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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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머니를 목매달았다.
나는 붉은솜나무의 낮은 가지에 매달린 어머니의 몸뚱어리가 뱅글뱅글 도는 걸 봤다.
어머니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백인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다. 어쨌든 그를 죽이지는 못했다. 어설픈 분노에 휩싸여 어깨를 베는 것에 그치고 말았으니까.   p.20

 

티투바는 열여섯 어린 소녀였던 아베나가 노예로 팔려가는 배의 갑판에서 영국인 선원에게 강간당한 결과로 태어났다. 증오와 멸시의 행위로부터, 끔찍한 폭행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주인은 아베나의 임신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나 그녀를 같은 출신의 노예인 야오에게 줘버렸고, 야오는 그녀를 오누이처럼, 아버지와 딸처럼 보듬어준다. 그럼에도 태어난 아기가 매 순간 고통과 수치를 떠올리게 했기에, 아베나는 티투바를 사랑할 수 없었다. 대신 야오가 두 사람 몫만큼 티투바를 사랑해줬기에, 아이는 애정결핍으로 괴로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티투바는 일곱 살때 어머니가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백인인 주인에게 칼을 휘둘렀고, 사람들이 어머니를 목매달아 처형한 것이다. 야오는 다른 농장주에게 팔려갔고, 티투바는 농장에서 쫓겨난다. 티투바를 거둔 것은 어떤 나이 든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교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넌 살면서 고통을 받을 거다. 많이, 많이.... 하지만 넌 살아남을 거다!"

 

만 야야는 티투바에게 온갖 종류의 치유 식물들과 바다, 산 등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모든 것에 영혼이 있고 숨결이 있음을, 모든 것이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만 야야는 티투바가 열네 살이 되고 며칠 안 되어 세상을 떠났고, 망자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믿었기 때문에 티투바는 울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주위에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티투바는 남자들, 특히 백인 남자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만 야야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티투바에게 다가온 존 인디언이라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 역시 노예의 신분이었고, 티투바는 그와 사랑에 빠져 혼자 만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노예 신분이 되기로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이 생겼고, 그와 함께 하는 대가로 스스로를 노예 상인에게 넘겨 준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그로 인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얼마나 많이 돌로 쳐 죽여야 하나? 얼마나 불을 질러야 하나? 얼마나 피가 들끓어야 하나? 앞으로도 얼마나 더 무릎을 꿇어야 하나?
삶을 위한 다른 흐름을, 다른 의미를, 또 다른 절박성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불이 나무 꼭대기를 휩쓴다. 그가, 반역자가 연기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죽음을 이겨내어 그의 정신이 남은 것이다. 겁에 질려 둥글게 모여 선 노예들이 다시 용기를 낸다. 정신이 남는다.     p.218

 

이 작품은 세상에 단 한 번 존재하고 단 한 번 수여된, 대안 노벨문학상인 '뉴 아카데미 문학상' 수상작이다. 17세기 말 미국의 작은 마을 세일럼에서 마녀로 몰렸던 흑인 여성 노예 티투바의 삶을 그리고 있다. 1962년, 세일럼의 마녀 재판은 세라 굿, 세라 오즈번, 티투바가 체포되면서 시작되었다. 열아홉 명이 교수형을 당했고, 남자 한 명은 압사형에 처해졌다. 1963년, 티투바는 감옥에서의 '체류 비용'과 쇠사슬 및 족쇄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다시 노예로 팔렸다. 티투바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딱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되고, 대안 역사 내러티브의 형식으로 다시 쓰여진 것이다. 한 흑인 여성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노예로 끌려왔다가 세일럼 마을에서 다른 ‘백인 마녀들’과 함께 마녀 재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서사는 굉장히 드라마틱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작가인 마리즈 콩데는 은행가인 아버지와 최초의 흑인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16세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역사적, 사회적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후에 그녀는 미혼모가 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가난을 겪으면서 흑인 부르주아의 삶과는 정반대 편에서 살게 되는데, 그로 인해 사회적 약자와 폭력과 차별의 희생자에 대한 남다른 공감과 이해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수없이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했던 마녀 사냥에서도, 똑같이 마녀로 지목되어 무고한 희생을 치렀지만, 백인의 희생과 흑인의 희생은 그 역사적 무게가 같지 않았다. 티투바 역시 흑인 여성 노예였기에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났을 것이다. 그 점에 인간적 연민과 일체감을 느낀 작가는 “티투바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은 역사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피부와 성별 때문에 거부당한 인간적 권위를 그에게 꼭 회복해주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이 작품 속에서 티투바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이자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이 당당하며,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놓지 못한 인물'로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대부분의 노예들에게는 오로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살아 있기 위해서 그 모든 모욕과 수치를 견뎌내고, 참으며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티투바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삶은 그냥 숨 쉬며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삶의 풍미가 바뀌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모든 고통을 하나 하나 감수해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래서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끝이 난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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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12-27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축하드립니다.
리뷰도 멋지지만 사진을 어디서 찎으셨는지 엄청 궁금해지네요^^

피오나 2019-12-27 19:19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책 표지 색감이 예뻐서..지나가다 푸른 조명이 눈에 띄어서 함께 찍었어요 ^^
 
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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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다가 아냐. 난 아침에 눈 뜨면 정말 행복해서 노래해. 내 자식들, 내 손자들, 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우리도 사는 데 물론 스트레스 많이 받아. 어느 곳에서든 인생이 늘 행복한 건 아닐 거야. 모니카, 부자인 너도 그렇지 않니? 베로니카, 나 부자 아니야. 물론 아주 가난하지도 않지만. 오, 그래? 모니카! 봐봐, 돈은 중요하지만 인생은 돈이 다가 아니잖아. 그럼 어찌 사는가가 중요해.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 내 마음에는 사랑이 가득하거든.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구.        

-'베로니카의 눈물' 중에서, p.60

 

작가인 모니카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몇 달간 지낼 임대 아파트를 구한다. 그리고 입주한 첫날 뚱뚱하고 나이가 꽤 많은 백인 여성인 베로니카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주인인줄 알았지만, 실제 주인은 마이애미에 있고 그녀는 관리인이었다. 월세에 청소비와 관리비가 포함되어 있기에 베로니카가 주기적으로 집에 들러 모니카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집은 싸구려 비닐 소파에 낡은 가구들, 가스레인지는 표면에 녹이 슬어 있고, 솥단지 같은 냄비는 바닥이 검댕으로 두툼하게 더께가 져 있는 등 한국 같으면 몽땅 쓰레기장에 버리고도 남을 물건들 투성이였다. 게다가 물에 석회가 많아 끓여서 가라앉힌 뒤 먹어야 했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거나 온수 보일러를 켜는 것도 성냥불을 켜서 화구에 대며 점화를 시켜야 했기에 만만치가 않았다. 낙후된 환경에서, 부족한 것 투성이에, 불편한 상황들에 적응하느라 정작 모니카는 제대로 된 글을 써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베로니카는 약속한 날짜가 아니라 수시로, 아무 때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집에 오곤 했다. 그러다가는 일주일째 연락도 없이 안 오기도 하는 등 제멋대로였지만, 막상 만나면 이상하게 웃음과 따뜻함을 안겨주었다. 올해 일흔 셋이 된 베로니카는 이제 자신도 늙어서 일이 힘들다며, 모니카가 한국으로 떠나면 자기도 일을 그만둘 거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험실 간호사로 오래 일을 했던 전문직 여성이었지만, 은퇴하고 지금처럼 방을 청소해주고 받는 월급은 형편없었다. 우리 돈으로 한 달에 1만 2000원 정도였던 것이다. 자신이 이곳에 머물면서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내는데, 관리인 월급이 겨우 1만 2000원이라니, 모니카는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쿠바의 엄마와 딸' 관계로 발전하게 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하나 생기면서 이들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당신도 다 아는 아바나의 관광지를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내게는 도시 자체가 꼭 무대 세팅 같았어요. 빛과 그늘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무대. 황 교수의 빠른 걸음을 놓칠세라 앞만 보고 잰걸음으로 다닌 곳, 그런 관광지나 유적지가 조명이 비친 곳이라면, 그 옆의 골목과 집들은 그늘에 가려져 있는 듯한 무대. 그 그늘에서 맨발의 아이들이 뛰놀고 폐허가 된 건물 귀퉁이에 사람이 사는지 빨래가 걸려 있었어요. 빛의 세계로만 나를 안내하려는 황 교수의 배려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는 결과적으로 나를 방치했어요.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 중에서, p.161~162

 

나는 쿠바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의 표제작인 <베로니카의 눈물>을 읽으면서, 내가 언젠가 한 번 아바나에 가본 게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극 중에서 주인공이 겪었던 시간들이 체감되는 느낌이었다.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 순수와 오염, 자유와 고독, 혼돈과 모순, 환상과 환멸, 매혹과 잔혹'으로 상징되는 쿠바의 다양한 매력을 관광객으로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이 되어 살아보는 듯한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이 작품에 수록되어 있는 여섯 편의 소설은 쿠바 아바나, 프랑스 파리, 미국 플로리다 등 다양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해외 여행 중이거나 그곳에 단기 체류 중인 걸로 등장한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낯선 이국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너무도 매혹적이다. '이국'과 '낯선 장소'라는 설정만으로도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변화들이 색다르게 다가오니 말이다.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에서 사진작업 차 파리를 다시 찾은 재이는 오래 전 그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전남편을 다시 만나기로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친구 부부의 세미나에 대리 출석하기 위해 딸과 함께 플로리다에 온 현주가 딸이 성폭행 피해자였고 미투 고백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카이로스의 머리카락>에서 은혼식을 맞아 남편과 함께 발칸반도의 아홉 나라를 도는 패키지여행을 떠난 복순은 애써 덮어두고 있었던 그간의 묵은 감정과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여행이란 사람을 좀 더 가깝고 애틋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반면 평소보다 가까워진 그 물리적 거리로 인해 서로가 알지 못했던 낯선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 일상의 숨겨진 이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권지예의 소설집은 매혹적이다. 누구라도 이 작품들을 읽게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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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고양이
모자쿠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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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 모자쿠키는 '집사'에게 애정 가득한 잔소리를 쏟아내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작품을 네 컷 만화로 그려 트위터에 업로드 하기 시작했다. 이 계정은 한 달 만에 10만 팔로어를 모았고, 게시물마다 수천 건의 리트윗과 수만 건의 '좋아요'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과 공감을 일으켰다. 그렇게 단숨에 25만 팔로어를 달성하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중쇄를 거듭하며 성공을 거둔다.

 

 

그동안 주로 동물을 기반으로 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그려온 작가의 이력답게, 크라프트 배경 위에 담백하게 그려낸 '잔소리 고양이' 캐릭터는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사사건건 쉴 틈없는 잔소리를 퍼부어대고, 주인의 모든 생활 습관들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애정과 사람이 듬뿍있는 게 느껴져서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만화이다.

 

 

한때 '츤데레'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무심한 듯 다정한, 겉으로는 무뚝뚝하더라도 뒤에서는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람에게 쓰는 이 표현은 '잔소리 고양이'에게 너무도 잘 어울린다. 퉁명스럽고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 그 잔소리들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은 따뜻하기 그지 없다.

 

짧은 만화 안에서 대사라고는 잔소리 몇 마디밖에 없지만, 굉장히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보고 또 보고 싶은 만화이다. 무엇보다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고양이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구성과 내용이 간결하고 단순한데다, 하얀 고양이 한 마리 역시 너무 심플하게 그려져 있어 그게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또 어질러 놓고 나갔니, 이제 일어난 거야? 꾸물대지 말고 서둘러야지, 살을 빼고 싶으면 간식은 좀 참아보라고! 매 끼니 제대로 챙겨 먹어야지! 술 좀 줄여! 게임 좀 적당히 해! 그거 꼭 사야 해? 신용카드 좀 적당히 써!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날 위한 소리라지만, 듣기 싫은 얘기들은 모두 잔소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숱한 잔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왜 그때 어른들이 좋은 얘기 대신 쓴 소리만 해댔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더 이상 내게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제 스스로 다 알아서 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등짝을 후려치며 잔소리하던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 세상이 나란 존재에게는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지는 날, 하는 일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후회하게 되는 날,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날 당신에게 필요한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고양이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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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독서 -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읽는가
김학렬.김로사.김익수 지음 / 리더스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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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투자자가 자료를 분석하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돕는다. 투자자에게 독서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독서, 특히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분석 능력을 키워준다. 허풍 섞인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 독서의 아이러니다. 대체 얼마나 읽고 알아야 세상이 보이는 것일까? 실로 지적인 모험가, 현명한 투자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p.38~39

 

책을 많이 읽는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또 부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독가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이루고 그것을 오랫동안 지켜낸 사람들은 대부분 책이나 글을 읽는 일을 좋아해왔고 습관화했다는 점이다. 다독가이자 부동산 경제 분석가인 저자는 말한다. 투자의 세계에 들어온 뒤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진정한 슈퍼리치들은 모두 엄청난 다독가였다고. 그래서 그는 '독서와 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책 속에는 분명 성공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길을 함께 걷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치투자를 강조하는 부동산 분석가 김학렬 소장은 평생 다독가로 살았다. 그는 그동안 읽어왔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독서웹툰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로사(김로사)와 영상콘텐츠 PD 드리머(김익수)를 만나 독서 팟캐스트 <다독다독>을 시작했다. 이 책은 2년간 200여 회 방송에서 다룬 100권의 책 중에서, 재테크 입문자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책들만 골라 정리하고 글을 덧댄 결과물이다. 방송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생각, 그 책을 고르고 방송한 이유 그리고 책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팟캐스트를 재미있게 들었던 청취자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방송을 듣지 못했던 독자들이라면 각 장의 말미에 QR코드가 수록되어 있으니 책을 읽으며 팟캐스트를 함께 들어봐도 흥미로울 것 같다.

 

 

"정말, 진짜로 행복한가요?"
이쯤 되면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무슨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고 소름이 끼친다. 한국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이것이 자연스럽다. 이와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다 보면 아주 세부적인 행복의 걸림돌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신입 직원은 실제로 구체적인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p.235

 

이 책은 ‘부’에 관심이 있다면 자본, 경제, 심리, 인간을 주제로 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경제학에 관련된 도서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100배 주식,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돈의 감각 등 직접적으로 투자와 부의 법칙을 알 수 있는 책들을 시작으로 총,균,쇠, 사피엔스, 어디서 살 것인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 어제와 오늘, 그리고 인간 전체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문학 서들도 등장한다. 마지막 장이 가장 흥미로운데,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심리, 세대 차이, 협상 등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카네기 인간관계론, 넛지, 포노 사피엔스,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90년생이 온다 등 얼핏 투자 혹은 경제와는 딱히 상관없어 보일 것 같은 책들이 왜 중요한지 소개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하루에 두 권씩 책을 읽으며 자랐고, 마크 저커버그 또한 매일 1시간 이상은 책을 읽었으며, 워런 버핏은 지금도 매일 500페이지씩 읽는다고 했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손정의….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들은 왜 모두 독서광일까. 독서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기회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며,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통찰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사회구조인지,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아야 ‘현명한 투자’와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안목은 절대 빌릴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가치를 보는 눈부터 키워야 한다. 방향을 보는 안목은, 세상의 기초 학문을 공부하고 인간을 이해해야만 깨달을 수 있다. 투자에 독서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당장 어떤 길부터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길을 걸으면서도 ‘이 길이 맞나’ 하고 계속 불안해하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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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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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양 사나이 협회에서는" 하고 입을 열면서 사내는 가슴 지퍼를 조금 내려 선풍기 바람을 안에 넣었다. "해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양 사나이 한 명을 뽑아, 성 양 어르신님을 추모하는 음악을 의뢰해 크리스마스에 공연해왔습니다만, 올해는 경사스럽게도 당신이 뽑혔습니다."     p.5

 

여름용 양털 옷 속에서 땀을 흠뻑 흘리며, 양 사나이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게 바로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넉 달 반이나 남았던 여름이었다. 하지만 9월이 지나고,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다 가도록 양 사나이는 좀처럼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는 낮에 도넛 가게에서 일하느라 작곡에 전념할 시간이 얼마 안 되었는데, 그나마 집에 와서 낡아빠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일층에 사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쫓아와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렇게 양 사나이는 크리스마스가 나흘 뒤로 닥쳤는데도, 약속한 음악을 한 소절도 만들지 못했다. 그가 풀 죽은 얼굴로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도넛을 먹을 때, 마침 앞을 지나가던 양 박사가 그를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저녁 6시에 우리 집으로 오게. 좋은 방법을 가르쳐줄 테니. 그런데 그 시나몬 도넛, 내가 먹어도 될까?"

 

 

양 사나이는 시나몬 도넛 여섯 개를 챙겨 들고 양 박사 집을 찾아 간다. 그 집은 현관 초인종도, 문기둥도, 바닥돌도 모조리 양이었고, 정원수도 한 그루 한 그루 양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양 박사는 양 사나이에게 말한다. 작곡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저주에 걸린 탓이라고.

 

"자네 혹시...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지 않았나?"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게 옛날 옛적부터 내려오는 금기 사항이라는 것이었다.

 

 

양 사나이는 촛불을 들고 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구멍은 캄캄하고 구불구불한 굴로 이어져 있었다.
"나 원, 작년 12월 24일에 도넛 좀 먹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하다니." 양 사나이는 혼잣말을 꿍얼거렸다.    p.40

 

자, 과연 양 사나이는 과연 구멍 뚫린 도넛을 먹은 저주를 풀고 약속한 음악을 만들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미공개 단편 소설에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이 그림을 그린 아트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후와후와》《장수 고양이의 비밀》등 다수의 책에서 일본의 안자이 미즈마루와 파트너십을 보여 줬었고, 《버스데이 걸》《잠》 등의 작품에서는 독일의 카트 멘시크와 함께 했었다. 그가 한국의 일러스트 작가와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게 자유분방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 묘사가 돋보이는 40여 컷의 그림을 이우일이 완성하고, 거기에 구멍 뚫린 도넛 모양의 입체적인 북디자인이 더해졌다.

 

 

하루키의 소년 같은 엉뚱한 상상력도 동화처럼 읽혀서 좋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한 이야기라 겨울에 읽기에는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양 사나이와 양 박사, 그리고 꽈배기 도넛 모양의 꼬불탱이와 쌍둥이 소녀, 바다까마귀 부인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하루키의 이야기 속 인물들과 어찌나 찰떡 궁합인지... 이우일과 하루키의 조합은 완벽하게 느껴진다.

 

그들만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이루어지기까지, 짧다고 하면 짧지만 나름 다양한 모험을 거쳐왔던 이들이라 버라이어티한 이야기였다.

 

자, 하루키와 이우일의 완벽한 만남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나 보자.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당신의 세계가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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