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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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볼 때면 가끔 실소가 터져 나온다. 지붕을 타넘고 글록 권총으로 묘기를 부리는 CIA 요원들을 볼 때마다 말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면서 그런 추격전을 벌이다니. 정체가 발각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요원 생활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CIA 요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걷고, 운전할 때는 노란불에 멈춰 서고, 오가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해 상대가 하품이 날 만큼 지루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상대가 잠잠해지면 그때 슬그머니 빠져나가 007 임무를 개시하는 것이다.     p.8~9

 

이 책의 저자인 아마릴리스 폭스는 전 CIA 비밀요원이자 당시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이었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테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22살에 CIA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 후 가장 위험하지만 모두가 선망하던 최정예 비밀작전에 투입되어, 수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6개국의 테러집단을 추적했다. 이 책은 바로 그 CIA 최연소 여성 비밀요원의 영화보다 더 놀랍고 매혹적인 삶을 담고 있다.

 

 

아마릴리스 폭스는 중국 상하이부터 파키스탄 카라치까지 세계 곳곳에 잠입해 10년간 예술품 사업가라는 위장된 신분으로 살았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다국적기업에 컨설턴트로 취직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엄마를 포함한 가족, 친구들 모두가 그랬다. 그녀의 삶은 오직 테러를 막기 위한 포섭과 잠입, 협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새로운 위장 신분이 견고해질수록 그녀는 현실 세계가 점점 더 멀어져간다고 느낀다. CIA 요원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건 무기가 아니라 위장 신분이었고, 그들이 얻고자 하는 건 상대의 목숨이 아니라 신뢰였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CIA 요원들도 물론 있었고 말이다.

 

 

새로운 위장 신분이 견고해질수록, 현실은 거기에 가려졌고 점점 더 멀어져갔다. 나는 이 신분으로 첫 번째 여행을 다녀오고, 두 번째 여행까지 무사히 마쳤다. 처음에는 착륙 후에 세관에서 심문받을 게 두려워 비행 중에 세부 정보를 강박적으로 암기했다. 하지만 새 신발에 길이 드는 것처럼, 얼마 안 가 자연스러워졌다. 현실 세계는 내게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앤서니와의 결혼은 무효화되었고, 관련 서류는 뜯지도 않은 채 부엌 식탁에 방치되었다.     p.199~200

 

아주 평범했던 화요일 아침에 3천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는 파괴적인 행위가 바로 테러이다. 그리고 아마릴리스 폭스는 바로 그러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사용한다. CIA 요원들은 자신들이 막아낸 재앙의 규모로,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평가한다. 수백 가지 재앙 속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인생은 어떤 걸까 궁금했다면 이 책이 그 답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알던 스파이, 혹은 CIA 요원들의 모습이란 영화 속에서 등장하며 어느 정도 과대 포장되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 보여지는 CIA 요원의 삶은 매우 디테일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 놀라웠다. 워싱턴포스트가 "CIA 요원들의 회고록 중에서도 가장 디테일하고 풍성하다!"라고 평가했을 만큼 말이다. 반면  CIA에서는 지나친 정보 누설을 우려하며 끝까지 이 책의 출간을 막으려고 했다고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이런 것까지 다 공개해도 되나 싶은 부분들이 꽤 있었다. 그만큼 그 어떤 영화나 첩보소설에서보다 리얼한, 진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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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아파트 고스트볼 더블X 6개의 예언 찾아라! 숨은그림찾기 사전 - 초등 입학준비 신비 호기심 쑥쑥 8
정주연 그림 / 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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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호기심 쑥쑥 그림 사전 시리즈가 벌써 여덟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그 동안 한자, 국기, 수수께끼, 속담, 틀린그림찾기, 미로찾기, 영어 사전 편으로 출간되었다. <신비아파트> 친구들과 함께 영어 단어를 공부할 수 있는 영어 사전을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봤는데, 이번에는 그림 속 숨은 그림 찾기 편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신비아파트의 주인공들을 비롯해서 함께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총 출동해서 재미와 함께 친근함을 준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 책은 여러 번 보다 보면 구겨지거나 찢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아담한 판형의 양장인데다 무겁지 않고, 내지도 얇은 종이가 아니라 매우 튼튼하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것도 놀이처럼 하는 경우가 많아 책을 좀 험하게 다루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이 시리즈는 장점이 뚜렷하다. 그리고 각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해서 아이들이 혼자 보기에도 안전한 책이라 더욱 좋다.

 

 

단순한 숨은 그림 찾기가 아니라 초등 저학년 교과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퀴즈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초등 입학 준비에도 딱 좋다.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3교시 바른 생활, 4교시 슬기로운 생활, 5교시 즐거운 생활로 구성이 되어 있다. 퀴즈들의 방식도 다양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초성 퀴즈, 번호 퀴즈, OX 퀴즈 등으로 진행되며, 퀴즈를 풀기 위한 도움말도 팁으로 같은 페이지에 있다. 그리고 매 페이지마다 그림 속 숨은 그림 찾기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장 끝에 질문을 나타내는 부호는? 동화 중에서 읽을 수 없는 동화는? 20은 스물, 30은 서른, 40은? 123에서 가장 큰 자리의 수는? 엄마의 자매를 부르는 말은? 우리나라와 북한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봄이면 떠오르는 날씨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글자는 모양이 다르다? 단 음식을 많이 먹고 이가 상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수도는?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선물하는 꽃은? 등등 교과 내용을 바탕으로 한 퀴즈들은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넌센스 퀴즈들은 재미와 작은 상식을 더해준다. 그 외에도 미로 찾기와 색칠 놀이, 틀린 그림 찾기 등 5가지 놀이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아이와 함께 읽기 전에 책에 어떤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는지 훑어 보았는데, 요즘 초등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을 깨닫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의 수준에 맞춰 한글이며 수학이며 공부들을 시키고,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매번 가르쳐 주고는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초등 학교에 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감이 안 잡혔었다. 이 책에 수록된 교과 퀴즈가 113개나 되어 여기 있는 내용들만 제대로 숙지해도 전반적인 상식들을 갖춘 상태로 초등 학교에 입학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초등 입학 준비를 공부처럼 하는 게 아니라, 놀이와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말이다. 초성 퀴즈라는 형식 자체를 아이가 처음 접하는 거라 조금 낯설어 하긴 했지만,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 지지 않을까 싶다. 자, 아이가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신비 아파트 캐릭터들과 함께 미리미리 준비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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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미생물 - 우리 몸을 살리는 마이크로바이옴과 발효의 비밀
캐서린 하먼 커리지 지음, 신유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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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이 젓가락을 떠난 뒤에 겪는 일련의 과정은 듣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치 잘 짜인 소설을 읽는 것처럼 놀랍고 또 매 순간이 굴곡과 변화로 가득하다. 우리가 먹은 저녁 식사는 대략 총 9m 길이의 코스를 수십 시간 내에 이동한다. 그 과정 내내 장은 신경,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면역 체계를 통해 몸의 나머지 부분과 소통한다. 근육은 수축하고 꿀렁거리고 이완하며 음식물을 이동시킨다. 사람들은 소화관이 매우 내부적이고 사적인 기관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소화관은 바깥세상으로 활짝 열려있다. 외부 물질(아마도 음식)이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p.52~53

 

수많은 균류, 박테리아, 바이러스, 고세균 등의 작은 미생물들은 인류가 나타나기 수십억 년 전부터 이 행성에 존재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미생물 군중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만약 미생물이 없었다면 면역 체계는 제 기능을 잃고 음식물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얻는 일도 어려울 것이며 인체의 내, 외부 전체가 병원균을 위한 드넒은 기회의 땅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체내 미생물과 전쟁을 시작했다. 무분별한 항생제 복용이나 실내 배관 설치 등은 몇 세대 만에 고대 미생물 군집을 뒤집어놓았고, 인류의 음식 문화 역시 체내 미생물의 조성을 바꾸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은 체중 감량의 지름길이나 건강을 위한 기적의 치료법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체와 체내 미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 인간들이 찾아냈던 수많은 방법들을 살짝 맛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치즈, 요거트, 김치, 낫토, 사우어크라우트, 콤부차, 올리브, 코코아 등 우리의 장내 미생물을 먹이는 전 세계의 대표 전통 음식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매우 누구라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미생물이 어떤 존재인지에서부터 그러한 미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음식, 그로 인해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몸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 '이건 먹어도 괜찮아, 이건 상했어'라고 딱 잘라 분류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살균 기술과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음식에 무언가가 살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고 따라서 그 음식은 상한 것이라는 생각이 기정사실화 됐죠.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식의 시선이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녀가 설명했다. "저는 가끔씩 사람들에게 '당신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구매한 거예요'라고 말해요. 발효 음식은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하니까요."     p.322

 

수많은 연구들이 밝혀낸 건강과 장수의 비밀은 결국 전통 식단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며, 고기는 적당량만 먹고, 발효 음식으로 맛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먹는 식단에 이러한 음식들을 꾸준히 포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 과학계를 들썩이게 하는 키워드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하는데, 우리 몸 안의 미생물 생태계를 말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건강한 미생물이 우리의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만, 자폐, 알레르기, 우울증 등까지 치료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하니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너무 낯선 분야라 어렵고 딱딱한 내용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술술 읽혀서 깜짝 놀랐고, 무엇보다 미생물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캐서린 하먼 커리지는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미생물의 세계'를 일상에서 늘 접하고 친숙한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과학계의 화두인 마이크로바이옴을 소개하고, 미생물 연구의 최전선에 선 학자들과 미생물이 풍부한 세계 곳곳의 발효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대표적인 발효 식품인 요거트와 라씨, 치즈를 이용한 전채 요리인 수프 드 샬레, 그리고 피클, 사우어크라우트, 김치, 낫토 등의 레시피까지 수록하고 있어 누구라도 발효 식품을 직접 만들어, 먹어볼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저자는 경동시장에서 김치에 대해 논하고, 스위스의 수백 년 된 치즈 동굴을 방문하며, 홍어만큼 지독하다는 그린란드의 발효 생선을 소개하고, 새로운 트렌드가 된 발효 식품 콤부차도 빼놓지 않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미생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이를 풍부하게 함유하는 발효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몸을 살리는 마이크로바이옴과 발효의 비밀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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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게 일합니다 -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7가지 정리 습관
곤도 마리에.스콧 소넨샤인 지음, 이미정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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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역시 정리할 때는 모두 한곳에 모아놓고 시작한다. 그냥 책장에 꽂은 채 제목을 훑어보면서 남길 책을 고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제발 그러지 말길 바란다. 책장에 너무 오랫동안 묵혀뒀던 책은 배경의 일부가 되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는 당신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책이 무엇인지 고르기도 어렵다. 한 권 한 권 꺼내 손에 쥐어봐야 독립적인 개체로 보인다. 아무리 봐도 뭐가 설레는 책인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이 책을 언제 샀지? 몇 번이나 읽었지? 다시 읽고 싶은 건가?    p.70~71

 

세계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와 미국 500대 기업의 생산성 멘토 스콧 소넨샤인이 만났다. ‘곤마리하다(to konmari)’가 ‘정리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로 사전에 등재되었을 정도로 곤도 마리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리의 여왕’이다. 곤마리 열풍을 몰고 온 <정리의 힘>은 전 세계 1,200만 독자의 삶을 바꾸어 주었고,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그녀의 모토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였고, 물건만 남기고 버리는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까지 파악하게 된다는 거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곤마리 정리법의 핵심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업무 공간 정리법으로 돌아왔다. 업무 공간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도 정리를 통해 일과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집 정리로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업무 공간을 정리하면서 직장에서도 더욱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공동 집필자인 스콧은 조직 심리학자이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훨씬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업무 처리법과 문제 해결법 등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 이들이 제시하는 정리정돈의 기술은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행동이 아닌, 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하나의 루틴이라 더욱 흥미롭다.

 

 

정리를 하면서 물건을 마주 보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정리를 하다 보면 가끔 '이걸 왜 샀지?'라며 후회하거나 과거에 자신이 내린 결정에 당혹해 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과거에 했던 선택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정리를 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모든 선택에 확신을 갖는 긍정적 관점이 생겨난다.    p.98

 

우리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낸다. 어쩌다 칼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약속이 있거나 외식이 있을 수 있고, 정작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과 아침 정도인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회사 책상에서 보내다 보니, 자신의 책상에 뭐가 뭔지 모를 잡동사니들이 점점 쌓이게 되는 경험을 다들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업무와 상관이 있든, 전혀 관련이 없든 간에 대부분의 회사 책상들은 어수선하고, 복잡하게 뭔가가 쌓여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상 정리 한번으로 직장 생활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조언으로 시작해, 정리를 하고 싶은 근본적인 이유를 되짚어 보고, 책, 명함, 서류, 소품 등 항목별로 정리 방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에 완벽하고 빠르게 정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단순히 '공간적인 정리'뿐만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 정리하기, 시간, 결정, 관계 정리하기에다 회의, 팀 정리하기까지 그야말로 일 잘하는 사람의 정리정돈 기술이 총 집합되어 직장인들을 위한 종합 선물 세트같은 책이다. 곤마리식 정리법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와 닿았던 것은 그것이 단순한 ‘수납’과 ‘미니멀리즘’을 넘어선 인생에 대한 태도 자체를 바꿔주는 강력한 리추얼이기 때문이다. 책상을 수백 번은 정리했지만 어느새 또 어질러지는 경험을 했다면,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책상을 보며 우울해진 적이 있다면, 할 일을 산더미 같은데 시간은 부족하다면, 뒤죽박죽 엉켜버린 일과 삶의 질서를 되찾고 싶다면, 당신에게 이 책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7가지 정리 습관을 통해 누구나 '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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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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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그랬다면, 그는 종우를 희망이라 믿고 좀 더 버텼을지 모른다고, 버텨야 한다고, 일단 살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자고 다짐했을 수도 있다고, 그 모든 것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가정, 그런 안개 같은 가정들, 매 순간 숨을 옥죄어 왔던, 그러나 감정의 차원에서만 세워지고 무너지길 반복했던 텅 빈 성전 같은 고통일 뿐이란 걸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민이었다. 누군가 어깨라도 잡아 주면 나도 지쳤어, 라고 자동으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아무도 민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p.96

 

약혼자와 결혼이 깨지고 나서 회사를 나온 뒤 부동산중개소에서 일하는 민은 종종 버려진 가구점에 몰래 들어가 시간을 보낸다.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시며 고가의 원목 가구 사이를 걷는 한밤의 산책은 오로지 그녀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공간에 자신 외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 덕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호 역시 곧 폐점될 그 가구점에 종종 들러 시간을 보낸다. 그곳은 수호의 아버지가 하던 가구점이었고, 사업 실패에 이어 얼굴 한쪽에 마비가 온 뒤 아버지는 칩거 중이었다. 영원히 팔리지 않을 판매용 침대에 누워 우는 여자와 아버지가 실패한 상가에서, 아버지가 만든 침대에서 스스로에게 문자를 보내는 남자. 그리고 곧 폐허가 될 그들만의 작은 피난처는 고립된 이들이 버려진 공간에서 잠시 나마 숨쉴 수 있는 시간이다.

 

민은 부동산중개소에서 일하게 되면서, 매물로 나온 집에 주인이 없을 때 몰래 들어가 그곳 주인의 삶을 짧게 나마 살아내곤 했다. 대학생, 헤어디자이너, 서점 직원, 요가 강사, 호프집 주인, 대형 마트 계산원, 휴대폰 판매원, 그리고 승무원. 그렇게 30분짜리 생애를 수집할 수 있는 그 직업이 민은 좋았다. 한 달도 못 버틸 거라 여겼던 중개사무소에서 1년 가까이 일해오고 있는 것도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명백한 범죄인 줄 알면서도, 그 집이 담고 있는 짧은 생애의 시작과 끝을 누리고 싶었다. 입대를 앞두고 있는 수호는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가족들 모두가 차례로 신용불량자가 되자, 우연히 피씨방에서 주운 신분증을 위장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남의 신분을 도용한다는 것이 합법의 테두리를 넘는 것이라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저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독촉전화와 협박성 이메일을 피해 휴대폰을 꺼놓고 낯선 사람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가 꿈꾸는 미래는 오로지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결핍은 보완되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 혹은 삶이란 둥근 테두리 안에서 부드럽게 합쳐지고 공평하게 섞이는 것이므로 아픈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는 것, 그런 환상이 가능할까. 누군가 죽은 자리에서 누군가는 태어나는 방식으로 무심히 순환하며 평형을 유지하는 이 세상에서 꿈에서 본 죽은 노인을 기억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러나 민에게 일러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명한 건 오직 하나, 미니 회전목마를 타기엔 민 역시 몸집이 너무 커져 버렸다는 것뿐이었다.     p.188~189

 

민과 수호는 곧 폐점될 버려진 가구점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수호는 곧 철거될 옥상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며 연주와 조금 가까워지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만다. 약혼자와 함께 살 집까지 마련했지만 그의 일방적인 결별로 인해 상처 받은 민의 마음과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고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은 수호의 마음, 그리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퇴근 시간도 없이 맹목적으로 일에 헌신하지만 결국 일자리를 잃어 버리게 되는 연주의 일상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을 통과한다. 이들 각자에게 여름은 위태롭고, 아프고, 힘들고, 겨우 버텨내야만 하는 계절이지만, 그럼에도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 물론 여름 한철을 겨우겨우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마음에 남은 상처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도, 믿기지 않을 만큼의 행복도, 결국 지나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민은 자신이 30분씩 경험했던 타인의 삶들이 기차처럼 칸과 칸으로 이어진 생애들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잠깐 거쳐온 중개 사무소 직원의 칸을 지나며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기차는 계속 앞으로 달려 간다. 고단하지만 묵묵하게, 끊어질 것처럼 위태롭더라도, 멈추지 않고.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더라도, 어찌되었건 버텨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들 역시 곧 폐점될 가구점에서 생강차를 함께 마시고, 곧 철거될 옥상 놀이공원에서 맥주 캔을 나눠 마시며 잠깐의 위로를 받는다.

 

8월, 여름이 무르익어 깊어지는 시간, 그리고 여름의 끝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시간이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창문을 열어놓으면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온다. 매번 이상하게도 여름은 내게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부지런히 뛰어 다녀야했던 기억들을 잔뜩 안겨주곤 했다. 그래서 내가 여름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인생에서 의미 있는 챕터들을 꼽을 때 항상 여름이라는 계절이 포함되고는 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젊은 남녀 역시 아마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자신만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계획에도 없던 다른 종류의 삶으로 빨려 들어가는 허약한 지점들이 우리의 인생에는 생각보다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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