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철학 수업 - 세상을 바꾸기엔 벅차지만 자신을 바꾸기엔 충분한 나에게
전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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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에 부지런히 책을 들여다 놓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거주의 불안에 시달리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사할 때 제일 번거로운 물품이 책인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공간을 가장 넓게 점유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활자 너머의 아득한 세계에 비하면 종이의 두께와 면적이 차지하는 자리는 거저나 다름없어 보인다. 측량할 길 없는 세계로 가는 입장권을 모셔두고 좁은 집에서 우주를 탐험하는 일은 나의 가장 오래된 습관이다. 상상력이 머무는 공간, 그곳을 나는 집이라고 부르곤 했다.     p.83

 

제목만 보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사실 책에 대한 정보를 거의 보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겉 날개에 있는 저자의 이력부터 보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후 파리로 가서 어학 코스를 2년 밟고, 파리 1대학 철학과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올해 가을부터 동대학원에서 공부할 예정이라는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철학에 대해서 겨우 3년 공부한 대학 졸업생이 어떻게 철학에 관한 책을 낼 수가 있지 싶었던 거다. 그래서 사실 다소의 의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이 너무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읽다 보니 이 책은 철학을 공부한 학생의 유학 수기 내지는 에세이로 분류가 될 것 같았는데, 저자가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고 있었고 '철학'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철학'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철학이 뭔지도 모르고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겠다고 프랑스 땅을 밟았던 저자처럼, 철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혹은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즐기는 데에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일단 도망가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자. TV 화면에 얼굴을 묻거나 한껏 올린 소리로 귀를 막아선 안 되지. 저무는 해가 기웃대는 걸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드리우는 빛을 조명 삼아 책을 읽는 건 어떨까. 하염없는 기다림 말곤 달리 할 일도 없는걸. 나는 시간을 빠르게 흘러가도록 만드는 책을 선호했다. <돈키호테>였나? <걸리버 여행기>였을까? 페이지를 넘기는 몸만 남겨두고 나를 다른 세계로 불러내는 이야기가 있다. 관성처럼 읽어내는 책. 이런 경우 잠시 덮어야 하는 순간이 고통스럽다. 내가 읽던 책은 저녁을 예고하는 황혼처럼 활자가 빚어내는 세계의 입구였다. 고독이 두려운 어린이가 사라진 무아지경의 세계.       p.220

 

원하는 답을 알아차리는 한국의 '눈치'와 찾은 답을 거부하는 프랑스의 '불온함' 사이에서, 배워본 적 없는 반항적 사고를 새로운 언어로 익히는 공부가 쉬웠을 리 없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려면 불어를 배워야 했고, 한국에서 배웠던 불어는 실전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왕초보반에 배정받으면서 다시 어학을 시작해야 했지만, 어학원은 갑작스레 문을 닫아 버렸고, 몇 달 치 수업료를 환불 받지도 못한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 아기가 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며, 언어를 몸으로 익힌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란 흥미로웠다. 프랑스는 교육이 자본과 분리된 곳으로, 고등학교 졸업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기만 하면 어느 국립대학이든 지원할 수 있는 평등 교육을 지향했고 학비 또한 저렴했다. 그런데 하필 저자가 공부를 하던 시기에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을 16배 인상한다는 소식이 들려 오고, 불합리한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저자의 유학 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단순히 자신의 경험담들만을 가볍게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니라 소르본 대학의 철학과에서 배웠던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함께 하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특히나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가 서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제도가 너무도 다르다는 데서 오는 혼란과 저자의 고민이 와 닿았다. 나를 둘러싼 사회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졌다는 가난한 유학생의 에피소드는 수많은 젊음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불러올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타인과 사회의 욕망에 반발해 이를 악문 도망은 견딜 만하지만, 타인의 욕망으로 형성된 나라면 '와장창'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누군가 질문을 해오는데 자신은 거기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건지 삶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면, 사회가 강요하는 온갖 규범 속에서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것이 어려웠다면 이 책이 '내가 될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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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0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20-08-20 23: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딱 그런 기분이었어요. 기대도 없이, 정보도 없이 읽었던 책인데.. 너무 괜찮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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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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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이 맞아. 별 거 아니지! 그래서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야! 우리가 저스티스 리그나 엑스맨도 아니잖아!"
"우리, 납치당한 거야?"
그는 그들이 폭소를 터뜨려 주길 간절히 바랐다. 한 명이라도 당연히 그건 아니지 하고 대답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당근이지." 조지가 말했다.      p.143

 

남편과 아내가 죽어 있고, 그들의 아이가 사라진 현장을 경찰이 발견한다. 앞뒤 정황상 아이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아이는 열두 살의 나이에 두 개의 일류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였고, 경찰은 머리가 좋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아직 어린 아이였고, 아무리 머리가 좋은 아이라도 오랫동안 숨어 있지는 못할 것이므로 아이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이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곳은 TP(텔레파시)와 TK(염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혹한 훈련과 실험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키워 테러에 사용하는 ‘시설’이었다. 아이들을 납치해 그들의 초능력을 테스트하는 그곳에는 의사도 있고, 기술자도 있고, 숲 속에 박혀 있는 소규모 병원이자 일종의 수용소였다. 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은 외부 세계와 전혀 접촉할 수 없었고, 모든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이란 없었다. 조국에 봉사하는 어마어마한 특권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일종의 무기로 개조해 남는 게 없을 때까지 쓰고 버리는 곳이었다.

 

 

루크 엘리스는 머리가 비상한 동시에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고 오버해 가며 붙임성 있게 굴던 아이였다. 그는 적절한 상호작용을 모두 수행한 뒤에 책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는 심연이 있고, 책 속에는 거기 숨겨진 것을 소환하는 비밀의 주문이 들어 있었다. 모든 걸작 미스터리물이 그랬다. 루크에게는 그런 미스터리물이 최고였다. 미래의 언젠가는 그가 직접 책을 쓸 수도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유일한 미래가 뒤 건물이었다. 여기에서는 '그런들 무슨 소용이겠어'가 삶의 진리였다.    p.323

 

그곳, 비밀 시설에서는 물건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타임의 마음을 읽어내는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몰래 잡아와 시험을 했다. 뭔지 모를 주사를 잔뜩 맞히거나, 수조에 넣어 놓는 등 비인간적인 훈련이 이어졌다. 대신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담배나 술, 각종 과자며 탄산음료들이었다. 덕분에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뽑아서 마시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앞 건물에 머무는 기간이 대략 3주, 그 기간이 지나면 뒤 건물로 건너가 임무가 해제되고 관련된 기억이 삭제된 후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그들은 루크의 부모를 살해하고 루크를 데려왔다. 당연히 아이들이 알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고, 조작이란 뜻이다. 시설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기며 참담한 생활을 이어가던 루크는 실험 약물의 부작용으로 함께 있던 아이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잃어 버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죽음을 불사하더라도 이곳을 탈출하겠다고 말이다.

 

스티븐 킹은 어른들이 전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에 아이들을 가차 없이 짓밟는 비인간적인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것>에 이어 악에 맞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포와 판타지 그 사이에서, 항상 불가능하면서도 가능한 세계를 그려온 작가답게 이번 작품 역시 끔찍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는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무방비하고 약한 인간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으로 점철된 악을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티븐 킹의 놀라운 스토리텔링을 만나 보자. 1권 마지막에 탈출에 성공한 루크가 그들에게 어떻게 복수하게 될지 궁금해서 어서 빨리 2권도 만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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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봇 다이어리 : 인공 상태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8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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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만 5천 시간 전쯤에 나는 라비하이랄 광산 시설 큐 정거장에서 계약을 맡았어. 임무 도중에 폭주해서 고객의 상당수를 죽였지. 그 사건에 관한 내 기억은 부분적으로 지워졌어."
보안유닛의 기억 삭제는 언제나 부분적이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유기체 부분 때문이다. 유기체 신경 조직의 기억은 지울 수가 없다.    p.49

 

먼 우주로의 여행이 일상이 된 미래, 사람들이 외계 행성을 탐사하려면 기업의 승인을 받고 보안 유닛과 함께 해야 했다. 이야기의 화자는 사람이 아니라 보안용 안드로이드인 머더봇murderbot 이다. 그는 스스로를 '살인기계'라고 부르는데, 오래 전 사람을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의 지배모듈이 오작동을 일으켜,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고 자신이 보호해야 했던 사람들인 채굴 작업자 쉰일곱 명을 죽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를 회수해서 새 지배모듈을 설치했고, 그 뒤로 3만 5천 시간이 훌쩍 넘을 동안 살인을 한 적은 없다. 대신에 그 시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책, 연극, 음악을 즐기며 지냈다. 다운받은 드라마 보는 걸 가장 좋아하는 안드로이드, 인간에게 냉소적이고 자신을 무자비한 살인기계로서는 실패작이라고 칭하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이번 작품에서 머더봇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스스로를 살인기계라고 부르게 된 과거 학살, 비극의 장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 동안 머더봇은 주로 외딴 시설이나 거주민이 없는 탐사 행성에서 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화물선을 타고 돌아다니며 드라마나 보면서 남은 삶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텅 빈 화물선을 혼자 타고 환승 고리까지 와서 자신이 자유로운 봇이며 인간 보호자에게 돌아가려는 중이라고 속이고 우주선을 얻어 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를 만나게 된다. 심술을 부릴 정도로 똑똑한 우주선 봇이 그가 탈주한 보안유닛이라는 알아보고 말을 건 것이다. 머더봇은 우주선봇과 함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그의 도움으로 신분을 위조해 증강인간인 척하며 인간들의 팀에 합류해 그곳으로 향한다. 과연 그는 자신의 정체를 찾을 수 있을까?

 

 

"스스로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도 있는 법이에요. 그저 살아남아서 계속 나아가야 하죠."
다들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는 불안해져서 곧바로 옆에서 우리를 볼 수 있도록 가장 근처에 있는 보안카메라의 시야로 전환했다. 내 의도보다 더 강조해서 그 말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원래 세상일이 다 그랬다. 그 말이 왜 그렇게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p.143

 

이 시리즈의 전작인 <머더봇 다이어리: 시스템 통제불능>은 2018년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석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 <머더봇 다이어리: 인공 상태> 역시 2019년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세계 SF 어워드를 석권한 시리즈가 되었다. 총 4부작인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는 내년에 <머더봇 다이어리: 로그 프로토콜>과 <머더봇 다이어리: 탈출 전략>으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늘 연결돼 있지만 혼자이기를 갈망하는, 인간을 냉소하지만 필요할 때는 따뜻한 농담도 건넬 줄 알고, 드라마를 많이 본 덕분에 위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할 줄도 아는, 소심하고 사회성 없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살인봇이라는 전대미문의 캐릭터 또한 매우 인상적이고 말이다. SF라는 장르 중에서도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소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과학적 공상과 상상력이라는 것이 재미를 보장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구축한 세계의 설정들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지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문턱이 그리 높지 않아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머더봇이라는 안드로이드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여야 할 인공지능이 마치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니 말이다. 이 매력적인 안드로이드와 함께하는 장대한 우주 모험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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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9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것 같네요. 서재에서 이렇게 새로운 작가나 책을 만나는게 항상 좋네요.
 
작가들과 반려동물의 사생활 에프 그래픽 컬렉션
캐슬린 크럴 지음, 바이올렛 르메이 그림,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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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써서 처음 받은 원고료로 가장 먼저 반려 동물을 입양했다. 그녀에게 빵, 월세, 신발, 정육점 대금을 지불하는 것보다 아름답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페르시안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사람보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애정 가득한 말투로 고양이만큼이나 신비한 글을 쓰고 싶다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이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길렀다. 오늘날에도 헤밍웨이의 생가에 가면 그가 키웠던 스노우볼의 후손들 40여 마리가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다닌다고 한다.

 

수 세기 동안 미술가, 작가, 과학자, 철학자 등이 자신의 반려동물들과 함께 해왔다. 이 책은 반려동물과 함께한 20명의 작가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반려동물과 함께한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간결하게 에세이처럼 보여주고 있는데, 작가와 그의 반려동물들이 구석구석 일러스트로 함께 하고 있어 더욱 사랑스럽다. 개와 고양이, 까마귀, 생쥐, 토끼, 야생 조랑말, 공작새, 닭들까지.. 다양한 반려동물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에드거 앨런 포,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커트 보니것, 플래너리 오코너, J.K. 롤링 등 19세기의 작가부터 21세기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가들의 일생을 모두 담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작가들이 자신의 반려동물에 대해 남긴 유명한 말들도 인상적이다. 커트 보니것은 "누구에게든지 물어보세요. 개와 고양이가 우리 사람보다 더 영특하답니다." 라고 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고양이는 절대 감정을 속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속이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지요." 라고 했다.

 

 

마크 트웨인은 "누구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의 소개말은 필요 없습니다. 이미 나는 그 사람의 친구이자 동료입니다." 라고 했으며, 찰스 디킨스는 "고양이에게 사랑 받는 일보다 더욱 위대한 선물이 또 있을까?" 라는 말을 남겼다. 반려동물에 대한 작가들의 각별한 사랑은 조금 독특해 보이기도 했고, 가끔은 유별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나 역시 반려동물과 오래 함께한 세월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혼자만의 시간을 오래 가져야 하는 외로움 때문에 반려동물이 주는 위로와 위안이 특별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이력과 작품 세계, 그의 대표작과 반려동물에 얽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너무 매력적이다. 그들과 반려동물의 사연 덕분에 위대한 작가들이 더욱 인간적으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참 좋았다. 게다가 매 페이지 마다 곳곳에 그려져 있는 작가들과 반려동물의 일러스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소장용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반려동물이 인간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작가들이 사랑한 반려동물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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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생각하는 힘 - 일상의 모든 순간, 수학은 어떻게 최선의 선택을 돕는가
키트 예이츠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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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기간의 시간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비율로 판단한다면, 지각된 시간의 기하급수적 증가 모형이 이치에 닿아 보인다. 34세인 나에게 1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의 3% 미만에 해당한다. 요즘 들어 내 생일은 너무 빨리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열살 꼬마는 다음번 생일 선물을 받을 때까지 살아온 생애의 10%를 기다려야 하며, 그러려면 거의 성인에 가까운 인내가 필요하다. 네 살인 내 아들이 생일을 다시 맞이하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의 4분의 1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p.63

 

이 책은 일상에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수학의 영향력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기하급수적 증감을 몰라 큰 재산을 날린 투자자, 악의적 확률 해석 탓에 두 자녀 살해 누명을 쓴 엄마, 잘못된 알고리듬 때문에 파산한 기업가, 오심의 무고한 피해자, 소프트웨어 결함 대문에 피해를 입은 선량한 시민, 에이즈 (거짓) 양성 판정을 받고 지옥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 등의 실제 사건들이 모두 수학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사회의 모든 곳곳에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수학을 통해서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수학이 불쑥 튀어나올 곳을 알려주는 대신에 단순한 수학 규칙과 도구로 무장시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방정식이 하나도 나오지 않으며, 수학책이 아니고, 수학자를 위한 책도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 책의 정체는 뭘까.

 

 

우리는 읽고 보고 듣는 것을 통해 늘 수의 폭격을 받는다. 예컨대 21세기의 생활 방식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 발견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수를 다루는 기술도 증가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숨겨진 의도 같은 것은 없으며, 그저 통계 수치를 해석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렇지만 어떤 발견을 비틀어 해석하면 특정 당사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p.171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수학은 바로 확률과 패턴이다. 수백 개의 방정식이나 수많은 행의 컴퓨터 코드가 등장하진 않지만, 다양한 상황에 따른 패턴 분석을 위해 끊임없이 수치가 등장한다. 그래서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어려워하는 독자라면 다소의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그 모든 것들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수치들을 이해하지 않아도, 혹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저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읽기만 해도 수학을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숨은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 질병 선별 검사 결과 판정이 틀릴 가능성은 얼마나 있는지, 법정에서 수학이 잘못 사용되어 오심이 벌어지거나, 수학적 오해 덕분에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난 경우, 어떤 모임에서 두 사람의 생일이 일치할 확률이라던가, 식당을 고를 때 실패율을 낮추는 방법, 전염병 확산 패턴을 읽어내는 수학 모형 등 우리 일상의 수많은 부분들이 모두 수학으로 설명이 되고 있어 놀라웠다. 저자는 말한다. '실제 세계에서 실행할 수 없는 시나리오들을 시험하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때로는 놀라우면서도 직관에 반하는 결과를 내놓는 것이 바로 수리역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말이다. 정말 알고 보니 이 세상이 수학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을 만나 보자. 수학이 무엇보다도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실용적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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