노리 외 그림, 허영은 옮김, 이마이즈미 다다아키 외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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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처음에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였다. 하지만 산소를 뿜어내서 바닷속에 산화철을 쌓고, 하늘에 오존층을 만들기도 하면서 나의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심지어 종류가 점점 늘어나더니 마침내 눈에 보일 만큼 커졌다. '아, 나는 얘네들과 함께 살아가겠구나...' 고생대에 접어들고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던 때, 이 녀석들이 서로 쫓고 쫓기며 잡아먹기 시작했다! 한쪽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을 하고, 다른 한쪽은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자신을 지키는 무한 반복의 생존 경쟁이 시작되었다.    p.22~23

 

이 책은 일본에서 80만 부 판매를 기록한 멸종 동물 도감으로 <이유가 있어서 멸종했습니다>의 후속 작이다. 전작에 이어 이번 책에서는 고생대부터 현대까지 멸종한 동물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멸종한 동물 50종, 멸종하는 줄 알았는데 멸종하지 않은 생물과 이유가 있어서 번성한 생물 18종, 그렇게 68종의 생물들이 자신의 사연을 직접 이야기한다. 멸종과 진화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기존에도 있어 왔지만, 각 동물들이 직접 자신의 멸종 사유를 들려주는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진행되는 책은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아이들이 이 책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구나 싶었다.

 

 

몸이 둥글둥글해서 멸종한 코틸로린쿠스, 허물벗기가 번거로워서 멸종한 마조타이로스, 오줌을 너무 많이 싸서 멸종한 파솔라수쿠스, 걸음이 느려서 멸종한 헤노두스, 등딱지가 없어서 멸종한 오돈토켈리스, 강해보이는데 약해서 멸종한 아르케론, 몸이 너무 길어서 멸종한 바실로사우루스, 소금에 중독되어서 멸종한 프로콥토돈, 숨어서 기다리다가 멸종한 틸라콜레오 등등... 내용만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황당하다가 웃기기도 한 흥미진진한 멸종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사람이 손을 대면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탈바꿈되었다. 당연히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던 생물들은 갑자기 터전을 빼앗긴 셈이 되었고, 점점 멸종으로 내몰렸다. 의아한 점은 멸종하는 생물을 보고 가장 크게 소란을 떠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 정말이지 이상한 생물이다. 하지만 어떤 생물이든 언젠가는 멸종한다. 사람은 환경을 바꾼 대가로 자기 무덤을 판 꼴로 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p.112~!13

 

지구에 생명이 태어난 뒤로 약 40억 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지구에 태어난 셀 수 없을 정도로 만은 생물 중에 99.9%가 멸종했다. 멸종의 가장 큰 이유는 환경 변화인데,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쪽은 진화해서 살아남게 되고, 옛 환경에 적응한 쪽은 멸종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순으로 구성된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멸종과 진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진화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유머러스한 일러스트들과 각 동물들의 말투가 사연의 내용과는 별개로 귀엽고, 장난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각각의 페이지 안에는 중요한 기본 정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동물마다 멸종 시기, 분류, 크기, 서식지, 먹이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어 있고, 서식 연대를 표와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동물의 생태나 멸종 이유에 대한 해설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멸종 동물 대형 포스터가 들어 있는데, 앞면에는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멸종 동물이 총출동되어 있고, 뒷면에는 난이도 상의 생존 체험 미로 찾기가 수록되어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앞으로도 지구의 역사가 계속되는 수십억 년 동안 멸종과 진화는 계속될 것이다. 인간들에 의해 바뀐 환경 때문에 지금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도 있으니, 이런 책을 읽으면서 진화와 멸종에 대해, 지구상의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이 책에는 사람이 멸종시키거나 멸종 직전까지 내몰린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있어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흥미로운 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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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퓨즈드 워터 - 과일, 채소, 허브로 만드는 에너지 음료 50
조지나 데이비스 지음, 정연주 옮김 / 테이스트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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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계절만큼 물을 많이 마시는 시기도 없을 것이다. 날씨도 덥고, 땀도 많이 흘리고, 체력도 떨어지는 계절이라 수분 보충은 필수이다. 하지만 생수를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경우, 자주 안 마시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보리차나 결명자 등을 끓여서 식힌 다음에 차게 두고 먹게 되는데, 특히나 여름에는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냥 시원한 물을 좀 맛있게 먹을 수 없을까, 고민이라면 여기, 아주 특별한 '물 레시피'가 있다.

 

인퓨즈드 워터(Infused Water)란 과일, 채소, 허브 등을 넣어 우려낸 물을 말한다. 밍밍한 물에 맛과 향을 더해주고, 예쁜 색채와 화려한 비주얼은 덤이다. 보통 레스토랑에 가면 레몬이나 라임을 넣은 물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특별한 도구 없이 간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과일의 신선함과 허브의 풍미가 가득한, 색다른 물 레시피를 50가지 소개하고 있다. 인퓨즈드 워터는 설탕이나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아서 칼로리 걱정도 없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되어 다이어트 워터, 디톡스 워터로도 불린다.

 

꼭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하루에 2L이상의 물을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그냥 물을 그렇게 마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 대신 알콜이나 카페인, 설탕 등이 들어가 있는 음료를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물 한 잔이 이런 음료들이 줄 수 있는 미각적인 면이나, 시각적인 면에서 만족을 준다면 어떨까.

 

 

만드는 방법도 정말 간단하다. 그저 차가운 물이나 뜨거운 물 1잔에 과일, 채소, 허브, 향신료를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단, 가능하면 과일과 채소, 허브는 신선하고 좋은 품질의 재료로, 깨끗하게 세척한 뒤 사용하면 된다. 탄산수나 찬물을 사용할 경우 냉장고에서 2시간 이상 우리면 되고, 따뜻하게 할 경우에는 끓는 물을 붓고 5~10분 정도 우리면 된다.

 

50가지 음료 레시피는 몸의 원기 회복과 진정에 도움이 되는 인퓨즈드 워터, 상큼한 감귤류와 열대 과일에 더해져 에너지 충전에 좋은 인퓨즈드 워터, 펜넬시드나 카다몸 등 따스한 기운이 강한 재료로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인퓨즈드 워터로 구분되어 있다. 재료별로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필요에 따라 간단하고 맛있게 수분을 섭취해보면 좋을 것 같다.

 

 

사과는 과당 함량이 낮고 비타민이 풍부해서 인퓨즈드 워터에 사용하기 딱 좋다. 레몬은 소화를 돕고 호흡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며, 파인애플은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감기 예방에 도움을 준다. 레몬밤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완화시키고, 바질은 항염증  작용을 하며 간 건강에 도움을 준다. 시나몬은 혈당 수치를 낮춰주고, 팔각은 기침과 인후통을 개선시켜준다. 그 외에도 각각의 재료가 가지고 있는 효과가 별도로 정리되어 있어서 활용하기에 좋다.

 

만들어진 인퓨즈드 워터는 손님 초대에 내어 놓으면 근사한 음료가 되고, 자기 전에 따뜻하게 마시면 숙면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텀블러나 보온병에 넣어 야외에서 활동 시 수분 보충에도 좋고, 피부 개선과 디톡스에도 효과적이니 데일리 워터로 딱 좋다. 과일, 채소, 허브로 간단하게 만드는 물 한 반의 근사한 변신! 내일 당장 시도해 보자. 에너지를 보충하고 싶을 때, 피로를 풀고 싶을 때, 활력을 되찾고 싶을 때.. 인퓨즈드 워터가 내 몸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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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기차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67
욘나 비옌세나 지음, 정경임 옮김 / 지양어린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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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동물 친구들은 목요일마다 지하철 사랑 모임을 하곤 했다. 그런데 부엉이가 어두운 얼굴로 '유령 기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옛날에 어떤 기관사가 선로를 제때 바꾸지 못해서 기차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는 거였다.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고 유령이 되었는데, 그 후로 아무도 그 기차에서 내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개미와 비버 등 동물 친구들은 다시는 지하철을 타지 않겠다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토끼는 시간이 늦어 엄마에게 혼날 것이 더 싫어서, 빨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게 된다. 과연 토끼는 무사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유령 기차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스웨덴의 작가 욘나 비엔세나가 지은 토끼 가족 연작 시리즈 중의 하나로 스웨덴의 권위 있는 어린이 문학상인 부크유린상을 수상했다. 한쪽 눈알이 톡 튀어나와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유령부터 온갖 종류의 유령들이 등장하며 무더운 여름밤을 오싹하게 만들어 주는 동화책이었다.

 

우연히 유령 기차에 타게 된 토끼는 다양한 모습을 한 유령들이 너무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그들을 도와주기로 한다. 바로 걸핏하면 화를 내는 무서운 기관사를 만나 기차를 세우도록 하는 거였다. 그리고 100년 전 기차가 맨 처음 낭떠러지로 다가갔을 때, 왜 사고가 나게 되었는지 그 저주의 시작을 마주하게 된다.

 

 

이상하게 아이들은 무서운 이야기, 귀신이나 유령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어린 시절에 공포물들을 일부러 찾아 다니면서 봤던 기억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령들은 끔찍하거나 무섭기보다는 유머스럽게 그려져 있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책이었다. 물론 어른의 시선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서 스토리 자체는 오싹하고, 서늘한 공포를 자아내고 있었지만, 보여지는 그림들의 모습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령의 모습들도 이럴 것이다. 무섭기도 하지만 사랑스럽고, 오싹한 이야기이지만 유머러스하고 말이다. 무더운 여름에 읽기에 딱 좋은 그림책이 아니었나 싶다. 자, 용감한 토끼와 함께 등골이 오싹해지는 유령 기차를 타고, 당당하게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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