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자답 : 나의 일 년 (LIGHT VER.)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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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신이 앉아있는 자리 맞은편에 당신과 똑같은 모습의 자신이 앉아있고, 마치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편안하게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p.14

 

지난 일 년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다가올 일 년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셀프 코칭 라이팅북이다. 지난 겨울 출간되었던 <나의 일 년>, 이번에는 지난 일 년을 돌아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질문들만을 모은 ‘라이트 버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책은 [ 준비하기 ] 가볍게 나에게 말을 걸며 시작해볼까요? [ 지난 일 년 ] 나의 올해는 어땠나요? [ 다가올 일 년 ] 나의 내년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새로운 버전을 출간하며 다시 한 번 고른 핵심 인생 질문이 담겨 있다. 지난 일 년을 보내며 겪은 경험과 추억하고 싶은 기억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느꼈던 지난 일 년 동안의 대표 감정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방향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경험들은 삶 속에서 작은 점들로 연결되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당신의 점들은 어디를 향해 있나요?    p.84

 

라이트 버전이라는 문구만큼 긴 시간을 내야 하는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지난 일 년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2010년부터 시작한 ‘일 년 그룹 코칭 프로그램’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압축하여 라이트 버전용 질문을 재구성했다고 한다. 올해를 생각하면, 어떤 경험들이 떠오르나요? 나의 올해를 표현해주는 대표 감정은 무엇인가요? 일 년을 보낸 나 자신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요? 늘 '해야지'라고 말만 하고 미뤘던 일들 중 새해에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다가오는 새해의 첫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나요? 등등 다양한 질문들이 수록되어 있어 자유롭게 원하는 질문을 골라 답을 써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것은 저자의 ‘음성 안내 가이드’ QR 코드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총 4개의 QR 코드를 통해 홍성향 라이프 코치의 목소리로 1:1 코칭을 받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올해 초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도 이제 한 달여 남았으니, 과연 나는 한 해 동안 얼마나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한 해 동안 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들,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로 맞이할 일년 동안에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 세우는 시간이다.

 

일 년은 365개의 경험 조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퍼즐과도 같다. 눈뜨자마자 정신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수많은 하루하루가 쌓여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매일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종종 잊어 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 사소한 일상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나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우리는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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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 실험실을 나온 괴짜 교수의 기발한 심리학 뒤집기, 개정판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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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은 계속 높아만 간다. 그래서 짝사랑은 종종 파국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거절한 여성을 납치한 한 남성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토로했다.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존 심리학으로는 이와 같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가정 원칙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p.81

 

유튜브 200만 구독자, 4억 뷰 조회로 ‘지구에서 가장 핫한 심리학자’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리처드 와이즈의 <괴짜 심리학> 후속작이다. 국내에는 <립잇업>으로 이전에 출간되었었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 옷을 갈아 입고 나왔다. 원제인 'rip it up'은 뜯어내거나 찢어버린다는 뜻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도록 요구할 때 쓰이기도 하는 강한 표현이다. 실제로 서문부터 '이 책을 한번 찢어보라'는 괴상한 과제를 내주며 시작하고 있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리처드 와이즈면의 책들이 특별한 이유는 심리학자이면서도 '심리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심리 실험에는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그 과정과 결과가 150여 개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지에 소개되었다. 프로이트의 '심리' 대신 제임스의 '행동'에 주목한 괴짜 심리학자의 강력한 변화 프로젝트가 이 책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다양한 심리 실험 등에 대한 실제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이론적인 이야기들은 실제 현실에서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 직접 행동으로 옮겨볼 수 있는 삶의 기술들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까? '성격이 행동을 만든다'라는 기존 이론에 따른다면, 자신에 대한 인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형성되기 때문에 새 셔츠를 입거나 새 신발을 신는 것처럼 일시적인 변화로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가정 원칙은 특정한 유형의 사람인 것처럼 옷을 입는 시도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p.261

 

'느끼는 것처럼' 행동할 때 뇌가 반응한다는 실험 결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특정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감정 상태뿐만 아니라 몸에도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하니 놀라웠다. 매일 몇 초 동안 웃음을 짓는 방법을 통해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를 실천하도록 한 결과, 웃는 표정을 짓는 방법을 실천한 그룹의 행복감이 더 많이 상승했다고 한다. 완전히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마치 연인인 것처럼 상대에게 장난을 치게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호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한 실험도 있었고, 흡연자들을 대상으로 실제 의료 장비를 설치해두고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폐암 진단을 받게 하고 정말로 담배를 끊은 것처럼 행동을 바꾸어 보도록 한 실험 결과도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 심리학과 다이어트와의 연관 관계, 자존감을 조종하는 기술 등 실생활에서 바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들을 찾아 읽을 것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먼저 행동을 바꾸라'고 말한다. 습관은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태어나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백 번 해도 소용없는 결심은 이제 그만두고, 뭔가 다른 것을 해보자는 것이다. 저자가 보여준 다양한 심리 실험의 결과는 ‘척’하는 행동 하나가 극적인 결과를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무언가를 원한다면,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제 인간 심리에 대한 케케묵은 생각을 버리고, 저자가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보자. 좀처럼 고칠 수 없었던 나쁜 습관, 10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던 집중력, 중요할 때마다 사라지는 자신감, 그리고 마음처럼 안 되는 분노와 우울증 모두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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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톰의 발라드
빅터 라발 지음, 이동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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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먹고, 식사가 끝나자 빅토리아 소사이어티를 나섰다. 건물의 계단을 내려오자 다시 할렘에 와 있었다. 사흘 뒤면 토미는 로버트 수댐의 저택을 방문하게 될 터였다. 이제 그 방문이 다른 우주로 건너가는 여행처럼 여겨졌다.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들이 그렇게 멀리 가 버리려고 하니까.    p.47

 

할렘에 있는 다세대주택에서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찰스 토머스 테스터, 항상 기타 케이스를 들고 다니는 그를 길거리에서는 '토미'라고 불렀다. 사실 기타 연주자 토미에게 음악적인 재능은 없었다. 스무 살의 실력 없는 연주자였기에 연주보다는 도시 구석구석을 돌며 잡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토미는 특별 의뢰를 받고 온통 백인들로 둘러싸인 퀸스로 가서 작은 노란 책을 배달하고 200달러를 받는다. 그 돈이면 여섯 달 치 집세와 공과금, 식비 등을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미에게 로버트 수댐이라는 부유한 노인이 다가온다. 그는 사흘 뒤 레드 훅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열 생각인데, 와서 연주를 해주면 5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계약금으로 100달러를 건네준다.

 

토미는 안전한 할렘을 벗어나 망토처럼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거쳐 특정할 수 없는 세월의 공팡내가 배어 있는 수댐의 집으로 간다. 내일 밤 파티를 위해 연주를 하는 토미에게 수댐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어느 무시무시한 전설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며, 토미를 고용한 이유는 그가 환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대양의 해저에는 왕이 잠들어 계시고, 잠든 왕이 귀환하게 되면 인류의 어리석음을 싹 쓸어 버릴 거라고. 그러면 흑인, 혼혈인 들의 차별에 대한 비참함이 끝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려 수면이 일렁이는 느낌을 보여주고, 대양이 출렁이고 솟구치는 심해의 광경을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그렇게 토미는 이상한 경험을 하며 수댐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오며 이제 할렘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후한 보수 때문에 수댐의 집을 다시 찾게 된다. 그날 밤, 파티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토미는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나는 가슴속에 지옥을 품고 다녔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해 버린 다음 앉아 파괴된 모습을 즐기고 싶었지."
"그럼 넌 괴물이야."
"너희들의 손으로 만들어 낸 괴물이지."     p.159

 

이 작품의 서두에는 '엇갈리는 심경으로 H.P. 러브크래프트에게 바친다'라는 문구가 있다. 빅터 라발은 공포 소설의 거장 러브크래프트의 문제작 <레드 훅의 공포>를 파격적으로 재해석해서 이 놀라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로 대표되는 독특한 신화적 세계관을 창조하여 오늘날까지도 굳건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가이지만, 인종차별주의자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악명 높은 단편 <레드 훅의 공포>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빅터 라발이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쓴 것이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독립적이고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레드 훅의 공포>는 말론이라는 백인 형사가 이민자들이 부글거리는 동네에서 사건을 수사하다가 고대 종교의 의식을 목격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도 '지저분한 혼혈인들'이라든지 '죄악으로 물든 가무잡잡한 얼굴들', 또는 '아시아의 원숭이들'이라는 식으로인종차별적인 묘사가 난무한다. 빅터 라발은 <블랙 톰의 발라드>를 흑인 주인공 토미를 중심으로 다시 쓰는 방법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에 도전하고 있다. 극중 토미에게 접근해 연주를 부탁한 로버트 수댐과 토미를 미행하고 위협했던 말론 형사는 <레드 훅의 공포>에 등장했던 주요 캐릭터들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올해 초에 출간된 <엿보는 자들의 밤>이라는 작품으로 빅터 라발을 처음 만났는데, 그의 매력에 푹 빠져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터라 이번 작품은 굉장히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러브크래프트를 읽었든, 혹은 읽지 않았든 지 간에 <블랙 톰의 발라드>는 대단히 매혹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문화와 밀교에 비상한 관심을 품고 있는 노학자, 그리고 그의 저택에서 초월적인 공포를 마주하게 되는 형사와 수댐에게 이끌려 악마 소환 의식을 돕게 되는 흑인 청년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준다. 사실 피가 난무하는 공포보다 이런 식으로 기괴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계속 잔상으로 무서움을 남기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공포와 환상이란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민자가 몰려들던 1920년대 뉴욕에서 무장 경찰과 마법이 혼재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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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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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아름다움은 권력의 풍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무척 딜레마다. 지금은 밤이 되면 그 성에 환하게 조명을 밝혀 인상적인 야경을 연출하고 있으나, 환한 성을 볼 때마다 나는 카프카의 <성>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카프카가 상징적으로 묘사했듯이, 도시에서 권력이 펼치는 풍경은 압도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p.75

 

<김어준의 뉴스공장>, <알쓸신잡>에서 만났던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도시 3부작 첫 번째 책이다. '도시란 모쪼록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쓴 책들로,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신간이고, 나머지 시리즈 두 번째 ,세 번재 책은 2003년에 나온 <우리 도시 예찬>과 2009년 출간된 <도시 읽는 CEO>를 각 개정판으로 출간해 시리즈로 함께 묶었다. 20년에 걸쳐 완성된 '도시 3부작'이라 세 권의 책을 함께 읽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수많은 다양한 인간과 욕망으로 가득한 공간인 도시, 그렇지만 너무 크고 또 복잡해서 한눈에 포착하기에는 어렵고 낯설다. 저자는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 예찬, 대비, 스토리텔링, 디코딩, 욕망, 부패에의 유혹, 현상과 구조, 돈과 표, 돌연변이와 진화라는 12가지 도시적 콘센트를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일하고 거닐고 노니는 우리의 공간에서 도시적 삶의 가능성을 탐색 해보자.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스토리이며,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 속의 공간에 대하여 자기만의 이야기를 할수록 우리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우리는 많은 공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도할 수 있다. 이야기할 단서들이 아주 풍부한 공간도 있고, 이야기가 될만하다고 보이지 않는 공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사람의 상상력과 칭의력이 작동한다. 누가 어떤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는 일종의 사건이다.   p.176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란 복합적인 실체라서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생활, 정치, 심리, 산업, 지리, 환경, 공간, 건축, 기술, 도시계획 등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다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저자에 따르면 '도시적 삶'이라는 측면에서 정의해본다면 '도시란 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공간'이다. 이렇게 도시의 근본 조건인 '익명성'과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 '길'과 길의 한 부분으로서의 '광장'이 만날 때에 매우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광장은 도시의 익명성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공간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혁명, 또는 집회라는 이름으로건, 혹은 '축제'라는 이름으로건 간에 열린 공간에서 같이 할 때 우러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익명성 속에서 오히려 도시의 무한한 자유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부족 사회나 신분제 사회와는 달리, 도시적 삶 에서는 서로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정의롭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긍정적인 시선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외에도 우리의 현대사에서 그리 순탄치 않았던 권력 공간의 생성을 비롯해, 영화감독들이 우리 나라의 이곳저곳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잘 담아내어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도 흥미로웠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부산의 40계단과 달동네의 미로와 같은 골목, <박쥐>에서 일본풍과 근대풍과 전통 한복집의 혼성적 공간이 풍기는 기묘한 세계, <플란다스의 개>에서 고층 아파트 단지의 외피가 품고 있는 공간들 등등... 영화적 상상력 속에서 우리의 도시 공간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들은 나 역시 관객 입장에서, 그리고 도시에 사는 시민으로서 공감하는 부분들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도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도시에서 태어났고, 여전히 도시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과 낯설게 느껴졌던 도시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도시라는 무대에서 인간이 펼치는 드라마를 보고 즐기고 또 의미를 찾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도시는 영원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도시 이야기는 영원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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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에스더 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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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라도 모든 것을 내가 짊어져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
내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면, 내가 손을 놓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요. 내가 없이는 모든 게 무너질 거라 생각했지만 인생은 계속됩니다.    p.83

 

일러스트레이터 에스더 김은 LA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10대를 보낸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러한 다문화적 성장 배경으로 작가는 세 도시의 어느 한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완벽한 한국인도, 그렇다고 완벽한 미국인도 되지 못했던 정체성에서 오는 외로움을 담아 한쪽을 향해 있는 큰 귀와 글썽이는 눈망울이 특징인 폭신한 토끼 '에스더버니'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에스더버니의 첫 그림에세이이다.

 

 

이 책에는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패션과 문화에 열정적인 리본버니, 감성적이고 사려 깊으며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로즈버니, 워커홀릭에 스스로에게 부정적이고 엄격한 옐로우버니, 작은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라벤더버니, 조용하고 생각이 깊으며 소녀다운 취미를 가지고 있는 크림버니까지.. 겉모습도, 성격도 너무 다르지만 각각의 버니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버니들이 모두 나라는 것을 깨닫고 다양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즐기기로 했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남자친구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사람이 엄마에게는 투덜대고 소리만 질러대는 딸일 수 있고, 직장에서는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가까이 가기에 먼 인상을 주던 사람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비행기에 타면 항상 승무원들이 말하죠.
비상시 산소마스크는 자신이 먼저 쓰고 다른 사람이 쓰는 것을 도우라고요.
나를 사랑하는 것도 똑같아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사랑해줘요.    p.211

 

리본버니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쇼핑 테라피를 하고는 한다. 예쁜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뭔지 아마 대부분의 여성 독자들이 알 것이다. 옐로우버니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늘 행복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일이 너무 많아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시간이 전혀 없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운 좋은 일인지 스스로 상기하고 있다.

 

늘 상대방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치장해둔 꽃 뒤에 살그머니 숨어 있는 로즈버니는 누군가 숨어 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싫어할까봐 두려워한다. 사실 모든 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타인의 시선은 보다는 나 자신에게 더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라벤더버니는 잘한 일이 있을 때는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기운내라고 응원을 해준다. 그리고 항상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이라는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는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폭신폭신 솜사탕 토끼 ‘에스더버니’의 여러 모습을 색상으로 구분해 다채롭게 담고 있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들이 너무도 달콤하게 가득 담겨있어 참 사랑스럽고, 예쁜 책이다. 섬세한 소녀스러움이 묻어나는 솜사탕 토끼 에스더버니를 통해서,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언제나 내가 ‘나’를 잃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 보자. 나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하고,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살 수 있는 용기를 안겨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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